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의 사회사 - 가정상비약에서 사회악까지, 마약으로 본 한국 근현대사
조석연 지음 / 현실문화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약 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그렇지만 무엇이 마약일까 하면 별로 알고 있지 않다. 몇 년 전이던가, 아니 지금도 프로포폴이란 마취제가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분명 의약품인데 의사 처방 없이 사용하면 마약으로 취급되는 약. 


그렇다면 마약은 마약이라는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사용되었느냐에 따라 마약이냐 약이냐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마약에 어떤 것이 있을까? 언론을 통해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은 아편, 대마초, 필로폰 정도다. 그것도 정확한 마약의 명칭이 아닐 수도 있다. 필로폰이 일본식으로 '히로뽕'이라고 불리고, 그 이름이 상표로 판매가 되기도 했다고 하니, 마약이란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규정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편도 마찬가지다. 아편은 조선시대 말까지만 해도 가정에서 흔히 쓰던 상비약이었다고 한다. 진통제로써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그래서 가정에서 쓸 수 있었던 구급상비약 정도였던 것. 하지만 이 아편이 목숨을 끊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하니, 아편의 독성에 대해서는 우리 조상들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다만 이렇게 가정 상비약으로 쓰인 아편이 일제시대가 되어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고, 조선을 아편 생산지로 만든 일제는 그것으로 돈도 벌고 또 상대를 무력화 시키는 작업도 했던 것이다. 아편이 마약으로서 자리잡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아편은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 직후까지 우리나라 마약의 역사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다가 아편을 대체하는 식물이 나타났는데, 바로 대마라고 한다. 대마초로 만들어 피우면 환각작용을 일으킨다는 식물.


이 대마초가 유행하게 된 것이 미군으로부터였다고 하니, 그것 참, 일제로부터는 아편의 유행이, 일제를 대신한 미군으로부터는 대마초가 유행하다니, 마약의 역사와 우리나라 현대사의 비극이 함께 하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미군이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이 우리나라 대마초라고 하니, 미군들의 수요에 의해서 대마초로 공급하게 되고, 따라서 시골에서 식물로 키웠던 대마가 마약으로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 1970년대라고 한다. 나라에서 대대적으로 대마초 소탕 작전을 펼치고, 언론을 통해서 대마초가 마약임을 인식시켰다고 하니...


마약은 어떤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와 함께 하는 식물이냐, 규제되는 마약이냐가 결정된다. 이렇게 마약 단속을 하는 정부 차원의 규제가 국민 개개인의 건강을 위함도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권 안정을 위해서 하는 정책인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 그것은 마약에 대한 규제에 집중했지, 마약을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하는 치유에는 소홀했음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즉 마약을 국민 건강보다는 자신들의 정권 유지에 이용한 국면이 많다는 것이다. 1980년대 들어서는 이제 아편과 대마초는 수그러들고, 필로폰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이것도 또 일본하고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 마약의 역사에서 일본과 미국을 빼면 이야기할 수가 없다는 것, 이렇게 마약도 국제관계 속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이 자국에서는 규제를 강하게 하니까 필로폰을 제조하는 곳을 우리나라에 두고 밀수입을 하고 있었다는 것.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필로폰을 만들어 일본에 밀수출을 하고 있었는데, 일본이 우리나라와 협력하여 필로폰 수입을 막는 정책을 펼쳤다는 것이다.


일본으로 가지 못하는 필로폰. 어디로 가겠는가. 당연히 국내에서 사용될 수밖에 없다. 이 점을 당시 정책가들이 생각했어야 하는데, 일본과 협정을 맺으면서 그 이후는 생각을 하지 못했나 보다. 그러니 우리나라에 필로폰 사용자가 급증하게 되었다고 한다. 


쿠테타로 집권한 군사독재정권에세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은 마약 단속을 비로한 사회정화 활동을 하는 것. 그들은 국민건강보다도 정권 유지를 위해 필로폰 단속을 실시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해방직후부터 1980년대까지 나라에서 추진한 강력한 마약 단속 정책으로 인해 마약에 대해서는 국민들 모두가 부정적인 인식을 지니게 되었다.


