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늦었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을 그가 말하는 '웃음도서'로 받아들이기에는. 이 책이 나온 때는 2005년. 지금보다는 남북 관계가 좋았을 때다. 긴장에서 화해 분위기로 가던 때. 남북 교류도 어느 정도 이루어지던 때.

 

  그런데 지금은, 좋아질 것 같았던 남북관계가 다시 경색되어 버리고, 우리는 교류 단절의 시대에 살고 있다. 북한은 북한, 남한은 남한. 그래도 읽으면 참 경쾌하게 책이 넘어간다. 상황은 상황이지만 이 책을 그냥 '웃음도서'로 받아들이자.

 

  1997년 쿠웨이트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온 림 일이 서울살이를 하면서 겪은 일을 쓴 책이다. '웃음도서'라는 브랜드를 걸고 책을 썼는데, 북한에 대한 비판보다는, 서울에 살면서 자신이 겪은 일화를 중심으로 책을 서술하고 있다.

 

특히 남과 북에서 사용하는 언어 차이에 많은 주목을 하고 있는데, 생각할 것들이 제법 있다. 남과 북에서 살면서 차이를 느끼고 그것들에 대해서 쓴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은 차이보다는 비슷한 점이 더 많다는 것.

 

평양에서 살다 온 사람이 서울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 경쾌하게 펼쳐지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지금도 유효한지 모르겠지만 이 책의 수익금을 평양산원의 어린이들을 위해서 기부했다고 하니, 여러모로 좋은 일이다.

 

그는 비록 북한을 떠나왔지만 그것은 북한을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좀더 잘 살기 위해서 온 것이다. 그래서 북한에 대한 맹목적인 비판을 앞세우지 않고 서울에 살면서 겪은 일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가서 거부감이 크게 일지 않는다.

 

이렇게 그가 말한 것처럼 남북이 서로 교류를 활발하게 해서 그도 평양에서 서울살이에 대한 강연을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책 곳곳에 남북의 언어 차이를 비교해주는 장이 있어서 남북 언어 차이도 한 눈에 볼 수 있어서 좋은 책이다.

 

남과 북 정상이 만난 것이 그리 오래지 않았는데 먼 과거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갈 길이 멀다는 것.

 

그렇지만 한때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말했던 '멀다고 하면 안 되겠구나'라는 말. 평양과 서울이 멀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면 평양에 '류경 호텔'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버드나무가 많아서 평양의 이름을 '류경'이라고 한다는 것. 우리는 두음법칙을 적용하여 '유경 호텔'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두음법칙이 아닌 '원음법칙'을 사용해서 '류경 호텔'이라고 한다는 것. '류경'이라는 이름이 왜 평양에서 쓰였는지를 알게 된 수확도 있는 책이다.

 

2탄은 그렇게 가볍게만 읽을 수는 없다. 북한을 떠나오기 전에 평양에서 지낸 일들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무겁게 쓰지 않았지만 읽는 사람은 무겁게 읽을 수밖에 없다. 자기가 살던 터전을 떠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또 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에, 그것도 가족을 두고 떠나 왔기에.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북한의 실생활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된다. 저자는 그래도 평양시민으로 살았다. 그가 권력의 최상층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북한의 다른 사람들보다는 나은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북한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것. 그들도 뇌물이 있고, 불륜이 있고, 술도 마시며, 친구들과 음식점에서 함께 하는 시간도 있다는 것. 그것이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고 해도.

 

이런 저런 점을 살펴도 이 책들은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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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폭풍의 시대 - 치명적 신종, 변종 바이러스가 지배할 인류의 미래와 생존 전략
네이선 울프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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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이미 알고 있었다. 모두는 아니지만, 우리 인류는 앞으로 우리에게 판데믹(팬데믹이라고도 한다)이 여러 차례 올 거라는 사실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냥 당장 닥친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기에 들어가는 돈의 몇 십분의 일도 안 되는 투자만 하고 있었을 뿐.

