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어 생각한다 - 남과 북을 갈라놓는 12가지 편견에 관하여
박한식.강국진 지음 / 부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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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에 소개된 책이었다. 바로 붙어 있는 나라이지만 가장 멀리 있는 나라, 또 같은 민족이라고 하지만 잘 모르는 나라, 이해보다는 오해가 더 많은 나라 북한에 대해서 이렇게 다른 방향에서 알려주는 책이 존재하다니.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나오고, 미국에 유학을 가 그곳 시민이 된 사람. 북한에도 50여 차례 다녀오고, 카터 미국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어 그가 방북을 할 때 통역관 겸 함께 가기도 했다는 사람, 박한식.

 

이 책을 읽기 전까진 박한식이란 사람, 교수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이렇게 북한에 정통한 학자가 있음에도 전혀 알지 못했다니, 그것이 좀 의아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북한에 관해서는 사실을 제대로 전달해도 안 되는 상황이 바로 우리 상황이었단 생각이 든다.

 

북한에 관해서는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기보다는 원하는 방향으로 소설을 써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북한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해줄 이런 책이 이제는 나올 때도 되었다는 ㅅ애각이 든다. 아마 몇 해 전에 나왔다면 국가보안법에 걸렸을 수도 있었으리라.

 

북핵 문제 책임, 북한에도 있지만, 미국에 더 책임이 있다는 주장, 그리고 북한을 정상적인 국가로 이야기하고 있는 그의 관점이 국가보안법에 의하면 고무 찬양죄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일부에서는 "북한은 믿을 수 없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뢰'가 있어야만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세상에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입니다. 신뢰라는 것은 대화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 대화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10쪽)

 

그렇다. 자주 만나야 한다. 만나서 서로의 이야기를 해야 하고, 서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신뢰가 쌓일 수 있다. 신뢰가 쌓이면 복잡한 문제도 단순하게 풀 수 있다.

 

남북 역시 마찬가지다. 북미 역시 마찬가지고. 하지만 북한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는 집단이 있다. 이들에게 평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협상이 잘 되다가도 파탄이 나고 만다. 방해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이를 북한을 쉬운 알리바이로 이용한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그런 경우가 많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겠지. 상황도 달라졌고, 이번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남북 대화를 하며, 북한도 북미 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이 평화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남북 관계의 개선과 북미 관계의 개선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데...

 

이 책은 '남과 북을 갈라놓는 12가지 편견에 관하여'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다. 하나하나 사실에 기반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보수가 어떠해야 하는지, 보수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수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철저하게 안보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사람들, 이제는 평화 패러다임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이를 한사코 거부하는 사람들. 그들이 우리의 평화를, 우리의 행복을 얼마나 방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지금은 절호의 기회다. 전쟁의 위협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는. 평화가 일상이 될 수 있는.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북한을 바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우리 상대로 인정해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때 그때서야 대화를 할 수 있다.

 

대화를 하기 시작하면 다름에서 같음을 찾을 수가 있다. 점점 함께 하는 부분을 넓혀갈 수 있다. 이것이 통일로 가는 길이다.

 

이 책, 정치인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국회에서 회의도 제대로 하지 않는데, 그 시간에 이런 책을 읽고 정치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이나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책을 읽어야 한다.

 

실상을 제대로 알아야 상대를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말미에 문익환 목사의 일화가 나온다.

 

문익환 목사가 생전에 재판을 받을 때 검사가 '친북'을 문제 삼자 "통일을 하려면 북한과 친해야 한다. 이남 사람들은 친북이 되고, 이북 사람들은 친남이 되어야 통일이 된다"고 반박한 적이 있습니다. (288쪽)

 

이 문장 다음에 '바로 그런 자세가 통일을 만들어 가는 자세가 아닐까요.'라는 저자의 말이 나온다. 이젠 남북이 상호 비방보다는 상호 칭찬하는 그런 관계를 지녔으면 좋겠다. 좋은 점을 보고 그것을 살리도록 서로 격려하는 것, 통일로 가는 한 걸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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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8-05-17 0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간간히 북한에 대한 책을 읽고는 있었습니다만, 모르던 저자였습니다. (소개 감사합니다. 꾸벅)
김연철의 <70년의 대화>을 읽을까 하던 참이었는데, 이 책과 엮어 읽어야 겠네요.

