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정치인이 있다면?


  상대가 똥을 쌌다고 생각했나 보다. 똥 싼 상대를 감싸주지 않고 똥 쌌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닌다.


  그냥 놔두었으면 그가 똥을 쌌든 싸지 않았든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을 텐데...


  오히려 말을 함으로써 똥을 사람들에게 퍼뜨렸다. 똥 냄새가 천지에 진동하게 했다. 그러면서 내가 똥 싼 것도 아닌데 왜 똥 싼 사람을 비난하지 않고 자신을 비난하냐고 한다.


  자신이 똥 싼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똥에 관해 사람들은 생각도 하지 않고, 이야기도 하지 않고 똥 냄새로 괴로워하지도 않았을 텐데.


자신이 똥 냄새를 퍼뜨려놓고, 왜 그러냐고 하면 무어라 해야 할까? 똑같이 똥 냄새 퍼뜨리는 사람이 되기 싫어 입 다물고 있어야 하나?


이미 퍼진 똥 냄새를 막는 길은 그 냄새를 인식하게 한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는 것. 그가 더 이상 그러한 말을 퍼날라 세상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는 것.


하지만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니, 네가 잘못했어, 당신이 잘못했어라고 말하기보다는 그의 말이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 그를 그냥 놓아두는 것.


그렇게 그가 속이 터질 것 같아 대나무숲에 들어가 떠들어대더라도 대나무숲에 들어가게 할지언정 우리들에게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할 것.


그런 생각을 했다. 모 정치인 때문에 더러워진 내 귀를 씻으면서. 그러다 이윤학의 이 시집을 읽으면서 이 사람이 왜 그랬을까 퍼뜩 떠오른 생각. 아, 이 사람에겐 어른이 없구나. 이 사람은 어른을 만나지 못했구나, 어른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어른을 알아보지 못해서 그렇게 귀가 닫혔구나, 입만 살았구나. 그 입으로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해서 사람들 마음을 어지럽혔구나.


이런 사람을 조용하게 하는 것. 그가 남들 앞에서 이상한 소리를 하지 못하게 그를 홀로 놓아두는 것. 왜 그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나? 이미 다독거림은 지나갔는데... 그냥 놓아두고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다면, 강제로라도 남 앞에 서지 못하게, 남들에게 말을 퍼뜨릴 수 없게 해야겠지.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아야겠지. 그것이 최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모 정치인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시. 바로 이윤학의 '어머니 말씀'이다. 물론 그가 이 시를 들을 귀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를 비난(욕)하지는 않으련다. 똑같은 사람이 되기 싫어서. 다만,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으련다. 그가 더 냄새를 퍼뜨리지 않게 그냥 조용히 있게 하고 싶어서.


이 시에서 말하는 어머니와 다른 태도겠지만,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아닐까 하고... 


   어머니 말씀


똥독도 항상 다독거려야 한다.

다독거리지 못하면

휘젓지나 마라.


못 박힌 

소나무 작대기로

휘젓지나 마라.


네게만 냄새 난다.


이윤학, 그림자를 마신다. 문학과지성사. 2005년. 105쪽.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설해목'이란 글이 있다. 그 글의 마지막에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인 것을' (법정, 무소유. 범우사.1996년. 2판 49쇄. 39쪽.)


자기 지식만을 자랑하며 남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부드럽게 남을 바라보고 대하는 자세를 지닌 정치인을 이제는 기대해도 될 때가 되지 않았나. 이 시에 나오는 어머니 말씀과 법정 스님의 설해목에 나오는 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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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오면 우리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1
정보라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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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배경은 기후 재앙이 일어나는 때다. 세계 각국은 기후 재앙을 과학기술로 풀려고 한다. 인공 태양을 만드는 것. 그러나 태양은 수소폭탄과도 같으니, 또다른 수소폭탄을 만든다고 오해하는 나라도 나온다. 이것을 제어하기 위해 로봇을 만든다. 로봇이 판단하게 한다. 무엇이 위험한지, 그 위험을 통제하기 위해서.


하지만 로봇은 판단한다. 인간이 위험요인이다. 인간을 제거해야 위험이 사라진다. 그래서 로봇은 인간을 제거한다. '지구상 다른 모든 생물종을 위한 최선의 안전장치는 인류 문명의 종말이었다.'(21쪽)


이 소설에는 세 부류가 등장한다. 주인공인 흡혈인. 본래 인간이었으나 흡혈인이 되어 로봇에 맞서 싸운다. 이 주인공이 만나게 되는 자신을 인간이라 믿는 로봇 빌리. 그리고 인간. 인간은 다시 로봇에 대항하는 인간과, 로봇을 추종하는 로봇의 노예 역할을 하는 인간으로 나뉜다.


