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신의 삶을 바꾸어야 한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삶을 위한 일곱 개의 주석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울리히 베어 엮음, 이강진 옮김 / 에디투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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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작가도 마음에 들었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얼마나 친숙한 이름인지, 윤동주의 '별헤는 밤'에 나오는 그 이름을 보고 그냥 친근하게 다가와 버린 시인. 또 소설가.

 

이 책은 그가 쓴 여러 글에서 삶에 관한 글을 발췌해 놓은 책이다. 경구들의 모음이라고 해도 좋은데, 모든 글들이 곱씹을 만하지만, 그래도 다섯 편의 문장을 골랐다.

 

그 글을 통해서 내 삶을, 거창하게 삶이라고 하지 말고 그냥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본다.

 

무언가를 창작한다는 것은 곧 무언가를 잉태하는 경험이며, 따라서 창작을 수행하는 자의 내밀한 경험이란 여성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42쪽)

 

여성적이라는 말. 생물학적인 여성이 아니다. 포용하는, 생산하는 존재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런 존재는 다른 존재들에 무심할 수가 없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가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성성이 앞으로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이기도 하다.

 

창작하는 사람. 다른 존재들을 무심히 넘기지 못하는 사람이다. 민감성, 예민한 심성을 지닌 사람. 사랑이 충만한 사람, 그런 사람이 창작하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런 여성성을 우리 태도로 삼아야 한다.

 

사회에서 대다수의 사람이 이런 여성성을 지니고 있다면 삶이 조금더 부드러워지고 따뜻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사람들은 군림하려 하지 않을 테다. 군림하지 않을 테니 자연스럽게 남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 속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남에게 알리려 할 필요가 없다.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각인시키고자 하는 사람, 그 사람을 남성성이 강한 태도를 지닌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성성의 반대에 있는.

 

당신이 사람들 사이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다른 이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시간과 의지를 허비하시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누가 거기에 응하여 당신의 위치를 인정해 줄 수 있겠습니까? (53쪽)

 

그렇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 사람들 사이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사람은 남과 갈등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바로 경쟁의 논리, 승자의 논리다. 이러한 승자독식, 경쟁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강박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지닌 문제가 이것 아닐까? 그러나 승자독식, 경쟁 사회라고 해서 좌절에만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

 

심연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경악스러운 것들 역시, 사실은 우리의 도움을 갈구하고 있는 가련한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94쪽)

 

우리를 경악하게 하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 그러한 것들을 극복해 냈을 때 우리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 그렇다. 우리 사회를 승자독식, 경쟁 사회에 경악할 수 있어야 한다. 경악해야지만 그것에대응할 수가 있다. 그리고 경악한다는 것은 곧 우리가 이런 사회의 모습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바로 우리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학교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이런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가 제공해야 할 모든 앎은, 진심을 담은 것인 동시에 위대한 것이어야만 할 것입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에는 숨겨진 것이나 제약이 있어서는 안 되며, 아무런 의도도 가지지 않은, 감수성이 풍부한 교사에 의해 수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곳에서 다루어지는 모든 과목들은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삶 자체를 다루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85-86쪽)

 

그런데 우리는 교육에서 삶 자체를 다루고 있는가? 아니다. 아니기 때문에 승자독식, 경쟁사회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를 경악하게 하는 이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한다. 우리가 학교를 통해서 얼마나 아이들에게 부당함을 행사하고 있는지를.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개학 연기를 하고 온라인 개학을 한 것을 생각해 보라. 이런 사상 초유의 사태에 많은 사람들은 오로지 아이들 학업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를 고민한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살아갈 세상이다. 공부도 좋지만 왜 이런 감염병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지, 이것들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학교가 할 일이다. 단지 지식 전수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죽하면 스웨덴 청소년인 그레타 툰베리가 학교에 가지 않고 행동에 나섰겠는가. 행동하는 것이 학교에 가서 앉아 있는 것보다 더 필요하다고 느낀 툰베리.

 

좋든 나쁘든 간에, 부모들뿐만 아니라 학교 역시도 아이들에게 부당함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자기가 아이들에 깊이 숙고해 보았다 자부하는 그런 어른들이 제시하는 전제들에 기댐으로써, 잘못된 방식으로 아이들을 재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부모와 학교가 끝내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아이들을 동등한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더없이 위대한 이들이 도달하고자 분투했던 목표라는 사실입니다. (104-105쪽)

 

릴케의 말처럼 아이들을 동등한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있다면 청소년이 기후 행동에 나서기 전에 이미 행동했어야 했다. 청소년들이 살아갈 세상을 우리가 살아갈 세상과 동등하게 본다면 어떻게 미래를 희생시켜 현재를 살아갈 수가 있단 말인가.

