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언론에서는 '사상초유'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보낸다. 최근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이 사상초유다.

 

그런데 그 사상초유가 이미 예견된 일이라는 걸 알고 있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설마 설마 하면서 그냥 넘어간 것은 아닌지.

 

코로나19. 잠잠해질 기미가 안 보인다. 백신이 나온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들이 자연의 생태계를 깨뜨린 결과 맞이한 재난이다. 인간이 초래한 재난이라고 해야 옳다. 결자해지. 두 말 하면 잔소리다.

 

문제를 일으킨 존재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이미 해답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해답을 찾아내려 하지 않는다. 아니, 알고 있으면서도 해잡을 비켜간 답을 계속 제시한다.

 

더 잃을 것이 무엇이 있다고?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의한 질병으로 고생하는 인류. 기후 위기로 종잡을 수 없는 폭염과 혹한과 폭설과 폭우를 겪고 있는 지금 현실에서도 '성장'이라는 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책이 예전에 녹색평론사에서 나왔는데, 그 책을 과연 정책입안자들이나 정책결정자들이 읽었는지 의심스럽다.

 

  이 책을 보면 성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텐데... 전혀 그렇지 않은 현실이니...

 

  그렇다면 스웨덴 청소년인 그레타 툰베리가 주장하는 것에 귀를 기울였는가?

 

  그냥 남 나라 청소년 이야기로 치부하지는 않았는가.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그레타 툰베리처럼 기후 위기에 대응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행동으로 나섰는데, 그들의 행동을 얼마나 큰 비중으로 다뤄주고 있는지... 그냥 무시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 꼭 읽어봐야 한다. 툰베리만이 아니라 그 가족들이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 아니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지구 건너편 특이한 사람들의 행동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해야 할 행동. 우리는 이미 재앙의 입구에 들어서 있는데, 그것을 지금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는 이상 기후들이 보여주고 있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이상 기후가 정상 기후가 되고 말텐데...

 

이런 기후 위기에 대해서, 아니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해서 몇십 년 전부터 꾸준히 김종철 선생이 주장해 왔는데... [녹색평론]을 통해서 그렇게 위기를 알려왔는데...

 

위기를 알리는 종은 늘 울리고 있었는데 우리가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하지 않았는지, 여전히 '성장'을 버리지 못해 '녹색'이라는 말을 앞에 붙이면서까지 '성장'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근대 문명이라는 틀에 갇혀서 생태 문명에 대해서 생각하지도 못하는 현실. 이것은 상상력의 부족에 다름 아니다. 

 

  상상력의 부족. 현실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은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지금 현실 너머를 볼 수 있는 상상력. 다른 삶을 그려볼 수 있는 상상력이다. 그런 상상력의 결핍. 우리는 교육을 통해 상상력을 죽이는 연습만 해오지 않았던가.

 

  틀에 갇혀 그 틀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을 오히려 틀 속에 가두는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는지... [녹색평론]의 말들이 허공 중에 흩어져 버린 것들이 그런 상상력의 결핍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상초유'라는 말... 이제는 진부한 수식어가 되어 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우리는 사상초유의 일들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대로 나가다간. 우리들 삶의 형태를 바꾸지 않았다간.

 

최장 장마 기간을 기록하고 있는 지금... 이런 것들이 이미 우리가 재앙의 문을 열고 한발짝 들어섰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단 생각을 한다. 그러나 늦지 않았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 행동하는 것이 가장 빠른 것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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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02년 12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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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 지구를 살리는 어느 가족 이야기
그레타 툰베리 외 지음, 고영아 옮김 / 책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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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에콜로지와 민주주의에 관한 에세이
김종철 지음 / 녹색평론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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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 1- 김종철 칼럼집
김종철 지음 / 녹색평론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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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3 - 교토의 역사 “오늘의 교토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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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교토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쯤 되는 도시. 딱 한번 가본 적이 있는 도시. 그래서 이번 답사기는 좀 친숙하다. 물론 교토를 책 한 권으로 정리할 수가 없어서 두 권으로 나눠서 서술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교토라는 도시가 지니고 있는 문화가 어찌 책 한 권으로 정리될 수 있겠는가.

