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를 표시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빅이슈]를 구매하는 일도 거기에 포함이 된다.


  직접 판매를 하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정기구독을 했을 때는 포장을 하는 일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단지 도움이 되기 때문에 연대를 한다고 할 수는 없다.


  사실 7천원으로 (누군가에게는 7천원도 큰 돈이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리 크지 않은 돈일테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잡지를 구매하면서 구매자가 느끼는 만족감은 이보다 더하다.


그러니 잡지를 구매하는 일은 판매자나 다른 종사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구매하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니, 이는 일방적인 연대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연대라고 할 수 있다. [빅이슈]는 그런 역할을 한다.


연대를 맺어주는 역할. 그리고 사회에 대해서 다른 방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역할. 이번 호 표지 인물은 그레타 툰베리다. 지금은 많이 유명해졌지만, 툰베리 주장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졌는지는 의문이다.


세계 정상들이 모여 기후 위기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대책을 마련하자는 결의를 하기는 했지만, 세상은 여전히 과거처럼 돌아가고 있다. 그들이 결의를 했지만, 생활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기후 위기는 여전히 우리들 삶에 닥치고 있다.


이번 호에서 그 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고 있는데... 이와 관련지어서 '채리티숍 순례'라는 글을 읽으면 좋다.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물품들이 한번 쓰고 버려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나한테 필요없는 물건이라도 남에게는 필요한 물건일 수가 있다. 그러한 물건이 필요한 사람에게 갈 수 있도록 한다면, 넘쳐나는 물건들이 쓰레기가 되는 일을 방지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로 치면 '아름다운 가게' 또는 풍물시장 등에 해당하는 '채리티솝'에 대한 이야기, 그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야기는 바로 '연대'의 좋은 사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지구의 연대이기도 한 물건의 순환... 이런 연대에 대해 다른 방향에서 생각하게 하는 글은 '우리는 왜 해양 동물에게 육상 동물만큼 연대감을 느끼지 못할까?'이다.


이 글을 읽으며 육상 동물은 동물인데, 해양 동물을 우리는 왜 '물고기'라고 할까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문제였다. '고기'라고 하면 식량이라고 생각하는데, 물에 사는 동물들을 그냥 '고기'로만 인식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


이런 언어 사용에서 무의식적으로 해댱 동물과는 연대감을 잘 느끼지 못했다는 생각. 해양 동물 중에서 고등 지능을 지니고 있다는 돌고래 등을 제외하면 그냥 '고기'로만 인식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연대감을 느끼지 못했고, 일본에서 핵발전소에서 나온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겠다고 발표했듯이 바다를 인류의 쓰레기 처리장으로 여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만큼 이제 연대라는 말은 사람들 사이에만 통용되어서는 안 된다. 이 연대라는 말을 우주 차원으로 넓혀야 한다. 그래야 인류가 계속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빅이슈] 이번 호는 연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생각만이 아니라 이미 연대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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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 제6회 채만식문학상, 제10회 무영문학상 수상작
전성태 지음 / 창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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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배경은 현실이라고 할 수도 있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소설은 개연성, 현실성을 띠기 때문에, 그 소설이 판타지 소설이라고 해도 분명 현실성을 띠고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소설 배경은 바로 우리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즉, 소설에 나타나는 현실은 이곳이 아닌 그곳이지만, 우리는 그곳을 통해서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을 생각하게 된다. 이곳의 이야기가 아닐지라도 소설은 늘 이곳을 생각하게 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한다.


