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킨 이야기 / 스페이드 여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2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최선 옮김 / 민음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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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로 시작하는 시... 어린 시절 책받침에서건 이발소에서건 볼 수 있었던, 시 구절이 너무도 좋아 외웠던 시.

 

푸슈킨의 시다. 삶은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살다보면 기쁜 날도 오리라는, 그렇지만 그는 결투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 참...

 

푸슈킨이 쓴 작품으로 두 편이 실려 있는 책이다. 짧게 줄여서 '벨킨 이야기'라고 했지만 차례를 보면 '고 이반 페트로비치 벨킨의 이야기'라고 하여 '발사, 눈보라, 장의사, 역참지기, 귀족 아가씨 - 농사꾼 처녀'라는 제목을 지닌 다섯 편이 실려 있다.

 

짤막한 단편들. 삶의 여러 형태들이 드러나는 소설들이다. 그야말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라는 말이 어울리는 소설이다. 삶이 그대를 속였기에 그 삶에 속아 미래를 바라지 않고 불행으로 삶을 망친 사람들(발사, 역참지기)과 그럼에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고 살아가 종국에는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눈보라, 장의사, 귀족 아가씨) 이야기로 나뉜다.

 

많은 삶의 유형이 있지만 삶에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것, 지금은 힘들지 몰라도 결국에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긍정적인 마음을 지녀야 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

 

벨킨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가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할지 알게 된다. 소설에서 너무도 명확하게 그것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그의 시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고.

 

'스페이드 여왕'이라는 다른 작품을 보면 이것을 더 잘 알 수 있다. 자제력도 있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계획성도 있는 인물은 게르만은 돈에 대한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지금처럼 '돈'이 최고로 인정받는 사회는 아니지만, 그 당시 러시아에서도 돈은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였으리라.

 

그런 돈을 버는데 자신의 노력으로는 많이 벌기 힘들기는 당시 러시아나 지금의 우리나 마찬가지. 지금은 금수저가 아닌 다음에는 로또나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길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자신의 처지를 확 바꿔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우리 현실인데...

 

당시 러시아에서는 도박으로 자신의 환경을 바꾼 사람들이 꽤 있었나 보다. 이 스페이드 여왕이라는 소설에서는 도박으로 일확천금을 꿈꾼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니 말이다.

 

물론 게르만은 도박에서 돈을 잃고 정신병원에서 평생을 지내게 되지만, 자신의 노력보다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모습이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으리라.

 

푸슈킨 당시의 젊은이들 중에서 이런 모습을 지닌 사람이 꽤 있었을 테고, 푸슈킨은 소설을 통해서 러시아 젊은이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다.

 

스페이드 여왕에서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딘 인물, 가난한 양녀는 결국 나름대로 행복하게 사니, 자신의 삶에 체념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자신이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얘기다. 결코 마법같은 일로 자신의 삶이 한번에 확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

 

이번 푸슈킨 소설집에서는 그런 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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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6 1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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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6 11: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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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섭, 융합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이제는 한 분야에만 정통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리라.

 

  그만큼 사회가 복잡해졌지만, 복잡해진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를 알고,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권혁웅의 '마징가 계보학'을 읽으며 최서해(최학송)를 떠올린 것은 이런 통섭이니 융합이니 하는 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통섭과 융합이 과학과 인문학의 결합만이 아니라, 문학 쪽에서도 다양한 분야들이 서로 섞이고 얽히는 관계여야 한다고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시인의 말에도 최서해를 떠올리는 말이 나온다.

 

"나는 오랫동안 달동네에 살았다. 내게 1980년대의 후반부가 독재와 민주화운동과 시의 시절이었다면, 그 전반부는 원죄의식과 주사(酒邪)와 첫사랑의 시절이었다. 나는 거기 살던 내내 언젠가 탈출기(脫出記)를 완성하겠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거기서 벗어난 지 십오년이 되었는데 이제는 그곳이 나를 벗어나려 한다. 그곳, 서울시 성북구 삼선동 일대가 재개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142쪽)

 

최서해의 탈출기, 지지리 궁상인 생활에서 벗어나려 몸부림 친 지식인의 이야기. 이 시집에 등장하는 화자는 지식인이다. 분명 지식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화자가 회고조로 다른 인물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때문에 굴곡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당시 시인이 살아온 시대에서 달동네는 밀리고 밀린 사람들이 올라와 살 수밖에 없는 마을.

