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始源)이 되시다

                              - 장인어른께


당신은

지금껏 우리와 함께 흐르는 물이었습니다

힘든 곳, 쉬운 곳

때론 느리게, 때론 빠르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늘 함께 흐르는 물이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했기에

어떤 곳도 두렵지 않았고

어떤 곳에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당신은

우리에게 시원(始源)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부터

흘러왔는지 알려주는 지표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계속 흐르게, 당신은

지금 우릴 만들어준 근원이 되셨습니다.

근원이 되어 당신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계속 흐르는 우리들 속에

당신은 영원히 함께 흐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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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3 17: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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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3 20: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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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의 정원 대산세계문학총서 125
바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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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진(巴金), 이름만 듣다가 그의 작품을 처음으로 읽어보았다. 중국 소설가로 꽤나 이름이 알려져 있는 작가인데, 이제서야 읽게 되다니. 그간 중국 소설 쪽에는 고전(삼국지, 수호지, 열국지, 서유기)을 제외하고는, 루쉰의 작품을 읽은 것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몇 작가의 작품을 읽은 적은 있지만 (빨간 기와, 로빙화와 같은 작품들) 그다지 흥미를 갖지 못했다. 그럼에도 중국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냥 넘어갔었는데...(나중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모옌의 작품을 읽을 생각)

 

최근 장아이링의 작품을 시작으로 중국 작가들의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세계문학이라고 하면서 어쩌면 서양 쪽으로 치우친 독서 경향을 바로잡으려는 마음도 작용하기 시작했고.

 

바진은 중국 격동기에 살았던 작가다. 약력을 보면 그는 아나키즘에 많이 경도되었다고 하던데... 바진이라는 이름도 바쿠닌과 크로포트킨의 첫자와 끝자를 따서 지은 필명이라고 하고.

 

처음으로 읽은 '휴식의 정원'은 나름대로 읽을 만했다. 중국이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몰락한 한 가정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사회는 변해가는데 자신은 과거에 얽매여 결국 재산을 다 탕진하고 죽음에 이르는 양씨 집안 셋째와 그럼에도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그의 아들 양도령, 그리고 지금 부자로 지내고 있는 친구 라오야오와 그의 아들 샤오후. 이를 바라보는 소설가인 나, 라오리.

 

봉건시대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사회의 변화를 보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세계에 갇혀 산다. 바로 양씨 집안의 셋째가 그렇다. 그는 재산을 탕진만 하고 생산적인 일은 하지 않는다. 축첩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든지, 체면에 얽매여 몸을 움직이는 일, 남 밑에 있는 일은 하지 않는다.

 

집안이 망해가는데도 그는 여전히 과거의 습성에 젖어 있다. 반대로 그의 큰아들은 이런 아버지의 생활태도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는 이미 근대인인 것이다. 그가 우정국(우리말로 하면 우체국)에 취업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가족에게 쫓겨난 그, 하지만 그의 둘째 아들 양도령은 그런 아버지도 역시 아버지라고 인연의 끈을 놓지 않는다.

 

양도령의 사랑을 온전히 받고 있는 양씨, 그러나 그는 비렁뱅이로 지낼지라도 생산적인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병을 고쳐 새로운 생활에 나아가려고 하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이 양도령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아들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사라지고 만다. 죽음으로 영원히.

 

이것을 바라보는 작가에게 또다른 과거의 인물이 등장한다. 양씨는 이미 어른인 과거라고 하지만, 작가의 친구인 라오야오의 아들 샤오후는 미래를 살아갈 인물이긴 하지만 그는 이미 과거의 인물이다.

 

그가 하는 행동은 양씨의 행동과 다를 것이 없다. 그는 미래를 살지 못한다. 아니 살아갈 수가 없다. 이미 양씨의 몰락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작가는 그래서 그를 죽음으로 이끈다. 과거의 인물이 발 디딜 곳이 이제는 중국에서도 없는 것이다. 이젠 과거의 인물을 대신할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

 

친구와 재혼한 부인인 자오화가 임신을 한 것이 그 예가 된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를,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갈 것이다. 마찬가지로 양도령도.

