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교육을 담당하는 각 시도교육청에 '민주시민교육과'라는 것이 생겼다고 한다. 학교 교육 목표에 빠지지 않는 것이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그것을 더 잘 이루기 위해서 민주시민교육과라는 것을 만들었나 보다,

 

  그런데 민주시민이 학교 교육으로 양성이 될까? 가장 민주적이지 않은 곳에서 민주시민을 길러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인지 알고나 있는지.

 

  민주시민은 교과서로 만들 수 없다. 교과서는 시험이 지나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버리고 마는, 시간을 때우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주시민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아니 민주시민을 양성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민주시민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레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민주화 되어 있다면 자연스레 민주시민들이 살아갈 수 있다. 이미 삶 자체가 민주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회를 바꾸려 하지 않고,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교육하라고 한다. 그것도 가장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교육내용에 관해서 학생들 의견을 들어본 적도 없으면서, 지금 청소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학생을 위한다, 청소년들을 위한답시고 여러 말들을 쏟아내는데... 공허한 말놀음에 불과할 때가 많다.

 

이번 호에서 말하고 있는 것도 그것이다. 기획 제목이 '오늘을 바꾸는 청소년 시민'이고 표지에 있는 그림에는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시위한다'고 되어 있으며, 표지 그림 안에는 '어린 것들 해방만세!'라는 글이 들어 있다.

 

'어린 것들 해방 만세!'부터 시작하면 해방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시위한다'고 외치는 거다. 이렇게 외치기 시작하면서 '오늘을 바꾸는 청소년 시민'들이 나타난다.

 

'청소년 시민'들이 나타나는 것은 그만큼 청소년들이 이제는 배우기만 하는 존재,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을 객체가 아닌 주체로 인식해야 하는 숙제는 이제 어른들의 몫이다.

 

이미 청소년들은 시민으로 이 사회에 등장했다. 그런데도 청소년들을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성세대들이 있다. 이들에게 가하는 일침, 그것이 [민들레 123]호다.

 

'학생인권조례가 왜 두렵습니까?(권리모)'라는 글을 보면 여전히 청소년들을 미숙한 존재, 가르쳐야만 하는 존재로 여기고 싶어하는 기성세대들의 모습을 엿볼 수가 있다. 세상에 청소년들의 권리를 나타내는 학생인권조례조차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지자체가 있다는 사실. 여전히 청소년들에게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갈 길이 멀어도 가야 할 길이기에 가는 청소년들이 있다. 이들의 발걸음이 길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교문 밖에서 민주시민이 되었다(서한울)'라는 글을 보면 학교가 얼마나 보수적인지, 또는 학생들이 민주시민이 되는데 장애물로 작용하는지를 알 수 있다. 지행불일치, 철저한 지행불일치, 바로 학교의 모습 아닌가. 그러니 학교에서 어떻게 민주시민을 길러낼 수 있단 말인가.

 

타산지석으로?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을 먹게 하는 곳이 학교? 그렇다면 반어적으로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가장 좋은 곳이 학교라는 생각도 든다. 

 

이러니 청소년들이 '바뀌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니라 사회다(이새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 정작 바뀌어야 할 것은 놓아두고 청소년들에게 바뀌라고 하다니... 하다못해 미래 세대가 살 세상을 미세먼지가 가득한, 기후변화로 살기 힘들어진 세상을 만들어놓고도 자기들이 살아갈 세상이 아니라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기성세대를 보면서...

 

청소년들은 학교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청소년들이 다시 쓰는 기후변화 시나리오(여러 명의 간담회)' '청소년 참여가 정치 생태계를 바꾼다(하승우)'라는 글을 읽어보면 이미 시민이 된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다.

 

만18세 선거권을 놓고도 자기들의 이익을 따지는 기득권 세력들을 보면서 청소년들은 가만히, 학교 안에만 있으면 안 된다는 자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가만히 있는 세대가 아니라,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살아갈 세상이 어찌될지 눈에 뻔히 보이기 때문에...

 

민들레가 다룬 이번 기획 글들을 보면서...청소년과 시민에 대해서 생각한다. 시민을 나이로 구분할 수 있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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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2 09: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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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2 1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랑해염 2019-08-15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역을 이행할 의무도 없는 청소년에게 투표권을 준다니요. 교육감 선거까진 이해해도 그 이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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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을 보고 언뜻 공자가 했다는 말을 떠올렸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

 

이 말을 과정으로 생각했다. 도를 듣자마자 죽는 것이 아니다. 아침이라는 출발점에서 도를 들었다면 그것을 실행해야 한다. 적어도 낮동안 도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 다음에는 죽어도 좋다. 이미 도를 실천했으므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 책의 시작을 알리는 글이자 제목이 된 글이다. 공자가 한 말과 유사성을 느끼며 읽었다. 그렇다. 도를 듣는 것과 죽음을 생각하는 것, 다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글쓴이는 말하는 이유를 읽고 공자의 말과 다르지 않다고 여기게 됐다.

