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을 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최인훈이 쓴 소설 '광장'이 생각났다.

 

  4.19가 없었더라면 어쩌면 지금 우리 곁에 없었을 소설. 그렇게 소설 '광장'은 4.19와 함께 우리에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읽히는 소설로.

 

  이 영화도 '광장'과 비슷하지 않을까. 만약 작년의 촛불이 없었더라면 과연 이 영화가 개봉할 수 있었을까?

 

  이 시대에도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존재해, '변호인'이라는 영화를 만들고 제작, 배포했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기도 했다는데...

 

  이렇게 시대상황을 정면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과연 전(前) 정권에서 - 한자를 쓰는 이유가 있다. 그냥 한글로 전 정권하면 전두환의 전(全)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때 전 정권은 박근혜 정권을 말한다- 가만히 놔두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박종철의 죽음으로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우리의 1987은 이렇게 박종철의 죽음으로 시작해 이한열의 죽음을 거쳐 12월 대선으로 막을 내린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를 위해 희생되었는데, 그런 희생을 바탕으로 열렸던 열매를 전혀 엉뚱한 사람이 따먹게 되는 그런 결말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서인지 영화는 이한열의 장례식에서 멈춘다. 1987년의 절반에서 영화가 멈춘 것이다.

 

이후에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노동자들의 대투쟁, 그리고 대선을 둘러싼 정치권, 운동권들의 이합집산은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여기까지 나아가면 1987년 민주화 투쟁에 대한 이야기가 엉뚱하게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개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이때 민중들이 쟁취한 헌법은 지금 '87년 체제'라는 이름으로 지금 시대에는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벌써 30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시대에 맞게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드는데...

 

영화는 엄혹한 현실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시대를 살아왔다는 것에 참 험한 세상을 이렇게 살아서 지금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영화다.

 

영화에서 벌어진 일을 직접 겪었거나 소문으로 들었거나, 신문에서 보았거나 함녀서 그 시기를 함께 겪었기에 영화는 남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금은 고문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믿자. 또한 시위로 인해서 목숨을 잃는 경우도 거의 없다.

 

(민주화 이후,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도 최루탄은 없어졌지만, 백골단도 없어졌지만, 시위로 인해 죽음에 이른 사람은 사라지지 않았다. 숫자가 줄긴 했지만... 하지만 1987년처럼 시위를 나갈 때 비장한 각오로 나가지는 않는다. 그만큼 이제는 공권력의 직접적인 폭력에서는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치안감으로 분한 인물이 위협하는 말이 너무도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는 고문으로, 돈으로 안 되면 '가족'을 볼모로 위협을 한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지켜줘야 할 가족의 목숨을 위협으로 내세우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위협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겪는 신체적인 고통이야 견딜 수 있지만, 자신으로 인해 가족이 겪어야 할 고통까지는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장면들이 영화 '선택'을 떠올리게도 했다. 장기수들의 비전향 이야기를 다룬 영화.

 

비전향 장기수들이 전향을 하지 않을 때 이들이 마지막으로 동원하는 수단이 바로 가족이다. 네가 전향 안 하면 가족들이 제대로 살기 힘들다는.

 

그런데 이 영화 '1987'에서는 아예 가족들의 목숨을 담보로 잡는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인다는 말이 아니다. 이들을 죽여서 간첩으로 몰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자신의 동료였던 경찰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이런 일들을 벌였던 집단이 우리나라 공권력인 경찰, 안기부, 검찰 등등이다.

 

물론 이 위에는 독재자가 버티고 있었고. 꽤나 오랫동안 자행되었던 이런 가족을 두고 하는 위협들...

 

영화는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고문에도 굴하지 않았던 사람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려 자백을 하게 되는 그런 모습...

 

영화는 그런 장면을 빗겨가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슬프다. 인간의 존엄이 그렇게 무너져 내릴 때, 그가 겪어야 할 고통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솟을 수밖에 없다.

 

영화 '선택'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 "0.75평,지상에서 가장 작은 내 방 하나"인데...

 

이렇게 사람의 정신을 무너뜨리는 수법을 썼던 그들이 결국은 죗값을 치르게 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과연 그들은 자신이 저지른 죄만큼 죗값을 치렀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들 자신이 처절하게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는 한 그들은 영원히 자신의 죄값을 치르지 못한다.

 

고문기술자라고 하던 사람이 회개했다고 목사가 되었다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가. 지금은 목사를 하지 못한다고 하던데... 이런 고문들, 영화에 나와 우리에게 경각심을 가지라 한다.

 

그런 시대를 건너왔다고. 우리가 지금 웃으며 시위를 하지만, 그때는 아니었다고. 그것이 바로 얼마 전 우리 시대였다고.