 

비극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과거의 인물이 비극으로 사라져 줌으로써 미래의 인물이 희극을 이룰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고 있다.

 

바진의 이 소설은 그래서 비극적 삶을 다루고 있지만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 속에서 자오화가 소설가인 주인공에게 요구한다. 왜 소설에 비극만 있냐고. 소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사해주면 안 되냐고.

 

이것이 소설가인 주인공에게 다른 결말을 지닌 소설을 쓰게 한다. 소설 속 소설과 이 소설이 함께 하면서 새로운 희망, 아름다움, 행복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그것이 과거의 인물을 사라지게 한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세상사가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고, 무엇 하나 뜻대로 되는 게 없다는 건 잘 알아요. 하지만 소설가는 세상을 봄더 따뜻하게 만들어줄 수 있잖아요. 눈물 흘리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모든 이가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을요.' (75쪽)

 

라오야오의 아내인 자오화가 영화를 보고 오면서 작가인 라오리에게 하는 말. 이 말이 바로 작가가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도 비극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희망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우리 세상이 아무리 암흑일지라도 한 줄기 빛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꼭 있다. 그 빛으로 인해 사람들은 견뎌내고 어둠을 이겨내는 것이다.

 

바진의 이 소설,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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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하게 이 시집을 읽으며 자꾸 '4퍼센트 우주'라는 말이 생각났다.  무한하다고 생각하는 우주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이 겨우 4퍼센트라는.

 

  나머지는 알 수 없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아니 모두가 알 수 없는 물질은 아닐테지만, 우주 자체도 밝혀진 것이 너무도 적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네 삶은. 우리네 삶 역시 4퍼센트 정도밖에 알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사람을 각 부분별로 해체해서 다시 결합한다면 다시 그 사람이 될까? 아니,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각 부분들의 합이 그냥 사람이 아니라, 그 부분들 사이사이에 있는 알 수 없는 무엇이 그 사람을 구성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알려지지 않은 그 사이들... 사이들이 이루는 무엇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왜 나희덕의 이 시집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허공'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어둠'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상하게도 이 시집에는 '비어 있음' 이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그런, 여기도 저기도 아니고, 나도 너도 아닌, 비어 있는 '허공' 그런 느낌을 주는 시들이 많다.

 

비어 있음... 그 비어 있음으로 채움. 노자의 도덕경을 연상시키는 시들이 꽤 있는데, 시집을 읽다 보면 비어 있음을 비어 있음으로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그 비움 속으로 들어가는 것, 어둠 속에서 길을 내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싶다.

 

4퍼센트 인간이라고 하면, 지금 살아 있는 바로 여기는 참으로 소중한 시간과 장소이다. 다음으로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그런 장소.

 

허공이나 어둠이 소중한 이유는 바로 '지금-여기'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을 소중히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모르는 96퍼센트를 위해 시간을, 정열을 낭비하지 말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4퍼센트의 나를 위해 '지금-여기'를 살아가야 한다는 말. 그렇게 이 시집을 읽었다.  물론 모든 시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이 시집에서 그런 '소리'를 들었다.

 

미루지 말자, 뒤로 넘기지 말자. 광활한 우주도 4퍼센트의 물질로 충분히 우리에겐 존재한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몇 퍼센트 안 되더라도 내 삶은 너무도 소중한 전부다. 그 전부를 다른 것으로 바꾸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가 마음에 와닿았다.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우리 집에 놀러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와.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짐짓 큰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조등(弔燈) 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그가 너무 일찍 피워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나희덕, 어두워진다는 것. 창작과비평사. 2002년 8쇄. 40-41쪽. 

 

너무 늦게 놀러가지 말자. 함께 해야 할 때가 있다. 나든 너든, 우리든. 그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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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1 13: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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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1 15: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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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1 16: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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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1 20: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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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중국 현대사. 격동의 현대사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서양의 침략이 일어나고 있을 때 중국민을 아 큐로 표현했던 루쉰이 있었다면, 그 이후 중국에서 아 큐와 비슷한 인물을 꼽으라면 허삼관을 꼽을 수 있겠다.

