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 삶을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
김성우.엄기호 지음 / 따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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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유튜브와 책을 함께 놓고, 유튜브가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라고 묻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나이 든 사람들도 유튜브에 많이 접속하고 있다. 진보나 보수를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회계층, 취미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또한 전문분야에서도 유튜브는 책이 지니고 있던 자리를 넘보고, 또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런 제목이 나올 수밖에.

 

유튜브와 책은 정보와 오락 등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그렇지만 유튜브는 영상매체에 들어가고 책은 인쇄매체에 들어가니 둘이 같은 정보를 전달하더라도 방식에서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책이 좀더 고답적이라면 유튜브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4차산업혁명 시대에 책의 위치를 대신할 수 있는 강력한 매체이기도 하다. 신선하기도 하고, 짧고 재미있고 또 무엇보다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유튜브는 교육분야에도 진출해 많은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교육은 책을 통해라는 말이 안 통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있다. 그러니 유튜브와 책이라는 두 매체의 장점과 단점을 이야기하고, 앞으로의 세대에서는 어떤 매체가 대세를 이룰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라는 착각을 하게 하는 제목이다.

 

그런데 읽다보니 유튜브든 책이든 어떤 특정 매체의 장점을 들고, 그 매체들이 앞으로의 세계를 이끌어갈 거라는 내용은 없다. 오히려 책 제목 밑에 색깔을 달리해서 붙인 말이 이 책의 내용을 더 잘 정리해주고 있다.

 

삶의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

 

리터러시란 말을 정의하기가 쉽지 않으니, 예전에는 문식력이라고 했다는데 요즘은 문해력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이 말도 좀 어색하다 싶을 땐 그냥 리터러시라고 하는데, 여기서 리터러시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과연 그 말의 뜻에 맞게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리터러시란 단지 말의 뜻을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바로 우리들 삶이 리터러시인 것이다. 그러므로 앎을 위한 읽기가 아니라 삶을 위한 읽기고, 단지 리터러시에는 글자로 표현된 인쇄매체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 삶에는 다양한 표현 방법이 있고, 거기에 맞는 다양한 매체들이 있기에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말이 리터러시다. 이것을 우리말로 멋지게 바꾼다면 더 좋겠지만, 그 지난하고 오랜 세월을 용어 정립에 쓰지 않고 있으니 그것도 문제다. 적어도 우리가 아, 그런 의미겠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는 용어로 바꾸었으면 좋겠는데.. 그나마 문해력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으니 뭐,,,

 

리터러시가 왜 중요한가? 그것은 우리가 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독립된 개체이면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이기도 하다. 사회를 벗어나 홀로 살아갈 수 없기에, 혼자 있어도 이미 내 주위에는 다양한 존재들이 함께 있기에 리터러시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리터러시는 나와 남을 잇는 다리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엄기호와 김성우는 리터러시를 바벨탑이 되어서는 안 되고, 다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벨탑은 자신들의 언어에 갇혀 서로 소통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고 보고, 다리는 다른 존재들이 소통하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리터러시가 중요한 이유는 나만의 벽을 쌓고 그 안에 갇혀 지내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놓아 서로 교류를 하면서 살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특히 리터러시가 다리가 되어야 한다는 부분을 읽으며 정현종 시인의 이란 시가 떠올랐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아주 짧은 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러나 그 섬은 보이지 않는다. 그냥 찾아지지 않는다. 타인을 타인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빈 공간이 보인다. 그 빈 공간이 단지 텅 빈 공간이 아니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공동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이것이다. 다리의 역할은. 그런 곳으로 서로를 가게 만드는 것. 그래서 리터러시는 다룸이라고 한다. 내가 부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루는 것. 즉 매체에 따른 표현들을 이해하고 그것들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다룸이다. 그렇다면 다룸이 있기 위해서는 다름이 있어야 한다.

