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지처참 - 중국의 잔혹성과 서구의 시선 동아시아와 그 너머 1
티모시 브룩 지음, 박소현 옮김 / 너머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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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 욕에는 죽음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육시를 할 놈, 찢어죽일 놈 등등... 이런 욕이 나올만한 상황이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극한의 욕을 하는 셈인데...

 

육시(戮屍)를 보통 토막내 죽인다고 알고 있는데, 한자어의 뜻에 따르면 죽은 사람의 시체를 꺼내어 다시 토막내는 것이 육시라고 한다. 그냥 부관참시라고 하는 말로 더 잘 알려져 있다고 하면 된다.

 

여기에 능지처참할 놈이라는 욕도 있는데, 찢어죽인다는 말과 통한다고 보면 된다. 사람의 신체를 훼손하는 징벌.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극한의 징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능지처참을 영어로 번역하면 'Death by a Thousand Cuts'라고 한단다. 천조각을 낸 죽음이란 뜻인데, 그야말로 사람의 몸을 산산조각내는 형벌이라는 뜻이다.

 

이 능지처참을 서구인들은 중국인의 야만을 드러내는 형벌로 파악을 했다고 한다. 동양적인 잔인함, 비문명화의 모습으로 판단을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아마추어 사진사가 능지처참하는 광경을 사진으로 남겼고, 이를 무슨 대단한 증거인양 중국의 야만을 상징하는 것으로 계속 이야기해 왔다고 하는데...

 

이 책은 이런 서구인의 시각을 교정하려는 목적에서 쓰여졌다. 능지처참과 같은 형벌이 중국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서양에서도 이런 형벌은 존재했다. 다만, 백여 년 먼저 폐지되었을 뿐인데...

 

중국이 조금 늦게 폐지가 되었지만, 이런 형벌이 자주 있었던 것은 아니고, 법령에 능지라는 형벌이 명시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 1900년대 초반에 폐지가 되었고.

 

게다가 사람의 몸을 조각내 죽인다고 하면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고통을 받게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에 의하면 세 번째 절단에 주로 목숨을 끊는다고 해서, 신체적인 고통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형벌이 지속된 이유는 어떤 이유가 있을텐데... 그 이유를 몸에 대한 중국인의 사고에서 찾고 있다. 온전한 신체라야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즉 몸과 정신이 분리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중국의 문화에서 신체를 훼손하는 것은 정신마저도 조각내는 것으로 생각했으니, 단순히 죽인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몸을 절단하는 것은 너무도 심한 형벌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는 것.

 

그러니 이 형벌을 통해 신하나 백성들을 경계하고자 했던 군주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하지만 중국은 이런 심한 형벌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인(仁)의 정치를 추구하는 나라였다는 것. 백성들에게 인을 베푸는 것이 군주의 역할이었음을 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이 책에서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특별히 중국의 잔혹함이 이런 형벌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왜곡된 서구인의 시각에서 이런 형벌이 부각되었을 뿐이고, 이런 지독한 형벌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관용이 형벌 적용의 원칙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이 책은 한 발 더 나아간다. 이렇게 처참한 형벌이 존재한다고 해도 범죄는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 태평성세에는 이런 가혹한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런 형벌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저자들은 사형제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과연 사형제 존속이 범죄를 예방하거나 줄일 수 있는가?

 

이 책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나온다. 오히려 엄혹한 법률보다는 관용과 용서가 넘치는 사회에서 범죄가 더 줄어든다. 사형제를 폐지하는 것이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생각할 수 있는 답이라는 것.

 

과거 중국의 잔혹한 형벌에서 지금의 사형제도에 대한 생각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그리고 어느 문화의 관점에서 다른 문화를 재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을 쓴 목적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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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0 09: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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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0 10: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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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17-11-20 15: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숨어 읽기만 하다 첨으로 댓글 남깁니다.
저도 2014년인가 15년인가 이 책 읽었죠.
kinye님 글 읽으니 몽롱하게 머리속을 맴돌던 이 책 줄거리가 대뜸 요약 정리되네요.
더불어 책에 실린 능지처참 사진 생각도 나네요. 꽤 충격이었죠.
‘사람도 뼈와 고기구나‘ 란 생각이 절로 들었죠.

kinye91 2017-11-20 15:39   좋아요 0 | URL
저도 능지처참에 대해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다가 이 책을 보고 명확하게 알게 됐어요. 사람을 고깃덩어리로 취급하는 형벌, 즉 너에게 인간성이란 없다는 인간을 인간 이외의 존재로 규정하는 형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낯선 시인이었다. 박이도. 이름을 처음 들었다는 느낌. 하긴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시인을 어떻게 알겠는가.

