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것이 카프카 - 99가지 습득물
라이너 슈타흐 지음, 정항균 옮김 / 저녁의책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아마도 카프카에 관한 책 중에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일 것이다. 카프카라는 어려운 작가를 99개의 습득물이라는 제목으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주고 있으니.

 

그간 잘 알려진 카프카의 모습을 만날 수도 있고, 처음으로 만나는 카프카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99개의 짤막한 글로 이루어진 이 책은 카프카를 그렇게 어렵게 여기지 않게 만든다.

 

이 점이 이 책의 좋은 점이다. 사실 카프카의 작품을 그냥 읽으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잘 알 수가 없다. 가장 많이 알려진 "변신"만 해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니 말이다. 게다가 "소송"이나 "성"이라는 소설을 보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머리를 싸매고 무슨 뜻인지 파악하려 해도 안개 속을 헤매듯이 그냥 헤맬 뿐이다. 그러니 카프카는 어렵다.

 

그렇다고 그를 읽지 않을 수도 없다. 그는 우리에게 어떤 넘어야 할 산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런 산을 넘을 수 있는 방법, 준비를 철저히 하고, 우선 쉬운 길부터 가는 것.

 

그 쉬운 길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99편의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모여 카프카란 사람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신비롭고 고뇌하는 천재라는 생각을 하게 한 카프카가 부정행위도 저질렀음을, 그리고 학교 성적도 그리 우수하지 않았음을 이 책에서 말해주고 있으며, 그가 당시의 문화에 따라 사창가에도 드나들었음을 알 수 있다.

 

카프카란 인물이 어려운 작품을 썼다고 하지만 그 역시 동시대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고, 그래서 그가 사업을 하기 위해 여러 발명품에 대한 조언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들이 이미 시판되고 있었던 현실, 도박장에 가서 돈을 날렸던 사실, 그가 의사들을 믿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글들이 이 책에 실려 있다.

 

카프카란 인물이 시대와 동떨어진 어떤 신비로운 인물이 아니라 동시대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고 숨쉬며 살아갔던 사람임을 잘 알 수 있게 해주는데, 어떤 소녀를 위해 이야기를 꾸며내는 모습도 이 책에 잘 나타나 있다.

 

어쩌면 이것이 카프카, 그렇다. 카프카는 단순한 사람은 아니다. 그는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모여 그를 만들어냈다.

 

그런 그를 99가지의 습득물을 통해 만날 수 있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친숙한 카프카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이 책은 제공해주고 있다. 그 점이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들은 말한다. 박근혜가 가니 세월호가 왔다고. 하지만 아직 다 오지 않았다. 아직도 가족 곁에 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모두 왔을 때 그때서야 세월호가 왔다고 할 수 있다.

 

  정말 가슴이 먹먹해지는 일이다. 인공지능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제4차산업이 어떻다느니 하면서, 과학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했다고 자랑하면서 아직도 이들이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니.

 

  이건 정말로 책임방기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있으나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있으니, 이들이 모두 우리 곁에 왔다고 할 수 있으려면 책임을 반드시 지워야 한다.

 

  그래야 그때서야 이들이 집에 갈 수 있고, 집에서 비로소 자신이 가야 할 곳으로 갈 수 있다. 그때까지는 아직 집에도 올 수 없게 된다.

 

김해자의 시집 제목이 "집에 가자"다. 제목에서 딱 세월호가 연상됐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세월호의 아픔이다. 우리 가슴에 진한 멍으로 남을, 그런 아픔.

 

그래서 시집 제목은 "집에 가자"지만 이런 제목을 지닌 시는 없다. 이 제목이 된 구절은 '피에타'란 시에 나온다.

 

피에타... 죽은 예수를 안고 슬픔에 잠겨 있는 마리아.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지만, '피에타'란 말에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이 온전히 담겨 있다.

 

     피에타

 

인천항에서 낯선 이 포구까지

오는 데 수십 일이 걸린 데다

그 사이 몸은 다 식고

손톱도 다 닳아졌으니

삼도천이나 건넜을까 몰라

구조된 것은 이름, 이름들뿐

네 누운 이곳에

네 목소리는 없구나

집에 가자 이제

집에 가자

 

김해자, 집에 가자, 삶창. 2015년 초판 2쇄. 66쪽.