종종 다큐 등 미디어를 통해 엿볼 수 있는 북한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북한을 90년대에 멈춰놓고 판단하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몇 몇 언론사와 정부가 조장을 했겠죠)
통일까지야 모르겠지만, 서로 교류하고, 평화를 정착하는 일은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kinye91 2018-05-17 08:38   좋아요 1 | URL
어쩌면 우리는 북한을 옛날 ‘똘이장군‘이라는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로 여기고 있었는지 몰라요.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남북이 서로 교류하면서 평화를 정착시켜야 하겠지요. 저는 김연철의 ‘70년의 대화‘란 책을 몰랐는데,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쉽지 않은 시들이다. 표정을 읽지 않고 자세만을 보려 하는 시에서 자꾸 표정을 보려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표정을 보지 않으면 그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기를 쓰고 그 사람의 표정을 읽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표정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 새 그 사람이 지닌 자세를 놓치고 만 경우가 많음에도, 나무만 보다가 산을 보지 못한 경우가 많음에도 여전히 나는 나무만을 보려 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김소연이 쓴 시집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를 읽다가 떠올랐다.

 

  자꾸만 그림자를 이야기하는데, 그림자는 이데아가 빛에 의해 보여주는 허상일 따름이라는 플라톤의 말을 빌리면 그림자를 이야기하는 것은 허상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그래서 본질을 이야기하는 철학자와는 달리, 현상을, 현상이 비친 그림자를 노래하는 시인들은 공화국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하는 그와는 달리, 시인은 철저하게 그림자를 추구하고 있다.

 

그림자, 빛을 자신이 온전히 받아들여 밖으로 내보내지 않은 상태 아닌가. 그렇다면 빛으로 인해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 놓쳤던 것을 그림자는 다시 생각하도록 한다.

 

플라톤과는 반대로 그림자는 우리의 삶이 지닌 다른 면을 보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역시 마찬가지다. 앞면만 보는 것이 아니다. 빛만 보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뒷면을 보여주는 사람, 그것이 바로 시인이다. 김소연은 이 시집의 뒤에 실린 '그림자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 역시 그림자와 같지 않을까. 빛의 방향과 사물의 모서리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세계에 현현해 있는 모든 현란한 것들의 표정을 지우고, 그 자세만을 담으려 한다는 점에서. 시 쓰는 일은 그림자와 마주하는 일이다. 빛은 어깨 뒤에 있고 그림자는 내 앞에 있을 때에 시쓰는 일이 가능해진다. (김소연, 그림자론, 이 시집 111쪽)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추구해야 할 것은 빛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림자를 추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빛의 모퉁이에서

 

어김없이 황혼녘이면

그림자가 나를 끌고 간다

순순히 그가 가자는 곳으로 나는 가보고 있다

 

세상 모든 것들의 표정은 지워지고

자세만이 남아 있다

 

이따금 나는 무지막지한 덩치가 되고

이따금 나는 여러 갈래로 흩어지기도 한다

 

그의 충고를 따르자면

너무 빛 쪽으로 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불빛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다산(茶山)은 국화 그림자를 완상하는 취미가 있었다지만

내 그림자는 나를 완상하는 취미가 있는 것 같다

 

커다란 건물 아래에 서 있을 때

그는 작별도 않고 사라진다

 

내가 짓는 표정에 그는 무관심하다

내가 취하고 있는 자세에 그는 관심이 있다

 

그림자 없는 생애를 살아가기 위해

지독하게 환해져야 하는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지금은 길을 걷는 중이다 순순히

그가 가자는 곳으로 나는 가보고 있다

 

김소연,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민음사. 2006년. 14-15쪽.

 

내 삶에서 내가 보지 못했던 것, 보지 않았던 것, 그것을 보라고 시는 말하고 있다. 그래, 앞만 보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빛을 내 온몸으로 받아들여 그것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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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 LGBT(Q) 알마 해시태그 2
강병철 외 지음 / 알마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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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왜 사람들은 자기만 옳다고 생각할까? 그것도 사회 지도층에 있다는 사람들은 이런 증세가 더 심하다. 남 말을 듣지도 않고 또 남 생각은 잘못되었으며,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은 그릇된 행동이고 자기 행동만이 옳다는 듯이 말하고 행동한다.

 

여기에 더하면 종교인들도 그렇다. 자기 종교만 옳다. 다른 종교는 이단에 해당하거나 아니면 잘못된 믿음일 뿐이다. 그들을 개종시키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 날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같은 종교에서도 종파에 따라서 차별이 심하게 나타나는데, 다른 종교는 말할 것도 없다.

 

관용과 사랑, 자비에 바탕을 둔 종교가 오히려 배제와 억압, 말살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특히 사회에서 주류를 차지한다는 종교는 더 그렇다.

 

이들에게 소수는 이단일 뿐이다. 고쳐야 할, 자신들을 따르게 할 존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종교인이나 정치인 시 신이 아니다.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에 불과하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완전하지 않기게 서로 보완해주면서 살아간다. 내 부족한 점을 다른 사람이 메워주고, 내가 넘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고, 아름다운 사회고, 행복한 사회다.

