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퀴어 - 근대의 틈새에 숨은 변태들의 초상
박차민정 지음 / 현실문화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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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틈새에 숨은 변태들의 초상'이라고 작은 제목을 붙였다. 제목만 보면 자극적인 어휘를 써서 사람들의 흥미를 끌려고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퀴어'라고 하면 '이상한'이라는 의미가 있으니,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보통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의 퀴어라고 했으니, 지금 이야기가 아니니, 사람들이 어떤 도덕적 잣대를 지니고 읽어나가지 않아도 된다.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가 무엇인가. 바로 현재를 이루고 있는 바탕 아닌가. 과거는 그냥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라 지금을 이루는 구성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퀴어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어떻게 지냈고,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알면 지금 성소수자들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지녀야 할지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조선시대... 이 책을 읽다보면 조선시대가 아니라 조선 말기부터 일제시대까지 신문기사나 다른 기록을 통해본 소수자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소수자들이 많았다는 사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성을 꼭 양성으로만 판단하지 않았다는 것.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여성의 말투와 여성의 복장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인정해주었다는 것, 오히려 성소수자에 대한 박해는 일제시대를 통해서, 우리가 근대화 되는 시기에 더욱 강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이 전해주는 장점은 단순하다. 성소수자들. 오늘날 갑자기 뚝 떨어져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 아니라는 것.

 

성소수자들은 어느 시대에도 있었다는 것, 그리고 사회는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고민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는 것.

 

일각에서 성소수자들을 사탄이라고 몰아부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들이 미개했다고 생각하는 조선시대에서조차도 이런 성소수자들을 비롯한 소수자들을 포용하는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 어떤 것이 발전한 사회일지 이 책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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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7 11: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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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7 11: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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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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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읽으면서 왜 이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하는지 이해를 못 했다. 그냥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 아닌가 하는 생각만 했다.

 

체코를 침공한 소련군에 의해 생활이 깨뜨려진 사람, 토마시. 그는 능력있는 외과의사이지만 소련의 침공으로 스위스로 간다. 그러나 자기 곁을 떠나는 테레자를 따라 다시 체코로 오게 되고, 외디푸스에 대한 글을 썼다는 이유로 의사 자리에서 쫓겨나 유리 닦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나중에 테레자와 농촌으로 가서 살다가 트럭 사고로 죽었다고 나오고, 여섯 번의 우연으로 토마시와 살게 된 테레자 역시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켜주는 사람으로 토마시를 생각하고, 그와 함께 살지만, 그녀 역시 망가진 삶을 살게 된다.

 

여기에 화가인 사비나가 나오는데, 이 사비나만이 끝까지 살아남는다. 그리고 사비나가 사귀던 남자 토마시가 아닌 프란츠 역시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소설은 이 네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 중에서 특히 중요한 주인공은 토마시와 테레자이다. 이들의 삶은 어떻게 보면 무겁다. 정치적인 격동기에 자기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를 결정해야 하는 때, 어떻게 삶이 가벼울 수가 있는가.

 

여기에 영원회귀와 일회성이 나온다. 우리 삶이 영원회귀하는가, 아니면 일회로 그치고 마는가. 작가는 우리 삶은 일회적이라고 한다. 그것도 우연으로 점철된 삶이라고.

 

그러므로 우리 삶은 무거울 수가 없다. 삶이 반복된다면 가벼울 수가 없다. 내가 살았던 삶을 또 살게 되는데, 어떻게 가벼울 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종교를 가진 사람들, 삶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들 삶은 무겁다. 그들은 내세를 생각하고 지금 삶 건너 편을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 삶이 그럴까.

 

삶은 순간의 연속이고, 그 순간은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우연들일 뿐이다. 혹 반복되더라도 그것은 우연이지 필연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삶은 가벼워야 한다.

 

하여 소설 제목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삶은 우연이다. 우연의 반복일 뿐이다. 그렇게 가볍다. 그 가벼움이 우리를 참을 수 없게 만든다.

 

왜냐하면 우리는 삶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왔다가 사라지는 인간이 자신이 존재했다는 의미를 찾지 못하면 그것은 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토마시나 테레자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 토마시가 테레자와 살면서도 여러 여자들을 만나고, 그들과 사랑을 나누는 것은 바로 자신의 존재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 이는 삶은 순간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해준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 보자.

