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는 억울하겠다.

 

자신은 제 삶을 살뿐인데, 이리저리 왔다갔다 줏대없는 사람을 자신에 비유하니 말이다.

 

특히 이익만을 좇아 이 정당 저 정당 옮겨다니는 정치인을 우리는 철새라고 한다.

 

철새는 제 삶의 길을 스스로 갈뿐이지만, 정치인은 이익을 좇아 움직일뿐.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데, 철새라고 하니 철새가 어찌 억울하지 않겠는가.

 

정치인들은 제 삶의 길, 자연의 길이 아니라 제가 정권만 잡으면 되고, 정당과 상관없이 자신이 당선만 되면 되니까.

 

이하석이 낸 시집 "상응"을 읽다가 '새1, 새2'라는 시를 읽으며 우리나라 정치인을 생각했다. 최근에 다시 이합집산하는 그 정치인들.

 

그런 정치인들을 떠올리니 새삼 새들이 억울하겠단 생각을 했다. 텃새가 아니라 철새가.

 

억울하게 조류독감을 옮기는 병원체라고 온갖 시련을 당하기도 하는데, 이런 정치인들에게 빗대어 표현되다니...

 

이하석의 시는 참 줏대있는 새들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줏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시는 긍정으로도 부정으로도 읽힌다.

 

어떻게 읽느냐는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새1

 

  제 18번곡만 온몸의 생황으로 줄곧 불어대는 새. 우리들의 신청곡은 받지 않네.

 

이하석, 상응, 서정시학. 2011년 초판 3쇄. 25쪽.

 

 

새2

 

새는 사투리를 쓰지 않네.

서울 새든 고령 새든.

이하석, 상응, 서정시학. 2011년 초판 3쇄. 26쪽.

 

어떻게 해석이 될까?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시민들의 말은 듣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정권 쟁취만을 위해서 달려가는 그런 정치인은 '우리들의 신청곡은 받지 않'는 정치인일테고...

 

반대로 여러 이익단체들에게서 오는 로비를 거절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제 말을 하는 새는 '우리들의 신청곡을 받지 않'는, 그러나 '제 18번곡만 온몸의 생황으로 줄곧 부는'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그런 새일테고...

 

지역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치인은 '사투리를 쓰지 않'는 그런 새일테지만,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야말로 똘똘 뭉치는 정치인 역시 '사투리를 쓰지 않'는 정치인일텐데.

 

올해는 지방선거가 있다. 정치권이 벌써부터 요동치고 있다. 탈당했다가 다시 복당한다는 개인적인 철새들이 있고, 이 당과 저 당을 통합하자는 통합파 철새들도 있고, 이 길이 내 길이다 하며 제 길을 가는 철새들도 있다.

 

어떤 철새... 철새도 한곳에 계속 머무르면 텃새가 된다던데... 이제 우리는 어떤 '새'들을 우리를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뽑아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기후가 변했다고, 생활환경이 변했다고 저만 훌훌 날아가버리는, 제 둥지를 헌신짝 버리듯 버리는 그런 새들이 아닌, 우리들과 함께 하는 그런 새들... 그런 정치인들... 올해... 정말, 우리에게 어떤 새들이 필요한지...

 

이하석의 짤막한 시를 통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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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 사육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1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승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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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깝고도 가장 먼 나라. 어쩌면 중국과 일본은 우리에게 그런 이웃나라일테다. 중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다시 부상하고 있는데도, 중국 문학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지내고 있는 형편.

 

과거 삼국지, 수호지, 열국지, 초한지 등은 열심히 읽었으면서도 현대 중국 문학은 루쉰을 제외하고는 거의 읽지 않았다. 기껏 최근에야 위화나 모옌, 바진(파금), 장아이링 등의 작품을 읽긴 했지만, 기나긴 역사를 자랑하고, 수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이라는 나라의 작가들에 대해 이 정도면 무지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현대 중국과 교류가 된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애써 위로하면서 이제 많이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렇다면 일본은? 일본 문학은? 어렸을 때 읽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고, 그나마 최근에 읽은 작가라고는 오쿠다 히데오 정도일테니...

