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미래 -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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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이 간결하고 명확하다. 군더더기 없는 주장이다. 공간이 사람들 삶에 영향을 주니, 공간에 대해서 고민하고, 적절한 공간을 만들어내야 미래 사회에서 특히 감염병이 창궐하는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양한 분야의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표적인 주거공간인 아파트부터 시작해서, 종교 시설, 학교, 직장, 도시, 도로, 그린벨트 개발, 상업 시설, 청년들의 주거 문제, 국토 균형 발전 등에서 필요한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중에 아파트를 살펴보면 유현준은 포스트 코로나 아파트의 5원칙을 주장한다. 첫째, 1가구 1발코니, 둘째, 소셜 믹스 공원, 셋째, 기둥식 구조, 넷째, 복합 구성, 다섯째, 친환경적인 목구조 사용이다.


거실이나 방을 확장해서 발코니를 없앤 아파트가 많은데, 그런 구조가 사람들을 더욱 삭막하게 한다고 한다. 그러니 발코니를 통해서 자연을 주거 공간 안으로 들여와 안과 밖이 자연스레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단 주장이다. 이것이 되면 자연스레 소셜 믹스 공원은 해결될 수 있고, 기둥식 구조나 다양한 분야의 시설들이 들어오게 되는 복합 구성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목구조로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 주장대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은 이런 책을 읽으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우화가 떠오르곤 한다. 당연한 주장이고, 좋은 주장인데, 그런데 어떻게 실행하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의견도 실행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쥐들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다는 좋은 의견을 냈지만, 어떻게 달 것인가에서 실행 단계로 가지 못했으니 그야말로 탁상공론에 불과하게 되었지 않나.


유현준의 주장도 이렇게 될 확률이 높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주장을 과연 어느 부처에서 검토할까? 국회에서 관련 법을 개정하려 할까? 주무 부서라고 할 수 있는 국토행정부나 중소기업벤처부나 뭐 이런 부처의 관료들이 이 책을 읽고 고민을 할까?


아님, 이러한 전문가들이 모여 자신들의 의견을 정치권에 전달할까? 그것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말을 할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실행이 될까?


유현준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제안-> (   )->실행'으로 가는데 그 빈 칸이 하나가 아니라 너무도 많은 (괄호들)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괄호 안에 무엇이 들어가야 할지도 명확해야 하는데, 유현준의 책에서는 이 괄호에 들어갈 단계들이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문득 이 괄호를 주장하는 사람이 채울 수 있다면 우리 사회 공간 구조가 지금처럼 되어 있지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괄호를 채우게 할 사람들은 바로 그 공간에서 살아갈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유현준이 주장한 내용을 자신들의 공간에 적용하려는 노력은 그 공간에 살 사람들이 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데, 이것도 그렇게 할 여유가 있어야 한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내가 살 만해야 그 다음, 우리가 살 만한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이 책 곳곳에서 유현준은 사람은 이기적인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사람들은 천사가 아니다. 우선 내 배가 불러야 한다. 내 배가 부르면 남 배 고픈 줄 모른다고 하는 속담이 있지만, 아니다. 내 배가 불러야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다. 생각도, 행동도 내가 우선 살 만해야 한다.


이 점에서 유현준은 청년 주택 정책이 임대 위주로 가지 않고, 청년들이 집을 소유할 수 있는 정책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고 한다. 괄호 안을 채울 수 있는 하나의 단계를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정책을 펼치게 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괄호가 필요하지만, 우선 방향에 대해서 공유를 하면 비어 있는 괄호들을 채우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이렇게 이 책을 통해 하는 유현준의 주장은 귀기울 만하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실천한 건축들에 대해서도 예를 들어 보여주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점도 알 수 있다. 다만, 건축에 적용되는 수많은 법규들을 현실에 맞게, 또 미래에 맞게 개정하는데는 국회가 나서야 하는데, 그게 만만치 않다는 점이 문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읽을 만하다. 우리가 살아갈 미래의 공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들이 모여 다양한 의견을 제시한다면, 중간에 비어 있는 괄호들을 하나씩 하나씩 채워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유현준의 주장이 정리되어 있다. 그의 말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의 계층 간 이동 사다리를 만들려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오프라인 세상에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은 사람 간의 '만남의 밀도'가 높아지면서도 동시에 전염병에 강한 도시 공간이다. ... 선형의 공원, 자율 주행 로봇 전용 지하 물류 터널,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 규모는 작아지고 다양성은 많은 학교, 다양한 부도심, 특색 있는 지방 도시가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이 문제는 비전 없는 부동산 정책들과 세금 정책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도시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358쪽)


