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 전쟁의 기억과 분단의 미래
브루스 커밍스 지음, 조행복 옮김 / 현실문화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유월이 지나갔고, 도올이 쓴 책 [우리는 너무 몰랐다]를 읽다가 브루스 커밍스라는 이름을 발견하고는, 도서관에서 그가 쓴 책을 보았을 때 이것도 인연인가 보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한국전쟁의 기원]을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인데, 도올이 이 책을 출간되기 전에 커밍스로부터 받아 읽었다는 내용을 읽고, 커밍스가 우리나라와는 꽤 인연이 있구나 싶은 생각을 했다. 도올과 아는 사이였다니.

 

이 책의 내용을 지금은 거의 다 잊었다. 단 한 가지만 빼고. 한국전쟁은 내전이었다는 그의 주장. 그러므로 누가 먼저 총을 쏘았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내전이라... 내전에 외국 군대가 개입한다? 이런 사례는 스페인 내전에서도 일어났었다. 공화파와 프랑코파의 손을 들어준 세계적인 전쟁이 바로 스페인 내전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우리나라 전쟁도 이런 내전이고, 세계 여러나라에서 각자 편을 드는 쪽으로 가담했다는 말이지. 여기에 누가 먼저 도발했느냐보다는 내전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살피고, 그 내전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상흔들을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커밍스가 이야기하는 것도 이것이고. 그가 펴낸 이 책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도 이런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전쟁은 내전이었다. 그리고 철저하게 왜곡된 정보로 잘못 알려진 전쟁이었다. 아니 잘못 알려진 것이 아니라 미국인들에게는 잊혀진 전쟁이었다.

 

한국전쟁이 미국에게 이런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한국전쟁을 잊힌 전쟁으로 취급한다.

 

1950년대 후반 여섯 달 동안 방위비가 거의 네 배로 증가하면서 미국의 광범위한 해외 기지를 구축하고 국내에서 안보국가를 수립한 것도, 그리고 미국을 세계의 경찰국가로 만든 것도 제2차 세계대전이 아니라 바로 한국전쟁이었다. (325쪽)

 

이것이 미국에게 한국전쟁이 지닌 의미일 텐데도, 그들은 이기지 못한 한국전쟁,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 전쟁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브루스 커밍스가 책을 썼다. 미국인들에게 한국전쟁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서. 최근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북쪽으로 갔다가 다시 왔다.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이라고 한다.

 

미국 대통령들은 북한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많이들 써먹는다. 악의 축으로 몰라 군비를 확장하는 수단으로 써먹든, 북한과 평화를 유지함으로써 인기를 얻는 데 써먹든 북한은 여러모로 미국 정치인들에게 수단이 된다.

 

아직까지는 유효한 수단, 그만큼 북한과 미국은 완전한 화해, 평화로 가지 못하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은 많이 좋아지고 있고, 적어도 우리나라 국민들이 전쟁에 대한 위협에 시달리지는 않으니 다행이라고 하겠지만, 한국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이 바로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 아닌 유산인데... 이제는 한국전쟁을 넘어서 화해와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브루스 커밍스가 한국전쟁에 관한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전쟁의 기억을 잊어서는 안 되지만, 잘못된 기억은 바로 잡아야 한다. 그것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왜곡한 정보를 유포했던 과거를 바로잡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런 왜곡된 정보 중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한국전쟁 기간 동안에 곳곳에서 자행되었던 학살들에 대해서 진실을 밝히는 일이다. 진실을 밝혀야 화해를 하고 용서를 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많이 알려진 노근리 학살 등을 포함해 많은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이 책에서 이런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는 예로 영암군 구림마을을 들고 있다.