 

결국 도나 죽음이나 우리가 현재를 잘 살아가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현재를 잘 살기 위해서 우리는 죽음을 생각해야만 한다. 글쓴이는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러한 시절에 아침을 열 때는 공동체와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첫째, 이미 죽어 있다면 제때 문상을 할 수 있다. 둘째, 죽음이 오는 중이라면 죽음과 대면하여 놀라지 않을 수 있다. 셋째, 죽음이 아직 오지 않는다면,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보다 성심껏 선택할 수 있다. 넷째, 정치인들이 말하는 가짜 희망에 농락당하지 않을 수 있다. 다섯째, 공포와 허무를 떨치기 위해 사람들이 과장된 행동에 나설 때, 상대적으로 침착할 수 있다. 그렇게 얻은 침착함을 가지고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생과 이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거다. (19-20쪽)

 

그렇다면 이러한 시절은 무엇일까? 인용한 글의 앞부분에 나와 있다.

 

고도성장을 통한 중산층 진입, 절대악 타도를 통한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과거 수십 년간 이 사회에 에너지를 공급했던 두 약속에 대해 사람들은 이제 낯설어하게 되었다. (19쪽)

 

우린 이런 세상에 산다. 목표가 명확하지 않은 세상, 무엇을 이루겠다는 꿈을 잃어버린 세상, 그런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바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죽음을 생각한다면 잃을 것보다는 얻을 것이 더 많기 때문에...

 

책 제목을 보면 언뜻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 같지만, 주제가 모두 죽음은 아니다. 글쓴이가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글도 있고, 정치나 교육에 대한 글들도 있다. 또한 글쓴이가 신춘문예 영화평론으로 당선된 적도 있다고 하는 만큼 영화에 관한 글도 있다.

 

글 한편 한편이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좋은 글의 조건을 갖춘 것이다. 생각을 하게 하고, 글에서 언급된 책들을 찾아보게 하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책. 그것은 좋은 책이니.

 

이 책 역시 그렇다.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서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게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가령 '결혼을 하고야 말겠다는 이들을 위한 세 가지 주례사'를 보면 결혼 생활에서 얼굴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사람들이 주장하기 힘든 말... 그것도 결혼식장에서. 그러나 얼굴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얼굴이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얼굴빛은 유복한 생활을 한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니고, 사적인 행복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넓은 '공적인 행복'을 추구할 때 깃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50쪽)

 

그러니 결혼할 사람들을 앞에 놓고 주례사를 말할 때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너희들 얼굴이 중요하다고, 그러니 얼굴을 잘 가꾸라고. 어떻게? 사적인 것을 넘어 공적인 것을 추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너희들 부부에만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로 눈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러면 얼굴이 아름다워질 거라고... 그렇다. 이런 사람의 얼굴이 아름답지 않을 이유가 없다. 얼굴에서 어떤 아우라가 나올 테니...

 

이런 글들이 많다. 읽으면서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또 글이 잘 읽힌다. 그러니 더 좋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 말은 과정에 있다. 끝이 아니다. 삶은 바로 죽음과 함께 가므로, 죽음을 생각하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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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1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1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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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여행이라는 비유를 많이 한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감정을 지니게 될까? 짧은 순간을 함께 하면서 최선을 다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다시는 볼 일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소홀히 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삶이 여행이라는 생각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삶은 정착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속되는 무엇, 그것이 바로 삶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이 순간적인 것이라면, 삶은 지속이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삶을 여행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그 비유는 여행이 삶을 좀더 풍요롭게 하기 위한 수단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소설가 김영하가 쓴 산문집이다. "여행의 이유"

 

도대체 작가는 여행을 왜 할까에 대한 답을 찾으려 이 책을 펼쳐 들었다. 나는 여행을 왜 하지에 대한 물음과 작가가 생각하는 여행에 어떤 공통분모가 있을까.

 

작가의 여행과 내 여행이 지니는 교집합은 무엇일까? 이 교집합 뿐만이 아니라 작가가 생각하는 여행을 알게 된다면 내 여행과 합쳐지는 합집합, 즉 여행에 대한 좀더 폭넓은 이해가 생기기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읽게 된 책.

 

그런데 읽으면서 여행에 대한 생각보다는 작가를 알아간다는, 즉 장소에 대한 탐구보다는 사람에 대한 탐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김영하 작가의 작품을 좀 읽다가 최근에는 읽은 적이 없었는데, 이 산문집을 읽으며 김영하라는 사람에 대해서 여행하고 있단 기분을 느꼈다고나 할까.

