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최승범 지음 / 생각의힘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별로 무슨 주의자를 구분할 수 있을까? 성별에 따라서 주의자들이 분류되는가? 아니다. 만약 사회주의자라고 하면 사회주의를 신념으로 삼고 행동하는 사람을 말하지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자도 그렇다. 자유주의자면 자유주의자지 남성이나 여성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그렇게 자신의 사상이나 행동으로 사람을 어느 쪽으로 분류하지 단지 성별로 구분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좀 이상한 구분을 하는 경우의 신념이 있다.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 하면 즉각적으로 여성을 떠올린다.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먼저 성별을 떠올린다. 왜 그럴까? 오랜 세월 동안 차별 받아온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이 페미니즘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여전히 여성만으로 국한된 운동이 있을 수 있다고 여겨서 그런가?

 

그래서는 안된다. 페미니즘은 남성이나 여성 또는 성소수자로 구별되어서는 안된다. 페미니즘은 약자라서 위협을 받고 그 두려움 속에서 지내는 존재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어떤 차별에도 반대한다는 운동이다. 이런 운동에 왜 성별을 연결지으려 할까?

 

그것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고,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다른 존재들을 틀지우는 행동이다. 모두에게 해당하는 운동이 아니라 소수에게만 해당하는 운동이라고 규정지으면, 그 운동의 파급력을 낮출 수가 있다. 이런 전략이다. 이 전략들이 교묘하게 먹혀들어가는 것은 또다른 약자들에게 더 약한 약자들 위에 군림하게 하는 것이다.

 

약자로 더한 약자를 억압하게 하는 것. 이것이 페미니즘 운동이 겪어왔던 역사 아니던가. 그러니 지금도 페미니즘 하면 여성들에게만 해당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 것이다.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이 책은 그러한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제목부터 그렇지 않은가?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남자와 페미니스트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니 이런 제목이 눈길을 끈다. 남자가 페미니스트가 되면 안 되는가? 아니 남자라서 페미니스트여야 한다. 그동안 남자로서 누려왔던 것이 많으니.. 이 책에도 나오지만 조금만 집안일을 도와도 좋은 아들, 좋은 남편, 좋은 아빠 소리를 듣는다. 똑같은 일을 여성이 하면 그런 말을 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남자라는 것에 틀지워져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라왔을 수 있다. 그것을 '맨박스'라고 한다. 그 틀에 갇혀 있다는 것. 그것은 남자에게도 비극이다. 그 틀을 벗어던져야 한다. 틀을 벗어던질 수 있는 열쇠, 페미니즘에 있다.

 

왜 좋은 아들, 좋은 남편, 좋은 아빠 소리가 문제가 되는지 인식하게 되는 순간,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다. 자신에게는 너무도 당연했던 것이 또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그 눈을 뜨게 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페미니즘이다.

 

저자 최승범은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통해서 페미니즘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자신의 엄마가 겪어 왔던 일들을 우리에게 들려줌으로써 그것이 여성이 당연히 겪는 일이라는 생각에 균열을 준다. 그것이 아님을... 평생토록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 수밖에 없었던 여성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렇게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났던 부조리한 일들을 깨닫게 되면서 그는 자연스레 페미니스트가 된다. 그리고 교사가 되었다. 그래, 붙이기 싫지만 '남성-교사'가 되었다. 은연 중에 '여성-교사'보다는 권력을 지닌 존재. 그가 남학생들을 대상으로 페미니즘을 교육한다고 한다.

 

무작정? 아니다. 교육과정에 따라서 관련 있는 내용이 나오면 그에 맞춰 페미니즘에 대해서 또 여러 차별에 대해서 관련 자료를 통해 교육한다고 한다. 처음엔 반발도 있었지만, 어느 정도는 학생들 또한 차별을 인식하고 그것을 반대하게 되었다고 한다. 모두가 그럴 수는 없지만, 늘고 있는 상태다.

