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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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 지 오래된 책이다. 개정판이 나왔지만, 도서관에서 옛날 판을 빌려 읽다. 늦은 감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많은 고민을 주는 책에 이르다 늦다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개정판이 나왔다는 얘기는 이 책이 아직도 쓸오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이 책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


머리 좋은 사람이 열심히 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고, 열심히 하는 사랆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즐기는 사람은 고민하는 자를 능가하지 못하는 법이다. 여성주의는 우리를 고민하게 한다. 남성 중심적 언어는 갈등 없이 수용되지만, 여성주의는 기존의 나와 충돌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주의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남성에게, 공동체에, 전 인류에게 새로운 상상력과 창조적 지성을 제공한다. 남성이 자기를 알려면 '여성 문제(젠더)'를 알아야 한다. 여성 문제는 곧 남성 문제다. 여성이라는 타자의 범주가 존재해야 남성 주체도 성립하기 때문이다. (여성주의는 보편과 특수라는 이분법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지만) 젠더는 특수한 문제도, 소수자 문제도 아니다. (12-13쪽)


이제까지 유일한 것으로 군림해 온 목소리가 조금 낮아질 때, 비로소 다른 목소리가 들리게 된다. 남성과 여성의 조화를 파괴하는 것은 가부장제지, 여성의 '직설적인' 목소리가 아니다.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회는, 갈등 없는 사회가 아니라 가능성이 없는 사회다. (43쪽)


직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평화운동, 환경운동 등 이른바 신사회운동이나 '탈근대적' 사회운동에서도 성(gender)은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닌 경우가 많고, '평화운동가'라고 해서 저절로 성평등 의식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254쪽)


인용한 세 부분을 더 생각해 본다. 여성주의는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로 만들지 않고 여럿이 있음을 드러낸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존하는 사회를 꿈꾼다. 다름을 같음으로 치환하려 하지 않고 (우리가 남이가!)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고, 그 다름의 소리들이 사회에서 드러날 수 있도록, 그래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존하는 사회를 꿈꾼다.(그래, 우리는 남이다. 그런 남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 바로 사회다)


이러한 여성주의는 남성성에 갇힌 남성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남성에게도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들은 질문을 만든다. 질문은 곧 자명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가부장제라는 단일한 목소리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그러니 남성과 여성의 조화를 파괴하는 것이 어느 목소리인지 생각해야 한다. 왜 다른 목소리들이 나왔는지 한걸음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그간 조화롭다고 생각했던 것이 강자의 일방적인 문화에 불과했다는 것, 약자의 희생 또는 약자의 희생이 드러나지 않고 당연시 되었던 것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정희진이 이 말은 새겨두어야 한다.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회는, 갈등 없는 사회가 아니라 가능성이 없는 사회'라는 이 말.


그렇다면 소위 진보진영이라는 곳에서 불거지는 성폭력 문제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진보'라는 말에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진보'라는 말로 다른 갈등을 뭉뚱그리고, 무마했던 것은 아닌지.


'진보'는 오히려 다른 목소리들을 드러내고, 그것들이 제시하는 문제제기에 관심을 기울이며 좀더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진보'는 더 고민하고 더 질문하고, 더 성찰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15년도 지난 과거에 쓴 글이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만큼 페미니즘의 도전은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지만, 모든 문제가 끝났다고 여길 수 없게 한다. 모든 문제가 끝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문제들이 계속 나타나는 것, 그것은 사람들이 질문을 한다는 것이고, 좀더 나은 사회를 향한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목소리들을 누를 것이 아니라 왜 그런 목소리들이 나왔는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정희진의 이 책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소통과 공존'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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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성스러운 FoP 포비든 플래닛 시리즈 1
김보영 지음, 변영근 그래픽 / 알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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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서로를 의식하지 않고 모두 잘 어울리며 함께 일하면서 살아가던 세상이 갑자기 너와 나를 분리하고, 남녀를 분리하고 다른 것들로 서로 나뉘어 갈등하게 되었다. 


이것이 지금 우리 인류가 살아가는 현실이다. 여기에 더해서 우리는 자연까지도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하든 인간에게 종속시키고 있는 중이다. 인류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구를 위험에 빠뜨리면서도 그런 행위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자들, 철학자들, 인문학자들, 종교학자들 모두 다양한 대답을 내놓았지만, 답은 없다. 답은 없이 오로지 상상만이 있을 뿐이다. 서로가 서로를 억측이라고, 또는 해답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을 뿐.


