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7
소포클레스 지음, 강대진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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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내용을 다 아는 듯해서 결국 제대로 읽지 않는 작품들을 말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디푸스 콤플렉스', 결국 아들이 아버지를 경쟁자로 생각하고 어머니를 사랑하는 정신 문제라는 말, 외디푸스 콤플렉스라고도 하는데...

 

그렇게 내용을 알지만 정확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는 못했던 작품.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짤막한 내용으로 알고 있던지, 아니면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지식으로 아는 체 했던 작품. 소포클레스의 비극이라는 것은 지식으로만 존재했는데...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는 참에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을 비롯한 그의 비극 작품들을 함께 읽기로 했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좀더 깊이 있게 알기 위해서다.

 

이 책에는 '오이디푸스왕, 안티고네, 아이아스, 트라키스 여인들' 이렇게 네 편이 실려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은 사람이라면 약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내용이라서 쉽게 읽을 수 있다.

 

내용 중심이 아니라 표현 중심으로,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인간의 운명은 정해진 것인가, 그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인가. 거대한 운명 앞에서 파멸해 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것이 바로 비극인 것인데...

 

쿤데라가 쓴 작품 '농담'이 생각나기도 했다. 쿤데라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하여금 오이디푸스를 빌려 당시 공산주의 정권을 비판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기 잘못이 아니라도 결과가 잘못되었다면, 실수라고 하더라도 잘못된 결과를 유발한다면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오이디푸스는 이 점에 대해서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이 많다. 오이디푸스, 그는 평생을 신실하게 살려고 했다. 또 많은 사람들을 고난에서 구해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운명 앞에 무력했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리라는 신탁. 그는 그 신탁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나 그 행동이 신탁이 실현되게 한다.

 

그래,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옳은 길을 갔을 뿐이다. 그런데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고통을 초래했다는 책임. 그 책임을 피해가지 않으련다. 오이디푸스는 그래서 장대한 비극이다.

 

인간성을 극한으로 몰아가는 비극이다. 이런 모습은 '안티고네'에서도 나타난다. 오이디푸스의 딸인 안티고네. 왕이 시체를 장례지내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지만, 그것은 천륜에 어긋난다는 생각으로 오빠의 시신을 장례치러주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 사람.

 

천륜과 인륜... 인간이 만든 법을 어겼을 때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신이 내린 윤리를 어길 수 없다는, 형제를 그냥 땅에 내버려둘 수 없다는 안티고네의 마음과 행동.

 

이 장면은 '아이아스'에서도 나온다.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의 죽음 이후 그의 무구를 놓고 오뒷세우스와 경쟁을 하지만 결국 오뒷세우스에게 무구를 넘겨주게 되는 아이아스.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그리스 군에서 가장 용맹한 장군이지만, 그는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받지 못하자 원한에 차 살인을 저지르려 한다.

 

그런 죄 때문에 자살한 그의 시체를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가 장례를 치르지 못하게 한다. 그리스에서 가장 큰 형벌은 시체를 묻지 못하게 하는 것. 그렇다. 신체를 온전히 땅에 묻어 하데스에게 가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그것은 가장 큰 형벌이기도 하다.

 

안티고네나 또 아이아스에서 그 동생인 테우크로스에게는 이런 형벌은 타당하지 않은 명령이다. 그러니 그들은 목숨을 걸고 시체를 매장하려 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헥토르의 죽음도 그렇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리를 전차에 매달고서 그의 시체를 훼손한다. 그때 아버지 프리아모스가 찾아가 시체를 돌려달라고 애원하는데...

 

그리스 인들의 사고 방식에서 시체를 매장하는 것, 훼손하지 않고 장례를 치르는 것은 인간의 최후에 대한 기본적인 윤리다. 그런 윤리를 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 인간의 법. 그 법에 맞서 천상의 윤리를 주장하는 인간. 다행히 테우크로스는 오뒷세우스의 도움으로 아이아스의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지만...

 

죽음도 불사하면서 신의 윤리를 실행하려는 인간의 모습, 실수라도 끝까지 책임지려는 인간의 모습, 비극이 보여주는 인물들. 책임을 요리조리 피해가려는 인간들이 득시글한 지금... 비극은 그런 인간들이 인간의 법에도 충실하지 못한, 인간성을 지니지 않은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부분, 사랑으로 인해 비극으로 끝나는 데이아네이라와 헤라클레스의 사랑. 인간은 맹목일 수밖에 없다. 눈이 먼다. 앞뒤를 잘 살펴야 하는데, 비극은 행동을 한 다음에 뉘우침이 따른다는 것이다.