 

한번에 변하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꾸준히 교육함으로써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가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하여 이 책을 읽으면 페미니즘에 성별이 필요없다는 생각보다는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페미니즘은 여성들만의 운동이 아니라 남성들도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해야만 운동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발언 1~2 세트 - 전2권 - 김종철 칼럼집 발언
김종철 지음 / 녹색평론사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늦게나마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2015년에 발간된 책이다. 무려 5년이 지났다. 하루가 멀다하고 급속도로 변하는 이 시대에 5년이면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런데도 이 책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들이 구태의연한 주장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가 실현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김종철 선생이 이토록 오랫동안 주장해 왔던 것들을 하나하나 이루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발언'은 해야 한다. 발언을 하지 못하는 사회는 발전이 없는 사회다. 왕조시대였더 조선시대에도 발언을 막지는 않았다. 자기 의견을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는 지금 시대에 발언이 자유롭지 않은 경우가 많다.

 

권력의 힘으로 발언을 막는 경우도 있지만, 권력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권력에 알아서 기는 모습을 보이면서 사회적 압력으로 자유로운 발언을 막는 경우가 있다. 자신들에게 쓴소리가 되는 발언을 똘똘 뭉쳐 막으려는 모습을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발언은 소중하다.

 

이렇게 사회적 압력에 자체 검열을 하여 발언을 삼가고 있는 지식인이 많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이 발언을 삼가고 있으니 곡학아세하는 어용 지식인들의 말들만이 판치게 된다. 제대로 발언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럴 때 김종철 선생의 이 [발언]은 너무도 소중하게 다가온다. 지식인. 소명을 지닌 지식인.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옳다고 여기는 일에 대해서는 발언을 아끼지 않은 사람.

 

그의 발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핍박받는 사람, 사회적 약자들이 당당히 살 수 있는 세상.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공생공락의 삶에 대한 발언이다.

 

그래서 그는 성장주의를 추구하는 경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대농을 중심으로 하는 기계농, 화학농에서 벗어나 소농 중심의 농업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기본소득을 도입해 최소한 생계 걱정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 정치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사람 몇을 바꾼다고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직접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최소한 시민의회는 가능하다고, 숙의민주주의 역시 가능하다고, 권력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정치 개혁이 있어야 한다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추첨민주주의(제비뽑기)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성장제일주의를 버리면.

 

몇 년에 걸쳐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놓은 책인데, 읽으면서 답답함을 느꼈다. 그 당시 김종철 선생이 주장한 것들 중에 지금 우리가 이룬 것이 무엇이 있나 생각하니, 더욱 답답하다.

 

경제는 여전히 성장제일주의고, 비례대표제를 개혁한다고 했는데, 세계 제일의 꼼수로 비례대표제를 완전히 무력화 시켰으며, 난개발을 반대했지만, 그 난개발이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기후위기에 대해서 그토록 많은 발언을 김종철 선생이 했음에도 기후위기는 여전하다.

 

소농중심의 농업 정책을 펼치자는 주장이 계속되어 왔으나 농업에 대해서는 여전히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지 않고 있는 현실. 교육도 마찬가지고.

 

어쩌면 이 발언들이 소위 말하는 위정자들에게 가닿지 않았을 수 있다. 하긴 김종철 선생이 원한 건 자신의 발언을 위정자들이 듣고 정책을 실현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김종철 선생이 원한 것은 자신의 발언들에 대해서 시민들이 공감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나서는 것이었다.

 

위정자의 시혜가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 쟁취하는 것. 깨달은 시민들이 공생공락의 삶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그가 하는 [발언]이었다. 이 [발언]이 공허한 울림에 그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은 우리가 할 일이다. 이제는 우리가 [발언]해야 할 때다. 우리가 [행동]해야 할 때다.

 

김종철 선생의 발언은 충분히 들었음으로. 그가 충분히 말했음으로. 두 권으로 역인 이 책 [발언], 여전히 유효하다. 이 발언들이 과거의 주장이 되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이 [발언]은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고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타 툰베리와 함께하는 기후행동 - 기후 위기, 행동하지 않으면 희망은 없다
이순희.최동진 지음 / 빈빈책방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민주시민 교육이라는 말이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것.

 

민주시민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살아가는 공동체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 아닌가. 공동체에서 벗어난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이익을 마치 공동체의 이익인 양 치장하는 사람도 아닌 사람들,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시민 교육이다.

