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표에 갇힌 학교


    넓은 운동장을 뛰놀던 아이들도, 벤치에 앉아 먼 미래를 응시하던 아이들도, 재잘재잘 일상을 공유하던 아이들도, 세상이 제 것인 양 으스대던 아이들도, 이 아이들을 하나로 만들던 건물들도, 나를 따르라, 그러나 나를 밟고 넘어서라고 외치던 교사들도, 모두 가둬버린 성적표. 사각의 틀에, 교육이란 이름으로 모든 것을 가둬버린 성적표, 스스로 그 속으로 들어가는 아이들, 이 나라 교육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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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0 08: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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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0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게 유시민은 자유주의자로 각인되어 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였던가, 그의 책을 처음 접했던 것이. 어쩌면 그보다 그의 '항소이유서'를 먼저 만났는지도 모른다. 절절하게 다가오는 문장들, 그 문장들은 바로 우리가 겪었던 현대사였다.

 

그런 그가 자유주의자로 다가오게 된 것은 그가 처음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다. 국회의원 명패에 이름을 한자로 기록하던 때에 한글 이름으로 바꾸자고 하는 것도 잘 안 되던 그렇게 보수주의, 형식주의에 갇혀 있던 국회에 그가 자유로운 복장으로 나타난 것.

 

아마도 여러 우여곡절 끝에 그가 복장에서 어느 정도 타협했다고 기억하는데,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가 굳이 정장을 입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그의 행동에 동조했었다.

 

복장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국민을 대표하는 행동을 하느냐가 문제였다고 생각했고, 국회가 너무도 형식에 치우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그런 형식으로 국민을 대리한다기보다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기도 했었으니.

 

그런 참에 유시민의 그 시도는 참으로 신선했다. 그리고 발랄했다. 물론 그 한 명으로 우리나라 국회가 바뀌지는 않았지만, 국회라는 경직된 땅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것만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어서 그는 복지부 장관도 하고, 그 다음에는 정계에서 멀어져 글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이 책은 그가 살아온 현대사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 현대사 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신이 태어난 해부터 이 책이 나온 때인 2014년까지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겪어왔던 시대를 유시민이 어떻게 겪었고,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역사는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 이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을 모두 기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을 쓰는 사람의 관점에서 필요한 것들을 골라 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역사는 주관적이다. 이 주관들이 얼마나 사실에 기초하고 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공과가 결정될 것이다.

 

격동의 현대사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이 기간, 그는 치열하게 살았다. 격동의 순간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현대사가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것도 자신의 관점을 명확하게 밝히면서 서술을 하고 있으니, 유시민의 관점에서 우리는 반세기를 따라갈 수 있다. 아마도 진보니 보수니 하는 말보다는 자유주의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그의 관점을 따라가면서 읽을 수 있다.

 

그는 우리 현대사를 세 단계로 구분한다. 이 구분이 타당하다는 생각을 한다.

 

난민촌 시대 - 병영 시대 - 광장 시대

 

6.25전쟁이 끝나고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가 태어났다. 우리나라가 절대빈곤에 허덕일 때다. 이때를 난민촌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한 때. 독재권력이 극악무도하게 다가오지 않을 때다.

 

정치권력의 민주화보다는 먹고 사는 일에 더욱 신경을 쓸 때고,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는 정치권력이면 나름 인정을 받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시대가 지속될 수는 없다.

 

독재권력이 먹고 사는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면 사람들은 이제 정치에 서서히 눈을 돌리게 된다. 시민들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데, 권력을 분점하고 싶지 않은 독재 권력은 이를 용납할 수가 없다.

 

이때 발현되는 것이 바로 병영 시대다. 사회의 군대화. 군대처럼 꽉 조여 사회가 돌아가게 된다. 뭐든지 명령과 지배만 있다. 명령에 따라야 한다. 따르지 않으면 항명이다. 처벌만이 있을 뿐이다.

 

유신독재, 또 전두환 정권 시기까지 우리나라는 병영국가라 할 만했다. 오죽했으면 여차하면 위수령, 계엄령에, 법을 무시한 대통령 긴급조치에 대학에 경찰이 상주하는 그런 시대였으니. 그럼에도 경제는 계속 발전한다. 시민들의 의식은 더욱 성장한다.

 

산발적으로 고립되어 벌어지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는 독재는 삶을 옥죄는 더욱 커다란 압박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때 민주화운동이 일어난다.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형식적 민주주의가 형성되어 간다. 이제는 광장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열려 있는 삶을 사는 시대, 자유가 보장된 시대가 된다. 1987년 이후 우리 사회는 광장 시대를 열었다. 그렇다. 이제는 누구나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다. 물론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 책에서 이런 광장을 위협하는 것이 아직도 우리가 겪고 있는 남북 갈등이라고 하고 있지만, 국민을 배반하는 정치가를 끌어내릴 수 있는 장치는 되어 있는 사회가 우리 사회다.