 

행동을 먼저 해놓고, 아차 하는 후회가 뒤따르니, 이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후회를 하면서 살아가는가.

 

비록 의도한 잘못보다 실수로 인한 잘못이 용서를 받기는 쉽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실수를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를 지니는 인간성, 죽음까지도 받아들이는 그런 인간성의 극한. 그것이 바로 비극에서 나오는 인물들의 모습이다.

 

그래, 인간성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인간의 모습,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준 요소이지 않을까 한다. 비극이 그 점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우리 삶에 책임을 지라고,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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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1 1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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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1 12: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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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8 - 오이디푸스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지음, 강경화 옮김 / 열림원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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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8권. 신화에 관한 길고 긴 여행이었다. 그리스 신화 마지막 권 주인공은 오이디푸스이다.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물.

 

그는 자기 잘못이 아닌 조상의 잘못으로 고난에 빠지게 된다. 그 고난을 온몸으로 겪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인물이다.

 

마치 우리 인간이 원죄를 지었다는 말을 연상시키는 그의 운명인데... 원죄에 대해서는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 멀고 먼 옛날에 일어난 일이 저주로 내게 다가오는 것이니.. 이를 '업'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오이디푸스 역시 비극은 자신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큰아들과 둘째 아들은 권력에 눈이 멀어 서로 싸우다 함께 죽게 되고, 큰딸인 안티고네는 오빠의 시신을 장례치러주었다는 이유로 잡혀가 자살을 하게 된다.

 

이렇게 그의 가족은 풍비박산난다. 그게 운명이었다. 이런 운명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자세. 어떠해야 하는가. 이것을 생각하게 한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 라며 억울해만 할 것인가. 아니면 내 잘못은 아니지만, 이미 내가 태어날 때 지고 온 잘못이니 내가 할 수 있는 한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를 지닐 것인가.

 

오이디푸스는 자기 책임을 지려고 했다. 그는 받아들였다. 고난을 겪는다. 죽음에 이를 때까지... 영광의 순간에서 몰락의 순간까지 다 겪게 되는 인물, 그 자식들 역시 비극을 겪게 되는 인물. 여기서 신의 도움은 없다.

 

영웅시대가 저물어가는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신의 도움없이 자신의 지혜로 스핑크스 수수께끼를 풀었다. 또한 그가 겪는 고통에 신이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고난 받는 인간을 만나게 된다. 마치 우리 인간들의 역사가 이런 고난으로 점철될 것을 예견한 듯이.

 

다시 원죄, 업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도대체 왜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조상들의 죄를 대신해야 하는가? 죄가 한 대에서 끝나지 않고 여러 대에 걸쳐 일어나는가. 그것은 그만큼 죄가 크다는 의미인가.

 

우리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그 당대에 끝나지 않을 잘못이라는 것. 그것은 자손들 대대에 걸쳐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것. 그러하기에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 특히 남을 죽음에 이르게 하면 안 된다는 것.

 

우리나라 신화 중에 '차사본풀이'가 생각난다. 남의 아들 셋을 죽인 괴양생이가 아들 셋을 낳지만 그 아들이 과거에 급제해 돌아와 잔치를 벌이려고 하자 줄줄이 죽어나가는 이야기. 괴양생이 저지른 잘못이 아들들 죽음으로 이어지는 업.

 

오이디푸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겪게 되는 일들은 이런 업이 실현되는 것이다. 업을 끊는 일, 참으로 힙겨운 일이다. 그것은 자손들의 피나는 노력, 희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읽으며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떠올리기보다는 내 잘못이 후손들에게까지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음을, 그래서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는 결국 자기에게 또 자기 후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업이나 원죄나 이것은 모두 행동을 조심하라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인간과 함께 지내기 위해 지켜야 할 태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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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IG BROTHER GEORGE BUSH II