 

  2006년 마을의 원로들이 530쪽에 달하는 구림마을의 역사를 편찬하여 전쟁 중 사망한 이들의 명부를 가해자를 병기하지 않은 채 기록하고 합동 추모제를 후원하면서, 마을은 남한 전역에서 화해의 상징이 되었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마을의 원로들은 전쟁이 끝난 뒤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 밝히지 말고 복수를 하지도 말기로 공동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남한에서 이루어진 여러 조사의 목적은 책임을 묻거나 냉전의 싸움을 다시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과 남한 사이의 화해를 도모하고 과거에 적이었던 자들을 이해할 수 있는 인식과 태도를 얻는 것이었다. 이해란 공감이 아니고 감정이입도 아니며, 단지 적의 행동을 이끈 원칙들을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그 원칙들이 용납하기 어렵다고 해도, 역사적으로 그 적에게 일어난 일에 관한 나의 지식과 크게 상충되더라도 상관없다. (318쪽)

 

이제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전쟁은 남과 북이, 그리고 남과 북, 미국, 중국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디딤돌이 되게 해야 한다. 서로를 비난하고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과거로 돌리고 미래의 원동력으로 삼는 지혜, 그 지혜가 발현되어야 하는 때가 지금이라는 생각이 든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을 읽으며 한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법정스님의 뒷모습
정찬주 지음, 정윤경 그림, 유동영 사진 / 반딧불이(한결미디어)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렀나. 무소유를 말씀하시던 스님이 돌아가신 지 10년이 되어가고 있다니. 2010년에 열반에 드셨으니, 참으로 세월은 무상하다. 그동안 무엇을 하면서 지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법정 스님의 뒷모습... 누가 그랬던가. 정말 아름다운 사람은 뒷모습이 좋은 사람이라고. 자신이 떠난 자리에 여운을 줄 수 있는 사람. 아니면 자신이 떠난 자리를 깨끗이 정리하는 사람.

 

재가제자로서 스님으로부터 무염(無染)이라는 이름을 받은 정찬주가 펴낸 법정 스님에 관한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가듯이 던져주고 있다. 자신의 산방에 머물다 간 사람들 중에 화장실까지 깨끗이 청소하고 간 사람. 이 사람이 나중에 찾아오면 진심으로 반갑게 맞이할 수 있을 거라는 그런 말.

 

아마도 법정 스님에게 해당하는 말이겠다. 평생 자신이 쓴 글인 무소유처럼 살다 간 분이니 말이다.  김영한 여사가 고급 요정이었던 대원각을 단 하나 감사 한 사람만을 두겠다는 조건으로 법정 스님에게 기부하려고 했던 때의 이야기. (고승의 조건. 96-99쪽)

 

그 조건마저도 다른 고승들이 많다는 이유로 고사하셨다는. 김영한 여사가 여러 고승들을 찾아다니다 결국은 다시 감사를 두겠다는 단 하나의 조건도 없애고 무조건 법정 스님에게 맡아달라고 했다는 이야기.

 

무소유를 철저하게 실천하신 분이라는 생각.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길상사에 구내서점을 운영해 궁한 절 사림을 개선하자는 대중의 건의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하니 (90쪽) 스님의 대쪽같은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이런저런 법정 스님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자연스레 마음이 따스해진다. 그냥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스님은 이렇게 떠나서도 우리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이 책에 이 말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좋은 절은 친절이고, 가지 말아야 할 절은 불친절입니다 (51쪽)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아니 우리가 명심해야 할 말인가. 친절은 곧 상대에게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맞추는 일이다. 상대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다.

 

친절은 정말로 좋은 절이다. 우리가 가야 할, 가고 싶어하는 절이다. 그런데 이 친절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바로 나에게 있다. 모든 것은 바로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절을 친절로 만들든, 불친절로 만들든 그것은 바로 내가 할 일이다.

 

친절한 삶, 내 삶에 충실한 삶이고, 남에게 충실한 삶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삶은 곧 부처의 삶이다. 이렇게 사는 삶 속에 바로 절이 있다. 절 속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절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친절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 속에 좋은 절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해탈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 바로 친절하게 살아가는 자세, 그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법정 스님이 저자인 정찬주에게 무염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지 않았겠는가. 어디에 있든 물들지 않으면 된다. 내 마음에 절을 두고 있으면 되니...

 

이렇게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친절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그것이 바로 잘 사는 삶이 아니겠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친절한 삶을 살다보면 자연스레 뒷모습도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친절한 사람일테고, 처음에는 친절을 가장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체하던 것이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굳어질 수도 있으니...