아직까지 마약청정국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이런 역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역대 정책들이 규제에는 강했지만 치유에는 소홀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이렇게 이 책은 조선 말기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펼쳐진 마약에 대한 인식과 규제 정책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 여전히 마약은 진행형이지만, 의약품으로서 역할을 하면 약이 되고, 개인적으로 남용하면 마약이 되는 현실에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또 중독된 사람들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에 이제는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헤라클레이토스의 불 - 한 자연과학자의 자전적 현대 과학문명 비판
에르빈 샤르가프 지음, 이현웅 옮김 / 달팽이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에르빈 샤르가프의 자서전이다. 에르빈 샤르가프... 몰랐던 사람이다. 과학 쪽에 종사하는 사람이면 알겠지만, 과학과는 거리를 두고 사는 내게는 전혀 낮선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이런 나에게도 친숙한 이름인 왓슨-크릭이 발견한(?) DNA 이중나선에 큰 기여를 한 사람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샤르가프의 연구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그렇다면 이 에르빈 샤르가프라는 사람도 생물학 쪽에서는 꽤 권위를 지닌 과학자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책 제목 옆에 쓰여 있는 설명은 '한 자연과학자의 자전적 현대 과학문명 비판'이다. 샤르가프는 현대과학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았음을 알려주는 말인데...


너무도 분화되고 전문화된 현대 과학은 전문가끼리도 소통이 안되는 경우가 많을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융합이니 통합이니 하는 쪽으로 여러 학문이 교류하고 함께 작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요즘 과학풍토에 대해서도 샤르가프는 비판적일까 생각을 해보니, 그의 자서전을 읽은 결과 그는 요즘 이런 융합 과학 쪽에도 비판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샤르가프가 비판하는 과학의 방향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전문분야만으로는 더 나아갈 수가 없으니 다른 전문분야와 합쳐 나아가려고 하는 것인데,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현대 과학의 방향이다. 반면에 샤르가프는 작은과학을 추구했다. 그것은 각 분야로 더 쪼개지는 과학이 아니라 자연을 넘어서지 않는, 인간 자체를 넘어서지 않는 과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 책의 표지에 천지창조 그림 중에서 신이 아담에게 손가락을 내밀고 있는 장면에서 둘의 손가락은 맞닿아 있지 않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샤르가프는 바로 이 상태에서 자신의 삶, 자신의 과학을 한다고 한다. 떨어져 있는 이 공간을 넘어서지 않으려는 자세. 이것은 둘의 손가락을 맞닿게 함으로써 인간을 신의 위치에 올려놓으려는 현대 과학을 비판하는 그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또 샤르가프는 물리학 분야에서 이루어낸 과학 결과들은 바꿀 수 있지만, 인간이 사용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생물학 분야에서 이루어낸 과학 결과물들은 비가역적이라고, 결코 다시 되돌릴 수 없다고, 인간이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멈추지 않는다고, 그 유기체들은 스스로 살아가게 된다고,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고, 그런 점을 명심하고 추구하는 과학이 작은과학이라고 한다.


그러니 샤르가프는 동키호테가 될 수밖에 없다. 그는 고집세고 시대를 읽을 줄 모르는 과학자 취급을 받는다. 


이 책은 왜 샤르가프가 그렇게 현대 과학에 비판적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그가 살아온 시대를 통해 과학자들의 위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알 수 있다.


책의 첫 시작은 원자폭탄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그 사건을 접하고 미국을 떠날 생각을 한다. 여기서부터 샤르가프가 생각하는 과학을 알 수 있게 된다. 원자폭탄을 제조하는 프로젝트를 맨하탄 프로젝트라고, 엄청난 숫자의 과학자들이 모여 작업을 했고, 그것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으며, 결과는 인류에게 참혹한 폭탄 생산이었다는 것.


기술과 권력에 종속되는 과학은 진정한 과학일 수 없다는 것, 그런 과학이 이제는 인간의 몸을 향하면 인간 복제로까지 나아가게 되는 상황이 되는 것에 대해서, 그는 과학이 선을 넘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다시 책의 끝부분에 가면 그의 생애를 한 장으로 정리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는 첨단과학기술시대를 살고 있다. 샤르가프가 우려했던 부분에서 더 나아가고 있는 중. 결과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 결과가 샤르가프의 예측을 빗나가게 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더 많은 고려, 더 많은 책임, 더 많은 윤리들이 과학에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을 따름이다. 지금 나는. 그럼에도 샤르가프의 경고, 또는 우려는 깊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친애하는, 인민들의 문학 생활 - 북한의 페미니즘 소설부터 반체제 지하문학까지, 최신 소설 36편으로 본 2020 북한 인민의 초상
오창은 지음 / 서해문집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제목을 보고 북한 소설에서 어떻게 페미니즘 모습과 반체제 모습이 나타나는지 궁금해서 구입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페미니즘이나 반체제 모습은 아주 조금 나온다. 이 책을 이루는 주요 부분이라고 할 수 없다. 주요 부분은 1990년대 이후 북한 소설의 전체적인 모습이다.


그 전체적인 모습 속에서 페미니즘이나 반체제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소설이 등장하고, 그것에 대한 설명이 있지만, 이 책을 아우르는 것은 북한 소설에 나타난 북한 사람들의 생활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는가다.


