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지옥에서 보낸 한 철 - 1873년 브뤼셀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프랑스어 원본 수록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 지음, 이한이 옮김 / 그여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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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다. 랭보 시집인데 초판본의 형식을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여기에 프랑스어 원본까지 실려 있으니 랭보 시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시집이다.

 

그러나 랭보 시집이라고 해서, 많이 유명하다고 해서 마음에 쏙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이 시집 역시 랭보가 젊었던 시절에 쓴 시집인데, 그가 일찍 죽었으므로 그의 시집은 대부분 젊은 시절의 격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들이 실려 있다고 보면 되듯이, 직설적인 감정들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젊은 시절 삶은 희망으로 충만해 있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절망으로 꽉 차 있기도 한다. 바로 랭보가 그랬다고 할 수 있다. 

 

시집에 나오는 절망들, 지옥이라는 말들이 젊은 날 랭보가 얼마나 고뇌하며 살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 시를 번역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았지만, 사실 시는 번역불가능하고, 오히려 시 번역은 새로운 창작이라고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만큼 시가 세상을 자신만의 언어로 바꾼 것인데,그것을 또다른 언어로 바꾸는 일은 창작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두 번의 창작과정을 거친 시를 읽으면서 이해하기는, 또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참 어렵다. 내게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시다.

 

무언가 감정과 욕망이 흘러넘친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것이 마음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다만 내가 랭보의 시에서 알고 있던 모음에 색깔을 덧씌운 시가 바로 이 시집에 있었다는 것.

 

'망상2 - 언어의 연금술'에 이 시가 나온다. 아니 이 책은 시집이라고 하기 힘들다. 아마도 그냥 읽으면 수필을 읽는 듯한 느낌, 그냥 그렇게 산문을 읽는데, 그 산문 속에 시가 들어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모음에 색깔을 부여한 것이 나중에 '모음들'이라는 시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여기서는 행구분이 전혀 없이 그냥 줄글로 나가고 있으니...

 

이렇듯 랭보를 유명하게 해준 시집을 읽었는데, 그다지 감흥을 못 느끼고, 왜 당시 사람들이 랭보의 시에 열광했을까 하는 생각.

 

당시 감정들을 감추고 속이고 온유하게 표현하는 풍조에서 자기 감정을 직설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랭보의 시가 충격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그냥, 그렇게, 읽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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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6 13: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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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6 19: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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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4 12: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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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5 05: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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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부리 아래의 돌 - ‘재일교포 간첩단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아버지들을 위한 비망록
김호정 지음 / 우리학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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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잊을 수가 없는 일이다. 국가조작 사건들이 밝혀지지 않은 것이 아직도 많이 있으니 말이다. 읽으면서 분노가 치솟고, 그러다가 한숨이 나오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에 가슴 한 쪽이 꽉 막힌 듯한 느낌을 받는다.

 

1977년에 간첩으로 조작된 사건. 우리나라에 간첩 사건이 어디 한둘이라야 말이지. 특히 재일교포들을 대상으로 많은 간첩 조작 사건이 있는 등,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간첩 조작 사건이 있었고, 많은 사건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무죄로 판명되었다. 아주 많은 세월이 흐른 다음에.

 

역사는 진실을 말한다고, 역사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고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하지만 그건 살아남은 사람들이 하는 말. 브레히트 시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가 있는데, 그 시에서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바로 이 구절 다음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는 구절이 있다.

 

살아남았기에 강한 것이지 결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간첩조작 사건들이 무죄로 판명되고, 국가 폭력으로 인정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았을까? 그리고 그들이 살아남았다고 강한 자가 되었을까.

 

많은 국가 폭력 피해자들이 살아남았지만 그들은 결코 강하지 못했다. 그들은 비틀린 삶을 살아야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되고 떨어져 버렸고, 사람들을, 국가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하면 자기 가족들이 당하는 피해를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으니. 이들이 어떻게 강하단 말인가. 이들은 살아남아서 더 약한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약한 사람이 된 그들에게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역사의 힘이다. 진실의 힘이다. 역사는 진실을 배반하지 않으니까. 그것이 비록 오랜 세월이 흐른다고 하더라도.

