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
강병철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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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허구다. 소설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소설은 진실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으며 감동을 받는다. 소설을 읽을 때 주인공에게 먼저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간다. 주인공의 삶에 자신의 삶을 대입해 보기도 한다. 감정이입은 물론이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잘살게 되기를 바란다. 소설의 결말이 행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들을 소설 속에서나마 이루고 싶어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소설 속에서 자신의 다른 모습을 보기도 하고, 자신의 희망을 실현하려고도 한다. 소설이라는 문학 갈래가 지금까지도 우리 곁에 계속 남아 있는 이유가 이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고 현실이 소설과 같이 전개될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가끔 다른 사람에게 그건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야, 이게 소설인 줄 아니? 와 같은 말을 한다. 그만큼 소설과 현실은 같지 않음을 우리 모두 인식하고 있다.

 

현실과 다름에도 소설은 감동을 준다.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반추하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기도 한다. 적어도 소설은 반면교사 역할을 한다.

 

이 소설집 역시 그렇다. 한국 현대사에서 민중들이 겪어온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가고 있다. 주요 배경은 충청도다. 물론 충청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학병 또는 징용으로 끌려가면 외국까지 나가니 말이다. 그럼에도 주인공들은 충청도 사람들이다.

 

충청도 하면 제일 먼저 말이 느리다는 것이 떠오른다. 느릿느릿한 말투. 하지만 소설은 빠르게 전개된다. 문장도 길지 않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저 사건으로, 이 인물에서 저 인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충청도와 반대되는 문장 서술이다. 또 소설에서는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을 다루지 않는다. 학교를 다녀도 고등보통학교 정도에서 그친다. 그렇다면 주인공들은 민중이라고 할 수 있다. 전면에 나서서 자기 주장을 펼치기 보다는 제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던 사람들.

 

총 세 편의 소설이 묶여 있는데, 시대 순으로 소설이 나열되어 있다. 일제시대, 1960년데, 그리고 정황상 2000년대. (나팔꽃, 한머리, 숨소리)

 

고등보통학교 학생으로서 겪는 일, 일제 말에 충량한 황국신민이 되라는 교육 속에서 그래도 졸업장을 받기 위해 아등바등 대는 학생들. 그럼에도 민족감정은 남아 있어서 조선인을 비하하는 일본 학생을 폭행하기도 하는 학생들. 독립운동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친일을 하지도 않는.

 

주인공은 이런 학교 생활을 거쳐 학병으로 전투에 참여한다. 소련군과의 전투. 탈출. 조선으로 들어와 해방이 된 조국을 맞이하게 되는 그들.

 

얼핏 행복한 결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나팔꽃이란 제목을 달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나팔꽃은 해가 있을 때만 피는 꽃 아닌가. 소설의 끝부분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숨어 있다가 일제히 고개를 드러낸 나팔꽃들이 한꺼번에 댕강댕강 떨어질 것 같은 불길함도 가시지 않는다. 완전히 끝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100-101쪽)

 

이렇게 해방이 되어서도 민중들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좌우 대립을 거쳐 전쟁을 겪게 된다. 두번째 소설에서는 전쟁이 끝나고 1960년대 박정희 독재가 막 시작될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산업화가 되어가는 그 때 충청도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 소소한 일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소설에서는 한 마을 사람들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린이의 눈으로 본 어른들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이 속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근대사의 이면이 잘 드러나고 있다.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고 작가는 소설 속에서 산업화되어 가는 농촌 마을의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몰락할 수밖에 없는 과정, 딸이라고 해서 차별을 받는 모습, 아들을 낳아야만 한다는 가부장적 사고방식... 여기에 간간이 노근리 학살 사건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래저래 자신의 말을 잃고 사는 민중들. 여기에 그래도 말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인물이 나온다. 주인공의 누나. 하지만 이 누나가 고등학교에 진학할지는 모른다. 아마, 하지 못했으리라. 딸이라는 이유로 이중의 억압을 받아야 했던 우리 현대사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다고 결말을 내지 않고, 그냥 그렇게.

