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준 작품집 - 지만지 고전선집 282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현경준 지음, 윤송아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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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준'이라는 이름은 참으로 생소하다. 일제시대 얼마 되지 않는 소설가들을 적어도 이름은 들어보았다고 생각했는데, 현경준이라는 이름은 그 생소한 이름에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헌책방에서 현경준 작품집이라는 책을 보고, 살짝 들춰보니 일제시대에 소설을 쓴 작가다. 일제 후반기에 리얼리즘 소설을 쓴 소설가, 한국전쟁 때 종군작가로 참전했다가 전사했다고 한다.

 

비록 시대는 한참 지났지만 문학사에 이름을 올리는 작가니 한 번 읽어보자고 골라 들었는데... 두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한 편은 "탁류" - 사실 "탁류"하면 채만식의 탁류를 떠올린다. 그만큼 채만식의 "탁류"는 우리나라 근대문학사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다 - 다른 한 편은 "유맹(流氓)"이다. 

 

"탁류"는 짧은 단편으로 일제 말기 전향을 강요당하는 지식인들, 자신들의 위치를 읽은 지식인들의 모습에 갈등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고향에 돌아왔지만 이미 세상은 변했고, 친구들 가운데서도 변한 사람들이 많은 상황. 그럼에도 그 상황에 머무를 수는 없다는 자의식. 그렇게 갈등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짧막한 소설에 담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대였으리라. 그렇다고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부정할 수도 없었으리라. 과거는 과거, 현재는 현재라고 생각하고 살기에는 너무도 치열하게 살아왔으리라.

 

그 삶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변화를 추구하기엔 일제는 너무도 강고하다는 생각을 하고, 서서히 변해가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갈등도 했으리라.

 

그럼에도 굴복할 수 없다는 지식인의 자의식,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의지를 이 소설에서 볼 수 있는데...

 

채만식의 소설에서는 장편에서 순수하게 살고자 하는 주인공을 휩쓸어버리는 거친 세상을 "탁류"라는 제목으로 잘 표현했다면, 이 소설에서는 '지식인'들을 휩쓸어가고 있는 모습을 '탁류'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집에서 "유맹"이 읽을 만하다. 그런데, 이 소설은 친일이다 아니다 논란이 좀 되고 있다고 한다. 읽어보니 논란이 될 만하다.

 

만주의 어느 부락, 폐쇄된 부락이다. 다른 말로 하면 '게토'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부락을 갱생하고자 하는 사람과 그 부락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서 형식으로 쓴 소설이다.

 

이 부락의 구성원들을 분석한 앞의 내용을 보면 '중독자, 밀수업자, 도박상습범, 사기횡령범, 기타'로 되어 있다. 즉,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을 갱생시키려고 만든 부락이다. 수용소라고도 할 수 있는데... 수용소와 다른 점은 이들이 마을을 떠날 수 없다는 점을 빼고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을 교화시키는 소장의 열정이 표현되어 있고, 그런 소장을 도와 열심히 일하는 긍정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순동이와 순녀 같은 인물을 보면, 일제시대 만주에서 살아가는 조선인들의 비참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는 긍정성을 덮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일제가 이런 부랑자라는 명목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을 이렇게 감시하고 가두고 억압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 점은 이 소설의 긍정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이런 일제의 활동을 긍정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 드러나지 않는, 왜 이들이 아편중독자가 되었는지, 이들을 왜 이렇게 가두고 있는지 등을 생각하면서 읽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일제시대, 참 암담한 시절, 그것도 더 암담한 만주국 시절을 이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다는 의미, 그 정도. 현경준 소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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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듯, 인간이 만들어 놓은 그 지긋지긋하던 무더위도 이제는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에 서서히 자리를 비켜주고 있다.

 

  이렇게 여름은 가는구나. 더위와 비로 고생을 한 여름이 한때이듯이 힘들고 지치고 절망과 좌절에 빠뜨린 세월들도 한때였으면 좋으련만.

 

  자연은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데, 아직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소위 배웠다고 하는, 조금은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하는, 그런 사람들.

 

  제 잘못은 전혀 보지 못하고, 제 집에 구멍이 나 비가 숭숭 새고, 바람이 솔솔 들어와 찬 바람이 불면 견디지 못할 지경임에도 다른 집 낙서만 손가락질 하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자연의 섭리를 생각해 보라고 하고 싶다. 올라가면 내려오고, 내려가면 올라갈 일이 있는 것. 아무리 화려해도 결국은 바래고 만다는 것.

