1948년 헌법을 만들다 - 제헌국회 20일의 현장, 2024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
안도경 외 지음 / 포럼(도서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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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국군의 날이 임시 공휴일로 지정이 되었다. 한때 공휴일이었으나 제헌절과 함께 공휴일에서 제외된 날이었는데. (한글날은 제외되었다가 다시 공휴일이 되었으니 논외로 하고) 


왜 국군이 날을 언급하냐고? 그것은 올해 제헌절은 임시 공휴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국군의 날과 제헌절 중에 어느 날이 더 비중이 크냐고 하면 난 당연히 제헌절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국군에 대한 규정이 헌법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헌법을 공포한 날이 바로 제헌절이기 때문이다. 


헌법의 하위에 속해 있는 국군을 기리는 날이 임시 공휴일에 되었는데, 정작 우리나라의 법 근간인 헌법을 제정한 날은 공휴일이 아니다. 공휴일이 아니니 사람들이 그 날이 어떤 날인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숫자를 달달 외우는 학생들에게도 광복절, 삼일절은 언제인지 알아도 제헌절은 언제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들과 관계없는 날이라고 여기니까. 


그렇지만 헌법은 우리 모두와 관계가 있다. 우리들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헌법이다. '헌법재판소'가 있어 수많은 위헌 신청을 하지 않는가. 법이 문제가 있다면 우리는 헌법에 호소를 한다. 그만큼 헌법은 우리 국민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믿고 기댈 언덕이 된다.


이 헌법을 만들 때 어떠했을까? 단지 1948년 7월 17일에 공포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이 책을 통해서 헌법을 기초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며칠 동안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문구, 자구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쓰며, 또 헌법에 기록되지 않았더라도 회의록에라도 헌법 정신을 남기려는 정신을 알게 됐다. 또한 제헌의회 의원들의 높은 수준과 열의도 알게 되었고. 그들은 결코 헌법을 속성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의 신념과 당시 처한 우리나라 상황과 우리나라 인민들(헌법 조항에 대한 논의 중에 국민이냐 인민이냐 하는 논쟁도 벌어지니)이 처한 현실, 그리고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종합해서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한다. 


남의 의견을 완전히 묵살하지도 않고 또 그간 우리가 숱하게 보아왔던 식으로 몸싸움도 하지 않고 절차에 따라서 의견을 제시하고 가부(可否)를 논해 헌법 조항들을 수정하고 결정해 나간다.


그동안 헌법 제정 기간 동안 벌어졌던 회의록을 바탕으로 정리해서 낸 것이 이 책인데... 말을 그대로 옮기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면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다. 의장이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의장인 이승만이 연로한 관계로 부의장인 김동원, 신익희가 주로 진행을 한다. 그런데 이승만이 진행을 할 때는 이 편집본에 의하면 부의장들이 진행할 때와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무엇인가, 글만으로는 그렇다고 확신할 수 없지만, 내 편견이 작동한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김동원, 신익희는 자신들과 동등한 급의 국회의원이라 여기지만, 이승만은 자신들과 다른 권위를 지닌 사람으로 대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또 이승만의 진행은 상당히 권위적이다. 헌법 독해 후반으로 가면 이승만의 이런 모습이 잘 드러나는데...


그것은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관한 조항을 부칙에 넣자고 할 때 나타난다. 이 부칙에 '~할 수 있다'로 있단 조항을 '~한다'로 고치자는 김동명 의원의 주장에 (당연히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고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정신차려라 하는 것은 그것은 도저히 말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표결해 주십시오.) 하니 이승만은 '제2 독회에서 부결된 것 문제삼지 말고 다음으로 넘어갑시다.'라면서 논의를 종결한다.


물론 이 과정에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제2독회에서 부결되었으니 다시 논의하는 것이 문제 있다는 말도 일리가 있고, '법률상으로 법리적으로 불소급의 원칙으로 규정된 특별법'(서상일 의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라고 한다는 말도 일리가 있지만, 이런 법리를 떠나서 민족정기를 세운다는 입장에서, 그것도 제헌 헌법에서 부칙으로 정하는 마당에 '~할 수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같기에, 이승만이 이렇게 넘어간 것이 나중에 반민특위를 해산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참고로 이승만은 제2독회를 끝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물론 의미는 다르겠지만, '여기서 문구라든지 글자를 정정할 것이 있으면 3독회에 가서 작정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흘 동안 휴회하는 동안에 헌법 기초안의 문구과 글자를 교정하고 동시에 정부수립법안을 월요일 아침까지 제정해서 내놓기로 하십시다.'라고 하고 있다.