 

이렇게 집에 간 사람들, 이들의 넋이 과연 제 자리를 잡았을까. 아니 이들의 넋은 아직도 이곳을 떠돌고 있다. 함께 가야 할 사람들이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세 해가 지난 지금도 이들은 아직 집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집에는 가야 그 다음 영혼의 길로 갈텐데, 집에도 가지 못하고 있으니, 제발 집에 가게 해달라고 외치는 가족들의 통곡이 여전히 우리들 가슴을 후비고 있다.

 

이제는 제발 집에 가게 해야 한다. 그래야 이곳을 떠도는 영혼들도 이들과 함께 갈 수 있지 않겠는가.

 

시인의 '집에 가자'는 외침이 가족의 외침을 대변하고 있는데, 이 집에 가자는 말, 여전히 집에도 못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간절한 외침으로 들린다.

 

'집에 가자 이제 / 집에 가자'고... 그렇게 집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우선 집에 간 다음에, 그 다음에 책임 규명하고, 책임을 져야 할 사람에게는 반드시 책임을 지게 하라고...

 

그때서야 세월호는 우리에게 온 것이 된다. 그때서야 이들이 집에 갈 수 있게 된다. 그때까지는 여전히 시인의 외침이 울려 퍼져야 한다.

 

'집에 가자 이제 / 집에 가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5-19 0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9 0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표현의 기술
유시민 지음, 정훈이 그림 / 생각의길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 국민이 글을 쓰는 시대가 되었다. 긴 글이 아니더라도 페이스북이나 아니면 카카오톡과 같은 매체를 통해서 자신의 주장을 글로 쓰거나 (분명 말이 아니라 글이다. 이제는 말의 시대가 아닌 글의 시대가 되었다. 이 글에서 유시민이 주장하듯이) 어떤 글에 대해서 댓글을 다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이렇게 모두가 글을 쓰지만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지닌 사람은 별로 없다. 자신들의 글쓰기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거나 어떤 글을 쓴다는 일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기도 한다. 특히 긴 글을 쓸 때는 더 큰 두려움을 지니고 아예 시도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긴 글에 대해서 두려움을 지니게 된 이유는 입시나 취업에 필요한 자기소개서를 쓰는 데서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써야 합격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데서부터 두려움은 시작된다. 왜냐하면 글쓰기의 과정을 생각하지 않고 결과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과 우선주의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밖에 없다. 입시나 취업이나 모두 소수만이 합격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목적 위주의 글쓰기는 사람들을 주눅들게 만든다. 그리고 글쓰기에서 멀어지게 한다.

 

이런 자기 소개서를 잘 쓰고 싶으면 이 책 4장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를 읽어 보라. 분명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글을 안 쓰고 살 수는 없는 세상이다. 어떻게든 우리는 글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세상에 살기 때문이다.

 

어차피 글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잘 쓰도록 해야 한다. 최소한의 글쓰기 기술을 익힐 필요는 있다. 최소한의 글쓰기 기술이다. 이를 이 책 제목 대로 하면 '표현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은 누구나 다 자신을 표현하고 살고 자신의 의견을 남에게도 알리고 남들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지니기를 바라니까 말이다. 이를 글로 표현하든 말로 표현하든.

 

여러 책을 낸 유시민이 '표현의 기술'이라고 해서 글쓰기의 기술을 보여주는, 아니 기술이라기보다는 글쓰기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쓰면 좀더 편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다.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를 예로 들어 적절한 표현 기술을 알려주고 있다. 꼭 이대로 따라하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은 이렇게 썼고, 이렇게 생각한다고, 그 생각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하든, 따라하지 않든 그것은 읽은 사람 마음이다. 다만 읽다보면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어느 정도는 없앨 수 있다. 그만큼 친절하고 자세하게 글쓰기 표현 기술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

 

자신을 작가라고 불러달라는 유시민의 말처럼, 작가는 읽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글을 쓴다고 하는 그의 말처럼, 읽는 사람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표현의 기술이라는 책으로 자신의 글쓰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딱딱하고 기계적인 글쓰기 책이 아니라, 쓴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는 그런 글쓰기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책은 유시민 혼자만의 책이 아니다. 만화가 정훈이와 함께 한 책이다. 유시민의 글 중간중간에 정훈이의 만화가 글의 내용과 어울리게 들어 있다. 그 점도 이 책이 지닌 표현의 기술이다.

 

또 뒷부분은 만화가 정훈이의 표현의 기술이다. 어떻게 표현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보다는 자신이 어떻게 해서 만화가가 되었나 하는 점을 중심으로 만화를 그려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의 표현의 기술이다.