 

자신의 피를 팔아 가족의 생계를 유지했던, 어쩌면 우리나라로 치면 흥부에 해당하는 인물일텐데... 루쉰의 작품이 무겁고 어둡고 진지하다면 위화의 이 작품은 가볍고 밝고 해학적이다. 흥부전 읽으면서 우리는 흥부의 가난에, 흥부가 매품을 파는 것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오히려 웃음을 머금는다. 그러나 그 웃음 속에는 깊은 슬픔, 사회 모순에 대한 깨달음이 있다. 이 허삼관 매혈기도 마찬가지다. 순수한 인물, 허삼관.

 

세상에 물을 많이 마시면 그만큼 피가 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오줌보가 터지기 직전까지 물을 마시고 피를 파는 사람. 가족에게 큰 돈이 필요할 때마다 자신의 피를 파는 사람.

 

그가 피를 파는 장면이 엄숙해야 할텐데, 웃음이 유발되는 것은 작가가 당시의 사회를 비판하는데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한 발 비껴서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설적인 비판이 아니라 우회적인 비판. 이것이 더 무섭다. 문화대혁명같이 중국을 광풍으로 몰아넣었던 그 시대를 허삼관의 아내인 허옥란을 비판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희화화된 권력을 만나게 된다.

 

허삼관이 순수한 인물로 우리에게 다가오면 올수록 당시 중국의 모습은 더욱 처절하게 다가오게 된다.

 

세아들을 둔 허삼관은 첫째 아들 일락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님을 알고도 끝까지 키운다. 그를 위해 자신의 피도 판다. 둘째, 셋째 아들에게라도 마찬가지였을 터.

 

결국 이런 허삼관의 생활을 통해 사회주의권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은 그 가난을 벗어나기가 힘들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모습은 바로 피를 사게 해주는 관리 이 혈두에게서 잘 나타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소설에서는 사회비판보다는 가족간의 따스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한번씩 바람을 피웠지만 아내 허옥란이 마지막 장면에서 아들들을 야단치는 장면...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희생한 아버지의 삶을 인정하게 한, 식당에 가서 허삼관이 원하는 것을 사주고 먹게 하는 장면에서는 그간 허삼관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지게 된다.

 

비록 아주 풍요롭지는 않지만 그래도 허삼관 가족들과 화기애애하게 잘 살아간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해학적으로 그린 소설이라 할 수 있다.

 

흥부전에서 흥부 역시 잘 먹고 잘 살았더라가 되지 않던가. 허삼관 역시 결국에는 잘 살았더라는 결말이 된다.

 

그렇게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격랑의 중국 현대사를 건너온 한 남자 이야기, 바로 이 점이 그가 아 큐와 달라지는 점이다. 중국이 비극으로 달리지 않고 희극으로 가고 있음을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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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12-09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kinye91 2017-12-09 13:38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에서 영화로도 만들었는데, 저는 영화를 보지 못해서 이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소설과 어떻게 다르게, 또는 어떻게 비슷하게 표현했는지 보고 싶어서요.

munsun09 2017-12-09 13:42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하정우 감독.주연 영환데 장편소설을 담기엔 좀 바빠보였어요^^ 아무 기대없이 보시면 그또한 괜찮지싶어요
좋아하는 작가책을 오랜만에 보니 반가워서
글 남깁니다~~
 

 

"잎사귀는 꽃의 어머니야. 숨쉬고, 비바람을 견디고, 햇빛을 간직했다가 눈부시게 하얀 꽃을 키워 내지. 아마 잎사귀가 아니면 나무는 못 살 거야. 잎사귀는 정말 훌륭하지."

 

"잎싹이라……. 그래, 너한테 꼭 맞는 이름이야."

 

황선미. 마당을 나온 암탉 중에서 잎싹과 나그네의 대화.

 

 

이름, 참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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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8 09: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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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8 1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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