 

이 책이 일찍 나와 여기에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총으로 끌어내렸던 독재권력을 이제는 시민의 힘으로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부패권력을 끌어내지 않았던가.

 

이것이 바로 광장의 시대다. 우리는 이런 광장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55년을 살아오면서 겪었던 일, 보았던 일, 들었던 일들과 자료를 모아 정리해 놓고 있으니, 역사의 수레바퀴는 뒤로 갈 수 없다는 것, 잠시 뒤로 갈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앞으로 간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는 다시 난민촌 시대로도 병영 시대로도 갈 수 없다. 그렇게는 우리들이 살아내지 못한다. 그런 시대를 거쳐 만들어 낸 광장 시대, 우리가 더욱 자유롭게 지켜내야 한다. 역사 책을 읽는 이유, 역사의 바퀴를 계속 앞으로 굴리기 위해서 아니겠는가.

 

작가인 유시민 역시 에필로그에서 말하고 있다. 미래는 이미 우리에게 안에 와 있다고. 그 미래를 밖으로 꺼낼 일이 남은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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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의 힘으로 부패 권력을 끌어내렸다. 결정은 헌법재판소가 했지만, 시민의 힘이 없었다면 그런 판결이 나오지 않았으리라.

 

  부패 권력은 이제 자리를 잡을 수 없다. 절대 권력은 없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나라는 시민의 힘으로 대통령이 하야 선언을 하게 한 경험, 시민의 힘으로 독재 권력이 헌법을 바꾸겠다는 선언을 하게 한 경험에 더해 부패 권력을 탄핵시킨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겪은 이런 경험들은 뒤로 물릴 수 없다. 이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커다란 힘, 그야말로 불가역적인 힘이다.

 

  그렇게 끌어냈는데, 다음이 명확하지 않다. 여러 곳에서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고, 사람 하나를 바꾸는 것으로 끝내면 안 된다는 외침들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대통령 선거에 머무르고 있다. 누구를 뽑아야 하나 하는 쪽으로 논의가 흘러가고 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이번 경험이 의미있는 경험이 될텐데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녹색평론 154호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사람 하나를 바꾸는 시민들의 힘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시민 혁명이라는 말을 하려면 적어도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시민 권력 또는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되고 관철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 참에.

 

녹색평론에서는 그 점을 다루고 있다. 특히 '시민의회'에 대해서 제안하고 있다. 각 대통령 후보들이 이에 대해서 가타부타 무시 전술로 나아가고 있지만, 각 정당들도 역시 무시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만큼 "시민의회"가 이루어진다면 그들이 받을 타격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기득권 정치권력을 견제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시민의회가 꼭 필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시민의회가 상설기구가 되든, 비상설기구가 되든 그것은 더 논의해야 할 문제이지만, 적어도 시민의회가 출범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으로 기존 정당 정치권들에게 시민의 주권을 넘겨주게 된다. 이야말로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된다. 그러니 대통령 선거에서 누구를 뽑을 것인가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누구를 뽑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힘으로 끌어내린 권력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논의해야 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시민의회"이고, 선거법 개정일 것이다.

 

그래서 녹색평론 이번 호에서는 이런 시민들의 힘을 반영하는 정치제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대담을 기록한 '시민의회를 생각한다'를 비롯해서 '민주주의가 유일한 대안이다, 무작위 선출과 숙의민주주의, 나는 왜 <대통령의 철학>을 쓰게 되었나, 시민의 제왕학을 건의함, 민주시민교육의 실천모델'이라는 글이 실렸다. 모두가 민주주의와 통하는 글인데, 권력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직접 행사하는 것이 중요함을, 이제는 그럴 때임을 강조하고 있는 글들이다.

 

여기에 우리나라 정세와 관련된 글들이 있다. 경제와 안보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역시 민주주의와 관계가 있다. 우리의 삶과 직접 관계 있는 이런 정책들을 소수의 관료들이 결정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사드와 미,중,일,러 군비경쟁'을 읽어보면 '사드'가 방어용 무기라고 하지만, 그 방어용 무기가 곧 공격용 무기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천하무적의 창을 하나씩 지니고 있는 두 사람이 있는데, 그 중 한 명에게만 방패를 준다면, 방패가진 사람은 방어만 하게 될까? 아니다. 충분히 막을 방ㅊ패가 있으므로 그는 당연히 공격을 하게 된다.

 

이래서 방패는 방어가 아니라 공격 무기가 된다. 사드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나라 사드를 왜 반대하는지를 이런 점에서 찾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글이다.