 

교토에 갔을 때 놀랐던 점은 집들이 높지 않다는 점. 우리나라 어느 도시에 가도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것에 견주어 교토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교토에서 문제가 되는 건물이 현대에 건축된 교토역과 교토 타워라고 할 정도니 말이다.

 

또한 너무도 깨끗한 길거리, 그들의 질서의식에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카페를 찾기 힘들었다는 점도 그랬다. 우리나라 도시 어디를 가도 카페는 100미터 이내에서 몇 개를 찾을 수 있는데, 교토에서 좀 쉬고 싶어서 - 그날은 많이 걸었다. 다리가 무척 아파서 카페에 들어가 쉬고 싶었는데, 잘 보이지 않아 더 많이 걸었다 - 찾았는데, 간신히 찾은 카페가 아주 단촐했다. 좌석이 네 개도 채 안 되는, 그러나 체인점 이름을 달지 않고 자신들의 이름으로 운영하는 그런 모습에, 어쩌면 천년 고도라고 하는 교토에서 만날 수 있는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답사기에서도 일본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모습에 놀라는 장면이 여러번 나온다. 그들은 결코 남을 채근하지 않는다. 줄지어 관람을 해도 앞사람들이 나아가지 않으면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기다린다. 또한 작은 것에 공을 들인다 등등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 택시기사의 친절함까지.

 

이런저런 것을 떠나서 교토 시대가 되면 (교토 시대라는 말보다는 헤이안 시대와 가마쿠라 시대 정도가 걸려 있는 답사기가 이번 3권이다) 일본은 일본다운 문화를 확립한다. 그들 나름의 독창적인 문화가 만들어지고 발달해 가는 것이다.

 

그런 문화들이 지금도 남아 많은 사람들을 교토로 오게 한다. 그래서 교토 여행을 할 때 일본 역사를 알면 더 교토를 깊이 있게 여행할 수 있게 된다.

 

이 답사기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유홍준이 바라는 역사 교육이고, 문화 교육일 것이다.

 

  나는 지금 교토 답사기를 쓰면서 독자들이 은연중에 유물과 유적을 통해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익힐 수 있기 바라면서 교토 이전의 광륭사부터 시작해서 헤이안시대의 동사, 연력사, 청수사 그리고 후지와라시대의 평등원까지 서술했다. 답사기를 통해 내가 독자에게 말하고 싶은 입장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  (299쪽)

 

그래서 교토에 있는 유물을 통해 일본 역사를, 또한 일본과 관련이 있는 동아시아 역사를 알아가게 된다. 한 나라의 문화를 본다는 것은, 그 나라만의 문화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여러 나라의 문화를 함께 살핀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신사(神社)의 나라라고 하는데, 유홍준의 답사기에서는 신사에 대한 언급은 최소한에 그치고 있다. 우선은 일본 문화 속에 있는 우리 문화를 살피는 것, 또 일본 문화와 우리 문화, 동아시아 문화의 관련 양상을 살피는 것에 더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토에서도 절을 중심으로 이 답사기는 펼쳐진다.

 

일본 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이 답사기에서는 절을 중심으로 펼쳐가고 있다. 하여 단순히 절 건물의 모습이라든지, 절에 있는 문화재에 대한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하여 일본의 역사를 정리해 알려주고 있다.

 

유물을 통해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 여기에 일본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인물들에 대해서도 역시 유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가고 있다. 그것은 역사를 단순히 지식의 나열로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로, 영상으로 우리 머리 속에 담으라는 의도일 수 있다.

 

지식은 장소성을 띨 때 더 오래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성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덧글

 

2편에서와 마찬가지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

삼십삼간당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1600년부터 10년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지원 아래 대수리가 이루어졌다. (324쪽) 고 되어 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8년에 죽었으니, 그 아들 히데요리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지... 정정이 된 판본이 나왔는데, 내가 읽은 책에 그 부분이 빠진 건지, 아니면 인물들의 생몰년도 말고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그것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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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2 - 아스카.나라 아스카 들판에 백제꽃이 피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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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아스카, 나라 답사기다. 가보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가봐야지 하는 곳. 이곳에는 우리나라 백제 사람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그를 도래인 문화라고 한단다.