 

이한열의 죽음. 그리고 그의 운동화. 소설 'L의 운동화'가 생각났다.

 

너무도 슬픈 모습. 그렇게 세상을 등져야 했던 한 젊은이. 영화에서그의 죽음 장면을 보는 일은 여전히 슬프다. 여전히 분노할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최루탄의 각도를 규정대로 하는 전경들의 뒤통수를 치며 총을 내리게 하는 장면이 얼핏 나온다.

 

직선으로 나는 최루찬은 살인무기다.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의 각도를 낮추는 것은 국민을 죽이겠다는,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것은 국민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그런 시대에도 목숨을 걸고 나섰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지지했던 사람들, 수많은 그들이 모여 우리 사회를 바꾸었다.

 

대통령 직선제 쟁취... 형식적으로나마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그 시대의 모습이 30년이 지난 지금에 겹쳐진다.

 

다시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정권을 국민의 힘으로 끌어내렸으니 말이다. 그렇게 이제는 독재로 돌아갈 수 없는 우리 사회가 되었다.

 

영화는 그 점을 상기시켜 준다. 우리는 다시는 독재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우리는 민주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고.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1987년은 2017년에 재현되었다. 그때의 민주화가 미완성의 민주주의라면 지금은 완성된 민주주의를 이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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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1 08: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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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1 09: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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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 - 우리에게 필요한 페미니즘 성교육
페기 오렌스타인 지음, 구계원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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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미국의 '성' 이야기다. 우리에게는 자칭이든 타칭이든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로 알려진 미국의 '성' 이야기다.

 

'성'에 대해서 금기시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성개방이 잘 이루어져 있는 나라라고, 남자와 여자의 성 평등이 잘 이루어져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미국의 '성' 이야기다.

 

미국이 양성평등이 잘 이루어진 나라라고? 이런 질문을 하게 만든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의 말미에 가면 네덜란드 이야기가 나온다. 네덜란드가 얼마나 성교육이 잘되어 있는 나라인지, 저자는 네덜란드의 부모들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겨우 미국을 배우자고 하고 있는 중인데, 그 미국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일텐데 - 사실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성평등 지수가 높을 수도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여성을 수단으로 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으니 - 네덜란드에 대해서 말하면 무엇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성교육 분야에서는 우리나라는 가장 보수적인 면을 보이는 나라일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하는 성교육이 '순결교육'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콘돔을 써야 한다는 정도... 이게 미국을 따라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데도, 이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페미니즘 성교육이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는데... 영어 제목을 보면 'GIRLS AND SEX'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우리나라 번역본에서 붙인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이라는 제목은 내용을 포괄적으로 의미할 뿐이다.

 

사실, 성교육에 관한 책이라기 보다는 미국 소녀(소년들? 또는 여자와 남자들?)들의 성생활 보고서라고 하는 편이 옳겠다.

 

사례들이 풍부하게 나오기 때문인데 - 이런 글쓰기가 미국식 책을 이루는 기본 구성방식이기도 하다 - 이 사례들을 통해 서로를 존중하는 '성' 문화를 확립하기를 저자는 바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성' 사례들은 미국의 '성' 생활이다. 미국 십대들의 '성' 생활이다. 첫장면부터 충격적인 이야기가 나오는데, 미국이겠지 하는 생각으로 읽어나가게 된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일 수도 있겠지만...

 

십대들이 오럴 섹스를 자연스럽게 한다는 것... 그것을 섹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그저 애무 정도의 수준으로 생각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임신의 위험이 없고 등등의 생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하여 십대 남자들이 십대 여자들에게 오럴 섹스를 시킨다는 것, 관계를 해치기 싫은 여학생들이 해준다는 것... 이런 내용으로 책은 시작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교육해야 하지? 페미니즘 성교육은 이런 오럴 섹스에 대해서 어떻게 교육해야 하나?

 

그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싫으면 싫다고 해야 한다는 것,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황까지 가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이는 오럴 섹스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실 오럴 섹스라고 이름을 붙일 정도면 이미 섹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형법에는 이런 조항이 있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개정 2012.12.18.>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구강, 항문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일부 또는 도구를 넣는 행위를 한 사람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이에 의하면 오럴 섹스는 유사강간에 해당한다. 범법 행위인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에서 청소년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이런 행위를 우리나라 법의 잣대로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충격적인 상황에 대한 설명에서 책은 좀더 성교육에 가까운 쪽으로 나아간다. 청소년들 사이에 유행하는 훅업 문화, 이를 가볍게 만나 즐기기 정도로 해석해도 좋을텐데, 이런 문화에서 청소년들이 '성'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

 