 

다름을 인정해야 다룸으로 갈 수 있다. 나는 너와 다른 존재라는 것, 너는 나와 다른 존재라는 것, 그러나 너와 나는 모두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 여기서 리터러시는 윤리의 문제로 넘어간다. 이해한다는 것은 공감한다는 것과 다르다. 너에게 전적으로 내 마음을 넘기는 것이 공감이라면, 이 공감에서는 다름이 있을 수가 없다. 그냥 하나됨이다. 여기에는 어떤 이해도 없다. 그냥 그렇게 존재하는 것, 행동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이해는 다름에서 시작한다. 다름인데 그것 나름대로 존재 의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윤리의 핵심이다. 나와 같은 사람만 있다면 윤리는 필요 없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좋지 않은 것이든 그냥 하나일 뿐이니까.

 

윤리는 하나가 아님을 인식하는 순간 나올 수밖에 없다. 하나가 아닌데 함께 해야 할 때 서로가 소통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 이것이 바로 윤리다. 이런 윤리 속에서 표현과 이해가 일어나는 것이다. 하여 이 책은 표현과 이해를 우리의 삶과 관련지어야 한다는 쪽으로 이야기한다.

 

바로 삶을 위한 리터러시여야 한다고 한다. 이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그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나아가 타인의 세계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윤리적 주체가 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191)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리터러시의 정의에서 매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유튜브든 책이든 또는 말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이해에서 더 나아가 다름을 이해하고 그것을 다루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즉 앎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제목에서 말하는 것보다는 멀티리터러시라고 말을 하는데 그 말이 더 어울린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데,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고, 그 섬을 발견하고 그 섬에서 소통하기 위해서 나아가는 다리를 만드는 매체는 다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다리가 크고 넓고 튼튼한 다리여도 되지만 왠지 내게 리터러시란 징검다리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만드는 많은 물량과 노력이 드는 다리가 아니라 내가 혼자 상대방에게 다가가기 위해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놓는 징검다리. 상대도 나와 마찬가지로 이 징검다리를 놓고 온다. 그래서 서로가 노력한 결과로 어느 한 지점에서 만나다. 소통하는 장소. 여기까지 가는데 필요한 것이 바로 리터러시고, 징검다리로 비유하자면 징검돌에 다양한 것들이 쓰일 수 있듯이 매체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 어떤 특정한 매체가 우위에 서는 시대를 상상하지는 말자. 그냥 우리가 어떤 매체든 다른 존재와 만나기 위해 나아가는 징검돌로 매체들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책이 끝나가는 부분에 김성우가 리터러시에 필요한 요소를 일곱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조망, 일상, 반복, 관계 윤리, 교차, 호흡 (262-270) 이 말들이 의미하는 것은 해당 쪽을 보면 되는데, 중요한 것은 특정한 매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가 배운다는 것을 이야기할 때 꼭 들어야 할 요소들이 바로 이 일곱 가지임을 생각하게 한다.

 

김성우의 정리에 이어 엄기호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삶을 위한 리터러시란 좋은 삶을 위한 리터러시입니다. ‘옳음이라는 이름으로 타자의 삶을 억압하는 리터러시가 아니에요. ‘좋은 삶을 생각하도록 모두를 초대하는 것이 삶의 리터러시입니다. 이런 점에서 리터러시는 모두를 해방하고 자유롭게 하며, 그 자유로운 사람들이 서로서로 다리를 놓으면서 그것이 바로 좋은 삶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 (277)이라 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리터러시 부재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대방을 칼로 무 썰 듯이 싹둑 잘라버리는 표현들은 결코 리터러시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오만이다. 리터러시의 부재다. 그러니 지금 우리 사회는 리터러시를 회복하는 일이 시급할지도 모른다.