 

삶은 머리 속에 있지 않다. 삶은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삶은 행동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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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이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7
헤르만 헤세 지음, 김누리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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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는 무엇일까? 우리는 왜 살아가고 있는가? 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까? 명쾌하게 답을 할 수 있다면 우리들이 이렇게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토록 많은 종교가 있지도 않을 것이고.

 

사람이라는 존재를 요소로 분해할 수 없듯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유나 살아가는 방식을 이거다라고 명확하게 분리해서 말할 수가 없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실시되어 인간 유전자 지도가 어느 정도 밝혀졌다고 하지만 인간을 유전자들로 이야기할 수 없듯이, 우리들은 다양한 요소들이 단순히 결합되는 것이 아니라 결합하면서 또다른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헤세 작품이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이 [황야의 이리]는 좀 낯설다.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지와 사랑], [유리알 유희]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인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사람 안에 있는 이성과 본능이라고 해야 할까? 아주 단순화 시키면 인간이 이성을 대표한다면 이리는 본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성장하면서 내 안에 있는 이리를 억누르고 길들인다.

 

그래서 자신의 본능과 이성이 충돌하기도 하지만, 본능에 따르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리라는 표현 자체가 이미 도덕적 판단 기준을 제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인간을 이성과 본능으로 양자택일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인간이란 이성만으로도, 또 본능만으로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을 스펙트럼 상에 놓고 보면 맨 오른쪽에 이성을 놓고, 맨 왼쪽에 본능을 놓는다면 그 사이에 있는 수많은 지점들을 포함해서 모든 것이 인간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도 그런 말이 나온다. 자신이 두 부류가 아니라 수백 수천의 부류로 구성되어 있음을, 그래서 어느 하나로만 규정해서는 안 됨을.

 

불합리한 시대에 이성으로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힘들고 그렇다고 본능에 충실한 삶만을 추구하기도 힘든 시대. 그 사이에서 흔들리며 살아가는 존재가 현대인이라면, 불합리한 현실에 대응하는 우리 인간의 모습은 소설 속에 나타났듯이 웃을 수 있는 인간이다.

 

웃음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한다. 웃음은 그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침잠하지 않고 현실을 비껴갈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래서 소설에서는 웃음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지만 웃을 수 있는 인간.

 

현실의 고통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인간은 강한 인간이다. 그런 인간이야 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인간이다. 소설 속 하리 할러는 이성이 강한 삶을 살던 인간이었지만, 그는 점차 자신을 괴롭히고 있던 황야의 이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인정하게 된다. 이성과 본능. 황야의 이리는 억눌러야만 하는 존재로 여기고 살아왔던 그에게 본능의 힘을 일깨워주는 존재가 나타난다.

 

헤르미네. 본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여인. 그에게서 하리는 자신을 본다. 그리고 헤르미네에 이끌려 본능의 세계에, 세속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가 비판해 마지 않았던 세계에서 그는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한쪽에만 머물 수는 없다. 우리들 삶이 그렇다. 이성만이, 본능만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우리가 영원을 추구하는 것은 현실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현실에 거리를 두고 웃을 수 있는 인간. 즉 현실을 받아들이되 그것에 자신을 완전히 넘기지 않는 인간이다.

 

수많은 자신들의 조합으로 현실을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는 존재. 그런 깨달음을 얻으면 그때부터는 이성과 본능이 양자택일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 둘과 그 사이에 있는 다양한 것들이 바로 자신임을, 현실을 살아가는 자신임을 하리 할러를 통해 헤세는 보여주고 있다.

 

지식인 사회에 속해 있던 하리 할러가 비판해 마지 않았던 세속의 세계 속에 발을 들여놓고, 억눌렀던 욕망들을 들여다보고, 이 현실에서 자신이 살아가야 함을, 그 현실을 웃음으로써 극복해 나갈 수 있음을, 그래서 자신 속의 황야의 이리와 함께 살아가야 함을 깨달아 가는 과정, 그 과정을 '수기'라는 형식을 통한 소설을 통해 우리도 함께 가고 있다.

