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제일 앞부분에 실려 있는 시인의 말이 곧 시다. 시인의 자세다.

 

  시를 쓰면서 늘 생각하는 비유란 / 결국 결합이다. / 이것과 저것, 여기와 저기를 접붙여 / 새로운 의미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 / 그런 게 시라고 배웠다./ (중략) /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 내가 앞으로 계속 시를 쓴다면 / 결합이 아니라 분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 그동안 너무 많이 붙어먹었다는 것부터 고백해야 한다고 (5쪽)

 

  시는 서로 다른 것을 연결시켜 준다. 연결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데, 시인의 말에서는 이제는 분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

 

  왜? 그렇다. 분리가 그냥 잘라내는 것,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뭉뚱그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우리를 한계짓고,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언어에서 분리해야 한다는 말이라는 생각을 했다.

 

쉽게 어떤 말로 뭉뚱그려지지 않았던가. 또 뭉뚱그리려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개인이 지닌 개개인의 특성은 그 뭉뚱그림 속에 파묻혀 버리지 않았던가.

 

비유가 서로 다른 대상에서 비슷한 점을 찾아내거나 비슷하게 만드는 표현이라면 비유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분리가 되어야 한다. 한 대상을 뭉텅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것들이 모여 있는, 융합되어 있는 부분들의 결합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분리를 통해서 다시 결합을 할 수 있다. 즉 분리와 결합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동전의 영면과도 같은 것.

 

그러나 앞에서 인용한 시인의 말은 우리 사회가 결합에만 너무 치중하지 않았나, 하다못해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고 있지 않느냐고...개개인의 특성을 생각하기 보다는 먼저 전체를 보고, 전체 속에 개인을 위치시켜 버리는 사고 습관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개인이 없는 전체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자꾸 전체란 이름으로 또는 '우리'란 이름으로 부분을, '나'를 가두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랑이 시작되는 자리'란 시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앞부분 생략)

나와 애인의 얼굴을 하나로 뭉뚱그리려는 체제와 이데올로기는 사랑을 모른다 / 체제와 이데올로기가 쳐놓은 막을 찢어버린 자리에서 사랑은 시작되고 / 그 길 끝에서 자유가 기다리고 있다 (뒷부분 생략) - 33쪽

 

이런 시인이니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룬다는 말에도 다른 생각을 한다.  '어떤 수업'이라는 시다.

 

(앞부분 생략)

꼭 숲을 이루어야 할까? / 숲 밖에 서 있고 싶은 나무도 있지 않을까? / 벌판에 키 작은 나무로 서서 / 더불어 숲이 아닌 / 지나가는 바람이며 길 잃은 새들에게 어깨를 내주는 ' 더불어 홀로의 삶도 괜찮지 않을까? (뒷부분 생략) - 158쪽.

 

뭉뚱그림. 결합만을 앞세웠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런 뭉뚱그림에서 부분을 찾아내는 것, 그 부분을 인정해 주는 것. 부분이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전함임을, 그래서 전체는 완전한 부분들의 결합임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뭉뚱그림 속에서 지내다가는 어떤 비극을 맞이하게 되는지, 뭉뚱그림을 인식하지 못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을 '자두맛사탕'이란 시에서 너무 잘 보여주고 있다.

 

자두를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오로지 자두맛만을 기억하고 그것만을 인정하는 사회, 그런 사회가 바로 뭉뚱그림의 사회다.

 

이런 뭉뚱그림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모습이 시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군상'이란 시가 그렇다. 2016년 촛불 시위에 있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이응노 화백의 그림 '군상'과 연결시키는 것, 그렇다고 무작정 결합이 아니다.

 

독립된 개인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이루듯, 우리 사회를 바꿀 힘을 보여주었던 것, 시인은 이렇게 뭉뚱그림에서 벗어나 다른 연결을 한다.

