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 오리아나 팔라치, 나 자신과의 인터뷰
오리아나 팔라치 지음, 김희정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침묵, 타협하지 않음. 저널리스트라면 당연히 지녀야 할 자세이지만, 작가도 이런 자세를 지녀야 하나 의문을 표시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살아간 오리아나 팔라치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을 읽어보라.


사실과 진실 앞에서 타협하지 않았던 사람. 이 사람에게 기자로서의 삶과 작가로서의 삶은 동떨어지지 않았다. 물론 두 생활에서 글쓰기 방식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사실과 진실을 알리는데서는 차이가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하긴 외국 기자를 알 수가 없지. 그껏해야 퓰리처상이라는 이름이나 들어봤지, 우리나라 기자들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데 이탈리아 기자, 그것도 세상을 뜬 지 십 년도 더 된 사람을 알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소설을 썼다고 했는데, 현대 작가들이 쓴 이탈리아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고...


알라딘에 오리아나 팔라치를 검색해 보니, 소설 작품도, 또 그에 대한 소개한 책도 제법 있다.물론 소설은 절판이거나 품절인데,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 번역이 되었다. 어쩌면 헌책방에서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저널리스트로서 또 작가로서 침묵하지 않는다는 것, 얼마나 중요한가. 중요한 일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기자, 작가들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고, 또 특정 정파의 이익에 따라 사실을 짜깁기 해서 진실을 호도하는 저널리스트들을 많이 보아온 터에 침묵하지 않는다고, 불편한 삶, 불편하게 하는 삶을 살았다고 하는 사람이니,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여기에 우리나라에서는 '기레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저널리즘이 상실되어 있으니...


그렇다고 이 책은 오리아나 팔라치가 직접 쓴 자서전이 아니다. 죽은 뒤 그가 쓴 글들에서 뽑아 편집한 책이다. 하지만 모든 글이 오리아나 팔라치가 직접 쓴 글이니 자서전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우선 침묵하지 않는 삶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말하고 있다.


작가나 기자는 사랑받고 환영받고 칭찬받는 직업이 아니다. 그들의  역할은 아름다운 것과 좋은 것과 잘되는 것을 들려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나 기자의 임무는 나쁜 것과 문제가 되는 것을 고발하는 것이다. 미움받고 공격당하고 모욕받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76쪽)


기자만이 아니라 작가도 그래야 한다는 말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작가는 허구를 창조하는 사람이기에 진실에서 멀어질 것 같지만, 아니다. 작가는 사실들을 간략하게 전달하는 기자와는 달리, 보이지 않는, 드러나지 않은 일들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그러므로 작가 역시 진실을 전달하는 사람이 된다. 진실과 멀어진 작가의 생명력은 오래 가지 못한다. 왜 작가 역시 진실되어야 하는지 오리아나 팔라치의 말을 보자.


회고록이나 자서전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이상을 말하고 싶었으므로 소설 형식이 필요했다. ... 일대기에서 끌어내어 정교하게 다듬고 재창조하여 더 심오하고 더 큰 진실로 옮겨놓은 이야기이다.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일화는 객관적인 잣대로 설명될 수 없다. 저널리즘은 축소하지만 소설은 확장한다. ... 소설은 시와 같다. 그 시간과 그 장소, 그 사람을 초월해서 내일과 모레에도 유효하게 남아 있으며, 사진이 보여줄 수 없는 풍경 속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이야기이다. (197-198쪽)


이렇게 진실을 말하려면 절대로 침묵해서는 안된다. 편안함만을 추구해서도 안된다. 불편해져야 하고, 남들을 불편하게 해야 한다. 페미니즘이 강하게 주장되기 전에 오리아나 팔라치는 이런 말도 했다. 세상을 자유롭고 진실되게 살려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느껴지는 일일 것이다.


남자들의 주요한 문제는 경제적이고 인종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지만, 여자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보다도 여자라는 사실에서 나오기도 한다. 해부학상의 어떤 차이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인체의 차이와 더불어 여자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터부를 말하는 것이다. (79쪽)


당신이 남편보다 일을 더 많이 하고 더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을지라도 그는 당신이 먼저 일어나서 커피를 준비하고, 먼저 집에 달려와서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당신 기분과 관계없이 그의 기분에 따라 장단을 맞춰야 한다. (185쪽)


이 말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세상을 불편하게 보기 힘든 사람이다. 세상의 절반이 선천적인 조건으로 인해 불편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세상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불편함을 못 느낀다면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런 여성의 문제를 오리아나 팔라치는 이란의 최고지도자였던 호메이니를 인터뷰할 때 겪는다. 그 과정을 읽어보면 오리아나 팔라치가 이렇게 말했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오리아나 팔라치는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한다.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용기는 두려움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용기 있다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두려워도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109쪽)


이 말 때문이라도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는 말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그는 사실을 통해서 진실을 왜곡하는 일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소위 기레기들이 자신이 들은 말의 앞뒤를 자르고 자신의 구미에 맞는 말들을 교묘하게 편집하여 내보내는 행태와 비교하면 새겨들어야만 한다.