 

지금 자신이 높은 곳에 있다고 해도 그 자리에 영원히 앉아 있지는 못한다는 것, 오히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낮은 곳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남에게 돋보이는 자리가 아니라 제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 어쩌면 자연에서 하찮은 것이 없듯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이런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

 

최서림의 시집을 읽다. 집과 말이 이 시집의 주요 소재다. 집, 시간이 갈수록 낡아가는, 그러나 낡아감이 익숙함으로 변해야 하는데, 그 익숙함은 그 집에서 계속 살 때, 그 집을 아끼고 사랑하고 가꿀 때만 그럴 수 있다는 것.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늙어가지 않고 낡아간다. 낡아서 어느 한 순간 폭삭 무너져 버린다. 마찬가지다. 말도. 언어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랑이 없는 말은 칼과 다름 없다. 사랑이 없는 말은 사람과 사람을 맺어주는 관계의 말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끊어버리는 절단의 말이다.

 

그런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국제적으로도 관계의 말이 아닌 절단의 말, 단절의 말이 난무하고 있고, 우리나라 안에서조차도 관계의 말이 아니라 절단, 단절의 말들이 난무하고 있으니...

 

말들이 이렇게 가시 돋치고, 날카로움만 지니면 말들로 인해 사람들은 상처받고 소외되기만 한다. 그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낮은 곳을 보지 못한다. 오로지 강한 것, 큰 것, 화려한 것과 같이 노력하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을 숭배하게 된다.

 

그런 사회에서 이런 '오랑캐꽃'과 같은 내용은 나올 수가 없다. 아니, 반대다. 시인은 이런 사회이기 때문에 오히려 '오랑캐꽃'과 같은 시를 노래하고 있다.

 

시로써 시인은 사람들의 눈을 틔워주고 있다. 제발 눈 좀 뜨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저절로 보이는 크고, 화려한 것들만이 아니라, 우리가 의식적으로 찾아야 할 작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그러나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그러한 것들이라고.

 

시를 보자.

 

    오랑캐꽃

 

모든 꽃은 다 꽃을 피운다

바위취, 국수나무 같이

그늘 밑에 자라는 것들도

때가 되면 꽃을 피운다

평생 남의 그늘에 가려

영영 꽃이 없을 것 같은 생명들도

언젠가는 꽃을 피워 올린다

버려진 들판의 찔레꽃 냄새가

담장 안의 장미꽃 향기를 감싸 안듯,

이름이 뭣해서 불러주기 민망한 쥐똥나무

꽃냄새가 화장실 냄새를 덮어주듯,

누군가를 위해 물길처럼 낮아지고

남의 인생을 데워주기 위해

불길처럼 굽어져 본 사람, 한평생

남의 그늘에 가려 제 그늘이 없는 사람도

이른 봄 오랑캐꽃처럼 꽃을 피워

젖은 낙엽을 살짝 밀어 올릴 줄 안다

하늘을 들어 올려 순간

제 그늘을 희미하게 만들 줄 안다

 

최서림, 물금, 세계사, 2011년 초판 2쇄. 37-38쪽 

 

이런 것을 볼 수 있는 시인의 눈. 그리고 우리에게 보여주는 시인의 말. 표현. 그래서 우리는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찾을 수가 있다. 시인 덕에.

 

자연의 섭리처럼 사람들 사이에서도 꼭 필요한 것들,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들이 있음을, 비록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존재들이 있음을, 그 존재들은 그런 존재 자체로 소중함을, 시인은 보여주고 있다.

 

이런 존재들에게 눈길을 줄 때 집은 익숙함으로 늙어가고, 말은 사랑이 넘치는 관계의 말로 바뀔 것이다. 이제는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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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전 -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
성철.법정 지음 / 책읽는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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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라는 말을 앞에 달고 있고, 제목은 "설전(雪戰)"이다. 책이 조금 친절하지 않게 두 스님의 문답이 언제 이루어진 것인지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하긴 이 문답이 하루에 이루어진 것도 아닐 것이고, 또 그것이 언제인지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때와 장소가 중요하지 않고 무엇을 말하였느냐도 중요하지 않다. 본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면목을 깨우치게 하는데 문답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두 스님의 문답은 손가락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달을 쳐다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본다면 자신의 진면목을 깨달을 수가 없다. 그런데, 자꾸만 도대체 언제 어디서 이런 대화들을 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나는 아직도 손가락에서 벗어날 수가 없나 보다.

 

이 손가락에서 벗어나는 순간, 내 마음에 낀 먼지를 조금은 날려보낼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책의 겉표지 뒷부분에 쓰여 있는 제목을 붙인 이유가 마음에 와 닿는다.

 

'차갑고 냉철하면서도 부드러운 수도자의 자세를 '눈'이라는 매개로 형상화하는 한편,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웃게 만드는 유일한 다툼인 '눈싸움'의 이미지를 통해 성철과 법정 두 사람 사이에 오간 구도의 문답과 인연을 표현하고자 했다.'

