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고독으로부터 찾는 해답 서양문학의 향기 10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김재혁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날 젊은 시인이 릴케에게 자신의 고민이 담긴 편지를 보낸다. 그가 다녔던 학교에서 릴케를 가르쳤던 선생님을 만나고 릴케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은 다음이다.

 

생면부지의 젊은 시인에게 편지를 받은 릴케는 정성을 다해서 답장을 보낸다. 그 답장이 열 편에 해당하는데...

 

단지 젊은 시인에게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다독거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편지글이다. 이렇게 진지하게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는 글을 읽은 젊은 시인은 그야말로 멘토를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이 젊은 시인은 지금 우리에게는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의 이름은 카푸스다) 그는 릴케의 편지를 책으로 냄으로써 문학사에 공헌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한 세기가 지난 글들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 또 릴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외국 시인 아니던가.

 

그가 문학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책이니, 읽어볼 만하다.

 

첫번째 편지에서 릴케는 비평에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 이는 문학의 기준을 외부에서 가져오지 말고 자신의 내부에서 찾으라는 말이다.

 

"비평의 말은 언제나 다행스런 오해로 귀결될 따름이니까요.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가 모든 것들을 다 이해할 수 있고 또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건들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의 말이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못한 영역에서 일어나니까요. 이 모든 것보다 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예술작품들입니다." (12쪽)

 

"당신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 당신의 삶의 샘물이 솟아나는 그 깊은 곳을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그 원천에 도달하여 당신은 당신이 꼭 창작을 해야 하는지의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 대한 답이 나오면 더 이상 그것을 캐묻지 말고 거기서 들려오는 대로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17쪽)

 

릴케는 문학을 하는 데 기본적인 것은 바로 자신의 경험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어려움. 고독 등을 들고 있다. 어려움, 문제가 없다면 예술은 탄생하지 않을 것이고 고독도 마찬가지다. 이것들을 피하지 않고 직접 대면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일, 그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한다.

 

네 번째 편지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신의 가슴속에 풀리지 않은 채로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인내심을 갖고 대하라는 것과 그 문제들 자체를 굳게 닫힌 방이나 지극히 낯선 말로 적힌 책처럼 사랑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당장 해답을 구하려 들지 마십시오.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은 그 해답을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직 그 해답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의 궁금한 문제들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먼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해답 속에 들어와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40쪽)

 

마치 김수영의 시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는 말을 연상시키는 이런 말들. 그렇다. 예술은 문제를 빗겨가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릴케는 바로 이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밖에도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고 있는데... 차분히 읽으며 하나하나 음미해가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가 될 것이다.

 

열 편의 편지가 들어있는 작은 분량의 책이지만 문학에 관해서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릴케의 고민, 릴케의 문학에 대한 생각도 엿볼 수 있는 책이고, 후배 작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예술관을 펼치는 모습도 좋게 다가온다.

 

문학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 곁에 두고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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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9 08: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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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9 12: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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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후예 알베르 카뮈 전집 10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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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설가 카뮈는 잊어라.

 

아주 짤막한 글들의 주인 카뮈를 만난다.

 

시라고도 할 수 있고, 아포리즘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글들.

 

글이 주인공인지 사진이 주인공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글과 사진이 어우러져 하나를 이루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 그림에 시가 들어가듯이.

 

사진 역시 컬러가 아니어서 좋다.

 

색채를 눈에 들이대는 화려함 보다는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진 사진들.

 

사진들에서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사진의 깊이에 글의 상징이 더해져 마음 깊숙한 곳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없다.

 

그냥 사진을 보며 한없는 명상에 잠겨보는 것도 좋을 듯.

 

글을 읽으며 글에서 표현하지 못한 부분들을 상상으로 채워넣으면 좋을 듯.

