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까지 인류는 지구상에서 최강자로 군림해 왔다.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해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을 자신들에게 종속시켰다.

 

야생에 살던 짐승들을 길들여 가축으로 만들고, 이제는 반려동물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게 만들기도 했으니, 인간의 능력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인간들에게 남은 것은 이제 불멸, 행복, 신성이라고 한다. 그렇다. 지구상에서 가장 최강자인 인간이 죽음이라는 존재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존재가 된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다. 인류는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해왔다.

 

당장은 죽음을 극복해 불멸로 가지는 않겠지만 엄청나게 늘어난 평균수명을 보면, 또 유전자에 대한 연구를 보면 조만간 인간은 불멸로 향해 가지 않을까 하는 예측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죽지 않는 존재, 불멸의 존재는 그냥 살아가기만 해서는 안 된다.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살아가야 한다. 여기에 행복이란 무엇일까? 도대체 행복의 객관적 조건은 존재할까? 살아가는 존재들은 모두 행복을 추구하지 불행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행복은 기분좋음일텐데, 이 기분좋음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의식인가? 마음인가? 마음과 의식은 다른가?

 

그런데 의식이나 마음이 존재하는가? 과학자들은 이것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인류는 마음이, 의식이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한다. 고유한 특성이기는 하지만 다른 동물들에게도 이러한 마음이 있다는 연구가 속속 나오고 있으니, 모든 생명체들에게는 이러한 마음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만이 아니라 생명체들, 유기체들에게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요소가 마음이라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 하라리는 과학자들의 연구를 추적한다. 마음, 이것은 알고리즘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여러 존재들이 얽혀 어떤 상황에서 작동하게 하는, 아직은 우리가 밝혀내지 못했지만, 유기체든, 무기체든 알고리즘에 의해 발생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의 마음을 치료하는 많은 약들을 보라. 이것이 마음은 알고리즘이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알고리즘, 이것이 바로 인간의 신성을 확보하는 길이 된다. 알고리즘을 이해하면 인간은 창조를 할 수 있다.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를. 이 존재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도 있다. 지금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와 있지 않은가. 자율주행차부터 다른 인공지능들까지...

 

바둑에서도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겼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이세돌뿐만이 아니라 세계 1위인 중국의 커제까지도 압도적으로 이겨낸 것이 알파고라는 인공지능이니, 이제는 알고리즘이 우리들의 삶에 더 가까이 다가왔다고 할 수 있다.

 

이 알고리즘을 창조한 인간들, 그들은 신의 위치에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가정한다고 해도, 인간은 곧 신을 배반하고 자신들의 자리를 찾았다. 그 자리에서 신을 제거하려고 했다. 이제 신이 된 인간이 알고리즘을 창조했다? 그렇다면 다음 길은?

 

알고리즘이 인간을 신의 위치에서 내리고 자신이 신이 되는 것?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수많은 정보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이제 그 많은 정보를 읽어내고 해석해내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정보들이 많아질수록 인간은 다양한 분야가 아닌 특정 분야에서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살아왔기 때문이다.

 

전문화, 파편화 된 것이 현대 사회 아니던가. 중세 때 의사라고 하면 모든 질병에 대해서 공부하고 치료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지금 의사는 어떤가? 수많은 전공으로 나뉘어져 있고, 자신의 전공이 아니면 잘 알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지 않은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르네상스적인 인간은 이제 필요없는 세상이 되었는데, 알고리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그렇게 관심을 가질 수도 없을 뿐더러, 할 수도 없다. 그많은 정보들을 어떻게 해석한단 말인가?

 

결국 그 해석은 기계에 맡길 수밖에 없다. 데이터교라고 나오는 신흥종교를 인간이 창시하지만 데이터를 분석하고 해석하고 행동하는 것은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진 기계일 수밖에 없다. 이 기계들이 자기들끼리 연락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게 된다면, 인간은 어느 자리에 있을 것인가?

 

인간이 밀어낸 신처럼 알고리즘의 저편에만 존재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는 지금 진화하고 있지 않은가.

