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그림들 - 파란의 시대를 산 한국 근현대 화가 37인의 작품과 삶
조상인 지음 / 눌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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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그림들이 어찌어찌 하여 간신히 살아남아 우리에게 남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작품도 있지만, 지금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는 그림들은 모두 살아남은 그림'들'이다.


그림이 물질적으로 살아남았다는 의미로 해석하지 않고, 우리들에게 다가와 감동을 준다는 면에서 살아남았다는 말을 한다면, 이 책에 소개된 작품들은 그야말로 살아남은, 앞으로도 살아남을 작품들이다.


처음 듣는 작가도 있고, 처음 보는 그림도 있지만, 그 자체로 소중하다. 무더위에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 안에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하고, 다양한 경향의 작품들을 한 책을 통해서 만날 수도 있다.


37인의 한국 근현대 작가를 다루고 있는데, 나혜석으로 시작하지만, 아쉽게도 여자 화가들은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이성자, 최욱경 정도다). 아직까지도 남자 화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아마도 시간이 더 흐르면 살아남은 그림'들'에 여성 화가들의 작품들도 나오겠지 하는 생각을 한다.


작가의 일생과 그가 지닌 특성, 그리고 작품이 소개되어 있어서 많은 작품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리게 한다. 작가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거의 연대기 순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 물론 주제로 각 장을 나누고 있지만, 소개하는 작가들 순서는 거의 연대기 순이라고 보면 된다 - 우리나라 미술사의 흐름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된다.


참 많은 일을 겪은 우리나라, 그것도 전쟁의 참혹함을 겪었기에 유실된 작품도 많다. 또한 잃어버린 작가들도 많다. 그리고 작가들의 생애에서 지우고 싶은 일들도 많았으리라. 하지만, 그런 일들을 겪고도 살아남은 작품'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보면 우리나라 추상미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친숙함을 느끼게 된다. 그냥 추상미술하면 우선 이해 못할 작품들이라고 멀리 하게 되는데, 이 책은 왜 그런 추상미술로 나아가게 되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그렸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어서 추상미술이 전문가들만이 감상하는 미술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그리고 어느 정도 추상미술을 보는 눈도 키워주고 있다. 그 점이 좋다. 우리나라 미술에서 추상미술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으니, 이러한 추상미술에 대해서도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준 점, 이 책이 지닌 장점이다.


그림 하면 서양 미술가들을 먼저 떠올리는데, 그런 서양 미술가들만큼이나 좋은 미술가들이 우리나라에도 많음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으니, 이 책은 우리 미술들이 계속 살아남아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해주고 있고, 또한 우리로 하여금 우리 미술로 한발 다가갈 수 있도록 권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집 안에서 우리나라 근현대사 미술 작품들을 훑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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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배한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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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1호면 좋은 줄 아는 시대가 있었다. 반대로 1호면 안 좋다고 인식하는 때도 있었다. 하여간 숫자를 붙이고, 그 숫자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살았던 과거가 있었는데... 


어린 시절에 심심풀이로 우리나라 국보 제1호는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아이 때는 헷갈리기 마련, 숭례문이 남대문인지도 잘 모르는데, 여기에 동대문과 남대문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고, 남대문이다, 동대문이다 말다툼을 한 적도 있었다.


국보를 지정하고 1호라고 하면 굉장히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냥 편의대로 붙인 순서에 지나친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숫자로 가치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국보를 지정하면서 굳이 번호를 붙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국보나 보물 지정에 번호는 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국보면 국보, 보물이면 보물이면 되지, 무슨 몇번 몇번 하는 번호를 매기고 그런단 말인가.


하여든 국보하면 가끔 이렇게 1호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1호를 바꾸자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얼핏 생각하면 번호에 가치를 부여하는 우리나라에서 국보에서 번호를 빼지 못하겠으면 정말로 문화재 위원회나 국민들에게 물어서 번호를 재지정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다. 


