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이야기 1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1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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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중국을 "죽의 장막"이라고 했었다. 공산화가 되고 나서 우리와 교류가 끊겼고, 중국은 적대국이었으며, 명칭도 중국이 아닌 중공이었다. 그리고 그 나라를 잘 알 수 없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 바로 '죽의 장막'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과 교류를 하고, 우리나라 최대의 교역국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나라에 유학 오는 학생도 많고, 중국으로 유학 가는 학생도 많다. 중국에 현지 법인을 차린 회사도 많고. 이와 더불어 서로의 나라를 오가는 관광객들도 많고.

 

서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지금의 중국이 있게 한 인물들에 대해 서술한 이 책은 중국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한다.

 

한나라때 태사공이라고 불리는 사마천이 쓴 역사서 '사기'에는 왕조의 역사들만이 아니라 왕조 속에서 살아간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열전'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이 책을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 비긴다면 '현대사 중국인 열전'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근현대사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는데, 그 중에 이 1권에서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우리나라가 일제에 강제합병 당했던 시절, 중국으로 피신해 독립운동을 하던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과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이야기이기 때문에 무척 흥미롭기도 하다.

 

게다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혁명기 시기의 일들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한때의 해프닝이라고 하기에는 역사적으로 너무도 많은 손실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처음 시작을 '참새 소탕전의 추억'이라고 한다. 참새 때문에 못 살겠다는 농민들의 민원을 받아들여 정부에서 참새를 소탕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중국 전역에서 참새 소탕전을 벌인 이야기.

 

지금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가능했던 이야기. 그러나 한 해 동안 참새를 소탕했다고 해도 자연을 이길 수는 없는 일. 참새를 소탕하자 참새가 먹던 해충들이 천적이 없어져 오히려 농민들을 더 괴롭히게 되는 현상.

 

잘못된 정책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국민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장면이 바로 이 책의 첫장면이다. 이 장면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유를 이렇게 생각한다. 참새 소탕전처럼 역사에는 일방적으로 나쁜 쪽은 없다는 것.

 

역사에서 승자와 패자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들을 선악의 개념으로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그들 역시 역사의 한 장면에서는 모두 자신들에게 맞는 삶을 살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 그 점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고, 그래서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을 없애서는 안 된다고 시작을 이해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정권 다툼에서 몰락해 사라진 인물들도 있지만 이들을 일방적으로 역사에서 제거할 수는 없는 것.

 

참새 소탕전에 이어 나오는 인물이 바로 류사오치라는 마오쩌뚱과 함께 혁명을 이끌고 한때 2인자의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문화대혁명 때 몰락한 사람이다. 비슷한 길을 걸은 린뱌오라는 사람의 이야기도 뒤를 이어 나오고.

 

이들은 혁명을 함께 했지만 권력은 함께 누리지 못하는 그런 속성을 너무도 잘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역사에서 늘상 되풀이 되고 있었던 일.

 

격동의 와중에는 함께 해도 안정이 된 다음에는 누군가가 떨려나야 하는 상황. 그런 상황을 너무도 잘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이런 정치사적인 인물들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읽는 재미가 있다.

 

이들의 활동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어서 역사책 속에 죽어 있는 글자로만 남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내 곁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일방적으로 한 편을 몰아세우지 않고 멀리 떨어져서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전달해주려는 듯한 저자의 태도가 어느 한 편에 감정을 몰입하지 않도록 해서 읽기에 좋다.

 

여기에 정치적인 인물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현대 중국을 이끈 문화예술인들도 많이 나온다. 그들이 격동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이 책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마치 장강의 흐름처럼 중국이라는 나라에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그들이 중국 역사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잘 모르고 있었던 수많은 중국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서 좋은 책이다. 특히 우리나라에도 주둔했던 위안스카이(한자어로 읽으면 원세개)의 부인 중에 세 명이 조선인이었다는 사실. 그들의 자손들 중에 잘된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

 

다만 아쉬운 점은 '사기 열전' 처럼 분야가 같거나 또는 삶의 행태가 비슷한 인물들끼리 묶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여기에 작은 제목을 하나씩 붙였으면 훨씬 좋았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2권에는 어떤 인물들이 나올지 궁금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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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5-15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사두기만 하고 미처 못 읽은 책이네요. 리뷰 읽고 나니 찾아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kinye91 2017-05-15 09:03   좋아요 0 | URL
저는 5권 중에 먼저 1권만 구입해서 읽었는데요, 계속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인은 표절자다. 세상의 모든 것을 표절한다. 이미 있는 것을 표절하고, 아직 있지 않은 것을 표절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표절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도 표절한다.

