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소설을 먼저 읽었다. 말들의 잔치... 그렇다. 소설에서는 삶보다는 말들이 앞섰다.

 

  말은 삶을 대변할 뿐인데, 지시하는 대상을 무시하고,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명분.

 

  오로지 그것이다. 그러나 명분은 소위 먹물들에게나 해당하는 것이지 일반 백성들에게 명분은 소용 없다.

 

  일반 백성에게는 명분보다는 생존이, 생존을 넘어 생활이 필요하다. 그렇게 백성을 살게 해주는 정치가 필요한데...

 

  남한산성이라는 작은 공간에 갇혀서도 오로지 명분만을 앞세우는 그런 모습들.

 

 

영화는 소설을 충실히 따라간다. 그만큼 영화에서도 참 한심한 모습들의 재상들이 나온다. 그들에게는 명분도 필요없다.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만 필요할 뿐.

 

여기에 백성들은 그냥 동원되는 존재일 뿐이다. 그들의 말 속에 백성들은 없다. 자신들의 말이 백성들의 목숨을 좌지우지 한다는 사실을 이들은 무시한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도 말들이 아니라 삶이 살아있는 인물은 대장장이 서날쇠다. 그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사람이다.

 

다른 인물들은 말 속에 갇힌, 말보다도 못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말 속에 들어 있는 의미를 찾아내는 것. 이들이 말과 생활을 일치시키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서날쇠 같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이 영화가 지금 시기에 개봉이 된 것은 예사롭지 않다. 과연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다른가. 병자호란이 그냥 과거의 일일 뿐인가 하는 질문을 하면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남한산성이라는 작은 성에 고립돼 있던 인조와 신하들, 우리는 한반도라는 작은 나라, 그것도 반도도 아닌 섬 취급을 받는 그런 나라에 고립돼 있지 않은가.

 

여기서 과연 살 길은 무엇인가? 말들만 난무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삶을 살아가는 국민들, 그들의 삶이 지속되도록 하는 말을 하고, 그 말을 실천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정치를 하게 해야 한다.

 

백성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 자신들의 명분만을 내세우는 말들이 판치는 영화 '남한산성'과 다르게 우리는 국민들의 삶을 대변하는 말들이 나오는 정치를 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그때의 백성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의 말을 실천에 옮기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 힘을 정치가들도 무시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영화의 그때와 지금이 다른 점이다.

 

처한 상황은 비슷하지만 시키면 시키는 대로만 할 수밖에 없는 백성이 아니라, 엄연한 주권을 지닌 국민, 그점이 다르다. 너무도 큰 차이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영화를 먼저 본 사람이라면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어도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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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광고를 하는 사람 가운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람이다. 텔레비전에서 자주 보던 광고를 만든 사람이기도 하고.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란 책을 낼 정도로 인문학에도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광고와 자본과 가장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인문학이 어떻게 결합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둘이 잘 융합되는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기도 하다.

 

광고가 자본의 총아로서만 기능하지 않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도 기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사람이기도 하고.

 

그가 "여덟 단어"라는 책을 냈다. 키워드라고 하나, 여덟 단어로 광고 또는 인문학,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강연을 한 것이다.

 

단지 광고에 대한 강연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먼저 산 사람으로, 먼저 고민을 한 사람으로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고 있는 책이다.

 

그렇다고 굳이 박웅현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라할 필요는 없다. 박웅현은 박웅현이고, 나는 나니까. 이 책에서 거듭해서 박웅현이 말하고 있는 점도 바로 이것이다. 그의 권위에 자신을 완전히 맡기지 마라.

 

그럼에도 참조가 많이 된다.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가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덟 단어는 다음과 같다.

 

자존, 본질, 고전, 견(見), 현재, 권위, 소통, 인생

 

이 중에 모든 것은 마지막 단어 '인생'으로 수렴된다.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 앞의 일곱 가지가 필요하다.

 

왜 인문학을 공부하는가? 잘 살기 위해서다. 왜 직업을 갖는가? 잘 살기 위해서다. 왜 공부하는가? 잘 살기 위해서다.

 

잘 살기 위해서? 기준은 다양한다. 어떤 삶이 잘 사는 삶일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다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존'이 필요하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 남을 존중할 수 없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기에 다름을 인정할 수 없다. 즉 우리는 다 다르지만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본질'에 대한 생각에 이르지 않는다. 반면에 '자존'하는 사람은 다름을 인정한다.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본질' 무엇인가? 그때그때 변하는 것이 아닌 무언가 보편적인 것. 오래 가는 것, 세월의 흐름에도 견뎌내는 것, 그것은 바로 '고전'에서 올 수 있다. 고전이 고전인 이유는 인간이 지닌 어떤 본질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다 보면 본다는 것(見)의 중요성에 이른다. 그냥 보이는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찰하는 것, 그것이 바로 '견(見)'이다. 놓치고 있던 것을 놓치지 않게 되는 것, 바로 '견'이다. 이 '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현재'를 보는 것, 현재를 놓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두 '현재'를 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 동물이 되어 보지 않아서 돌물들이 과연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도 개를 예로 들어 현재에 충실한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 과거와 미래를 자꾸 현재로 불러온다.

