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 벌거벗은 영혼 다빈치 art 11
구로이 센지 지음, 김은주 옮김 / 다빈치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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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런 그림이 그려졌다면 그 그림이 전시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화가다.

 

외설스러운 내용이 들어가면 소설도 금서가 되고 작가가 처벌받는 사회에서 - 설마 지금은 아니겠지 하지만 맞을 것이다. 외설의 기준을 판검사가 판결을 하니 원- 이토록 적나라한 그림이 전시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에곤 실레도 당시에 외설스러운 그림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는 이유로 구류처분을 받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상황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불상사도 있었지만 그의 그림은 계속 전시되었고, 그는 화단에서는 인정받는 화가로 지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그림이 외설적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의 화집을 전철 안에서 보기는 조금 민망하다는 생각을 하기는 하겠지만 - 음모까지 적나라하게 그려진 여인의 나체나 남자의 나체 그림을 모르는 대중들이 있는 공간에서 본다는 것은 자신의 그림을 아이들의 눈에 잘 띠는 곳에 걸어놓아 아이들이 보게 했다는 혐의로 구류처분을 받은 실레의 경우처럼 여전히 성에 관해서는 표면적으로는 보수적인 우리나라에서 남들의 시선이 고울 수는 없을 것이다 - 그의 그림들이 성욕을 자극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없다.

 

오히려 비틀린 성에 대한 표현이라고 해야 할까, 뭔가 벌거벗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일그러진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에 나오는 표현을 사용하면 '추함 속의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간의 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임으로써 자신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본능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생각이 든다.

 

'성'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고, 특히 어린아이에게는 가리지 않는 호기심의 대상이다. 그런 '성'에 대해서 에곤 실레는 어린아이의 영혼으로 바라보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이 '영원한 아이'라고 한 이유도 여기서 연유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러한 성적 표현이 아름답지 않고, 거친 선으로, 거친 색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성적 욕구를 자극한다기보다는 우리 안에 숨겨져 있는 욕망을 발견하도록 한다는 생각을 한다.

 

전체적으로 그의 그림은 어둡고, 거칠고, 난삽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이기는 하겠지만, 그가 그린 수많은 자화상들을 보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다.

 

자화상을 통해서 분열된 자신의 모습을 보이려 했는지 몰라도, 그가 그린 자화상들을 보면 기괴하다는 느낌,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정착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영혼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 그가 오래 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자살도 아니고 스페인 독감으로 28세에 세상을 떠난 그지만, 그의 그림에서 이미 그는 다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토록 어두운 그림, 이렇게 분열된 자화상, 벗은 몸을 그렸음에도 아름답다는 생각보다는 이렇게 추하게 그려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그림들, 그런 추함을 통해 아름다움을 찾도록 하는 그의 그림은 바로 에곤 실레의 삶을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그의 삶을 시간 순서대로 따라가고 있다. 그렇다고 그림이 순서대로 나온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의 삶을 시간 순으로 이야기하면서 중간 중간 에곤 실레의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과 삶을 하나로 보고 설명하는 형식.

 

그리하여 에곤 실레의 삶과 그림을 전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풍부한 그림과 자세한 설명으로 에곤 실레라는 화가를 알 수 있도록 해주고 있기에, 에곤 실레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사람에게도 쉽게 읽힐 수 있는 책이다.

 

어쩌면 읽으면서 또 에곤 실레의 그림을 보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게도 한 책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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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7-04-10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엔나의 벨베데레 궁전에서 에곤 실레의 그림을 몇 점 직접 감상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클림트의 ‘키스‘ 앞에서 훨씬 더 오래 머물긴 했지만, 에곤 실레의 그림들도 코앞에서 직접 볼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였더랬지요. 비엔나에 가기 전에 남부 보헤미아 지방 체스키 크룸로프라는 작은 마을에도 에곤 실레의 미술관이 있던데, 그 미술관 문앞까지 갔다가 Closed 팻말 앞에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두고두고 아쉽기만 합니다.

kinye91 2017-04-10 13:38   좋아요 0 | URL
그래도 직접 보신 그림이 있네요. 저는 책에서나 봤지 직접 본 그림은 없어서요. 그럼에도 미술관 앞에서 문이 닫혀 감상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참 아쉬웠겠단 생각이 듭니다.
 
학교를 칭찬하라 - 학교, 교사, 학부모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위한 7가지 전망
요하임 바우어 지음, 이미옥 옮김 / 궁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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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는 곳이 학교이지 않을까 싶다. 학생들에게도, 학부모들에게도 또 교사들에게도 여기에 정치인들, 교육관료들에게도 욕을 먹는 곳이 바로 학교다.

