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해석 -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말콤 글래드웰 지음, 유강은 옮김, 김경일 감수 / 김영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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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은 쉽게 읽힌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 시작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결말이 끝에 가서야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낯선 사람과 대화할 때 그 사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사례들이 나온다.


핵심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낯선 사람과 이야기할 때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런데 제목이 '타인의 해석'이라고 번역을 했다. 그냥 '낯선 이와 이야기할 때'라든지, '낯선 이와 만날 때'였으면 훨씬 좋은 제목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때 낯선 사람은 자신과 관련되어 처음 만난 또는 여러 번 만난 사람이다. 여기서 예를 들고 있는 사람들은 정보부에 일하는 사람, 경찰과 관련된 사람, 그리고 학교와 관련되거나 그와 비슷한 경우에 만난 사람, 또 유명한 시인인 실비아 플라스 같이 자살을 한 사람이다.


결국 낯선 이라고 하지만 이 낯선 이는 나와 관련을 맺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니 이 책은 다른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야 서로의 갈등을 줄이면서 소통하면서 잘 지낼 수 있는가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상대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필요한 책이기도 하다. 세 가지 쟁점을 들어서 우리가 낯선 사람과 이야기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진실 기본값'이다. 우리는 낯선 사람을 만날 때 우선 의심하기보다는 환대를 하는 경향이 있다. 그 사람이 진실하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진실 기본값이고, 이 진실 기본값 때문에 종종 속아넘어간다.


당신이 누군가를 믿는 것은 그에 관해 아무런 의심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믿음은 의심의 부재가 아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믿는 것은 그에 관한 의심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107쪽)


그러니 우리가 그 사람이 진실하다고 전제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때문에 속아넘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상대를 무조건 의심하는 것보다는 믿고 시작하는 것이 우리 인류에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우리가 속는 것은 이런 경우라고 한다.


당신을 믿음의 경계 너머로 밀어낼 만큼 충분한 위험 신호가 있었는가? 만약 없었다면, 진실을 기본값으로 삼은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었을 뿐이다. (107쪽)


만약 경찰이 진실 기본값을 지니지 않고 시민들을 대한다면 어떻게 될까? 수많은 시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받을 것이다. 이 책 처음에 나온 경찰과 시민의 갈등처럼...


또다른 하나는 '투명성 가정'이다. 표정이나 행동에서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면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표정과 이런 행동, 저런 상황에서는 저런 표정과 저런 행동을 한다고 하는 투명성 가정.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가정인지는 여러 실험을 통해서 밝혀졌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의 감정을 전혀 다르게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아니 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장소와 시간, 그리고 사건에 따라서 거의 모두가 다른 표정과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전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한 표정이나 행동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면 오판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이 책에서는 여러 장에 걸쳐서 주장하고 있다.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을 예로 들었을 때, 그런 표정, 행동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깨닫게 한다.


하긴 이 책에는 더 중요한 예가 있다. 바로 영국 수상이었던 체임벌린과 히틀러의 대담. 체임벌린이 히틀러를 만나 그의 표정이나 행동을 보고 판단한 것이 얼마나 잘못된 판단이었는지, 2차 세계대전을 막을 수 없는 방향으로 체임벌린의 판단이 내려졌던 것. 


여기에 미국 판사들이 피의자들의 얼굴이나 태도를 보고 판단한 결과가 컴퓨터가 피의자들을 보지 않고 판단한 결과보다 형편없었다는 통계. 또 세계적인 경제 사기범을 직접 만난 사람들은 그가 그런 행동을 할 사람으로 판단할 수가 없었다는 사실들을 들어, 투명성 가정이 얼마나 낯선 사람을 잘못 이해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명심해야겠다고 생각한 점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술이고 또 하나는 고문이다. 술로 인한 성폭행 사건이 비일비재한데, 술은 우리의 판단력을 흐린다고, 그래서 우리나라 사법부에서는 심신미약으로 형을 감형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술은 판단력을 흐리는 근시의 위력이라고 한다. 


즉 눈앞에 있는 일만 보이는 것. 그 뒤의 일을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 정말 심신미약이 아니라 판단력이 지금 당장 자신의 앞에 있는 일에만 작동한다는 것. 그래서 술을 어느 정도 통제하는 것이 성폭력(폭력사건 등등)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 심신미약이라고 감형하는 것이 아니라. 술로 인해 이미 자기 행동의 결과를 잘 예측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많이 마시는 것 자체가 미필적 고의가 아니라 '고의' 그 자체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 고문으로 인한 자백은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 책에서 그 점을 입증하는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모건의 연구에서 이 점이 잘 나와 있는데... 이런 구절을 참고할 수 있다.