훅업 문화에서 오럴 섹스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더 나아가 성폭행까지 나아간다고 하는 것이다. 이 훅업 문화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술'이고, '술'로 인해 '성폭행'까지 나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게 문제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자신의 몸과 상대의 몸의 즐거움을 일깨우는 것이 아닌, 일방적인 사정에 그치고 마는, 남성의 일방적인 발산이 이루어지는 그런 '성'문화가 일어난다는 것이.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오럴 섹스가 자주 일어난다고 해도,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 해주는 경우가 많고, 남자가 여자에게 해주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너무도 적다는 것. 즉, 이런 행위 자체도 일방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결국 양성 평등이 잘 이루이진 것 같이 보이는 미국에서 대학에서든, 고등학교에서든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것도 가해자의 잘못이 아닌 피해자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 요즘은 분위가기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성교육은 어떤 것이어야 하나? 여성이나 남성, 일방적인 한 쪽만을 위한 성교육은 없다는 것. 성교육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존중에서 상대의 몸과 마음에 대한 존중과 함께 해야만 한다는 것.

 

성을 두 개의 성으로만 나누는 것에 대해서도 이 책은 반대하고 있다. 동성애에 관한 장이 있는데... 미국 역시 우리나라와 달리 동성애에 관해서는 그다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성교육이 네덜란드에서는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고, 미국에서도 이런 성교육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 그런 이야기를 책의 끝부분에서 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성'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성'을 즐길 권리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성'은 감추고 으슥한 곳에서 남몰래 행해야 하는 행위가 아니라 서로가 더 즐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미국 청소년들의 '성' 실태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면 충격적이랄 수 있는 그런 '실태'를 앞부분에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른들이 막는다고, 가린다고 청소년들의 '성생활'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청소년들은 이미 다양한 방법으로 '성'생활을 하고 있다고, 그렇다면 어른들이 할 일은 이들의 그런 '성생활'을 막는 성교육이 아니라 이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서로를 존중하는 '성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는 것.

 

이것이 바로 페미니즘 '성교육'이다. 페미니즘 성교육은 여성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모든 성에게 해당하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 성교육이다. 그것이 양성이든, 동성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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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0 08: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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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0 08: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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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0 12: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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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0 17: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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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관 겨울호를 받아보았다. 늘 이야기하지만 집 안에서 문학관을 나들이 하는 기분이 든다.

 

  이번호에는 읽을 만한 동화가 실려있다. 어쩌면 아직도 우리가 해결하고 있지 못하는 국제문제...

 

  벌써 몇 십년 전부터 이런 문제들에 대해 많은 작품들이 나왔지만, 문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러니,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지내야 하나. 이제는 우리 힘으로 스스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고.

 

  토끼와 원숭이에 빗대어 우리나라 국제관계를 쓴 동화, 마해송의 '토끼와 원숭이'라는 동화가 원본을 영인하는 형식으로 이 문학관 75호에 실려 있다.

 

평화롭던 토끼 나라가 원숭이 나라에 병합이 되고, 그들과 같아지기를 강요당하는 모습이라든지, 다시 주변의 센이리와 뚱쇠나라가 나와 그들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토끼의 모습이라든지, 마치 우리나라 국민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그런 동화다.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이 동화를 통해서 알려주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여전히 진행중인 이런 문제...

 

문학관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미래를 열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이 책자에 실린 이런 동화를 보면서 느끼게 된다.

 

이것과 더불어 이번 호에는 바다를 소재로 한 우리나라 시인들과 작품이 실려 있다. 식민지시대 우리나라 시인들에게 바다가 어떻게 다가왔는지, 그들이 바다를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알 수 있어서 좋다.

 

문학관의 이런 노력이 나를 문학관으로 한 발 더 끌어당기고 있으니, 그도 좋은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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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9 16: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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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9 19: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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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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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가 쓴 작품 중에 네 번째로 읽은 책, 소설로는 세 번째.

 

제7일, 무언가 환상 속에 이야기가 펼쳐지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제목이다. 중국어판에도 이런 구절이 들어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번역본에는 시작하기 전에 성경의 창세기 구절이 쓰여 있다.

 

'하느님께서는 엿샛날까지 하시던 일을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이렛날에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제목이 된 제7일은 모든 것이 완성되는 날이다. 모든 것이 완성되는 날, 그 날은 어떤 날일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는데...

 

시작부터 이상하다. 죽었다. 주인공이 죽었다. 주인공이 죽었는데, 죽은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분명 괴기스러운 소재인데, 전혀 괴기스럽지 않다.

 

오히려 읽어갈수록 마음이 따스해진다. '허삼관 매혈기'를 읽을 때 저절로 웃음이 머금어지는 그런 전개와는 다르게, 또 '가랑비 속의 외침'을 읽으며 참 어두운 분위기구나 하는 느낌과 다르게, 이 소설은 죽음 이후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따스하다.