 

학교는 모든 잘못의 근원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도대체 학교가 뭐하는 곳이냐는 비난에, 학교의 무용성까지 대두되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학교를 비난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강한 규율을 제정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요즘 학교에서는 대부분의 일을 규칙에 따라 처리하고 있다. 교육의 관점보다는 규칙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물론 학교에 규칙은 필요하다. 그러나 규칙은 인간관계를 뒷받침하는 선에서 그쳐야 하는데, 지금은 인간관계를 뒷전으로 밀어놓고 규칙이 전면에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온갖 소송들을 보라. 이런 소송을 두려워하는 교사들은 매뉴얼에 따라서 행동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매뉴얼에 따라 행동을 하면 교사가 가장 비교육적인 방식으로 대응한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이렇게 학교는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욕을 먹고 있는데, 이런 답답한 상황이 우리나라만이 아니었나 보다. 독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고, 학교 교육을 살리기 위해 규율을 더욱 엄격히 제정하고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는 책이 나와 인기를 끈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주장에 반대해서 학교의 존재의미가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있다. 학교가 규율만으로 존재할 때 교육은 오히려 후퇴한다는 것, 무엇보다 학교에서는 관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 학교는 학생, 학부모, 교사라는 사람들이 만나는 장이기 때문에 이런 관계에 중점을 두어야만 성공적인 학교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쪽으로 논지를 이끌어가고 있다.

 

학교에서 중요한 것은 두뇌, 정신, 창의력, 동기 그리고 협동이다.  13쪽

 

이 말을 명심하자. 학교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것은 성적이 아니다. 바로 이 다섯 가지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삶을 사랑하고, 학습동기를 갖고 즐겁게 배움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무엇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14쪽

 

이렇게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레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는 이런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학교가 어떠해야 하는지, 교사가 어떠해야 하는지, 학부모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이 책이 이런 세 가지 관점을 기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리라. 학교가 안전할 수 있는 기본, 이것은 안전을 넘어서 학교가 제대로 기능하는 원칙이 되리라.

 

학교라는 시스템에도 세 가지 안전율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교육을 받고자 하는 동기이고, 두 번째는 배우는 학생, 가르치는 교사, 학부모가 서로 협조하려는 의지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교사와 학생이 관계를 맺는 능력이다.  15쪽

 

이 세 가지를 기본으로 삼고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가 만난다면 지금처럼 학교는 욕을 먹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학교가 칭찬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기까지 욕부터 하면 안 된다. 이렇게 되기까지 학교를 칭찬해야 한다.

 

학생들에게도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주고, 부정적인 면은 고쳐나갈 수 있도록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듯이 학교에 대해서도 이렇게 해야 한다.

 

그러면 학교가 변할 수 있다. 욕을 먹는 학교에서 칭찬받는 학교로 변하면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모두 행복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학교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 교사, 학생, 학부모, 특히 정책 입안가들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

 

구체적인 대안보다는 기본적인 틀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원칙을 지키면서 학교를 바라본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좋은 학교, 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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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슈 2017-04-08 0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확실히 지금처럼 교사와 학교에 권한보다는 책무만 묻는형국에서는 교육보단 책임을 회피하기위한 소극적교육이 많을수밖에없습니다

kinye91 2017-04-08 10:06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온갖 책임을 학교에 묻는 지금의 모습이 바뀌지 않으면 앞으로도 책임회피의 교육, 규정대로만 하는 기계적 교육이 학교에 횡행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됩니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 시인.

 

  어느 한 쪽에 속하는 순간 시는 시인에게서 달아나 버린다. 그렇게 시인은 경계에 있어야 한다. 경계에서 이쪽과 저쪽을 한꺼번에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시인은 어느 한 쪽에 속하고 싶어한다. 소속이 없는 존재, 얼마나 위태한 존재인가? 이런 위태한 존재가 안정을 찾으려 하지만, 시인은 안정을 찾을 수가 없다.

 

  그가 안정을 찾는 순간, 시인으로서 존재하기보다는 생활인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병률의 이 시집을 읽으면서 시인이 처한 자리를 생각하게 됐다. 어쩌면 시인은 경계에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런 시인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시가 '시인은 국경에 산다, 생활에게, 왼쪽으로 가면 화평합니다 ' 등등의 시다.

 

이쪽 저쪽에 걸쳐 있는 존재, 어느 한 쪽에 속할 수 없는 시인이라는 존재. 이런 존재들로 인해서 우리는 어느 한 쪽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적어도 내가 보지 못하는 면을 시인을 통해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시집에서 이렇게 이쪽과 저쪽의 경계에 있는 시인의 모습들을 볼 수 있는 시들이 많은데, 이 중에서 '이 안'이라는 시가 마음에 파고들었다.

 

  이 안

 

혹시 이 안에 계시지 않습니까

 

나는 안에 있다

안에 있지 않느냐는 전화 문자에

나는 들킨 사람처럼 몸이 춥다

 

나는 안에 살고 있다

한시도 바깥인 적 없는 나는

이곳에 있기 위하여

온몸으로 지금까지 온 것인데

 

문자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혹시 여기 계신 분이 당신 맞습니까

 

나는 여기 있으며 안에 있다

안쪽이며 여기인 세계에 붙들려 있다

 

나는 지금 여기 있는 숱한 풍경들을 스치느라

저 바깥을 생각해본 적 없는데

여기 있느냐 묻는다

 

삶이 여기 있으라 했다

 

이병률, 찬란, 문학과지성사, 2010년 초판 3쇄. 24-25쪽.