 

다른 스님들이나 일반인들이 함부로 말을 걸기가 어려웠던 스님이 성철 스님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엄격한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레 보여줬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평생 동안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결심을 지켰던 분이기도 하고. 그러니 이런 구도자의 자세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려움으로 다가왔으리라.

 

다만, 법정 스님만은 성철 스님과 많은 대화를 했다고 한다. 성철 스님 역시 법정 스님을 도반(道伴)으로 인정했나 보다. 책을 편찬할 때는 법정 스님에게 도움을 구했다고 하니 말이다.

 

이 책 곳곳에서 성철 스님을 모셨던 원택 스님의 글이 있어서 성철과 법정 스님의 관계를 알 수 있게 된다. 또 이 책의 처음과 끝에 성철 스님과의 인연을 말하고 있는 법정 스님의 글이 있다. 그 글을 통해서도 두 분의 관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법정 스님과 성철 스님의 묻고 답하기를 통해 불교가 무엇인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문답이라는 형식은 어렵지 않게 일반인들에게도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하나의 질문과 답이 모두 마음에 받아들이고 명심해야 할 것들이지만, 그 중에서 특히 몇몇 구절은 가슴을 때리고도 남았는데...

 

법정 : 그렇습니다. 어떤 현상이나 독립된 현상만이 아니고 사회 구조적인 모순에서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저희들 자신이 종교인이기 때문에 종교인에게도 그런 데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철 : '종교인에게도'가 아니지요. '에게도'가 아닙니다. 우리 종교인이란 정신을 지도하는 근본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그러니 책임은 근본 책임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 그러니 종교인이라는 사람, 성직자라는 사람부터 근본 자세를 바로잡아서 참다운 정신적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위에서 정신적 지도자부터 잘못되었다고 하면 밑에서 지도받은 사람이 탈나고 잘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러니 근본 책임을 맡은 종교인, 성직자인 우리가 참회해야 한다고 봅니다.  (36-37쪽)

 

지금 사회가 어지러운 지경에 처한 것에 대해서 대화를 하는 중에 나온 말이다. 법정 스님은 '종교인에게도'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성철 스님이 '에게도'가 아니라고 하는 것.

 

이때보다 지금이 더 좋아졌을까. 아닐지도 모른다. 생명경시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지 않은가. 너무도 어지러운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어떤 종교인이 이렇게 참회를 하고 있단 말인가.

 

종교인에게 세금을 내게 하자는 안건도 제대로 논의가 되지 않고, 통과되지 않고 있는 현실 아닌가. 자기들 건물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지면서도 점점 가난해져 땅과 가까워지는 사람들은 외면하는 종교인들이 많지 않은가. 부끄러워해야 할 말이다. 이 말이 단지 종교인에게만 해당하겠는가.

 

'나는 진리를 위해서 불교를 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서 진리를 택한 것이 아닙니다. ...... 참으로 진리를 위해 살려면 세속적인 일체 명리는 다 버려야 합니다. 만약 그것이 앞서면 진리는 세속적인 영리를 추구하는 일종의 도구가 되어 버리니까요.' (51쪽)

 

'불교 믿는 첫 조건으로 모든 생명, 모든 존재를 부처님으로 모셔라. 모든 존재를 부모같이 섬겨라. 모든 사람, 모든 존재를 스승으로 섬겨라 하는 3대 조건이 있습니다.' (80쪽)

 

'불교의 사회봉사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금강경]이나 반야사상 같은 데서는 어떠한 선한 일을 하더라도 아무 자취 없이 하라고 강조합니다. 내가 선한 일을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보살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82쪽)

 

'인간의 가치란 누구나 똑같습니다. 남을 도우려면 존경하는 마음으로 해야지, 조금이라도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면 저쪽 인격을 무시하는 겁니다.' (82쪽)

 

이 부분을 읽으며 마음이 턱 막혔다. 도대체 지금 이 나라는 봉사활동이라는 명목으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무슨 무슨 기관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사진 촬영을 해서 언론에 내보내는 그 작태는 그들이야 그렇다치는데, 이들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잘못된(?) 학교 교육이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봉사활동이라는 것을 점수화하고 있다. 몇 시간 이상을 해야지만 기본 점수를 받는 것이다. 알리지 않고, 남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봉사활동을 학생 시절부터 점수를 위해서, 그것도 기록이 되지 않은 봉사활동은 아무런 효력이 없으니 꼭 기록을 하게 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학교 교육 아닌가.

 

그렇다면 얼마나 잘못된 교육인가. 봉사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봉사조차도 자신을 드러내는 쪽으로 쓰게 하는, 현재의 정치인들의 행태가 이런 사고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이었는데... 아마도 거꾸로이겠지. 정치인들의 그런 행태가 학교에서 하는 봉사활동을 점수화 할 생각을 하게 했겠지만... 참, 이제는 이렇게 지낸 학생들이 사회 곳곳에서 활동을 하는 나이게 되었으니...