 

그 결과가 무엇인가? 현재 코로나19로 전세계가 고통받고 있다. 판데믹이 올 거라고, 그에 대해서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결과가 지금 세계가 겪고 있는 비극이다.

 

판팬데믹을 겪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정신차리지 못하고 있다. 잠시 통제가 풀리니 수천 명이 모여서 몸을 부딪치며 즐기는 현실, 한 나라의 지도자라는 사람이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코로나19를 말하는 모습. 마스크가 중요함에 대해서는 더이상 논란거리도 되지 않는데도 여전히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어떤 대통령. 이런 사람들이 정치를 하면 판데믹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인간이 겪지 못한 질병이 나타난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시작한다. 그러다 급속도로 퍼져나간다. 사람들은 공포에 빠지고, 정치권은 어떤 대응책도 내놓지 못한다. 그들이 내놓을 수 있는 대책이란 기껏해야 봉쇄다. 격리과 봉쇄. 그러나 헌신적인 의료인들이 나타난다. 의료인을 도와주는 사람들도 나타난다. 이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질병은 점차 사그러든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질병은 사라진디. 퇴치된 것이 아니라.

 

이런 공식이 되풀이 된다. 중세나 근대나 현대나 비슷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과거로부터, 실패로부터 무언가를 얻는 것이 인간 아니던가. 그런데도 우리는 기존에 겪었던 감염병들에서 무언가를 얻지 못했다. 그냥 대응방식이 좀더 구체적이고 세련되어졌을 뿐. 그 질병을 예방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또다시 판데믹을 겪고 있다.

 

판데믹이 될 수 있는 여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고 한다. 현대는. 우리들 편리한 생활이 감염병을 순식간에 퍼뜨릴 수 있는 토대가 된 것이다.

 

도로망의 확충, 교통수단의 개발, 장기이식과 수혈을 할 수 있는 의학기술, 생태계 파괴 등등이 이런 조건이다. 우리가 빨리 세계 전역으로 갈 수 있듯이, 우리들과 더불어 세균과 바이러스들도 세계 전역으로 빠른 시간 안에 퍼져 간다.

 

그리고 동물들이 살아가는 환경을 파괴하고 무분별한 동물고기 섭취로 인해 동물이 지니고 있던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들이 우리 몸에 들어온다. 이것들이 변종을 일으켜 사람 간에 전염이 되는 순간, 판데믹은 이미 일어난 것이다.

 

네이선 울프가 쓴 이 책, 2011년에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읽어도 현실과 맞아떨어진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책에서 네이선 울프는 판데믹을 예방하기 위해 기구를 조직하고 그에 대한 활동을 하고, 또 수많은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판데믹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가야할 길이 너무도 멀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했다. 이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자, 우리에게 다가올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는 이런 경로를 거쳐 판데믹을 유발할 수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들은 인간과 돼지와 조류가 동거하는 농장에서 재편성될 수 있다. 돼지는 인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받아들일 수 있고, 철따라 이동하는 철새들을 비롯하여 온갖 조류의 바이러스들도 받아들일 수 있다. 철새들은 닭과 오리 같은 가금류를 통해 직접 혹은 간접으로 돼지를 감염시킬 수 있다. 조류에서 옮겨진 새로운 바이러스가 돼지와 같은 가축의 체내에서 인간 바이러스들과 서로 영향을 미칠 때 예상되는 결과 중 하나가, 인간 바이러스의 일부와 조류 바이러스의 일부를 지닌 완전히 새로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출현이다. 이 새로운 바이러스는 자연항체로도, 그리고 과거에 유행한 인플루엔자 계통의 백신으로도 억제하기 힘들 정도로 다르다. 217쪽.

 

인간과 동물, 특히 야생 포유동물의 긴밀한 접촉에서 새로운 판데믹이 출현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상적인 예측 시스템이 완성되기 전이라도 이런 형태의 접촉을 줄이는 방향으로 우리의 행동방식을 바꿔가야 한다. 319쪽.