 

삶의 질은 계속 내려가는데 살아가야 할 곳은 점점 높아지는 현실 속에서, 그곳을 벗어나려고 애를 쓰나 벗어나는 것은 죽음에 이르렀을 때뿐이라는 것.

 

오래 전에 텔레비전에서 방영했던 '독수리 오형제'를 빗대어 쓴 시 '독수리 오형제'를 보면 세상을 구하는 독수리 오형제가 아니라 세상에서 밀려나고 밀려나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기를 쓰고 그 마을을 벗어나도 결국은 다시 낮은 곳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회 하층민들의 이야기. 기껏 지식인들이 나온다고 해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밀려나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 시집에 실린 '광기의 역사 - 1. 호모 인텔리쿠스'에 나오는 이모 같은 경우)

 

그래서 마치 최서해의 소설을 읽는 듯한, 일제시대로 따지면 신경향파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시집이다. 그렇다고 그때의 소설과 같은 살인, 파괴 등으로 점철되지는 않는다. 소설에서도 죽음이나 떠남이 주를 이루지만 다른 작품들과 융합이 되어 소설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만화영화, 영화, 노래 등등 다른 많은 작품들과 바로 자신과 함께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집에서 주를 이룬다. 이들에게서 탈출을 꿈꾸었겠지만, 이제 이들은 그곳에 없다.

 

그렇다고 이들이 사라지지도 않았다. 우리가 외면하려 해도 시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그 점을 명심하자.

 

독수리 오형제

 

 

0. 기지

 

  정복이네는 우리 집보다 해발 30미터가 더 높은 곳에 살았다 조그만 둥지에서 4남1녀가 엄마와 눈 없는 곰들과 살았다 곰들에게 눈알을 붙여주면서 바글바글 살았다 가끔 수금하러 아버지가 다녀갔다

 

1. 독수리

 

  큰형이 눈뜬 곰들을 다 잡아먹었다 혼자 대학을 나온 형은 졸업하자마자 둥지를 떠나 고시원에 들어갔다 형은 작은 집을 나와 더 작은 집에 들어갔다 그렇게 십년을 보냈다 새끼 곰들이 다 클 만한 세월이었다

 

2. 콘돌

 

  둘째 형은 이름난 싸움꾼이었다 십대 일로 싸워 이겼다는 무용담이 어깨 위에서 별처럼 반짝이곤 했다 형은 곰들이 눈을 뜨건 말건 상관하지 않았다 둘째형이 큰집에 살러 가느라 집을 비우면 작은집에서 살던 아버지가 찾아왔다

 

3. 백조

 

  누나는 자주 엄마에게 대들었다 엄마는 왜 그렇게 곰같이 살아! 나는 그렇게 안 살아! 눈알을 박아넣는 엄마 손이 가늘게 떨렸다 누나 손은 미싱을 돌리기에는 너무 우아했다 누나는 술잔을 집었다

 

4. 제비

 

  정복이는 꼬마 웨이터였다 누나와 이름 모르는 아저씨들 사이를 오가며 소식을 주워 날랐다 봄날은 오지 않고 박꽃도 피지 않았으며 곰들도 겨울잠에서 깨어날 줄 몰랐다 그냥, 정복이만 바빴다

 

5. 올빼미

 

  하루는 아버지가 작은집에서 뚱뚱한 아이를 데려왔다 인사해라, 네 셋째 형이다 새로 생긴 형은 말도 하지 않았고 학교 가지도 않았다 그저 밤중에 앉아서 눈뜬 곰들과 노는 게 전부였다 연탄가스를 마셨다고 했다

 

6. 불새

 

  우리는 정복이네보다 해발 30미터가 낮은 곳에 살았다 길이 점점 좁아졌으므로 그 집에 불이 났을 때 소방차는 우리 집 앞에서 멈추었다 그들은 불타는 곰발바닥들을 버려두고, 그렇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권혁웅, 마징가 계보학, 창비. 2007년 초판 5쇄. 52-54쪽.