 

자기만이 옳다고, 남들도 모두 자기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횡포다. 폭력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의식하지도 못하고 저지르는 폭력.

 

이런 폭력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이다. 물론 그들은 폭력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르다는 것은 인정하겠다, 그러나 그 다름을 너무 드러내지 말아라고 말할 뿐이다.그말 자체가 폭력이라는 것을 생각하지도 않고.

 

아름다운 사회, 좋은 사회는 소수를 인정하는 사회다. 소수가 행복하면 다수 역시 행복하다. 사회에서 가장 밑부분에 있는 사람들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라면 그 위에 있는 사람들 역시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도 성소수자는 여전히 힘들다. 그들을 이제는 대놓고 차별하지 않지만 - 아직도 인권 감수성이나 인권 의식이 많이 떨어지는 사람들, 집단들은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발언을 공공장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몇몇 종교에서는 성소수자를 인정하면 소돔과 고모라가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이 점점 줄고 있는 현실이다 - 은연 중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이루어지고 있다.

 

이 책에서 마음이 아픈 글은 바로 이런 보이지 않는 배제, 차별이다. 이주원이 쓴 '고독의 반대말'이라는 글을 보면 직장에서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말하지 못하는 고립감,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사원 복지에서 배제되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알게 모르게 직장에서 벌어지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들, 차별적 규정들이 얼마나 많은지, 여전히 이들에게 갈길이 멀다는 사실을 이 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러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주변에 성소수자가 있던가 하니, 내가 알고 있는 성소수자가 없다. 내가 둔감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여전히 내 행동, 내 말이 성소수자를 무의식 속에서 차별하고 있는 건지 생각하게 된다.

 

분명 없을 수가 없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 역시 성소수자를 이해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머리에만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가슴으로 그들에게 공감했다면 내 주변에 성소수자가 없을 수가 없을텐데 하는 생각.

 

그것은 토론에서 가끔 주제로 선택하는 '동성애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는 질문에 이미 나타나 있다.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의 문제가 아닌데, 이것을 주제로 택하는 것 자체가 이미 차별이라는 것.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그렇게 그들은 동성애자가 된다. 그러니 이들을 찬성, 반대로 나누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이미 문제다. 그들 삶을 심하게 간섭하는 것이다. 살아가는 사람에게 다른 삶을 강요하는 것이다.

 

백조연이 쓴 '동성애 찬성 반대에 관하여'란 글을 보면 많이 반성하게 된다. 여전히 성소수자에 관해서 지니고 있는 편견이 많다는 것. 이 책은 그 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많은 생각이 옳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용어, 언어를 정확하게 써야 한다. 그래서 성소수자에 관한 언어를 정리해주고 있다. 또한 과학, 의학의 발전에 기대어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 내용은 이 책에 실린 강병철의 '성소수자에 대해 의학이 알고 있는 것들'에 잘 실려 있다.

 

성소수자에 대해 말하기는 쉬운데, 행동하기는 어렵다. 나 역시 여전히 성소수자에 관해서는 머리에만 머물러 있다. 가슴까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가슴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하게 해줬다.

 

단순한 이해가 아니라 공감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다고 할까. 이제 눈 앞에 있는 길을 가면 된다.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이것이 인권이 살아있는 나라가 되는 길이다. 인권이 살아 있는나라는 좋은 나라고, 소수도 행복한 나라다. 소수도 행복한 나라, 그 나라는 모두가 행복한 나라다.

 

적어도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이 정도 나라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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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5 08: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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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5 10: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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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시대의 사랑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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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이다. 천천히 읽게 된다. 페르미나와 플로렌티노가 늙어가듯이 소설도 그렇게 천천히 전개된다. 우르비노 박사가 죽은 뒤, 그들이 다시 만나게 되기까지 과정이 하나하나 펼쳐진다.

 

열정적인 사랑, 죽을 것 같은 사랑 속에서도 페르미나를 잊지 못하는 플로렌티노는 페르미나를 잊지 않기 위해 육체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그가 관계한 여성이 600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 중에 열정적인 관계를 맺은 여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남자가 사랑을 유지하는 방법은 자신의 몸을 확인하는 것. 확인을 다른 여자의 몸을 통해서 하는데, 여기에 단순히 몸만을 취하지는 않는다.

 

몸을 취한다는 것은 마음을 취한다는 것과 연결이 된다. 몸만을 추구하는 사랑은 돈이 매개된 사랑이다. 돈으로 제 욕정으로 해소하기 위해 사는 관계, 그것이다. 그러나 플로렌티노는 돈으로 여자를 사지 않는다.