 

지극히 다양한 병원균들로 뒤범벅인 지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야생동물을 사냥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병원균의 출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드는 셈이다. 온 세상을 철저하게 파괴할 수 있는 병원균이 출현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위의 문제는 사냥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함게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320쪽.

 

사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 지구적 차원의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비용을 아깝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 야생동물고기가 세계인의 건강을 위협한다. 321쪽.

 

이런 문제제기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10년 동안 무엇하고 있었나 싶다. 도대체 인간은 질병과의 싸움에서 무엇을 배웠던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이 꾸준히 이야기되고 있었음에도 이렇듯 모르쇠로 일관해 오다니...

 

코로나19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미 그런 전조는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우리가 무시하고 있었을 뿐. 네이선 울프와 같은 사람이 계속 판데믹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었음에도 우리는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았을 뿐더러, 더 빨리, 더 많이 이동할 수 있는 도구들을 만들어냈고, 또 더 많은 동물들과 접촉하고 있지 않았던가. 또 너무도 많은 야생동물들의 생활터전을 파괴함으로써 그들이 인간이 살고 있는 곳으로 올 수밖에 없게 하고, 또 그들을 잡는 과정에서, 또 날것으로 먹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인간에게 없던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를 인간의 몸으로 옮겨놓지 않았던가.

 

그렇다. 코로나19에 대한 백신이 나올 것이다. 치료제도 나올 것이다. 언젠가는.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생활방식을 유지한다면 코로나19가 종식되어도 또다른 바이러스들이, 박테리아들이 우리를 판데믹으로 이끌 것이다. 그러니 감염병을 단지 치료 차원에서 접근하지 말고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존재하는 것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들이 다른 존재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도록 하는 생활방식. 그것이 필요하고, 거기에 대한 전세계적인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0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293쪽에 보면 이 책은 2011년에 나왔다고 한다. 내가 읽은 책은 2015년에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책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은 지금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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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의 인간 -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에 대한 기록 존 버거 & 장 모르 도서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차미례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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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의 50년 전에 나온 이 책이 (1973-1974년에 쓰여졌다고 하니)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에. 이렇게 세상이 변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에.

 

여기에 이 책은 출발-일-귀향이라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민 노동자들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민 노동자들이 귀향을 하더라도 그곳에서 계속 살기는 힘들어진다는 사실. 결국 그는 다시 이민 노동자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지금에도 반복되고 있음에.

 

유럽을 배경으로, 당시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유고슬리비아, 스페인, 포르투갈 사람들이, 또 다른 나라 사람들이 독일이나 스위스, 프랑스로 와 노동자로 지내게 되는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담은 존 버거의 책(사진-장 모르)이다. 그의 책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충격을 준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그렇다.

 

자본주의의 세계화에서 이는 일시적인 일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몇몇 구절들을 통해서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살펴보자.

 

'그들은 자기들의 노동을 제공하러 온다. 그들의 노동력은 기성품이다. 이제부터 그 노동력의 덕분에 생산에 이익을 얻게 될 공업화된 국가들은 그 노동력을 생성시키는 비용은 전혀 부담을 해본 적이 없다. 그뿐 아니라 중병에 걸린 이민 노동자나 너무 늙어서 일할 수 없게 된 이민 노동자를 부양하는 경비 역시 부담하지 않는다. 도시화된 국가의 경제에 관한한 이민 노동자들은 불사(不死)의 존재,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태어나지도 않으며, 양육되지도 않으며, 나이 먹지도 않으며, 지치지도 않으며, 죽지도 않는다. 그들은 단 하나의 기능 - 일하는 것 - 을 가질 뿐이다. 그들의 삶의 다른 모든 기능들은 그들의 출신 국가의 책임이다.' (64쪽)

 

섬뜩하고도 슬픈 이 구절에서 말하는 일들이 과연 먼 과거의 일인가? 지금 우리나라 이주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일이기도 하지 않는가. 그들은 개인이 아니라 이주노동자, 노동력이라는 틀에 맞춰진 존재 아닌가. 그들에 대해서 어떤 책임을 지는가. 그냥 추방해 버리면 그뿐이지 않은가. 지금도 그런데... 살기 위해서 온 그들에게 해준 것은 단지 그들 노동에 대한 임금을 지불하는 것뿐. 나머지는 아예 모르쇠를 하는 것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이민 노동자(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태도다. 이게 신자유주의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다.