- 2008년 8월 from 2mb


  형님! 잘도 조지고, 부셨소. 검은 물 나는 나라도, 형님과 생각이 다른 나라도 형님은 뜻대로 움직였소. 난 형님이 좋아, 형님이 내 어깨를 다독거릴 때 너무도 기뻐 웃음을 참을 수 없었소. 전 세계인을 꼼짝 못하게 하는 형님이 부러워 나도 한 번 해볼까 했는데, 난 기껏 부수고 걷어내는 것밖엔. 형님이 검은 물 나는 나라를 밑에 거느릴 때, 난 겨우 양초에 붙은 불을 끌 수 있었을 뿐. 형님, 이름이 같은데, 부시란 이름과 부시맨이란 이름은 왜 그리 다른지. 난 형님의 그 오만이 좋소. 독선이 좋소. 형님보단 짧게 하겠지만 나도 앞으로 4년이 있소. 자, 작은 조지고 부시를 봐주시오. 난 뇌용량이 겨우 2MB라 다른 것은 생각 못한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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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7 - 오디세이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지음, 김세희 옮김 / 열림원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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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이다. 이번 권 주인공은 단연 오디세이다. 오딧세우스 또는 오뒷세우스라고 하는 영웅. 아마도 트로이 전쟁에 참여한 인간 중에 가장 지혜로운 인간이라고 하는 사람. 그러나 지혜란 남을 위해 발휘될 때 빛을 발하지만 자기 이익을 위해 발휘될 때는 독이 된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은 이미 자기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두뇌를 사용한다는 의미겠지만, 자기만을 위해 두뇌를 이용하는 사람을 우리는 꾀가 많다, 약삭빠르다고 하지 지혜롭다고는 하지 않으니, 오디세이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면 그는 공평무사한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오디세이를 읽다보면 그가 그렇게 공평무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역시 자신의 꾀로 남을 어려움에 처하게 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인정을 받는 왕이었고, 신의 은총을 받는 사람이었다.

 

트로이전쟁에서 승리한 뒤 포세이돈의 분노로 고향에 돌아가는데 10년이 걸린 오디세이. 트로이 전쟁에서 10년, 전쟁이 끝나고 10년, 20년을 집을 떠나 고생을 하는 오디세이다. 그러므로 그의 고난은 인간이 전쟁으로 인해 겪는 고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오디세이의 모험과 고향에 돌아와서 겪는 일이 함께 섞여 있다. 오디세이는 온갖 고난을 겪고도 고향에 돌아와서도 고난이 끝나지는 않는다. 고향에 돌아와서도 아내에게 구혼하는 구혼자들, 그들의 횡포에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구혼자들을 물리치는 과정, 고향에 돌아와서 그가 자기 자리를 찾기까지의 과정이 더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다른 책들은 그가 고향에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길게 설명하고 고향에 돌아와서 한 일은 짧게 서술하기도 한다. 이 책에 어디에 무게 중심을 두었는지, 서술하는 분량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고향에 돌아와 구혼자들에게 복수를 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고향을 떠난 뒤 돌아와서 다시 정착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오디세이 같은 왕도 이러한데, 일반 사람들은 어떠하겠는가. 그래서 이 신화는 고향을 떠나 떠돌던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와서 자기 본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고생을 하다 돌아온 사람들, 그들의 고생이 거기서 끝났으면 좋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들은 고향에 돌아와서 제2의 전쟁을 겪어야 한다. 그 전쟁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그들은 고향에 안주할 수 있다.

 

고향에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고통이 자신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그 고통을 끝나게 할 수 있는 사람들, 그것은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이 있어야 한다.

 

오디세이에게는 아내인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 그리고 충직한 하인이었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도움으로 그는 구혼자들을 물리칠 수 있게 된다. 그를 계속 괴롭히는 전쟁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여기서 신은 빼자. 신화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신의 도움이 있었다는 말은 너무도 당연하니 말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끔찍한 일을 겪었을 때 그 다음에도 그와 비슷한 고통을 겪는다. 그 고통을 이겨내야만 자기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

 

오디세이 모험을 이렇게 고난 -> 귀향 -> 또 하나의 고난 -> 극복 -> 안정(행복)으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상황에 이 과정을 대입 해보면 여전히 우리는 전쟁으로 인해 겪은 고통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위안부나 강제 징용 피해자나 또 베트남 전쟁 등에 참전한 사람 등등 이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귀향했다. 그러나 일제시대, 베트남 전쟁 등이 끝났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말하지 말라. 오디세이를 읽어 보라. 그는 10년간 바다를 헤매었지만 고향에 돌아와서도 금방 정착하지 못했다. 정착할 수가 없다.