전성태 소설 역시 그렇다. [늑대]라는 제목을 단 이 소설집은 총 10편의 단편소설이 묶여 있다. 연결되는 소설은 없다고 봐야 하지만 (등장인물이 겹치는, 하지만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과 만나게 되는 인물로 나오는 목란식당의 종업원이 등장하는 소설, '목란식당'과 '남방식물'이 있기는 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아닌 다른 장소, 즉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소설 배경이 우리나라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과 유사하더라도, 소설 속 배경은 이곳이 아닌 그곳일 수밖에 없고, 그곳을 통해서 우리는 이곳을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배경은 세 곳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몽고다. '목란식당, 늑대, 남방식물, 코리안 솔져, 두번째 왈츠, 중국산 폭죽'은 모두 몽고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뒤처져 있는 나라 몽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몽고라는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지금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특히 우리가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또는 아직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한 나라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라볼 수 있는데... 어쩌면 이 소설들을 통해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다른 존재들을 바라볼 때 지니고 있는 색안경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코리안 솔져'에서는 몽고에 가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며 다시 시를 쓰려고 생각했던 인물이 몽고 사람들에게 당하고, 열쇠를 집 안에 두고 문이 잠기게 되는 상황에 처하는 상황이 펼쳐지는데... '적어도 한국에서 군인이 시인보다 강하다는 사실은 명백해졌다' (124쪽)는 표현을 통해 그곳에서 겪은 일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군사문화에 젖어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니...


전혀 군사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법하지 않은 상황, 그런 인물에게서 군대를 마친 경험으로 위기 상황에 대처해나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으니...


두번째 배경은 북한이다. 물론 북한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한 편밖에 없다. '강을 건너는 사람들' 제목만으로 탈북을 생각하고, 북한의 살기 힘든 현실을 떠올리게 되는데, 소설 속에서는 북한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북한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 몽고가 배경이긴 하지만 북한을 기조로 깔고 있는 소설이 '목란식당'이고 이들이 몽고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또 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한때 운동권이었다고 추측되는 인물들과 보수 종교 단체들, 또 정신이 이상해진 사람을 등장시켜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우리가 북한을 대하는 또는 북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한 소설들이다.


세번째 배경은 당연히 우리나라다. 우리나라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배경으로 지니고 있는 소설들. '누가 내 구두 못 봤소?, 아이들도 돈이 필요하다. 이미테이션'


어쩌면 전성태 특유의 해학이 담겨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 슬픈 상황인데도 웃음이 비어져 나오게 하는 그런 소설들. 


이렇듯 배경은 다양하지만 소설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 소설들은 단도적입적으로 이래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소설을 통해서 보여줄 뿐이다. 이런 삶도 있다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우리도 한때는 이렇게 살기도 했다고.


그렇게 소설을 읽으며 이곳과는 동떨어져 있는 그곳의 삶을 읽으며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것이 전성태 소설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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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피엔스 - 문명의 대전환, 대한민국 대표 석학 6인이 신인류의 미래를 말한다 코로나 사피엔스
최재천 외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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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점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기존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변하게 하는 지점. 그 지점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체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


이 책은 여섯 명의 학자와 대담한 내용을 정리해 놓았다. 그 학자들은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고, 근대에 들어서 전세계를 두려움에 떨게한 코로나19에 대해서 자신들이 생각한 바를 대담을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이들은 모두 코로나19를 전환점으로 삼는다. 우리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씩 다르지만.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의 전환점이라는 말에, 우리나라 가요에서 서태지가 나왔을 때가 떠올랐다. 우리나라 가요를 서태지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만큼 서태지 출현 이후로 우리나라 가요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그렇게 바뀌었다고 해서 기존에 있던 가요들이 모두 사라졌냐 하면 아니다. 기존 가요에 새로운 가요들이 더해졌을 뿐. 단순히 더해졌다기보다는 다양한 가요들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다시 트롯이 유행하기도 하고, 발라드도 유행하고, 그렇다고 댄스 가요가 줄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다양한 가요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상태...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기존 우리 삶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오히려 기존 삶을 앞으로 우리 삶의 방향에 맞도록 조절해야 한다. 


이 책에서 대담한 여섯 명의 학자들도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던, 우리가 삶에서 지켜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일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런 이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공존'이라고 할 수 있고, 구체적인 방법에서는 차이들이 있지만, 그 차이는 대동소이 하다고 할 수 있다.