 

이 책 역시 이런 사건을 다루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간첩이 되어 버린 사람들. 그냥 사람답게 살고자 할 뿐이었는데... 그냥 친근한 사람들끼리 어울렸을 뿐인데... 재일동포를 중심으로 이들은 간첩이 된다. 누구는 거물급 간첩이 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이 사람과 어울린 사람들은 그에게 동조, 방조, 협조한 사람이 되어 모두 실형을 받는다.

 

석방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사람도 있지만 지병으로 숨진 사람, 자신의 결백을 인정받지 못하자 자살한 사람까지...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냈을까? 이들을 지켜보는 가족들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렇게 세월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흘러가다... 어느 순간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다시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이 책을 엮은 김호정 선생이 자신 아버지의 일을 중심으로 아버지의 억울함을 해원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 기록들을 찾아보고 진실을 밝히고 결국 재심에서 무죄를 받아내기까지의 과정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해나가고 있다.

 

어려운 재판 용어보다는, 또 막연히 억울하다는 심정 토로보다는, 어떻게 간첩으로 조작이 되었는지를 차근차근 자료를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인간을 인간이 아니게 만드는 고문과정과 그것을 용인하고 실적만 쌓으려는 검찰들과 진실을 밝힌다기보다는 정권 눈치만 보는 법원까지.

하나 더 추가하면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적극 협조한 검찰에서 파견된 조사관도 있지만, 여전히 자신이 속한 조직이 한 일에 대해서 정당하다고, 이들은 간첩이 맞다고 항소까지 하는 검찰들도 있고, 또 고문이나 조작에 관계되었던 사람들이 끝까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현실까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게 한 그런 내용도 이 책에 잘 드러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억울한 사연들, 나중에 밝혀진 진실, 그러나 보상받을 수 없는 세월. 40년 가까이 지나 현재 판사가 과거 판사들의 잘못된 판결에 사과를 하지만, 이들의 억울함을 밝혔다고는 하지만, 이런 과정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해야 하는데... 이제 이런 조작 사건은 있어서는 안 됨을 사람들이 기억해야 하는데.

 

그런 기억을 하게 하기 위해 이 책은 나왔다. 더 이상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게. 우리가 걷는 발부리에 이들을 기억하는 표지 하나 세우기 위해. 그래서 막 달리지 않고 조심스럽게 우리가 걸어갈 길을 살펴보라는 의미에서.

 

지금 우리가 걷는 길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는지, 그런 희생을 우리가 모르쇠 하면 안 됨을. 또 잘못한 역사를 잊어버리지 않고 늘 기억하기 위해서, 이 책은 그렇게 발부리에 하나의 돌을 놓는다.

 

덧글

260쪽에 아주 사소한 오타... 용비어천가가 나오는 장면에서 책에 나오는 구절은 용비어천가 1장이 아니고, 2장이다. 1장은 ‘해동 육룡이 나르샤 일마다 천복이시니 / 고성이 동부하시니’라고 하고, 2장이 바로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고’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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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는 지난 호하고 좀 달라진 점이 있다. 삶창에서 시는 그래도 한두 편이 실렸지만, 소설이 실린 경우를 잘 보지 못했는데, 이번엔 소설이 실려 있다. 그리고 평론도.

 

문학이 점점 현실에서 멀어지는 시대에 문학을 살리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해야 하나. 문학은 우리 인간 삶과 떨어져 있지 않고, 인간 역사와 더불어 함께 해왔는데, 최근에는 다른 장르들에 밀려나고 있는 추세다.

 

여기에 문인들이 저지른 안 좋은 일들이 하나하나 까발려지고 있으니, 문인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괴퍅한 행동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과거에 된서리가 내리고 있는 중이다.