결국 채택된 구절은 부칙에

제101조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

로 되어 있다.


이만큼 치열하게 논쟁이 되었다는 증거가 된다. 문구, 글자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쓰면서 헌법을 만들려고 했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헌법을 제정하여 공포했다는 의의도 있다.


그리고 헌법 전문에 임시정부를 계승했다는 말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으니... 소위 뉴라이트라고 하는 사람들, 처음 공포된 -그들이 그리도 우상으로 삼는 이승만이 회의를 주도하여 통과시킨 제정 헌법의 전문을 읽어보는 것이 어떨지... 이 전문의 앞부분도 상당한 논의를 거쳐 확정이 되었으니...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라고 되어 있으니... 


헌법은 몇 번 개정이 되었는데, 지금 헌법의 전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분명 건립이라는 말이 나온다. 건립이 건국과 다르다고 할 것인가? 제헌 헌법에 분명히 재건이라고 쓰여 있음을 그들은 부정하는 것인지... 건립, 재건이 건국과 다르다면 왜 반민특위를 설치할 법을 헌법 부칙에 만들자고 했을까? 이것을 당시 우익들도 반대하지 않았는데... 


보수란 기존의 가치를 수호하는 집단이라고 한다면, 이들이 건국절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헌법에 이미 삼일운동으로 건립했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이 책을 통해서 우리 헌법이 제정되는 동안 벌어진 일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다양한 의견, 그리고 치열한 논쟁. 그것으로 탄생한 우리의 헌법에 대하여. 더 논의하지는 않겠지만 제헌 헌법에는 '경제민주화라고 할 수 있는 이익 균점'에 관한 조항도 있으니...그들이 꿈꾸었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이 헌법에 잘 나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날인 제헌절이 공휴일이 아니라니... 국군의 날은 비록 임시긴 하지만 공휴일로 한 해 지정이 되었는데... 우리가 헌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읽고 생각하는 시간을 지니려면 제헌절을 공휴일로 지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왜 우리가 제헌절날 쉬는 거지? 의문을 가지고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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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와 메리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메리 셸리, 열정과 창조의 두 영혼
샬럿 고든 지음, 이미애 옮김 / 교양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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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울스턴크래스프와 메리 셸리. 어쩌면 두 명 다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있고, 둘 중 한 사람만 들어본 사람, 또는 아예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거나 SF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둘 다를 기억할 수도 있겠다.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고 주장한 사람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라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괴물의 이름으로 착각하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을 쓴 작가가 메리 셸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셸리'란 이름에서 낭만주의 시인이라고 하는 '바이런, 키츠, 셸리'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들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놓치기 쉬운데,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메리 셸리의 어머니다. 비록 딸 메리를 낳고 열흘 만에 산욕열로 죽지만, 남겨진 작품들로 인해 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최초의 아나키스트라고 할 수 있는 고드윈과 결혼을 하니, 메리 셸리는 페미니즘과 아나키즘을 주장한 사람들을 부모로 두고 있다.


18세기에서 19세기, 시민혁명이 일어나던 때, 프랑스대혁명으로 인해 시민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함을 인식하던 때, 이때도 여성은 시민이 되지 못했다.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한 여성들이 단두대에서 사라지던 때가 이때다.


그리고 남성과 동등함을 주장하던 여성들은 사회에서 배척당하던 때가 이때인데, 그럼에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고 주장했다. 공식적으로 출판을 통해서 주장을 했으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겪어야 할 고통을 지금에서 짐작하기는 힘들다.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지만 생계가 해결되지 않으면 남성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의 자립을 주장한다. 자신이 할일을 찾아서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남성과 동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런 주장을 하면서도 결국 여성이 집안일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는 현실. 육아에서도 마찬가지고. 사회를 변혁하고 남성과 동등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지만 당시에는 동등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다.


불공평한 사회에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고군분투한다. 사랑에도 독립적이지만 그럼에도 살기 위해서 자신의 직업을 선택하고 그 일을 끝까지 유지하려 한다. 메리 역시 마찬가지다. 남편인 셸리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수입으로 살아가려 한다.


