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파라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3
후안 룰포 지음, 정창 옮김 / 민음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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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문학에 관한 책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를 읽다가 발견한 작가다. 내게 좋은 책이란 바로 이렇게 다른 책으로 인도하는 책이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많이 읽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책을 통해 소개받고 읽기도 한다.


후안 룰포라는 작가는 처음 듣는 이름인데,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는 고전의 반열에 든 작가라고 한다. 특히 이 소설 "뻬드로 빠라모'는 여러가지 기법이 실린 작품으로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한다.


마술적이라는 말과 사실주의라는 말.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 말이 하나로 합쳐져 환상적인 공간, 상상의 내용이 펼쳐지지만 그것이 사실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 되고 있으니... 


라틴아메리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환상을 소설에서도 느낄 수 있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내용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꼬말라'라는 장소. 이곳에는 이제 사람이 살지 않는다. 이 도시는 파괴되었다. 이 도시로 뻬드로 빠라모를 찾아오는 후안 쁘레시아도로부터 소설은 시작한다. 그런데 그는 곧 죽는다. 죽는 과정이 나와 있지도 않는데, 죽어 있다. 그리고 죽은 자들이 이야기를 한다.


소설이 중간으로 넘어가면 후안 쁘레시아도는 더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이제는 뻬드로 빠라모가 등장한다. 이렇게 소설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뻬드로 빠라모의 아들인 후안 쁘레시아도가 서술자로 등장하여 '꼬말라'가 지닌 면모를 보여주는 부분.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리고 그도 곧 유령이 되어 유령들과 대화를 한다. 또 그는 옆 무덤에서 나오는 소리도 듣는다. 이 소리들이 다시 과거로, 유령들의 세계라기보다는 뻬드로 빠라모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


혼란에 휩싸인 멕시코. 피폐한 민중들의 삶. 여기에 절대자로 군림하는 토호. 이도저도 못하는 종교. 그리고 반란. 이런 면들이 모두 표현되고 있는 소설인데...


뻬드로 빠라모를 통해 토호가 온갖 비행을 저지르면서도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모습. 부패한 정부도, 이들에게 봉사하는 지식인들의 모습을 표현하면서 당시 혼란스러운 멕시코의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죗값이라고 하는데... 뻬드로 빠라모가 죗값을 제대로 치렀으면 상황은 나아지겠지만,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수사나의 죽음으로 오히려 꼬말라를 파괴한다. 죗값을 치르기는 커녕 더 큰 죄를 더하고 만다.


그의 죽음은 이러한 치르지 못한 죗값을 보여주고 있고, 그 결과 꼬말라는 안정되기보다는 계속 혼란에 빠지게 된다. 꼬말라에 사람이 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가 죗값을 치렀다면 "꼬말라'를 그 아들인 후안 쁘레시아도가 재건하는 모습으로 그렸을 텐데...


그러지 않은 이유, 그 아들이 죽어버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죗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세가 잘못을 딛고 일어설 수 없는지경에 이르게 만든 사람. 뻬드로 빠라모. 


자, 이것은 "꼬말라"라는 환상적인 장소에서 펼쳐지는 사람들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라틴아메리카가 한동안 혼란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마술적 사실주의 표현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결코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다양한 기법들이 쓰여서 여러 길로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한다. 이제 "꼬말라"에는 더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다. 오는 사람도 없다. 


소설은 이렇게 황폐한 꼬말라로 끝나지만 라틴아메리카는 그 황폐함 속에서 다시 일어서고 있다. 아마도 작가가 "뻬드로 빠라모"의 죽음으로 소설을 끝낸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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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 독재부터 촛불까지, 대한민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서가명강 시리즈 8
강원택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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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우리나라에 형식적 민주주의, 또는 절차적 민주주의는 확립되었다고 말한다. 쿠테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나라, 선거를 통해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나라, 간혹 반발이 있기는 하지만 선거 결과에 승복하는 나라, 몇몇 분야에서는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족쇄로 작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언론 자유는 보장되는 나라, 교육을 통해 또는 자신의 노력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곡절이 있었고, 그것들을 통해서 현재 우리는 이 정도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정치가 지닌 힘이다. 그리고 정치가 여전히 우리에게 판도라의 상자에 남아 있는 희망 역할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네 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 정치를 네 개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는데, 각자 독립된 부분처럼 서술되었지만, 읽다보면 다 연결이 된다. 그렇게 정치는 분절되지 않고 통합된다.