 

이런 이민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부당하게 대우받는 것도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할 수가 없다. 조직화된 저항은 곧 추방으로 이어지기에 그들은 대부분 이주해 간 나라에 순응한다. 자신들의 상태가 결코 '비정상'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비정상'임을 깨닫게 된다.

 

'정상적인' 것이 완전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유일한 경우는 그 반대가 되는 행동, 즉 '비정상적'이며 '극단적'이거나 혁명적인 행동을 통해서이다. 그 정상적인 것이 이렇게 해서 그 정상성이 박탈되어 버리고 나면, 자신이 예외적인 존재라는 인간 고유의 느낌은 그 자신의 세계를 넘어서 그가 소속되어 살고 있는 역사적인 순간 전체로 확장되어 나간다.

 

그때에야 '나'는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뿐 아니라, 내가 어떤 일을 당하고 있는가까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나'는 그 '정상적인' 것들이 나 자신의 얼마만큼을 부정하거나 속박하고 있는가를 발견하게 된다. (104쪽)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이것이 바로 세계화된 자본이 추구하는 것이다.

 

'각국 정부나 다국적 기업들은 지구 전체를 염두에 두고 그들의 정책을 짜고 있으며, 일시적인 이민 노동자로부터 얻어내는 자본주의의 이득은 상당한 것이다.' (111쪽)

 

이런 자본의 간계를 파악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상상력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자신이 있는 곳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다. 그런 상상력을 통해 인간은 주어진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데... 이런 상상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것, 그것은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이 자본의 속성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틈을 발견해 내고 자신의 문제를 찾아내게 된다.

 

'사람의 시각의 지평이 얼마나 제한된 것이든간에, 그의 상상력은 경계선을 모르는 법이다. 자기 마을 밖으로 한번도 나가 본 적이 없는 한 남자라도… 저 멀리 별나라까지 닿을 수 있는 상상의 세계 전부를 창조해낼 수가 있는 것이다. 여행을 하지 않고도 사람은 세계의 다른 쪽 끝을 꿰뚫어볼 수가 있다.' (135쪽)

 

그럼에도 자기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일자리를 옮기려고 해도 어렵다. 특히 이민 노동자들에게는. 자신의 생각으로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 해도 행동으로 옮기기가 또 요청을 하더라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그만큼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삶의 지속성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때 이들은 '비정상'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노조를 결성하기도 하고, 파업을 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행동들은 개인적으로는 실패로 돌아가게 되지만 이민 노동자 전체로 보면 '정상'적인 것이라 여겼던 것들이 '비정상'이었음을 알려주는 계기로 작동한다. 이들에게는 이렇게 미래가 있는 것이다.

 

'미래를 향해서 어떤 헌납을 한다는 것은 지속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반드시 자신의 개인적인 이득의 지속성만이 아니라(그 헌납이란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는 일이 포함될 수도 있다), 자기가 믿고 있는 가치의 지속성을 말한다. 그 희생은 미래에 인정을 받고 용납되리라는 확신 속에서 지금 제공되는 것이다. 그 희생이란, 사실은 미래에까지 그 지속성이 확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어떤 전통을 향해서 이루어진다. 그 전통의 내용은 신의 뜻에 대한 종교적인 믿음, 가족의 재산에 대한 희망, 국가의 운명, 혁명의 필요성 등 여러가지로 변한다. 그러나 그 모두가 지속감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모두가 그 속에서 재확인을 구하고 있다.' (187쪽)

 