 

자기들은 기벽이라고, 기행이라고, 그냥 괴퍅한 행동이라고 할지 몰라도 당하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치욕이고 잊을 수 없는 모욕이고, 상처일텐데, 이를 여전히 가볍게  여기고 넘어가려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미투 운동에 대한 글 '너희들의 세상은 끝났다(이나영)'와 '왜 영화 속 성소수자들은자주 사망하는가(신필규)' 라는 글을 읽을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처절한 반성을 하지 않고 변명을 하거나 다른 주장을 하니 문학이 사람들에게서 점점 멀어지지. 문학은 곧 삶이라고, 작품은 곧 작가라고 그렇게 주장하던 것이 멀지 않은 과거니 말이다.

 

이때 삶창이 다시 문학이 차지하는 지면을 늘리는 것은 그럼에도 문학이 해야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이 힘들 때 글로 위로를 받았던 적이 있었고, 글로 행동으로 나설 때가 있었으니, 세상이 문학을 아무 낮춘다고 하더라도 문학은 여전히 문학으로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것, 우리에게 다른 관점으로 생각할 힘을 주는 것, 우리에게 다른 삶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삶을 보듬어 주는 것. 문학은 여전히 그렇게 살아남아야 한다.

 

이번 호에 실린 소설 '차뚤부즈'를 보면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전히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진행형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

 

소설을 읽다보면 '투쟁'이라는 말을 몸으로 표현할 길이 없던 주인공 차뚤부즈가 우리나라에 와 '투쟁'을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게 되는 과정이 그의 회상으로 나와 있다.

 

말을 못하는 주인공이 오로지 연극만 하고 살아왔던 주인공이, 투쟁을 알 수 없어 투쟁을 표현하지 못했는데, 외국인 노동자들이 광화문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보고 투쟁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고 그를 표현할 수 있게 된 것. 그래서 그는 인도에서 사라져가는 연극을 끝까지 유지하는 사람이 된 것.

 

반성해야 한다. 약자에게 한없이 강하고, 강자에게 한없이 약하게 굴었던 우리들 모습을. 이 소설과 함께 기독교 문제를 다룬 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이정한)'을 읽을 필요가 있다.

 

종교가 지닌 기본 교리는 사랑이다. 약한 사람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는 것, 그러나 지금 종교는 과연 그러한가? 오히려 약자에게 한없이 인색하고, 강자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가이사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구분하지 않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다. 이번 호가.

 

이제 봄이다. 계절만 봄이 아니라 우리 사회도 봄이 되어야 하는데... 남북관계는 봄으로 가고 있지만 다른 관계는 여전히 아니다. 여전히 우리는 겨울에 머물러 있다. 삶창에서도 그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

 

 

그러니 더 나아가야 한다. 이렇게 되지 않게. '짙은 어둠의 시대를 건넜으나, 문은 아직도 멀리 있다(오창은)'는 글을 이어서 문이 바로 우리 곁에 있게, 그 문을 열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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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2 09: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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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2 17: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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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가 살던 별 문학동네 청소년 36
김선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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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요즘 심심찮게 뉴스에 오르내리는 동물이다. 산 속에서 살아야 하지만 사람이 사는 도심지까지 내려와 사람들을 위협하는 동물. 그래서 허가 받은 사람들에 의해 사살되거나 포획되는 동물.

 

메나 뫼라는 말이 산이라는 말이니, 멧돼지는 산돼지라는 말이다. 사람이 길들여서 집에서 가축으로 기르는 돼지가 아니라 산에서 자유롭게 사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이런 멧돼지가 사람 사는 곳으로 내려온다? 이유는 단순하다. 먹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왜 먹을거리가 없을까? 그 이유도 명백하다. 사람들이 모두 치워버렸기 때문이다. 멧돼지가 살아가는 공간을 인간들이 하나하나 침범하고 그곳에 건물을 세우고, 숲을 밀어버리기 때문이다.

 

멧돼지도 인간들이 좋을 리가 없을텐데도 사람 근처로 내려오는 이유는 그들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살 길을 막아놓아 살기 위해 내려오는데 유해동물이라고 피하고 또 죽이기까지 한다.