큰 틀에서는 같은데, 세세한 부분에서는 차이가 있다. 당연한 일이지.. 어떻게 똑같은 방안이 나올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학자들이 모두 똑같은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코로나19가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최재천, 장하준, 최재붕, 홍기빈, 김누리, 김경일... 이렇게 여섯 명의 학자가 대담에 참여했다. 이들이 함께 이야기한 적은 없고, 정관용의 사회를 통해 한 명씩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식으로 참여했고, 그 내용이 정리되어 이 책에 정리되어 있다.


이 중에 최재천이 이야기한 화학백신보다는 생태백신, 행동백신이 더 필요하다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이는 장하준이 경제 체제를 바꾸어서 함께 공존하는, 약자들이 살아갈 수 있는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과 또 홍기빈이나 김경일이 이야기하는 공존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최재붕은 이미 인류의 생활방식이 바뀌었으니 이제는 포노사피엔스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 역시 직접적인 대면은 줄어들지 모르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수많은 만남이 이루어질테니, 그런 만남에 대해서 준비해야 한다고 하니, 이 역시 공존이라고 할 수 있다.


공존이다. 사람들끼리, 나라끼리, 그리고 사람과 다른 생명체들, 또 생명체들과 생명이 없는 존재들까지도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하나가 사라지면 다른 존재들도 존재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지금까지 인류가 성장, 성장, 발전, 발전 하면서 다른 존재들과 공존하지 못했던 점을 깨닫게 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 인류가 지녀왔던 좋은 점들은 받아들이고, 다른 존재들과 공존하기 힘들게 했던 생활방식은 바꾸어야 한다고, 그런 전환점에 도달했다고... 코로나19가 알려주고 있다고.


그러니 코로나19는 벌써 두 해째 우리들 삶을 옭아매고 있지만, 이 코로나19를 통해서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 말 그대로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생활방식, 행동방식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이 책에서 대담한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 책 후속편도 나왔다고 하는데, 나중에 읽어봐야겠지만, 교육에 관해서 석학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사실, 교육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역할을 하는 인류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서 교육에 관해서 고작해야 원격(온라인)이다, 등교 수업이다 하는 쪽으로만 이야기가 되고 있는데...


코로나19로 우리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그래야 미래세대에게 '공존'을 온몸으로 학습하게 할 수 있는지... 또한 대면, 비대면을 떠나 교육이 어떠해야 하는지, 교육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글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늘, 교육은 뒷전으로 처지고 있으니... 코로나19는 교육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하여간 이 책을 읽으면 코로나19는 우리를 불안에 빠뜨렸지만, 그럼에도 코로나19는 우리들 삶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앞으로 우리가 다른 존재들과 '공존'할 수 있어야 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음을 알게 된다.


백신 만능주의에 빠지지 말고, 우리 삶을 변화시켜 코로나19만이 아니라 앞으로 인류에게 다가올 수많은 질병들을 예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이 이 책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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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세 아이 이야기 미래주니어노블 2
앨런 그라츠 지음, 공민희 옮김 / 밝은미래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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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다. 그러나 사실에 기반해서 쓴 소설이기 때문에 논픽션이라고 해도 된다. 논픽션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가 이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실제 사건들보다 더 밋밋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난민에 관한 뉴스에서 소설 속 사건보다 더한 사건들을 만나게 되니 말이다.


이렇듯 현대에도 세계 도처에서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난민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우리나라에도 난민 신청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을 놓고 찬반 논쟁이 치열했던 일도 있었으니.


난민을 놓고 그들을 받아들이냐 받아들이지 마느냐로 토론을 한다? 이게 토론거리가 되나? 이건은 찬반을 나누는 문제가 아니라 인류애를 실현하느냐 마느냐, 즉 우리가 인간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선택을 하느냐, 아니면 나만 살면 된다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선택하느냐가 아닌가 싶은데... 그러니 그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로 토론이 되어야 하는데...


나만 잘살면 돼라는 인식이 팽배해지면 세상에 난민은 존재하기 힘들어진다. 힘들게 온갖 고난을 뚫고 다른 나라에 도착한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그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말이다.


