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스는 없다


누구나 한 마디씩 한다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고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할 수 있다고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없다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 똥들은

거대한 강물로

한 번에 쓸려가 버렸지만

누가 알랴

그 똥들이 어디로 갔는지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또다른 똥무덤을 만들고 말았는지를


적폐청산에 헤라클레스는 없다

강물을 끌어와

단번에 쓸어버릴 수는 없다

지금은

더이상 쌓이지 않게

싸지 말고 버리지 말고

앞에서부터, 누구에게 맡기지 말고

누구나가,

모두

한 손씩 보태야 한다

적폐는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

헤라클레스는 누구가 아닌

우리 모두

 

그때서야 적폐가 청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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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부탁해 - 온전한 자존감과 감정을 위한 일상의 심리학
박진영 지음 / 시공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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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요즘이다. '자존감'을 특별한 의미로 쓰지 않더라도 자신을 인정하는 마음 정도로만 알아두어도 좋을 듯하다.

 

자신의 마음을 알고 인정해주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안해지리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자신의 마음을 보듬는 일이 쉽지는 않다.

 

마음을 누구나 다 잘 다스린다면 세상이 이렇게 갈등으로 가득차 있지는 않으리라. 이론으로는 알고 있으나 실생활에서 적용을 하기는 쉽지 않다.

 

이성보다는 감정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는 이래서는 안 되지 안 되지 하면서도 감정은 엄청난 격랑에 휩싸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런 자신을 더욱 싫어하고 미워하게 된다. 나는 왜 이래? 하면서.

 

이런 경우에 어려운 심리학 이론을 들먹일 필요는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자신을 놓아둘 수 있어야 한다. 그 놓아둠은 자신의 감정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다.

 

나를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나를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냥 내 감정에 휩싸일 뿐이다. 이럴 때마다 잠시 멈추는 것, 그냥 놓아두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이 하나의 자신이 아니라 여러 자신이 모여 바로 나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이런 나가 나를 좋게 하기도 하지만 다른 나가 나를 좋지 않게 하기도 한다.

 

바로 이런 모순덩어리, 다양성의 덩어리가 바로 자신임을 인정하자. 화를 내는 자신도, 화를 내는 자신에게 또 화를 내는 자신도, 화를 내는 자신을 바라보는 자신도 모두 나임을.

 

그렇다면 상황에 맞는 나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다양한 '나' 중에서 그 상황에서 최선의 '나'를 볼 수 있으면 좋다. 그러면 자연스레 그 상황에서 가장 안 좋은 '나'를 잠시 멀어지게 할 수 있다.

 

이 책의 장점이 바로 이것이다. '나'는 단순한 '나'가 아니다. '나'는 참으로 복잡한 '나'이기도 하지만 아주 단순한 '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멋진 나이기도 하고, 찌질한 나이기도 하다는 사실, 언제나 내게는 최악의 상황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최선의 상황만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를 거리를 두고 보는 것이다. 잠시 나를 거울 속으로 들여보내자. 그리고 그 나를 관찰하자. 그러면 '나'의 감정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의 감정이 보이기 시작하면 객관화가 시작된다. '나'에게 빠져 벗어나지 못하던 '나'를 '나'에게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진다.

 

이 편안해짐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다양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자존감이 자연스레 생기기 시작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경험하는 여러 상황들에서 내가 상처받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서술하고 있다.

 

심리학에 관한 책이면서도 저자의 다른 책들과 같이 머리 싸매고 읽는 책이 아닌, 편하게 읽으면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그것도 긍정적인 쪽으로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거기에 나 자신의 마음도 안 좋을 수 있다. 마음은 안 좋은 쪽으로 나라는 사람에게서도 작동하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환경들에서도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꼭 내 탓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자. 자신에게서 가끔은 거리를 두자. 그러면 조금더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을까 한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저자의 다른 책처럼 무거운 주제를 무겁지 않게 쓰고 있다. 읽으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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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愚民)ngs01 2017-04-19 0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끔 자기 자신에게 토닥토닥 해 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지나친 자기 질책과 비하는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것이겠죠...

kinye91 2017-04-19 08:31   좋아요 0 | URL
자신을 토닥토닥해주는 것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처럼 힘든 세상에서는요.
 