 

삶은 순간의 연속이고, 우연의 연속이다. 그렇게 가볍다. 가볍기 때문에 그 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다음은 없다. 다음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순간에 충실하기 위해서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

 

토마시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살지 못하고, 또 순간의 사랑으로 테레자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데... 그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다만, 최선을 다해도 비극에 빠질 수 있다. 이를 소설에서는 외디푸스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토마시가 외디푸스를 예로 들어 모르고 행동했다고 잘못이 없다고, 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듯이, 우리 삶도 일회적이고 순간적인 우연의 연속이지만, 결과는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

 

그러므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그렇게 삶은 가볍지만 참을 수 없을 만큼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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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삶에서 나를 만나다 -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고 서로 위로하는 수업 성찰
김태현 지음 / 에듀니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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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선생 노릇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이리라. 어떤 사람은 그만큼 선생들은 쪼잔해서, 먹을 똥도 없다는 뜻이라고 하기도 하고, 선생들은 꽉 막혀서 배출을 하지 않기 때문에 너무 냄새가 심해 먹을 수가 없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말들이 뜻하고 있는 것은 한 가지다. 선생 노릇 쉽지 않다는 것. 쪼잔하다는 얘기는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 그만큼 구체적으로, 세심하게 계획하고 실행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고, 꽉 막혔다는 얘기는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원칙을 지키며 타협하지 않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다른 쪽으로 해석을 하면 그래서 선생들은 인정을 받을 수가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쪼잔하든 구체적이고 자세하든 다른 사람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가 있고, 꽉 막혔든, 원칙에 충실하든 역시 상대에게는 구속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생으로서 인정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에 교사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고, 교사들에 대하여 방학을 없애야 한다는 국민청원도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 교사들이 성추행을 했다는 #미투 운동도 일어나고 있으니... 교사들은 사면초가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솔직히 누가 교사를 인정하나? 우선 교사들을 지원해야 할, 이름도 참 교육지원청이라고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장학사(관)들이 있는 교육청은 여전히 교사 위에 군림하고 무엇을 하라고 지시를 내리고만 있고, 교육청 위에 있는 교육부가 과연 교사들을 믿고 있는지, 그들이 교육제도를 바꾸기 위해 현장 교사들이 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없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고.

 

교육과 관련있는 이런 조직이 이미 교사를 무슨 종 취급하거나 죄인 취급하고 있는 현실에서 교사들의 자존감은 한참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교사들을 더 끌어내리는 집단이 있으니 바로 학부모(부모가 아니라 학부모다. 학부모가 되지 말고 부모가 되라는 광고가 있을 정도니, 우리나라에서 학부모란 말은 긍정보다는 부정의 의미가 더 강하다)들이다. 가장 교사들을 믿지 못하는 집단, 자기 자식들을 맡겼음에도 불구하고 드러나게 교사들을 불신하는 집단이 학부모들이다.

 

이들은 학교를 시장으로 판단한다. 상품이 학교에 들어왔다. 자식들이 상품이라면 교사는 판매자다. 소비자자 원하는 상품을 내어놓아야 한다. 그러니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교사들은 무능한 교사일 뿐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성, 전인? 아니다. 오로지 좋은 성적, 좋은 대학일 뿐이다. 이것을 교사들이 만족시키지 못하면 무능한 교사일 뿐이다.

 

상품으로 교육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교사를 대하면, 그리고 교사를 존중하면 교육은 좀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사람은 없고 상품만 넘치는 곳, 그곳이 바로 학교다. 학부모는 학교를 시장으로 만들고 있다.

 

한 집단을 더하자. 교사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학생들이다. 학생들, 교사의 존재이유기도 하지만 교사를 포기하게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학생들에게만큼은 인정받고 싶어하는 교사들이지만 학생들에게 유독 인정을 받지 못한다. 그 모습이 바로 수업시간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어떤 수업을 해도 듣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 있다가 아니라 많다.

 

최근에 교사들에게 온갖 수업 방법에 대한 연수, 그리고 수업방법론이 나온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수업 붕괴라는 현실에서 교사들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각종 방법론을 들고 나온 것 아닌가.

 

이 책을 쓴 김태현 교사도 그런 방법론을 전파한 사람 중에 하나다. 교사들에게 수업 붕괴를 막을 방패를, 수업 혁신을 이끌 창을 줄 수 있다고 믿고 나름 열심히 활동한 교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교사를 위로하는 글을 썼다. 수업 혁신, 아니 교육이 사는 길은 방법론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말하고 있다.

 

수업을 살리는 길은 기술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다고, 온갖 교수법에 있지 않고 바로 교사의 삶에 있다고 하고 있다.

 

우선 교사가 행복해야 한다고. 교사들은 누구나 어려운 길에 있다고. 밤하늘에 별이 있는데 별을 볼 수 있는 학생들이 거의 없듯이, 학생들 가슴에 별을 심어주고 싶은데,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고 있다고...