 

이것이면 된다.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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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順天)

- 강은 길이다


큰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는 말을 왜곡한 토건족은 더 큰 도로를 내기 위해 운하 건설의 삽을 뜨는데, 이는 불필요한 항생제 남용으로 면역력을 저하시키듯 정비란 처방을 일삼아 강의 자정능력을 떨어뜨리는 일인데, 길은 도로가 아닌 골목길, 늙은길*임을, 늘 우리와 함께 해 온갖 것들을 감싸안고 그렇게 제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니 강물이 연 길에는 사람도, 짐승도, 나무도, 풀도, 돌멩이도, 흙도, 보이지 않는 것들도 모두 함께 하고 있음이니.


토건족에겐

길이란

도로일 뿐

쭉 쭉

씽 씽

곧게, 곧게

넓게, 넓게

빠르게,

쉬어야 한다고?

휴게소 건설

주변은 

방해물

주변을

살펴

달려!

오직

뚫음이

가둠이 되는

역천(逆天)


본디 강이란 직선이 아닌 곡선, 빠름이 아닌 느림, 젊음이 아닌 늙음으로 이것 저것 밀고 당기고 가두고 거두고 모든 것을 아우르며 보듬어 안는 것이나니, 이것이 비로소 길을 연 강물이었나니.


강물이 

길을 열기 위해선

밀어내고 떨궈내는 것이

아니라

다름과

함께 하고 있어야

함이니, 그것이

자연의 이치일지니.

 

 

*이육사, 광야에서

*김훈, 섬진강 기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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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7 08: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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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7 13: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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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겨울호다.

 

겨울호를 읽으며 봄을 생각한다. 우리들의 삶에 따스한 햇볕 한줌이 드는 그러한 봄을.

 

우리 사회가 몇 년 동안 겨울을 보내다 이제는 봄을 맞이하려 하고 있다. 봄, 그러한 따스함, 그것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호에도 많은 글들이 있지만 2017년을 정리하는 시집에 대한 소개와 소설에 대한 소개가 있다. 문학이 우리 삶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고, 문학을 통해서 우리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면 삶창이 기획한 2017년을 돌아보는 문학들에 대한 이야기도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작다고 생각하지만 커다란 생활습관. 성중립화장실(흔히들 남녀공용 화장실이라는 말을 쓴다)에 대한 이야기. 집에서는 모두가 성중립화장실을 사용하면서 공중화장실은 남녀 구분 화장실을 쓰고 있는 현실.

 

사건이 일어난다고 성중립화장실을 반대하는 경우가 더 많다던데, 몰래카메라 등이나 다른 일들은 남녀 분리 화장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 성중립화장실의 설치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디에 설치하고 어떻게 운영할까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

 

무엇보다도 화장실을 이용하는 습관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채윤,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오해)

 

성중립화장실이라는 것이 구조적인, 건물에 해당하는 문제라면, 화장실을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개인적인, 사람들의 생활습관에 관한 문제다.

 

구조와 습관이 함께 바뀌어가야 서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여기에 우루과이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사실 우루과이라고 하면 잘 모른다. 축구경기에서 첫해 월드컵에서 우승한 나라이고, 가난한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단 무히카 정도만 알 뿐.

 

그런데 이번 삶창에서 우루과이에 대한 글 (이순주, 우루과이의 정치 개혁과 새회 개혁)을 읽고, 우루과이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고 관심이 가게 되었다.

 

우루과이를 방문하고 나서 느낀 이 글...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최근 우리 국회의원들이 세비와 보좌진을 늘린 상황을 보면서, 몇 년 전 타바레 바스케스 대통령 시기에 에너지산업장관을 역임했던 다니엘 마르티네스 상원의원 집무실을 방문한 기억이 떠올랐다. 7-8평 남짓한, 마치 대학교수의 낡은 연구실 같은 느낌의 집무실이었다. 그나마도 불투명한 유리창이 달린 파티션 하나가 상원의원 전용 사무 공간과 비서 두 명의 업무 공간을 구분할 뿐이었다. 열심히 검토 중인 많은 서류 더미들이 흩어져 있는 사무실에서 방문자에게 제공된 자리는 상원의원과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을 수 있는 너무나도 평범한 의자였다. 새것이어서 반짝거리는, 새롭고 세련된, 혹은 지위나 권력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하는 어떤 것도 없었다. 그런 곳에서도 국민을 위한 훌륭한 정책들은 잘 나온다. (109-110쪽)

 

이런 자세를 지닌 의원들이 오히려 정책을 더 잘 만들어내겠지... 그런 정치인들이 많아야 삶이 더 잘 보이는 정책들이 나오겠지. 그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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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해릴린 루소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장애인이 쓴 책을 읽으면 우선 드는 생각이 바로 '대단하다'이다. '대단하다' 이 말 속에는 그렇게 하지 못할텐데, 또는 그렇게 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에는 다름을 대하는 태도가 작동한다고 한다.