 

  학교 교과서에서 배우는 현대 시인들은 대부분 일제시대에 살다 갔거나 또는 60-70년대에 활약했던 시인들인데... 그 중에서도 60-70년대에는 김수영이나 신동엽 같이 민중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나 좀 알지 다른 시인들은 알지 못하고 지냈는데...

 

  박이도 전집이 나왔다고, 알라딘 중고 판매에 시집이 떴길래, 문학전집을 낸 시인이라는 생각에 한 번 읽어봐야지 하고 사게 된 것.

 

  순수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시에 현실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시의 주종을 이루는 것은 서정적인, 또는 자연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시의 서정성에 많이 다가간 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가 읽은 문학전집 2권은 6시집 '안개주의보', 7시집 '홀로 상수리나무를 바라볼 때', 9시집 '을숙도에 가면 보금자리가 있을까', 11시집 '빛과 그늘', 12시집 '자연학습'이 실려 있다.

 

중간에 빈 시집은 기존에 발표된 시들을 엮은 기획시집이라고 한다. 그러니 시들이 겹칠 수밖에 없으니, 전집에서는 이들을 제외하고 엮었다고 보면 된다.

 

이 전집의 장점은 시인의 말과 시의 해설을 다 실어주고 있다는 것... 그래서 박이도 시인이 발표한 시집이 발표 당시 어떤 경향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실린 제목들만 보아도 자연을 노래하는 시들이 많음을 짐작할 수 있고, 실제로 자연을 노래한 시들이 많다. 특히 새들을 노래한 시가 많은데...

 

우리가 흔히 만나는 새들이기도 하고, 또 새는 자유롭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니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새에 빗대에서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전집에 실린 시 중에 이 시가 시인의 시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지 않나 싶다.

 

 내 시(詩)의 첫 줄은

 

내 시의 첫 줄은

항상 낯선 길에 나서는 어린 아이와 같아

어디로 가는 것인지

무엇이 나타날 것인지 궁금해

 

어둠이 순두부처럼 흩어지며

우유빛 새벽 동이 트여 오는 그 길로

엄마 찾아 허둥대며 나서던 겁보

 

호기심이 커져 설렘으로 치달리면

가슴의 맥박은 큰 붕알시계 소리처럼

기우뚱 기우뚱 숨이 차다

 

내 시의 첫 줄은

따뜻한 마음 속 박동치는 음악에서 온다

 

박이도 문학전집 2, 창조문예사, 2010년 초판. 325쪽.

 

그렇다. 이렇게 시인은 첫 줄부터 자신의 마음을 열어놓는다. 어떻게 쓰여질지 자신도 모른다는 것. 그만큼 자연에게서 받은 마음을 글로 옮긴다는 것.

 

이런 마음은 따뜻할 수밖에 없고, 음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시인은 평생토록 시를 써왔다고 볼 수 있다.

 

자연에 자신을 놓아두는 것, 자연과 함께 되는 것, 그렇지만 어떤 의도보다는 자연히 그러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박이도 시인의 시들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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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몸에 상처를 낸다


나이 들어가면서

몸이 굼떠지는지

몸이 더 굳어지는지

자꾸만 몸에 상처를 낸다

손을 뻗다가도

손을 만지다가도

제 몸에 상처를 스스로 내는데


몸에 난 상처들을 보며

살아오면서 낸 상처들을 생각한다

그동안 남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냈을까

남에게 낸 상처들이

넘치고 넘쳐

이젠 내게로 오는 걸까


내 몸 상처를 보며

남 몸에

남 마음에 낸 상처를 생각하니

아득하다

이토록 많은 상처들을 내며

살아왔다니


나이 들면서

내 몸에 생기는 상처들은

남에게 입힌 상처들이

돋아나오는 것이라고

내 삶을 반성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다

나이 듦은 내 상처 속에서

남 상처를 보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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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08: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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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10: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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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남자 - 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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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문학상 수장작품집이다. 벌써 11회라고 한다. 소설에서 멀어진 지가 한참이 되어서 김유정 문학상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효석문학상, 만해 문학상 등은 알았어도.