내가 증오하거나 존경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인터뷰이가 내게 한 말을 충실하게 전달하고자 주의를 기울였다. (127쪽)


가장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자세다. 이렇게 사실을 통한 진실을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 한다. 그래서 이런 사람을 멀리하려 하지만 진실을 가릴 수는 없으므로, 이런 사람을 불편하게 여기면 여길수록 진실은 더욱 잘 드러나게 된다.


나는 불편한 것을 말하는 불편한 여자이자 불편한 이야기를 쓰는 불편한 작가이다. (196쪽)


불편한 작가라고 했지만, 읽는 내내 책을 손에서 뗄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레지스탕스 활동을 한 오리아나, 자신의 자유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기에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거부할 수 있었던 사람. 어떤 정권의 구미에 맞는 기사를 쓰지 않은 사람.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오리아나 팔라치라는 사람이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장 주네 지음, 윤정임 옮김 / 열화당 / 200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코메티 작품은 책에서만 봤다. 직접 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는 책에서 본 자코메티의 작품만으로는 잘 이해할 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

 

장 주네 역시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는 아니다. 나 역시 그가 쓴 작품 중에서 읽은 것이라곤 [도둑일기]가 유일하니까. 하지만 그는 우리가 비천하다고 여기는 일들을 어린시절, 젊은시절에 다 겪은 작가니, 그가 만난 자코메티의 작품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책은 아주 얇다. 60쪽 정도니까, 문고판 책보다도 더 얇다고 보면 된다. 마치 자코메티의 조각상들이 너무도 가냘프듯이...

 

하지만 자코메티 조각상들이 주는 느낌은 가냘픔과는 다르게 무거움을 주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다. 얇은 책이지만 그 속에는 상당한 두터움이 들어 있다. 구절구절 마음에 와 닿는데...

 

몇 구절을 인용하는 것이 장 주네가 자코메티 작품에 대해 하고픈 말을 가장 잘 전달하는 일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움이란 마음의 상처 이외의 그 어디에서도 연유하지 않는다. 독특하고 저마다 다르며 감추어져 있기도 하고 때론 드러나 보이기도 하는 이 상처는, 누구나가 자기 속에 간직하여 감싸고 있다가 일시적이나마 뿌리 깊은 고독을 찾아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 은신처처럼 찾아들게 되는 곳이다. ... 내가 보기에 자코메티의 예술은 모든 존재와 사물의 비밀스런 상처를 찾아내어, 그 상처가 그들을 비추어 주게끔 하려는 것 같다. (6-7쪽)

 

...자코메티의 작품들이 '죽은 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또한 그의 작품이, 수많은 사람들이 탄탄한 뼈대 위에 살아 있을 때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의 지대를 뚫고 들어가 저승의 구멍 난 벽들을 통해 스며 나올 수 있는 기이한 힘을 부여받은 예술 -유려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아주 견고한 예술-이 요구된다. ... 자코메티의 작품은 모든 존재와 사물이 인식하고 있는 고독을 죽은 자들에게 전달해 준다. 그리고 그 고독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우리의 영광이다.(16쪽)

 

자코메티의 조각작품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은, 가장 멀리 떨어진 극한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친숙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그 왕복에 의해 지탱되는 것 같다. 이 오고감은 끝이 없으며, 그것이 바로 조각들에 움직이는 느낌을 주고 있다. (27쪽)

 

자코메티의 조각상들은 소멸해 버린 세대에 속한 느낌, 숱한 시간과 밤이 지혜롭게 갈고 닦아 부식시킨 후 부드럽고도 견고한 영원성의 기운을 담아 우리 앞에 내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30쪽)

 

사물을 고립시켜 그것이 갖는 유일하고 고유한 의미만을 집적시키는 능력은 관찰자의 역사성의 소멸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바라보는 이의 역사성을 없애려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데, 그렇다고 해서 영원한 현재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미래를 향한 어지럽고 끊임없는 질주, 휴기을 허용치 않는 양극단 사이의 긴장감있는 흔들림이 되어야 한다. (35쪽)