 

신체장애, 지적장애. 다른 사람인데, 이들은 사회에서 없는 사람 취급을 받거나 도움을 받아야만 할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사회적인 부담이라는 생각을 지니는 사람이 더 많고, 태어나서 자라면서 장애인 자신들도 이런 생각을 지니게 하는 환경 속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의 저자인 해릴린 루소의 글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장애인들을 가엾게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만큼이나 장애인 스스로도 자신들을 장애인으로 보지 않으려고 한다는 사실.

 

이만큼 다름은 삶을 살아가는데 상당한 차별로 작동을 한다. 그런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을 언론이 다뤄주는 이유도 장애인들이 우리 삶 속에 녹아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장애가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같지만 겉돌고 있음을 언론에서 다루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장애가 없는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 무에 대수란 말인가? 그럼에도 장애가 있는 사람이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운동을 하거나 하면 대단한 일을 한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보도를 한다.

 

이런 보도를 자연스레 접하면서 생활하는 우리들 역시 은연 중에 장애인은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은 사람으로 인식을 하게 된다. 우리만이 아니라 장애인들조차도.

 

장애인이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고,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닉 부이치지'나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책을 보면 그들이 너무도 자연스레 성공했다고 여겼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외모를 거울을 보면서 진저리친다든지, 다른 장애인을 만나면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싫다든지, 이것은 장애가 없는 사람이 장애인을 볼 때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장애인들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해릴린 루소는 말해주고 있다.

 

장애가 없는 사람들도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불만을 표하듯이 장애인들도 같은 감정을 지니고 있다는 것. 장애인으로 인식하고 이런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기까지는 꽤나 어려운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것.

 

우리에게 장애인으로서 성공한 대명사로 통하는 헬렌 켈러도 역시 수많은 갈등을 거치면서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갔을텐데, 우리는 그런 내적 고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외부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장애인의 성공 여부를 판단한다.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가는 해릴린 루소의 글을 읽으며 깨닫게 된다.

 

장애인이 생활하기에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실례로 우리나라 학교만 해도 그렇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함께 교육받기를 거부하는 부모들도 있고, 장애인 학교가 동네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도 있는 형편이니, 그들과 함께 하는 삶, 그들을 편견없이, 아니 장애인이라고 명확히 인식하고 생활하는 일은 아직도 힘들다.

 

장애인이라고 무조건 배려하라는 얘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장애인임을 부정하라는 것도 아니다. 장애를 인정하되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감정, 욕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감정이나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하는 데는 장애인이냐 장애인이 아니냐는 구분은 필요없어져야 한다.

 

이 책의 저자인 해릴린 루소는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는데도 오랜 시일이 걸렸다. 그런 자신을 똑바로 보는데도 오랜 시일이 걸렸고.

 

그렇지만 그는 안다. 장애를 부정한다고 장애가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장애로 인해 남들의 도움만 받아야 한다고 하는 것도 문제라고.

 

그냥 다른 생활을 할 뿐. 생할에서 다를 뿐이지만 느끼는 감정, 욕구들은 같다고... 세상에서 여성, 장애인으로서 차별받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그것들을 차별이 아닌 그냥 다름으로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것.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감정들을 솔직하게 내보이고 있는 책이다. 그렇다. 해릴린 루소를 '대단하다'고 하지 말아야겠다.

 

그렇게 하지 못한 우리들을 '대단하다'고 해야겠다. 비꼬는 의미에서. 그러니, 이런 비꼼의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더 낮은 곳에서 바라보고 행동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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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5 09: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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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5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