먼저 대통령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정치는 대통령을 빼고는 이야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하는데, 정치 영역에서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이 너무도 막강하다.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우리나라 정치 지형이 급격하게 바뀌곤 하니, 정말 중요한 직책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대통령에게 많은 권한이 주어졌을까? 그 연원을 따져보면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삼권분립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지만 그에게 대한민국은 없었다. 오히려 그에겐 대한제국이 있을 뿐이다. 그는 바로 군주의 역할을 하고 싶어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첫단추가 이렇게 채워졌기에 대통령에게 주어진 막강한 권한이 계속 이어졌다. 권력 분립을 할 수 있는 헌법 개정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런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을 입법, 사법, 행정부에서 나눠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 책의 두 번째 부분인 선거를 살펴봐야 한다.


많은 선거가 있고, 이제는 공정성에 대해서는 약간의 시비도 있지만, 대체로 결과에 승복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 참여가 중요해졌고, 선거를 통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자세를 지니게 됐다.


가장 중요한 선거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선거 역사에서 일어났던 부정선거들, 그리고 그 부정선거를 거부하면서 더 나은 정치,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이 어떻게 이루어졌던가를 살펴보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선거를 등한시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이 장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선거를 통해 원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매개가 필요하다. 그 매개 역할을 정당이 해야 한다고 한다.


정당정치... 정권을 잡기 위해서 노력하는 집단이 정당이고, 정당을 통해서 정치를 하는 체제가 바로 대의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정당의 역사를 훑어가고 있는 이 장을 통해서 과연 우리 정치는 바른 궤도에 들어섰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가령 국회의원 선거를 보면, 1인 2표제를 택하고 있지만, 턱없이 적은 숫자의 비례대표 의원으로 인해 국민들을 제대로 대표하고 있지 않은 선거제도임을 2부를 통해 알 수 있는데, 이는 정당들의 역사를 통해서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된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우리가 왜 다당제를 택하고 있으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양당제로 운영이 되는지, 여전히 공고한 지역주의 정당들이 왜 사라지지 않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어, 지금 정당들이 지닌 공과 과를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다만, 이 책이 2019년에 발간되어 선거 연령이 18세로 조정이 된 사실이 반영이 안 되어 아쉽지만, 이 책에서 제기하고 있는 정당을 통해서 정치에 참여해야 함에는 동의하게 된다.


직접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해야 하겠지만, 비례로 대의 민주주의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는 선거와 정당을 통해서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당은 중요한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정당이 시민들의 영역에까지 내려와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게 하지는 못하고 있음을, 그래서 광장에 수많은 시민들이 나가게 되고, 또 국민청원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정치권력에 요구하게 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열망을 지니고 있고, 또 참여하고 있다. 시민들이 광장으로 뛰쳐나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렇게 시민들이 광장에 나와 정치를 할 때 정당이 매개가 되어 대안을 제시하면서 정치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야 함을 제안하고 있다.


이렇게 4부를 통해 우리나라 정치가 걸어온 길을 살피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정치가 희망이다. 우리가 포기해서는 안 되는 희망, 그런 희망이 정치니, 정치에 관심없다고 하지 말고 관심을 지녀야 한다. 


우리에게는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고, 그렇게 만들도록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덧글


118쪽, 255쪽에 우리나라 선거 연령을 19세라고 하고 있는데, 개정된 공직선거법에 의해 18세로 바뀌었다. 이 책이 발간된 다음에 개정되었으니, 수정할 필요가 있다.