(정말로 이렇게 실행하지는 않겠지. 국보면 모두가 소중한 문화유산인데, 그것들을 다시 가치로 경중을 매기고, 순서를 정한다는 행위 자체가 국보에 대한 모독이니)


이 책은 역사에 관심이 있는 기자가 자신의 관심 분야에 천착해 국보라는 우리나라 문화유산에 관해, 그 역사에 관해 썼다. 기자 출신이라서 그런지 글이 읽기 쉽다. 잘 읽힌다. 그리고 내용이 방만하지 않고 짤막하게 핵심을 잘 전달한다. 게다가 국보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곁들여서 더 좋다.


꼭 국보로 지정되지 않았어도 관련된 다른 문화유산들도 소개하고 있어서 우리나라 문화유산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된다. 그 점이 이 책이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일제시대를 거치고, 전쟁을 거쳐서 많은 문화재가 소실되기도 했겠지만, 그만큼 우리 문화유산을 사랑하고 아낀 사람들도 있어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문화재를 지금 우리가 만날 수 있다.


그런 문화재를 통해서 우리 역사를 만나고, 우리 조상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한 부분이 끝날 때마다 '국보 토막 상식'이라고 해서 그동안 잘 몰랐던 점이나 궁금했던 점을 알려주고 있어 좋다.


국보에 관한 내용은 알고 있는 사실도, 몰랐던 부분도, 아직 확실히 정리가 안된 부분도 있으니 책을 읽으며 찾아보면 더 좋을 듯하고, 여기서는 '국보 토막 상식'에서 다루는 내용만 소개한다.


아마도 평소에 알고 싶었던 점들이 아닐까 한다.


숭례문은 왜 국보 1호인가(56-59쪽)

세 번이나 놓친 몽유도원도 (96-101쪽)

전쟁을 이겨낸 국보(146-151쪽)

고유섭, 국보 연구의 선각자(186-191쪽)

국보 신고와 보상금 (228-233쪽)

국보 도난의 역사(268-273쪽)

국보 지정의 문제점(310=313쪽)

국보의 가격(360-363쪽)


이 국보 토막 상식만 읽어도 재미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 아쉬움이라고 해야 하나? 훈민정음 해례본이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책 말고, 한 권이 더 발견되었다고 했는데, 보상 문제로 지금은 어디 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전세계에서 지금까지는 딱 두 권밖에 없는 책인데, 이미 간송미술관에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 70호로(번호는 아무 의미가 없다) 지정이 되었으니, 발견된 책도 국가에서 사들여도 되었을텐데... 1000억을 요구한 소장자로 인해 무산되고,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하니... 이거야 원.


국보 신고 부분을 보니, 보상금이 1억이 최대라고 하는데(233쪽), 그동안 개정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2020년 초판이니, 아마도 개정이 안 되었다고 봐야겠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1조 정도의 가지가 있다고 하니, 그 1/10인 1000억과 보상금 1억은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해외로 반출만 안 되면 국보 소장자도 판매를 할 수가 있다고 하는데... 국가에서 이 문제는 현명하게 잘 해결해서, 또다른 훈민정음 해례본이 우리들에게도 공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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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움에 몸서리쳐본 사람은 알리라. 자신의 마음을 자신도 주체하지 못해, 어쩌지 못하고 이리저리 도무지 마음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리움.


  이성의 힘으로 제어하려고 해도, 다른 일로 잊어보려고 해도 도통 잊을 수가 없는, 그냥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그 구석에서 온 마음으로 속속 뻗어나와 자신을 온통 사로잡아버리는 그리움.


  그런 그리움이 마음에 들어오면 어찌할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내버려둘 수밖에. 그리움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서서히 작아져 가길 바라는 수밖에.


  하여 어느 순간, 그리움이 마음 자리에서 거의 사라졌다고 느끼는 순간, 그 순간 다른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음을.


장석남 시집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을 읽으며, '간신히'란 말에 공감이 됐다. 그리움은 간신히 잊혀진다. 내가 잊는 것이 아니라 잊혀지는 것이다. 그렇게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이면 이제 나에게는 무언가가 생겨 있다.


나는 그리움은 무언가를 내게 남겨준다. 그 무언가가 무엇일지는 사람마다 다르겠고... 그리움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향한다. 이미 내게는 없는 것,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것. 하여 과거를 잊어야 하는데, 잊지 못하고 현재에 불러와 마음 아파하는 상태. 그리움.