 

이 책에 실린 첫글(추방과 멀미)을 읽으면서 인간 김영하에 대한 여행기로 읽게 된다는 느낌을 지녔다. 그의 경험이 드러난, 젊은시절의 삶이 드러난 글이었는데...

 

이 글의 마지막에서 여행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51쪽)

 

이런 깨달음에 대해서는 이 책에 실린 '노바디(nobody)의 여행'이란 글에서 잘 드러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섬바디(somebody)'가 되려고 한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하는 것, 내가 누구인지 알아? 하는 태도... 정치인들이 가끔 막말을 하는 경우, 가끔이 아니라 이들은 기회만 되면 막말을 한다. 좋은 쪽이든 안 좋은 쪽이든 이들은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섬바디'가 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섬바디'는 이 글에 나오듯이 키클롭스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하는 오디세우스처럼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많다.

 

늘 '섬바디'일 수 없고, 또 늘 '섬바디'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이 필요하다. 여행은 나를 '섬바디'에서 '노바디'로 바꿔주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노바디'일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즉 여행은 항상 일인칭이었던 나를 일인칭의 자리에서 삼인칭의 자리로 옮겨주는 역할도 한다. 물론 여행을 할 때는 일인칭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주인공인 자리에서 관찰자인 자리로 옮겨가게 하는 것이 여행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에서 '섬바디'로서가 아니라 '노바디'로서 존재한다. 그런 '노바디'로서의 나를 깨닫는 순간, 내 삶 모두가 여행일 수 있다는 깨달음으로까지 나간다. 즉, 나는 삶이라는 장소에서 수많은 여행자들과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기도 하는, 수많은 존재들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

 

그리고 여행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나는 나를 내려놓아야 하고 남을 신뢰하고, 그런 나를 환대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런 신뢰와 환대가 순환하는 삶이 결국은 우리를 행복하고 풍요롭게 한다는 것.  

 

읽는 내내작가의 여행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여행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내 여행과 작가의 여행을 합하고, 또 공통분모를 찾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렇다. 무엇보다도 여행은 작가가 말하고 있는 대로 '오직 현재'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 '오직 현재'를 살아가는 일, 그것이 바로 여행이다. 그리고 이런 여행들이 하나하나 모여 삶이 된다. 작가는 정착을 부정하는 듯한 말을 하지만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는 것, 귀환의 원점 같은 것은 없다는 것.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 207쪽) 나는 귀환을 위해 여행을 한다.

 

내가 돌아올 곳, 돌아왔을 때 이미 달라져 있는 나를 발견하기 위해, 더 잘 정착하기 위해 여행을 한다. 그것이 여행의 이유다. 노마드(nomad)가 아닌 정주민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그러나 저러나 삶이 여행이라는 말을 더 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책이다. 그래, 이 책에 대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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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여성 과학자들 - 왜 과학은 여성의 업적을 기억하지 않을까?
펜드리드 노이스 지음, 권예리 옮김 / 다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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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여성만이랴. 우리 인류의 역사에서 기억되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패자가 되어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도 많고, 공동연구를 했음에도 배제된 사람도 많을테니... 역사에 모두가 기록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특정한 성별, 인종, 신분 때문에 역사에서도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이 책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으리라 생각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류에서 배제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다못해 직업 앞에 '여'자를 붙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남자들에게는 붙이지 않는 그 접두어를 여성들에게는 꼭 붙이는 경우가 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있으니.

 

그러니 이 책에서 다루는 과학자, 수학자들이 활동했던 시대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많은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청강만을 할 수 있었다든지, 우수한 성적으로 박사 학위를 받아도 교수가 되지 못하고, 교수가 되었어도 무급으로 강의하는 경우도 꽤 있었으니...

 

또한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은 경우도 있고.. 여러모로 여성들이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많은 제약이 있었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도 그 장벽을 뚫고 자기 자리를 차지한 여성들이 있다. 여성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사람들. 그러나 당대에는 인정을 잘 받지 못했던, 인정을 받았더라도 겨우 말년에 가서야 받을 수 있었던 사람들.

 

모두 16명의 수학자, 과학자,, 의학자를 다루고 있다. 그 이름을 나열하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알고 있는가? 또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루이스 부르주아 부르지에(여왕의 산파), 마리아 쿠니츠(천문학-은혜로운 우라니아 출간), 마리 뫼르드라크(화학), 라우라 바시(물리학), 오거스타 에이다 바이런(수학-컴퓨터 프로그램의 선조라고 할 수 있음),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우리가 알고 있는 간호사로서가 아니라 통계학자로서), 메리 퍼트넘 저코비(의학), 소피야 코발렙스카야(수학), 마리 스크워도프스카 퀴리(물리학, 화학-우리가 알고 있는 퀴리 부인), 리제 마이트너(핵분열의 물리학), 에미 뇌터(수학), 바버라 매클린톡(생물학), 그레이스 머리 호퍼(수학-컴퓨터 프로그램언어라고 할 수 있는 학문), 도러시 크로폿 호지킨(화학), 우젠슝(실험물리학), 거트루드 벨 엘리언(신약 개발)