이민 노동자에게는 이주해 간 나라에서는 이런 지속감을 느끼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이주 노동자들은 지속감을 자신에게서가 아니라 가족에게서 찾는다. 가족들의 현재 행복을 위해서 그들은 일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자신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일하는 것은 미래라기보다는 현재의 가족들이 잘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지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더해서 자신과 가족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미래에 대한 기대, 그것이 지속되리라는 믿음을 지니려는 마음도 있기에 그렇게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과거에 외국으로 노동자들을 보냈지만, 이제는 외국에서 노동자들이 들어온다. 그들이 이 책에 나온 것과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이 책은 지금 우리 사회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오레 전에 나온 책이지만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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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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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제8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이다. 한 해 젊은 작가들이 어떠한 주제로 어떻게 표현을 하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는 책이다.

 

굳이 대상을 선정하지 않고 동등하게 이야기해도 될 텐데, 대상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소설이 있다. 임현이 쓴 '고두(叩頭)'. 공경하는 뜻으로 머리를 땅에 조아림이란 뜻을 지닌 이 소설은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반성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잘못은 모두 남들이 한다. 나는 그들의 잘못때문에 거기에 휩쓸렸을 뿐이다. 그렇게 책임회피를 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이 소설이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남들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지닌 이러한 태도는 사회가 발전하는데 걸림돌로 작동한다. 오로지 자기 합리화를 자행하는 인물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를 생각할 수 있다.

 

이 소설집에서 충격을 준 소설은 '눈으로 만든 사람, 호수-다른 사람, 그 여름'이다. '눈으로 만든 사람'은 심사평에서 '징그러운 소설'이라고 표현했는데, 정말 충격적이다. 어린 시절 성추행을 당한 일, 근친상간에 대한 암시 이런 것을 떠나서 한 사람의 인생을 힘들게 하는 것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일 수 있음을. 그리고 그 피해를 입은 사람이 거기서 벗어나기는 너무도 힘듦을 소설은 주인공 강윤희를 통해서 보여준다.

 

이 소설이 더욱 문제적인 것은 등장인물들을 모두 이름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 딸, 작은아버지가 아니라 이름으로 호명한다.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이름이 거의 불릴 없는 것에 비하면 소설은 가까운 가족이라도 이만큼의 거리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눈으로 만든 사람'이라니... '눈사람'이 아니라. 작가는 눈사람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소설에서 인물들은 모두 눈으로 만든 사람처럼 위태위태하다. 서로가 서로를 함껏 껴안을 수가 없다. 한껏 껴안는 순간 상대를 녹이고 만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억압과 폭력이 행해졌는지를 굳이 이름을 부르는 표현으로, 또 '눈사람'을 '눈으로 만든 사람'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생각하게 된다.

 

가장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폭력적이 될 수 있음은 '호수-다른 사람'에서 볼 수 있다. 여성들이 얼마나 피해의식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또 피해자가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친절한 남자를 보아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음을, 그 속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를 끊임없이 탐색해야 하는 여성 인물의 모습은 특이하지 않다. 지금껏 우리 사회가, 주류를 이루는 남성 문화가 여성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면서도 일관성이 없다는 둥, 심리적으로 불안해서 믿을 수 없다는 둥 하면서 여성들을 또다른 피해자로 만들어 가는 경우가 많다.

 

이 소설을 읽으면 섬뜩하다. 도대체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작가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진실은 여성들이 남성들은 생각할 수 없는 피해를 알게 모르게 입고 있으며, 그것들이 그들의 정신에 깊숙히 박혀 그들의 행동을 제약한다는 것이다.

