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떠도는 말들을 장례지내자.

 

  특히 정치권에서 내뱉는 말들, 죽음의 말들, 이미 죽어 있는 그 말들을 여지껏 묻지 못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귀가 더렵혀졌는가.

 

  너무도 더러워서 이제는 더러운 줄도 모르는, 시궁창 같은 입에서 나온 말들이 무덤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돌아 다니며 사람들 마음에 무덤을 만들어 버리는 이 현실에서...

 

  살아있는 말이 아닌 죽어 있는 말들, 죽어야 할 말들, 제 자리로 보내는 운동이라도 해야 하나. 말의 무덤, 언총(言塚)을 만들어야 한다.

 

  정진규 시인의 시집 '공기는 내 사랑'을 읽다가 언총(말무덤)이라는 시를 발견하고는 정말 필요하구나 생각을 했다.

 

이 말무덤을 시인은 '아무도 얼씬거리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는 모두 말무덤을 만들어야 한다. 윤달이 온 해에 미리 수의를 만들듯이, 말무덤을 만들어 놓은 사람, 말을 함부로 하지 못한다. 그는 말을 할 때마다 말무덤을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한 말이 무덤에 들어갈 말인지 아니면 여전히 살아서 사람들 귀에 닿아야 할 말인지 말이다.

 

언총(言塚) 1

 

  언총(言塚)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적극적 형이상학의 소재 하나를 지니고 있으니 아무도 얼씬거리지 마시압 미구에 큰일 낼 것 같습니다 경상도 예천(醴泉) 어느 마을엘 가면 말의 무덤이, 마총(馬塚)이 아니라 언총(言塚)이 있다는 말을 얼핏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상징 실물을 만들어놓은 마을 선대(先代)들께오서는 일찍부터 말씀에 수의를 입힐 줄 아셨으니 침묵의 살을 직접 만지셨던 거지요 스스로 침묵의 봉분을 지으혔던 거지요 놀랍지 않으신지요 대단들 하십니다 직접 다녀와서 제대로 쓸 작정입니다만 언총(言塚)들 참배하러 그간의 내 언총(言塚)들과 함께 나 수일 내 그리로 떠납니다 아무도 얼씬거리지 마시압 손대지 마시압

 

정진규, 공기는 내 사랑, 지식만드는집. 2009년 초판 2쇄. 44쪽.   

 

제발 말무덤들 하나씩 가졌으면 좋겠다. 자신의 마음 속에... 자신의 입에... 그래서 말이 나오기 전에 무덤에 들어갈 말인지, 사람들 귀에 닿아야 할 말인지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그냥 죽은말, 썩은말들이 이렇게 나돌아 다지지 않게. 그 말들도 이제는 안식을 취할 수 있게. 그렇게.

 

허유나 소부나 좋은 말을 들었어도 귀를 씻었다는데, 너무도 오염된 말들을 듣는 우리는 귀를 씻다씻다 귀가 다 헐 지경이니, 제발 무덤 속에 들어갈 말들 이제는 하지 마시압.

 

언총(물무덤)에 얼씬거리지 말라는 시인의 말 신경쓰지 마시압. 언총들 하나씩 장만하시압. 그리고 그 언총들, 사람들에게 가져오지 말고 제 몸 속에만 간직하시압. 제 입 밖으로 나오지 말게 하시압.

 

특히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하는 사람들. 이미 사회에 자리를 잡아 기성세대라는 소리를 넘어 꼰대 소리를 듣는 사람들. 언총들 장만하시압. (시인 풍으로 말한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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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1 09: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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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1 1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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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미술 - 아름다움은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세계사 가로지르기 17
정연심 지음 / 다른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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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제목이 '아름다움은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인데... 책을 읽으며 아름다움이 인간을 변화시켰다기보다는 세상의 변화에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가령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을 통해 일상적인 기성품이라도 작가의 생각이나 의도에 따라서 예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고 하는데, 이는 뒤샹이라는 한 작가로 인해 기성품이 예술로 들어오게 되고, 그것은 워홀의 팝아트를 가능하게 한 것도 있지만, 세상이 이미 기존의 예술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변화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변화를 읽고 그 시대에 맞는 예술을 하는 작가들이 등장한다. 그 작가들로 인해 예술은 과거의 예술과 결별하고 새로운 예술의 세계로 들어간다.