소설은 시대와 나라가 다른 십대가 된 세 아이를 주인공으로 삼아 난민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고 있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탈출하려는 유대인 가족(주인공은 십대인 조셉. 조셉이라는 이름은 아마도 성경에 나오는 요셉일 터)과 쿠바를 벗어나 미국으로 가려는 가족(이자벨)과 내전 중인 시리아를 벗어나 독일로 가려는 가족(마흐무드)이 나온다.


이들은 그 나라에 살 수가 없다. 정치적인 이유든, 종교적인 이유든 또는 다른 사정이든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 그러나 그들은 갈 곳이 없다.


살기 위해 독일을 벗어나 쿠바에 정착하려고 하지만 쿠바 정부는 이들의 상륙을 허가하지 않는다. 세인트루이스호... 이 배에 타고 있던 조셉의 가족을 비롯한 많은 유대인들. 이들은 결국 선장의 결단으로 유렵(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에 정착하게 된다.


생각해 보라.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쿠바 바로 앞까지 갔지만, 그곳에 정착할 수 없고, 그래서 미국에 상륙하려 했지만 허가를 받지 못해 다시 유럽으로, 독일 이웃나라로 올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운명을.


여기에 곧 2차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영국에 정착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유럽 다른 나라에 정착한 사람들은 나치의 박해를 또다시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조셉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조셉의 여동생 루시만이 살아남게 된다.


이 루시가 나중에 마흐무드 가족을 받아들여주는 독일 가족이 된다. 어려움을 겪은 사람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듯이... 유대인 국가인 이스라엘과 아랍인 자치정부인 팔레스타인 사이에 갈등이 있음에도 시리아를 탈출한 마흐무드 가족을 유대인인 루시의 가족이 보살펴주게 된다.


마흐무드의 가족이 시리아를 떠나 그리스에서 세르비아,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까지 오는 과정. 배를 타고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조셉의 여정보다 훨씬 힘들고, 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게 된다. 1930-40년대 난민보다 2000년대 난민이 더 힘들게 자신들이 살아갈 나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소설적 상황이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모두 아랍인들에게 적대적이지는 않고, 자신들이 도움을 받았듯이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유대인들 또한 많이 존재할 테니... 소설은 사실에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소설적 구성을 십분 활용한다. 


이자벨의 가족이 쿠바를 벗어나 미국으로 갈 때 마이애미 해변을 코 앞에 두고 미국 경비정에게 추격을 당할 때 이자벨의 외할아버지는 과거 쿠바에 왔지만 상륙을 허가받지 못한 세인트루이스호를 떠올린다. 그때 자신은 경찰이었고, 명령에 따라 사람들이 하선하지 못하도록 결국 그들이 돌아가도록 했던 사실을.


그는 가족들을 위해 자신이 희생이 되어 경비정을 따돌리고 가족이 무사히(?) 미국에 도착하게 한다. 이렇게 소설은 각자 다른 시기에 다른 나라에서 다른 이유로 제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 정착하려는 가족을 다루고 있지만, 이들은 하나로 연결되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지구인이다. 인류다. 굳이 땅덩어리에 금을 긋고 내 땅, 네 땅하면서 서로 오가지도 못하게 해서는 안 되는 존재다.


광활한 우주 한 귀퉁이, 지구라는 별에 사는 우리가 서로를 돕지 않으면서 어떻게 지속할 수 있겠는가. 소설은 우리에게 난민들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임을,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함을 그들이 겪는 사건을 통해서 보여준다.


다만, 그렇게 만든 거대한 정치권력에 대해서는 비판을 삼가고 있다. 쿠바인들이 미국으로 넘어가게 만든 가난은 미국의 봉쇄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 시리아에서나 또는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들이 겪는 고난에 유럽이나 미국이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는데, 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오로지 난민이 된 소년(소녀)의 행동에만 중심을 두고 서술하고 있다.


이점이 무척 아쉽지만, 그럼에도 평범한 소년-소녀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을 소설에서는 잘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또한 그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있음도. 그래서 우리가 난민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들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의 논쟁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들이 다시 우리와 같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울 것인가로 논점이 옮겨가야 한다.