 

넘어온 사람들, 그 사람들이 이룩한 문화. 문화라는 것이 한 나라에만 고정되어 있지 않는다. 사람을 통해 문화는 옮겨간다. 교류가 일어난다. 문화의 우열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문화는 그렇게 흐름이고 변화다. 그런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것, 답사의 즐거움일 것이다.

 

아직도 내게는 문화유산을 읽을 능력이 없다. 더 엄밀히 말한다면 볼 능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보는 것은 아니다. 보인다는 것과 본다는 것은 수동이냐 능동이냐를 넘어서 내가 얼마나 그 문화유산에 다가가느냐에 달려 있다.

 

알면 알수록 더 잘 볼 수 있을 텐데, 보는 경지를 넘어 즐기는 경지까지 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문화유산을 보고, 또 공부해야 할까? 하지만 공부라면 벌써 어떤 장벽이 생긴다는 느낌을 받으니, 공부를 제쳐주고, 자주 보아야 한다. 자꾸 보아야 한다. 자꾸 보다보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

 

책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한번 읽었을 때 이해되지 않았던 내용이 두번, 세번 읽다보면 어느 새 내용이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던가. 문화유산도 그렇다. 자꾸, 자주, 그리고 오래동안 보아야 한다.

 

그런데 외국여행을 하면 자꾸, 자주, 오래동안 보기가 힘들다. 요즘은 한 도시에 한 달 머무는 여행도 많이들 한다지만, 그것은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들 이야기고, 대다수는 며칠만에 한 도시를 여행한다. 그러니 문화유산도 그야말로 일별할 뿐.

 

일본 아스카 지방이나 나라에 가본 적이 없는 나에게 이 책은 이 지역을 여행한다는 느낌을 준다. 답사기라기보다는 여행기로 읽는다. 그것도 일본의 고대사를 어느 정도 알게 되는 여행기. 그러니까 이 책은 내가 일본 여행, 나라, 아스카를 답사하는 답사기로 읽기보다는 나중에 그곳에 갈 때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되는 여행기로 읽는다. 그러니 이 책은 나에게 일본 문화를 자꾸, 자주, 오래동안 볼 수 있는 시발점이 된다.

 

재미있다. 일본과 우리나라가 사이가 매우 안 좋아졌지만, 그것이 언제까지고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나라에도 일본 문화가 존재하듯이, 일본에서도 우리 문화가 존재한다. 그러한 우리 문화에 대해서 유홍준은 민족적 선입견 없이 소개하고 있다.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답사기를 쓰고 있다. 이 답사기에는 주로 절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하긴 동아시아 고대 문화에서 불교를 빼놓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을 테니. 사찰이야말로 고대 문화가 응집된 결정체 아니겠는가. 하여 많은 절들이 언급되는데, 그 중에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운 절도 나온다.

 

법륭사. 흥덕사, 동대사, 약사사, 당초제사가 주로 다루고 있는 절이고, 이 절들의 건축, 절에 있는 문화재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것들이 도래인 문화에서 당나라 문화를 받아들이고, 일본 고유의 문화로 정착해 가는 과정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일본 절은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시내에 있다. 평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사람들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물론 일본 절도 메이지 유신 때 벌어진 폐불훼석 사건으로 많이 파괴되었다고 하는데, 이데올로기에 의해 문화재를 파괴하는 일들이 역사에서 반복되고 있고, 그것이 얼마나 우리가 이룩한 문화를 파괴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는 이러한 아스카, 나라 시대의 문화유산에 대해서, 또 사람들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고 있어서 일본 여행을 할 때 어느 정도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다.

 

아마도 아스카, 나라에 간다면 이 책을 읽고 간 것과 읽지 않고 간 것이 큰 차이를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눈 앞에 보이는 거대한 건물만 보고 다 봤다고 나오는 어리석은 행동을 저지르지 않도록 동대사 부분에서 삼월당을 설명할 때 절절하게 강조하고 있다.