 

마지막 소설에서는 삼청교육대 사건이 나온다. 아니 학교 폭력 문제라고 해도 좋다. 학생들끼리 세력 다툼을 하는 모습을 서술하는 가운데 아버지 이야기가 나온다. 한때 주먹을 좀 썼다는 아버지. 이 아버지가 삼청교육대 경험을 한 것. 결국 세상이 바뀌어도 민중들은 계속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음을 세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지금은 어떤가? 민주화되었다는 지금 과연 민중들의 삶은 나아졌는가? 민중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혹 민중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답시고, 제 이익을 목청껏 외치는 자들이 여전히 판치고 있지는 않은가.

 

소설을 읽으며 어려운 시절을 견디어 낸 민중들의 삶을 만나며, 지금 우리 삶을, 우리 민중들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소설을 통해서 우리나라 현대사를 관통하는 사건들, 또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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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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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말이 있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자꾸 설명을 하려고 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리베카 솔닛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제목이기도 하지만, 이 용어를 솔닛이 처음으로 쓴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떤 책에선가 솔닛이 만들었다고 읽은 것도 같은데, 그것이 아니었다.

 

용어를 처음 만든 사람이 누군지보다 이 용어가 쓰인다는 사실은 그만큼 남녀가 동등하게 대화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현실의 심각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 글이 발표된 직후에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는데, 가끔은 내가 그 말을 만든 사람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28쪽) ... 사실 나는 그 단어의 탄생과는 관계가 없다. 현실에서 그 개념을 구현한 남자들과 더불어 내 글이 그 단어의 탄생에 영감을 좀 준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29쪽)

 

이 책 첫번째 글이 바로 이것이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고. 세상에 솔닛 앞에서 솔닛이 쓴 책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기껏 리뷰를 본 주제에 남성이라는 이유로 여성 앞에서 한껏 젠 체하는 모습이라니...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군림하려는 남성의 모습이 지금껏 인류의 역사에서 흔하게 벌어진 일이다.

 

의식하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말하는 남성들이 태반이었던 현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 여성들은 언어를 만들어내고 그 언어를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언어가 생기니 비로소 현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에는 폭력을 폭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가정폭력, 부부강간, 데이트강간 등등 인지하지 못했던 폭력을 폭력으로 인지하고 처벌하는 풍토를 만들어가고 있다. 아직도 미진하긴 하지만. 강간문화라는 말이 이 현실을 얼마나 잘 표현하고 있는지. 반드시 우리가 없애야 할 문화 아니겠는가.

 

수많은 여성들이 당했던 폭력... 지금도 암묵적으로 이런 폭력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을 범죄라고 분명한 언어로 말하지 못하면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 폭력은 바로 그런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솔닛이 말하는 폭력은 바로 이렇다.

 

폭력은 타인을 침묵시키고, 타인의 목소리와 신뢰성을 부정하고, 내게 타인이 존재할 권리를 통제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한 방법이다. (18-19쪽)

 

어디서 여자가? 이런 말을 하는 남성들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바로 폭력이다. 이 말을 어디서 어린 것이? 라는 말로 바꿔도 마찬가지다. 또한 어디서 외국인이? 어디서 장애인이? 어디서 동성애자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역시 폭력이다.

 

이런 폭력은 사라져야 한다. 그 사라짐을 추구하는 운동이 바로 페미니즘이다. 하여 페미니즘은 결코 여성만의 운동이 아니다. 모든 배제되는 사람들의 운동이어야 한다. 아니 배제하든, 배제되든 모든 사람들의 운동이어야 한다. 그래야 함께 잘 살아갈 수가 있다. 솔닛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러니 성별로 인한 또는 젠더로 인한 차별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페미니즘은 인간 세상 전체를 바꾸려는 노력이다. (221쪽)

인종주의와 마찬가지로, 여성 혐오는 피해자들만 나서서는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 이 점을 이해한 남자들은 페미니즘이 남성의 권리를 빼앗으려는 계략이 아니라 모두를 해방시키는 운동이라는 점도 이해한다. (225쪽) 

 

이렇게 이야기 한 다음 우리가 벗어버려야 할 구속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단지 성(性)에 따른 차별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게 이 책이 지닌 장점이다.