 

밝다. 사랑이 넘치고 있다. 그 사랑 넘침을 죽음 이후에 무덤 속으로 가지 못한 주인공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가난하지만 서로를 위하며 사는 사람들, 죽음 앞에서도 결코 평등할 수 없는 사람들. 빈의관이라고 쉽게 말하면 화장터에서조차도 권력과 금력에 따라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지만,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중국에서, 권력과 금력을 소유한 자들이 어떻게 떵떵거리고 사는지, 그리고 죽은 뒤에도 어떤 차이가 나는지를 이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이런 사회비판적인 면도 있지만, 이것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냥 빈의관에서 귀빈석과 평민석이 따로 있다고 표현하는 것, 그들이 쓰는 화장로도 다르다는 것 정도가 나타나 있을 뿐이다.

 

이런 모습보다는 가난하지만 서로를 사랑하고 돕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 소설에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사건사고를 감추는 모습이야 어느 권력이고 비슷하다지만, 이 소설에서도 그런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소설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은 주인공은 양페이와 그가 만나는 보통 사람들, 아니 더 가난한 사람들이다.

 

위화 소설이 지닌 짧고 경쾌한 문장으로 인해 이들의 비극이 무겁고 칙칙하게 펼쳐지지 않는다. 이들은 비극적인 사고로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삶을 긍정한다.

 

무덤조차 마련하지 못해 구천을 떠돌고 있을지라도 서로를 위로하고 함께 하는 모습을 통해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서로를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죽을 때가 되자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자신을 철로에서 주워 키워준 아버지 양진바오, 그리고 자신을 떠난 여인 리칭, 가난한 셋집에 살던 우차오와 류메이, 아버지의 친구로 양페이를 돌봐준 리웨전 아줌마 등등.

 

모두가 가난하지만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간 사람들, 죽어서도 서로를 위하며 지내는 사람들, 돈이 없다는 이유로 무덤조차 갖지 못하고 또 관료의 책임회피로 자신의 유골이 아닌 다른 유골을 매장한 상태로 지내고 있는, 그들이 모여 지내는 곳.

 

마지막으로 류메이가 무덤으로 떠나갈 때 들어온 우차오는 양페이와 함께 이곳에 간다. 양페이가 자신의 아버지 양진바오를 찾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날이 바로 '제7일'이다. 양페이가 이제는 편히 쉴 곳.

 

양페이가 의혹에 차 있는 우차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곳에는 가난도 없고 부유함도 없어. 슬픔도 없고 고통도 없고, 원수도 없고 원망도 없어 ……. 저기 사람들은 전부 죽었고 평등해.

"저곳은 어떤 곳인가요?"

그가 물었다.

"죽었지만 매장되지 못한 자들의 땅." 

내가 대답했다.      (314쪽)

 

이렇게 제7일은 끝난다. 가난한 사람들, 이들은 죽어서도 자신들의 쉼터인 무덤을 갖지 못한다. 그러나 그렇게 끝이 아니다. 이들은 함께 모여 산다. 죽었지만 매장되지 못한 자들의 땅에서.

 

톨스토이는 사람에게 얼마 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작품에서 사람에게는 한 평의 땅, 죽어서 묻힐 그 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아니다.

 

현대 중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 한 평의 땅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화장한 유골을 넣고 보관한 0.1평정도의 땅도 허용이 되지 않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렇게 죽음 이후에도 이들이 불행하게만 살아서는 될까. 아니다. 위화는 소설을 통해서 이 사랑이 넘치는 이들에게 쉴 곳을 제공해야 한다고, 죽음 뒤에도 불평등이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죽은 사람인 양페이가 주변 사람들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면서... 그렇게... 정말로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죽음 앞에서조차 불평등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죽어서 서로를 위하는 가난한 사람들,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죽음을 통해 '제7일'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제7일'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사회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에게 삶에서 그런 '제7일'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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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세밑 닭과 개의 대화

     - 정유(丁酉)년이 가고 무술(戊戌)년이 오니


민주주의 새벽을 깨운 올해

새로운 시대를 향해

깨어있으라고

우리는 목청껏 울었다네

우리의 울음으로

시민들은 잠을 깨

세상 어둠을 몰아내고

새로운 걸음을 걷고 있다네

이젠 자네 차롈세

이들의 걸음을 막는 세력을

자네가 막아주고

이들과 함께 가기를


늘 사람과 함께 하며

사람을 지켜 주는 안내견처럼

나는 민주주의를 충실히

안내하겠네

누군가 침입하면

컹컹 경고하며

자네가 깨운 민주주의가

지켜질 수 있도록

나는

충직한 문지기

충직한 안내자로

풍요로운 다산의 사회를

만들고, 넘겨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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