 

자코메티, 혹은 눈 먼 자들을 위한 조각가 (49쪽)

 

자코메티가 그려낸 대상들이 우리를 감동시키고 안심시키는 것은 그 대상이 '좀더 인간적으로 - 인간이 쓸 수 있고 끊임없이 써 왔던 것이라는 의미로 - 표현되어서가 아니며, 가장 좋고 부드러우면서 감각적인 인간의 현존이 대상을 감싸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가장 순박하고 신선한 '그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것, 그리고 아무것도 함께 하지 않는, 그 전적인 고독 속의 대상 (59쪽)

 

그것은(자코메티 예술) 차라리 가진 것 없어도 당당한 룸펜의 예술이며, 대상들을 서로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모든 존재, 모든 사물의 고독에 대한 깨달음이라는 순수한 지점에 이르고 있다. 대상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혼자다. 그러므로 내가 사로잡혀 있는 필연성에 대항해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지금 이대로의 나일 수밖에 없다면 나는 파괴될 수가 없다. 지금 있는 이대로의 나, 그리고 나의 고독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신의 고독을 알아본다." (60-61쪽)

 

이보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냥 이 책을 읽으면서 장 주네가 이야기해 주는 자코메티를 만나면 된다.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있다면 그것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려운 시대일수록 어려운 사람들이 더 어려워질 때,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는 존재들이 있다.

 

  빅이슈 또한 마찬가지고..

 

  이번호 표지에 웬 고양이? 할 수도 있는데, 사실 내가 좀 그랬는데, 이 고양이가 밥(bob)이라는 아주 유명한 고양이란다. 지금은 세상을 뜨고 없지만, 영국에서 제임스라는 사람에게 삶의 희망을 준 고양이란다.

 

  제임스는 이 밥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고 희망을 갖고 노력을 했다고... 그래서 밥과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기도 하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니... 고양이 밥에 관한 영화가 두 편이 된다고 하니, 밥은 단순한 고양이가 아니라 삶에 희망을 안겨준 고양이라고 할 수 있다.

 

자, 이런 고양이 밥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새해에는. 서로가 서로를 갉아먹고, 끌어내리려 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어깨를 빌려줄 수 있는 그런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희망을 잃은 사람에게는 희망을 주고,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격려를 주는, 그런 새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날이 무척 추운 올 겨울이다. 폭설까지 내리고...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힘든 겨울이겠다. 그들에게 온기를 줄 수 있었으면 하는 희망을, 이번 호 표지 사진인 고양이 밥에게서 찾는다.

 

빅이슈가 고양이 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하고.

 

이번 호에서 '번아웃'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렇다. 일에 치여 자신을 잃어가는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특히 작년엔 코로나19로 인해 더 심한 번아웃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때 우리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그런 사회 분위기를 새해에는 만들었으면 한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다시 생각한다. 일이 우선이 아니다. 돈이 우선이 아니다. 권력이 우선이 아니다. 사람이 먼저다. 사람이 사람에게 짐이 되는 새해가 아니가 사람이 사람에게 희망이 되는 새해가 되었으면 한다.

 

빅이슈 242호를 읽으며, 고양이 밥을 보며, 희망은 우리에게 있음을 생각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붕붕툐툐 2021-01-09 1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월급을 받으면 빅이슈를 꼭 사요. 빅이슈는 희망이니까요~^^ 근데 몇 달 전부터 안양역에서 판매를 하시던 분이 나오시질 않네요..ㅠㅠ 어디계시든 건강히 잘 지내셔야 할텐데요..ㅠㅠ

kinye91 2021-01-09 11:50   좋아요 1 | URL
저도 제가 사던 곳에 있던 빅이슈 판매원을 못 본 지 꽤 됐어요. 그분들이 코로나19와 강추위에 더 고생을 하실텐데...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담는 심정으로 빅이슈를 구입해 보고 있어요. 모두들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해요.
 
언컨택트 Uncontact - 더 많은 연결을 위한 새로운 시대 진화 코드
김용섭 지음 / 퍼블리온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컨택트.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사항이다. 접촉을 줄여라. 5인 이상 모이지 마라. 사람이 사람가 직접 접촉하지 않고 다른 도구를 통해서 접촉해라.