 

3권은 교토다. 우리나라도 치면 경주에 해당하는 교토. 유홍준과 함께 다음에는 그곳으로 간다.

 

덧글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 쇼토쿠 태자의 태자당에 대한 이야기 중에

 

태자당이라고도 불리는 현재의 성령전은 1603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지시로 복원된 것이다. (33쪽)

 

이렇게 되어 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8년에 죽었는데, 어떻게 1603년에 지시를 내리지?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혹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니라 그 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리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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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1 - 규슈 빛은 한반도로부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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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일본편이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대중들에게 알린 것이 유홍준이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였는데, 그 책에 이어 북한 문화유산 답사기도 나왔고, 일본 문화유산 답사기도 나온 것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늘 이야기하는 일본. 지금은 사이가 너무도 좋지 않아 여행을 가기도 꺼려지고 일본 제품 불매운동도 벌어지고 있고, 일본에서는 혐한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현실이라 먼 나라라고 해야만 하지만...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 역사적으로도 여러 영향을 주고받은(?)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삼국시대 이전에는 아주 가까운 나라였음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백제 편에서 나당연합군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는 사실, 그런 유적이 일본에 남아 있다는 것을 문화유산 답사기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으니, 더욱 가까워야 할 나라가 더 멀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너무 가까워서 서로를 인정하면 자신이 낮아질까 두려움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는데, 가깝기 때문에 먼 나라에 준 피해에 비해 더 많은 피해를 주기도 했는데, 그 피해가 쌍방이라기보다는 일방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일방이었던 피해와 가해 관계에서 가해 편에 서 있는 나라가 진정한 반성과 참회, 그리고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관계는 좋아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반성 없이는 더 나은 관계를 맺을 수가 없다. 지금 일본이 하고 있는 일은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모르쇠할 수는 없다. 일본과 우리가 한때는 매우 긴밀한 관계였다는 것까지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과거에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을 수도 있다는 것. 특히 일본은 지정학적 위치상 우리나라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았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책에는 그래서 '빛은 한반도로부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일본의 문화 중에서 한반도에서 온 것이 꽤 많고, 그들 역시 그들 언어로 '도래인'이라고 부른다는 것, 그것이 바로 한반도에서 온 문화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책은 일본에 있는 우리의 문화를 답사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에 여전히 많은 우리의 문화가 있다는 것, 특히 도자기에 관해서는 일본인들도 인정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도자기의 시조라고 '도조 이삼평비'가 있다는 것. 또한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이 일본의 도자기 산업을 발전시켰다는 것.

 

일본 속에 남아 있는 한반도의 영향을 잘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일본의 '규슈'라는 것이다. 물론 다른 곳도 있지만, 적어도 삼국시대 또 조선시대의 한반도 문화가 남아 있는 곳이 규슈. 이 규슈를 남과 북으로 나누어 답사를 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작은 나라가 아니라 한번에 다 돌아볼 수는 없다. 게다가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여행을 하면 시간을 많이 잡아야 한다. 그럼에도 일본 여행의 장점은 가깝다는 점에 있다. 우리가 제주도에 가는 것보다 아주 조금만 더 시간을 쓴다면 갈 수 있는 곳이 일본이기 때문이다. 특히 규슈는 그런 일본에서도 더 가깝다고 한다.

 

근대 이전에 배로 여행을 할 때 한반도에서 먼저 닿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규슈'였을 테니, 일본 문화유산 답사로 먼저 규슈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유홍준 특유의 문체가 잘 드러나고 있는 답사기. 일본에 여행하기 전 이 책을 읽고 또 들고 일본 여행을 한다면 더 깊이 일본 여행을 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꼭 일본에 여행 가지 않더라도 이 책은 읽을 만하다. 앉아서 하는, 그것도 최고의 안내자와 함께 하는 일본 여행이 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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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나혜석 지음, 장영은 엮음 / 민음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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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많이 들어본 작가다. 나혜석. 나는 그를 화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의 제목은 화가로서의 나혜석이 아니라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나혜석이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온전한 자아를 글을 통해 내보낸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그림으로도 자신을 표현할 수 있지만, 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기득권을 지니고 있던 존재들에게는 더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충격을 무마하기 위해 그들은 글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림에 집중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들이 집중하는 것은 새롭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사람들의 사생활이다. 흠집을 내기 위해, 그들을 끌어내리기 위해 조그마한 잘못을 트집잡기 시작한다.