 

학생들 가슴에 별을 심어주는 일은 기술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우선 교사들 자신이 별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별을 가슴에 심고 있어야 한다고.

 

그래 내가 마음이 편해야 다른 사람을 편하게 대할 수 있는데, 교사는 학생을 보기만 하고 자신을 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고. 이제는 교사들 자신을 보아야 한다고.

 

어떻게? 바로 이 책에서 그림과 시, 글을 통해서 교사들 마음을 위로해주고 있다. 딱히 어떤 방법론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지금 교사들에게는 방법론으로 대변되는 기술이 중요하지 않고 교사들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자신들 삶을 보고 힘듦을 인정하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교육활동을 하는 것. 그렇다. 이 책은 교사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이다.

 

사방에서 교사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이 책에서는 그것은 교사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있다. 그냥 따스하게 교사를 감싸주고 있다. 바로 여기서 시작하자고. 나만 힘든 게 아니라고. 우리 교사들은 모두 힘들다고. 서로 손을 잡아주자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교사들이 처한 상황, 고민을 알 수 있게 된다. 남 앞에 선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아니, 교사들은 남 앞에 서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코 앞에 서지 않는다. 교사들 앞에 서 있는 존재는 바로 학생들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이 책을 쓴 교사처럼 그림과 시 하나를 더하고 싶어졌다. 바로 이것이 학교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림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시는 서정춘의 '죽편1'

 

 

학생은 이 그림에서 마르가리타 공주와 시녀들 처럼 전면에 나와 있어야 한다. 이들이 바로 학교의 주인공이다. 그들은 정중앙을 차지하며 많은 부분을 차지해야 한다. 학교가 학생을 주인공으로 만들지 않으면 힘들어진다.

 

교사는 화가다. 벨라스케스 자신을 그림에 등장시켰다고 하는데, 뒷편에 그것도 가운데가 아니라 한쪽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을 지켜봐야 하고, 그들의 마음에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 벨라스케스가 그림을 남겼듯이.

 

왕으로 대변되는 학부모, 교육청, 교육부 관료들은 멀찌감치 있어야 한다. 그림 속에서 거울 속에 있듯이... 이들은 나서서는 안 된다. 그냥 지켜봐주고, 지원해줘야 한다. 그래야만 학교가 제대로 운영된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이 명작으로 남듯이.

 

서정춘의 시를 보자. 그럼에도 교육은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생이 학교에 다닐 때 완성되지 않는다. 서정춘 시는 짧다. 그런데 시 속에는 긴, 긴 시간이 담겨 있다.

 

  죽편1

     - 여행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서정춘, 죽편, 동학사. 2002년 2판 1쇄. 18쪽.

 

교육은 그만큼 멀다. 수업 하나하나는 밤이 깊을 수도 있다. 그리고 학생들이 가슴에 별을 심고 꽃을 피울 때까지 멀고 먼 시간, 긴 시간이 걸린다.

 

그 머언, 긴 시간을 보고 수업을 하는 교사, 그들이 삶을 보고, 삶을 사는 교사들이겠다. 이런 교사들에게 왜 지금 애들이 꽃을 피우지 않냐고 하는 사람, 이들은 교육을 모르는 사람이다.

 

교사에 대한 비난이 지금만큼 많을 때가 있었나 싶다. 하지만 이렇게 교사들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힘들어 하는 교사들 곁에 가만히 앉아 있어주는 이런 책, 이런 책을 쓴 교사가 있다는 것. 어쩌면 우리나라 교육이 여전히 좋아지고 있다는 얘기가 되는지도 모른다.

 

지치고 힘들고 우울함에 좌절에 빠진 교사들, 이 책은 이런 말을 해주고 있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ㅡ 우리 함께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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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4 10: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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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4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편애6


끝을 보면서

사랑해야 함은

헤어짐조차

설레임으로 만든다.

헤어짐을 생각하며

지금 이 순간

그리움에 싸여 있는 것

그리움조차

잃어가야 하는 것

지독한 감기,

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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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덥다. 7월인데, 초복이 겨우 지났을 뿐인데, 낮 온도가 30도를 넘어서는 것은 기본이고, 34도 35도까지, 아니 그 이상까지 올라가는 지역이 많아지고 있다.

 

  살기 힘든 사람들에게 견디기 힘든 계절이 여름이 되고 있다. 무더위. 지쳐 나가 떨어진다.

 

  더위뿐이랴.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는 자들에 의해 없는 사람들은 계속 떨어져 나가고 있다.