이 제안과 실행 사이에 있는 많은 괄호들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가 남아 있지만, 우선 이 주장들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있으면 좋겠다. 그런 과정 속에서 괄호들이 하나하나 없어지게 되겠지. 


덧글


목구조 건물에 대한 이야기. 아파트 이야기를 하면서 앞부분에서 유현준은 목구조가 우리나라 아파트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무들을 접합해서 건축을 하기 때문에 나무들도 강도 높은 건축 자재가 된다고... 그래서 노르웨이에서는 2019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85미터 높이의 19층짜리 목조 건축물 '미에스트로네'가 완성됐다(50-51쪽)고 한다.


그런데 347쪽에 보면 전통 건축을 이야기하면서 목재 구조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전통 건축물이라고 한정할 수도 있지만, '더 높은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는 새로운 재료가 필요했다. 철이나 콘크리트는 목재나 돌보다 단위 면적당 압축력을 받아 내는 힘이 크다. 근대 건축에 접어들어 철근 콘크리트 기둥이 나오고 나서야 수십 층 높이의 건축물을 만들 수 있게 됐다'고 하는데, 앞에서 아파트 논의에서 목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 현대에는 목재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으니, 목재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자칫 잘못 읽으면 목구조 건축을 미래 건축에서 제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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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9-14 0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대화할 때 아주 유용한 책 같아요 ㅎㅎㅎ
전 후 반부에 유교수님이 출마하시나 생각했어요 ㅎㅎ

kinye91 2021-09-14 08:02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요즘 같은 선거철에 각종 공약이 난무하는데, 이 책에 나온 제안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그것의 타당성, 실현가능성에 대해 논의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별 별 사이 - 소년소녀 X SF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김동식 외 지음 / 우리학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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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소녀xSF'라고 한다. '청소년xSF'라고 하지 않은 편집자의 고심이 느껴진다. 특정한 성이 특정 연령대를 대표하고 있다는 느낌을 청소년이라는 말은 준다. 그렇다고 청소녀라는 말을 쓰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언어가 사고를 대표한다고 하면, 청소년이라는 말에는 의식하지 않더라도 남성중심주의가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특정한 연령대를 독자로 상정하고 작품을 내놓은 출판사에서 용어를 어떻게 써야 할지 고심했음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소년소녀xSF'라고 했는데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 네 편의 주인공들은 주로 중고등학생 정도의 연령이라고 보면 된다. 중학생 정도의 연령 13세에서 18세 정도를 사춘기로 잡으면 사춘기에 들어선 사람들이 주요 등장인물이고, 독자들도 그들을 대상으로 했다고 여기면 된다.


그렇다면 사춘기에 접어든 사람들이 주로 경험하는 문제는 무엇일까? 우선 친구 관계, 또 성장통(소위 사춘기 반항이라고 하는), 성적(공부), 사랑 문제가 아닐까 한다. 


이런 문제들을 사실적으로 쓴 소설도 많지만, 이 소설은 SF라고 대놓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상상이 발현된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사건들을 표현하고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상상력에서 현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SF소설의 매력이다.


거리를 두고 읽을 수 있고, 그 거리만큼 현실 세계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김주영이 쓴 '별 별 사이'는 친구 관계를 다루고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수업이 이루어지는 학교. 온라인 수업은 부유층 아이들이 주로 하고, 오프라인 수업은 어려운 생활을 하는 아이들이 주로 하는. 