 

소설은 하리 할러의 수기라는 제목 밑에 '미친 사람만 볼 것'이라는 작은 제목을 달아놓고 있다. 그리고 할러가 들어가는 마술 극장은 미친 사람만 입장 가능하고 입장료로 이성을 지불할 것이라고 되어 있다.

 

미친다는 것, 수많은 자아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자아를 볼 수 있는 사람은 현실이 변하지 않는 고정된 하나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가 겹쳐져 있는 곳임을 깨닫는 사람, 그래서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지만 그 고통도 웃음으로 떨쳐낼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소설 도입부에 편집자의 말에서 (이것 역시 소설의 일부다. 소설을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하는 장치인 것이다) 하리 할러를 이렇게 평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소설을 통해서 이런 하리 할러를 만나고, 그 할러가 우리들 중 한 사람임을 인식하게 된다.

 

  할러는 두 시대 사이에 끼여 있는 자였고, 일체의 안정감과 순수함을 상실한 자였다. 인간의 삶이 지닌 모든 문제를 자신의 개인적인 고통과 지옥으로 승화시켜 체험하는 것 - 이것이 그의 숙명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의 수기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의미는 바로 이 점에 있다. (36쪽)

 

자, 할러의 수기를 따라가 보자. 나는 어떤 존재인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내 안에 있는 이리를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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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명료한 시다. 시에 숨겨져 있는 함축적 의미들을 찾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감정을 거의 직설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물론 완전히 직설적이지는 않다.

 

  소위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것이 있으니, 그런 존재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이 객관적 상관물이 지닌 의미를 너무도 쉽게 알아챌 수가 있다.

 

  그래, 어려울 필요가 없다. 그런데 좀 아쉽다. 시란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는 것. 또는 말을 줄임으로써 더 많은 말을 하는 것이라면, '난 네가 좋아'라는 말을 직설적으로 내어보이기보다는 다른 표현을 통해서 제 감정을 드러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읽기 쉬운 시는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올 수 있다. 시가 너무 무거우면 우리에게서 멀어진다. 가뜩이나 삶이 무거운데 시까지 무거우면 그냥 쓰러져 버릴 수도 있다.

 

시를 읽으며 마음이 충만해져 오히려 더 가벼워진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시인의 감성이 잘 드러나 있는 시들. 아버지에 대한, 형에 대한,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시들도 많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을 다양하게 드러낸 시들도 있다. 그럼에도 이 한 시. '어른이 된다는 건'을 인용하고 싶어졌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른이 된다는 건

상처를 입어도

모른 척 덮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

 

곯은 상처가 끝내 터져

아픔에 신음해도

다른 사람들도 버티고 산다며

끝내 외면하는 일

 

철이 든다는 것이

아플 때 소리 내지 말라는 의미란 걸

진작 알았더라면

 

난 좀 더 늦게 철이 들었을 텐데

 

김지훈, 아버지도 나를 슬퍼했다. 꿈공장. 2019년. 55쪽.

 

자신의 아픔을 감내할 수 있을 때 그때 어른이 된다. 그게 어른이다. 자신의 아픔을 참아낸다는 것, 그것은 다른 존재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고, 내가 세계의 일부임을 깨닫게 될 때 어른이 된다.

 

하여 나만이 아니라 남들을 볼 수 있는, 남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그런 상태가 되는 존재, 그것이 어른이다.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힘듦을 감내한다는 얘기니까.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생물학적인 성장이 아니다. 정신적인 성숙이다. 그게 바로 어른이다.

 

그런 어른이 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국민들을 대변하겠다고 나온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보라. 그들은 자신이 입은 조그마한 상처에도 과장된 신음, 비명을 내지른다. 그러고는 남들이 받은 상처를 모르쇠한다.

 

아니 다른 사람의 상처를 들쑤시기도 한다. 그래 놓고 자신들이 선량(選良)이 되겠다고 한다. 전혀 양호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이 시를 읽히고 싶다. '어른이 된다는 건' 바로 이런 거라고.

 

당신들은 어른이 아니라고. 육체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자신의 몸에 입혔다고 어른이 아니라고. 어른은 이렇게 자신의 아픔을 참아내고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그것을 보듬어줄 수 있는 존재라고. 그게 어른이라고. 그런 사람이 우리 대표가 되어야 한다고.