 

무엇보다 제목이 된 시 '등 뒤의 시간'

 

  등 뒤의 시간

 

봄이 와도

껶여 나간 나뭇가지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

봄이 왔다고 부산한 이들 가운데

지난겨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기억하는 이 드물고

유난히 푸짐하게 내렸던

하얀 눈발을 은총이라 착각하며

껶여 나간 나뭇가지 같은 건

진작 잊어버렷을 게다

눈도 쌓이면 죄업의 무게를 이루듯

아름다움은 곧잘 배반을 동반하는 법

그러므로 새순이 돋는 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기도 하지만

그 앞에 무수한 죽음이 있었다는 걸

슬쩍 밀쳐내기도 한다

 

박일환, 등 뒤의 시간. 삶창. 2019년. 40쪽.

 

이 시에서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우리는 자주 우리 등 뒤의 시간을 밀쳐내고 살지 않는가. 마치 앞만 존재한다는 듯이. 이것 역시 시간들의, 삶들의 뭉뚱그림 아니겠는가. 이렇게 뭉뚱그려진 존재들을 시인은 하나하나 완전한 존재로 다시 불러내고 있다.

 

전체는 이러한 개별들이 모여 이루어져 있음을, 쉽게 하나로 뭉뚱그려서는 안 됨을 이 시집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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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2 - 한니발 전쟁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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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2권은 마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는 느낌이다. 130여 년에 걸친 포에니 전쟁을 다루고 있지만 주인공은 단연 한니발과 스키피오다.

 

이 둘을 통해서 로마인 이야기 2권은 채워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을 이야기하는 데 잠시 등장할 뿐이다.

 

포에니 전쟁은 3차에 걸쳐 일어나고 결국 카르타고의 멸망으로 끝난다. 어린 시절 한니발이라는 장군은 얼마나 동경의 대상이었던가.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었다는, 로마를 벌벌 떨게 만들었다는 장군. 그러나 그는 이기지 못했다는 것. 로마에 스키피오라는 젊은 장군이 한니발을 격퇴했다는 것. 이 정도가 어린 시절 읽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 알게 된 사실.

 

그러나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 2권이 부제가 한니발 전쟁이고, 로마인들에게 포에니 전쟁은 곧 한니발 전쟁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한니발은 로마에게 영향을 많이 주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가 의도한 것과는 반대로 로마가 세계 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군사력을 지니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 시오노 나나미의 의견이다.

 

한니발과 거의 16년 정도를 싸우면서 로마인들은 한니발에게서 전술을 배웠고, 그로 인해서 실전 경험을 함으로써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전쟁기계와 같은 군인들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로마 장군인 스키피오는 한니발의 수제자라 할만큼 그의 전략을 잘 이해했다고 한다.

 

그런 스키피오에게 한니발이 패배하고, 한니발의 패배 이후 카르타고는 힘 한번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가 멸망하게 되는 것인데...

 

읽으면서 씁쓸했다. 세계에 평화란 이렇게도 멀고 먼 길인가? 팍스 로마나라고 하지만 그것은 무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었던가.

 

결국 고대 시기에는 무력으로 평화를 이루었다는 것인데, 지금도 이것이 지속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씁쓸할밖에.

 

여기에 한니발에 대한 실망. 어렸을 때는 영웅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한니발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게 됐다. 물론 시오노 나나미가 이야기하듯이 그가 세계에서 10명 안에 드는 전략가라는 데는 나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지만... 그를 꼭 칭송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1차 포에니 전쟁에서 지고... 잠깐의 평화기간 동안, 한니발은 카르타고에 있지 않고 에스파냐에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거기서 세력확장을 하고 있었다는 것. 어느 정도 세력을 확장해서 그곳에서 평화롭게 지낼 수도 있었는데...

 

로마와 부딪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지냈다면 평화 시기가 좀더 오래 지속되었고, 수많은 목숨들이 사라지지는 않았을텐데...

 

과거에 대한 복수로 한니발은 로마 침공을 감행한다. 전쟁터는 이탈리아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지금의 스페인에서 이탈리아까지 군대를 몰고 가는 것.