 

"호모 데우스"라는 책 제목이 인간이 신이 된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 인류를 또 다른 천국으로 이끈다고 생각했는데, 읽어가면서, 또 끝부분으로 가면서 호모 데우스는 인류를 천국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지옥으로 이끌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됐다.

 

수많은 영화, 책에서 보고 읽었던 디스토피아의 모습, 그것을 창조한 호모 데우스, 어쩌면 우리는 이제 영화나 책이 아닌 현실에서 바로 그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알고리즘의 세계로 갈 것인가, 아님 다른 세계로 갈 것인가 하는.

 

이 책의 저자인 하라리는 말한다.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대개 현시점의 이데올로기와 사회 시스템에 얽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현시점에 우리가 처한 조건화의 기원을 추적하는 것은 그 얽매임에서 벗어나 다르게 행동하고, 미래에 대해 훨씬 창의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의 목표는 단 하나의 결정적인 시나리오를 예측함으로써 우리의 지평을 좁히는 대신, 지평을 넓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스펙트럼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거듭 강조했듯이, 2050년에 직업시장, 가족, 생태계가 어떤 모습일지, 어떤 종교적, 경제적 시스템과 정치구조가 세계를 지배할지 실제로는 아무도 모른다. (542-543쪽)

 

아무도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수많은 정보들에서 '무엇을 무시해도 되는지 안다(543쪽)'는 것이 오늘날의 힘이라고 저자가 이야기 하듯이 무시해야 할 것과 받아들여야 할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적어도 우리 인류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기 때문이다. 호모 데우스가 될 것인지, 호모 사피엔스로 남을 것인지. 갈림길에서 이미 들어섰다고 하더라고, 충분히 돌아올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그런 갈림길.

 

하지만 역사의 흐름은 너무도 거대하고 도도해서 개인이 바꿀 수가 없다. 개인은 그 흐름에 휩쓸려 갈 뿐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바로 그렇다. 아무리 우리가 고민을 한다고 해도, 인류는 이미 호모 사피엔스의 단계를 넘어 섰다. 저자도 인정한다. 인류는 호모 데우스가 되고 있다.

 

갈림길이 아니라 이미 선택을 하고 그 길에 들어섰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호모 데우스의 길로 들어선 인간... 이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하면서 책을 맺는다.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2.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544쪽)

 

우리가 무시해서는 안 될 질문들이다. 이 질문들에 대해 고민하고 논의해야 하는 때, 많은 사람들이 이 고민에 대해 논의하면서 무언가를 찾아가야 하는 때,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더 깊이 들어가기 전에.

 

어렵다면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간 저자다. 이것이 바로 재주다. 우리 인류의 모습을, 미래의 모습을 이토록 방대한 내용을 쉽게 전달해 주다니...

 

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이때에, 호모 데우스, 인류의 미래 모습,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 또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7-23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3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름호를 받아보았다. 온 지는 좀 됐지만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많은 이야기들이 실려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번 호는 '민주주의'에 대한 글이 많았다.

 

그만큼 우리는 민주주의를 갈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자는 촛불시위가 민주주의의 모습이라고도 했고, 촛불시위로 박근혜를 탄핵하고 새로운 정권을 탄생시킨 것이 민주주의의 성공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제도가 하나도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이나 집권세력이 바뀌었다고 민주주의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 이번 호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적어도 선거제도의 개혁만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헌법을 개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국회의원을 제대로 선출하지 않으면 어떤 제도도 제대로 안착되지 못할테니 말이다. 이번에 대통령이 바뀐 다음에도 그전에 뽑힌 국회의원들이 제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과거에 연연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이 점만 보아도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시급한 문제인지 알 수 있다.