심문의 관건은 대상자의 입을 여는 것이었다. 대상자의 기억을 억지로 열어서 그 안에 있는 내용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만약 굴복을 확보하는 과정이 대상자에게 너무도 많은 스트레스를 유발해서 그가 실제로 기억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칠 정도임이 밝혀졌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모건은 성인이 아이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303쪽)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들인 군인들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억을 왜곡한다. 그러니 고문을 통해서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낯선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의 진실에 다가가기가 매우 힘들다. 자신을 복잡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남을 단순하게 판단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인 글래드웰은 이렇게 제안한다.


우리는 낯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탐색에 실제적인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절대 진실의 전부를 알지 못할 것이다. 온전한 진실에 미치지 못하는 어떤 수준에서 만족해야 한다.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올바른 방법은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하는 것이다. (311쪽)


그러면서 세번째는 행동이 특정 장소나 특정 대상과의 결합됨을 제시한다. 어떤 행동에는 장소나 대상이 결합되어 있어서, 장소를 바꾸거나 대상을 바꾸면 행동을 멈추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실비아 플라스다. 실비아 플라스를 예로 들고 있지만, 이는 자살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나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아간다.


즉 그들의 행동은 특정 장소나 대상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들의 행동을 막으려면 그 장소에서 행동하기 힘들게 하든지, 대상을 바꾸어야 한다.


경찰이 단속을 전국적으로, 수시로 하는 일이 얼마나 효과 없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장소나 대상을 고려하지 않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여 이 세 가지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낯선 이를 판단하고 행동했을 때 우리는 이렇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낯선 이와 이야기하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만약 낯선 이와의 대화가 틀어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 그 낯선 이를 비난한다. (401쪽)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경우, 책임을 나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묻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 마지막 구절이 머리를 때린다. 그래, 낯선 이를 비난하긴 쉽다. 그러나 낯선 이를 비난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자신은 낯선 이와 얼마나 제대로 이야기를 했는가를...


감수한 사람이 쓴 글(감수사)에서 타인을 파악하려 할 때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서 세 가지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 내용을 정리했다고 보면 된다.


첫째, 우리가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해석하는 것에 지독하게 서툴다는 점을 인정하자. (9쪽)


둘째, 낯선 사람을 보고 곧바로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그의 말과 행동에만 집중하지 말라는 뜻이다. (10쪽)


셋째, 낯선 이와의 대화에서는 대화 내용보다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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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1-18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한 권 다 읽은 것 같은 페이퍼네요!! 감사합니다!!^^

kinye91 2021-01-18 09:30   좋아요 0 | URL
긴 글 읽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서로를 이해하는 대화를 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즘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이었습니다.
 

  "민주주의가 유일한 대안이다"라는 문장으로 이번 호를 시작한다. 이번 호에서는 민주주의 특집이다. 도대체 민주주의가 무얼까?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하라고 하면 제대로 답변을 못하게 된다.


  그냥 막연하게 민주주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치열하게 또 치밀하게 민주주의에 대해서 고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또는 형식적 평등을 민주주의로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거나, 선거 때가 되면 동등하게 한 표를 행사하는 행위를 민주주의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어려운 문제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해석에도 너무도 다양한 편차가 있다. 극우에서 주장하는 민주주의와 극좌에서 주장하는 민주주의, 그리고 중도라고 하는 사람들이 외치는 민주주의, 중도라고 해도 다시 중도 좌파와 우파가 주장하는 민주주의에도 차이가 있다.


민주주의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식이 되어서는 안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나 싶다. 특히 형식적 또는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말에는 본질은 쏙 빼버려도 형식만 갖추면 민주주의라는 생각이 깃들어 있지는 않은지 의심하게 된다.


수차례 민주화운동을 통해서 형식적 민주주의는 달성했다고 여기는 우리 사회에서 다시 민주주의를 말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만이 아니라 전세계가 위험에 처해 있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민주주의는 폭과 깊이에서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는가?


민주주의의 정의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야 한다. 뜻을 백날 정의해도 실천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아닌가. 


이번 호에서 '민주주의가 유일한 대안이다'라는 좌담에서는 그래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있다.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를 다룬 글들이 실려 있는데...