공직선거법 제15조(선거권) ① 18세 이상의 국민은 대통령 및 국회의원의 선거권이 있다. 다만, 지역구국회의원의 선거권은 18세 이상의 국민으로서 제37조제1항에 따른 선거인명부작성기준일 현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에 한하여 인정된다.  <개정 2011. 11. 7., 2014. 1. 17., 2015. 8. 13., 2020. 1. 14.>


124쪽 1대 부통령 선거를 이야기하면서 이시형이라고 나오는데, 뒷부분에서는 이시영으로 제대로 나오니, 소소한 오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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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의 시간 - 결국 현명한 자는 누구였을까
안석호 지음 / CRETA(크레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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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말미에 코로나19가 나온다. 이 코로나19로 우리는 자연스레 장벽을 쌓았다. 질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어쩌면 앞으로 이런 감염병으로 인한 장벽이 많이 생길지도 모르고, 장벽이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세계화라고 해서 서로가 쉽게 교류하게 된 세상에서 오히려 그러한 교류가 서로에게 장벽을 쌓게 만들고 있는데, 이런 장벽은 근래에 생기지 않았다. 인간을 서로 분리시키는 장벽은 예전부터 존재했다.

 

물리적인 장벽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장벽도 많은데, 이 책에서는 눈에 보이는 장벽 3개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들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무역장벽이라는 장벽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벽은 지금 세 개다. 이 책에 언급된 4개 장벽 중에 베를린 장벽은 이제 무너졌기 때문이다. 베를린 장벽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었다. 아니 사실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독일에 가보지도 못했고, 그냥 베를린을 두 진영이 나누어서 점령했으니 우리나라 분단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한데 웬걸, 베를린이 동독 영토 안에 있었다니. 왜 그 생각을 한번도 하지 못했을까? 서베를린으로 동독 사람들이 넘어가기가 너무도 쉬운 구조였으니... 동독 측에서 베를린 장벽을 건설했는데, 그 이유는 서독의 침공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독 사람들이 서독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니...

 

사람들의 교류를 억지로 막은 결과,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독일은 통일되었다. 자, 장벽으로 누가 이득을 보았는가? 자기 나라 국민들이 넘어가지 못하게 장벽을 세운 사실은, 그 나라가 국민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함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누가 이득인가? 당연히 서독이 이득이다. 자기 쪽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건설된 장벽은 서독이 우월하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표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너진 베를린 장벽과 달리 여전히 건재한 장벽이 세 개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장벽, 또 하나는 미국과 멕시코를 가로지르는 장벽,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는 휴전선이라는 장벽.

 

갈등이 여전하고, 남과 북이야 이 장벽을 통해 사람들이 이동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논외로 친다면, 가지구와 서안지구에 설치된 이스라엘 장벽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엄청나게 옥죄고 있다.

 

친척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도, 가기 위해서도 온갖 절차를 거치고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통과할 수 있는 장벽. 거기에 툭하면 봉쇄되는 장벽이라니. 멕시코 장벽은 어떤가? 멕시코인을 비롯한 남미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이 장벽을 넘어 미국으로 넘어가려 한다. 장벽을 통과해 미국에 도착하기 전에 죽어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이렇게 사람들의 삶을 잘라놓고도 건재한 장벽이 왜 존재해야 할까?

 

그것은 인간이 이 유한한 지구에 내 땅, 네 땅이라고 구획을 정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경계를 정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기 때문이다. 본래 없던 경계를 나누고 이동을 제한하고, 그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장벽을 설치했다. 이스라엘도, 미국도, 남과 북도 그런 이유다.

 

자신들이 안전하고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 장벽을 설치한다고 하지만, 그 장벽은 나와 남을 가르고 남을 위협하기에 결국 나에게 위협으로 돌아온다. 무역장벽도 마찬가지다.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지구에서 무역 장벽을 세우면 결국 자신들도 피해를 입게 된다.

 

물리적인 장벽도 마찬가지고... 그런 장벽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읽으면서 김남주 시인이 쓴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시가 떠올랐다. 이 장벽들은 특정한 어떤 장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장벽들이 사라질 때에야 인류는 경계를 지닌, 장벽을 쌓은 특정한 집단들이 아니라 모두 하나가 되는 인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남주 시인의 시에서 삼팔선을 장벽으로 바꿔보면서 이 책에서 말하는 장벽에 대해 더 생각해 보면 좋겠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김남주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걷다 넘어지고 마는