  젊은 시인의 시답게 의미가 한 번에 파악되지 않는다. 시에 쓰인 언어들이 하나의 의미와 대응하지 않고 여러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저렇게 해석이 될 수 있는 시들이 많이 있고, 언어 유희라 할 수 있는, 발음의 유사성으로 한글을 한자로 바꾸어 표현한 시도 있다.

 

  대체로 시들이 길어서 읽는 시가 되지, 마음을 울리며 외울 수 있는 시라고 할 수는 없는데... 그럼에도 한 시가 마음에 쏙 들어왔다.

 

  참,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그런 시인데... 이 시를 읽으며 '오르가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빌헬름 라이히는 오르가즘을 제대로 향유하지 못하면, 즉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고 성년이 된 사람들은 남들 위에 군림하여 지배하려고 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오르가즘을 막는 사회에서는 파시즘이 등장한다고 했는데... 청소년기에 오르가즘 느끼고 욕구를 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는데... 욕망, 욕구를 밖으로 분출하는 것, 안으로 쌓아두다가가는 그것이 자신뿐만이 아니라 남에게도 피해를 주게 된다는 주장을 했는데... (빌헬름 라이히, 오르가즘의 기능 참조)

 

어쩌면 우리 사회는 이런 오르가즘을 극도로 억압하고 있는 사회 아닌가 하는 생각. 특히 청소년들의 오르가즘은 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억압받고 있다는 생각.

 

이렇게 억압받고 지내는 학생들의 모습이 학교 폭력이나 집단 따돌림 또는 다른 일탈행위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특히 학생들이 입고 있는 교복은 현대판 정조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

 

교복을 입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의 머리를 염색할 자유도, 파마를 할 자유도 박탈당하고, 자신의 얼굴에 화장품을 바를 권리도, 귀를 뚫을 자유도 박탈당하고 지내는 학생들이 어떻게 오르가즘을 발산하면서 성장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놀 권리 역시 박탈당하고 있으니, 이래저래 학생들은 오르가즘이라는 것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신체 표현의 자유도 교복이라는 정조대로 억압당하고 있는데, 성에 관해서랴. 물론 성적인 오르가즘만이 문제는 아닌데... 우석훈의 "88만 원 세대"의 시작 부분이 '청소년에게 섹스를 허하라'는 말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떠나서, 오르가즘이란 자신의 욕구를 제대로 분출할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성이든 다른 면이든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동의하게 된다.

 

오르가즘을 느끼는 세상, 그런 세상이 바로 '무릉도원'이 아닐까. 그것이 이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때 오르가즘은 나만이 아니다. 상대가 희열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상황, 그래서 나 역시 즐거움을 느끼는 상황, 이것이 진정한 오르가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김경주의 '몽유, 도원'이란 시를 읽으면. 어쩌면 이렇게 오르가즘을 생각하게 하는데도 다른 방향에서 생각하게 하는 시를 쓸 수 있을까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되는데...

 

몽유, 도원

 

  오늘 따라 어쩐지 나는 그걸 하고 싶다

 

  귀이개를 가지고 귀를 팔 때

  몇 번 넣어 본 구멍이라고

  귀이개를 그것처럼 밀어 넣는다

 

  보이지 않지만, 도도하게 구멍에 대해 가지는 그 구체성,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구멍에 대한 상상력은 의외로 선명하다 넌지지 닿고 있다는, 어떤 곤경을 긁어내고 있다는, 그 시원한 질감으로부터 뭉게뭉게

 

  귓밥이 흘러나온다 어둠 속에서 파도

 

김경주, 시차의 눈을 달랜다, 민음사, 2009년. 70쪽

 

기가 막히지 않는가. 머리 위에서 벌어지는 이 오르가즘의 향연. 보이지 않아도 서로를 알고 느낄 수 있는 관계. 내가 분출하는 것이 아닌 상대가 분출하게 하는 배려. 이것이 바로 오르가즘 아닌가.

 

이런 오르가즘 사회는 행복한 사회, 바로 우리가 꿈 속에 그리는 이상향 아닌가. 그렇게 나의 오르가즘이 너의 오르가즘이 되는 상황, 그래서 우리가 오르가즘을 느끼게 되는 그런 상황, 몽유, 도원.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오르가즘만을 분출시키는 그런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나만을 바라보는 사회와 우리를 바라보는 사회는 이 시집에서 주로 나오는 단어인 '시차(時差)'에 해당한다.