 

우리가 해방되어야 할 구속은 또 있다. 경쟁과 냉혹함과 단기적 사고와 가혹한 개인주의를 높이 사는 체제, 환경파괴와 무제한 소비를 너무나 잘 뒷받침하는 체제, 한마디로 자본주의라고 불러도 무방한 체제이다. 이런 체제는 최악의 마초성을 현실로 구현하고, 지구에 존재하는 최선의 것들을 파괴한다.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이런 체제에 좀더 잘 적응하긴 하지만, 이 체제는 사실 둘 중 어느 쪽에도 진정으로 유익하지 않다. (225-226쪽)

 

그러니 페미니즘을 편협하게 보지 말자. 물론 당장은 불편할 수 있다. 인권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규제하게 되듯이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다른 성(性)들이 보인다.

 

여전히 그 길이 멀지만... 솔닛은 그 길을 이렇게 말한다.

 

여기 그 길이 있다. 천 마일은 될지도 모르는 기나긴 길이다. 이 길을 가는 여성은 채 1마일도 걷지 못했다. 그녀가 얼마나 더 가야 할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냐가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되돌아오진 않으리란 것은 안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 걷지 않는다. 수많은 남자, 여자 들, 그보다 더 흥미로운 다양한 젠더의 사람들이 함께할지 모른다. (227쪽)

 

이렇게 이 책은 함께 살아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 한 번 내디딘 발걸음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언어로 말해지는 많은 운동들, 그것들은 계속 전진할 것이다. 인류의 행복을 위해. 아니 우주적 존재들이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

 

누구나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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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0 10: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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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0 11: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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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잡이들의 이야기 보르헤스 전집 4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외 옮김 / 민음사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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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하면 환상적인 소설을 떠올리는데, 이 소설은 환상보다는 사실에 가깝다고, 그것도 라틴아메리카 현대사를 소설에 반영하고 있다.

 

읽다 보면 라틴아메리카의 현대사가 피로 얼룩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독립전쟁뿐만이 아니라, 독립을 이룬 다음에도 연방주의와 중앙집중주의로 나뉘어 또 서로 싸우고, 독재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고통을 받아왔음도 알 수 있다.

 

역사책을 읽지 않아도 이 소설집을 읽다보면 그러한 사실들을 알 수 있는데, 제목을 '칼잡이들의 이야기'라고 붙인 것이 이해가 된다.

 

칼잡이들은 칼을 써야 한다. 쓰지 않고 이기는 칼잡이가 진정한 고수라고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칼잡이들은 칼을 쓴다. 소설에서 결투 장면이 많이 나오고, 칼을 통해서 상대를 죽이는 일들이 다반사다.

 

이 중에 '마가복음'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 소설을 읽으면 보르헤스가 사실주의적인 소설을 쓰더라도 환상적인 요소들을 제거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글을 모르는 가족들에게 마가복음을 읽어주는데, 노아의 방주 부분과 지내고 있는 곳에 홍수가 나는 것, 그리고 그들은 십자가에서 처형된 예수가 모두를 용서해준다는 말을 듣고 대들보를 뜯어 십자가를 만들어내는 것.

 

카르카의 '유형지에서'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는 소설인데, 종교가 무엇인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서 결투를 하거나 사람을 죽이면서도 그것을 가지고 내기를 하는 그런 인물들을 만나면서 '칼잡이'라는 말에서 우리나라 '검사'를 떠올리기도 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야말로 불한당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교양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들은 그냥 자신들이 할 일을 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동물을 죽이는 것만큼 쉽게 한다. 그런 칼잡이들이다.

 

반면 우리나라 검사들은 교양인이다. 지성으로 무장한, 세속적인 칼은 쓰지 않는 엘리트 집단이다. 이들과 소설 속 인물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그런데 말이 된단 생각이 든다.