 

습관을 통해 나를 만들어가듯이 친절한 행위들을 통해 나를 만들어가다 보면 앞과 뒤가 하나가 되고, 뒷모습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그렇게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하고 있다. 무더운 여름, 몸을 식혀주는 시원한 소나기, 추운 겨울 오슬오슬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온기를 주는 화롯불 같은 책.

 

법정이라는 숲을 거닐다 온 느낌을 주는 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7-04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4 1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헌책방에서 구했다. 새시집은 일반 서점에서 구할 수 있지만, 그것도 많지도 않지만, 오래된 시집은 아주 많이 팔리는 것 말고는 일반 서점에서 구하기 힘들다.

 

  발품을 팔아야 한다. 시가 내게로 왔다가 아니라 시집을 찾아다녀야 한다. 그래야 마음에 담아두었던 시집, 또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시집을 얻을 수 있다.

 

  노작문학상 수상작품집도 가끔 헌책방에 나온다. 1회수상집을 구했고, 이번엔 7회 수상집이다. 수상 시인은 이문재.

 

  이문재 시인의 시집을 몇 권 읽었으니, 기대를 하고 읽어본다. 또 수상시집은 수상 시인의 작품 말고도 여러 시인들의 작품이 함께 실려 있기에 다른 시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참에 새로운 시인 이름을 발견하고, 그 시인에 관심을 두기도 하고. 이문재 시인의 시를 읽다가 그리움, 어쩌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시를 보았다. 푸른 곰팡이. 곰팡이 자체가 오래 묵혀두어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즉 오래도록 관심을 두지 않아 손길이 닿지 않아 생기는 것이 바로 곰팡이일텐데... 이런 푸른 곰팡이로 무슨 이야기를 할까 궁금해 했더니, 우체통이다. 우체통. 예전엔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나와 다른 사람을 이어주던 존재.

 

이제는 과거로 흘러가 점점 우리 눈에서 사라져 간, 길거리에 빨갛게 자기를 드러내던 우체통이 어느 순간부터 하나둘 사라지더니, 이제는 편지를 써도 넣을 우체통을 찾기가 힘들어 편지를 쓰지 않는다.

 

이메일로 보내면, 문자로 보내면 아니면 카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등 보내자마자 읽히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한번 쓰고 부치면 며칠이 걸리는 편지는 비효율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비효율성이 바로 우리 인간을 설레게 하지 않았던가. 편지를 보내고 다시 편지를 받게 되는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마음은 얼마나 많은 감정들을 담고 있었던가.

 

아직 닿지 않은 편지, 오지 않은 편지를 기다리며 내 마음을, 상대의 마음을 얼마나 많이 읽었던가. 그런 기다림의 과정이 이제는 사라져 가고 있으니...

 

시를 보자.

 

 푸른 곰팡이

      - 산책시1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가는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읽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노작문학상 수상작품집 제 7회, 이문재 물의 결가부좌. 동학사. 2007년. 43쪽.

 

그런 마음을 잃지 말라고 경고하는 의미로 빨간색을 칠했지만, 그 경고는 우리들에게 와닿지 않았다. 경고를 무시하고, 아예 경고판을 치워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빨리빨리도 이런 빨리빨리가 없다.

 

소식이 닿은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그 과정을 생략해버린, 수많은 이야기들과 감정들을 묻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이 요즘이 아닌가 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시.

 

한데, 이 수상시집에 '읽어버린'이라고 되어 있는데...다른 곳을 찾아보면 '잃어버린'으로 되어 있다. 어감으로도 '잃어버린'이 더 어울 것 같은데... 나중에 시간이 나면 시집 "산책시편"을 찾아봐야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7-03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3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린 너무 몰랐다 - 해방, 제주4.3과 여순민중항쟁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끝부분에 가면 이런 제목의 단락이 있다. '여순민중항쟁의 여파: 강고한 우익반공체제'라고 하는 글에서 제목과 같은 빨간색으로 우리는 너무 몰랐다. 우리는 너무 조용했다(305쪽)는 문장이 있다. 이 책의 제목이 된 문장이기도 하다.