 

이런 상태에서 국민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또 지역 주민들의 의사와는 반대로 전격적으로 사드 배치를 해버린 행태에 대해서,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사드 배치인지를 이 글을 통해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된다.

 

정작 국민을 위한다면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반하는 정책을 펼치는 관료들의 모습,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 상태에 대해서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들을 통제하고 견제할 수 있는, 그래서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그런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에 전혀 관여할 수 없게 된다.

 

'미세먼지와 일자리, 그리고 트럼프 FTA' 란 글 역시 경제가 우리 삶과 얼마나 관련되어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가장 심한 미세먼지로 인해 고생하는 요즘 아니던가. 게다가 미국 대통령이 된 트럼프가 무역을 재조정하겠다고 하는데 한미FTA가 성공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말인지를 이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역시 민주주의 문제다. 시민이 권력을 소수에게 위임한 결과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게 해주고 있다.

 

그렇다. 시민의 힘을 보여준 지금, 그 힘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이 되도록 사람 하나를 바꾸는 것에서 머물지 말고 제도를 바꿀 수 있도록 더욱 시민들이 깨어있어야 함을, 녹색평론이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이 소리, 귀 기울여 듣자. 그래야만 한다. 사람이 바뀌는 데서 멈추지 말자. 한 발 더 나아가자. 지금은 그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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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이라는 작열하는, 밝은, 뜨거운 대상을 생각하면 한여름, 한낮, 절정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무언가 정점에 있었을 때 태양을 연상한다. 그런데, 이 시에서 말하는 '태양의 연대기'는 그렇지 않다. 절정이 아니다. 절정에 이르지 못한 또는 절정을 지난 시기다.

 

  달로는 6월이다. 여름이 시작한다. 우리의 삶이 절정에 도달하려는 바로 그 시작 지점, 시는 그때를 말한다. 그러면 희망이 넘쳐야 하는데, 아니다. 시간은 19시 15분. 이건 뭔가, 해가 질 때 아닌가.

(장석원, '태양의 연대기'에 나오는 시간들)

 

  태양을 이야기하면서 절정을 피해간다. 어쩌면 인생은 절정에서는 할 이야기가 없는지도 모른다. 한참 절정에 무슨 이야기가 필요하겠는가.

 

그래서 우리에게 이야기가 필요한 시기는 절정을 바라는 때거나 절정을 지나 그 때를 회상할 때이다. 이야기가 있다는 것, 자신의 삶에서 한 발 물러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태양을 지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때,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시가 바로 '저녁의 봉인'이다. 저녁은 어둠으로 모든 것을 봉인한다. 그러나 이 봉인이 풀릴 때가 있다. 바로 달빛.

 

태양이 아니라 달빛이다. 태양은 삶을 살아가게 한다면, 그래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다면, 달빛은 삶에서 살짝 빗겨나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삶의 봉인을 푼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온 태양, 그 태양이 지자 어둠으로 봉인한 삶을 달빛이 풀어낸다. 그 달빛으로 내 삶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도 바라보게 된다.

 

저녁의 봉인

 

나를 따라온 길이

어둠이 잠가버린 길이

시간의 계단처럼 박명 속에 묻혀

디딜 곳 없습니다 만신에 멍들어

걸어온 내가 사라진 나를 쳐다봅니다

손가락 사이로 사라진 듯

발자국 밑으로 녹아든 듯

호흡이 단절된 순간마다 부서진 듯

숲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달이 어둠에 빗살을 긋자

떡갈나무 밤나무 입을 벌립니다

죽은 자들이 눈을 뜹니다

피가 돌기 시작합니다

어둠의 사슬을 풀고 아버지가 나를 기다립니다

할아버지 무덤을 찾아가던 그날처럼

소처럼 느릿 걸어갑니다 기울어집니다

나무 아버지 걸어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만집니다

 

장석원, 태양의 연대기, 문학과지성사, 2008년. 130쪽.

 

치열한 삶의 한복판에서 벗어나 달빛으로 봉인 해제된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던 존재를 드디어 만나게 된다. 나는 나만이 아니라 죽은 존재들과 살아있는 다른 존재들이 모두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존재다.

 

그런 존재들 깨닫게 해주는 것이 바로 태양이 진 뒤의 어둠과 달빛이다.  어둠 속에서 봉인을 해제해주는 달빛. 그런 달빛을 볼 수 있는 여유, 그것이 우리 삶에서 필요하지 않을까.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온 하루하루에는 저녁이 되면 그냥 삶은 봉인이 되어 버린다. 봉인을 풀 수 없다. 그래서 반대로 해야 한다. 어둠이 지금까지의 신산한 삶을 봉인하도록 해야 한다.