이렇게 논리적으로 대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호소하는, 우리들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문제를 끌어내고, 어떻게 답을 찾아야 하는지, 답을 찾는 것만이 아니라 그 답을 실행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바로 문학이다. 특히 소설은 인물들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소설은 바로 현실이기 때문이다. 상상이 현실인 세계, 그런 세계가 소설인데, 이 소설은 특이한 발상에서 시작한다. 전지전능하고 사랑과 자비로 인간에게 다가와야 할 신이 만약 차별주의자라면? 이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이 이렇게 다름을 차별로 전환시킨 데에는 만약 신이 있다면 신도 어떤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래서 소설은 인류가 행복하게 모두 동등하게 잘 지내던 시대로 시작한다.


  그들은 모두 일을 같이 했다. 들에서는 다 함께 무장을 하고 짐승을 잡고, 집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같이 아이를 돌보며 요리를 했다. 정사를 논하는 자리에서도 모두 함께였으며 평등하게 공사를 정했다.

  신이 보기에 세상에는 좀더 질서가 필요했다. 그래서 신은 지상에 내려와 사람들에게 말했다.

  "남자는 우수하고 여자는 열등하다."

  신은 그 말을 남기고 도로 하늘로 올라갔다. (15쪽)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신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찾기 시작한다. 왜 신이 그런 말을 했을까? 차이는 단 하나... 남자에게는 고추가 있었다. 이 달랑 고추 하나 가지고 남자들은 자신들의 고추를 애지중지하면서 다르게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는...


  신은 다시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증오가 세상을 휘감고 있었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를 증오했고 부모와 아이들이 서로를 증오했다. 늙은이와 아이들이 서로를 증오했다. ... 다른 세상 한구석에서는 권력자들이 과학자들과 성별이 모호한 이들을 신의 이름을 살해하고 있었다. ... 이에 신은 만족하며 말했다.

  "이제야 세상에 질서가 잡혔구나." (25쪽)


섬뜩하지 않은가. 신이 차별주의자라면 우리 인류는 바로 이렇게 살아가게 된다. 소설 속 모습이 아니라 지금 우리 모습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별 차이도 아닌 것으로 이렇게 차별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


차별을 없애나가려는 노력이 일어난다. 그렇게 세상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때 소설은 더 큰 상상력을 보여준다. 함께 평등하게 살아가는 일이 그리 쉽지 않음을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다.


신이 광화문에 내려온다. 거대한 모습으로... 이런 신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제 다른 방도를 찾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협력하는 모습이 아니라, 신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고, 그것을 자신이 위대하다고 하는 근거로 삼는다.


신이 차별의 근거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런 신(소설에서는 신 중에 알파다)만 있지는 않다.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인간으로 재림해 몸소 경험하는, 즉 차별을 경험하는 신들도 있다. 오메가, 입실론, 감마 등등. 


그들은 광화문에 재림한 신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한다. 즉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를 멈추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소설은 차별주의자인 신을 등장시켜 인간들의 삶을 조망한다. 신이 차별주의자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모두들 멸망할 때까지 차별주의자로 살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을 것인가?


찾는다. 찾아야 한다. 모두 차별주의자로 산다는 것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신과 비슷한 형상을 지녔다고 안전한가? 아니다. 그것은 다른 면에서 신과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에 의해 도전받고 투쟁의 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그렇게 신이 우리 인간은 어떤 질서를 찾을 것인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질서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서로가 협력해서 좀더 평화롭고 안전한 생활을 질서로 삼을 것인가? 답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번에는 이 소설을 다시 생각해 보자. 신이 차별주의자라고 해도 우리는 평화로운 질서를 추구해야 하는데, 과연 신은 차별주의자인가? 아니라고 모두들 답하지 않을까? 신이 차별주의자가 아니라면 우리 인간들이 서로 다름을 이유로 차별하고 투쟁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소설은 결국 우리 모두가 신이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가 신이라면 차이가 있을까? 차이는 있겠지만 그것이 차별로 가는 차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함께 어울리며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사람들. 그들을 소설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신의 의지는 언제나 신의 읾을 입에 담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었다. 그들은 본인 자신이 신이기에 신을 소환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이 세상에 뿌려진 신의 파편이며 지상에 내려온 신,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88-89쪽)


자, 우리 모두 신이 되자. 세상에 차별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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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에 두 번 [빅이슈]를 만난다. 정확한 명칭은 [빅이슈 코리아]라고 하겠지만, 줄여서 그냥 [빅이슈]라고 한다.