 

어른을 만나고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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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존 버거 지음, 김우룡 옮김 / 열화당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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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존재들에 대한 깊은 통찰. 글로 쓴 사진이란 책을 읽으며 이렇게 주의 깊게 주변을 보는 모습에 감탄한다.

 

그것도 주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가면서,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 다른 존재들에 대해서 한없는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글로 남겼다.

 

처음에 이 책 제목을 들었을 때 사진이 하나 있고, 그 사진에 관한 글이 펼쳐질 줄 알았다. 글로 쓴 사진이란 제목을 그렇게 받아들였는데, 굳이 사진이 있을 필요가 없다.

 

읽으면서 장면이 머릿속에 자연스레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것도 칼라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흑백으로 떠오른다. 흑백, 무언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그런 색조다.

 

존 버거의 글이 그런 흑백 사진을 연상시키고, 우리들 삶에서 주인공이 되는 사람들보다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자기 생활을 해나가는 사람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글을 읽다가 아, 이런 의미로 이게 생겼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지하철 역에 있는 횟대 같은 의자였다.

 

유모차의 여인이란 글에 나오는 말인데 우리나라 서울 지하철 7호선에서 보게 된 의자 비슷한 것, 그것을 생각나게 하는 글이었다.

 

런던 지하철역에 새로운 설비가 들어섰다. 승객이 앉아서 기다리던 벤치들을 없애고 대신 비스듬히 서서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일종의 횟대 모양의 버팀대를 설치한 것이다. 노숙자들이 더 이상 벤치에 누워 잠들 수 없도록 한 탁월한 구상이었다. (34쪽)

 

설마 우리나라도? 그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이런 의심이 드는 것은 공원 벤치를 구획한 칸막이가 도처에 있는데, 이것이 노숙자들이 누워 잠들지 못하게 하려고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노숙자들의 건강을 염려해서? 아니면 도시의 미관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해도 자꾸만 아닌 쪽으로 가는 이유는?

 

내가 그냥 지나쳐가던 것에 대해서도 존 버거는 주의 깊게 살핀다. 그것도 주류가 되지 못한 또는 주류가 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그래서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세상은 단 하나로 구성되어 있지 않으니.

 

이 책에서 또 한 구절을 인용하고 싶어진다. 우리들 얼굴. 그 얼굴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한다면.. 물론 사람 나이 40정도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이븐 알 아라비(이슬람 신비주의자)가 했다는 말인데..

 

"내게는 이제까지 살았고 앞으로 살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아담의 때로부터 세상 끝날 때까지의 얼굴이, 또렷이 보인다." (113쪽)

 

우리 얼굴에 이렇게 인류의 얼굴이 겹쳐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한다면, 그 얼굴이 바로 자신임을, 그냥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와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함부로 행동할 수 있겠는지... 버거의 글을 읽으며 생각한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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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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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정상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정상이라는 개념보다는 언어다. 바로 그 사회에 통용되고 있는 언어가 그 사회를 지배하는 사람들의 언어라는 것. 그래서 공자도 정명(正名)이라고 해서 올바른 이름을 써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경쟁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 경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불행에 빠짐에도 불구하고, 경쟁이 없는 사회를 상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는 독일은 열번(텐샷10 Shot)의 기회가 있는 사회인데 우리나라는 한번(원샷 1Shot)의 기회만 있는 사회라는 말이 나온다.

 

한번의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우월감을, 한번의 경쟁에서 진 사람은 좌절감을... 세상에 어렸을 때 한번 본 시험으로 일생이 결정되는 그런 승자독식사회라니... 경쟁을 내면화 하고 소비중심사회로 가면서 인권 감수성은 부재하고, 권위주의가 판치는 사회가 되었다고 우리 사회를 진단하고 있는데...

 

진단은 명쾌하다. 우리가 봐야 할 거울도 제시하고 있다. 바로 독일이다. 독일에도 단점이 많지만, 그래서 고쳐야 할 점도 많지만 적어도 지금 우리 처지에서는 배워야 할 점이 더 많다.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거쳤다는 점에서도.

 

우리는 우리를 약소국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김누리 교수가 우리는 큰나라라고 하는 것에 놀랐다. 이렇게 우리나라를 모르고 있었나 싶기도 하고.