 

내 삶을 다른 존재들과 이어줄, 그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하는 봉인 해제의 열쇠, 달빛이 우리 삶에 들어오게 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냥 삶을 소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삶이 자신을 봉인해 버리는 줄도 모르고서, 또는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이제는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가 봉인해야 할 삶은 멈추지 못하고 앞으로만 내달리는 삶이다. 그 삶은 봉인하고, 좌우를 보며 느릿느릿 걸어가는 그런 삶을 풀어내야 한다.

 

은은한 달빛이 필요한 시점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 한다. 저녁이 있는 삶이든, 칼퇴근을 하는 삶이든. 이 시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으니, 이건 지나친 오독(誤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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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5-07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오늘 지나는 태양의 자오선을 따라가는 기분나요...^^.
 
작가의 객석
강병철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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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이자 시인, 소설가인 강병철이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냈다. 좀 낯선 인물들도 꽤 나온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충청도와 관계가 있다. 저자인 강병철이 충청도에서 활동했기에 그가 자주 만난 사람들이 충청도 출신 혹은 충청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데서 인물 선정의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여기에 교사(또는 교사 출신)들이자 문인인 사람들도 꽤 나온다. 저자 역시 교사이자 문인이기도 하고. 이들은 대부분 전교조와 관련된 교사들이다. 지금 누구는 전교조를 때려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예전에 이들을 해직시키더니, 이제는 한사코 법 밖으로 전교조를 몰아내고 있는 것도 모자라 때려잡아야 한다고, 노조에 대한 인식이, 교사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인 사람이 대통령 후보라니, 세월 참, 앞으로 가지 않고 뒤로 거꾸로 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읽어가면서 전교조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정말로 교사로서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 이들은 대부분 전교조 교사였는데, 이들이 얼마나 잘 살았는지 이 책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아마도 전교조에 대해서 오른쪽으로 치우쳤던 생각들을 조금은 교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는 교육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는 사람들에게 통하는 이야기고.

 

이 책에서 다루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인물도 있고, 지금은 교육감이 되어 지역 교육의 수장 노릇을 하는 사람도 있고,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다.

 

윤중호, 김성동, 이문구, 한창훈, 이정록, 안학수, 조재훈, 최교진, 나태주, 정낙추, 황재학, 김지철, 김충권, 이순이, 이문복 

 

첫 인물인 윤중호, 제목부터 슬프다. 이렇게 꽃이 피었어도 한 번 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눈을 뜨지 않는다. 윤중호가 그렇다.

 

저자인 강병철과 친밀하게 지냈던 사람들 이야기라서 글 속에서 그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곁에서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들의 고민, 이들의 문학, 이들의 삶에 대해서 강병철은 객석에서 이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자신이 만난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게 하는 것, 그래서 책 제목도 '작가의 객석'이다. 작가는 '객석'에서 주인공들을 바라본다. 그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서 우리 역시 주인공들을 바라보게 된다.

 

따스하게, 애정을 가지고 이들을 바라보기에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따스해진다. 어떤 장면에서는 짠해지기도 한다.

 

안학수 시인 편에서 눈물이 짠해지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장애인에 대해서는 편견을 지니고 있었음은 매한가지. 여기에 더해 장애인을 곯리고 괴롭히기도 했으니, 그런 경험을 성장소설로 썼다는데, 아마도 작가의 삶이었을 그 장면.

 

식모살이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온 누나가 장애인 동생을 보며 주저앉으며 하는 말 "누나가 아무것도 못 사왔다."

 

눈물이 울컥했다. 지지리로 가난한 생활에 무보수 식모로 집안 입 하나 덜어주던 누나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동생에게 하는 말. 이런 슬픔이라니.

 

시인의 이런 슬픔을 작가는 객석에서 우리에게 잔잔하게 들려주고 있다. 아니 들려주고 있다기보다는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편이 다 따스하다. 마음이 짠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들이 한 시대를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그 치열함이 문학으로 어떻게 남게 되었는지를 보게 된다.

 

작가와 같은 자리에서 작가가 보는 것을 우리 역시 보게 된다. '작가의 객석'은 이렇게 우리의 객석이 된다. 우리는 이들의 삶을, 문학을 본다. 작가가 보는 것이 우리 마음 속에 고스란히 담겨지게 된다.

 

좋다. 사람에 대해 혐오감을 갖게 하는 몇몇 군상들을 잊을 수 있게 해준다. 이들이 술을 먹고 온갖 난장을 벌여도 그 난장은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삶의 고민, 활력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대단한 작가들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울고 웃으며 땀 흘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그래서 객석에서 나와 그들과 함께 한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좋았다는 말 이상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은 책이기도 하다. 문인들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겐 좋은 구경거리(?)를 제공해주는, 그런 책이다. 감사하다. 이런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준 출판사에게. 역시 '삶창'이다. 삶을 보여주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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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6 11: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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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6 11: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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