 

어렸을 때 본 독수리 오형제... 그러나 시에 나오는 독수리 오형제는 달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이웃이었다.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아니라 세상에 밀리고 밀려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던 우리의 이웃.

 

시에 이런 이웃들이 많이 나온다. 지금도 우리 곁에 있는 이런 이웃들이... 시인의 탈출기는 여전히 성공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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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4 09: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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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4 09: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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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박현섭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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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단편소설의 대가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모파상과 체호프. 이 소설집에는 10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200쪽도 안 되는 분량인데 소설이 10편이면 평균내도 한 소설당 20쪽이 채 안 된다는 얘기다. 그만큼 짧은 소설들... 한때 우리나라에서 엽편(葉篇)소설이라고 부르던 길이다.

 

특히 첫번째 소설인 '관리의 죽음'은 짧아도 너무 짧다. 7쪽부터 12쪽까지니 겨우 6쪽짜리 소설이다. 그래도 한두 장짜리 소설보다는 길지만... 단편소설을 읽는 재미는 극적인 반전이다. 한 사건을 두고 인물의 심리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짤막한 상황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체호프의 단편들에서도 그런 점이 잘 보인다. 그래서 단편소설의 대가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관리의 죽음' 죽음이라는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 누구나 피하고 싶어하는 운명을 두고 이렇게 짧게, 그것도 참으로 어이없는 죽음을 그리다니...

 

고사성어 중에 기우(杞憂)라는 말이 있다.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을 하면서 살아가는 기나라 사람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하는 말인데, 이 말은 지나치게 섬약하여 모든 일에 걱정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지칭한다.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일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니, 이런 섬약한 관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일에 온 신경을 집중하니 몸이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극장에서 재채기를 한 번 했다고 며칠 동안을, 그 재채기로 인해 침이 튄 것을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찾아가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했으니, 이 정도 심리 상태면 병이 나야 정상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신경을 쓸테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에서 넘어가야 할 것은 과감하게 넘길 수 있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일에도 무심한 듯 넘어가면 안 된다.

 

그것은 공감 능력의 상실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공감 능력의 상실이 더 늘어나는 현실에서 체호프의 이 소설이 공감을 받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리라.

 

"이거 또라이 아냐...이보다 더한 것도 그냥 넘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하나하나 신경쓰다 보면 어떻게 사회 생활을 하나?" 라고.

 

하여 요즘은 '내 탓이요'는 만병의 근원이요, 내 건강의 핵심은 바로 '네 탓이요'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잘하면 내 탓, 못하면 네 탓이니 얼마나 마음이 편할까. 바로 이 소설과 정반대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습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늘어간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요즘이다. 

 

그래, 이 관리처럼 이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지만, 정말 신경써야 할 일에는 신경써야 한다. 그것이 배려고, 함께 사는 기본 예의다.

 

짧지만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데, 이 선집에 실린 작품들은 다양한 주제를 지니고 있다. 불륜을 다룬 작품도 있고(공포, 베짱이), 남과 감정을 공유하지 못하는 비극도 있고(드라마), 사랑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작품도 있고(베로치카),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일의 어려움(거울)과 살아서 위대한 사람도 금방 잊혀진다는 인생무상을 이야기하는 작품(주교)도 있다.

 

우리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삶의 다양한 모습들이 이 소설집에서 표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아마도 소설을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다른 삶을 간접적으로 살아보는 것.

 

첫번째 소설인 '관리의 죽음'을 읽으며 내가 내 행동을 판단하는 상태는 어느 정도인지, 중용을 지키며 사는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너무 사소한 것에 집착해서도 안 되지만,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안 된다는 삶의 자세.