 

르네상스 예술도 그렇고, 인상주의도 그렇고, 초현실주의도, 또 아방가르드 작품도 그렇다. 이렇게 예술은 사회와 떨어질 수가 없다. 사회의 발전을 주도하든, 사회의 발전을 따라가든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그 점에서 '세상을 바꾼 미술'은 읽으면서 사회의 변화도 자연스레 알게 된다. 동서양 미술의 교류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미술과 종교가 어떻게 만났는가도 살필 수 있고, 미술 속에서 여성의 위치가 어떻게 변화했는가, 특히 나체와 누드의 차이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누드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으로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으니, 이 책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고야의 '벌거벗은 마하'라는 그림도 당시에는 문제가 될 정도였다고 했으니,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나체와 누드를 수치심 여부로 명확히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는 미의식의 변화와도 관계가 있다.

 

이런 이야기, 미술은 특정한 종류의 예술이 계속 유지되어 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해 왔다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자연을 그대로 모방하는 단계에서, 사람을 그리게 되는 단계, 왕족, 귀족, 성직자들을 그리던 단계에서 일반 서민을 그리는 단계로 변화하는 과정 등을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는데...

 

이 책을 참조하여 이제 다가올 시대에는 어떤 미술이 나타날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어렵지 않게 청소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썼기 때문에, 또 그림들이 참고로 잘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미술의 역사에 관한 책으로 먼저 읽으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도처에 아름다움이 있다. 이 아름다움이 작가들을 통해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그것이 사회의 변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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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30 09: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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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30 13: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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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진은 신호다

 

위로 위로 쌓아 올린다

점점 높아지고 무거워질수록

출렁출렁 흔들려도

중심을 잡아주는 평형수

땅 속 물은 점점 줄어들어간다

한 번의 충격으로도

기우뚱

손 쓸 틈도 없이

무너져 버리는

생명들

 

내 손으로 올린 건물

내 손으로 퍼낸 생수

내 손으로 없앤 안전

 

도시를

나라를

세계를

세월호로

만드는

개발

 

쓸데없는 증축으로

끊임없는 퍼냄으로

생명이 위험하다는

지진이 알려주는

신호

 

문맹에서

벗어나라는

흔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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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지 못한 출석부
박일환 지음 / 나라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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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참 어렵다. 한때 의식화 교사를 뽑지 않겠다는 의지로, 지금의 블랙리스트와는 좀 다르지만 교사 채용 시험에 교사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고 한다.

 

교사는 노동자인가, 성직자인가, 전문가인가? 지금에 와서는 헛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이겠지만 당시에 교사를 뽑는 정권 입장에서는 상당히 의미있는 질문이었나 보다.

 

노동자라고 하면 의식화 교사가 될 것이고, 성직자라고 하면 무한한 희생을 하는 교사가 될 것이고, 전문가라고 하면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교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하여튼, 교사를 이렇게 어느 한 분야로 축소할 수가 있을까 싶다.

 

교사는 모두여야 하고, 또 하나여야 한다. 즉, 교사는 모든 직업을 가진 사람처럼 행동해야 하고, 그렇지만 교사라는 것을 늘 잊지 않아야 하는 존재다. 이게 바로 '교사'다.

 

그래서 교사라는 직업에는 늘 학생이 함께 한다.  학생이 없는 교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교사에게 학생은 하나가 아닌 전부다. 그렇지만 교사에게 학생은 자신을 늘 괴롭히는 존재다. 어떻게 해야 학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학생으로 인해 괴롭지 않은 교사, 과연 그런 교사가 있을까? 교사의 일상은 학생으로부터 시작해서 학생으로 끝난다. 그래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교사와 학생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너무도 많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 쌓여 있는 장벽, 그 장벽을 하나하나 허물어가야 교사와 학생이 마주 서게 된다. 마주 선 다음 손을 잡게 된다. 손을 잡고 함께 가게 된다. 서로 마음을 열게 된다. 그때부터 교사와 학생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된다.

 

참 이상적인 얘기다. 이렇게까지 교사와 학생 사이에 놓인 장벽들을 부순 사람이 있을까? 있겠지. 그러니 스승이라는 말이 아직 살아있고 교사라는 말보다는 선생이라는 말을 더 자주 쓰겠지.

 

이런 교사의 모습을 이 시집에서 볼 수 있다. 4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시집을 읽다보면 학생과 하나가 되려는, 교사와 학생 사이에 있는 장벽을 부수려고 하는 교사를 만나게 된다. 이런 교사가 있어 학생들이 웃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전에 낸 청소년시집 '학교는 입이 크다'에서 시적 화자가 청소년들이었다면, 이 시집에서 화자는 '교사'다. '교육 시집'이라고 한다.