북한은 지리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마음으로는 가장 멀리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마음으로라고 이야기한 것은 여전히 북한에 대해서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고, 북한에 대한 정보를 자유롭게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화라고 하고, 정보화 시대라고 하지만 북한에 대해서만은 예외다. 그래서 마음의 거리를 재보면 북한은 저 멀리에 있다. 여기에 몸의 거리도 역시 가장 멀다. 우리 몸이 자유롭게 그곳을 드나들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정보가 한정되어 있다. 한정되어 있으니 북한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역시 그 한정된 정보 속에서 숨어있는, 또는 숨겨진 정보를 찾아내야 한다. 그것이 무척 힘든 일이라고 한다.


이 책에는 많은 북한 소설이 나오는데, 연구자는 운이 좋게도 (세상에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그 나라 소설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운이 좋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모습도 역시 북한은 몸과 마음으로 참 멀리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한때 '멀다면 안 되겠구나'라고 해서 그 말이 유행했었는데, 사실 멀다. 아주 멀다. 이것이 현실이다) 연변에서 북한 소설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그것도 1990년대 이후에 나온 소설들을 읽을 수 있었고, 그렇게 읽은 작품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그러니 이 책에는 우리가 전혀 읽지 못했던 북한 소설들이 다수 등장한다. 물론 제목과 작가, 그리고 대략적인 내용만 우리는 알 수밖에 없지만.


북한 문학은 '노동과 일 중심의 서사, 비극이 없는 낙관주의, 개인주의에 대한 비판과 집단주의 의 추구' 등을 특징으로 한다. (23쪽)


아마도 이 말이 북한 소설을 정리하는 가장 좋은 말일 것이다. 이 책에 나온 많은 작품들도 이런 내용을 주로 담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만 문학 작품을 창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학은 집단주의보다는 개인주의 쪽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고, 세상은 낙관으로만 일관되지 않으니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비극적인 결말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을 소설이 외면하면 과연 그 작품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겠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북한 소설의 특징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우리나라 독자들이 북한 소설을 읽더라도 반발심을 지니게 되는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수령과 당에 대한 찬양은 북한 문학의 장르적 관습이다. (215쪽)


수령과 당에 대한 찬양이 소설 속에 나와야 한다면, 그 소설이 비극으로 갈 수가 없다. 낙관주의, 집단주의 특성을 지니게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1990년대에 겪었던 고난은 그들로 하여금 노동과 일 중심의 서사를 소설 속에서 구현하게 할 수밖에 없었던 생각이 든다.


이 점을 감안하고, 소설 속에 숨어 있는, 노동과 일 중심의 서사 속에 숨어 있는 장시간 노동, 굶주림, 여성보다는 남성 중심의 생활 등등을 찾아내고 북한 사람들의 생활을 재구성해내는 모습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북한에서 반체제적인 작품이 전혀 없을까? 아마 공식적으로 출판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지만, 비밀리에 유통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비밀리에 북한 내에서 유통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북한 체제를 비판한 작품이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적이 있다고 한다.


반디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사람이 쓴 '고발'이라는 소설을 통해 체제 속의 소설과 체제 밖의 소설을 비교할 수 있게 된 것을 넘어 북한 사람들의 알려지지 않은 생활, 감정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몸과 마음으로 거리가 먼 북한 소설. 읽기도 힘들고, 이해하기도 힘든, 숨어 있는 의미, 즉 행간을 읽기도 힘든 소설들을 연구하는 사람이 최근에 나온 북한 소설들에 대해서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페미니즘이나 반체제 문학에 대해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북한 사람들의 생활을 소설을 통해서 어느 정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은 충분히 하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북한 소설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게 된다면 이 책이 아마도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해는 작년과 달리 삶이 보였으면 한다. 물론 삶은 늘 보였겠지만, 작년엔 코로나19로 인해 암담하지 않았던가. 우리들 삶이 전세계를 덮친 감염병으로 가려져 있지 않았던가.


  감염병조차도 평등하게 작동하지 않음을 우리는 한 해 동안 똑똑히 겪어보지 않았던가. 그런 감염병의 시대에 삶이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평시에도 삶이 잘 안 보이던 사람들이었음을... 그나마 그들이 볼 수 있던 쪽창도 감염병은 막아버리고 말았음을 온몸으로 겪었던 한 해였다.


  '삶이보이는창 124호'는 겨울호지만 새해 시작을 알리는 호이기도 하다. 그러니 추운 겨울에서 새로운 시작을 보고, 봄을 기대하게 하는 책이기도 한 셈.