 

완전히 인간의 관점에서 보는 멧돼지다. 그런데 이런 관점을 사람에게 투영한다면 어떻게 될까? 힘있는 자들이 약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우리가 멧돼지를 바라보는 관점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함께 지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잡아서 가두거나 눈에 띄지 않게 하거나 아니면 죽여서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하는 생각. 그 이외에 다른 생각은 해보지도 못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이것이 이 소설 "멧돼지가 살던 별"을 읽으면서 멧돼지 취급을 받고 사는 '유림'이란 아이에게서 느낀 점이다.

 

아버지 홍기수는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한다. 자기가 아이에게 뭘 잘못했느냐고... 보호자로서 아이가 잘되게 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 것 밖에 없다고.

 

그 폭력이 철저히 자기 입장에서만 판단한다는 점을 생각지도 않는다. 그는 자기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폭력을 휘둘러야지만 더 잘 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아이를 패면서 아이에게 쓰게 하는 것이 바로 '명심보감'이다. 얼마나 아이러니 한가!

 

마치 독재정권이 어떤 독재를 해도 국민들 먹고 살게만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 것처럼, 지금도 누구가 경제개발을 이루었다고 그가 저지른 폭력들은 별것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처음에 유림이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아빠에게 맞으면서 지내듯이, 그렇게 국민들도 지낼 수 있음을... 결코 다른 세상을 보지 못하면.

 

눈 뜨고 행동하는 사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다행히 유림이 곁에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 유림이는 캄캄한 세상에서 밝은 빛을 보게 된다.

 

밝은 빛을 본 사람은 시커먼 어둠 속에서만 살 수 없다. 이제 그 어둠에서 나와야 한다. 유림이가 목숨을 걸고 아빠에게서 탈출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런 유림이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동물, 멧돼지 산바가 등장한다. 소설의 처음-중간-끝에 산바는 유림이와 또 유림이를 돕는 주호와 대화를 할 수 있는 동물로 등장한다. 그 역시 유림이 아빠 홍기수에게 자식을 잃고 다른 곳으로 떠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

 

슬픔들이 모여 서로 공명하여 관계를 이룬다. 이들은 공존할 수 있다. 서로를 인정하고 보듬어주는 것.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이들은 서로 마음이 통한다. 마음이 통하니 대화를 할 수 있다.

 

대화가 없는 곳에서 폭력이 이루어진다.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정권이 독재를 하듯이, 대화가 없는 집에서 폭력이 일어나듯이, 홍기수 역시 대화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대화를 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은 이용당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런 폭력, 홍기수와 같은 직접적인 폭력은 이 사회에선 더이상 용납이 되지 않는다.

 

홍기수가 죽음으로 사라지는 이유는 그것이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더 큰 권력 '박대령'은 어떻게 되는지 나오지 않는다. 소설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도 않지만 그래도 그는 세련된 폭력으로 살아남는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런 세련된 폭력은 법이라는 이름으로, 경제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있는지도 모른다.

 

또다른 주인공 류화신은 홍기수와 같은 드러난 폭력에는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숨어 있는 세련된 폭력과 싸우기는 힘들다. 그래서 어쩌면 이를 피해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까지 피할 수만은 없는 일. 유림이 일을 통하여 류화신은 변한다. 아마도 그는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도 하겠지만, 세련된 폭력과 맞서는 일에도 참여할 것이다. 그것은 사랑으로 공존하는 사회를 꿈꾸기 때문이다.

 

류화신은 지금 삼청교육대로 추정되는 정화학교에서 3개월을 교육받는다. 무참한 폭력이 난무하는 그곳에서 류화신이 쓴 것도 바로 '명심보감'이다. 공권력이 얼마나 이런 책들을 이용했는지. 좋은 말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얼마나 폭력이 될 수 있는지를 '명심보감'이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에게 쫓겨나는 멧돼지, 아빠의 폭력에 죽어가는 아이, 가정이 해체되어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청년, 그리고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어른이 함께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소설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결국 멧돼지별로 가버린 산바지만, 그래서 멧돼지가 살던 별이 된 이곳이지만, 이제는 사랑으로 함께 공존하는 그런 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대화를 하지 못하는 상황, 얼마나 비극적인지, 그리고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서로가 마음을 열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이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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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해설에서 이야기하듯이 박성우는 청소년시라는 영역을 개척한 시인이다.