 

그래서 현재를 현재로 즐기지 못하고 자꾸 과거로 되돌리려 하거나 아직 오지도 않는 미래로 밀어 넣으려 한다. 자연스레 자존도, 본질도, 고전도 놓치고, 제대로 보지 못한다. 현재에 살아야 하는 자신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현재'를 살아야 한다. 현재를 살기 위해서는 쓸데없는 권위에 자신을 맞추지 말아야 한다. 어떤 형식으로 권위를 세우려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현재'를 살지 못하는 모습이다. '권위'는 자존을 지니고 본질을 추구하며 현재를 잘 살 때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권위는 바로 바깥에서 오지 않고 안에서 와야 한다. 그것을 보아야 한다.

 

그렇게 볼 수 있으려면 '소통'이 되어야 한다. 소통이 되지 않으면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사회적 동물 아니던가. 정치적 동물 아니던가. 아니 언어적 동물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인간에게 소통은 필수적이다.

 

'소통하는 인간'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가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는 결국 이 '소통'이 필요하다.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여덟 단어'를 이렇게 정리해 봤다. 꼭 이 여덟 단어이겠는가. 어쩌면 우리는 한 단어로도 우리의 인생을 잘 살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이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적어도 박웅현이 쓴 이 책을 통해서 우리 삶에 대해서 되돌아볼 수는 있다. 그리고 이 단어들을 자신들의 삶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이 여덟 단어를 자신의 삶으로 불러올 수 있다. 좋은 책은 그가 쓴 다른 책의 제목이기도 하듯이 바로 '도끼'여야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도끼'의 역할을 할 수 있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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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산문(山門)이고 싶다


난 요즘 산문(散文)이다

散文이라서 장황하다

남이 없다

오직 내 얘기만 길―게

늘어놓고 있다

散文이라서 흩어진다 여기저기로

나로 집중하지 못 하고

수다스러워진다

산문(山門)이라면

더 많이 조용하고

더 많이 포용하고

더 많이 기다리고

더 많이 이해할텐데

山門!

그윽한 향기가

나를 감싼다

山門은 배척하지 않는다

山門은 재단하지 않는다

山門은 오라지도, 가라지도 않는다

오직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散文의 수다는 공허(空虛)한데

山門의 침묵은 공명(共鳴)이다

난 山門이고 싶다

시(詩)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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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3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3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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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시간을 두고 읽고 있다. 중국인들 인구수만큼 많은 인물들 이야기인데, 한 번에 주욱 읽어도 잘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국 현대사에서 얼마나 많은 인물들이 살다 갔겠는가. 그런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알려주는 이 책은 중국인을 통해서 중국의 역사를 알게 하고 있고, 또 그를 통해서 우리 역사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3권에서는 대만과 본토로 나뉜 중국의 통일 노력이 맨 앞에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만이 분단국가인 것이 아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고, 그들 역시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있고, 통일에 대한 염원, 노력이 있다.

 

그렇지만 그들 역시 정권의 형태에 따라서 통일에 대한 노력이 진행되기도 하고, 중단되기도 한다. 그렇게 벌써 반 세기가 흘렀고, 중국의 분단은 여전하다. 마치 우리나라 분단이 여전하듯이.

 

하지만 이들은 나름 교류를 하고 있다. 완전히 자유로운 왕래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보다는 자유롭게 서로 왕래를 하고 있다. 이런 것이 통일에 대한 기초라고 하면 이들은 우리보다 앞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들에게는 양쪽에서 모두 존경하는 사람들이 있다. 치열한 인재 쟁탈전, 그것이 끝난 다음에도 비록 다른 곳에 있지만, 그들에 대한 존경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만큼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산 사람에 대한 예우일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 남북으로 갈려 살아가게 된 인물들이 많다. 남쪽과 북쪽 모두에게 존경받을 사람들도 많다. 이들에 대한 마음을 사상과 분리하여 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또한 3권에서는 소위 말하는 4인방의 몰락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속칭 부도옹(不倒翁)이라고 불렸던 등소평이 재등장하는 과정은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권력싸움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큼 흥미롭기도 하지만, 현대 중국을 건설한 사람이 모택동이라면, 그 중국을 지금에 이르게 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등소평이기 때문이다. 만약 등소평이 4인방의 싸움에서 졌다면 지금의 중국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도 한다.