이 중에 서로 상충되는, 그래서 서로 보충해야 하는 글들도 있다. 즉, 비례대표 연동제와 추첨민주주의... 언뜻 보면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비례대표제는 대의제를 대표하는 정치 체제이고, 추첨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정치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비례대표제가 그나마 제 역할을 어느 정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위성정당 논란이 있듯이 비례대표제가 왜곡되어 실현되었다. 그러니 비례대표제로 가자는 주장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니콜라스 코코마가 쓴 '추첨제 민주주의의 귀환'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사회주의자들은 현재의 정치제도의 많은 문제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고, 또 단지 정치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영역에까지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것을 꿈꾼다. 그럼에도 그러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그들의 도구는 여전히 과두제 방식(선거, 정당, 정치인)이다. (79쪽)


비례대표제도 문제가 많은데, 완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도입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대의제를 택해서 선거날 투표 한 번으로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이 사회에 참여해야 하는 의무와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그것도 전문적인 집단(경제적으로 중산층 이상, 교육 수준으로는 대졸 이상, 사회에서 통용되는 직업 종류에서 중간 이상 등등)에게 넘겨주고 마는 현상이니...


정치적, 경제적 사안에 대해서 참여할 수가 없는 구조이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되, 정책 입안에서는 소외되어 있는 현실. 그러므로 기껏 정책에 참여하는 길은 시위를 통한 압력 밖에 없다. 반영이 안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그러한 방법으로 제도권 밖에서 행동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니. 지금 정치권에서 행해지고 있는 수많은 입법 과정을 보라. 그리고 정치권에서 벌이는 정책들을 보라. 여기에 민중의 참여가 어디에 있는지...


그러니 많은 부분에서 민주주의에 어긋난 결정들이 나와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사태를 겪어도 정부에서 주도하는 대로 따라할 수밖에 없고, 이 사태로 인한 사회의 변화에 어떠한 참여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기후위기와 민주주의(박승옥), 기술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이광석), 자기절제와 민주주의(야보르 타린스키),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있는가(야니스 바루파키스) 등의 논의를 통해 민주주의의 정의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민주주의 사회가 될 수 있는가?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인류세를 극복할 수 있을까(인류세에 인간을 다시 생각하며-노면 위즈바)를 생각해야 한다.


결국 교육이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학습하고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독일의 민주시민교육(정현이)'은 생각해 볼 만하다. 여기에 다른 논의들도 민주주의가 우리의 삶에 필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우리 사회에 산적해 있는 수많은 난제들, 소수의 전문가들이 해결할 수 없다. 또 그들에게만 해결을 맡겨서도 안된다. 민주주의...바로 주권자들의 참여로 실현할 수 있다. 좀 더디더라도 그것이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이라는 인식을 지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참여민주주의가 가능한 분야에서부터 시도해 보아야 한다.


이번 호는 그 점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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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1-16 0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민주주의.. 진짜 답변하기 어렵네요.. 민주주의의 탈을 쓴 ‘내 맘대로 되야해!‘가 아닌지.. 정말 교육이 중요한데.. 하.. 답답한 현실입니다.

kinye91 2021-01-16 09:26   좋아요 1 | URL
답답하죠. 내 맘대로 해도 돼, 내 뜻대로 되어야 해 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닌데, 자유보다는 자율이라는, 절제와 양보에 대한 생각이 없이는 민주주의가 힘들 거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참 힘들다는 생각을 해요.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백가쟁명이잖아요. 그래도 교육에서 민주주의는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교육이 중요하고, 절대로 교육에서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 남성문화에 대한 고백, 페미니즘을 향한 연대
박정훈 지음 / 내인생의책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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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 관련 기사를 쓰면 유독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라"거나 "페미들이 오히려 갈등을 조장한다"와 같은 댓글이 달린다. 남자들이 살기에는 이 세상이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거이다.

  그들은 알고 있을까? '긍정적 시각'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도, 성별 때문에 차별받지 않아 본 자만 누릴 수 있는 여유라는 사실을. 유리 천장에 가로막하지 않고, 결혼과 출산 이후 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되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남성의 평온함은 여성의 희생과 고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7쪽)


이 책은 이 부분에 전체 내용이 나와 있다고 볼 수 있다. 세상은 여전히 기울어져 있다. 여성들이 많은 분야에 진출했지만, 여전히 가사일은 여성이 훨씬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유리 천장이 있고, 불안감에 떨고 있다.


이 점을 외면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남성들이 요즘은 남성들이 역차별 받는 사회라고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고 여러 사실들을 통해 알리고 있다.


제목이 남자들의 심리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책은 남자들의 심리보다는 여성을 대하는, 또 페미니즘을 대하는 남자들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그래도 난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착각을 하지 말자'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차별들이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태도. 그것은 특정한 남성들이 저지른 일이니 일반화하지 말라는 태도. 이런 태도들이 억압을 무시하는 정도를 넘어서 억압을 묵인, 방조하는 일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나는 아니야'하고 빠져서는 안되고, 그런 일이 벌어진 것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한다. 자신을 반성하는 태도. 침묵의 카르텔을 깨야 한다는 것.