 

'교사'의 관점에서 시인이 학교를 그만두기까지 느꼈던 일들이 시에 잘 나타나 있다. 하여 우리나라 교육현실의 막막함을 시를 통해서 만날 수 있고, 그럼에도 그 속에서도 자신들의 살 길을 찾아 나가는 학생들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학생들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봐 주는 교사의 모습도 만날 수 있고, 이런 현실에서 무력한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는 교사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한편 한편의 시를 따로 읽어도 좋지만 전체적으로 읽으면 학생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하려는 교사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르게 된다. 그래서 시를 읽으며 어두운 우리 교육현실 속에서도 밝은 희망을 발견할 수가 있다.

 

단 한 줄 그 짧음 속에 들어 있는 촌철살인 시... 이게 지금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다. 그런데, 이 현주소를 이제는 옮겨야 하는데...

 

한석봉과 어머니

 

나는 노래방에서 탬버린을 칠 테니 너는 학원에 다니거라!

 

박일환, 덮지 못한 출석부. 나라말. 2017년. 90쪽.

 

아마 다 알 것이다.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현대판 한석봉들, 그들이 학원만 다닐까? 아니다. 그들도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준비를 한다. 이들에게는 살아있는 꿈틀거림이 있다. 교사-시인은(본인은 시인-교사가 되었어야 한다(154쪽)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이런 학생들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경칩

 

교실마다 뛰쳐나오고 싶은 개구리들이

뒷다리에 잔뜩 힘을 모으고 있다.

 

박일환, 덮지 못한 출석부. 나라말. 2017년. 94쪽.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봄은 온다. 땅이 꽁꽁 얼어 있어도 그 땅을 헤치고 개구리들은 뛰쳐 나온다. 우리 학생들도 그렇다. 그런 학생들을 볼 수 있는 교사, 시인이다.

 

이제 교사-시인은 학교를 그만두었다. 시 '경칩'에서 학생들이 '뒷다리에 잔뜩 힘을 모으고 있'듯이, 시인은 이제 학교라는 틀을 벗어나 사회라는 곳에 뛰어들어 힘차게 달릴 수 있도록 '뒷다리에  잔뜩 힘을 모으고' 뛰어오르고 있다. 사회라는 땅 위로. 

 

그래서 이제 교사-시인은 시인-교사가 될 것이다. 교사가 꼭 학교에만 있으라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시를 통해 청소년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어떤 길을 보여주는 그런 시인으로서 새로운 만남을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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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청소년 시집을 읽고 있는 중.

 

  많은 생각을 하게하기보다는 읽으면서 마음을 열게 하는 그런 시집들이다.

 

  미래를 이끌 청소년들 이야기를 시로 표현한 시인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이렇게 시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시는 우리의 일상을 언어로 표현한 것일 뿐이라고... 시인들은 청소년 시집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읽은 시집이 청소년 시집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지만, 주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이야기를 시로 썼다면 이 시집은 제목부터가 학교를 다니지 않는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한 편 한 편의 시가 독립적이지만 연작소설처럼 시의 내용이 연결이 된다. 몇몇의 아이들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학교 밖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청소년들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에게 학교를 벗어난 것은 많은 것을 잃는 것이기도 하지만(지우와 나-14쪽) 또다른 것들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는 것을.

 

학교는 어른이 되기 전에 겪어야 할 하나의 과정이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학교 밖에도 길은 많다는 것을, 그렇게 담쟁이가 벽을 길로 삼아 가듯이(벽은 길이다 - 24쪽), 이 청소년들 역시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이 시집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가 이 청소년들에게 해줘야 할 말, 바로 '괜찮아'란 말. 고 장영희 교수의 수필에도 이 말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이 시집에서도 이 말은 바로 '세상에서 가장 힘센 말'이라는 표현을 달고 나온다.

 

그렇다. 힘들어 하는, 방황하는, 길을 찾지 못해 잠시 멈춰 있는 아이들에게 해주는 말, '괜찮아' 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서 가장 힘센 말

 

세상에서 가장 힘센 말을 아시나요?

 

사막 한가운데를 걸어가다가

더 이상 한 발짝도 내딛기 힘들 때

올라타면 지친 나를 태우고 터벅터벅

낙타처럼 끈기 있게 걸어가는 말

 

외롭고 추운 눈밭에서도

나를 떨어뜨리지 않고 터벅터벅

소처럼 묵묵히 걸어가는 말

 

아무리 추울 때도 체온이 내려가지 않아

그 말 등에 타기만 하면

핫팩을 백 개는 가진 것 같은

 

내겐 그런 말이 있는데요

나는 가끔씩 그 말에 올라타요

 

학교를 그만둔 날

엄마가 내게 해 준

괜찮다는 말

 

김애란, 난 학교 밖 아이, 창비교육.  2017년. 28-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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