  이 책에 실린 글들 역시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희망을 지니기 위해서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야만 하니, 우리 사회에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을 대변하는 잡지라고 해도 되지만, 대변이라는 말보다는 그들과 함께 하는, 또는 그들이 만들어 가는 잡지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그래야 '삶이 보이는 창'을 우리들 모두가 지니게 될 테니 말이다.


특히 '삶이 보이는 창'에는 '노동'에 관한 글이 빠지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노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노동없이 살아갈 수 없음에도 노동을 천시하고 있었던 것이 현실 아니던가. 그러니 노동을 강조한다기보다는 노동이 제 자리를 잡도록 해야 한다는 삶창의 글들은 여전히 소중하다.


'노동'에 관한 글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잘 실려 있는데, 이번에 '시인의 눈'에서 다룬 이주노동자들의 시는 우리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들을 다루고 있는 방송들을 보게 되면, 그들로 인해서 우리나라가 어려웠던 시절에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논조로 방송을 이끌어가면서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경우가 많은데,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나라로 노동하러 온 사람들 아닌가.


그 나라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힘들어 하는 일들을 했던 사람들이 파독 광부, 간호사들 아니었던가. 마찬가지로 지금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나라에서 힘든 일들, 남들이 많이 꺼리는 일들을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는 기본적인 노동을 그들이 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들에게도 기본적인 인권, 정당한 대우를 해줘야 하는데, 아직도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그러니 그들이 쓴 시집을 읽을 필요가 있다. 그들이 어떤 감정을 지니고 우리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잘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이렇게 '삶이 보이는 창'은 우리에게 삶을 보여준다. 우리들이 가끔은 눈 감아 버리는 삶들이 엄연히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보여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들도 자신들의 삶이 있음을, 그들도 삶을 볼 수 있게 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함을 여러 글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래, 올해는 모두에게 '삶이 보이는' 그런 한 해였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내 안의 차별주의자 - 보통 사람들의 욕망에 숨어든 차별적 시선
라우라 비스뵈크 지음, 장혜경 옮김 / 심플라이프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런 책을 읽으면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 눈에 있는 티끌은 잘 본다'는 말이 생각난다. 내가 살아오면서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차별주의자들이 있는지 생각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차별주의자라고 쉽게 단정짓고 판단한다.


그런 판단 자체가 이미 차별주의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랬다. 내가 지닌 차별주의자로서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나 역시 쉽게 편가르기를 하고, 내 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주장에는 우선적으로 호감을,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주장에는 비판적이기보다는 악의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확증편향'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꾸만 내 의견을 채우는 사실들, 책들, 사람들, 주장들만 받아들이고, 나와 다른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억측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내치기만 한 것은 아닌지...


민주주의란 상대의 주장에 대해 귀 기울여 듣는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 이룰 수 있다고 하는데,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을 내 관점에서 왜곡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그만큼 이 책에는 다양한 차별의 형태들이 나온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차별들. 스마트 시대가 되었다고 했는데, 여기서도 차별이 있음을, 우리가 스스로 빅브라더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음을, 자아를 중시하면서도 오히려 남의 이목을 끌려고 하는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니...


여기에 보태서 소비에서 일어나는 차별. 어쩌면 우리는 소비하는 모습을 통해서 차별을 공고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단지 특정 브랜드를 소비한다는 것을 떠나서 유기농, 공정 무역 등등에서도 차별적 시선이 담겨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가 한 말 '독선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250쪽)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변치 말아야 할 것은 도덕적인 우월감과 경멸을 조장하는 세력을 잘 살피고 공개해 널리 알리는 일, 그리고 남을 향하는 엄격한 시선을 자주 자신에게로 돌리는 일이다. 이런 패턴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적어도 이 점에서는 우리 모두가 평등한 셈이다. (251쪽)


쉽지 않은 일이다. 엄격한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는 일은. 그럼에도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민주주의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다. 존중은 꼭 그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 사람의 말을 잘 듣고, 사실 관계를 파악하며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 실현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 주장보다 낫다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 정치를 한다면 인신공격을 일삼는 행위나 또는 패거리 정당 문화로, 자기 정당의 주장만이 옳다고 하는 행태는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태가 사라지게 하는 것은 결국 우리 몫이다. 우리 역시 이러한 패거리 문화에 속해 너무도 쉽게 한 편의 의견을 지지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자신에게 엄격한 시선을 돌리는 것이 필요하다.


일, 성, 이주, 빈부 격차, 범죄, 소비, 관심, 정치라는 8개 분야로 나누어서 이 분야들에 차별적 시선들이 어떻게 들어와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틈나는 대로 다시 펼쳐서 읽으면서 내 사고방식, 행동방식에서 차별적 시선이 작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