 

둘이 함께 또 따로 만들어간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표현의 기술이라는 제목보다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마음을, 진심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표현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글쓰기는 기교가 아니다. 자신의 마음을 담을 표현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 표현을 찾아내 그것을 글로 남에게 전달하는 것이 바로 글쓰기다. 그런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고 진심이다. 이런 진심이 이 책에서는 잘 느껴진다.

 

진심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 그것이 바로 표현의 기술이니... 진심은 그렇지 않은데 참으로 표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른들뿐만이 아니라 학생들도 자신의 마음을 적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예전에는 수줍어서 그렇다고 이해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아니다. 서투른 표현, 마음과는 반대로 하는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딱 좋다.

 

아니 오해가 아니다. 상대방은 그 표현의 의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내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게 글을 쓰는 것, 내 마음을 진실되게 전달할 수 있는 글을 쓰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표현의 기술'이다.

 

이 책은 그 점을 명확하게, 글로, 만화로 잘 보여주고 있다. 

 

덧글

 

의문 : 48쪽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이란 책에서 두 가지 도덕법을 밝혔는데, 다들 아시는 정언명령 1번과 2번입니다. 146쪽 이것이 <순수이성비판>에 있는 정언명령 1번입니다.ㅡ 라고 되어 있는데,

 

 내가 알기로는 정언명령, 가언명령은 <순수이성비판>이 아니라 <실천이성비판>에서 칸트가 주장한 내용이다. 뭐 실천이성비판이 순수이성비판의 부록 쯤 된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내가 갖고 있는 책에 작은 제목으로 -부(附). 순수이성비판-이라고 되어 있으니.

그래도 보통은 정언명령은 <실천이성비판>에서 나온다고 하니까 이 점은 고쳤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담 풍 세상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걷거나 뛰지 마시고 반드시 황색선 안쪽에 서서 손잡이를 꼭 잡으시기 바랍니다


  가만히 서 있는 사람들을

  밀치고 꼭 걸어 올라가는 사람들

  전철이 도착한다 하면

  쿵쾅 쾅 쿵쿵쿵

  우르르 뛰어간다

  방송이 무색하게 듣지 않는다

  대부분 어른이다


  움직이면 배가 전복될 가능성이 있으니 다른 방송이 있을 때까지 제 자리에서 가만히 기다리십시오


  배가 기울자

  갑판 위로 오르려 하는

  사람들을 배 안으로

  불러들이는 방송

  살기 위해 가만히 있어

  죽어갔던 말 잘 듣는,

  교육 잘 받은 학생들


  가만히 있어야 할 땐

  제멋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정작 움직여야 할 땐

  도리어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이게 어른들의 훈장질이다

  저는 계속 바담 풍 바담 풍 하면서

  학생들이 따라 바담 풍 바담 풍 하니

  역정을 내며 바담 풍 하란 말야

  바담 풍이 아니라 바담 풍!!


  우리 세상

  참

  바담 풍 세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배우는 법을 배우기
시어도어 다이먼 지음, 원성완 옮김 / 민들레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을 공부한다고 한다. 학교에만 있는 시간도 어마어마한데,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원으로 가 또다시 수업을 받는다. 여기에서 끝나면 좋겠는데, 집에 돌아와서는 숙제라든가, 복습 또는 예습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공부를 한다.

 

정말로 엄청나다. 하긴 4당5락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것도 옛말이다. 예전에 이 4당5락이라는 말은 고3에나 적용되는 말이었는데, 요즘은 중학생들에게도 이런 말이 적용이 되니, 학생들은 너무도 긴 시간을 공부에 투여하고 있다.

 

그러면 이렇게 오랜 시간 공부한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성적은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공부를 잘하지는 못한다.

 

결과 중심의 공부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 문제를, 원리를 이해했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몇 점을 받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깨우침 없이 그냥 외우기만 하는 현실이다. 그래서 평균이 90점이 넘는 학생들도 기본적인 것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문제를 조금만 바꾸어도 이해를 하지 못해 틀리는 경우도 많고, 긴 시간을 공부한다지만 그것은 책을 붙들고 앉아 있을 뿐이고, 머리 속으로는 다른 행위를 하는 경우가 더 많기도 하다. 한 마디로 시간 때우기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공부를 배움으로, 권리로 여기지 않고 노동으로, 의무로 여기기 때문이다. 마지못해 할 뿐이다. 여기에 성찰은 없다. 오로지 더 집어넣어야 할 뿐이다. 성적이 떨어지면 더 많은 시간을 더 많은 참고서와 문제집에 할애한다.