무엇을 몰랐다는 것인가? 바로 지금 광화문 광장을 점거하고 있는 태극기 부대들이 태극기와 더불어 성조기를 들고 법을 어기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보수는 법을 지키려 하고, 진보는 법을 바꾸려 하는데, 우리나라 보수들은 법이고 뭐고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한다. 보수가 지닌 의미를 알려고도 하지 않는 그들이야말로 수구 꼴통에 불과하다) 이들의 연원이 바로 4.3과 여순민중항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우선 용어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고 한다. 4.3사건이 아니라, 여순반란사건이 아니라 민중항쟁이라고... 남로당의 지시에 따라 일으킨 사건들이 아니라 민중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항쟁한 일이라고.

 

이렇게 용어부터 바로잡고 또 역사에 제 자리를 차지하게 해주어야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적어도 태극기부대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고, 그들의 행동이 왜 잘못된 행동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여순민중항쟁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먼 과거부터 시작한다. 고려시대 금속활자, 팔만대장경 등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부터... 엄청난 문화 대국, 제후의 나라가 아니라 황제의 나라였던 고려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도 축소하고 있던 것 아닌가 하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사대로 인해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 축소했다는 주장. 이런 왜곡이나 축소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니,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우리 역사에 대한 재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도올은 많은 자료들을 가지고 주장을 펼쳐나간다. 여기에 새로운 사실들이 추가된다. 여수가 받아왔던 차별에 대해서 도올은 우리에게 정확히 알려준다. 순천에 복속되었다가 독립된 현으로 다시 복원됐다가 강등되는 일들을 역사적으로 계속 겪었다는 것.

 

순천부사가 전라좌수사보다 직급은 아래지만 문관 우대 정책에 의해 웬만한 전라좌수사들은 순천 부사에게 큰소리를 칠 수 없었다는 것. 여수 백성들은 그래서 순천부사에게도 착취당하고 군역은 전라좌수영에서 치르는 등 이중의 고역을 겪었다는 것. 이런 여수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준 것이 이순신이었고.

 

제주도가 겪어왔던 차별에 대해서도, 그리고 제주도가 하나의 도가 아니라 해상을 주름잡던 나라였다는 주장을 하면서, 유교 논리에 충실했던 관리들이 제주도 토착신앙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또 천주교가 이들과 결탁해 제주도에서 어떤 패악을 저질렀는지를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여수는 해방이 되고서도 제주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이들이 4.3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것은 당시 민중들이 지니는 당연한 의식이었다는 것. 단정, 분단 반대가 남로당의 지시가 아니라 민중들의 기본적인 입장이었다는 것.

 

그래서 4.3도 여순도 모두 민중항쟁이 되어야 한다는 것. 다만 4.3은 어느 정도 나라에서 진상도 밝히고 보상도 해주려고 하고 있지만 여순민중항쟁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란이라는 인식이 많다는 것. 결코 반란이 아니라 부당한 명령에 대한 거부이며, 이것은 민중들의 항쟁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 밝혀주고 있다. 그럼에도 여순민중항쟁은 여전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안타까움을 도올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제현들은,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지사라고 한다면 단 10권이라도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사상이 아니라 운동이다. 이 책은 역사서술이 아니라 우리 의식에 던져지는 방할이다. 가치를 추구하는 자라면 이 책을 읽은 후 얻는 깨달음을 만세 만민에게 전해야 할 것이다. (272쪽)

 

얼마나 절실했으면 이런 말을 책에서 대놓고 할까. 하긴 이것이 도올 글쓰기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직설적인 말하기, 잘남을 절대로 감추지 않고 드러내기. 자신있게 말하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신탁통치에 대한 글이다. 지금은 신탁통치 반대가 나라를 위하는 길이 아니었음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대로 도올처럼 이렇게 주장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신탁통치 반대를 한 쪽이 우익이었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신탁통치에 대해 최초로 왜곡 보도를 한 것이 동아일보라고 한다. 어째 지금의 조중동이 심심찮게 왜곡 기사, 편협한 기사를 쓰는데, 그 원천이 해방 직후에 있었음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가 없다. 그러니 이런 거대 언론사가 시작한 신탁통치에 대한 왜곡을 지금도 우리는 명확하게, 강하게 비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도올은 그럼에도 좋은 놈, 나쁜 놈으로 명확히 갈라서 말한다. 여러 쪽에 걸쳐 신탁통치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지만, 그것을 표로 정리한 것이 179쪽에 있다.