 

여전히 그에겐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는 그의 고향에 안주하지 못한다. 정착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고난을 겪은 분들이 과연 귀향해서 그 고난을 극복했는가 하면 그렇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가 없다. 우리가 바로 오디세이 신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 역시 그들이 오디세이처럼 정착할 수 있게, 기나긴 고난의 과정을 끝내고 이제는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방해를 하는 구혼자와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이런 읽기 독법이 가능하다는 것, 역시 신화가 무궁무진하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화가 우리 역사를 통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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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6 - 일리아드 트로이전쟁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지음, 최순희 옮김 / 열림원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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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시대가 정점을 향해 달려간다. 많이 알려진 트로이 전쟁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는 일리아드라고 한다. 일리아드, 다른 이름으로 일리움이라고도 한다.

 

그리스와 트로이가 10년에 걸쳐 벌인 전쟁. 이 전쟁에서 수많은 영웅들이 죽고, 트로이는 멸망하고 만다. 이때를 대표하는 인물은 그리스에서는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아킬레우스, 오딧세우스이고, 트로이에는 헥토르와 아이네이아스다.

 

신들 역시 서로 나뉘어 각자가 지지하는 나라에 도움을 주고, 자기가 밀어주는 영웅들의 운명에 간섭하기도 하는데... 신은 트로이 멸망을 예정하고 있었으니...

 

역사의 수레바퀴를 아무리 영웅이라 해도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는 없는 법. 트로이 전쟁을 다룰 때 주로 아킬레우스라는 영웅에 중심을 둔다. 인간 중에서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존재. 하지만 그에게도 약점이 있어 아킬레스건이라는 이름이 붙은 치명적인 약점.

 

결국 그곳에 화살을 맞고 죽게 되는 그. 이런 영웅들의 일생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읽어도 되지만, 트로이 전쟁을 보통 사람들 입장에서 읽게 되면 참 비참한 전쟁이 된다.

 

우선 병사들과 백성들, 이들은 헬레네라는 여인 한 명 때문에 일어난 전쟁으로 참화를 입는다. 가족을 잃고, 병사로 나가 목숨을 잃고, 재산도 잃게 되는 사람들. 이들에겐 선택권이 없다. 이들은 자율권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영웅에 딸린 부속물처럼 대우받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보통 사람들에게 비극으로 다가오게 된다. 보통 사람들 중에서 더 피해보는 존재들, 아무 죄도 없는 어린아이.. 적장의 아이라는 이유로 목숨을 잃어야 하는 존재.

 

아버지가 이기면 살아남고, 지면 목숨을 잃거나 노예가 되는 존재.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죽음을 앞두고 헥토르가 아내인 안드로마케에게 하는 말은 큰 울림이 된다. 부인과 자식이 그 후에 겪게 될 고통을 참을 수 없다는.

 

그럼에도 그는 전장에 나가고 전사하게 된다. 그후 트로이는 멸망하고 아내는 노예로 아들은 죽임을 당하게 되는데...

 

아이들만큼이나 전쟁의 고통을 받는 존재는 여인들이다. 여인들은 전리품이 된다.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에 딸린 물건처럼 대우한다.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이 갈등을 하는 이유도 바로 서로 전리품이라고 여긴 여인 때문이 아닌가. 여인은 자율권이 없다. 그냥 승리한 사람들의 처분에 따를 뿐이다. 이런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이름을 드날린 영웅들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준 것은 고통과 슬픔 뿐이다.

 

그럼에도 우린 영웅을 찬미한다. 영웅이 벌인 행동 뒤에 있는 보통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잘 보지 않는다. 비록 신의 뜻에 따라 전쟁을 하고 영웅들이 이름을 날리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전쟁이다. 전쟁으로 일어나는 비극인 것이다.

 

트로이 전쟁. 그리스와 트로이에서 수많은 영웅들이 죽어가고, 이름을 날리고, 결국 10년 만에 전쟁은 끝난다. 트로이의 멸망으로. 결국 아이네이아스가 그곳을 떠나 로마 시조가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따로 전개되고...

 

트로이 멸망에 큰 공을 세운 오딧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험이 이 뒤에 이어진다. 이렇게 영웅시대는 저물어 간다.

 

이제는 보통사람들의 시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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