 

카르타고는 전쟁하고는 상관없이 로마가 있는 이탈리아 본토가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한니발 군대도 돌아갈 길이 없다. 한니발이 로마 점령을 못하고, 강화 조약도 못 맺고 그가 머무르면서 끝까지 버티는 곳은 이탈리아 반도의 남쪽.

 

결국 그는 자신의 재능을 전쟁으로, 살륙으로 소모하고 말았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 하더라도 이렇게 불필요한 전쟁을 일으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은 용납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는 로마 장군인 스키피오가 훨씬 낫다.

 

전투에서 한니발을 격퇴하기도 한 그는 철저한 살륙보다는 협정을 통해서 전쟁을 끝내기도 하는 사람이었으니.

 

한니발은 우직한 장군이었고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동료를 만들지 못한 혈혈단신의 외로운 장군이었다면, 스키피오는 장군이자 동료를 얻어 함께 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정치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한니발이 그에게 이길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전쟁이 꼭 필연적인 이유 때문에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것, 그러나 전쟁의 피해는 엄청나다는 것, 몇몇의 공명심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참화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 전쟁은 한쪽을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과거 포에니 전쟁에서 이런 것들을 읽어내고,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보게 된다. 팍스 로마나가 이제는 팍스 아메리카나로 바뀌었고, 로마 연합이 미국과 우방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것.

 

전쟁이라는 비극으로 치닫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이미 전쟁을 겪은 우리는 이 로마인 이야기 2권을 더 주의 깊게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인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지만, 이 책을 전쟁 중심으로 전쟁의 원인, 경과, 결과, 그리고 민중들이 겪게 되는 일들을 중심으로 읽을 수도 있다는 것. 그렇게 읽는 것이 이 책을 현재에 접목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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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을 조금만 뒤로 돌리면, 이런 소녀들을 만날 수가 있다.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취업해야 했던 소녀들.

 

  일명 공순이라 불리던 소녀들, 그들에게 있었던 수많은 꿈들은 학교를 떠남과 더불어 사라져 버리고, 남은 것은 살기 위한 몸부림.

 

  공장에서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면서 자신들의 꿈을 점점 지워가야 했던, 그리고 무자비한 대우들... 소녀들은 소년들에 비해 더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 60-80년대 우리나라 모습이었다. 이런 소녀들, 우리나라를 지금으로 끌어올린 소녀들을 이기인 시집에서 만날 수 있다.

 

  노동 착취뿐만 아니라 성 착취까지 당해야 했던 소녀들. 그러나 꿋꿋하게 살아가려 했던 소녀들을 말이다.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이라는 제목으로 14편의 시가 실려 있다. 소녀들이 공장에서 어떻게 일을 하는지, 그런 소녀들의 몸을 탐내는 곰들(소녀들을 성적 대상으로 대하는 권력을 쥐고 있는 남자들)에 대해서도 이 연작시에 잘 나타나 있다.

 

그 중 첫시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 오래된 삽

 

오늘은 피가 나서

하루 쉰다

 

자빠진 삽에게 일 안하냐고 묻지 마라 

 

이기인,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창비. 2005년 초판 3쇄. 8쪽.

 

이 시 하나면 된다.

 

쉬는 것도 마음대로 쉴 수 없었던, 연차, 월차를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었던 시절에... 생리휴가라는 것을 받는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시절.

 

그렇게 일을 하다 스러져 가는 소녀들. 이들을 보고 전태일은 얼마나 마음 아파했던가. 그런데 70년대가 저물어가고 80년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이런 소녀들이 있었다는 것.

 

충분히 쉬지도 못하고, 쉬면서도 눈치를 보는 그런 상태... 지금 이 소녀들이 모두 사라졌을까? 아니다. 이들은 다시 청년 비정규직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얘기다. 그러면 안 되는데... 시를 읽으며 다시 우리나라 노동현실을 생각한다. 이런 소녀들이 과거에만 있었다면 하는 생각. 그냥 흘러간 과거였으면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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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4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4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청소년을 위한 시 쓰기 공부 - 시를 잘 읽고 쓰는 방법
박일환 지음 / 지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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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안에 있는, 작지만 무한한 능력을 발휘하는 스마트폰만 보는 청소년이 늘고 있다. 모든 것이 손 안에서 해결이 된다.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러니 '시'란 존재는 교과서 속에나 존재하는, 학교 밖으로 나오면 나와는 상관없는 존재가 된다.