 

'30-50클럽'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 말도 처음 들어봤는데...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이상, 인구가 5천만 명 이상인 나라들을 '30-50 클럽' 국가라고 부른다고 한다. (25쪽 참조) 세계에 단 일곱 나라만이 있다고 하는데,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우리나라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2019년에 이 그룹에 들어갔다고 하니, 큰나라라고 할 수 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자꾸만 약한 나라, 작은 나라라고 해서 과감한 정책을 펼치려고 하지 않는다. 이상하게 움츠리기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인 김누리는 이를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충분히 독일과 같은 정책을 펼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역사적으로는 우리는 68혁명을 겪지 못했고, 정치인들은 보수와 수구의 양대 구조로만 독식되어 있으며 분단으로 인한 냉전체제를 들 수 있다고 한다.

 

독일 총리인 메르켈이 독일정치 지형에서 보수에 해당하는데 메르켈의 정책을 우리나라 정치에 대입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보다도 훨씬 앞서가고 있다는 말, 민주당은 메르켈 정책에서 보면 보수에서도 심한 보수에 해당한다는 말.

 

우리나라 국회는 이러한 수구와 보수가 90%를 넘는다는, 한마디로 독식되어 있다는, 그래서 복지정책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한다. 또한 이러한 국회의 모습과 더불어 이 말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국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성이 아니라 대표성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세대 대표성입니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불과 0.6퍼센트가 대의되고 있다고 (97쪽), 또 세대 대표성 못지 않게 왜곡되어 있는 것이 직능 대표성입니다라고 (97쪽) 하고 있다.

 

결국 국회는 전문성이라는 이름만 앞세우고 정작 대의해야 할 국민들을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이것이 정상적인 모습인 양 착각하고 지내왔다는 것. 독일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우리는 준연동형, 그것도 심하게 왜곡된 선거 형태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으니. 

 

읽으면서 명쾌한 진단에 놀랄 때가 많다. 그리고 이렇게 현실을 직시해야지만 고칠 수 있음을,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정상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불행 속에 빠져 그 불행이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사실 그 불행은 당연하지 않다는 것.

 

불행이 당연하지 않고 우리 역시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그런 거울이 바로 앞에 있지 않냐고, 거울을 보라고. 그리고 자신을 보라고. 행동하라고. 우리를 대표할 수 있는 국회의원, 또 경쟁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라고.

 

하여 저자 김누리는 진보란 정치적 좌우 개념을 넘어서 보다 넓은 의미에서 '고통과 억압에 대한 민감성'이라고 정의(137쪽)한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 진보다. 고통과 억압받는 사람이 없는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 그런 정책들. 그들을 보듬어 주고 함께 할 수 있는 정당들. 그런 정당이 바로 진보다. 말만 앞세우는 사람, 정당들이 아니라.

 

이 책에 나오는 질문을 하자. 한국 남성으로 권위적인 학교 교육을 받고, 3년이라는 기간을 군대에 다녀온 김누리의 질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12년 동안 교육을 받고, 3년 동안 군대를 갔다 온 저 같은 남성이 '정상적인 인간'이 되는 게 가능한가? 제 경험으로는 불가능합니다.(139쪽)

 

이 말을 부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슨 소리냐고? 교육은 민주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고, 군대는 국가를 지키기 위한 의무 활동인데 그런 과정을 거친 사람이 어떻게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냐고?

 

여기서 정상적인 인간이 되는 게 불가능하다는 답은, 학교에서 몸에 익힌 권위주의, 경쟁,승자독식 등과 군대에서 익힌 병영문화 -상명하복이라는 절대 복종, 일사분란을 강조하는 전체주의 등-가 몸에 밴 사람이 인권감수성을 지니고 강한 자아를 지니면서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기에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로 해석을 할 수 있다.

 

자연스레 몸에 배어야 할 인권감수성,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 등을 의식적으로 다시 익혀야 한다는 것, 그것이 어떻게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왜곡되어 있다는 말인데, 단지 비판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비판이다.

 

불행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으로 교육개혁을 해야 하고, 남북간에 평화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 여기에 생활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이것들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또 그런 사례를 우리는 독일에서 볼 수 있다는 것. 그 사례를 참조해서 우리 현실에 맞게 적용해서 우리 후손들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그것을 다음 세대에게 미룰 수 없다. 그러기엔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이 너무 크다.

 

이 책은 그 점을 깨우쳐 주고 있다. 제목을 반복하자.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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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0 09: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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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0 09: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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