 

일본을 이웃으로 두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에게 식민지 치욕을 안겨준 나라라서 그런가, 그럼에도 근대 우리나라 문학에서 일본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을텐데...

 

일본 작품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너무도 서양에 편중되어 있던 문학 읽기 아니었나 하는 반성을 하면서.

 

오에 겐자부로는 이름을 알고 있었고, 또 그가 쓴 '히로시마 노트'나 '오키나와 노트', '나의 나무 아래서' 등은 읽어서 알고 있는 작가다.

 

그렇지만 그가 쓴 소설은 읽은 적이 별로 없다. 어쩌다 지나가면서 다른 작가들과 함께 엮어 있는 소설을 읽은 적은 있을지 몰라도, 특별하게 기억하지는 못한다.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단 한 편도 과거에 읽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오에 겐자부로에 대해서 너무 소홀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인데... 정작 작품은 읽지 않고 다른 글들만 읽었다니 하는 생각.

 

오에 겐자부로 자신이 직접 선택한 작품들을 모아 놓은 책이라고 한다. 이제 말년에 접어든 그가 자신의 과거 작품을 다시 읽으며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놓았다.

 

그의 삶을 소설을 통해서 알게 된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사소설(私小說)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이 소설집을 읽다보니 사소설이라는 말이 머리 속에 들어온다.

 

작가의 경험을 소설 속에 드러내는 것. 이것이 바로 사소설의 기본 아니었던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던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사를 소설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젊은 시절, 그가 도쿄대에서 프랑스문학을 전공했다는 것, 그것은 초기 단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데서 찾을 수 있고, 일본이 미군의 점령으로 겪었던 일들을 '아인간양, 돌연한 벙어리'라는 단편에서 만날 수 있다.

 

중기나 후기 단편에서는 평화주의자로서의 오에 겐자부로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런 사회문제들과 더불어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사적인 이야기도 소설에 많이 등장한다. 자신의 아들과 관련된 이야기.

 

이렇게 소설을 통해서 그의 삶을, 또 전후세대라고 자처하는 일본 사회의 지식인들의 고뇌를 알 수 있다.

 

결국 이 소설집을 통해서 태평양 전쟁이 끝난 뒤 지금까지 일본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었던 점들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이 소설이 지닌 특징이기도 하겠다.

 

그리고 사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 자신의 삶이 개인의 삶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삶이 될 수 있음도 이 소설집을 통해서 잘 알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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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녹색평론은 '중국'을 특집으로 삼았다.

 

  작년에 사드 문제로 인해 말도 많았던 중국과의 문제. 지금은 어느 정도 봉합이 되었다고 하지만, 완전히 해결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만큼 중국이 추구하는 방향과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이 일치한다고 볼 수 없는데... 그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미국'이다.

 

  세계 제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그러나 이제 미국은 지는 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미국의 상태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글이 이번 호에 실려 있다. (박인규, 미국의 쇠퇴와 그 이후)

 

미국에 너무도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생각해 봐야 할 글이고, 이제 세계 최강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다.

 

중국과 관련된 글은 작년에 시진핑이 제시한 중국이 추구하는 비전과 현실을 분석한 글들이 대부분이다. 긍정과 부정이 적절하게 섞여 있는데...

 

중국이 최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 방법이나 그렇게 되었을 결과에 대해서는 관점이 다른데...

 

중국은 이제 기후변화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중국의 고도성장이 우리나라에는 직접적으로 미세먼지를, 세계적으로는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중국이 친환경 정책을 편다면서도 실질적으로 들어가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 (리처드 스미스, 중국은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을까)

 

중국의 꿈이 과연 실현가능한지, 세계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는 글 (박민희, 시진핑의 '대약진',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19차 공산당대회와 '중국의 꿈')

 

중국은 과거부터 위기를 농업에서, 그것도 소농에서 찾아 해결해 왔다는 오래된 미래를 제시하는 글 (원톄쥔. 토지개혁으로 위기를 극복해온 중국)  이 글은 우리나라 농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많은시사점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의 민주주의와 북한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글 (유용태, 20세기 중국의 민주주의 구상, 션즈화, 역사의 진실로 본 중국과 북한 관계)이 있다.