 

정작 자신이 피해를 당할 때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는 것. 이 두 소설에 비하면 '그 여름'은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결말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

 

여성 동성애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 소설은 동성애도 이성애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굳이 동성애와 이성애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 서로에게 끌려들어가는 마음의 움직임,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그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동성애자들 역시 그들의 사랑에 이성애자와 같은 제약이 있고, 고민이 있고, 갈등이 있으며 사랑의 부침이 있음을 이 소설은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마치 첫사랑에 대한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빨려들어가는 세 소설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소설들 역시 나쁘지 않았다. 젊은 작가들, 자신들의 작품 세계를 잘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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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결되는 두 시다. '길찾기' 또는 '집찾기'라고 할 수 있는 공통점을 지닌 시. 그러고 보니 이 시집에는 '찾기'가 많다. 숨바꼭질, 숨은그림찾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직소퍼즐 등

 

  삶 자체가 찾기 아니겠는가? 삶을 찾아서 가는 여정. 그 여정은 죽음으로 끝난다. 그래서 끝나기 전까지 우리는 계속 찾을 수밖에 없다. 찾는데 어떻게 찾나? 내 발자국만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내 발자국은 이미 내가 지나온 흔적이기 때문이다. 찾기는 내가 지나온 곳이 아니라 갈 곳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어떻게? 함께 찾기에 나서는 신발을 멀리 던지면 찾을 수 있을까? 아니다. 신발을 너무 멀리 던지면 길을 잃고 만다. 시 제목처럼.

 

그렇다면 너무 멀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 발자국도 아니면 어떻게 '찾기'를 해야 하나? 자칫하면 찾지 못하고 빙빙 돌거나 제때 내리지 못한다. 그래서 내게는 이 시집 제일 앞에 있는 '시인의 말'이 바로 시다. 찾기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고 생각했지/창밖으로는 꽃들이 지나갔는데//언제까지고 계속될 듯한/한낮이 있어서//언제든 제대로 내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여전히 나는 의자에 앉아 있고/다음 정류장은 보이지도 않고'

 

그렇지만 찾아야 한다. 그런 '찾기'를 보여주는 시가 바로 '신발을 멀리 던지면 누구나 길을 잃겠지'와 '발자국을 지나다'라고 생각한다.

 

신발을 멀리 던지면 누구나 길을 잃겠지

 

저녁 강에 던져진 꽃들이

오늘, 강기슭에

낱장의 꽃잎으로 떠오르고

 

신발을 멀리 던지면 누구나 길을 잃겠지

 

모레톱에 찍힌 발자국에는

지난밤 큰 물고기를 물가까지 끌고 나온 수달이 있고

들쥐를 쫓는 너구리가 있고

황조롱이 한 마리 앉았다 날아오르고

 

나는 아직 젊어서

어지럽게 흩어진 발자국들을 꽃잎이라 불러본다

나는 조금 더 앉아 있기로 한다

 

아직도 지나가야 할 발자국이 많다고

떠오른 낯장의 꽃잎들

 

집에 가려면

더 많은 발자국들의 쇠락을 겪어야 한다

 

박진이, 신발을 멀리 던지면 누구나 길을 잃겠지. 걷는사람. 2019년. 76-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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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을 지나다

 

  돌아가야 했다 길을 잃었을 때는 가장 가까운 발자국을 찾으라고 할머니가 어두침침한 말투로 일러주었었다

 

  평생을 강 근처에서 살았기 때문일까 모래톱에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들은 생김새가 비슷했다 신발을 던졌다 그리고 딱 그만큼만 맨발에 흙을 묻히리라 마음을 먹었지만 웬일인지 나는 강으로부터 더 멀어져 있었다

 

  수달 너구리 새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가면 해가 지겠지 나는 강이었다가 꽃잎이었다가 발자국이었다가

 

  겁(怯)이라면 수백 번 수천 번 나를 지나간 겁(劫)이라 하겠다

 

박진이, 신발을 멀리 던지면 누구나 길을 잃겠지. 걷는사람. 2019년. 78쪽.

 

나 홀로 가지 못한다. 다른 존재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미 내가 갈 곳을 간 존재들. 그런 존재들의 흔적, 발자국을 따라 가면 집으로 갈 수 있다.

 

집찾기, 길찾기. 인간만의 힘으로 찾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과 함께 할 때 찾을 수 있다. 신발을 너무 멀리 던지지 말자. 주변을 살펴보자. 나와 함께 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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