같은 학교 학생이지만 서로 별과 별처럼 떨어져 지내야 하는 그런 사이들. 이렇게 먼 존재들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친구가 될 수 있음을, 그리고 친구가 되어야 함을 작가는 상상력을 발휘해 엄마의 가출, 부유한 친구의 제안, 그 친구는 엄마와 아는 사이 등등의 과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예전 영화 '데몰리션 맨'에서 욕을 하면 경고가 나오고 어쩌고 하는 장면을 이 소설에서도 볼 수 있는데... 기발한 상상력으로 친구가 되는 과정을 잘 그리고 있다.


친구는 경제적 차이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서로가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부딪치며 지내는 사이에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서 친구가 된다. 그런 과정... 예전 어른들이 그러지 않았던가. 친구가 되려면 밥을 함께 먹고, 목욕을 같이 하고, 잠을 같이 자야 한다고. 그렇게 경제적 차이에 의해 분리되지 않고 함께 하는 생활 속에서 친구가 될 수 있음을... SF라는 형식을 빌려 작가가 보여주고 있다.


김동식 소설 '이상한 미래의 사춘기'는 웃음이 절로 나온다. 기발한 상상력이다. 물론 과학적으로 말하면 화학요법에 의존해 인간의 감정을 조절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 그러나 그런 세상이 꼭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예지의 가족을 통해서.


사춘기에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기 때문에, 그 격정적인 감정을 이용해 감정 에너지를 추출할 수 있다는 발상, 그러나 모든 아이가 사춘기를 거치지는 않는다는 사실. 아니 사춘기가 있다면 거치기는 하겠지만, 그 시기를 보내는 모습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예지 역시 사춘기를 요즘 말로 하면 쉽게 보낸다. 


소설 속에서 의사가 말하는 어려운 집안 아이들은 가족을 생각하기 때문에 사춘기도 빨리, 조용히 넘긴다는 말은 슬픔을 자아내지만, 그렇지만 그런 집안에서도 서로를 생각하면서 웃으며 지내는 가족이 있음을, 마냥 슬프다고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예지와 예지 엄마의 관계 역전을 통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냥 웃으면서 읽을 수도 있지만, 소설 속에는 우리가 깊게 생각해야 할 주제가 몇 있다. 과연 인간의 감정을 외부 요인에 의지해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또한 그런 감정조절이 된다면 왕따와 같이 피해를 보는 학생에게 기쁨 에너지를 쏘여 기분 좋게 하면 일이 해결되는가? 사춘기와 갱년기라고 꼭 지칭하면서 특정한 행동을 하리라고 예측하고 대응해야 하는가 등등.


전삼혜가 쓴 '토끼와 해파리'는 슬프다. 물론 소설은 전혀 슬프지 않다. 이게 SF소설이 지닌 장점이기도 하다. 분명 슬픈 내용임에도 읽으면서는 슬픔을 느끼기 어렵다. 다만 읽고 나서 깊은 슬픔이 밀려온다. 


어렸을 때 천재 소리를 듣던 사람이 자기 또래와의 생활을 건너뛰고 어른이 된 모습. 그러나 지식의 발전 속도(우리는 어렸을 때 공부를 남들보다 잘하면 천재라고 찬탄을 하다가, 성인이 되어서 남들보다 특출하게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그 사람을 폄훼하는 경향이 있다)가 어렸을 때와 달리 어른이 되어서는 잘 보이지 않는 아이를 설정한다.