 

다른 생명들의 존재도 표절하고, 우주 모든 것을 표절한다. 그것을 시인은 '불멸의 표절(10-11쪽)'이라고 했다.

 

그렇다, 시인의 표절은 사라지지 않는다. 멈추지도 않는다. 시인이 표절을 멈추는 순간, 시는 사라진다.

 

하여, 시는 모두 표절이다. 세상 모든 것의 표절이다. 우리는 그런 표절을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이 시집에서 한 모든 표절 가운데, 마음에 다가오는 표절들이 있다. '죽음의 완성'이란 시에서는 만약 우리들이 너무도 오랫동안 산다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드러나있고, '죽음의 방식'에서는 감나무와 소나무가 죽어갈 때 보여주는 모습을 대비시키고 있다.

 

사람들의 삶도 마찬가지리라. 어떻게 죽어가느냐는 각자의 삶에 따라 다를테니, 시인은 감나무와 소나무를 통해 사람들이 죽어가는 방식을 표절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열심히 살아왔지만, 자신의 존재를 점점 더 잃어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희미해지는 병에 걸린 남자'가 있다.

 

한때 빛나는 존재였지만, 이제는 희미해져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 그것이 꼭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우리 이야기고, 모든 생명체의 이야기다.

 

그런 생명체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는 길, 그것은 바로 '대준다는 것'에 있다. 대주지 않으면 자신 역시 설 수 없다. 자신이 서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우리는 대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어떤 말보다도 행동을 전제로 한다.

 

대준다는 것은 달콤한 말이 아니라 처연한 행동이다. 이런 행동을 통해 나는 남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세상의 등뼈

 

누군가는 내게 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입술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어깨를 대주고

 

대준다는 것, 그것은

무작정 내 전부를 들이밀며

무주공산 떨고 있는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져

더 높은 곳으로 너를 올려준다는 것

혈혈단신 땅에 묻힌 너의 뿌리 끝을 일깨우며

배를 대고 내려앉아 너를 기다려준다는 것

 

논에 물을 대주듯

상처에 눈물을 대주듯

끝모를 바닥에 밑을 대주듯

한생을 뿌리고 거두어

벌린 입에

거룩한 밥이 되어준다는 것, 그것은

 

사랑한다는 말 대신

 

정끝별, 와락, 창비, 2008년. 26-27쪽.

 

나만 대주는가? 아니다. 남도 나를 위해 대준다. 이렇게 서로 대주는 관계,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이다. 생명체들의 삶만이 아닌,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의 삶이다.

 

시인은 이런 삶을 표절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대주어야 한다는 것, 한사코 대주는 것을 거부할 수는 없다는 것.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대주는 행위에는 말이 필요없다. 행동이 있을 뿐이다. 이런 행동을 통해 세상은 삶을 유지해가게 된다.

 

정끝별의 시 '세상의 등뼈'를 통해 대준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고... 우리가 서로 대주어야 세상이 유지되는, 그런 등뼈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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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4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4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대를 수락하는 순간, 시인과 독자는 같은 세계에 거주하게 된다. 반면 그 느낌의 세계에 입장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녀의 시는 열리지 않는다. (신형철의 해설 중에서, 150쪽)

 

  모든 시는 초대장이다. 시인이 느꼈던 세계, 시인이 만든 세계에 함께 하자는 초대장.

 

  그러나 그 초대장은 쉬운 언어로 쓰여 있지 않다. 오히려 암호로 쓰여 있다고 해야 한다.

 

  암호문. 이를 해독해 내지 않으면 초대에 응할 수가 없다. 무어라 쓰여 있지만, 그것은 그냥 글자에 불과할 뿐이다.

 

  느낌의 세계, 그것을 여는 열쇠, 열쇠가 동봉되지 않은 초대장은 소용이 없다. 그냥 종이에 불과하다. 사라질.

 

김행숙의 시도 마찬가지다. 해설자는 김행숙의 시에서 사랑도 느끼고 느낌의 공동체도 발견했는데, 나는 열쇠를 찾지 못했다.