  주로 우리나라 사람들 이야기가 실렸기 때문인데, 가끔 다른 나라 이야기를 번역한 글이 실리기도 한다. 


  우리나라뿐이 아니라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되는 순간이다. 이번 호에서는 독일에서 나이 든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물론 젊은 사람들도 함께 살아도 된다) 주거 공동체를 만든 사람 이야기가 실렸다.


  [빅이슈]가 함께 살아가는 삶을 추구하고 있으니, 이런 글들이 반갑고 또 고맙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에 방치되어 쓸쓸히 사라져가는 삶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모습, 또 어려운 사람들끼리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독일 브레멘 전 시장인 헤닝 쉐르프가 시도한 삶. 그 삶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늙어가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이번 호에 실렸다. 그렇다. 주거공동체. 주택난이 너무도 심각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집을 한채 장만하려면 평생을 모아도 힘든 상황.


그런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데 주거공동체가 도움을 줄 수 있다.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도 젊은 사람들이 이러한 주거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젊은이들만이 아니라 나이 든 사람들도 주거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꼭 나이로 주거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살아갈 수 있으면 젊은 사람들과 나이 든 사람들, 그리고 토착민들과 이주해 온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이 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집에 관한 글 [빅이슈]이기 때문에 더 가슴에 다가오는데, 이번 호에서는 일에 관해서 이야기를 한다. 일은 삶을 지탱해 주는 주요 요소다. 그런데 예전에는 평생을 한 직장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면, 현대는 여러 직장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일은 곧 내가 가는 길이 된다. 나는 한 길만 갈 수는 없다. 내 앞에 주어진 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기 때문이다. 이 여럿의 길 중에서 내가 선택한다. 일도 마찬가지다. 여러 일 중에 내가 선택한다. 그런 삶을 살아간다. 길을 가다 잘못 들었다고 생각할 때 다른 길로 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일을 택해 살아가다가 그 일에서 자꾸만 지쳐가는 나를 발견할 때 과감히 멈출 수도 있어야 한다. 일에 치여 또는 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이번 호에서는 그래서 과감하게 일을 바꾼, 삶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 이야기가 실렸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나는 나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나는 여러 일을 할 수 있다. 그 일을 하면서 내 삶을 살아간다. 그렇게 일은 길이다. 내가 살아가는 길. 그러므로 한 가지 일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말자. 실패한 것이 아니라 내 길을 가기 위해, 그 길이 나올 때까지 내가 걸어온 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 내 길을 가기 위해 나는 수많은 길을 걸어와야 했다고, 이제 이 길을 간다고, 또 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그때 또 선택하면 된다고. 그렇게 [빅이슈] 이번 호는 일이 길임을, 삶이 일이고 길임을 보여주고 있다.


[빅이슈]의 좋은 점을 몇 가지 추리면 

[빅이슈]를 통해 다른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

[빅이슈]를 통해 따스한 마음을 지니게 된다는 것

[빅이슈]를 통해 새로운 책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

[빅이슈]를 통해 다양한 삶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

[빅이슈]를 통해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는 것


더 많은 좋은 점들이 있겠지만 우선은 이 정도.  


저번 호에 이어 이번 호 표지도 그림이다. 표지 그림을 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커버 스토리가 소중한 [빅이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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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라이어 -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
말콤 글래드웰 지음, 노정태 옮김, 최인철 감수 / 김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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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라이어'


오래 된 책이다. 글래드웰이 쓴 "타인의 해석"을 읽고 그 전에 쓴 이 책도 읽게 되었다. 뛰어난 사람이라는 뜻보다는 성공한 사람,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으로 풀이를 하는 것이 좋은 제목인데...


책의 앞부분에 아웃라이어에 대한 뜻이 나와 있다. '1. 본체에서 분리되거나 따로 분류되어 있는 물건 2. 표본 중 다른 대상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통계적 관측치'라고 되어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보통에서 벗어난 존재라는 뜻이다.