 

이런 주장을 대놓고 한다. 용감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진실이 너무도 많이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태극기부대들이 아직도 준동하고 있다는 주장이기도 하고.

 

대표적인 것이 바로 여순민중항쟁을 바라보는 시각이라는 것이다. 민중항쟁임에도 반란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 현실에 그는 개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여순은 진행 중이고, 그곳 사람들은 공포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그들이 굴레에서 벗어나야 우리나라도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직설적인 글쓰기다. 그리고 몰라도 너무 몰랐음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철학자로 시작해서 이제는 한국현대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 자리를 잡은 그의 글쓰기는 우리나라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해준다.

 

사건이 아니라 민중항쟁임을, 그렇게 민중항쟁으로 바르게 자리매김을 해야 우리 역사가 바로 섬을. 그것이 진정한 평화, 통일로 나아가는 길임을 생각하게 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
김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는 내내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고, 과거를 현재에 끌어와 미래를 생각하게 되어서 좋았다. 유물, 문화재, 작품 등등... 그냥 과거의 것으로 치부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히 사라져 가게 할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 꼭 인류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라짐이 운명이라지만 그 사라짐을 잠시 멈추게 하거나 또는 조금 느리게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느림이나 멈춤을 통해 우리는 과거를 현재에 잡아두려 한다. 왜 과거를 현재에 잡아두려 할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현재가 미래에는 과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현재도 과거처럼 모두 사라져버린다면 얼마나 허무할 것인가. 그러므로 과거를 현재에 붙잡아두려는 일을 통해 지금도 미래에 어느 정도 남아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사라져야 하지만, 그 사라짐이 동시에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이 바로 복원의 의미가 아닐까 한다.

 

마찬가지로 복원은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복원은 현재에 시간의 흐름을 덧씌우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현재에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복원이다.

 

이런 복원을 하는 남자, 김겸이 쓴 책이 바로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다. 그가 만났던 많은 과거의 물건들, 그 물건들을 현재에 남겨놓는 과정이 담긴 책이다.

 

여기에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를 복원하는 내용도 있어서 우리 현대사의 치열했던 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게 하기도 한다. 게다가 남대문으로 불리는 숭례문, 화재로 전소되었을 때 그것을 복원하는 과정에 대한 생각도 담겨 있는데, 외국에서 복원을 어떻게 하는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나라 복원이 얼마나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하나 더하면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복원하는(? 복원이라는 말이 적절한 어휘가 아니라 청소라고 해야 한다고) 장면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기가 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청동 특성을 생각하지도 않고 무지막지하게 청소를 해버리는 동상 복원이라니... 문화재에 대한 생각, 또 복원에 대한 생각이 이다지도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복원을 하면 값어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복원 사실을 감추려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 글에서는, 문화재를 우리들 삶의 일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환산하는 자본주의 모습이 연상되어 씁쓸하기도 했고.

 

작품이나 문화재가 복원되는 것은 그것에 시간의 흐름이, 삶이, 역사가 함께 들어있게 하는 것이라는 것, 모든 것은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지만, 그 사라짐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복원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음을 이 책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글쓴이 김겸이 생각하는 복원은 이렇다. 이게 진정한 복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와 똑같이 만드는 것이 아닌...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다.

 

보존이나 복원은 작품이 제작된 당시의 젊음을 되돌려주는 행위가 아니라 정성스럽게 잘 관리된 세월의 흔적을 함께 가져가는 행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40쪽)

 

이런 복원 전문가의 일은 육체적으로도 고될 수밖에 없다. 물론 지식면에서 또 예술적 감수성이나 기술, 재주면에서도 뛰어나야 하겠지만 거대한 예술품을 복원하는 일은 많은 장비들과 해야하기 때문에 몸을 혹사시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김겸 역시 복원 작업을 마치고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경험을 많이 했다고 하니, 육체적으로도 고된 작업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작품에 쓰인 재료들에 대한 지식,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환경에 대한 지식, 화학에 대한 지식 등 여러 가지 지식들이 동반하지 않는 복원은 문제가 있다고 하니...

 

인류 문화의 축적, 그것들을 현재에 과거와 미래를 끌어오는 일, 그것이 복원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참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복원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하게도 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