미팔군 병사의 군화에도 있고

당신이 가다 부닥치고야 마는

입산금지의 붉은 팻말에도 있다

가까이는

수상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짖어대는

네 이웃집 강아지의 주둥이에도 있고

멀리는

그 입에 물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죄 안 짓고 혼줄 나는 억울한 넋들에도 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낮게는

새벽같이 일어나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농부의 졸라 맨 허리에도 있고

제 노동을 팔아

한 몫의 인간이고자 고개 쳐들면

결정적으로 꺾이고 마는 노동자의

휘여진 등에도 있다

높게는

그 허리 위에 거재(巨財)를 쌓아올려

도적도 얼씬 못하게 가시철망을 두른

부자들의 담벼락에도 있고

그들과 한패가 되어 심심찮게

시기적절하게 벌이는 쇼쇼쇼

고관대작들의 평화통일 제의의 축제에도 있다

뿐이랴 삼팔선은

나라 밖에도 있다 바다 건너

원격조종의 나라 아메리카에도 있고

그들이 보낸 구호물자 속의 사탕에도 밀가루에도

달라의 이면에도 있고 자유를

혼란으로 바꿔치기 하고 동포여 동포여

소리치며 질서의 이름으로

한강을 도강(渡江)하는 미국산 탱크에도 있다

나라가 온통

피묻은 자유로 몸부림치는 창살

삼팔선은 감옥의 담에도 있고 침묵의 벽

그대 가슴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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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 소외된 영혼을 위한 해방의 노래, 라틴아메리카 문학 서가명강 시리즈 7
김현균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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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90년대에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책들이 많이 번역되었다. 해방신학이라고, 기존의 체제를 옹호하는 종교가 아닌 기존 불합리한 체제를 전복시키는 종교를 주창한 해방신학. 그리고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저항시인으로서 파블로 네루다라는 이름이 알려졌다. 또한 우리나라 독재체제를 어떻게 종식시킬 수 있나 고민하면서 쿠바 혁명을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혁명에 관한 책들도 많이 번역되었다.

 

그때 처음을 라틴아메리카에 관심을 가졌다고나 할까? 어쩌면 라틴아메리카는 여전히 미지의 대륙일지도 모른다. 큰 마음 먹어야 여행을 할 수 있는. 그리고 아직도 정치적으로 불안정하다고 여겨지는. 또한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와 상반되게 축구를 엄청 좋아하고 잘하는 나라들이 모여있는 대륙으로.

 

라틴아메리카 사람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내게는 '체 게바라'였다. 그 다음이 '파블로 네루다'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심리적 거리도 멀었다. 지구촌이라는 말, 고상한 척하는 사람들이 글로벌이라고 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과거의 시야에 갇혀 있었다.

 

오장환이 시를 통해 말한 '성벽'에 갇혀 있었다고 해야 할까? 그러다 읽게 된 이 책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변방 문학이 아님을 알게 됐다. 아니, 문학에 변방이 어디 있는가? 문학은 그 자체로 모두가 중심이다.

 

문학을 지구에서 차지하는 힘의 논리에 따라 '중심-주변'으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세계문학사가 유럽 중심으로, 백인중심으로 기술되었지만,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학자들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문학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고, 아프리카 문학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의 문학을 연구하고 소개하는 사람도 늘어나게 되었다.

 

그 중에 라틴아메리카 문학, 그 중에서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루벤 다리오, 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예호, 니카노르 파라'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변방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한 사람들이다.

 

모든 문학이 중심임을, 자신들의 삶을, 표현 양식을 반영하고 있음을, 그래서 가치가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이 네 시인을 중심으로 책을 썼지만, 이들 외에도 많은 라틴아메리카 작가가 나온다. 특히 소설에서 마르케스와 보르헤스를 빼놓을 수는 업다. 이들은 어느 한 나라, 대륙을 대표하는 작가가 아니라 우리들 모두를 대표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라틴아메리카 문학이라고 해도 모두 같지는 않다. 같을 수가 없다. 문학은 문학자 수보다도 더 많은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라틴문학이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책에서는 이 네 시인을 통해 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문학이 무엇이었나를 보여주면서, 그들이 서로 주고받은 영향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라틴문학을 세계문학으로 끌어올린 (이런 표현은 적당하지 않지만, 당시에 라틴아메리카는 변방이었으므로, 그들에게서 변방 문학이라는 의식을 없앴다는 표현으로 생각하자) 사람으로 루벤 다리오를 드는데, 그가 그렇게 인정받게 된 이유는 스페인에서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하여 변방문학이라는 의식을 떨칠 수 있게 되고, 이제 라틴문학은 주변-중심의 문제를 벗어나 그들의 문학을 하게 된다. 여기에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네루다가 나오고, 그와 교류를 하면서도 시집 몇 권을 내지 못했지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바예호, 그리고 시를 반시(反詩)로 기존 시에 도전하고 새로운 시를 만들어가는 파라까지.