 

이런 민주주의에 대한 글들과 <오늘>을 이야기하는 꼭지에서는 '핵 없는 세상, 사람 사는 세상'(박혜령)이란 글로 영덕에서 핵발전소 유치 과정에서 그것을 주민들이 주민투표로 막는 과정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지금 원자력 발전소 건설 중단 조치로 지역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생존이 걸린, 생활이 걸린 문제이니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깊이 있는 논의를 해야 할 것이고, 원전은 핵발전은 결코 우리의 생존에도 생활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천천히 읽으며 여러가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삶창' 읽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밤의 일제 침략사
임종국 지음 / 한빛문화사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임종국 선생은 "친일문학론"으로 내게 알려진 분이다. 다른 사람들이 연구를 등한시 하고 있을 때 그는 방대한 자료를 모아 친일행위를 한 문인들의 행적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아주 오래 전에.

 

그가 쓴 책이 밤의 일본 침략사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침략을 했는데, 그것도 모자라 어두운 면에서도 침략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술과 계집이다. 일본 군인들만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일본 게이샤들까지도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사실.

 

일본인들이 조선에 거주하는 시간과 인구가 늘수록 일본의 향락문화 역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것. 이들은 이러한 향락문화를 한껏 누리면서 그곳에서 조선 침략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는 것.

 

일본인들만이 이랬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우리나라 친일파들이 함께 놀아났으니... 한 나라가 망해갈 때는 경제, 군사, 정치만이 아니라, 이렇게 문화적으로도 망해가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 수가 있다.

 

일제시대에 통감부터 시작하여 총독까지 시간 순서대로 그들이 우리나라에 들여온 퇴폐문화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는데...

 

기생집부터 요정까지 이들 문화가 어떻게 기생하게 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일제말기로 가면 우리나라 여성들이 강제로 끌려가 죽음을 당하게 되는 그런 사실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책 하나만으로도 일본이 우리나라를 위해서 조선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서 밤의 문화까지도 조선에 들여온 것이다.

 

일제에 의해서 우리나라가 근대화되었다고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밤의 문화를 보면서도 과연 일제가 우리나라를 근대화시켰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들은 멀다면 먼 조선에서 자신들의 향락을 마음껏 누리면서 권력을 휘둘렀던 것이다. 그런 권력과 향락의 면들이 조선에 온갖 밤의 문화로 나타났던 것이고...

 

정치, 경제, 군사적인 면만이 아니라 이렇듯 문화적인 면에서도 우리를 침략한 것이 일제라는 것, 그것을 명심해야 한다. 단지 총만으로 한 민족을 정벌할 수는 없다. 그들은 퇴폐문화를 들여와 사람들의 정신을 마비시키려 한 것이다.

 

조선을 거쳐간 총독들과 관료들이 어떻게 이런 밤의 문화를 즐기면서 조선에서 생활했는지, 이 책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았기에 일제시대가 끝나고도 일본인들이 기생관광이다 뭐다 해서 우리나라를 찾은 적이 있지 않은가. 또다시 그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는 이런 역사를 알아야 한다.

 

알아야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일본의 군사, 경제적 침략에 대해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이런 밤의 문화에 대해서도 알고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역사이니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7-20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0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내지 않을 편지

-길


  길이 사람들을 이어주고 있단 말을 보고 혈관을 떠올렸습니다. 목숨을 이어주고 있는. 그러다 ‘들’이란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들’이란 여럿이고, 둘만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의미하기에 함께 걸었던 길이 당신과 나만의 길이 아니라는 것, 당신 발자욱 위에 얹혀진 수많은 발자국들에 당신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는 것, 하여 사람들을 이어주고 있다는 것이 당신이 떠나가고 내가 떠나올 수 있고 그 사이에 섬을 만들어 우리만이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길을 걸으며 함께 걷던 당신을 떠올립니다. 사람들이 지나간 그 길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자왕 형제의 모험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장편동화 재미있다! 세계명작 4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김경희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 창비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말괄량이 삐삐' 시리즈로 알게 된 작가다. 말괄량이 삐삐, 얼마나 우리의 동심을 자극했던지. 드라마로 보면서 삐삐의 행동에서 통쾌함을 느끼면서 어린 시절의 환상을 키워갈 수 있었다고나 할까. 보통 사람과는 다른, 독립해서 살아가는 그런 삐삐의 모습에서 말이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어린 시절에 읽지 못했다. 우리나라에 처음 번역된 것이 1983년이라고 하니, 꽤 오래된 책임에도 말광량이 삐삐만큼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에 "소년이 온다"의 작가 한강이 노르웨이에서 한 강연의 원고를 읽으며 이 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알게 되었다기보다는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한강의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소설. 어쩌면 이 소설에 나오는 형제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소년은 통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