자기 또래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을, 또래 아이들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건너뛴 아이를 천재라고 찬탄만 해야 하는지... 오히려 그런 아이일수록 또래와 함께 지낼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영화 '어메이징 메리'를 보라. 무엇이 행복인지, 그런 사람에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소설은 그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홍지운이 쓴 '그냥 그런 체질이라서'는 사춘기에 사랑에 빠진 사람 이야기다. 사랑에 빠지면 흥분하기 쉽고 이성보다는 감정적으로 행동하기 쉽다. 그 점을 용족과 결혼한 후손이라는 설정으로 (반인반수도 아니고, SF니까 가능한 설정이다. 그렇지만 재미 있다. 과거 우리나라 왕족들은 대부분 용들의 자손이 아니던가. 그러니 SF라고 없던 이야기를 지어내지는 않았다. 전통의 계승이다. 이 소설은) 사랑하는 소녀 앞에서 불을 뿜어낸 소년 이야기다.


그냥 웃음이 난다. 그리고 그렇게 사춘기의 사랑은 앞뒤 안가리고 불붙는다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이 소설에서는 웃음을 유발하면서 넘기고 있지만, 자신이 조절 못하는 사랑으로 상대가 다칠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하고 있다. 그러니 그냥 웃고 끝내는 소설이 아니다.


네 편 모두 사춘기에 겪을 만한 일들을 주제로 다양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사건을 이끌어 가고 있다. 그래서 진지하게 읽기보다는 웃으며, 깔깔거리며 읽을 수 있다. 사춘기에 접어든 사람들에게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설정이다.


그렇게 웃으며 읽다가 무언가를 더 깊게 생각할 수 있다. 이 네 편의 소설에는 웃음 속에 우리가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일들을 넣어두었기 때문이다. SF소설은 전혀 현실과 같지 않은 상상력 속에서 현실을 바로보게 하고 있으니...이 소설집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이 소설집에는 재미 있게 읽고, 웃으며 알게 모르게 마음 속에 사춘기를 겪으며 느꼈던 감정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조금 더 성장시킬 수 있겠다는 작품들이 실려 있으니, 입시에 시달리는 학생들 또는 사춘기에 접어든 사람들, 읽으면서 낄낄거렸으면 좋겠다. 낄낄거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무언가가 올라올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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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하면 얼굴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웃음을 머금게 될까? 아니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찡그린 얼굴이 될까? 과연 아이들은 학교에 오고 싶어할까?


  학교란 공간은 학생들에게는 자유를 상실한 공간, 자신들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교사들의 목소리만 들리는 그런 공간일 수도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하는 말들이 '해라'와 '하지 마라'는 명령형으로 끝나는 말들이 대부분일텐데, 그런 공간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학생들의 말에 귀기울여 주는 교사들이 있고, 학생들이 원하는 일들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무엇보다도 격의 없이 교사와 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그런 학교라면 그 학교에 가고 싶을 수도 있겠다.


이 시집을 낸 최은숙 시인은 교사다.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시로 표현했다. 이 시집은 청소년시집이고, 청소년들이 읽으면 '와, 우리 이야기네.' 할 수 있는 그런 시들이 많이 실렸다.


학생을 이해해주는 교사의 모습은 완벽한 교사가 아니다. 허점이 있는 교사다. 학생들에게 배울 수 있는 교사다. 그런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딱이다. 이 시들은 그런 교사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어서 읽으면서 배시시 웃음이 배어나온다. (선생님은 우리한테 딱이다, 비밀, 깜빡하기, 무서운 상민이, 선생님께 하는 부탁, 핵인싸각 등등)


또한 마을 사람들과 정겹게 지내는 모습도 표현되어 있고,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과 지내는 모습도 표현되어 있다. 그러니 이 시집을 읽으면 웃음이 있는 학교를 떠올리게 된다. 학교가 이렇게 웃음으로 충만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학생이 졸업을 한 뒤에도 자기 자식들을 데리고 와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그런 학교. (우린 운이 좋다 언제나)


그 중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하나가 되어 행동하는, 마을과 학교가 동떨어져 있지 않고 함께 하는 모습, 그야말로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떠오르는 그런 시가 있다.