사람으로 치면 뛰어난 사람, 한 마디로 정리하면 천재라고 할 수 있다. 단지 천재라고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에서 그 재능을 발휘한 사람으로 해야 한다. 천재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중에서 사회에서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사람도 많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러한 천재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했는지를 살펴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누구나(물론 재능에 따른 구분은 있다) 천재로 태어날 수는 있지만 누구나 재능을 펼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보거나 들어본 삼국지를 보라. 제갈공명이라는 이름은 잘 알고 있지만 방통이라는 이름은 잘 모른다. 제갈공명이나 방통이나 능력은 비슷했다고 할 수 있는데, 공명은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했고, 방통은 다 발휘하기도 전에 죽음에 이르고 말지 않았던가. 같은 능력이라도 서로 다르게 발휘하고 있음을 이 예에서 잘 알 수 있다.


또한 아웃라이어를 읽으면서 사자성어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떠올랐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란 뜻으로 감추려고 해도 드러나는 존재라는 뜻인데, 뛰어난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런데 주머니 속의 송곳이 아무리 드러나 보여도 주머니에서 꺼내 쓰지 않으면 끝이다. 쓰일 수 있도록 사람, 환경, 시대 등등을 잘 만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머니 속에서 그냥 잊혀질 뿐이다.


천재들도 마찬가지다. 성공한 소수의 천재들이 천재로 남아 있는 이유는 그들은 사회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고 했듯이 그들은 성공했기에 천재로 불리는 것이다.


아웃라이어가 된 것은 그들이 사회에서 재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즉,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특출한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여지없이 부수는 것이 바로 이 책이 하는 일이다. 이 책은 그들이 재능은 성공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한다. 성공에는 재능에 더해서 더 많은 것들, 가령 문화적 유산이나 가정 환경, 태어난 시기, 자라난 시기 등과 같은 시대, 그리고 무엇보다 노력(무려 1만 시간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 점을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 다른 사람의 재능을 부러워하기만 하고, 자신의 재능 없음을 탓하는 것은 실패로 가는 지름길임을 알게 된다. 재능 탓을 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9장 마리타에게 찾아온 놀라운 기회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가정 형편도 좋지 못하고 그렇다고 아주 뛰어난 재능도 있지 않고, 문화적 유산도 별로 없는 마리타라는 인물이 나름대로 재능을 펼쳐가게 되는 조건, 그것은 그런 사람들도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는 일이다.


그런 역할을 학교에서 할 수 있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9장이다. 이런 학교 교육이 가능하려면 가정 형편에 따라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조건이 엄청나게 다르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것을 네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하는 것이 허구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미 조건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출발선이 달라진 사람들이 있음을, 그 사람들도 출발선을 교정해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면 다양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 재능은 아주 특출한 한 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재능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그들의 재능을 숫자로 명확히 나눌 수 없고 어느 정도 수준이면 그 다음부터는 환경과 노력에 따라 달라짐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오죽하면 이렇게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고 한다.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복잡한 입학 과정 대신 일정한 범위에 속하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추첨할 것을 엘리트 학교에 권하기도 했다.

  "사람들을 두 범주로 나누는 겁니다. 충분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요. 충분한 사람들은 추첨 통에 들어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못 들어가지요."

  물론 슈워츠는 자신의 생각이 받아들여질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완벽하게 옳다. (102-103쪽)


우리나라로 치면 대학에서 공부할 능력이 있는 학생을 측정하는 것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일명 수능)인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를 등급별로 나누어 다시 피말리는 서열화를 시키고 있으니... 이 책에 의하면 일정 등급의 학생들은 비슷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들에게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 문제, 두 문제로 등급이 갈리고 그 다음에 그들에게 주어진 교육 환경, 그리고 사회 인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인생의 길이 확연히 달라지고 만다. 더 많은 사람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소수만을 위한 등급화로 원천봉쇄하고 있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소수의 몇몇을 위해 재능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낙오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재능 있는 사람들이 소수가 받을 수 있던 문화,교육, 경제 등등의 혜택을 받게 해야 한다.