난민 문제 역시 우리나라와 관계가 없지 않다. 우리나라도 난민을 받아들여야 할 책임이 있는 나라 아니던가. 아니 난민을 받아들이는 책임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도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지구인이라는 점,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 지구에 금을 긋고 장벽을 세우는 일을 하기보다는,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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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지혜의 문화사전 몸
샤오 춘레이 지음, 유소영 옮김 / 푸른숲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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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혼과 육체라는 말을 쓰면서도 둘을 등가로 보지 않고 영혼에 비해 육체가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육체가 없으면 자신이 존재할 수 없음에도 육체는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가 좀 껄끄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만큼 밖으로 드러나 있는 이 육체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감추려고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육체, 우리 몸이다.


몸은 우리가 늘 보게 되고 만지게 되는 존재다. 그런 몸에 얽힌 이야기를 이 책은 풀어내고 있다. 우리 몸 부분 부분을 제목으로 삼아 그 몸과 관련된 동서양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는데...


제목으로도 흥미롭지만 내용도 흥미진진하다. 한 장 한 장 그러니까 몸의 한 부분 한 부분을 틈을 내어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어딘가로 조금 멀리 간다 싶을 때 지니고 다니면서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령 이 책 처음은 머리로 시작한다. 우리 몸에서 가장 위에 있고, 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 그리고 우리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존재가 바로 머리다. 그래서 머리는 하나의 우주다. 또다른 우주가 바로 머리라고 한다면, 아직도 우주 전체가 밝혀지지 않았듯이 우리 머리, 머리 속 뇌에 대해서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이 많다.


이런 머리를 인간에게서 분리를 하면 그 사람은 죽는다. 그런 분리의 과정을 문화적으로 이야기해주는데, 머리가 우리 몸에서 쉽게 잘려나가지 않는다는 사실, 그래서 옛날 망나니(회자수)라 불리던 사람들이 죄인의 목을 치더라도 한번에 자르기는 쉽지 않았다는 사실. 또 잘려나간 머리도 과연 살아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고, 단번에 자르기 위한 도구로 길로틴(기요틴)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을 설계하는데 루이16세도 관여했다고...


이런저런 사실들이 많이 실려 있는데, 우리 몸이 사회, 정치, 문화적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었고, 또 다양하게 해석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동양과 서양이 몸의 특정 부분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다른지도 알려주는데... 중국 사람이 쓴 책이라서 그런지 중국에 관한 내용이 많다. 중국과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가까운 관계에 있기 때문에, 단지 중국 문화에서 몸을 바라보는 시각을 알게 되는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도 몸을 그런 식으로 봐 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비슷한 점이 많은 중에도 확연하게 차이를 드러내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발에 관한 태도이다. 중국인들은 전족을 했는데, 우리는 전족을 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전족이라면 단순히 작은 발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이 아니다. 전족은 발을 비틀어 모양을 변형시키는 데까지 나아간다. 세 치 길이의 발을 가장 아름다운 발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세 치면 겨우 9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길이다. 사진을 보라.


사진만 보아도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 수 있다. 이 발로 걸을 수 있다니, 잘 믿기지 않는다. 이 책에는 전족을 해서 잘 걷지 못해 남편이 밭에 데리고 갔다가 데리고 왔다는 기록도 나오니, 이건 아니다 싶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작아도 25센티미터가 넘는 발 크기를 지니고 있는데, 10센티미터라고 해도 이건 너무 했다. 게다가 그 발을 휘게 만들어야 한다니... 이런 발을 지닌 사람을 미인이라고 했다고 하더라도 이건 좀 심하다 싶다.


같은 동양이라도 발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그것도 한 쪽 성에게는 지독한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를 문화라는 이름으로 자행했다니... 참...


이런 저런 내용으로 몸에 대해서 그동안 인류가 지녀왔던 생각, 문화들을 알려주고 있어서 흥미도 있고, 또 우리 몸에 대한 역사적 태도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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