 

내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다른 존재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자세를 지니는 것. 여기서 리터러시는 출발한다. 내 말이 옳다가 아니라 네 말을 들어 보자로 시작할 수 있는 것, 그런 다름을 다룸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것. 그런 리터러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어서, 이 책은 읽기(리터러시)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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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대기 - 택배 상자 하나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 보리 만화밥 9
이종철 지음 / 보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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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에서 상하차 작업을 까대기라고 한다고 한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까대기'는 '벽이나 담 따위에 임시로 덧붙여 만든 허술한 건조물'이란 뜻만 나와 있다. 이 책에는 주석을 '가대기'라고 달아놓았다. 뜻은 '창고나 부두 따위에서, 인부들이 쌀가마니 따위의 무거운 짐을 갈고리로 찍어 당겨서 어깨에 메고 나르는 일. 또는 그 짐'이라고 한다.

 

택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까대기]라고 발음하는 것은 가대기를 세게 발음하고, 사람들은 발음 그대로 '까대기'라고 한다고 할 수 있다.

 

택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일을 아르바이트를 한 만화작가의 경험을 중심으로 그린 만화가 이 책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택배회사에서 까대기 일을 하는 만화 작가. 처음에는 오전에만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만화 작업을 하려는 생각으로, 그것도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서 시급이 세다고 해서 한 일인데... 쉴 틈도 없이 계속 짐을 내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아무런 생각없이 집에서 받아보던 택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데, 물류창고에서 택배를 내기로 올리는 일말고도 택배기사들 역시 극한직업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인데... 내 손 안까지 오는 이런 물품들에 수많은 사람들의 땀이 배어 있음을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일년 내내 일감이 떨어지지 않고 하루에도 수많은 물품들을 내리고 올리고 배달하고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몸만 상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꽤나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택배 물품에 이상이 생겼을 때 항의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손해 배상까지도 이들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 여름에 더운데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해도 이들이 쉴 공간이 별로 없고, 겨울에도 혹독한 추위에도 몸을 녹일 공간도 마땅치 않은 현실. 그렇다고 여유있게 일을 하냐 하면 잠시 쉴 틈도 없이 기계처러, 마치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기계의 한 부속품처러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이들이 받아가는 임금은 최저생계비를 조금 넘는 돈밖에 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해도 생활이 나아지기는커녕 현상 유지하기도 힘든 상황.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고, 또 영세 택배업체 역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

 

다른 사람의 편리를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힘들게 일을 할 수밖에 없음을, 이들에 대한 대우가 그다지 좋지 않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이 책 끝부분 269쪽에 있는 주인공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정말로 이렇게 겉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사람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생계 걱정을 하지 않고 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한다.

 

대사만 옮긴다.

 

'주 6일 근무에 하루12시간 이상 일하는 것은 기본이더라. 난 그렇게 일하면서 살면 어느 정도 여유 있게 지낼 거라 생각했지.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 그렇게 해야 겨우 먹고 살더라고.'

 

'사람 값이 싸도 너무 싼 것 같아. 위태롭기도 하고. 몸이라도 망가지면 끝이니까.'

 

'조금 덜 일하고 조금 더 벌어 가면 좋겠다. 아프고 다치면 나가라, 네가 책임져라가 아니라 쉬어라, 걱정 마라 하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

 

'당연한 얘기면서 어려운 얘기지. 그 사람들이나 우리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하는 만화다. 함께 보고 생각하면 좋을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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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체크.당통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9
게오르그 뷔히너 지음, 홍성광 옮김 / 민음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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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히너의 희곡 작품집이다. 약력을 보니 1813년에 태어나 1837년에 세상을 떴다. 겨우 24세. 그런데도 그는 지금도 우리에게 읽히는 작품을 남겼다. 아무리 그때라 해도 지금으로 따지면 겨우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아니면 졸업을 유예하고 대학에 남아 있거나 또는 취업이 되지 않아 대학원에 진학해 있는 경우가 많은 나이다.

 

그만큼 우리들이 세상에서 자리잡는데 시일이 뒤로 미뤄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명이 배 이상 늘어났으니, 조금 늦어도 상관은 없겠다.

 

병에 걸려 일찍 세상을 떴는데,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어떤 작품을 남겼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지금도 읽히는 작품을 남겼으니...