 

그래서 민주시민 교육하면 왠지 정치교육을 연상하는 사람이 많은데, 민주시민의 권리 중 하나가 정치적 권리이긴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정작 민주시민은 공동체가 지속될 수 있도록 행동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민주시민 교육은 생태, 환경 교육일 수밖에 없다.

 

공동체의 지속, 지속가능한 발전, 녹색 성장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지금 지구는 포화 상태다. 임계점에 도달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인구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있는 온도들로 인해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다. 견딜 수 없는 수준까지 가면 지구는 폭발하고 말 것이다.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지구 온도가 1.5도 이상 올라가면 그때 지구가 폭발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많다. 많이 봐주어도 2도 이상 올라가면 안 된다. 2도 이상 올라가면 이제는 인간이 개입하지 않아도 지구 스스로 계속 온도를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고 한다. 그것을 되먹임 현상이라고 한다는데...

 

그레타 툰베리로 인해 촉발된 청소년들의 기후행동. 이것은 청소년들이 더이상 기성세대를 믿지 못하겠다는 표현이다. 당신들에게 맡겨놓았는데, 도대체 이룬 것이 무엇이냐는 항변이다.

 

통렬하고 아픈 지적인데도 기성세대들은 여전히 막무가내다.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이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그냥 지금을 모면하려는 모습만 보인다.

 

그러니 미래를 살아갈, 자신들이 살아갈 시대를 빼앗긴다는 생각을 지닌 청소년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자신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 매주 금요일, 기후행동으로 나서는 청소년들이 전세계에 많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참여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언론들은 이렇게 생존이 걸린 문제에 청소년들이 참여해도 대학입시를 위해 치르는 수능시험만큼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수능시험에서는 전국민이 출근시간까지도, 또 비행기 뜨는 시간까지도 조정하면서, 그들의 삶을 위협하는 것들을 제거하려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청소년을 위한다면서 그들을 계속 사지(死地)로 몰아넣고 있으면서도 너희들을 위해서 그래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러면서 청소년들에게 민주시민 교육을 한단다. 그들이 이미 미래의 암울한 모습을 보면서 바꿔야 한다고 행동하고 있는데, 그 행동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만류하면서 민주시민 교육?

 

이책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쓰여졌다고 하지만, 아니다. 청소년들은 그 특유의 민감성으로 자신들이 살아갈 세상이 얼마나 위험에 처해졌는지 몸으로 깨닫고 있다. 그 위험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기성세대다.

 

그레타 툰베리가 스웨덴 의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한 것도, 전세계 청소년들이 기후행동 시위를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서다. 살아 있는 민주시민 교육이다. 그런 현장을 우리는 애써 무시해 왔는지도 모른다. 지금부터는 그래서는 안된다. 청소년들이 이렇게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청소년이 아니야, 바로 당신들, 기성세대 당신들이야!라고.

 

그러니 이 책은 기성세대들이 읽어야 한다. 너무 쉽고, 간략하게 쓴 것 아니냐고?

 

아니다. 기성세대들은 이렇게 간략하게 쓴 것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한다. 그들은 지금 세상만 바라본다. 자신들의 미래 세대가 살아갈 세상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기성세대다.

 

이런 기성세대에게 정신차리라고, 당신들의 그 태만이 우리들에겐 생명의 위협이 된다고 외치는 것이 바로 청소년들이다. 미래세대다. 그러니 기성세대가 눈 감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이건 진보, 보수를 떠나서 생존이 걸린 문제다.

 

아주 명쾌하게 기후위기에 대해서 정리해주고 있는 책이다. 청소년용이 아니라 어른들이 읽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권을 보면 문해력(리터러시)이 무척 떨어져 있는 것 같던데, 이런 책을 읽어서 이해했으면 좋겠다. 그들이 이해하고 행동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나섰는데, 세상에, 수능보다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다니.. 그들에겐 생존이 걸린 문제인데... 아니, 그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인데...

 

책 표지에 있는 말을 인용하면서 마무리한다.