 

여기에 청나라 말기 정권싸움 이야기도 나오고... 우리에게 어느 정도 친숙한 위안스카이(원세개) 이야기도 나오니 읽을 만하고, 루쉰(노신) 형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중국에서는 잘 알려진 인물들이겠지만, 노신의 형제들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으니...

 

도도한 흐름이다. 흥미로운 이야기책이다. 중국인들에 대한 이야기. 천천히 오래도록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 다음은 이제 4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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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한도' 하면 김정희 그림이 떠오른다. 그 그림에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허름한 집과 눈 덮인 나무가 나올 뿐.

 

  사람은 나오지 않는데, 그림 속에 사람이 있다. 절절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어려운 시대를 견뎌내는 사람들.

 

  '세한도'는 그림 자체보다는 그림과 함께 있는 글이 더 그림의 가치를 높여주는지도 모른다.

 

  어려운 지경에 처한 사람을 대부분은 모른 체하는데, 그때서야 진정 자신을 위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는.

 

  어려울 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 그래서 더 빛을 발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세한도'에는 있다. 그래서 '세한도'는 절망의 그림이 아니라 희망의 그림이다. 희망이다. 사람에게서 느끼는 희망.

 

세한(歲寒) : 설 전후의 추위라는 뜻으로, 매우 심한 한겨울의 추위를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렇게 뜻풀이가 되어 있다. 매우 심한 한겨울의 추위다. 세한은, 세한도는 그런 추위를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희망을 느끼는 것은 그림이 아니라 바로 글이다. 글을 통해서 한겨울 심한 추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가를 알게 하는 사람을 만나기 때문이다.

 

이랬으면 좋겠다. 삶에 어찌 굴곡이 없겠는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는 법. 이게 바로 삶,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런 삶의 법칙(?)이 깨어져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IMF사태. 이때 우리나라 사람들, 거꾸러졌다. 넘어졌는데, 일어날 수가 없었다.  나라는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다. 사람들이 쓰러졌는데, 일으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서로 살 길을 찾기 시작했다. 살아야했기에.

 

그럼에도 따스한 희망의 끈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김정희의 세한도에서 사람은 없지만 사람을 찾을 수 있듯이, 이 IMF라는 거대한 추위 속에서도 사람들은 온기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시를 보자. 

 

  歲寒圖

     1998년 6월 2일. 비

 

비오는 날

우산을 어깨에 걸치고 더러는 우산도 없이

굽은 등허리에 고스란히 비를 맞으며

일렬횡대로 쪼그려 앉아

밥을 먹는다

용산역 앞 광장

담벼락을 앞에 하고 주기도문을 마친 다음

다같이 슬픔으로 따뜻한 국물을 떠서

무료 제공의 한끼 식사로

하루를 사는 사람들

집을 나온 우리나라의 아버지들

빗속에 나란히 앉아서

추운 겨울 하늘 오선지에 앉은 참새들처럼

우산을 어깨에 걸치고 더러는 우산도 없이

오전 열한 시에 땅바닥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

 

강인한, 황홀한 물살, 창작과비평사, 1999년 초판. 54쪽.

 

얼마나 추운 모습인가. 때는 6월. 더운 여름으로 건너가는 때이지만, 사람들의 생활은 한겨울이다. 그래서 세한도다. 이 추위에 그래도 온기가 느껴지는데... 다시 20년이 되었다. 이때보다 나아졌는가.

 

이때는 아버지들이 이렇게 길바닥으로 쫓겨나 땅바닥에서 밥을 먹었다. 지금은 그 아들들이 길바닥으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다. 청년실업이 심각하단다. 아예 직장을 처음부터 얻지 못한 청년들도 많단다.

 

이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할 기회조차 갖기 못했다. 그렇게 한참 여름으로 접어들어야 할 청년들의 삶이 한겨울에 머물고 있다. 여전히 '세한'이다. 20년 전에 아버지들이 '세한도'의 인물이었다면, 이제는 그 아들들이 인물이 되고 있다.

 

그래도 '세한도'다. 이런 세한이 반복되고 있어서 슬프지만, 엄연한 한겨울 추위지만, 분명 희망이 있다. 그 희망은 바로 사람이다. 우리는 여전히 사람에게서 희망을 느낀다.

 

'사람이 먼저다'라고 말하는 정치인... 이젠 그 희망을 믿고 함께 가야 한다. 그래야 한겨울을 날 수 있다. 이렇게 '세한도'에는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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