 

김유정은 우리나라 단편 문학에서 정상에 오른 작가라고 할 수 있으니,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도 마찬가지로 장편소설이 아닌 중,단편 소설 중에서 골라 수상을 하는 이 방식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심사위원들이 어떤 기준으로 심사를 했는지는 몰라도 아마도 김유정 문학정신을 잘 계승한 작품이라고 인정한 작품에게 수상의 영광을 안겼으리라고 믿고 본다.

 

이번 11회 수상작품집에서 수상작은 황정은의 '웃는 남자'다. 90쪽쯤 되는 중편소설에 해당한다. 웃는 남자라고 하지만 웃을 수 없는 남자 이야기다.

 

작품에서 주인공은 웃지 않는다. 웃을 수가 없다. 도대체 그의 삶 어느 곳에서 웃을 수 있단 말인가. 사는 곳도 그는 변두리다. 직장도 주변이다. 그렇게 그는 살아간다.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밝음이 아니라 어둠이다.

 

밝음과 어둠이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삶 자체가 밝음과 어둠이, 천국과 지옥이,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 있다. 스펙트럼의 길을 따라 가면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그런 상태.

 

그냥 살아감, 그 살아감이 죽어감일 수 있는 것, 그것은 그가 일하는 곳이 세운상가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때는 활력있게 살아움직이던 그 공간이 이제는 죽어가는 공간이 된 세운상가.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몇몇만 남아 있는 상태.

 

여소녀란 나이 든 또다른 주인공과 d라는 이니셜을 지닌 주인공이 그곳에서 함께 한다. 낡은 것들과 함께...

 

그들은 진공관을 두고 대화를 하는데, d는 진공관에서 뜨거운 열기를 느낀다. 그가 다른 사물들에게서 느낀 온도와는 다른 뜨거움. 진공의 상태, 그것은 단순한 비어있음이 아니라 다른 것들로 연결시켜주는 그런 비어있음이다.

 

진공관은 자신이 비어있음으로 해서 소리를 내게 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 비어있음으로 인해 무언가를 채워야 한다.

 

제목이 웃는 남자이고, '소리'가 많이 등장하지만 주인공들은 제 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들이 제 소리를 낼 때 그때서야 비로소 웃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웃는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소리를 남에게 당당하게 낸다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소설은 웃을 수 없는, 아직은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하는, 다른 소리들에 묻혀 사는 사람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다만 진공관으로 그들은 이제 자신의 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이 책에는 다른 후보작들도 실려 있다.

 

김숨 '이혼', 김언수 '존엄의 탄생', 윤고은 '평범해진 처제', 윤성희 '여름방학', 이기호 '최미진은 어디로', 편혜영 '개의 밤'

 

이 중에 내게 생각할거리를 제공해준 소설은 김숨의 '이혼'과 편혜영의 '개의 밤'이다. 함께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러나 헤어진다는 것은 더 힘든 일이라는 것을 이혼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이혼'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위치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개의 밤'에서는 자본의 힘에 묻혀사는 사람들의 삶, 그것을 깨우치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그런 시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개가 짖었는지를 끊임없이 묻는 주인공의 질문에서, 불의를 보고 그것에 항거하는, 또는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거기에 어떻게 물들어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문제적 개인이 문제적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형식이라고 한다. 소설을 읽는 이유는 그런 문제적 개인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설집을 통해 지금-여기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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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4 08: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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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4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비가꾸는꿈 2017-11-14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점이 있다면 다섯 개짜리 감상평이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기회 있을 때 읽어봐야겠네요.

kinye91 2017-11-14 14:03   좋아요 0 | URL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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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20일 미국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있었다. 교사 한 명을 포함하여 학생 12명이 죽고 20여명이 부상을 당한 사건이었다. 총기 규제가 거의 없는 미국에서 지금도 빈번하게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지만 고등학교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은 거의 없었나 보다. 이 사건이 미국에 굉장한 충격을 안겨준 것을 보니.

 

이 사건이 있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원인 규명에 목소리를 냈다. 학교 따돌림이 문제라느니, 가정 교육이 잘못되었다느니, 총기 소지가 자유로워서 그랬다느니, 아이들의 정신에 문제가 있었다느니, 또는 아이들이 약물을 복용했다느니, 잘못된 종교때문이라느니... 많은 원인 진단이 있었지만, 어느 것도 명확한 원인이 되지 못했다.