 

읽게 되자마자 한 순간에 책의 끝부분에 도달했다. 세상에 이승에서 저승에 해당하는 낭기열라까지 가는데 순식간에 가듯이, 또 낭기열라에서 또다른 세상인 낭길리마로 가는데 순식간이듯이, 소설 역시 순식간에 읽힌다.

 

그만큼 흥미진진하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독재권력에 맞서 자유를 쟁취하는 모습이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자꾸 떠올리게 하고, 벚나무 골짜기 사람들과 들장미 골짜기 사람들이 함께 교류하며 잘 살다가 들장미 골짜기 사람들을 억압하는 텡일이라는 독재자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자꾸만 우리나라가 겹치게 되기도 한다.

 

자유를 다시 찾기 위해 나서는 사람들, 이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걸어야 한다. 목숨을 거는 일, 두려운 일이다. 주인공인 동생 칼은 이런 두려움을 느낀다. 아니, 형인 요나탄도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두려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이들은 나서야 했다. 특히 요나탄은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맨 앞으로 나서야 했다.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으므로.

 

동생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너무도 어린 나이 아닌가. 죽음을 앞에 두고 자유를 위해 자신을 던져야 한다는 것에는. 그럼에도 요나탄이나 칼은 이런 생각으로 싸움에 나서게 된다. 아니 자신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다.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법인데, 만일 그걸 하지 않으면 쓰레기처럼 하잘것없는 사람이 되는 거야." (230쪽)

 

그렇다. 사자왕 형제는 이런 생각으로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다. 이들은 하잘것없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소년이 온다"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죽음 앞으로 다가간 사람들이 나온다. 주인공 소년인 동호 역시 마찬가지다. 왜 두렵지 않겠는가. 그러나 거기서 물러설 수가 없다.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소년이 온다"를 읽고 영화 "화려한 휴가"를 다시 봤다. 도청에서 나갔다가 진압 전날 밤, 다시 도청으로 돌아오는 사람들. 죽을 줄 알면서도 다시 돌아와야만 했던 사람들. 남아야 했던 사람들.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폭도가 아니라고 절규하는 주인공.

 

그렇다, 이들이 남을 수밖에 없었고,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 폭도가 아니라고 절규하는 것, 그것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죽어가는 것, 이들의 선택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용기다. 사람다움을 잃지 않는 것.

 

이 소설의 주인공인 형제는 바로 이런 사람다움을 잃지 않으려 한다. 사람다움의 기본은 무엇인가. 바로 자유 아니던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자유. 그 자유를 독재자가 압도적인 물리력을 동원해 침해하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포기하지 않고 다시 되찾는 것. 되찾은 다음, 자신이 영웅의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용기 아니던가.

 

사자왕 형제는 그래서 '낭기열라'에 남을 수가 없다. 그들은 이제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 그곳은 '낭길리마'다. 형제는 그곳에서 평온한 삶을, 행복한 삶을 살 것이다. 그곳에는 독재자는 없으니까.

 

이 소설의 묘미는 우선 재미다. 재미있게 아이들이 읽을 수 있다. 읽으면서 두려움을 이겨나가는 칼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이 겪게 될 일을 미리 경험할 수 있다. 두려움 앞에서 누구나 떨 수는 있지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 두려움이 있지만 두려움을 인정하고 앞으로 한 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용기라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을 읽으면 앞으로 겪게 될 일에 해보지도 않고 미리 주저앉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무엇이 용기인지 알 수 있게 되니까.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렵지만,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테니까. 그래야 쓰레기같은 하잘것없는 삶을 살지 않게 될 테니까.

 

한강 덕분에 좋은 작품을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