 

나는 안에 있고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사람들은 내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묻은다.  '혹시'라고.

 

나라는 존재의 육체적인 자리를 묻는 것이 아니다. 내 몸이 속해 있는 자리는 중요하지 않다. 내 영혼 - 그것을 시인의 영혼이라고 하자 -이 속해 있는 곳을 묻는 것이다. 

 

'혹시'라는 질문에 그래서 '나는 들킨 사람처럼 몸이 춥다'고 하는 것이다. 내 영혼의 자리를 들킨 것.

 

'나는 안에 살고 있다'는 말이 '이곳에 있기 위하여 / 온몸으로 지금까지 온 것인데'라는 말이 '저 바깥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라는 말이 '혹시'라는 말에 의해서 부정당한다.

 

이미 있는 사람에게 그 사람이 당신이냐고 묻는 것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안과 여기에 있는 나는 몸에 불과하다. 내 영혼은 밖에 저기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삶이 여기 있으라 했다'는 말, 이 말은 여기만 알라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저기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여기에서 저기를 안에서 바깥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시인이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어느 한쪽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려 한다. 그렇게 맡겼을 때 편안한 안도감을 느낀다.

 

자신을 위태롭게 하는 경계에서 벗어나 한 쪽에 자신을 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소속에서 벗어나면 불안감을 느낀다. 소속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행동도 생각도. 그러나 이것은 위험하다.

 

우리는 끊임없이 물어봐야 한다. 거기 있는 것이 바로 너냐고? 이런 물음이 제기될 때 자신을 바깥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안에 있는 나를 부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밖에서 바라볻다는 얘기니, 어느 한쪽에 젖어버리지 않게 된다.

 

우리는 지금 모두 이 안에 있다. 이 안에 있다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않는다. 그냥 그 안에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된다. 이 안에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혹시'라는 물음으로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야 한다.

 

그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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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7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말테의 수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문현미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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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유명한 이름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러나 이름만큼 그의 작품을 읽지는 않았다. 그냥 릴케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 다른 시인들의 시에 등장하는 릴케, 또는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릴케.

 

읽지 않아도 너무 유명한 작가, 릴케. 그의 시집을 한 권 읽었고, 소설집을 한 권 읽은 것이 전부. 이 말테의 수기는 읽어야지 하면서도 늘 미루기만 했던 책.

 

드디어 읽었다. 읽으면서 릴케의 이 작품이 왜 유명한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말테라는 주인공이 자신의 삶과 생각을 자유롭게 쓰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책인데, 서양의 문화, 역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커다른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릴케라는 이름때문에 인내심을 갖고 읽었다고나 할까.

 

릴케와 관련된 여인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그를 중심으로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도 하겠지만, 말테의 수기에서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다.

 

조금은 환상적인 부분이 있는 이야기들도 등장하고 있으니, 사실적인 내용만이 실렸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릴케의 삶을 잘 알고 있다면 이 말테의 수기를 흥미있게 읽어갈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한다. 이러나 저러나 내게 이 말테의 수기는 이런 문장들로 기억될 것이다.

 

시에 대하여, 시인에 대하여 한 구절들.

 

... 사람이 젊어서 시를 쓰게 되면, 훌륭한 시를 쓸 수 없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한평생,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의미(意味)와 감미(甘味)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 아주 마지막에 열 줄의 성공한 시행을 쓸 수 있을 거다.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고 (사실 감정은 일찍부터 가질 수 있는 거다), 경험이기 때문이다.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수많은 도시들, 사람들, 그리고 사물들을 보아야 한다. 동물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새들이 어떻게 나는지 느껴야 하며, 작은 꽃들이 아침에 피어날 때의 몸짓을 알아야 한다. 시인은 돌이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 (26-27쪽)

 

릴케는 시인이 되었다. 소설가가 되었다. 그는 작가가 되었다. 작가가 되기까지 그가 경험한 일들, 그런 일들이 이 말테의 수기에 나와 있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글을 쓰기 위해 말테는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관찰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된다. 그 과정이 나타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한 사람의 작가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이라고 보면서 읽으면 된다. 그렇게 읽으면 책에 나오는 유럽의 역사, 문화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해도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이 어떻게 해서 작가로 탄생하게 되는지를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한 작품을 읽었다. 다음에는 그의 예술론이 담겨 있는 아직 읽지 못하고 있는 '로댕론'과 '젊은 예술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어야겠다. 그에게 한 발 더 다가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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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통곡

- 삼월에 내리는 눈


온 세상이 꽃을 피워

하얗게 하얗게

노랗게 노랗게

빨갛게 빨갛게

형형색색 수를 놓을 때

저만치

구석으로 몰려

뒤돌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한 없는 서러움에

잊혀진다는 두려움에

평 ․ 펑

눈물을 쏟아낸다

아직은 나도 있다고

나도 한 번 봐달라고

하얗게 하얗게

온 세상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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