 

이제 중국을 무시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더욱 그러하다.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는가.

 

무역에서뿐만 아니라 환경에서도 우리는 중국과 밀접한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다. 미세먼지를 줄이려는 노력이 우리나라에서만 이루어져서는 효과가 없다.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가 무시할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관광업이나 제조업, 문화산업 등에서 중국과 문제가 있었을 때 우리가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를 작년에 처절하게 경험하지 않았던가.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제안조차 하지 못했고.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한데, 그러므로 중국에서 친환경 연료를 개발하고 그러한 산업으로 방향을 바꾸어가는 것은 긍정적이다. 다만 그들이 여전히 다른 나라에서 화석연료 개발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고, 도시 정비라는 명분으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내쫓고 있는 것은 문제라는 주장.

 

우리도 개발로 인해 쫓겨난 사람들이 많았던 시대를 겪어왔는데 중국이 그러한 길을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든다고 한다면 정치개혁도 중요한데, 중국에서 어떻게 민주주의가 실현될지 잘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이번 호다.

 

여기에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졌던 공론조사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것은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글들이다. (윤지영, 공론조사 시민참여단 참가기, 하승우, 공론조사는 민주주의를 살릴 수 있을까, 이계삼, 밀양 송전탑 12년, '작은 승리'가 절실하다)

 

처음으로 공론조사를 통해 신고리 5,6호기 공사에 대한 찬반 조사를 했고, 공론조사위원회의 결정을 정부가 받아들였는데...

 

그 과정이 과연 민주주의를 실현했는지를 살펴보고 있는 글들이다. 직접 참가한 사람의 경험담과 이를 이론으로 정리한 글인데...

 

첫술에 배부르랴는 말이 있지만, 그 첫술, 아니 첫삽을 잘못 뜨면, 마치 첫단추를 잘못 꿰듯이 다음 것들도 제자리를 찾기 힘드니...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합을 하게 하는 것, 공정은 절대적인 수치로 일반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글들에서 잘 알 수 있는데...

 

이 공론조사에 대해서 철저히 분석하고, 앞으로 있을 공론조사에서는 이번에 일어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새해, 이제는 성장 담론에서 벗어나, 행복 담론으로 우리가 들어섰으면 좋겠다. 많이 벌어야 한다고, 많이 써야 한다고가 아니라, 내가 필요한 만큼 벌고 쓰고, 내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새해가 되었으면 한다.

 

나부터 그렇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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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8 11: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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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8 1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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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어른
백기완.문정현 지음 / 오마이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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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들이 판치는 사회라고 했다. 꼰대들은 자신들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이런 꼰대들이 사회 곳곳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다는 거다.

 

그러니 사회도 꼰대처럼 될 수밖에. '어른 없는 사회'라는 일본 학자 우치다 타츠루가 쓴 책도 있지만 우리나라 역시 어른 찾기 힘들다.

 

그렇다고 어른은 없고 꼰대만 있을까? 세상에 그런 사회는 없다. 어디서든 어른은 있다. 이런 어른들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 없을 뿐이지.

 

어쩌면 꼰대들을 어른이랍시고 모시는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서 더욱 어른들이 없는지도 모른다. 제 잇속만 챙기는 그런 사람들을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잘못.

 

어른과 꼰대를 구분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에서도 어른들이 더 많이 눈에 띄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드는데...

 

책 제목이 "두 어른"이다. 이런 책을 보면 무조건 사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책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단지 제목만이 아니라 비닐로 감싸놓아 내용을 볼 수는 없지만 겉표지에 보이는 두 어른의 뒷모습 때문이다.

 

직접 만나뵙지는 못했지만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두 분의 뒷모습. 세월이 흘러도 한참 흘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두 분의 뒷모습.

 

우리나라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온 두 어른의 뒷모습이라니... 세월이 이리도 흘렀구나, 이분들이 이젠 노인이 되었구나, 그러나 노인이란 육체적인 늙음을 이야기하는 것일뿐.