 

코로나19가 이러한 언컨택트 시대를 앞당겼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예전부터 진행되어 오던 언컨택트 시대가 코로나19를 통해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코로나19를 맞이해 비대면이 강조되는 지금 사회에 잘 어울리는 책이기도 하지만, 세계의 변화를 읽고 그에 대응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사람답게 살 수 있는지를 미리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가야한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한때의 유행으로 그칠 책이 아니라 두고두고 곱씹을 책이라는 말이다. 언컨택드... 접촉하지 않음이라고 해석을 할 수 있지만, 아니다. 언컨택트는 몸과 몸이 직접 만나지 않는다는 의미일 뿐 접촉은 더 자주, 많이 일어나는 사회를 가리킨다.

 

비대면 만남이 대면 만남보다 훨씬 늘어나는 사회, 그러한 추세로 가는 사회. 그것이 바로 언컨택트 사회다. 여기에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한몫한다.

 

사람이 직접 만나지 않고도 어떤 일이든 살 수 있는 기술이 이미 개발되어 있다. 사람의 일을 로봇이 대신하는 경우도 많고, 스마트 어쩌고 저쩌고 해서 사람의 욕구를 판단해 미리 제공해 주는 온갖 기계들이 이미 우리 실생활에 들어와 있다.

 

무인 기계, 일명 키오스크라고 하는 것이 점차 확대되어 많은 부분에서 사람들과 대면하지 않고 주문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무인 배달 차량도 개발되어 시운전 중이라고 하니, 또 스마트폰으로 밖에서도 집 안에 있는 가전제품들을 조정하는 사회가 되었으니..

 

이미 우리는 언컨택트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부분에서 언컨택트 사회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고 있었는데... 주주총회 전자투표나, 재택근무, 원격수업 등등 아직은 낯설게 받아들이던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는 언컨택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용어로 정리하지 않았을 뿐인데, 코로나 19로 언컨택트 사회에 우리가 들어섰고, 또 앞으로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음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언컨택트는 연결을 거부하는 사회가 아니다. 접촉을 거부하는 사회도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연결을 추구하는 사회다. 이 책에서 그 점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언컨택트라고 해서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살고, 또 나만 잘살면 돼라는 사고, 행동을 유지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언컨택트는 단절이 아니라 컨택트 시대의 진화인 것이다. 우리가 더 안전하고, 더 편리하고, 더 효율적으로 연결되기 위해서 사람이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연결과 교류가 되는 언컨택트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국 언컨택트 사회가 되어도 우리의 공동체는 유효하다. 우리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도 유효하다. 다만 사회적 관계를 맺고 교류하고 연결되는 방식에서 비대면·비접촉이 늘어나고, 사람 대신 로봇이나 IT 기술이 사람의 자리를 일부 채울 수 있다. (263쪽)

 

기억하고 명심해야 할 말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연결 방식이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것이 바로 언컨택트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이 맺던 관계가 어떤 식으로 바뀌어도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전제가 바뀌어서는 안된다. 즉, 언컨택트 시대에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이 진정한 언컨택트 사회다.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함께 잘 설명해주고 있다. 여기에 균형잡힌 주장을 한다는 것, 즉 과학기술의 발전에 무조건적인 열광과 찬사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빛과 그림자를 함께 보여주고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할 지 고민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더욱 의미가 있다.

 

언컨택트를 단절로 보면 안 된다는 것. 비대면 접촉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앞으로의 사회겠지만, 모든 관계를 비대면만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우리가 비대면과 대면의 관계를 적절히 조율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언컨택트 사회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조심해야 할 점은 언컨택트 사회에서 빅브라더가 나올 가능성, 내 사생활이 완전히 노출되어 통제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런 사회에 살아남기 힘든 사람들도 있다는 것. 하여 기술 발전을 부정하지는 않되, 그 부작용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언컨택트 사회를 살아갈 우리들이 준비해야 할 자세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앞으로 나타날 시대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마냥 그 시대에 맞춰서만 살아가서도 안된다. 과거와 미래를 잘 융화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인류가 해온 일 아니던가. 그러니 과거에만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보되, 현재에 미래를 끌고 들어와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트렌드를 공부하는 이유다.

 

이 책에 나온 많은 언컨택트한 관계들, 방법들.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장점과 단점을 모두 잘 살펴서 미래를 현재에서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 여기 있어요
디담.브장 지음 / 교양인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대가 변함에 따라 사고방식도 바뀌어야 하고, 행동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그 전에 당연하게 여겨졌던 일들이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과거의 기준으로 바뀐 시대를 탓하고, '그대로!'를 외치며 사는 모습이 당당한, 멋있는 모습은 아니다. 그런 행동, 생각을 하는 사람을 일러 일명 꼰대라고 한다.