 

오래 된 소설이지만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인간의 삶에서 시간의 흐름도 바꾸지 못하는 어떤 보편적인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전히 러시아 사람들의 이름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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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8-02-23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제일 와닿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자세보다 러시아 사람들의 이름이 어렵다는 말이 왜 이렇게 가슴을 훅 치고 가는걸까요.^^

kinye91 2018-02-23 21:32   좋아요 0 | URL
헤. 정말 러시아 사람들 이름 어려워요...우리나라 이름이 대부분 세 글자라서 그런지 원...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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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7편의 단편소설이 묶여 있는 소설집이다. 작가의 첫소설집이라고 하는데... 읽으면서 마음 속으로 서서히 들어오는 어떤 울림을 느끼게 된다. 공감을 느끼면서 소설의 주인공들의 마음과 같이 울리는 공명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렇게 이 소설집을 읽으면 마음이 울린다.

 

그렇다고 소설들이 밝지는 않다. 분명 어두운 분위기, 어두운 결말이 많은데도 이상하게 잔잔하다는 느낌과 더불어 마음을 살그머니 흔드는 감동이 있다.

 

어두운 분위기에서도 밝음을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소설집의 제목이 된 '쇼코의 미소'만 해도 그렇다. 주인공들의 삶이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데, 읽고나서는 주인공들이 그래도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온전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신에게 공감해주고 공명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은 실제 생활이 어떠한지를 떠나서 마음에 위안을 주고, 행복을 준다. 그렇게 소설은 공감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이런 공감이 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관계에서는 작은 일에서도 틀어질 수가 있다.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 되기도 하는데... '한지와 영주'란 소설에서 보면 알 수 없는 이유로 좋았던 관계가 틀어지는 모습이 펼쳐진다.

 

서로를 받아들이고 공감해준다고 생각했는데, 무엇인지도 모를 이유로 멀어지는 관계, 우리의 삶에서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씬짜오, 씬짜오'라는 소설에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가 한 말이 결국 묻혀 있던 진실을 대면하게 해서, 관계를 파탄내는 장면이 나온다.

 

독일에서 만난 베트남 부부와 한국인 부부들.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생활을 하지만 뜻하지 않게 나온 베트남 전쟁에서 저지른 한국군의 행동에 대한 이야기로 인해 이들의 관계는 끝나고 만다.

 

성심을 다한 사과가 있어야 용서가 되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일본에게 그런 사과를 요구하지만 베트남에서 벌인 일에 대해 과연 우리는 제대로 진심으로 사과했는지, 반성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렇게 비록 자신이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신의 국가, 자신의 민족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으면 어떤 관계든 제대로 유지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많은 인물들이 지니고 있는 공통적인 정서가 바로 '공감'이다. 이런 '공감'으로 인해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나 '비밀' '미카엘라'와 같은 소설을 읽으면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이런 삶들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삶을 사는 주인공들에게 마음을 주면서 우리 삶을 되돌아 볼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집의 장점은 우리들의 공감 능력을 깨우쳐 준다는 것이다.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있던 공감 능력을 우리 몸 곳곳으로 퍼지게 한다. 빠르게가 아니라 느리고도 아주 잔잔하게...

 

그래서 읽으면서 몸 전체에 공감이 퍼져나가게 된다. 소설을 읽으며 공감 세포들이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말로 표현되지는 않더라도 우리들 삶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공감들, 아주 작은 공감들, 그것이 우리를 삶으로 이끌고, 우리를 행복으로 이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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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타기


경쾌한 리듬에 맞춰

실낱같이 얇은 줄 위에

한 어릿광대

얼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안간힘을 쓰며 잡는 균형


까마득한 하늘,

까마득한 땅,

하늘도 땅도 아닌

줄 위.


두 발로 딛기엔

너무도 좁아,

얼쑤

풍악을 울려라.

하늘, 땅,

다 잊어버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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