이 책 아웃라이어는 소수의 천재들은 타고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에게는 비슷한 재능이 있다. 아니, 적어도 소위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과 비슷한 재능을 지닌 사람은 많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몇몇에게 가려 재능을 발휘할 기회도 잡지 못하고, 또 일찍 좌절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많은 재능있는 사람들이 재능을 발휘해서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출발선이 달라진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보정해주어야 하고.


여러모로 생각할거리가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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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제목이 참 마음에 든다. 삶이라는 직업이라니... 우리 삶이 직업인가 생각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직업이 바로 우리들 삶을 지탱해 주니까.


  직업을 일이라고 한다면, 워라벨 (work and life balance 라고 하며 이 단어가 합쳐진 뜻. 일과 삶의 조화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요즘, '삶이라는 직업'이라고 말한 시인의 통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삶이라는 직업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이면 누구나 갖게 되는 직업이다. 버릴 수 없는 직업. 이 직업에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삶을 살지, 또 자신을 갉아먹는 삶을 살지, 반대로 남에게 도움이 되고, 자신의 삶도 윤택해지는 삶을 살지 선택해야 한다.


삶이라는 직업이라는 말에는 우리가 삶을 선택하고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삶이라는 직업에서 얼마나 많은 소리들을 듣는가?


소리 없이 살기는 힘들다. 하지만 소리가 심하면 더 살기 힘들다. 요즘 층간 소음 문제로 심각한 갈등 에 빠진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들려오는데... 소음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부정의 뜻이 담겨 있으니.


그런데 소음 가운데서도 긍정의 의미를 지닌 소음이 있다. 바로 '백색소음'이다. 이런 백색소음은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고 하는데...


시인의 이 시집을 읽다가 백색소음을 만났다. 빛의 삼원색은 섞이면 흰색이 된다고 하는데, 많은 소리들이 섞여 백색소음이 되면 그것이 우리들의 삶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시를 보자.


세상 모든 원소들의 백색소음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세상을 가져온다


  바나나가 그려진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열어 음악을 들으면 눈밭 위에 앉아 짹짹거리는 작은 새들의 소리처럼 그리운 소음


  소음이 그리운 날은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빠져나와 하루 종일 닉 케이브를 듣는다


  닉 케이브라는 소음의 천사를 나는 예전에 알았다


  그가 전직 천사였다는 것을 안다


  너무 아름다운 노래 때문에 타락 천사가 된 그를 나는 인간적으로 듣는다

 

  그의 노래는 여전히 소음 속에서 침묵을 추구한다


  한없이 떠들어야만 더욱더 견고한 고독이 완성되므로 여전히 사랑에 빠져 노래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안쓰럽다


  왜 그가 타락 천사가 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말해준다


  사실 말은 필요 없는 것이다


  세계가 우리의 비극을 감싸 안으므로 우리는 장엄하게 아름다운 비극이다


  여기까지다, 시인이 할 일은 세상 모든 원소들을 백색소음에 데려다주는 일


  그 다음은 이 세계의 일, 모든 소리의 가청 주파수대를 의미하는 백색소음 속에서 시인은 침묵과 고독이라는 물질로 새로운 시의 원소를 만드는 연금술사


  여기까지다, 여기까지가 침묵의 음악이고 그 이후는 침묵을 또 다른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 순간 누군가 안쓰럽게

  이 시를 읽고 있을 것이다


  타락 천사이었거나

  전직 천사였거나

  아마도

  당신이 음악이었거나


박정대, 삶이라는 직업, 문학과지성사. 2015년 초판 7쇄. 87-89쪽.


그렇게 이 시를 끝까지 읽어내려가다 보면 나도 천사나 음악이 된다.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니 이 시 다시 읽자. 천사가 되고 싶다면.


'시인이 할 일은 세상 모든 원소들을 백색소음에 데려다주는 일 // 그 다음은 이 세계의 일, 모든 소리의 가청 주파수대를 의미하는 백색소음 속에서 시인은 침묵과 고독이라는 물질로 새로운 시의 원소를 만드는 연금술사 // 여기까지다, 여기까지가 침묵의 음악이고 그 이후는 침묵을 또 다른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시를 우리에게 삶과 일을 합쳐 백색소음을 만든다. 그렇게 시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들을 하나로 만든다. 그런 시를 읽는 우리는 백색소음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어찌 천사가 아닐 수 있겠는가.


그러니 가끔은, 시를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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