 

그러니 이 사건을 일으킨 부모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언론에서는 가정교육이 잘못되었다고 단 한 줄이라도 기사 또는 방송을 내보내면 그 부모는 속절없이 죄인이 되어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쓴 수 클리볼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자식을 괴물로 잘못 키운 죄인이 되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겨를도 없이 왜 자신의 자식이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하려고 든다. 도대체 왜 내 자식이? 무슨 이유로? 답을 찾지 못한다. 아니 답은 없다.

 

수 클리볼드의 아들인 딜런은 집에서는 착한 아이였다고 한다. 세상 어느 부모에게 자신의 자식이 나쁜 아이이겠는가. 부모 말 잘 듣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그런 자식들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런 자식이 어느날 살인자가 되어 자신들 앞에 나타난다.

 

부모들이 느낄 당혹, 절망감...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수 클리볼드도 마찬가지다. 정신을 추스릴 수가 없다. 처음에는 믿지 않는다. 자신의 아들도 희생자일 뿐이라고... 그러다 처절한 진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살인에 가담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획한 살인에 자신의 아들이 가담한 것이라는 것을. 자신의 아들은 살인자라는 것을. 절망 끝에 서게 된다.

 

이육사의 '절정'의 한 부분을 떠올리게 된다. 수 클리볼드의 심정은 바로 이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 서릿발 칼날진 그곳에 서다 //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육사 '절정 2-3연)

 

절망의 끝. 그러나 엄마의 사랑은 아들을 감싸안는다. 아들이 살인을 저지른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자신의 아들임을 인정한다. 자신에게는 사랑스런 아들이었음을.

 

그렇다면 한 발 나아가야 한다. 수 클리볼드는 처절하게 아들과 지내온 날들을 되돌아본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되돌아보면서 아들이 자신에게 수많은 신호를 보냈음을 파악하게 된다.

 

아들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심한 절망에 빠져 있었다. 술도 마셨으며 총기를 구입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아들과 대화를 잘했고, 아들은 착하게 살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사건을 일으키기 몇 해전부터 사소한 사고를 일으키고는 했지만 이는 아들들이 커나가면서 겪게 되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부모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부모는 우선 자식을 믿어주지 않는가. 게다가 폭력적인 가정교육을 방침으로 삼지 않는 부모라면 더더구나.

 

이들은 아들이 보내는 미세한 신호들을 놓치고, 결국 아들은 살인-자살을 감행하기에 이르른다. 사건이 벌어진 뒤 수 클리볼드는 이 사태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처절한 노력이다. 그리고 그 노력 끝에 이 책을 내기까지 한다.

 

피해자들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고 그들의 마음이 치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고, 자기의 아들과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일이 특별한 아이, 특이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님을 명심하라고... 이런 일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다고.

 

그래서 아이들이 보내는 신호들을 잘 살펴야 한다고... 겉모습만으로 아이들을 판단하지 말라고.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글이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볼링 포 콜럼바인'이라는 영화를 보고 미국의 총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이 책은 총기문제보다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아이에게 어떻게 관심을 주어야 하는가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찜찜한 마음을 거두지 못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뇌에 문제가 있으면 사고를 치기 쉽다. 수 클리볼드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뇌에 문제가 있어도 증상을 안다면 예방할 수 있다. 그것을 부모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즉 행동에는 유전보다는 환경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행동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 그것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 책이 한 발 더 나아갔으면 했다. 미국의 총기 소지 자유에 대해 총기 규제를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쪽으로 말이다. 물론 이 책에도 총기 소지 자유에 대해 비판적인 부분이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쉽게 총을 소지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순간적인 분노가 총기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고, 계획적인 총기 사고를 일으킬 개연성을 더 높이기 때문에 총기 난사 사건을 개인적인 뇌 문제, 심리 문제, 가정 문제로 국한시켜서는 안된다. 사회문제로까지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런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아이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다. 그런 공이 잘못 튀어도 치명적이지 않은 환경을 만들 의무가 어른들에게 있지 않을까.

 

아이들을 잘 살피고, 대화를 꾸준히 하며, 그들의 뇌건강도 보살펴야 하고, 또 사회적인 환경 변화도 이끌어야 하니, 부모 노릇하기 참 어렵다. 하지만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지고 가야 한다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

 

부모들이 해야만 할 일이다. 그래야만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수 클리볼드는 이 책을 통해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신의 고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 고통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비록 총기난사 사건 같은 일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도 학교폭력을 행사하는 아이들, 학교폭력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있으니 이 책을 꼼꼼하게 읽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부모로 살아가기 정말 힘들다. 하지만 부모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갖고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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