여기에 지나가는 것처럼 흡혈인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성폭력의 위협에 놓인 여성을 이야기한다. 여성 화장실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서 보는 남성들. 여성을 자신들의 성적 쾌락을 위한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남성들. 인간이 로봇에 의해 멸망해 가는 와중에도 여성의 화장실을 몰래 보려는 성적 욕구에 지배당하는 남성들. 그 남성들을 물어뜯는 화장실의 여자. 그 여자 이야기를 하면서 흡혈인의 유래를 이야기하는데, 이는 사실 소설에서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다.


다만,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인 폭력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사회 역시 디스토피아니, 그런 디스토피아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려면 그런 짓을 하는 인간들을 그냥 놓아두어서는 안 되는 것.


기후 재앙 역시 비인간적 폭력 아니던가. 자신이 폭력을 저지르면서도 인식하지 못하고 계속하는. 그래서 본질적인 개선 방안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기술로 상쇄하려는 모습. 지금도 인간이 지니고 있는 자세 아닌가.


여기에 맹목적으로 기계를 추종하는 사람들. 이들에게 합리성은 없다. 그들은 노예에 불과하다. 어쩌면 과학기술이 인류가 지닌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 믿는 사람들을 보이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겠지만, 진실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신념만을 밀어붙이는 특정 종교집단을 떠올리게도 한다.


이들에게 소수자들의 삶은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그것은 악에 물든 행위라고. 그런 사람들을 치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런 종교인들의 모습을 이 소설에서 기계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기계를 위해 사람들을 죽이려 하는 인간들을 통해 발견하게 된다.


이런 인간들과 달리 로봇으로 만들어졌지만 인간이라 생각하는 빌리는 "인간의 기준이 뭐죠?"(65쪽)라고 묻는다. 그렇다. 빌리는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처럼 감정을 지니고 있다고. 


이때 흡혈인인 나는 대답을 하지 않다가 나중에 '나는 빌리가 질문했던 인간의 조건을 생각했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액체가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인간의 조건인지도 모른다. 눈물, 땀, 피, 혹은 진물이나 오물.'(83쪽)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몸의 약 70%가 물로 이루어졌다면 적절한 때에 적절한 액체가 나오는 것이 당연해야 한다. 그러나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도 있다. 이들도 인간이라고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데...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인간성(이것에 대한 정의는 거의 무한하다)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 여기에 그러한 인간성을 지닌 존재라면 인간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인간에 대한 정의의 확장. 갑자기 해러웨이가 생각나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그래서 나는 빌리의 죽음에서 '기계로 태어나 인간으로 죽은 존재가 있었다'(124쪽)고 말한다. 빌리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인간을 생물학적인 존재로만 규정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범위를 넓히는 것, 그것이 현대인이 생각하는 인간일지 모른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흡혈인인 나와 로봇인 빌리는 디스토피아에서 인간으로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로봇에 대항해서, 비인간성에 대항해서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인간성을 지닌 존재로 살아가는 존재, 그것이 바로 인간 아니겠는가.


기후 재앙의 위기에 있고, 각종 과학기술이 인간을 위협하기도 하는 이때,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지, 무엇이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조건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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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국의 적은 누구인가 심용환 역사 상상력 아카이브 3
심용환 지음 / 사계절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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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눈을 갖는 것. 현상황을 파악하고 나아갈 길을 찾는 것.


탄핵 이후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아직은 아니다. 대통령과 대통령실만 바뀌었다. 기존 국무위원들은 그대로다. 국무총리 인준이 끝나야 국무총리가 국무위원을 추천하고 그들이 청문회를 거쳐 임명이 되어야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야 제왕적 대통령이란 소리를 안 들으니)했으니 끝인가?


촛불, 응원봉으로 대변되는 광장의 외침이 선거가 끝나면 끝나는 것인가? 아니, 광장의 외침은 지속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빛의 혁명'은 계속 되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광장의 외침은 민주공화국의 회복이다. 대통령이란 작자가 왕처럼 군림하는 나라가 아니라 국민이 주권을 가지고 행사할 수 있는 민주공화국. 그것이 광장의 외침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대통령과 국무위원을 바꾸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민주공화국을 만들어가야 한다.