 

검사(劍士)와 검사(檢事). 한자로야 다르게 표기되지만 한글로는 같지 않나. 하는 일이 비슷하지 않나. 칼로 사람을 베는 것이나 언어라는 판결로 사람을 베는 것이나. 말이 칼이 되기도 하니, 劍士나 檢事나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들 역시 장기가 사람을 베는 것 아니겠는가. 벤다는 의미는 그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는 것일 테니 보르헤스가 진짜 칼잡이들을 통해서 라틴아메리카 현대사를 구현해 냈다면, 우리나라 검사들이 지내온 한국 현대사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나만의 생각이었으면 좋겠다. 검사들이 劍士들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이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교황도 배출했다. 아직도 혼란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지만, 적어도 이 소설에 나타나는 인물들처럼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여 이상하게도 보르헤스의 이번 소설집을 읽으면서 칼잡이라는 말에서 검사를 떠올리게 되었으니, 우리나라도 과거에서 많이 벗어나 있을 테니... 독재가 판치던 우리나라에서 지식인들은 라틴아메리카 현대사, 혁명을 공부했었다.

 

그만큼 통하는 면이 있었을 것이고, 환상적인 소설로 잘 알려진 보르헤스가 그런 라틴아메리카 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소설로 표현하기도 했음을 이 소설집을 통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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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수 시집 '적막 소리'를 읽다.

 

적막이라면 소리가 없어야 하는데, 적막이 소리를 낸다. 적막은 이미 자신의 내부에 소리를 지니고 있고, 그것이 넘쳐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 제목이 시집을 읽으면서 시집 곳곳에 나오는 죽음들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시집에 늙어감과 죽음이 많이 나오는데, 이는 시인이 이편보다는 저편을 자꾸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게 한다. 시인도 이제는 세상의 이편보다는 저편이 더 가까운가 싶은 생각을 하게 하는데, 인생 한 바퀴를 돌고 더 가고 있는 시인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우리는 죽음을 한사코 외면하려 한다. 장례식장이 들어온다고 하면 결사반대를 하고, 장례식장에 결사반대라는 말, 죽음을 무릅쓴다, 죽음을 치르는 곳에서 죽음도 받아들일 정도로 싸움을 하겠다, 이런 형용모순인 투쟁을 하고, 화장장을 혐오시설로 치부하는 나라에서 시집 도처에 나오는 죽음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모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고, 아니면 바니타스, 헛되고 헛되다는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다는 그림의 주제들이 이 시집에 되살아난 느낌이다.

 

'적막 소리'와 어울리게 망자가 말을 하기도 한다. 산 자에게...(사별, 그녀가 들은 말 - 94쪽) 그리고 망자에게 절을 올리는 사람들을 또다른 무덤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르르 몰려나가는 무덤들 - 32쪽)

이렇게 우리는 죽음과 늘 함께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시인은 그런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아무리 우리가 부정해도 늘 죽음과 함께 있다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고. 그것이 어쩌면 성숙이라고.

 

'수박 먹는 가족'이라는 시를 보자. 이게 바로 우리 삶이다.

 

수박 먹는 가족

 

  고분군과 인접해 사는 이곳 불로동 사람들은 오히려 담담하다.

  이 오랜 죽음에 대해 별 관심 없다. 다만 여름밤이면 웅성웅성 뭔가 둥글게 익어가는 소리를 듣는지, 이 집 가족들

  만삭 같은 수박을 쪼갠다. 수박 세로줄 무늬가 줄줄이 시퍼렇게 살아나는 밤,

  저 여러 봉분들도 잘라 전부 뒤집어놓고 싶은 밤, 그 수박 속 다 파먹으면 일가족이 타고도 남을 커다란 배가 되겠다. 일가족을 모두 두고 혼자 떠나온 먼 항해,

  뒤집어쓰고 누운 것이 저 봉분들 속 독거다. 바리깡으로, 이 수박 물결무늬로, 최신식으로 얼룩덜룩 벌초해드릴까보다. 참말로 달고 시원한 맛,

  살아 아는 건지 죽어 아는 건지……껍질 안쪽에

  붉게 발린 기억은 별 내용이 없고 다만 수박 먹는 밤,

  흰 달빛 또한 고분군 위에 식칼처럼 환한 밤, 不老,

  불로동 사람들도 예외 없이 늙어가고, 고분군 쪽으로 운동 가고,

 

문인수, 적막 소리. 창비. 2012년. 초판 2쇄. 86쪽. 