 

<보이체크>란 작품은 미완성이라고 한다. 질투에 눈이 멀어 아내(정부)를 죽인 보이체크 이야기. 그런데 질투에 눈이 멀기 전에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을 온전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무슨 실험대상처럼 여기는 사람들. 그런 사회에서 제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를 생각해야 한다. 결국 사람들의 심성이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그 개인의 성향이기도 하겠지만 사회 분위기나 또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는 일은 삼가야겠다. <당통의 죽음>은 프랑스 혁명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이 작품은 완결된 작품이고, 당통 반대편에 서 있는 인물로 로베스피에르가 나온다. 우리가 배운 자코뱅파의 지도자.

 

<당통의 죽음>에서 생각할거리는 바로 혁명에 대한 것이다. 혁명은 개인의 윤리만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혁명이 왜 필요한가? 그것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결국 혁명은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그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당통이 변절자인지 아니면 희생양인지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지 모른다. 그런 역사적인 평가를 넘어서 이 희곡만 가지고 판단하면 당통의 입장이 이해가 된다. 

 

혁명이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코뱅파는 계속 피를 요구한다. 반혁명 분자는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혁명세력 내부에서도 숙청의 바람이 분다. 정권을 잡지 않으면 단두대에 오르게 된다.

 

민중들은 여전히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으며 혁명을 일으킨 자들 내부에서는 권력다툼이 한창이다. 혁명에 대해서 서로 다른 입장이 되고 패배한 쪽은 단두대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혁명일까? 혁명의 순간에 피를 부르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면, 혁명 이후에는 그 피를 더이상 흘리지 않게 해야 하지 않을까? 지속적으로 피를 부르는 혁명을 혁명이라 할 수 있을까?

 

혁명이 성공한 사회에서 다시 혁명을 지속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피를 필요로 한다면 그런 혁명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인간의 감정을 도외시하고 윤리만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사는 사회가 과연 행복한 사회일까? 이 희곡에는 무결점 도덕주의자 로베스피에르가 나온다. 그는 도덕으로 사회를 지배하려 한다. 그런데 사회가 도덕만으로 유지될까?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 요소는 바로 빵 아닌가.

 

빵이 충족되면서 동시에 장미도 충족되어야 한다.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게 하는데 도덕이 사람들 내면에 자리잡아야 하며, 최소한의 법률로써 규제가 되어야 한다. 먹을거리와 문화, 그리고 도덕과 법.

 

사회를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요소이지만, 법만을 앞세워서도 도덕만을 앞세워서도 안 된다. 공자 역시 도덕을 중시했지만 관용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덕치(德治)가 되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진시황은 법가를 받아들여 중국을 통일했지만, 그 이후에 다시 중국을 통일한 한나라는 법가가 아니라 유가를 받아들인다. 혁명이 성공하기까지는 법가가 필요할지 몰라도 사회를 유지하는데는 유가가 필요한 것이다. 즉 법치보다는 덕치가 더 사회를 지속되게 할 수 있다.

 

철저한 윤리국가는 사람들 숨통을 막는다. 사람들을 견디게 할 수 없다. 이런 철저한 윤리는 법의 엄정한 사용을 부른다. 일탈은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일탈이 허용되었을 경우에 자유롭다고 느끼며 살아간다.

 

조화를 이루고 서로 평화롭게 사는 마을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산다. 도덕군자도, 법률가도,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도, 또 마을에서 지탄을 받는 사람도. 그 어떤 사람을 매몰차게 쫓아내거나 마을에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마을의 조화는 깨지고 만다. 사회도 나라도 마찬가지다. 범위를 넓혀서 우주로 확장해도 마찬가지다.

 

다양성. 어느 하나로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향으로 발산하는 것. 그것이 혁명이 추구해야 할 지향점이다. 그런데 <당통의 죽음>을 보면 그렇지 않다. 혁명이 일어난 뒤 하나로 수렴하려고만 한다. 그러니 죽음을 부를 수밖에.