어떻게? 먼저 무엇이 민주공화국을 가로막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걸림돌을 찾아야 없앨 수 있다. 그러한 걸림돌을 찾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면 광장의 외침은 실현되지 않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게 된다.


이 책 제목에서 현 상황을 파악하는 단초를 발견한다. '민주공화국의 적은 누구인가' 그렇다. 민주공화국의 적을 먼저 찾아야 한다. 무엇이 민주공화국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지, 그것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떻게 없앨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알게 되면 모른 척 할 수 없다. 이미 밝혀진 사실을 감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민주공화국의 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 저자가 무엇을 들고 있는지 살펴보자.


총 12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이 모두 민주공화국의 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명백하게 민주공화국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이 있다.


비상계엄, 대통령, 군부, 공무원, 검찰, 사법부, 

국회, 기독교, 경제, 뉴라이트, 북한과 국제관계, 국민


이 열두 개 항목 중에 비상계엄은 말 그대로 민주공화국의 적이다. 민주와는 거리가 먼,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역대 대통령을 다 살피지 않아도 독재정권이라 불리는 이승만, 박정희와 전두환이니, 민주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다들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비상계엄을 '계몽'이라고 강변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세상에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행위를 어떻게 계몽이라고 할 수 있는지, 그런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대다수 국민'이라면 민주공화국은 이루어질 수 없다.


대통령이 다음에 나오는 것은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 헌법에 의하면 대통령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왕적 권력을 가졌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 말 자체가 민주공화국과 양립할 수 없는 말이다. 제왕적 대통령이란 대통령 개인이 많은 권력을 쥐고 정치를 좌지우지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 공무원은 상명하복이라는 말을 실천하는 존재일 뿐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공무원들이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다면, '민주공화국'은 될 수가 없다. 관료주의도 문제지만, 관료가 관료 역할도 못하고 대통령이나 권력자의 눈치나 보면서 업무를 처리한다면'공무원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말이 법 조항으로만 존재하게 해서는 그런 공무원이야말로 민주공화국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군부와 검찰은 이야기할 것도 없다. 개혁의 대상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미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고, 군부는 지속적으로 힘이 약화되었지만, 그럼에도 이번 비상계엄처럼 동원되어 시민들에게,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수 있으니 적절히 통제되지 않는 군부는 민주공화국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 망설이는 실질적인 태업을 하는 군인들이 있었다는 점, 이는 우리나라 군대가 어느 정도는 민주화 되었다는 말이다. 군대를 동원한 비상계엄이 일어날 수 없는 사회가 되도록 지금에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검찰과 사법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지닌 이들은 민주공화국에서 개혁의 대상이 된다. 견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절대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검찰과 사법부, 경찰은 적절히 견제할 수 있는, 그것도 시민들이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지금도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집단이 이들 아닌가. 이들을 그대로 놓아두고서는 민주공화국이라 하기는 힘들다.


이런 역할을 국회가 해야 한다. 국회는 대의기관 아니던가. 시민들의 의사를 대변해 법안을 마련하는 기구인데, 적절한 기능을 하지 않고 대통령의 친위 역할을 하는 국회는 민주공화국의 적이 된다. 그런 국회의원들을 소환할 방법이 없는 것이 문제다. 국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국회의원 선거법부터 소환까지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그래야 당선되고 난 뒤에 자신들을 선택한 국민들을 나 몰라라 하는 국회의원이 줄어들 수 있다. 또 당리당략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입법활동을 하는 국회의원으로 거듭나게 된다. 당리당략에만, 자신의 당선에만 관심이 있는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변인이 아니라 국민을 배반한 민주공화국의 적이다.


기독교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으련다. 다만 잘못된 활동을 하는 기독교는 비판받아야 하고, 종교는 정치와 철저히 분리되어야 함에도 종교를 가장해 정치에 간여하는 종교인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여기에 경제는 누구를 위한 경제인가를 생각해야 하고, 뉴라이트는 비판할 가치도 없다. 잘못된 주장을 펼치는 그들은 분명 민주공화국의 적이다. 학문을 표방하면서 제 욕심을 채우려는 집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북한과 국제관계 역시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민주공화국으로 가느냐 마느냐가 결정된다.