 

시가 쉼표로 끝난다. 마침표가 아니다.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죽어간다. 이 시집에서 죽음을 많이 다룬 것은 바로 삶을 다루는 것이다. 둘은 떼어놓을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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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6 10: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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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6 1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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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현의 사진의 모험 - 대한민국이 사랑한 사진가 조세현이 전하는 찍사의 기술 혹은 예술가의 시선
조세현 지음 / 김영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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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이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점을 이 책의 후반부에서 발견하고 기뻤다. 그래, 예술은 모두 통하지, 꼭 그림과 사진만이겠는가? 사진과 그림이 시각예술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면, 음악과 사진은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닐 수 있고, 시와 사진은 또다른 점에서 비슷하다.

 

예술은 서로 통할 수밖에 없다. 바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사람들을 감싸안아주기 때문이다. 사진을 보면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그림을 보면서도 또 시를 읽으면서도, 연극 영화를 보면서도 그런 경험을 한다. 그만큼 예술은 우리들의 삶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책은 사진가 조세현이 사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는 책이다. 자신이 어떻게 사진가가 되었는지, 어린시절 처음으로 필름을 주웠던 일에서부터 대학을 사진학과로 가게 된 일, 그리고 여러 유명인들과 사진을 찍게 된 일들과 그밖에 사진의 다른 여러 면들을 쉽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래서 쉽게 읽을 수 있고, 덤으로 조세현이 찍은 사진도 볼 수 있다. 화려한 칼라보다는 흑백사진을 좋아한다는 그. 그가 흑백사진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사진을 잘 볼 줄은 모르지만 나는 흑백사진에서 어떤 깊이와 편안함을 느꼈었다.

 

그 점을 조세현은 '흑백에는 이야기가 있다. 직설이 아닌 은유라서 좋다. ...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흑백사진을 통해 간단하고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예술과의 공통점은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 바로 이렇게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새겨둘 만한 구절이다.

 

  쉽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능력을 닮은 사진과 음악은 형제이다.

  사진의 또 다른 형제는 시다. 영혼이 자유로운 시인과 사진가는 서로 닮았다.  ... 사진은 시처럼 간결하고 감각적이다. (193-194쪽에서)

 

요즘은 사진을 누구나 따 찍을 수 있다.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이면 모든 것이 다 된다. 그래서 조세현은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사진을 찍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찾는다. 아름다운 것을 찍으려 한다.

 

이렇게 사진 찍기가 일상이 되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가 사진을 통해서 유명인들만을 찍지 않고 고아와 같이 어려운 환경이 있는 사람들도 찍는 이유는 단지 사진 속에 그들을 가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진을 통해 그들이 좀더 밝은 곳으로 나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가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사진 강의를 하고 그들로 하여금 사진을 찍게 하는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고,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사진 강의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각장애인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을 방송을 통해서 보기는 했지만, 이 책에서 그들이 어떻게 사진을 찍는지에 대해서 더 알게 되었고, 사진을 통해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는 모습을 알게 돼 좋았다.

 

이런 저런 사진에 얽힌 이야기들이 나와 사진 초보인 내게도 읽을 만하다고 생각되었으니, 사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으면 더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조세현이 말하고 있듯이 우리나라 곳곳에는 시가 쓰여 있고, 그 시만큼 많은 사진들이 있으니, 사진, 우리가 멀리하려고 해도 멀리할 수 없는 존재이니 사진에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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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4 21: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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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5 07: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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