남편이 시를 쓴다면 자신은 소설을 쓰는 메리 셸리. 그 과정에서 많은 일들이 발생하고, 당시에는 추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일들도 벌어지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것, 여성의 삶도 남성의 삶과 동등하다는 것, 그리고 남성성이 얼마나 세계를 파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메리 셸리의 과업이 된다.


이 책은 엄마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삶과 딸인 메리 셸리의 삶을 교차하면서 서술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죽음까지. 당대 사회에서 여성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 사회적 비난 등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독립적인 개체로 살아가고자 했지만 아이를 임신했을 때 또 사랑에 실패했을 때, 아이를 잃었을 때, 남편을 잃었을 때 등등 그들이 느꼈던 절망감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절망감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빠져나왔다는 사실. 절망감에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고,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는 점.


어쩌면 딸인 메리 셸리는 엄마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삶에서 자신의 운명을 보고, 자신이 그 길을 갈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이들이 시대를 앞서간 사람임은 분명한데, 시대를 앞서간 여성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야 했는지, 어떤 오해를 받아야 했는지를 두 모녀의 삶을 통해서 잘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일제시대 우리나라 여성 작가들을 떠올리게 된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 했던 수많은 여성들이 어떤 편견 속에 시달리고 사라져 갔는지... '나혜석'의 경우도 떠오르고... 나혜석이 독립적인 자신을 주장하지만 당대 사회에서 어떻게 가려졌는지, 어떻게 핍박을 받는지를 보면 19세기(엄마는 18세기)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음을...


그런 과정을 거쳐서 이제는 남성과 여성으로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아닌, 함께할 수 있는 일들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도 온전히 평등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방대한 내용이지만 연대 순으로, 작품 활동 순으로 서술되어 있고, 또 엄마와 딸이 한 장씩 교대로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러면서 당대 시대적 제약에서 그들이 지녔던 한계도 간과하지 않고 (그들의 내밀한 사적인 생활이 사료를 통해 재구성되고 있어, 당시에 그들이 느꼈던 감정들을 우리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룩한 성과를 잘 보여주고 있어서, 지금 우리 시대를 돌아보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특히 그동안 잘 인식하고 있지 않았던 유명한 사람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으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메리 셸리와 관련해서는 '바이런, 셸리'를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관련해서는 '토마스 페인, 윌리엄 고드윈'을 소환할 수 있다는 것. 따로따로 알고 있었던 이 인물들이 서로 관계됨을 알 수 있게 되었고, 여성들이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떠한 고난을 헤쳐왔는지를 알 수 있어서 더 좋았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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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의 두 얼굴 - 인공지능이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금준경.박서연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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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큼 우리에게 챗GPT가 다가왔다. 내가 모르쇠하더라도 이미 챗GPT는 우리 곁에 있다. 있는 존재를 없다고 한들, 없어질 수가 없다. 그렇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관건이다. 


이 어떻게를 잘하기 위해서는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문해력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이해력이라고 해도 좋고, 사용력이라고 해도 좋다. 잘 이해하고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리터러시라고 한다면, 챗GPT 리터러시가 필요한 지금이다.


그렇게 하려면 챗GPT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알아야 무엇을 할 수 있지. 이 책은 그러한 챗GPT에 대해서 장점과 단점, 그리고 지금까지(2023년) 발전되어 온 챗GPT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 여기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챗GPT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이야기한 내용을 싣고 있다.


어렵지 않게 챗GPT에 접근할 수 있다. 마냥 두려움에 휩싸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만만하게 보지도 않고 지금까지 챗GPT가 발전해온 과정을 만나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일어났던 여러 문제들도, 그것들이 해결되어 가는 과정도 서술되어 있고, 아직까지 논쟁 중인 문제도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도 챗GPT가 왜 나오게 되었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기본이다. 돈이 목적이 아니어야 한다. 이윤을 생산하기 위해서 챗GPT(다른 많은 인공지능들을 대표해서 가장 널리 알려진 챗GPT라는 말을 쓴다)를 독점해서는 안 된다. 