 

  시와 동시 사이에 청소년시도 있음을 "난 빨강"이라는 시집을 통해 보여줬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많은 청소년 시집이 발간되기도 했다.

 

  청소년들이 직접 쓴 시도 있고,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 또 교사도 있고, 비록 청소년들과 직접 생활하지는 않지만 그들을 뼛속까지 이해하는 사람들이 쓴 시도 있다.

 

  박성우는 대학에서 강의도 했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는 청소년이라고 할 수 있는 중고등학생 나이의 사람들을 가르치지는 않았으리라.

 

그럼에도 그는 청소년들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 마치 청소년인듯이 그들 마음 속에 담겨 있는 말들을 시로 표현해내고 있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으면 청소년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의 마음을 알게 된다. 그들 역시 고민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지 않고 있음을.

 

이런 시를 보자. 이 짧은 시에 청소년을 바라보는 어른들 시각과 청소년 시기가 지니는 본질이 담겨 있지 않나 한다.

 

      대나무 성장통

 

속이 없는 게 아니야, 속을 비워 두는 거야!

 

박성우, 사과가 필요해. 창비. 2017년 초판 2쇄. 13쪽.

 

어른들은 청소년들을 보고 도대체 저 속에 뭐가 들어 있을까, 아무 생각 없이 저렇게 지내도 되나하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아니다. 청소년들은 그들 나름대로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비움, 그것은 곧 채움이기 때문이다. 비어야 채운다. 이미 어른이 되어 다 채워 더 이상 채울 것이 없는 어른들은 꼰대가 될 뿐이다. 어른들 가운데도 계속 채우기 위해 비워두는 사람, 그런 사람은 꼰대가 되지 않는다.

 

어른도 비워야 하는데, 더 많은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청소년들은 어떻겠는가. 그들은 너무도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비우는 것이다. 대나무 속에 비어야 더 클 수 있듯이, 이들은 채우기 위해 비운 것이다.

 

그 점을 안다면 청소년들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자꾸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그들은 스스로 채우고 있으니까. 단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시집에는 청소년들의 여러 모습이 나온다. 재기발랄한 모습에서부터 성으로 고민하는 모습, 가족관계에서 겪는 일들, 그리고 다문화 가정까지... 아주 다양한 청소년들의 모습이 시로 표현되어 있는데...

 

여전히 청소년들은 힘들다. 그런 힘듦... 대학에 가지 않으려 해도, 대학에 가지 못해도 교육이 지닌 목표가 대학인 양, 교육부가 대학입시때문에 존재하는 양, 모든 것을 대학으로 몰아가는 이 사회에서 청소년은 더 힘들다.

 

이렇게 힘든 청소년의 모습을 표현한 시. 마음이 찡했다. 

 

 

난, 니가 야자 끝나고

교문 빠져나오는 거 매일 보는데

 

학원 끝난 책가방이 너를 메고

집으로 가는 거 매일 보는데

 

너는 혹시 요새 나, 본 적 있니?

 

난, 니 방이 니 몸을 끌어다

책상 앞에 앉히는 거 매일 보는데

 

박성우, 사과가 필요해. 창비. 2017년 초판 2쇄. 99쪽.

 

달을, 별을 볼 여유가 없는 청소년들. 우리가 그들을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까. 이제는 청소년들도 별을, 달을 볼 수 있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들에게 삶의 여유를, 저녁 있는 삶이 어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에게도, 아니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여전히 청소년들은 바쁘다. 대학에 가고자 하는 청소년은 공부로. 대학에 가지 않으려는 청소년은 돈을 벌기 위해. 그들이 이렇게 바쁘지 않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박성우가 펴낸 이번 시집 읽으며 시인의 말에서 시인이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바로 이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청소년들, 아니 모든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앞서간 애들이 있다고 해서 / 너와 내가 뒤처진 길을 가는 건 아니야!' (시인의 말에서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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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0 09: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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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0 17: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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