 

이런 존재에게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자신에게 최소한의 즐거움도 주지 못하는 '시'란 놈을 왜 가까이 해야 한단 말인가? 여기에 더해 '시'를 쓰기도 한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학교에서 예전엔 백일장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은 수행평가란 항목으로 시쓰기를 하는데, 단지 어쩔 수 없어서 해야 할 시간때우기였거나, 점수를 받기 위한 몸부림일 뿐이었다.

 

이렇게 '시'는 청소년들에게서 점점 멀어져 간다. 멀어져 가는 정도가 아니라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존재로 전락해 간다. 그러나 과연 '시'가 그런 존재일까?

 

저자는 아니라고 한다. 시는 분명 청소년에게 의미가 있다. 의미가 있기 때문에 '시'는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시인이라는 직업이 존재하며, 시인이라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시를 쓰는 누군가가 계속 존재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시를 가까이 할까? '시'도 교문을 벗어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교문 안에, 교실 안에, 교과서 안에 갇힌 시들은 오로지 점수를 위한 도구 역할에 그치고 만다. '시'가 숫자로 환산되는 것, '시'를 청소년들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제 '시'를 교과서에서, 교실에서, 교문에서 벗어나게 하자. 그러면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시'도 청소년들에게 다가올 수 있다. 아니, 반대로 청소년들이 '시'에 다가갈 수 있다.

 

세상 삶 중에서 시적인 삶이라고 불리는 삶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삶 자체가 '시'임을 깨닫는 순간, 시는 바로 자신이 될 수 있다. 교과서를 벗어난 청소년들에게 '시'는 그런 존재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무작정 '시'가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준비가 된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찾는 사람에게 보이는 법이다. 두르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바로 이것이다. 관심.

 

관심이 서로 다른 존재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청소년들에게 '시'도 마찬가지다. '시'에 관심을 가지는 청소년들이 있으면 '시' 역시 청소년들에게 다가온다. 마치 오래 된 친구처럼.

 

이 책은 무엇보다 청소년들이 시에 관심을 갖게 한다. 관심을 가져 청소년들이 '시'를 친구처럼 가까이 할 수 있게 한다. 시란 무엇인가로부터 시작하지만, 결코 교과서적(이 말은 교과서에 갇힌, 지식을 시험을 위하여 머리 속에 집어넣는이라는 말로 받아들이자)이지 않다.

 

딸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시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자연스레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딸과 아빠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시'와 가까워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시'가 지는 특성, 시인이라는 존재, 그리고 '시'에 나오는 여러 표현들, 방법들, 시인이 되기 위한 과정 등을 예를 들어가면서 쉽게 설명하고 있다.

 

딸에게 '시'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형식이니 딱딱하지 않고, 너무 전문적이지도 않고 친근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시'가 저 멀리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한다. '시'가 친구처럼 내 곁에 있어서 언제든지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래서 '시'를 멀리했던 청소년들에게 '시'를 가까이 하게 해주는 책이다. 적어도 점수를 위한 시공부가 아니라,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시 알기를 하게 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시'도 자꾸 읽다보면 사랑하게 된다. 그렇게 '시'와 가까워진 청소년들이 많아지길 바라는데...  조금이라도 '시'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들이라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반대로 '시'를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그들이 생각하고 있던 '시'와는 다른 면의 '시'를 만날 수 있으니 그것도 좋을 것이다. 

 

문제는 읽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 '시'는 어려워 하고 지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읽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 더불어 이런 책도 읽어야 한다는 것. 읽어야 '시'에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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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 - 〈빅이슈〉를 팔며 거리에서 보낸 52통의 편지
임상철 지음 / 생각의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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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앞에 나와 있는 제목 밑에 이 책을 설명하는 글. <빅이슈>를 팔며 거리에서 보낸 52통의 편지. 이 말이면 이 책이 어떤 성격을 지닌 글인지 잘 알 수 있다.