 

그냥 밀어넣는다. 오답노트? 왜 틀렸는지 고민하고 해결하기보다는 그냥 틀린 문제 적어놓는다. 다음에 또 틀린다. 또 적는다. 또 푼다. 또 틀린다. 또 푼다. 이번엔 맞는다. 왜? 원리를 이해해서? 아니, 그냥 문제 풀이까지 외워서이다.

 

그러니 비슷한 문제가 나오면 맞힐 수가 없다. 외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우리나라 교육, 학생들의 현주소다. 배움이 없는 오로지 결과만 있는 공부의 결과.

 

이 책은 그 점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물론 학생들의 성적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배우는 법을 배우기'라는 제목으로 노래 부르기, 운전하기, 테니스 치기, 피아노 연주하기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모두 우리의 신체활동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의식적으로 잘하려고도 해도 자신의 몸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더 좋아지는 것이 불가능한 활동들이다.

 

무엇보다 맹목적으로 연습하는 것보다,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것보다, 한 발 물러서서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무언가를 더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동작을 덜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데, 우리가 결과를 의식하는 순간 몸이 경직되고, 이는 나쁜 습관으로 굳어져 더이상의 발전이 없음을 여러 사례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무언가를 잘하려면 결과에 치중하기보다는 과정에 충실해야 한다. 과정을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잘게 쪼개야 한다. 즉, 광범위한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적으로 달성가능한 목표, 그것도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는 목표들을 하나하나 순차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체를 잘 이해하고, 그 신체에 맞는 작은 과정들을 하나하나 해나가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굳었던 나쁜 습관들을 하나하나 해체해 가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레 자신의 몸이 변하게 되고, 이를 통해 하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한다. 처음부터 커다란 목표를 정하고 그에 맞추려 하는 것은 오히려 일을 망친다고 하는데...

 

지금의 성적중심주의 교육에서는 학생들이 배움에 도달할 수가 없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찾기보다는 몇 점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도 이해할 수 없고, 몇몇을 빼고는 목표에 도달할 수도 없다. 참 지당한 말인데... 그런데 우리나라 학생들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답답한 마음이 든다.

 

우선 자신을 경쟁의 대열에서 빼내어야 하는데, 주변에서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또 그렇게 할 시간도 별로 없다. 학생들이 배우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유가 필요하다.

 

생각해 보라. 대학생이 되어서도 학비를 대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고, 그 때문에 공부할 시간이 없어 간신히 외워서 학점을 따는 대학생들도 많은데, 이들도 자신의 배움을 스스로 되돌아보며 선택하고 노력하기가 힘든데...

 

꽉 짜여진 일정 속에서 공부를 하는 중고생들은 자신의 성찰하면서 배움에 대해 고민하기는 더 힘들다. 이들에게는 두 달에 한 번 다가오는 시험, 그리고 점수, 입시가 중요할 뿐이다.

 

그렇게 지내왔다. 그렇게 이야기해 왔다. 그러니 배움이 아니라 성적을 받기 위한 노력만이 있을 뿐이다. 이 점을 저자도 안타까워 하는 듯하다. 비록 성적이 아니라 신체활동과 관련된 배움을 이야기했지만, 수학이나 과학, 국어, 영어 과목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이 배움에 실패하는 경우는 학생들 책임도 있지만 가르치는 교사들 책임이 더 크다는 말. 교사들 역시 점수가 전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학생들이 잘 배우지 못한 결과를 분석하고, 학생들이 배움에 다가설 수 있게 구체적인 과정을 만들지 못했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옳은 비판이다. 이 비판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교육활동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몇몇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교육활동으로 실패한 많은 학생들에게 주목해야 한다는 말 절절하게 다가왔다.

 

그렇다면 결국 배움은 학생들도 노력해야 하지만 교사들도, 가르치는 사람들이 더 노력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학생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는 통찰력을 지닌 교사, 그런 교사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런 교사들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그럼에도 노력하는 교사들이 있음을, 이런 책이 번역되어 나오는 것은 학생들의 욕구뿐만이 아니라 교사들의 욕구도 반영된 것이라 생각하니, 아직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위안으로 삼는다.

 

이제 다시 배움에 대해서, 정말로 배우는 법에 대해서 배워야 하지 않을까, 이 말을 거꾸로 하면 가르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읽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