 

여기에 더해 질문과 답이라는 각 시인을 소개한 글 뒤에 실려 있는 부분에서 우리나라 시인들과 비교해 주고 있는 점이 더 좋았다. 문학은 개별적이지만 보편적이기 하기 때문에, 파라와 같이 반시를 주장하는 사랆으로 대표적인 우리나라 시인 '황지우', 바예호처럼 절망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기형도'를 들고 있으니.

 

이 책 앞부분에 나와 있는 멕시코 시인 에르난데스의 발언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카프카가 우리 곁을 지나간다. 우리는 감격하여 인사한다. 그는 우리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30쪽)

 

카프카 역시 살아생전에 유럽 문학에서는 변방 아니었던가. 마찬가지로 라틴문학도 변방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들은 이 책에 언급된 세계적인 시인 4명 말고도 더 많은 시인, 더 많은 문학가들을 낳고 있다.

 

단지 그것만이 아니라 그들은 그들의 문학을 함으로써, 문학에서 '주변-변방'이라는 의미를 해체해 버렸다. 이 책은 그러한 해체의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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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정도라고 해야 하나. 한때 4.3에 관해서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현기영은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고 했는데...

이산하는 '한라산'이라는 시를 써서 고통을 받았다고 했는데, 어느 때부터 4.3은 더이상 금기의 말이 되지 않았다.

 

  당당하게 말해도 된다. 그런데... 그러면 다 해결되었는가?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사람들, 살아 있어서 살아가는 동안 받았던 고통들, 단지 후손이라는 이유로, 제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받았던 고난들이 다 사라지는가?

 

  용서가 되는가?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몇 번 사과를 하면 그것으로 다인가? 그것으로 4.3은 끝났다고 할 수 있는가.

 

  무언가 이상하다. 그렇게 4.3은 해결된 듯이 보였는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4.3이 비로소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과연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가.

 

  학교에서

 

다행인가

교과서와 다르게 가르치지 않아도 되니.

국정 국사교과서 반대는 교사의 양심이었지만

대통령 탄핵바람에 징계를 피했으니

그것도 다행인가

 

두 세대가 지난 아이들이

4.3의 넋을 만나면

왜 이제야 왔냐고, 몰라서 미안하다고

서로 껴안고 우는데

대학 입학사정관들은 이제는 그 얘기

그만 쓰라 한다

 

극우 1종, 중도 미명의 7종 국사교과서

어디에서도 다 읽을 수 없는 진실을 찾아

제주에서는 여전히 교과서 너머를 가르치고

수학여행 온 학생들에게 4.3평화공원은

비올 때나 가는 곳이라 한다

 

국정 국사교과서

단 석 줄이었던 4.3

검인정 교과서 속에 조금 돌려놓았다고

그것으로 다행인가

 

(진순효, 학교에서)

 

신경림 외, 검은 돌 숨비소리. 걷는사람. 2018년. 158-159쪽. 

 

자. 이렇게 되었다고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시인은 과연 이렇게 했다고 4.3이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우리에게는 단지 어떻게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4.3을 제대로 해결하는 일이다.

 

4월도 지나고 5월도 지나가는데, 여전히 공장에서 저녁이 되어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여전히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일들이 없어야 4.3이 해결된다고 할 수 있다.

 

하여 4.3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 ,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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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5-28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입학사정관은...그만 쓰라 한다.. 아...

kinye91 2021-05-28 10:14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시를 읽으면서 그 구절에서 가슴이 턱 막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