 

글쓴이는 <빅이슈>를 판매하는 빅판이고, 빅판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음에도 빅판이 된다는 것, 빅판 활동을 한다는 것은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글만이 아니라 그림도 있는데, 모두 이 글을 쓴 임상철이 그린 그림들이다. 아마도 평범한 가정이나 조금 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미대에도 가고, 본인이 좋아하는 미술 활동을 하면서 살아갔을 테지만, 그런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해 보육원 생활을 하고, 그나마 자리잡았던 직장은 IMF를 맞이하면서 문을 닫고 말았으니, 그는 가족 해체에 이어 자신의 생계마저도 해체되는 고통을 겪게 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비록 먼 미래가 보이지 않는, 내일을 보며 오늘을 살고, 조금 더 멀리 보아야 모레 정도를 기대하면서 살아가는 삶이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한다.

 

  노숙인이라고 다들, 삶을 포기한, 술에 절어 사는 사람들, 그냥 무료 급식소만 찾아다니는 사람들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갈 것이다.

 

  노숙인이든 아니든 사람들은 누구나 사람다운 삶을 살고 싶어한다는 것, 자신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 허우적댈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다 보면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그러나 살아야 한다는 의지 앞에서는 제 아무리 험한 고통이라도 사람을 쓰러뜨릴 수는 없다. 비록 곤경에 빠뜨릴 수는 있을지라도 그를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못한다. 임상철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다.

 

 (<- 이 책 45쪽에 있는 그림)

 

 

이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빅이슈> 잡지를 판매하는 사람이며 이 일을 한 지는 한 달도 안 된 초보자다. 이 잡지는 일반 잡지가 아니다. 자신이 홈리스란 사실을 인정하면서 팔아야 하는, 부끄럽게 느껴지는 잡지다. 그러면서도 이 일을 하게 된 것은 낯이 두꺼워서도, 자존심이 없어 창피를 몰라서도 아니다. 홈리스 삶이 점점 더 힘겨워지면서 희망이란 단어를 찾고 싶기 때문이다. (132쪽)

 

  '분명 잡지 장사는 맞는데… 뭔가가 부족하네.'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잡지는 분명코 판매자들이 표지 모델과도 같은 주인공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어쩌면 이것으로 찾고자 했던 답을 찾은 것일 수도 있다. 앞으로 판매할 잡지부터는 내 이야기를 적어 복사해서 끼워 넣어보기로 작정했다. (133쪽)

 

자신이 홈리스임을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는 것, 그것이 바로 빅판이다. 빅이슈를 판매한다는 것 자체가 홈리스임을 알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다. 감추고 싶기도 했을 테고.

 

하지만 여기서 희망을 찾고자 하는 그는 <빅이슈>가 바로 자신들이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판매하는 <빅이슈>에 자신의 글을 넣어서 판매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빅이슈>를 통해 자신의 꿈을 찾아가려 한다.

 

슬픔이 담긴 글들도 있고, 여전히 사람들과의 관계가 긴밀하지 못한 상황을 알려주는 글들도 있지만, 글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세상엔 좋은 사람들,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 끈과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연결하는 만남들, 글쓴이는 <빅이슈>를 통해서 다른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도 이제는 홀로 끊어진 끈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 끈이다. 우리 사람들은 이렇게 모두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결코 외로운 섬이 아니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이 책에는 그가 <빅이슈>를 판매할 때 한 사람이 28권을 사 간 이야기가 나온다. 친구들이 자기 생일 잔치를 해준다고 모였는데, 그 친구들에게 선물할 거라고 <빅이슈> 28권을 사간 젊은이 이야기.

 

그뿐만 아니다. 팬을 자처한 사람부터 나올 때마다 <빅이슈>를 사가는 노인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그는 <빅이슈>에 담아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 그가 나눈 이야기들이 이렇게 책으로 엮여 나왔다.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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