 

이 분들은 여전히 길 위에 있으니, 육체는 노인이나 정신은 젊은이 못지 않은, 그래서 어른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하니.

 

이분들의 말씀을 들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직접 길 위에서 늘 들을 수 있는 것 아니니, 집에 책을 두고 생각날 때마다 한장 한장 들춰본다면 언제든 두 어른의 말씀을 들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

 

그러니 무엇을 망설일까? 어른 없는 사회에서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의 말씀이 들어있는 책인데...

 

맘에 새겨둘 말들이 많이 있지만, 말에 중심을 두어서는 안 된다. 이분들은 말보다는 행동을 하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의 말처럼 머리에서 가슴, 가슴에서 발까지... 이분들은 발까지 자신들의 삶이 도달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두 어른은 백기완 선생과 문정현 신부다. 두 분 다 여전히 길거리에 계시는데... 그만큼 우리 사회가 여전히 이 어른들을 길거리로 불러내고 있다는 얘기인데... 두 어른들이 지팡이를 짚고 있는 사진이, 우리들의 어깨에 기댄 사진으로 바뀌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더 말이 필요없다.

 

두 어른들의 말씀 한 도막씩만 옮기고 글을 맺는다. 더 주절거릴 필요가 없는 책이기 때문이다. 직접 읽으며 머리에서 가슴으로, 다시 가슴에서 발로 우리를 옮겨가야 하는 글, 말들이기 때문이다.

 

74. 문정현

 

나는 참 좋은 몫을 받았다고 생각해.

좋은 몫을 가졌다고 생각해.

지금까지 정말 빈틈없이 살았어. 공백이 없어.

 

사건과 사건이 계속 연결되고

계속 길 위의 삶이었어.

 

길에서 살다 죽는 것이 내 보람이야.  (101쪽)

 

 

77. 백기완

 

저 때문에 쓰는 힘은

갈데없이 시퍼런 칼이 된다.

나아가 저 한 사람 때문에 쓰면

어김없이 사나운 창이 되기도 하고.

 

하지만 남몰래 수굿수굿

이 벗나래(세상)를 위해서 흘리는 땀은

곧 하제가 되는 거다.

 

하제라니 무슨 뜻일까.

희망이란 뜻을 글로가 아니라 온몸으로 내둘한

무지랭이들의 벅찬 숨결이다.  (104쪽)

 

참고로 이 책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나왔다.

 

'꿀잠'과 오마이뉴스가 두 분의 말씀을 엮어 대담집을 만든다고 나섰을 때도 두 어른은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설득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두 어른은 수십 년 동안 길 위에서 민중과 함께 '외치는 자'였고, 고통의 거리에 천막 교회를 짓고 십자가를 세우는 '남은 자'였다. 비정규노동자들이 꿀잠 잘 곳을 짓는다는데, 그 부족한 비용을 채우겠다는데, 이를 마다할 어른들이 아니었다.  (142쪽)

 

이 책은 바로 없는 사람, 약한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 진실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두 어른의 연민과 참여와 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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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6 11: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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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6 14: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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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눈, 벌레의 눈
김해자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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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이 책에 나와 있는 단어로 이 책을 정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정리가 아니라 마음에 파고들어오는 말들이라고 해야겠다.

 

시인인 김해자가 여러 시인들의 시에 대해서 쓴 글인데..

 

모심(母心)

 

어머니 마음이다. 동사 '모시다'의 명사형인 '모심'이 되겠다. 모심이라는 말은 그래서 모시다라는 말과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뜻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보면 된다.

 

자고로 시인이란 세상만물을 모시는 사람들 아닌가. 그들은 높은 데서 내려다 보는 새의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아니라 땅을 기어다니는, 또는 땅 속에 있는 벌레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책 제목이 '시의 눈, 벌레의 눈'이다. 시인은 이런 벌레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사람을 보고, 사물을 보고, 동물과 식물과 사회를 본다. 그렇게 자신이 본 것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 바로 시다.