하여 이 책은 남자들을 대상으로 썼다. 남자들이 자신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들을 깨닫도록 하고 있다. 사실 강한 쪽에 속한 사람들은 차별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이미 특권으로 인한 편리함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편리함에 불편함을 던져 다시 생각하게 하는 역할. 그 역할을 이 책이 하고 있는 것이다.


성찰과 반성, 그리고 페미니즘에 연대. 이것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다.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읽어보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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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현대문학상 수상시집을 읽었다. 최근 시들의 경향을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생각에 거의 의무적으로 읽기는 하는데... 심사위원들이 호평을 하는 심사평을 읽으면서 참, 나와 거리가 멀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하긴 심사위원들은 시의 형식이나 실험 등도 고려하면서 시의 다면성과 완결성을 판단하겠지만, 나는 내 마음에 와닿느냐 닿지 않느냐로 판단을 하니, 그들의 판단과 내 판단이 일치할 리는 없다.


  일치하지 않더라도 공통점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번 수상시집에 선정된 시들은 대체로 길다. 길어서 한 쪽으로 끝나는 시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두 쪽, 세 쪽 넘어가는 시들이 많다. 예전 같으면 단편서사시라고 했겠다. 장시라고 하거나. 도대체 사람들이 시를 읽어도 외워서 즐길 수가 없다.


아무 곳에서나 시를 읊조리는 문화를 이루려면 시가 좀 짧아야 하지 않나. 무슨 조선시대처럼 사서삼경을 달달 외우는 것도, 판소리를 외우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시가 길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찾고 받아들였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거기까지 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번 수상시집에서 유희경의 '교양 있는 사람'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교양 있는 이라는 말은 긍정적으로 쓰이는 말인데, 가끔은 비꼬는 말로도 쓰일 때가 있다. 이 시에서 교양 있는 사람은 내게 한껏 기대를 주지만,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고 계속 나를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교양 있는 사람, 우리가 참 많이 기대했던 사람, 그런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다가 윤동주 시 '팔복'이 생각났다. 교양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 '나'는 팔복에 나오는 슬퍼하는 사람이지 않나 하는 생각.


교양 있는 사람


  교양 있는 사람은 노크하며 묻는다 똑똑 계십니까 교양 있는 사람이여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이 없군요 당신을 위해 던져버렸으니까요 그것은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반듯하게 접힌 손수건을 꺼내 자신의 선한 이마를 훔친다 경치가 훌륭하군요 여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답니다


  나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기다린다 어서 그가 말해주기를 한 층 한 층 올라설 때마다 떠올렸던 영광된 기억과 희망 찬 미래의 이야기들을 거기서 얻어낸 빛나는 영감들 그리고 그가 낚아챈 상념의 거센 발버둥과 울음소리에 대해서도


  몹시 피곤하군요 그는 졸린 눈으로 나를 본다 나는 그에게 의자를 가져다주고 그러면 교양 있는 사람은 자리에 앉아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이다 이런 일은 매번 반복되지만 나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내가 기다리는 교양 있는 사람이고 언젠가 내가 기다리는 말을 해주리라는 사실을


2020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현대문학. 2019년. 15쪽. 유희경, '교양 있는 사람' 전문


어떤 면에서 윤동주 시가 떠올랐을까. '매번 반복되지만'이라는 시구에서였을 것이다. 윤동주 팔복은 마태복은 5장 3-12절을 비튼 시인데...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가 여덟 번 반복되다가 맨 마지막 구절에서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로 끝난다. 이 시구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로 바꾸고 싶어졌고, '저희가 영원히 기다릴 것이오.'로 끝내고 싶어졌다.


기다림... 기대... 그래서 환호하고, 그를 맞이하기 위해 어떤 장애물도 다 없애놓았는데 ('여기에는 문이 없군요/당신을 위해 던져버렸으니까요') 그는 내가 기대한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행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그냥 그 자리에서 침묵한다.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이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를 위해 준비했는데, 그는 나에게 왔을 뿐,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 그러니 윤동주 시에서 슬픔을 기다림으로 바꿀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태복음에는이렇게 나온다.


1.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2.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3.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4.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5.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6.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7.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8.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태복음 5장 3절-11절)


그래서 12절에서는 예수로 인하여 핍박받은 자들은 천국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팔복이다. 이들은 현세에서는 어려움을 겪지만 결국에는 복을 받는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윤동주에게는 영원히 슬플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면, 이 시 속의 '나'에겐 영원한 기다림일 수밖에 없다. 교양 있는 사람이 내게 준 것은 기다림이다.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영원한 기대.