 

문제는 이런 꼰대들이 사회에서 주류를 이루고, 권력을 행사한다는 데 있다.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자신들의 기준을 다른 사람에게 들이미는, 들이미는 정도가 아니라 강요하는 꼰대들이 있는 한 피해자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많은 부분에서 이런 꼰대들이 활약하겠지만, 꼰대들이라는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는 부분은 '나이와 성별'이다.

 

 

'나이' 

많은 것이 자랑일 수도 적은 것이 부끄럼일 수도, 반대로 많은 것이 부끄럼이고 적은 것이 자랑일 수도 없는 그냥 살아가면서 자신의 몸이나 정신에 쌓인 시간의 합이 나이다. 많다고 지혜로운 것도, 젊다고 패기있는 것도 아니다. 나이는 어떤 광고의 말처럼 숫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나이를 내세우면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꼰대다. 그런 꼰대들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나이로 나타나는 꼰대들의 모습은 다양한데, 그보다 더 심한 것은 성별로 인한 일들이다.

 

우리 때는 그보다 더 심했어 라는 말이나, 나는 그런 의도로 한 것이 아니었어, 너 잘 되라고 그런 거야 등등 예전에는 차마 문제제기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이제는 성폭력이라는 죄로 나타나고 있다.

 

권력의 위계가 너무 심해 자신이 피해를 입어도 그냥 참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드러내는 순간 피해자가 더한 피해자가 되는 현실 속에서 감추어야만 했던, 그리고 자신이 떠나거나 그냥 참고 지내거나 해야만 했던 일들이 이제는 속속 폭로가 되고, 그것이 성폭력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아냐, 난 관행대로 했을 뿐이야라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회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아무렇지도 않게 (이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권력을 쥔 자들의 관점에서 한 이야기다. 그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겠지만, 약자,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는 너무도 큰 상처,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고, 그 상처로 인해 힘든 삶을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해결하지 못한 채로... 그러니 예전에 아무렇지도 않게라는 말 대신에 권력자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던으로 바꾸어야 한다) 넘어갔던 일들이 이제는 사회 문제가 된다.

 

당연한 일이다. 어떤 일을 판단할 때 가장 약한 자리에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어떤 성폭력도 용납될 수 없다. 그러니 관행대로란 말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이 만화는 웹툰계에서 일어났던 성폭력 사건을 다루고 있다. 피해자가 가해를 인식하고 그것을 사회에 드러내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가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위계에 의한 성폭력, 드러내기 힘든 일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고, 권력을 옹호하는 공고한 주변 환경과도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소를 해도 그 뒤에 이루어지는 지난한 과정, 그리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이상한 분위기,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또다른 분위기와도 맞서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싸움으로 사회는 변한다. 이 만화에서도 문하생으로 들어가 온갖 노동 착취에, 신체적 폭력, 성적인 희롱을 당하던 주인공이 그것이 범죄임을 깨닫고 가해자를 고소하면서 겪는 일을 하나의 물방울이 바위에 부딪히는 일처럼 표현이 된다.

 

정말로 힘든 과정이다. 너무도 힘들어서 그냥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많다. 내 잘못이 아닌데, 내 잘못인 것처럼 생각될 때도 많다. 그러나 잘못은 가해자가 한 것이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다. 이는 명백한 진실이다.

 

주인공이 포기하지 않고 결국 재판에서 이기는 과정... 통쾌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고, 그 과정 속에서 주인공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가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피해자는 이겨도 힘들다.

 

재판에서 이기고도 가해자가 나타나 보복하면 어떡하지 하는 그러한 두려움이 이 만화에 너무도 잘 나와 있다.

 

그럼에도 이것을 이겨내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 다른 사람을 돕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하나의 물방울이 바위에 부딪혀 떨어져 내렸지만 계속 되는 물방울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는 점에서 이 만화는 의미가 있다.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만화다. 그리고 이 만화의 끝장면이 진한 감동으로 밀려온다. 피해자가 피해다니면 안 된다는 것. 피해자가 그 자리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 아니 그렇게 되도록 우리 사회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에 주인공은 말한다. "저, 여기 있어요."

 

그렇다. 이제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주인공은 이제 더이상 피해자가 아니다.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도와주는 조력자다. 사회 변화의 촉발자이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당당한 주인공이다.

 

아직도 많은 분야에서 진행 중이기도 하겠지만, 만화의 마지막 장면이 진한 감동으로 여운을 준다.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저, 여기 있어요."라고, 그 자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 속에 꼭 박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