 

기후 위기, 행동하지 않으면 희망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5 그레타 툰베리와 함께 - 기후위기 비상행동을 위한 긴급 메시지, 행복한아침독서 추천도서 팸플릿 시리즈 (한티재) 16
한재각 엮음 / 한티재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건 팸플릿이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작은 책자.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 명료하게 주장을 알리는 책. 위기의식에서 나온 책. 그렇다. 위기다. 그런데 이 위기를 감지하는 민감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뭔 위기? 하며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런 위기는 과학기술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를 펼치는 사람들도 있고, 아예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없다. 짤막하게 핵심만 알려야 한다. 그리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해야 한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이 책은 여러 사람의 글을 모았다. 위기를 온몸으로 느끼는 사람들의 글.

 

그래서 이들의 글은 추상적이지 않다. 실제적이다. 자신의 몸으로부터 나오는 외침이다. 이 외침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중언부언 할 필요 없이 이 책에 나와 있는 글들을 발췌한다.

 

이 팸플릿은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고자 하는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엮었다. (한재각. 생존과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로 나서자! 14-15쪽)

 

저는 우리가 행동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위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짜 위험은 사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은데, 기업과 정치인들이 마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명민한 계산과 광고를 통해서요. (그레타 툰베리. 다른 탄소예산이 있나요? 24쪽)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서명한 파리협정의 내용을, 매주 금요일이면 전 세계 수백만 명의 학생들이 기위위기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알리지 않는 건 어른으로서 더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혜선, 나이가 들어서 돌아보았을 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34쪽)

 

현재 세계 배출량은(탄소) 연간 약 42기가 톤이다. 이 배출 속도가 지속된다면, 사용할 수 있는 탄소량이 67퍼센트 확률에서는 10년, 그리고 50퍼센트 확률에서는 14년 후에 소진된다. 그러므로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시간은 평균 12년이다. (조천호.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12년. 40쪽)

 

기후변화는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우리 모두의 삶에 갈수록 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기에 기후변화에 대응함으로써 우리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것은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요구여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처럼 들리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은 이 기본적인 권리조차 부정당한다. (김도현, 김서경, 김유진. '청소년인데도' 아니라, '청소년이라서'. 49쪽)

 

탄소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탄소 배출을 하지 않겠다는 목표를 선언하고, 그에 합당한 필사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간 한국 사회는 그리 솔직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박진미, 좀 더 솔직해져야 합니다. 55쪽)

 

이제부터라도 기후위기와 관련한 제반 과정에 여성을 고려하고 여성적 관점을 통합해야 한다. (김양희, 기후위기, 여성의 경험과 관점이 중요하다. 66쪽)

 

낯 두꺼운 저 자본의 힘을 우리가 빼지 않는다면 / 망해가는 이 세상을 구할 수 없다 / 지금 당장 행동하고 저항해야 한다/ (김수상, 지구를 위한 요가. 71쪽)

 

부디 청정 제주가 사라지지 않도록, 제주의 난개발을 멈춰주길 바랍니다. 여기서 그만 멈추세요. 멈추어야 합니다. 마지막 나무, 마지막 물고기, 마지막 물을 잃고 난 후는 너무 늦습니다. (그린씨. 안녕? 그레타 툰베리. 80쪽)

 

..거대기업 중심의 글로벌 푸드체인을 거부하고 지역 중심의 푸드체인으로 전환하며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자연순환적인 농생태학을 전국 각지에서 여성농민들이 실천하고 있다. (김정열, 소농이 지구를 식힌다. 86쪽)

 

...사회경제 시스템의 생태적 전환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노동자, 저소득층, 취약계층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과도하게 부담하는 것을 방지하고, 그러한 비용을 사회 전체적으로 공평하고 정의롭게 배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노동운동이 주장하고 있는 원칙이 '정의로운 전환'이다. (장영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하여. 92쪽)

 

기후변화는 건강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공중보건 인프라를 파괴하고, 현재의 보건의료체계는 기후변화 때문에 초래되는 급격한 질병부담 증가를 감당하기 어렵다. .. 기후변화보다는 '기후위기'가 좀더 정확한 표현이다. (김명희, 팔짱 끼고 인류 절멸을 관찰할 것인가. 100쪽)

 