'나'가 왜 교양 있는 사람을 기다릴까? 그것은 그가 '영광된 기억과 희망 찬 미래의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과거와 미래를 현재에 들여올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들려주지 않는다. 그냥 잘 뿐이다.


그러니 교양 있는 사람을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된다. 그의 입만을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그런 생각을 이 시를 통해서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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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 N번방 추적기와 우리의 이야기
추적단 불꽃 지음 / 이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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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도 있지


흔히 하는 말이고, 흔히 듣는 말이다. 그럴 수도 있지. 이 말은 문제 삼지 말라는 말이다. 주로 힘이 있는 자들이나 그들 편을 드는 사람에게서 나오면 우리 역시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이 말이 가끔은 약한 사람, 또는 피해자 편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면 억장이 무너진다.


그런데 정말 그럴 수도 있지 또는 너도 잘못한 것 아니냐 라는 말이 너무도 흔하게 나돈다.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우선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쉽게 해서는 안 될 말이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 이 말,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은 사라져야 한다. 단지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용납되지 못하는 말이 아니라 범죄에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특히 '성(性)'에 관해서는 이 말을 더 해서는 안된다. 자칫 하면 이 말은 이차 가해를 일으킬 수 있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 읽으면 불편하다. 상당히. 그런데 읽어야만 한다. 눈을 가린다고 사라지는, 우리가 알지 못한다고 없는 그런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범죄로 인해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냥 심심풀이로 또는 욕망을 사이버 공간에서 표출하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실제로 육체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고? 정신이 죽어가고 있는데, 또 그 피해로 인해 실제로 몸이 앓고 있는데...


사이버 성폭력, 이 말도 너무 순화시킨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범죄다. 그냥 처벌받아야 할. 아직은 양형기준이 강한 처벌을 하지는 못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파탄낼 정도로 심한 범죄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으니... 


이 책이 나오기 전과 나온 다음, 사이버공간에서 벌어지는 성착취에 대해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 아니 기대를 한다. 그래서 이런 문제에 공권력이 - 정말로 힘없는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공권력이 아니라, 민중의 지팡이라는, 파수꾼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이러한 범죄로부터 지켜주는, 더 피해를 당하지 않게 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그런 공권력이었으면 하는데 - 제대로 개입했으면 한다.


이 책은 텔레그램이라는 플랫폼에서 일어났던 - 이렇게 과거형으로만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 성착취 범죄를 추적한 '불꽃'이라는 단체의 활동과 그들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읽으면서 사이버 공간의 성착취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럼에도 공권력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 이것이 문제가 된 이후에 언론들의 보도 행태가 흥미 위주이지, 이 문제를 근본으로부터 해결하려는 자세는 많이 부족했음도 알게 되었다.


여기에 우리나라 경찰, 검찰들의 무능함도.. 텔레그램은 수사할 수 없다라든지, 이들을 잡을 수 없다라든지, 적극적으로 수사를 하지 않는 모습이라든지, 경찰에 신고를 해도 내 일이 아닌 양 하는 모습이라든지.. 참으로 답답함을 느끼는 장면이 많다.


그럼에도 공권력이 살아 있으니 성착취방을 운영한 자들을 체포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아직도 근절시키지 못했다는 점, 경찰이나 검찰이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주려면 점점 진화하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폭력, 성착취에 대해서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 제목을 다르게 읽으면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인데, 여자가 남자를 우리라고 부르기 힘든 사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삶 자체에 위협을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것도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런 위협을 느끼면서 지내야 하고, 불안감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것을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로 무마하고 눙치려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


결국 지금은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르기' 힘든 시대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성별로 인해 어떤 성별이 또는 소수의 성적지향을 지닌 사람들이 위협에 시달려서 불안감을 늘 안고 살아가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이런 사회에서 사이버 공간에서 성착취물을 공유하면서도 그럴 수도 있지라는 안일한 생각, 그것이 범죄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존재들이 양산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그럴 수도 있지가 아니라 그건 명백한 범죄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범죄로 인해 늘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 사회가 어찌 행복한 사회겠는가.


그래서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감경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는 안돼라고 하면서 엄중한 처벌을 하고, 그런 일이 모방 또 재발, 확산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 중에 법안을 정비하는 것도 포함되니... 이 책은 다양한 방면에서 성범죄를 예방해야 함을 생각하게 해준다.


특히 이 책을 읽는 것이 나도 '우리'에 속한다는 연대의 표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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