 

바로 '시차(時差)'가 '시차(視差)'이므로. 우리는 이런 시차(時差, 視差)를 인정해야 서로의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다.

 

시차(時差, 視差)를 인식하는 순간, 나만이 아닌 남을 생각하는 자세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특히 요즘에, 김경주의 시집 속에서 발견한 '몽유, 도원'이란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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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주 시전집 - 1953-1992
이연주 지음 / 최측의농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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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시전집을 읽으면서 어둠 속에 잠겨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무슨 시들이 이렇게 어둡다. 칙칙하냐, 이 시인 밝게 살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시인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지 않기에 시인을 검색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 시들이었는데...

 

제목들도 그렇다. 생전에 발간한 시집 제목이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이라니...

 

매음녀... 삶의 나락에서 그래도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 자신의 몸을 상품으로 내맡길 수밖에 없는 사람, 낮에 활동하기 보다는 밤에 활동할 수밖에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매음녀 아니던가.

 

이런 매음녀에 관한 시가 6편이 실려 있다. 이상하게 '매음녀1'부터 '매음녀7'까지 제목이 붙어 있는데도 '매음녀2'라는 제목을 가진 시가 없다. 그래서 6편이다. 아마도 시인이 썼지만 발표는 하지 않은 듯하다.

 

몇 개의 제목을 보아도 시집이 참으로 음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토피아는 없다, 어떤 행려병자, 악몽의 낮과 밤' 등등

 

유고시집 제목은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속죄양, 유다"

게다가 처음 시작부터 부제를 달고 있는 시들이 있는데, 그 부제가 '위험한 시절의 진료실'이다. 9편의 시가 이 부제로 실려있는데... 시대와 화합하지 못한 시인의 모습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는 시들이다.

 

시인은 그렇게도 이 세상의 삶에 고뇌를 했나 보다. 그의 삶이 유다의 삶처럼 괴로웠던 걸까? 이 전집에는 시인에 대한 설명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시인이 여성인지 남성인지부터 고민해야 하는데...

 

검색해보니 한국여성문인 사전에 이름이 올라가 있으니 여성시인이고, 40이 되어 세상을 떠났는데, 그것이 자살이라고 하니...

 

세상의 고민을 짊어지고 그 고뇌를 시로 표현해서 삶을 추구했으나, 결국 자신이 고민을 모두 짊어지고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시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집이 무겁도록 음울한 내용들이 시전집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시인이 살았던 시대, 우리 사회가 참으로 무거운 시대였지만, 그 시대의 무게를 온몸으로 시인 역시 받아들였다는 생각이 든다.

 

생전에 한 권의 시집을 내었고, 유고시집 한 권 도합 두 권의 시집이 전부인 시인의 전집을 내는데... 동인 활동으로 발표한 작품을 모아놓은 것까지도 좋은데... 시인에 대한 해설, 설명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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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4-17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녀의 시는 가슴의 통점 자극제입니다....

kinye91 2017-04-17 14:18   좋아요 1 | URL
저도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박근혜가 가자마자 세월호가 올라왔다. 그러나 미수습자 수습도, 진실 규명도 아직은 요원하다.

 

  삶창 110호가 왔다. 책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는 창을 만나게 되는 책. 이 책의 표지가 바로 세월호 희생자들, 홍성담이 그린 '내 몸은 바다(2)'다.

 

  홍성담의 그림으로 세월호를 잊을 수 없음을, 우리 사회가 영원히 기억하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함을, 따라서 진실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박근혜 정권은 세월호의 침몰, 그리고 제대로 된 구조를 하지 않았을 때부터 이미 우리에게서 밀려난 정권이었다. 그런데도 그 정권을 떨쳐내는데 두 해가 넘는 세월이 걸렸을 뿐이다.

 

그리고 세 해. 예전이면 시묘살이를 하더라도 끝낼 시간. 하지만 세월호는 끝나지 않는다. 이제야 시작이다. 철저한 진실 규명에 의한 책임자 처벌. 이것이 되어야만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아직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 삼 년이라는 시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이번 호를 읽으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대선과도 맞물려 생각할거리를 많이 제공하고 있다. 꼭 대선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늘 생각하고 있어야 할 문제를 제기했다고 보면 된다.

 

이 중에 마음에 콕콕 와 박히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밥' 문제다. '밥'은 곧 '생명'이다. 이 '생명'을 유지해주는 것이 바로 '일자리'다.