기후변화가 인권을 침해하는 범주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인간의 생명권을 침해한다. ...둘째, 건강권을 침해한다. ... 셋째, 생계권을 침해한다. (조효제, 기후위기, 절체절명의 인권문제. 107쪽)

 

이제 기후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그것은 누구의 몫인가? 행정부와 국회는 막대한 권력을 쥐고, 이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는가? 우리는 계속 질문을 던졌지만 답을 받지 못했고 시간만 흘러, 마침내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10년을 넘겨받았다. (고은영, 우리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하여. 114쪽)

 

기후위기... 정말 위기다. 탄소예산이라는 말을 아는 국회의원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이 책에 나온 뉴질랜드 총리만큼 기후위기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절대적인 무시 아니었던가. 이제 그러면 안 된다. 올해 기후를 보라.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을 보라. 전대미문의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우리에게 문제를 제대로 보라고 경고를 하고 있다. 이 경고를 무시하면 안된다. 이 작은 책, 팸플릿, 우리에게 경고를 넘어서 행동하라고,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 제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금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책. 눈에 띄는 대로 구입하고 있는 중. 제7회 작품집이다. 한편 한편 읽어가면서 이 작품들이 발표될 때를 생각한다.

 

소설이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할 때, 이 작품집에서도 2016년의 상황이 반영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 2016년이면 현재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물론 코로나19 때문에 급격하게 변화된 세상에 살고는 있지만, 전체적인 것은 변하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소설 속 현실과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비교할 수 있다는 것, 소설 속 인물과 나를 비교할 수 있다는 것.

 

이 중에 쉽게 마음에 다가온 소설이 장강명의 '알바생 자르기'와 정용준의 '선릉 산책'이다. 소위 사회적 약자를 등장시킨 소설인데... (장강명의 '알바생 자르기'는 그의 소설집 '산 자들'에도 수록되어 있다. 다른 작품들도 어딘가에 수록되어 있을텐데, 내가 읽은 것은 장강명 소설집 뿐이라서)

 

알바생. 아마도 우리나라 노동 인구 중에서 최하층에 속하는 집단일 것이다. 비정규직이라는 이름도 달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라는 긴 이름도 호사스러워 알바생이라는 짤막한 언어로 불리는 이들. 최저임금을 간신히 받거나 또는 그보다 낮은 금액을 받는 사람들. 여기에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

 

하지만 장강명의 소설은 알바생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알바생과 함께 일하는 직장 상사의 관점에서 소설이 전개된다. 그렇다. 알바생의 관점에서 전개되면 우리는 그저 그렇다는 생각만 하게 될 수 있다.

 

알바생들의 애환이야 다들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걸 소설로 표현할 때 다른 장치가 필요하다. 장강명은 그 장치를 알바생과 함께 일하는 상사의 입장으로 설정했다. 잘 어울리지 못하고, 그렇다고 성실하지도 않고, 일도 잘하는 편이 아닌 알바생을 결국 해고하기로 결정. 여기까지만 보면 참 일을 못하는 알바생을 많이도 감싸주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만.

 

하지만 아니다. 과연 그것이 알바생을 감싸주고 도와준 것이었을까?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 대해서 지니고 있는 허위의식 아니었을까? 소설은 뒷부분에서 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허위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그리고 알바생이 계속 그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는 현실도. 소설 속 현실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 현실도 그러하므로.

 

'선릉 산책'은 장애인을 하루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그래, 돌봄이라는 말에는 이미 위계가 존재한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무엇인가를 해준다는 의미. 여기에는 평등한 관계가 이루어지기 쉽지 않다.

 

소설은 주인공이 돌봄 대상과 어느 정도 교감을 이루었다는 장면에서 반전을 이룬다. 그것이 자신이 우월한 위치에서 베푼 것일 뿐. 정작 장애인의 처지에서 생각하지는 못했다는 것.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약자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그러한 공감능력이 많이 상실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간혹 약자에게 시혜를 베푼다는 도덕적 우월감으로 만족감을 느끼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약자들이 많다. 특히 팬데믹이 일어난 전세계적 재앙 앞에서 약자들은 더 힘든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때 강자의 눈이 아닌 약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자세를 지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머지 작품들도 여러가지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긴 하지만...두 작품에서 강한 인상을 받은 작품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