 

  대한항공에 이어서 아시아나가 한 짓을 보라. 또 최저임금을 올렸다고 못 살겠다고 아우성 치는 더 가진 자들을 보라. 도대체 이들은 얼마를 가져야 만족하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던데... 비정규직이 어떻게 되든 정규직들이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는 노동자들도 많고, 국민들이 낸 세금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특활비라는 명목으로 쓴 국회의원들...

 

기껏 나라를 지키라고 세금으로 먹여살려줬더니, 나라를 결단낸 사람을 쫓아내려는 시민들을 총칼로 위협하려던 정치군인들... 더위보다 더 무서운 인간들이다. 집단들이다.

 

이들을 물러나게 하면 이 더위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듯이 기분이 상쾌해지겠는데... 기득권이란 그리 쉽게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닌지, 그리 쉽게 쫓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닌지, 더위에 이들이 더해 사람을 견디지 못하게 하고 있다.

 

더위를 느끼면서 '삶이보이는창 115호'를 읽었다. 읽으면서 왜 더 더워지지... 세상을 밝게 해주는 글들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아닌가 보다. 세상이 더 무겁고 찐득하고 칙칙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고 있으니.

 

더위 탈출은커녕 더위에 더위를 더하는, 무슨 이열치열도 아니고, '삶창'에서 만나는 현실이 암울해졌다. 하지만 삶창에서 다루고 있는 일들이 해결이 된다면 무더위가 가시는 상쾌한 상태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권이라는 말을 듣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고, 할 일도 많고, 또 하겠지만, 그럼에도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음에...

 

이번 호 처음은 제주 제2공항 문제로 시작한다. 공항 하나 만드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관광객들을 더 많이 끌어오게 되니까 제주도에 좋은 것 아니냐고...

 

제주도가 그렇게 넓은 땅이었던가. 한 해에 지금도 거의 2천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제주도를 방문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제주도 쓰레기 매립지가 1-2년 내로 포화 상태가 된다고 하는데 (27쪽), 또다시 2천만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공항을 짓는다고?

 

한 해에 4천만 명이나 되는 관광객을 제주도로 끌어들이겠다고?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항이 문제가 아니라 호텔과 같은 숙박시설을 지어야 하고, 그들이 먹어야 할 음식점을 지어야 하고, 또 그들이 여행할 차들(제주도는 버스로, 또 올레길을 걸어도 좋지만, 대다수 관광객들은 차를 빌려 운전을 하고 다닌다)을 어떻게 한다고?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제주도가 그런 자연경관을 해치면서 관광객을 유치하겠다고... 본말이 전도된 생각 아닌가.

 

그런데도 제2공항을 건설하겠다고 한다. 누구에게 이익인가? 제주도에 살고 있는 도민들에게... 아니다. 개발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4대강으로 환경이 파괴되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지만 엄청난 이익으로 웃음이 넘쳐나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들이 누구인지 환경운동연합에서 4대강인물열전을 내보내고 있으니, 한번 보는 것도 좋을 듯.

 

이렇게 이번 호에서 제주2공항이 얼마나 반환경적이고, 반생태적이고, 반도민적인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제주도지사나 정부는 별다른 생각이 없나 보다. 이들에게는 눈 앞에 보이는 이익이 더 중요한가 보다.

 

자손 대대로 살아갈 제주도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개발이냐 보존이냐라는 해묵은 논쟁을 할 필요는 없다. 이미 결론이 났지 않은가. 성장, 개발로 가다가는 공멸한다는 것, 잘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이번 호에서 관광지로 유명한 보라카이가 휴식기에 들어갔음을, 그것도 관광몸살로 그렇게 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으니 제주도에 좋은 참고자료, 반면교사가 있는 것 아닌가.

 

이 무더위, 무엇때문인가. 개발 때문 아닌가? 개발로 인해 땅이 숨을 못 쉬고, 열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콘크리트-아스팔트가 열을 도로 뱉어내며, 내가 시원하자고 트는 에어컨이 실외기를 통해 열을 바깥으로 내뿜어대고,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이 내뿜는 열기는 또 어떤가?

 

공장을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주변에 있는 개발로 인해 우리는 이 엄청난 무더위를 겪고 있지 않은가. 이 무더위를 후손들에게 영락없이 물려줘야 할 판인데...

 

제주도에 공항이 하나 더 생기면 제주도에 가고 싶어질까? 무얼 보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을 보러 제주도까지?

 

이런 주장을 하면서, 이번 호에서 제주 2공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에게 먼 얘기같지만 이것은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삶창이 제일 앞에서 이 일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양한 쟁점들을 소개하고, 시도 소설도 있어서 읽을거리가 많아졌다. 찾아서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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