 

물론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여인과도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그 여인은 직접 돈을 받지 않는다. 저금통에 돈을 넣고 마는 것, 또 플로렌티노가 힘들어할 때 찾아가 위안을 받는 것.

 

이렇게 그와 관계를 맺은 여인들도 늙어가는데, 유일하게 관계를 맺지 않는 여인이 있다. 흑인 여성인 레오나 카시아니. 이 여인은 플로렌티노가 자려고 할 때 그를 아들로 생각한다고, 아들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거절한다.

 

이 여인은 플로렌티노가 선박 회사의 회장에 오르게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데, 어머니를 잃은 그에게 레오나는 어머니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또 한 여인이 등장하는데, 결국 자살하고 마는 아메리카 비쿠냐, 십대의 나이에 플로렌티노와 관계를 맺는 그녀는, 마치 롤리타를 연상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플로렌티노가 페르미나로 인해 그녀와 관계를 끊자 자살하고 만다.

 

십대 여인이 칠십 대 노인과 사랑에 빠진다? 소설은 이게 가능하다고 하고 있다. 세상에 사랑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이런 나이가 상관없음이 바로 페르미나와 플로렌티노의 사랑에서 나타난다. 노인들의 사랑을 추악한 것으로 여기는 페르미나의 딸과 아들과 달리 며느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에는 신분도 나이도 필요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사랑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 하는 사랑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정신적인 사랑만은 아니다. 육체적 사랑도 가능하다.

 

페르미나와 플로렌티노는 나중에 육체 관계를 갖는다. 처음에는 그다지 만족하지 못하지만, 이들은 서로가 만족할 만한 육체 관계를 찾아낸다.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통했을 때 관계를 맺는 것이다. 다른 때는 그저 함께 있기만 해도 좋다. 그렇게 잔잔한 만남, 잔잔한 사랑으로 변해간다.

 

이 소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공적인 생활의 과제는 두려움을 지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부부 생활의 과제는 지겨움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89쪽)

 

그렇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불처럼 이는 사랑으로 결혼에 이르렀다고 해도, 이들의 생활은 반복으로 점철된다.

 

반복되는 삶, 지겨움이다. 이 지겨움을 이겨낼 때 부부 생활은 지속된다. 하지만 지겨움을 이겨내지 못하면 일탈이 일어나거나 부부 생활이 파탄나게 된다.

 

우르비노 박사와 페르미나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르비노 박사 역시 바람을 피우고, 그런 관계를 통해서도 이들의 결혼 생활은 계속 유지된다. 한때의 바람, 이것은 부부 생활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몇 십년 동안 지속되는 비슷한 일상이 얼마나 지겹겠는가. 사랑에 빠졌을 당시에는 새로움의 연속이었지만,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나면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일상이 시작된다.

 

일상의 연속, 이것은 지겨움이고, 바로 '별것'이었던 사랑이 '별것 아님'이 되고 만다. 이렇게 별것 아닌 사랑 속에서도 결혼 생활은 지속되는데, 이런 지속이 바로 사랑을 '별것'으로 만들어 준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은 '별것'이  '별것 아닌 것'이 되었다가 다시 '별것'이 되는 과정이다. 이 '별것'에 한 사람과의 사랑이 자리잡을 수도 있고, 또 사별을 한 뒤 다른 사람과의 사랑이 될 수도 있다.

 

이 소설에서는 페르미나와 플로렌티노의 사랑이 대미를 장식하게 되는데... 한 순간도 페르미나를 잊지 못했다는 플로렌티노의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다른 여자들과 사랑을 할 때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도 된다.

 

그는 그렇게 페르미나를 기억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을 하고 결국은 그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페르미나와 맺어지는 것.

 

환상적인 사랑이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사랑이다. 현실로 꽉 찬 그런 삶이 이 소설을 지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누가 사랑에 환상을 품을 수 있단 말인가. 무려 53년을 기다려 맺어진 사랑이라고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만은 없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일상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적나라한 인생들이 모여 우리 삶을 이룬다는 것을 소설은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별것' 아닌 삶을 '별것'인 것으로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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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4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4 09: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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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 그리움

 


 

그리움을 참다

 

칼에 찔리다

 

천, 만,

 

마음을 찌르는 칼

 

온몸에 돋는 피멍

 

피멍이 굳어

 

먹빛으로 변해가다

 

더는

 

참을 수 없을 때

 

그리움 말고는 더

 

생각할 수 없을 때

 

오직 그대를 향해

 

일절 망설임 없이

 

내리 쏟아지리라

 

그리움들이

 

수직으로

 

세상을 하얗게 채우게

 

누구라도 알 수 있도록.

 


 

비록 그대에게 닿아

 

내 자신이 부서지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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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3 09: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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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3 11: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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