시집 제목이 된 시 구절은 이 시집 첫번째 시에 나온다. 제목도 과거를 의미한다. 과거는 그냥 과거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를 구성하게 된다. 


  옛 노트에서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좇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때는 내 품에 또한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모서리들이

옹색하게 살았던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장석남,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문학과지성사. 1995년 3쇄. 11쪽. 


앵두가 익을 무렵은 여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일생을 계절로 나누면 봄은 청춘에 해당한다. 봄 춘(春)자가 들어가니 봄은 청춘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름은 그 청춘을 지내고 무언가를 맺는 시기다. 청춘의 열정을 넘어서는 단계.


앵두가 익을 무렵, 무언가를 이룬 때. 그럼에도 과거 빛나던 날들을 완전히 잊을 수는 없다. 그 열정을 지니고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 한다.


이 시에서 앵두가 익을 무렵이라고 한 표현은 서정주 시 '국화 옆에서'에 나오는 가을과 비교할 수 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가을은 이미 완숙의 단계라고 한다면, 여름은 완숙을 향해 나아가는, 그리움 속에 허우적 대는 않고 그리움을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때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리움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 그러니 '간신히'란 말이 나온다. 간신히, 그렇게 한 과정 한 과정을 떨쳐내고, 이겨내고, 또는 받아들이며 우리의 인생을 살아간다.


장석남 시, 이 '옛 노트에서' 어떤 아련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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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44
얼 C. 엘리스 지음, 김용진.박범순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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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인류세'가 등재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지질학적 시대. 인간의 활동이 기후와 환경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간주되는 시대'라고 (261쪽)


이 책은 이러한 '인류세'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언제 인류세라는 말이 나왔으며,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고, 어떤 분야의 학자들에게서 논의가 되었는지, 이 말이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있다.


따라서 '인류세'라는 개념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에게는 꽤 유용한 책이다. 다만, 여러 논점들이 다뤄지고 있기에, 이 인류세라는 개념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지금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해야 한다.


아마도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뜻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이 뜻에 부합하는 증거도 많다. 다만, 지질학적으로 인류세라는 지질시대 구분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논의 중이라고 한다.


지질학에서는 논의 중이지만, 사회학이나 정치학 또는 생태학에서는 '인류세'라는 개념은 인류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고 있다. 왜냐하면 이대로 가면 인류가 지구에서 존재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구라는 별은 한계가 있고, 지금까지 무한증식을 해온 인류는 지구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세라는 개념은 학문적인 관점보다는 실천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우리 삶을 지속하기 위한 실천의 출발점으로 인류세를 삼아야 한다. 이 책 말미에서도 주장하지만 인류세란 개념을 좋은 인류세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가 살기 힘들어진 상태로 지구의 변화를 초래한 시기로 '인류세'가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책에서 하나의 제목으로 삼고 있기도 한 것처럼, 우리 인류는 '이카루스'처럼 자기 교만에 빠져 파멸로 점점 다가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카루스처럼 추락하지 않으려면 이미 자신이 한계를 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 한계를 인식하게 하는 말이 바로 '인류세'란 말이다.


따라서 인류세란 말에는 인간이 지금처럼 살면 안 된다는,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 담겨있다. 실천해야 한다는,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단순히 지질학적 시대구분이 아니다. 우리들 생존이 걸린 문제다. 이 책에서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논의된 인류세란 개념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지만, 각 학문 분야에서도 지금처럼 나아가면 인류의 생존에 큰 위협을 받는다는 공통적인 위기의식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지금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류세에 도달한 인류가 다시 과학기술의 발달로만 인류세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 인류의 삶을 총체적으로 되돌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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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 인간의 시대
최평순.EBS 다큐프라임 〈인류세〉 제작팀 지음 / 해나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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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연기금의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전체 인구가 한국인처럼 산다면 3.3개의 지구가 필요하다." (303쪽)


과연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다. 개발도상국이라고 선진국을 따라가느라 정신없이 달려 왔는데,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개발도상국들이 저 뒤에 있다. 경제 능력만이 아니라 지구 자원을 소모하는 면에서도.


다른 나라 원조를 받던 우리나라가 이렇게 선진국이 되었는데, 그렇다면 선진국에서 떨어져 나간 나라가 있던가. 없다면 또는 있더라도 선진국에 진입하는 나라보다 적다면, 이 얘기는, 지구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자원이 더 많이 소모된다는 뜻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인류세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따.