분단국가인 우리나라가 북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 나갈 것인지, 북한을 이용해 독재 권력을 강화했던 역사에서 이제 북한은 그러한 역할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중국과 일본, 미국을 비롯한 국제 관계 역시 민주공화국이 지속되느냐 마느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니, 이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마지막이 국민이다. 국민이 민주공화국의 적이라고? 아니다. 저자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국민을 언급하는 것은 이 책의 '들어가며'에서 한 말과 통한다. 민주공화국의 성공 여부는 국민에게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 정치인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은 역사가가 국민에게 바치는 상소上疏 와 같은 글이다. 한국 현대사는 중요한 승리 이후 심각한 실수를 반복해 왔다. 첫 번째는 4.19혁명 이후였다. 두 번째는 6월민주화항쟁 이후였다. 세 번째는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정권의 등장에서였다.'(4-5쪽) 


승리 이후 사회를 바꾸지 못하고 사람만 바꾸었던 역사적 경험. 그래서 지독하게도 계속 반복되는, 윤석열 탄핵 이후에는 이러한 역사적 사례들을 검토하고 재반복하지 않게 해야한다는 저자의 당부. 그래서 상소다. 국민에게 보내는. 


상소를 받은 국민이 상소를 받아들여 대책을 세우느냐 아니냐에 따라 민주공화국의 성패가 결정될 수 있다. 그러니 민주공화국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국민이니, 국민을 이 책의 맨 뒤에 놓은 것이리라.


이렇게 저자는 역사를 살피면서 12개 항목을 통해 지금 현실을 바라보도록 하고 있다. 알아야 한다고.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거쳐왔다고... 또다시 실패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그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한발 나아가야 한다. 저자의 상소를 받아들여야 한다. 상소를 받아들이는 주체는 대통령, 국무위원, 국회의원, 검찰, 경찰, 판사, 재벌 들이 아니다. 바로 우리 국민들이고, 이러한 상소를 받아들여 그것이 실현될 수 있게 주권을 행사해야 할 존재 역시 국민들이다. 저자는 그 점을 말하고 있다. 명심하자. 지금이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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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데모 - 데모하러 간다 아무튼 시리즈 63
정보라 지음 / 위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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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환상소설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 환상이 곧 우리 현실이라고 느끼곤 했다. 또한 작가의 말에서 대놓고 '복수'를 이야기하는데, 왜 그런가를 이 책을 통해서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이런 활동을 하는 작가라면 세상의 불의를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터. 불의에 항의하기 위해 직접 서명을 받고 행진을 하고 오체투지까지 한 작가니, 작품을 통해서 불의, 악을 응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모라고 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하는 거창하고 위험한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아니다. 정보라 작가의 데모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하는 것뿐이다.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또 자신들이 가르쳤던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정보라 작가는 데모 현장에 함께한다.


이 함께함이 바로 유토피아로 나아가는 길이다. 유토피아가 저기 있다가 아니라 그렇게 함께 가는 길이 유토피아임을 작가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세상이 바뀌지 않고, 또 나와 함께하는 사람이 있을 수가 없으니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함께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며, 내가 바라는 세상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길이다.


엄숙하고 무거울 것 같은, 데모라는 말에서 풍기는, 적어도 80년대 데모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그러한 행위가 이 책에서는 결코 무겁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리저리 잴 필요가 없이 그냥 해야 할 일을 할 뿐이기 때문에 무겁지 않다. 그렇다고 가볍다고 할 수 없다. 다만 발랄함, 그렇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고 불의를 없애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경쾌하고 발랄하게 참여한다.


데모가 축제가 되는 것. 그것은 정보라 작가의 이 책이 아니더라도 이미 작년 12월부터 우리는 경험하지 않았던가. 응원봉이 등장하는 데모라니... 데모는 우중충한 행위가 아니다.


우리가 만나야 할 세상을 미리 만나게 해주는 유토피아가 펼쳐지는 곳, 그곳에서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얻게 되는 행복하고 즐거운 장이 바로 데모 현장이어야 한다.


물론 슬프고 무겁고 어두운 데모 현장도 있다. 이 책에 나온 고공농성장이 그렇다. 땅에 발 붙이고 살아야 할 사람을 땅에서 가장 먼 곳으로 보내 자신의 주장을 듣게 하는 것. 그렇게 위험한 곳에서 자기 주장을 펼치다 내려오면 경찰이 출동해 병원으로 보내 치료를 하게 하기보다는 체포부터 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현장. 이런 현장이 결코 발랄할 수는 없다.