또한 챗GPT로 인해 일어나는 부작용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인간 위에 군림하도록 해서도 안 되지만, 소수의 인간만을 위한 기술이 되게 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본말전도(本末顚倒) 라는 말을 생각한다. 인간을 위해서 만들었다면 인간을 위해서 써야 한다. 그 점을 기본 원칙으로 하면 된다. 자본이 먼저가 되지 않게.


인간을 위해서 챗GPT가 나왔다면 챗GPT는 우선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들이 더이상 어려운 생활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


노동의 괴로움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창작에 영감을 주는 방향으로, 기사 작성 시 자료 수집과 정리를 편리하게 하는 방향으로 등등.


이것이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누르는 방식으로 작동되지 않게 해야 한다. 인간의 활동, 정서, 즐거움 등을 막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서 우선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인공지능이 작동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챗GPT의 장점을 잘 이야기해주고 있으니, 충분히 인간의 행복을 증진하는 쪽으로 작동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챗GPT가 궁금한 사람들 읽어보면 많은 참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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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 '하이쿠'가 있다면 우리나라엔 시조가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시조와 하이쿠의 비슷한 점이나 다른 점에 대해서 세세하게 논할 필요는 없고, 둘은 짧은 형식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는 점만 언급하자.


  또 둘 다 다른 형식의 시에 밀려났다는 (이를 부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체로 고전시가로 불리고, 이를 계승한 사람들을 전통시를 쓴다고 하니, 현대시에 분명 한 장르로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느낌을 준다.


  하지만 짧은 시행에 감정과 생각을 담으려면 압축이 필요하다. 언어를 고르고 골라, 그 형식에 맞춰 표현을 해야 한다. 그러니 짧다고 쉬울 수는 없다.


또한 시조는 여러 형식을 시험했다. 시조라고 알고 읽지 않으면 이 시가 시조인가 하는 시들이 꽤 있다. 가령 시 시조집에 실린 시 한 편을 보자.


                     착시 

                             -교단 일기 12


                    신호등 앞에 서서

                    현수막을 즐기다가

                    반가워라 눈 멈춘 곳

                    내 이름이 선명하다


                    되보다

                    쓰게 웃는다

 

                반갑 등록

 

반금현, 백인종 아이들, 등. 2024년. 25쪽. 


이 시조만 보면 시조라고 인식하기 힘들다. 그냥 짧은 현대시이겠거니 한다. 우리가 길을 가다 혹은 글을 읽다 이런 글자를 잘못 읽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다시 보면서 헛웃음을 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기에 너무도 비싼 대학 등록금을 비판하는 마음까지 더해, 이런 반값 대학 등록금이 실현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표현한 시조다.


보통 3줄로 생각하는 시조를 행과 연을 구분해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전통시라고 하는 시조를 현대에 맞게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시조라는 형식을 고수하는 이유가 어쩌면 짧은 형식 속에 내용을 넣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덧붙이게 하려는데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제목이 된 시조를 보자. 씁쓸한 우리나라 아이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백인종 아이들 

                                             - 교단 일기 66


                     어릴 적 친구들은 황인종이 분명했어

                     요즈음 아이들은 백인종이 아닌가 몰라

                     흰 얼굴 서로 보면서 하얀 나라 만들겠지


반금현, 백인종 아이들, 등. 2024년. 79쪽


황인종, 백인종이라고 요즘은 구분을 잘 하지 않지만, 그래서 통상적인 구분으로 하는 이 표현에 의하면 우리나라 아이들이 '백인종이 아닌가 몰라'라고 하는 표현에는 밖에서 뛰어놀지 못하고, 해와 더불어, 자연과 더불어 놀면서 피부가 햇볕에 그슬린 우리 아이들의 피부가 이제는 밖에서 거의 놀지 못하고 있어 하얗게 변해 버린 현실의 모습.


그런 모습이 과연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시조인데... 짧은 형식에 지금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렇게 이 시조집에서는 지금 우리 시대의 풍경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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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A, 중도 하차합니다 오늘의 청소년 문학 29
김지숙 지음 / 다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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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이 말이 떠올랐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 그것은 사실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많은 일들 중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골라 그것만을 사실이라고 믿고 살 수도 있다는 것.


그러면 사실이라고 해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음을... 분명 함께 겪은 일인데도 기억하는 것이 다를 때가 있음을 알고 놀라곤 하는데...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떤 사물을 보더라도 똑같은 위치에서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마음으로 볼 수는 없으니, 어떤 사건에 대해서는 받아들이는 모습이 다 다들 수밖에 없다.