 

그런데 우리의 일자리는 안녕한가? 하면 절대로 안녕하지 않다. '안녕하십니까 또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이 절실하게 와닿는 요즘이다.

 

조선강국이라는 나라에서 조선업이 망해가고 있어 수많은 노동자들이 '밥줄'을 놓게 생겼으며, 다른 기업들에서도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밥줄'을 스스로 끊게 하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에 노조들은 점점 힘이 없어져 투쟁에서 승리하기는 커녕, 제대로 된 싸움도 변변히 해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지내고 있는지, 각종 소송에 휘말리고 자본의 교묘한 술책에 어떻게 고통받고 있는지는 '353일, 그러나 끝나지 않은 싸움(김성민)'의 글과 ''밥이 불안하다(표성배)'의 글을 보면 절절하게 나와 있다.

 

여기에 영화 한 편을 추가하면 '모멸감을 견디며 살아남는다는 것(이수향)'의 글을 읽는 것도 좋다.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영화의 시평인데, 평생을 성실하게 노동하면서 살아온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을 때 당하게 되는 현실을 잘 그려낸 영화다.

 

영국의 이야기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의, 어쩌면 영국보다 더 심각한 우리나라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선 즈음해서 많은 정당들에서 나오는 공약들에 노동자들의 권리가, 적어도 '살 권리'가 보장되는 공약이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

 

일부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한 달에 한 번 금요일에는 4시에 퇴근하고 평일에 2시간 더 근무하는 제도를 처음 시행했는데, 과연 이것이 바람직한 제도인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아랫돌 빼어 윗돌 괸다는 식, 또는 조삼모사(朝三暮四) 아닌가. 도대체 여기서 노동시간이 어디 줄었는가. 그냥 똑같지 않은가. 그럼에도 난리다. 대기업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아 공무원들만 시행을 했고, 일반 기업에서는 시행율 0%라고 한다.

 

이정도 정책도 기업에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 것인데... 반대로 세계 최장 노동시간에 시달리고, 또 대기업노조들을 귀족노조라고 하는데, 그들이 정상적으로 기준 시간만 일하면 과연 그렇게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이들 임금이 높은 이유는 시간외 수당, 초과근무, 휴일 특근 수당 등을 모두 받기 때문 아닌가.

 

결국 하루 8시간 노동, 주 5일 근무 즉, 40시간 노동만 해서는 대기업이고 중소기업이고 살기 힘든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임금체계 또는 생활물가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이를 현실화하지 않고 한 달에 한 번 금요일에만 두 시간 당겨 퇴근을 해서 가족과 함께 소비를 하는 삶을 살라고 하는 것은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이런 주장을 하기 전에 주5일 근무, 40시간 노동시간만으로도 불이익을 받지 않고 노동을 하며, 생활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치인들에게 지금 우리가 주장해야 할 문제다.

 

사실은 주40시간 노동도 많다. 이보다 더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지금은 먼 나라 얘기 같지만 사실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자는 주장은 예전부터 있어 왔다.  

 

이번 호에 실린 '노동의 가치에서 삶의 가치로(김경윤)'의 글을 읽어보라. 지금 우리는 '노동을 할 권리'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게으를 수 있는 권리(라파르그)'를 주장하거나 '게으름에 대한 찬양(러셀)'을 할 때다. 그래서 강수돌의 말처럼 '일중독에서 벗어나기'를 해야 한다.

 

그러고도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기본 생계는 사회가, 국가가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세월호 같은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밥' 걱정 하지 않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도 할 수가 있고. 이번 호에서는 다루지 않고 있지만 '기본소득'에 대해서 이번 기회에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이런 저런 글들이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그리고 가슴 한 켠을 짠하게 울렸던 글, '내 이름은 임순분(박중엽)' 그 놈의 '사드', 정말 '사드'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드가 배치될 그곳에는 바로 '사람'이 살고 있다. 그 사람, 임순분...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다. '소성리에도 사람이 산다'고.

 

어디 이뿐이랴. 더 많은 일들이 많다. 더 많이 생각할 것들이 많다. 대통령 선거를 즈음해서, 국민의 힘으로 국정농단 대통령을 밀어낸 그 힘으로 이번에 새로 시작해야 한다. 또다시 사람만 바꾸는 그런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삶창 110호' 새로운 시작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그야말로 삶을 보는 창을 내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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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6 0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6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