 

이런 벌레의 눈을 누가 지니고 있는가. 섬김, 모심. 바로 어머니 마음이다. 어머니는 그런 마음으로 자식들을, 세상을 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존재를 내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그런 어머니 마음이 아닐까 한다.

 

많은 시인들의 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이들의 시에는 이러한 '모심'이 드러나 있다. 그런 '모심'을 읽으며 우리도 위로만 위로만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짓밟고 올라가려고 하지 않고 밑에서 함께 하려는 마음을 지니게 된다.

 

김해자는 이런 시인들의 마음을, 시인들의 표현을 이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주고 있다.

 

도서관, 미싱(재봉틀), 자전거 그리고 시

 

근대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자연을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온갖 이상 기후들은 우리 인간이 초래한 결과다.

 

자연을 파괴하면서 문명을 건설해온 인간에게 그래도 생태적인 문명이 무엇이냐고 하면 세 가지를 꼽는다고 한다.

 

도서관과 재봉틀과 자전거. 인간이 이룩해낸 문명이기는 하지만 생태와 공생할 수 있는 존재들. 이런 존재들과 비슷한 존재가 바로 '시'라는 것이다.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어떤 이는 세상에 시인이 나무보담도 흔하다며 너도 시를 쓰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시인이 많은 게 무슨 죄인가 전 국민이 시인이면 어떻단 말인가 그들은 밥을 굶으면서도 아름다움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다 우리나라가 아름다운 것은 시인이 정치꾼보다 많기 때문 아닌가'

('우리나라가 아름다운 것은'이란 시의 부분... 정희성 "그리운 나무"  이 책 289쪽에서 재인용)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사람들, 시인. 그렇담 시도 역시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적어도 우리들 마음을 순화시킨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렇게 시는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러니 이 책은 인간 문명이 탄생시킨 생태적인 것들 중에 시를 포함시키는 것이다.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시는 우리에게서 멀어진다. 그럼에도 시인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외면해도 자신들의 마음을, 자신들이 본 것을, 느낀 것을 언어로 표현한다. 결코 멸종되지 않을 종족, 시인들. 이들의 시는 그렇게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이런 시들을 좀더 친숙하게 만나볼 수 있게 하는 책, 김해자의 이 책이다.

 

문(門)

 

좋은 책은 읽으면서 다른 책을 읽게 만든다고 한다. 김해자 역시 한 책을 읽으며 다른 책을 읽는다고도 한다. 그랬을 때 모호하던 의미가 명확하게 다가온다고도 했다. 시를 철학과 연계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도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왜 아니겠는가. 시 자체가 이미 삶에 대하여 고민하는 철학 아니겠는가. 그렇게 시는 다른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우리 앞에 보여준다.

 

온갖 크기의, 온갖 모양의 문들이 우리 앞에 있다. 그 문들을 열고 들어가는 것은 우리 몫이다. 그냥 안을 보여주지 않는다.

 

모든 것을 그냥 보여주기만 하면 흥미를 갖지 않는다. 누구나 열 수 있지만 자신의 힘으로 열어젖혀야만 열리는 문들. 시는 그렇게 우리 앞에 갖가지의 문을 갖다 놓는다.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문. 그 문을 여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이렇게 많은 문이 있는데 안 열고 배기겠는가 하는 듯한 마음이 들게 이 책에는 다양한 시들이 소개되어 있다. 시라고 하기보다는 시인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읽으면서 정말 많은 문 앞에 선 느낌을 받는다. 열고 싶은 문, 어떤 문은 그냥 지나치고 싶은 문. 하지만 그 문들 너머에 다른 세계가 있음을, 내가 놓치고 있던 세계가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시는 문(門)이 된다. 김해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를 이런 문으로 이끈다. 이제 문을 여느냐 마느냐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이 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일상에서 벗어난 다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그런 세계로.

 

그렇게 문을 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주는 책이고,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시인과 시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 시집을 읽는 것과는 또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김민기에 대한 글이 있는데... 재작년에 노벨 문학상을 밥 딜런이 탔듯이, 김민기 역시 시인을 다루는 이 책에 나올 수 있음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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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5 1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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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5 1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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