 

수많은 죽음으로 사회가 계속 지탱할 수는 없다. 희곡은 정신이 이상해진 여인이 끌려가는 것으로 끝나지만 프랑스 혁명은 로베스피에르의 처형으로, 다시 왕정으로 되돌아가는 쪽으로 진행된다.

 

바로 다양성, 관용이 부족한 혁명 정부가 초래한 일이다. 하여 뷔히너의 <당통의 죽음>은 혁명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지식인들, 정치인들의 생각 속에 갇힌 혁명이 아니라 민중의 삶이 나아지는, 그리고 다양한 삶들이 인정되고 서로 조화를 이루는 그런 혁명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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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 - 지구를 살리는 어느 가족 이야기
그레타 툰베리 외 지음, 고영아 옮김 / 책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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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 그레타 툰베리가 쓴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읽다보면 그레타 툰베리가 쓴 책이 아니라 그레타의 엄마가 쓴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엄마인 말레나 에른만이 주요 화자로 나오고, 간간이 그레타의 말이나 편지가 실려 있다. 여기에 동생인 베아타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고, 함께 기후위기에 대응해가는 남편 스반테 툰베리 이야기도 나온다.

 

그레타 툰베리가 아스퍼거 증후군에 속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은 있지만, 어느 정도인지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서 그레타의 상황을 조금은 더 잘 알게 되었다.

 

스웨덴은 복지국가다. 선진국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모델로 생각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스웨덴도 한계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복지국가라고 하는 스웨덴이 탄소 배출량이 세계에서 여덟번째로 많다고 한다.(143쪽)

 

이 책을 읽다보면 단지 탄소배출량 뿐만 아니라 교육에도 문제가 있고, 또 정상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기에는 우리나라보다야 편하겠지만 이곳도 역시 만만치 않은 곳임을 알게 된다.

 

물론 이는 그레타의 주장이다. 스웨덴 정부는 이것보다 탄소배출량이 적다고 발표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에 의하면 정부 발표에는 문제가 많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절반 이상이 통계에는 아예 포함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 국제선을 이용하는 비행기 여행은 통계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외국에서 물품을 수입하는 화물선 운행도 통계에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는 국내의 적절한 임금을 피하기 위해서 수많은 제품의 생산 공장을 임금이 싼 나라에 세웠다. 그리고 그에 따른 영향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꽤 많이 감축되었다. (265쪽)

 

우리가 복지국가라고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스웨덴도 이 정도인데 아예 대놓고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한 트럼프의 미국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 무서운 속도로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중국. 친환경이라는 말을 하지만 성장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기후위기에 대해서 이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나가는 듯이 언급하고 있을 뿐, 큰 비중을 두고 방송을 하거나 기사를 쓰는 언론이 별로 없다. 이 책에서 그레타가 지적한 스웨덴 언론들처럼.

 

그렇게 지내다 보면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결국은 우리가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남은 시간은?

 

파리기후협정에서 채택한 섭씨 2도 목표를 달성해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엄청난 재난의 연쇄반응을 막거나 그렇게 하지 못하거나 둘 중의 하나 ... UN의 공식적인 기록에 의하면 지금 이 순간 남은 시간은 정확히 18년 157일 13시간 33분 16초다 (188-189쪽)

 

이 책이 2018년에 쓰였으니까 일년 정도가 더 지나간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데, 기후위기에 대해서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과학기술의 힘을 믿는 사람이 많다. 그 과학기술의 힘으로 지금의 기후위기를 불러왔음에도.

 

이렇게 이 책은 기후위기에 대응하자는 내용이 많이 들어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내용과 더불어 그레타 툰베리 가족의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그레타 동생인 베아타 역시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없는 상태에 있으며, 소리에 굉장히 민감해서 어떤 소리를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뒤에보면 '미소포니에'라는 증상이라고도 한다는데... 여전히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모르는 상태라고 한다.