 

초대장을 받았는데 초대장을 읽지 못해 잔치집에 가지 못하는 상황, 그런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 잔치집에 가지 못해도 좋다. 나만의 조촐한 잔치를 하면 되니까.

 

시집의 처음 시를 가지고 잔치를 한다. 내가 나만의 느낌을 가지고 자족하는 잔치. 그것은 곧 시인의 초대장을 내 식으로 고치는 일이다.

 

제목은 '발'이다. 우리 몸에서 가장 밑에 있는 신체 부위. 땅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신체 부위. 온몸의 무게를 지탱해 주는 신체 부위. 가만히 있을 때도 있지만 주로 어디론가 가는 신체 부위. 그것이 바로 발이다.

 

그런 발이 "고울' 수가 없다. 발은 '미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발이 밉다고 사람들이 미운가, 아니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은 밉다. 그러나 그의 몸짓은 아름답다. 마찬가지다. 발이 미울수록 삶은 아름다울 수 있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발이 자신의 몸을 통해 삶을 아름답게 유지하는 것이다. 낮은 것들에 축복이 있으라. 반면 손은 높은 곳에 있다. 손을 위로 치켜들 때 손과 발은 가장 멀리 있게 된다. 손으로는 땅이 아닌 공중에 하늘에 떠 있다.

 

발이 고정되어 있다면 손은 자유롭게 움직인다. 시인은 바로 손이다. 시인이 바라보는 세계는 발이다. 그런 발의 세계, 추악한 세계, 비루한 세계일 수 있지만, 아니다. 그런 세계는 아름답다. 전체적으로 삶은 아름답다.

 

시인은 그것을 안다. 발과 손의 거리를.

 

 

  발이 미운 남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나의 무용수들, 나의 자랑.

 

  발끝에 에너지를 모으고 있었다. 나는 기도할 때 그들의 힘줄을 떠올린다.

 

  그들은 길다. 쓰러질 때 손은 발에서 가장 멀리 있었다.

 

김행숙, 이별의 능력, 문학과지성사. 2007년. 11쪽.

 

그래서 기도할 때, 흔히 기도할 때는 두 손을 모으게 된다. 발이 아니라 손에 집중하게 된다. 시인의 세계로 들어설 때 시인은 발을 떠올린다. '기도할 때 그들의 힘줄을 떠올린다'고 한다.

 

시인과 삶은 멀리도 있지만 '쓰러질 때 손은 발에서 가장 멀리 있었다'고 하지만 쓰러질 때 땅을 짚는 것은 손이다. 손은 결코 발에서 떨어질 수 없다. 그들은 같은 땅을 짚고 있다. 단지, 멀리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삶에서 떨어질 수 없다. 낮은 곳의 사람들을 가릴 수가 없다. 어떻게든 자신의 시로 불러들인다. 시에서 그들을 살아가게 한다. 아름답게.

 

하지만 시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멀다. 시를 통해 그들의 삶을 떠올리기는 힘들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도록 하는, 함께 느끼고 사는 공동체로 불러들이는 초대장이기는 하지만 열쇠말을 풀지 못하면 갈 수가 없다.

 

멀리 있는 것이다. 이 멂. 하지만 끝은 아니다. 끝이 아니기에 손이 땅을 짚을 때 다시 발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하여 우리는 쓰러져봐야 한다. 시인의 초대장을 읽을 수 있기 위해서는. 땅에 손을 짚어봐야 한다. 발과 같은 위치에 놓아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똑같을 수는 없다. 손과 발이 똑같은 땅을 짚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비슷한 위치에 놓일 수는 있다. 그것이 바로 시의 세계에 들어가는 길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한다.

 

길고 멀리 있지만 만날 수 있는 거리, 시와 현실, 시인과 독자, 시인과 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 시를 통해서 하게 됐다.

 