이 다름을 인정하면 되는데, 자기가 본 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사람들은 잘못 보았다고 말할 때가 많다. 마찬가지로 내가 기억하는 일은 진실인데 남은 왜곡된 기억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분명 함께 겪은 일인데도...


함께 겪은 일임에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많은 일들때문에 사람들은 다르게 기억하고, 다르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다름을 인정하면 더 심한 갈등으로 나아가지 않는데, 다름을 잘못으로 몰아가면 해결할 수 없는 갈등으로 치닫게 된다. 그것이 바로 관계다.


이 소설에서는 '타로'가 등장한다. 같은 사건일지라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생각과 다른 관점에서 볼 수도 있음을 알려주는 소재가 바로 '타로'다.


동양에서 '주역'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타로 카드 하나하나가 지닌 의미도 있지만, 그것은 관계 속에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즉 하나의 타로 카드가 하나의 의미만을 지니지는 않는다. 숨어 있는 수많은 의미들을 찾아내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때 타로 카드는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주역(周易)'도 마찬가지다. 각 괘마다의 해석이 있지만, 이 해석이 고정되지 않는다. 좋은 괘라고 해서 늘 좋지는 않다. 나쁜 괘라고 해서 늘 나쁘지는 않다. 관계 속에서 변해가는 것이다. 그것이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나나'의 카드, 운명의 수레바퀴라고 할 수 있다.


고정되어 있지 않음, 변함. 어떻게 굴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운명. 그런 운명을 보기 위해서는 자신의 속으로만 들어가서는 안 된다. 자신의 바깥에서, 자신을 가리고 있는 장벽 너머에서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는 나'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이 소설은 '나는 나'임을 찾아가는 다섯 명의 인물(주변 인물까지 하면 더 되지만)을 보여주고 있다.


단단한 껍질에 가둔 호두, 잘 나가던 과거에 매여 있는 고릴라, 가난 때문에 춤을 포기할 뻔한 고세, 왕따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이기도 했던 소녀A, 그리고 학교폭력의 피해자였지만 지금은 타로점을 운영하고 있는 나나.


이들은 서로 얽히고 설킨 관계를 만들어 간다. 서로가 관련이 되어 있지만, 이 관계는 소설을 읽어가면서 발견하게 된다. 자신을 왕따시켰던 소녀A가 유명인이 되자, 예전 일을 폭로하는 호두, 유명해진 소녀A보다 한때 자신이 더 잘나갔다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릴라 역시 과거 사진을 올리고... 하지만 외로웠을 때 자신의 곁에 있어준 소녀A를 지지하는 고세와 소녀A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 했던 나나. 이렇게 이들은 모두 소녀A와 관계를 맺고 있다.


자신의 틀에 갇혀 자신만을 보던 이들이 타로를 통해 또다른 관계들을 통해 자신을 밖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자신을 밖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편견의 틀을 깰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편견의 틀이 깨지면서 사실들을 관통하는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서로가 지니고 있는 상처들을 감추기 위해 상대의 상처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었음을 인식하게 되고, 그것을 바로잡으려 한다.


즉 자신이 알려 하지 않았던 자신을 알게 되고, 그것을 바로잡으려 하기 때문에 소설은 훈훈한 마무리를 향해 가지만, 그럼에도 상처는 없어지지 않는다. 상처는 계속 남아 있다. 다만 그 상처가 더이상 자신을 후벼파지 않을 뿐이다.


상처와 함께 하면서, 내 상처를 통해 다른 사람의 상처도 볼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소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또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해도 소녀A처럼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


그것을 깨달았을 때 그때 바로잡아야 함을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나만의 상처에 갇혀버려서는 안 되고, 그 상처로 다른 사람의 상처도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마음을 지니게 된다면 상처는 꽃이 될 수 있다.


다섯 명의 관점에서 소설이 전개되지만, 하나로 모이게 되고, 사건의 전모와 인물들의 관계가 한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 인물들을 통해서 내 상처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혹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한다.


내 감정에 푹 빠지기 쉬운 청소년기, 다른 사람들의 감정도 볼 수 있는, 그런 바깥을 이 소설이 제공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청소년기에 소설을 읽는 이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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