그래서 작가는 이런 현장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으면 한다. 데모를 하는 이유도 그렇다.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아직도 데모를 사회를 혼란시키는 이기적인 자기 주장만을 펼치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왜 데모를 하는지, 그리고 데모가 과연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인지...


가령 이런 것이 있다. 차별금지법을 생각해 보자. 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자는데 반대를 하지?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고 이 책에 나온다.


'2020년 여름 국회 앞으로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오체투지를 하러 갔을 때 확성기를 든 어떤 사람이 차별은 꼭 필요하다며 "사람은 차별을 당해야만 노력해서 극복하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59쪽)


이런 사람들이 꼭 있다. 자신은 차별당한 적이 없기 때문. 차별이라는 말이 어떻게 삶을 왜곡하고 힘들게 하는지를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


정보라 작가는 '경험해보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타인의 몸을 경험할 방법은 없으니까. 비장애인은 장애인이 경험하는 세상을 정말 전혀, 하나도, 결단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배우거나 이해하려고 시도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81쪽)고 하고 있다.


이러니 차별이 뭔지, 그것이 삶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알지 못한다. 차별이 없다면 들지 않을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그 비용을 왜 약한 사람이, 차별을 당하는 사람이 지불해야 하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차별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삶은 형벌이 아니다. 게다가 피부색이나 출신 국가나 가족 상황 등은 내가 노력해도 바꿀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 봤자 바꿀 수 없는 걸 바꾸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만 기본적인 존중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노력이라기보다 차별로 인해 소모되는 비용일 뿐이다. 확성기 든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그런 주장을 하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남에게 그런 '차별 비용'을 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59-60쪽)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니 작가가 데모를 할 수밖에 없다. 데모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으므로.


이러한 정보라 작가의 모습, 데모에 관한 글을 통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하게 해준다. 적어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혹시 그동안 데모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면, 데모를 이제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리라. 정보라 작가가 데모에 대해서 경험하게 해주었으니까.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작가를 발견했구나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래서 이 작가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하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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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너무도 멀리 와버렸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 어디서 멀리 왔을까? 바로 흙에서다.


  흙에서라고? 흙은 바로 우리 곁에 있지 않은가. 지금도 우리 발 밑에...


  발 밑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겐.


  그들에겐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포장된 땅만 보인다. 땅은 있되, 흙은 없는 상태.


  그것이 현대 도시인들의 생활이다. 김기택 시인은 그래서 '그는 새보다도 적 게 땅을 밟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흙이라 하지 않았는데, 흙이 아니더라도 땅이라는 우리가 발 딛고 살아야 할 것에서도 멀어졌는데, 하물며 흙이랴!


시골에나 가야 아니면 등산을 가야 흙을 밟게 되는데, 그래서 흙의 소중함을 잃고 사는 것은 아닌지.


이러한 흙에 대한 애정을 담은 시집이 바로 이 [흙의 경전]이다. 흙을 경전처럼 소중히 여긴다면 지금 우리가 이렇게 기후 재앙에 시달리지는 않았을 텐데.


흙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쫓겨나는 모습이 이 시집에 담겨 있다. 물론 흙과 멀어지는 사회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겪은 개발, 독재, 분단 등이 이 시집에 실려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바로 '흙'이다. 땅이다. 무엇에 덮이지 않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러한 땅.


그래서 이 시집에 나오는 인물들은 땅에 살아가는 존재, 논이나 밭에 내려온 새들도 함께 살아야 할 소중한 존재로 여긴다. 이런 인물들에게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유흥이라는 이름으로 - 이 시집에 골프장 건설로 땅을 잃게 된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니, 골프장을 과연 땅이라고, 골프를 치는 사람들을 보고 땅을 밟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골프장에 깔린 잔디들은 도시에 깔린 아스팔트, 콘크리트와 별 다를 것이 없다- 사람들을 흙에서 멀어지게 한 역사가 과연 우리에게 행복을 주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시집의 뒤에는 연작시가 실려 있는데, 우리 개발의 역사 속에서 흙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개발로 인해 우리는 기후 재앙이라는 위기에 빠지게 되었으니, 흙, 땅. 그것은 우리의 생존에 필수임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날이 더워지고 있다. 흙과 멀어져 더더욱 더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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