김행숙의 초대장을 받고 제대로 읽어내지 못해 잔치집에 가지는 못했지만, 나만의 잔치, 내 스스로 자족하는 잔치, 이 '발'이라는 시로 한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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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연가 - 그때 그 시절... 노래와 함께 걷는 서울의 추억 서울의 풍경들
이영미 지음 / 예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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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이 쓴 "서울은 깊다"라는 책이 자꾸 생각났다. 서울이 얼마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도시인지를 역사학자의 눈으로 보여준 책이 "서울은 깊다"라면, 이 책은 대중예술을 연구하는 사람답게 노래로 서울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서울이라는 공간에 켜켜이 쌓여 있는 역사, 문화, 삶을 노래를 통해서 다시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고 있으니, 한 장소를 이루고 있는 것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장소에는 사람과 시간과 온갖 유형, 무형의 것들이 모두 함께 하고 있다. 그것들이 동시에 존재하든 시간 순서를 두고 존재하든 한 장소에 존재함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장소에서 이런 시간성과 다양성을 발견하는 것 그것은 그 장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은 서울토박이들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이 책의 저자가 강북에서 태어났고 자랐지만, 지금은 지방에 살고 있듯이, 강남에서 태어나 강남에서 자라고 강남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물론 존재하겠지만, 이들에게는 왠지 '토박이'란 말을 붙이기가 꺼려진다.

 

토박이란 말에는 그 말에 따르는 어떤 역사, 깊이, 문화, 사람들이 함께 하기 때문인데... 어쩌면 '토박이'란 말에는 촌스러움이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들에게도 서울은 고향이다. 빌딩 숲과 자동차 흐름과 콘크리트만이 이 주된 기억으로 남을지라도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에게는 이곳은 고향이다. 비록 '토박이'란 말을 잘 쓰지 않게 되더라도.

 

'토박이'들이 사라져가면 장소의 깊이도 더 깊어지지 않는다. 그 깊이에 머물다가 자꾸 채워져 깊이가 사라지게 된다. 그런 생각이 드는 강남이다.

 

이런 반면에 강북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도 같은 서울임에도 '토박이'란 말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저자인 이영미 역시 비슷하리라 생각하고.

 

1950-60년대쯤에 강북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아파트나 빌딩숲은 친숙한 공간이 아니다. 이들에게는 골목, 흙, 개울, 한옥이 친숙한 공간이었다. 이 공간들이 지금의 강남처럼 변해가는 과정을 겪은 세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서울토박이란 말을 붙일 수 있는지도 모른다. '

 

강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골스러움, 촌스러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과거의 일에 불과하고.

 

이 책에는 일제강점기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서울을 노래를 통해 살펴보고 있다. 서울이 어떻게 노래에 등장했고, 어떻게 변모해갔는지를 대중가요를 중심으로 살피고 있다.

 

놀라움의 대상이었던 서울이, 외국 취향의 욕구를 대변했던 서울이, 반대로 그것을 성취하자 이제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전원생활을 꿈꾸는 서울생활로 바뀌어가더니, 어쩔 수 없는 서울의 모습, 서울 생활의 환희를 보여주는 노래들이 나오다가, 서울의 복잡한, 살기 어려운 모습까지도 보여주는 그런 노래의 변천사.

 

대중가요(민중가요도 가끔은 나오지만 대중가요에서 다룰 수 없었던 내용을 이야기할 때만 나온다)를 통해 사람들의 의식과 욕망이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일종의 미시사라고 할 수 있는데, 대중가요를 중심으로 서울의 깊이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수가 있다.

 

여기에 시대순으로 서울을 노래하는 노래들을 소개하고 있기에 서울의 변화와 사람들의 생활양식의 변화, 그리고 노래에 나타나는 의식의 변화를 함께 살펴볼 수 있어서 좋다.

 

역시 서울은 깊다. 건축적으로 서울을 살펴도 그렇고, 역사적으로 살펴도 그렇고, 이렇게 노래로 서울을 살펴도 그렇다. 이 깊이가 서울을 좀더 살기 좋은 장소로 만들었으면 더 좋겠는데... 서울의 깊이를 알면 함부로 깊이를 없애는 정책을 펴지는 않을테니, 그런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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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 치유 식당 - 당신, 문제는 너무 열심히 산다는 것이다 심야 치유 식당 1
하지현 지음 / 푸른숲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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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 관한 책. 그렇다고 심리학을 전문적인 용어로 설명하고 있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빌려 심리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심리학에 관한 책이라기 보다는 심리 치유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상처 하나쯤은 있다고 했지만, 이 상처는 누구나에게 있지만 자신에게는 유일무이한 상처다. 남과 비교할 수 없는 너무도 아픈, 혼자서는 이겨내기 힘든 그러한 상처다.

 

상처가 무늬가 되고, 그것이 아름다움이 되어 삶을 더욱 다채롭게 한다고 하지만, 정작 상처받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움이나 무늬가 아니라 아픔일 뿐이다. 견디기 힘든 아픔, 이 아픔 속에서 헤매다 보면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상처받은 자신을 보듬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상처는 곧 아물게 되고, 아문 상처는 무늬로 남아 삶의 결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살 만하다고 말하게 된다.