 

이들은 사라진 여성 과학자들이 아니다. 우리 인류의 역사 속에 남아 있는 과학자들이다. 그들은 영원히 우리들에게 남아 있고, 우리는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

 

한때 여성들을 속박했던 시대에도 자기 능력을 발휘하고, 자기 자리를 찾았던 여성들이 있음을, 이제는 특정 성별, 인종, 신분, 지역 등으로 사람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들을 통해서 더 잘 깨달을 수 있다.

 

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을 다시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지닌 의미도 바로 이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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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맑음 - 청소년과 함께 읽는 5.18 민주화 운동 이야기 창비청소년문고 33
임광호 외 지음, 박만규 감수, 5.18 기념재단 기획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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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책을 펴내며에서 5.18기념 재단 이사장 이철우는 '더없이 맑을, 우리의 오월을 위하여'라는 제목에서.

 

'1980년 5월 그날, 광주의 날씨는 참 맑았습니다.' (4쪽)

 

이 말만큼 광주를 명확하게 드러내 주는 말이 어디 있을까? 자연은 저리도 맑은데, 저리도 좋은데, 사람들의 삶은 흐림을 넘어 폭풍우가 몰아치는 상황이었으니... 그것도 광주라는 지역에만. 다른 사람들은 그냥 날씨 맑음과 사회 맑음의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텐데...

 

유독 광주에서만은 그 맑은 날씨에 험악한 사회 날씨를 경험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험악한 날씨를 경험한 광주는 민주화 운동의 성지가 되었다. 잊을 수 없는 운동이 되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5.18민주화 운동은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군인들이 더 이상 정치에 나설 수 없는 사회, 국민들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는 사회는 물론 곳곳에 민주주의와 인권이 땅속에 단단히 뿌리 내린 사회를 만드는 데에 큰 보탬이 되었습니다. 그날을 잊지 않고 기억한 사람들은 우리 사회를 좀 더 맑게 만들어 왔습니다.' (4-5쪽)

 

광주민주화운동은 그렇게 우리 사회를 맑게 하는데 기여를 했다. 그런 광주민주화 운동이 우리 기억 속에, 우리 마음 속에 남아 있기에 87민주화 운동이 가능했고, 이런 1987년 시위 속에서도 군이 출동할 수 없는 상태를 만들었으며, 2016년 촛불 시위에서도 평화적으로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계엄령을 검토했다는 문건이 발견이 되기도 했지만, 80년의 광주처럼 직접 군이 움직일 수는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미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쳐, 87민주화운동을 경험했으므로.

 

그러니 광주 맑음이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광주민주화운동에는 여전히 먹구름이 끼어 있다. 이 먹구름을 제거해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는 것이다.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 그래야 처벌을 하든, 용서를 하든 할 수가 있다. 여전히 어둠 속에 묻혀 있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들을 맑게, 밝게 드러내는 일, 그것이 맑음이 지속되도록 하는 일이겠다.

 

이 책은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기억해야 하기 때문에, 시대가 바뀌면서 새로 알려진 사실들도 수록해야 하므로, 특히 미래세대를 살아갈 청소년들에게 우리 역사를 알려야 하므로, 광주민주화 운동을 지나간 과거로만 치부할 수는 없으므로.

 

무엇보다 이 책이 지닌 장점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이야기로 책을 국한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눌 수 있다.

 

1부가 광주민주 운동이 일어나기 직전의 우리나라 상황과 광주민주화운동 전개과정을 사실에 입각해서 서술하고 있고, 또 그와 관련해서 알아야 할 세계 역사나 사건들을 함께 다뤄주고 있다면 2부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영향받은 일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광주민주화운동을 과거에 일어났던 일회적인 사건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규정하고 있는, 지금도 우리 속에 살아있는 역사로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진실을 가리고, 잘못된 사실을 날조하여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한 광주는, 우리 사회는 완전한 맑음이 아니다. 먹구름이 낀, 우리를 휩쓸어가는 폭풍우는 몰아치기 힘들겠지만 우리를 지치게 하는 장마 정도는 만들 수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궂은비가 내리게 하면 안 되지 않는가? 우리는 이미 성숙한 민주의식을 지닌 시민들을 지닌 나라가 되지 않았는가. 우리 사회는 그런 시민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가. 이 책은 그런 시민들이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계속 우리 사회가 맑음으로 지낼 수 있게 하는 한 걸음을 내디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5월에만 읽어서는 안 된다. 언제 어느 때든 우리가 기억하기 위해서 곁에 두고 있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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