인류세란 말이 많이 쓰이고, 이 말이 지구가 위험에 빠졌다는 신호의 말로 읽히는데, 인류세라는 말이 만들어진 이유는 바로 인류에 의해서 지구의 역사가 바뀔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단지 생각이 아니라, 인류는 지구를 바꿔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인류세가 좋은 의미보다는 안 좋은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알게 되는데, 이는 지구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인류의 활동이 지구를 파괴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세라는 말에는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말이 포함된다. 공유지... 너나할 것 없이 함께 쓰는 공간. 그렇기 때문에 막 사용해서, 결국은 공유지를 파괴한다는 말. 공유지의 비극.


지구는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에게 공유지다. 공유지이기 때문에 함께 써야 함을 인식하고 함부로 남용해서는 안되는데, 오히려 공유지이기 때문에, 내것이 아니기 때문에 막 쓴 결과 지구가 견디기 힘든 상황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그래서 지구라는 공유지의 비극은 인류세라는 다른 이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책은 교육방송 팀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인류세에 들어선 우리들의 모습을 취재한 결과다. 또 이 책에는 붕인섬이라는 지구를 1억분의 일로 축소한 곳을 대상으로 한 장이 끝날 때마다 정리해주고 있다.


지구를 우리 눈에 들어오게 축소해서,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왔으며, 그들이 생태계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지구라는 생태계가 인류에 의해 어떤 변화를 겪었고, 또 얼마나 위기에 처해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지금, 인류에 대항할 생물이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생물로 넓혀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인해 팬데믹 상황에 빠져 있기는 하지만, 이것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지는 않는다. 오로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는 인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책 결말 부분에 있는 이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인간과 생존권을 두고 다투던 상위 포식자가 사라진 이 풍경에서 우리는 이제 동물이 아니라 자연과 싸워야 한다." (314쪽) 


아니다. 자연과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과 싸워야 한다. 더 많은 지구가 필요할 정도로 소비하는 인간과 싸우지 않으면 지구라는 공유지는 파괴되고 만다. 우리 삶터를 우리 스스로 파괴하게 된다.


그러니 이제 인간은 다른 동물, 식물, 바이러스 등이 아니라 바로 인간 자신들과 싸워야 한다. 공유지를 둘러싼 갈등은 이제 지구상의 다른 존재들과 인간에게 있지 않다. 지구라는 공유지는 인간들끼리의 갈등, 또는 인간들의 삶 자체에 비극이 내재되어 있다.


공유지의 비극... 극복할 수 있다. 함께 살아가야 할 공간이라는 인식을 하고, 그 공간이 파괴되었을 때 모두가 살 수 없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아야 한다. 지구라는 공유지에서 내 몫 이상을 소비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나만의 이기심으로 지구라는 공유지를 더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우리들 삶을 바꾸어야 한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가. 하여 에드위드 윌슨이 주장했듯이 지구라는 공유지의 절반을 보호 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많은 소비가 아니라 더 적은 소비, 더 많은 활동이 아니라 더 적은 활동. 더 빨리가 아니라 더 느리게... 여유 있게 우리 삶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지구의 절반을 보호하고서도 인류는 생활을 해 나갈 수 있다. 


아니, 생활할 수 있도록 인류가 힘을 합쳐 지구라는 공유지를 보호해야 한다. 공유지의 비극은 특정한 장소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 지구라는 공유지가 위기에 처해 있다. 그리고 그 위기를 우리는 기후 위기로, 각종 감염병으로, 사라지지 않는 미세 플라스틱, 또 우리 건강을 위협하는 미세 먼지 등으로 겪고 있다.


위기가 닥쳤을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 또 극복하려는 활동을 하는 존재, 그 존재가 바로 '호모 사피엔스'다. 우리가 사피엔스,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지금 당장, 이 위기에 대처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이 책은 그 점을 여러 자료를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인류세라는 말이 부정적인 뜻에서 긍정적인 뜻으로 바꾸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 인류의 다음 활동에 달려 있다.


인류세라는 말이 공유지의 비극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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