 

본말전도가 시작된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런 주장이 나왔는지, 또 그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는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들이 한 말이 아무리 옳아도 시대와 불화하는 생활이 약점으로 잡혀 처절하게 무너져내리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이 지닌 권리와 같은 권리를 주장하는 존재들을 무너뜨린다. 논리가 아니라, 감정으로, 선동으로. 하여 그들 주장에 접근하기도 전에 이미 등을 돌리게 만든다. 나혜석도 그런 반격을 받게 된다.

 

여성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한 나혜석은 사생활로 인해 당시 주류 사회에서 내쳐지게 된다. 그가 주장한 것과 상반되는 결과를 얻기도 한다. 그렇게 나혜석은 그림이나 글로 후대 사람에게 알려지기 보다는, 남성 권력들의 이야깃거리로 남겨지게 된다.

 

프랑스 유람, 거기서 최린을 만나 불륜에 빠져 결국 이혼하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우리나라 여자 화가. 이정도로. 자, 여기에는 나혜석이 무엇을 주장했고, 어떤 삶을 살고자 했는지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냥 흥미거리, 또는 시대를 앞서 연애를 해서 불운한 삶을 살아간 사람 정도로만 남는다.

 

그래서는 안 된다. 나혜석이 왜 그렇게 살았는지, 그가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했는지를 그의 글을 통해서 알아야 한다. 나혜석이 쓴 글을 읽고,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달랑 몇 문장으로만 기억하는 나혜석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생각해 보라. 자신이 이혼한 경과를 당당하게 글로 써서 발표할 수 있던 사람이 그 당시에 얼마나 되었겠는가. 나혜석은 자신이 어떻게 결혼을 했고, 또 이혼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글로 써서 세상에 공표했다. 이 책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이다. '이혼 고백장'이란 글이다. 아마도 이 글을 통해 뒷담화로서의 나혜석이 아닌,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나혜석을 만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글 전에 소설도 발표했다. '경희'라는 소설을 보면, 주인공 경희는 나혜석의 젊은 시절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에 대한 교육, 당당하게 한 인간으로 인정받으려는 모습. 그런 모습들이 소설에 잘 나타나 있다. 물론 소설은 교육을 받은 여성이 집안일도 잘하는 것으로 표현해, 여성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남자들보다 두 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남자들은 공부만 하면 되지만, 여자들은 공부에다 집안일도 잘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했던 시절이었음을 소설을 통해서 생각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혜석은 점점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글로 써 발표한다. '모母 된 감상기'에서 나혜석은 임신과 출산이 여성을 얼마나 속박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서 표현한 사람,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산 사람. 어쩌면 시대를 앞서 갔기에 더욱 힘든 생을 살아야 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혜석은 글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는 이들이 나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나혜석은 '글 쓰는 여자'가 되었을 거고, 그런 글들이 남아 씨앗이 되어 발아되어 싹을 터서 열매를 맺기에 이른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 '경희'에 나오는 장면으로 글을 맺는다. 경희가 자각하는 장면이다. 아마도 나혜석 자신이 자신에게 한 말이리라.

 

  경희도 사람이다. 그다음에는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또 조선 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 안 전 인류의 여성이다.  ...

  오냐, 사람이다.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험한 길을 찾지 않으면 누구더러 찾으라 하리! 산정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것도 사람이 할 것이다. 오냐, 이 팔은 무엇하자는 팔이고 이 다리는 어디 쓰자는 다리냐?

  경희는 두 팔을 번쩍 들었다. 두 다리로 껑충 뛰었다.

 (소설 '경희'의 끝부분. 이 책 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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