 

그레타 역시 아스퍼거 증후군에 속한다. 그래서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그레타의 엄마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들이 기후위기에 더 민감한 것은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이들은 남들보다 훨씬 예민한 감각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런 감각으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네 가족이 모두 기후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스스로 실천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비행기 안 타기다. 현대 교통수단의 총아인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몇 시간이면 갈 거리를 몇날 며칠에 걸쳐 가야 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비행기에서 내뿜는 이산화탄소는 열차에 비해 너무도 엄청나서 비행기를 타지 않는 것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행동으로 꼭 필요하다고 한다.

 

이렇게 비행기 타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을, 또 이들은 자연스레 채식으로 가게 되고 페미니즘이나 인권운동에도 역시 공감할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통해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우리가 지금 나서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특히 왜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를 위한 등교거부를 했는지를 알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레타 툰베리 자신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레타의 민감성은 지구와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민감성을 지닌 사람으로 인해 우리는 기후위기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다. 단지 생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까기 나아가야 하는데... 내 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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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세트 - 전4권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김홍모 외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 창비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헌법 전문에 나오는 민주화 운동은 4.19다. 아직 5.18과 6월 민주화 운동은 아직 헌법 전문에 포함되지 않았다. 4.3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5.18에 대해서는 여전히 악의적 중상이 횡행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니, 지금 어느 정도 민주화를 이룬 시점에서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다. 헬기 사격에 관한 진실이 명확히 밝혀지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에서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을 만화로 기획하고 출판했다. 민주화 운동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 좀더 다가가기 쉬운 방법은 없을까? 그런 고민으로 시작된 작업이 꼬박 2년이 걸렸습니다. 그저 만화라는 양식만 차용한 것이 아니라, 만화작가들의 시선으로 본 민주화운동이야기입니다'(4쪽)라고 책을 낸 취지를 말하고 있다.

 

4명의 만화가가 참여했는데... 김홍모 작가는 제주 4.3을, 윤태호 작가는 4.19를, 마영신 작가는 5.18을, 유승하 작가는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을 주제로 참여 했다.

 

  제목을 보면 제주 4.3은 '빗창'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제주 해녀를 주인공으로 하여 일제시대에 해녀투쟁과 해방후 4.3을 연결지어 표현했다. '빗창'은 해녀들이 전복을 딸 때 쓰는 도구라고 한다. 해방된 조국에서도 억압받고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슬프게 전개되고 있다.

 

  이 만화를 보면 친일파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남북 분단으로 인한 이념의 대립이 무고한 사람들을 옭아매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민주주의와 자유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가 흘렸던 피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사일구'라고 숫자가 아닌 한글로 제목을 달고 있다. 현재와 과거를 엮어서 4.19가 일어났던 시대, 그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과 지켜본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5.18은 제목에서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아무리 얘기해도'라는 제목이다. 현재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어쩌면 젊은 세대들이 매체의 영향으로 잘못된 관점을 지니게 된 경우가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얘기해도 잘못된 관점을 지니고 있으면 바꾸기가 힘들다. 확증편향이라고 자신에게 맞는 정보만을 찾아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확증편향을 공고하게 하는 매체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지금 환경에서 '아무리 얘기해도'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더더욱 이야기해야 한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 '1987 그날'이라는 제목. 박종철과 이한열이 등장한다. 만화는 1986년부터 시작한다. 상계동 철거민들과 대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이 날줄과 씨줄처럼 얽혀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촛불시위로 나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대통령을 평화적으로 탄핵하여 정권교체를 할 정도로 민주주의가 성숙하게 된 과정에는 4.3으로부터 1987년 민주화운동까지 수많은 피들이 흘렀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화라는 매체가 흥미를 유발하고 읽기를 수월하게 한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고, 또 그림이라는 매체를 통한 전달이 글로만 전달할 때보다 접근하기 편할 때도 있다.

 

읽다라는 표현과 보다라는 표현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매체를 이용하여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어서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편하게 접근할 수 있다.

 

이것보다도 읽다(보다)보면 코끝이 찡해지는 감동을 느낄 수도 있는 작품들이다.

 

자칫 잊기 쉬운 역사. 그 역사가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만화로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알려주는 이 작업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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