 

살 만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상처를 이겨냈을 때다. 상처 속에서 헤맬 때, 허우적 거릴 때는 살 만하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누구나 지니고 있는 상처지만, 그 상처를 자신만 지니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자신을 객관화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을 객관화할 수 없을 때 그때가 가장 힘들다. 자신에게서 조금만 거리를 두어도 별 것 아닌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닌데 할 수 있지만, 이 거리가 쉽게 생기지는 않는다.

 

거리를 두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것이 정신과 의사든, 상담치료사든, 가까운 친구든, 가족이든 누군가가 곁에 있다고 느끼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게 된다.

 

가장 좋은 방법, 함께 하는 것, 특히 함께 무언가를 먹는 것, 그것이 말 그대로 식구(食口)다. 그런 식구들이 모일 수 있는 곳 바로 식당이다.

 

특히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저녁이고, 그러므로 이 책 제목인 심야치유식당은 마음을 다스리는 장소와 시간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심리학 책이면서 소설의 형식을 취했기에 그냥 소설을 읽는다는 기분으로 읽어도 좋다. 다양한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해도 좋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치유를 하는 주인공 철주에게 감정이입을 해도 좋다.

 

흔히 상처받은 사람들은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거나 삶에서 실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에 등장하는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열심히 살아왔던, 그것도 너무 열심히 살아왔던 사람들이다.

 

너무도 열심히 살아왔기에 앞만 보고 달릴 수밖에 없었고, 이들에게 멈춤은 뒤처짐, 낙오를 의미했다. 조금이라도 쉬면 죄책감에 시달리며, 불안감을 느끼고 계속 자신을 채찍질 하던 사람들.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 아닌가. "열심히 살아온 당신, 떠나라!"는 광고가 있었는데, 떠날 수 없는, 떠나면 무언가 도태되는 듯한 느낌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보통 우리들 모습이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을 때 놓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다. 바쁘게 살아왔기에 식탁에 앉아 함께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시간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한데, 이렇게 지내다 문득 결핍된 자신, 상처받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삶에서 무기력을 느끼고, 난 뭔가,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는가 하는 생각에 무기력,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는 열심히 살아왔던 보통 사람들.

 

이들에게는 달리는 것만큼이나 멈춤이 중요하다는 것, 삶의 의미를 찾은 행위만큼이나 삶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지 않고 멍 때리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 그것을 이 책에서는 여러 등장인물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삶에서 어떤 의미만을 찾으려고 하는, 오로지 어떤 목표만을 향해 달리던 사람들이 갑자기 삐끗하면서 삶의 회의에 빠지는 것, 슬럼프에 빠지는 것, 자신도 그 원인을 모르고 해결책을 모르는 상태.

 

이때 치유법은 간단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자신이 하지 않았던 일을 하는 것, 자신을 놓아주고 그냥 지켜볼 수 있는 것. 혼자 하긴 힘들다. 그래서 지지해주고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 식당에 들렀던 사람들, 이들에게는 함께 해주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먹어주고 함께 여행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치유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멍석을 전직 정신과 의사가 주도했기에 가능했겠지만.

 

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등장인물 중 어느 한 사람에게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사람에게서 자신을 발견하면 자신의 상처를 객관화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등장인물들이 심야치유식당에서 이렇게 치유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읽는 사람도 치유를 받게 된다. 이게 이 책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다 상처 하나쯤은 있다. 누구나 있는 상처가 자신에게는 유일무이한 상처이기도 하지만, 그런 상처를 나만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 깨달에서 우리는 상처를 극복하게 되는 출발점에 서게 된다.

 

그런 출발점에서 우리를 앞으로 더 나아가게 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기도 하고. 너무도 열심히 살아온 당신, 이제는 잠시 멈춰서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쉬어라. 그게 바로 삶의 결에 아름다운 무늬 하나를 더하는 길이다.

 

당신에게 어떤 상처가 발현되기 시작한다면 우선 쉬어라. 멈춰라. 그러라는 신호다. 이 책은 그 점을 너무도 잘 알려주고 있다. 예전에 읽었던 "일곱 개의 방"과 같은 형식을 지닌 심리 치유 소설의 형식을 띤 심리학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읽기만 해도 좋다. 이런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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