 

그럼에도 성철 스님은 말을 적게 하라고 했다. 글 역시 마찬가지다. 주옥 같은 말들이 더 많이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아가면 될 듯하니... 이만 줄여야겠다.

 

다만, 당장의 깨우침은 없을지 몰라도 읽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깨우침에 대한 생각, 즉 손가락이 무엇을 가리키려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좋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이름은 들어봤음직한 성철, 법정 스님의 묻고 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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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2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2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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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과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고, 정치, 군사적인 면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바로 인접해 있는 강대국인 중국과 어떻게 관계를 풀어갈 것인가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지금은 세계를 양분하고 있는 강대국 아닌가. 미국과 중국의 틈새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전략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실행해야 할 때이다.

 

그냥 기분대로, 감정대로 외교문제를, 국제문제를 풀 수는 없다.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적절한 줄타기를 할 수 있는 정치, 그러한 정치가 기대되는 때이기도 하는데...

 

1권에 이어 2권을 읽었다. 현대 중국의 혁명 여성가들로부터 시작한다. 여기에 친숙한 작품이 하나 등장한다. 영화 "색,계"의 원작을 쓴 장아이링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중국에는 인물고 많고 사건도 많았다고 보면 된다.

 

 

전우용은 "우리 역사는 깊다"와 "서울은 깊다"라는 책을 썼지만, 역사가 깊기로는 중국을 따라가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중국은 대국이다. 큰나라다. 큰나라 답게 깊고 넓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결코 좁지도 얕지도 않다. 그들의 어떤 일면만 보아서는 안 된다. 이 책에도 나온다. 중국인들이 - 아마도 남자들이겠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음식과 여자라고. 그런데 여기서 끝날까?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이런 막장도 막장이 없다 싶을 정도로 여자 관계가 복잡하다. 하다못해 우리가 위대한 인물이라고 알고 있는 쑨원만 해도 여자 관계만큼은 배울 것이 없다고 봐도 된다. 쟝제스 역시 마찬가지고, 마오쩌뚱 또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이런 문제는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럴 수도 있다라든지, 또는 다른 능력이 더 탁월하니 됐다라든지 정도다. 큰나라에서 활동한 사람들이기에 한쪽으로만 판단할 수 없겠단 생각이 든다.

 

더하여 중국인들은 천상 의심이 많다고 한다. 의심, 이들은 무엇이든 의심하고 본다. 쑨원의 최대 약점이 의심을 잘 못했다는 것이라고 하니, 무언가를 먼저 의심하고 들어가는 것, 중국인들의 기본이라고 한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나라의 선의, 우리 뜻은 그게 아니고 하는 말들은 외교에서 중국인들에게 그다지 잘 먹혀들어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무엇이든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의심하고 확인하고 점검하고 여러 번을 검증한 다음에야 믿는다. 중국의 온갖 첩보기관들이 암약하게 된 이유도 이러한 의심과 관계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러니 중국이 공산화 된 다음에는 혁명을 이룬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고 죽는 그런 일이 발생을 하지.

 

이 책에 나오는 팽더화이(우리에게는 팽덕회로 더 잘 알려져 있다)와 마오쩌뚱(모택동)의 관계를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결국 권력을 쥐지 못한 팽덕회가 진실을 말함으로써 몰락해가는 과정이 잘 나와 있는데...

 

중국 현대사를 이끈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2권에서는 특히 여자들이 많이 나온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쑨원(손문)에 대한 이야기, 쑨원과 장졔스의 부인이 되는 송경령과 송명령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와 있어서 현대사의 뒷이야기를 알 수 있어서 더 좋다.

 

읽으면서 참 놀란 사실이 장졔스를 감금했던 장쉐량이 연금생활을 했다는 것... 그럼에도 참 오랫동안 살아 있었다는 것, 먼 과거의 인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장쉐량과 장졔스의 부인인 송명령이 친분이 있었다는 사실 등등, 그동안 잘 모르고 있던 일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무엇보다도 중국 현대사의 인물들에 대한 이 책을 읽으면서 중국이란 나라, 절대로 단순한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 그들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그들 국민들의 특성, 정치지도자들이 지닌 특성을 알아야 우리가 중국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 역사가 깊은 만큼 중국 역사도 깊음을, 그 점을 이해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만들어가야 함을  "중국인 이야기"를 통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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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맑은 소리가

하나 둘 떨어진다.


푸른 잎,

굳은 땅,

그리고 메마른 가슴 위에.


촉촉히 젖는

저 하늘의 울림.


후두둑, 똑 또르.


한 줄기 시원한

바람과

물줄기가 떨어진다.


내 대지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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