정말 이런 학교, 이런 마을, 이런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갈수록 삭막해지는 이 세상에서, 학교가 담장을 굳게 치고, 교문을 걸어 잠그고 외부인 통제를 하며, 심지어 학생들도 한번 등교하면 하교할 때까지 학교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그런 단절된 공간이 아닌, 열린 학교, 함께 하는 학교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 시를 읽으면서 그 정경이 눈에 그려져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랬으면 좋겠다. 우리들이 학교를, 학생을 대하는 모습이.


      알고 보니


올봄에도 아이들이 쑥 뜯으러 나올 거라고

동네 어른들은 둑길에 제초제를 뿌리지 않았습니다

쑥 뜯는 동안 자동차가 한 대도 지나가지 않은 것은

다들 뒷길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공부 안 하고 놀러 나온 게 좋아서

장난치고 도망가고 야단법석

그래도 쑥이 모자라지 않았던 것은

방앗간 사장님이 뜯어 놓았던 쑥을

한 소쿠리 보태 주셨기 때문이에요


학교 앞 솔로몬문방구랑 스마일분식, 독립상회까지

떡을 돌리고도 전교생이 실컷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엄마들이 쌀을 듬뿍듬뿍 퍼 주셨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선생도 자라고

마을은 깊어 갑니다


최은숙, 지금이 딱이야. 창비. 2021년.  87쪽. 


참 아름다운 정경이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 그렇다고 아이들이 어른들의 이런 마음을 알고 있느냐 하면 아니다. 아이들은 공부 안 하고 나와서 논다고 생각한다. 그 모습들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애늙은이처럼 어른들이 우리를 배려하고 있으니, 우리 최선을 다해서 쑥을 뜯자가 아니다. 


그냥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즐겁게 논다. 즐겁게 놀아도 된다. 이 놀이가 언젠가는 그들의 마음에서 서서히 자라리라. 그들도 남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리라. 굳이 지금 그렇게 하라고 도덕적인 말로 훈계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이 채우지 못한 쑥은 마을 사람들이 채우면 된다. 아이들과 함께 쑥떡을 먹는 그런 즐거움을 누리면 된다. 


그래서 이 시를 읽으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우리가 공동체를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이런 어른들의 마음을 자라면서 알게 되리라. 시 제목이 '알고 보니'다. 


왜 아이들이 이렇듯 편안하게 쑥을 뜯을 수 있었는가, 마음 놓고 놀 수 있었는가 하니, 그것은 마을 사람들이 아이들을 배려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공동체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학교와 마을의 관계다.


이 시집에 실린 시 한편 한편이 따스하게 다가온다. 청소년들이 읽어도 쉽게 이해가 될 언어들로 시가 쓰였고, 또 자신들의 이야기가 표현되었으니, 시를 가까이하는 청소년들이 이런 시집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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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9-09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채우지 못한 쑥은 마을 사람들이 채우면 된다.
시가 아닌데 왜 시로 읽히죠?
아마도 아이들과 쑥이라는 단어가 함께 오는것이 드물어서 그런가봅니다.
시 읽기 좋은 계절이 왔네요~~♡

kinye91 2021-09-09 13:17   좋아요 0 | URL
네. 시를 읽기도 책을 읽기도 좋은 계절이 왔어요. 코로나 시국이 빨리 안정이 되면 아이들이 이렇게 밖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게 되겠지요.
 
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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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 하면 로봇을 떠올린다. 인간과 다른 로봇이 아니라 인간의 몸에 장착된 기술, 로봇과 인간의 융합. 그래서 보통 인간보다는 능력이 뛰어난, 초능력을 발휘하는 존재. 


그래서 사이보그와 장애인을 결합시키지 못하고 있었는데, 인간의 몸이 다른 존재와 결합되었을 때를 사이보그라고 하면 장애인은 사이보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존에 생각해 보지 못했던 점을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장애인을 사이보그라고 불러도 될까? 그렇게 부르자고 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장애인 하면 결핍, 부족, 부끄러움, 가려야 함 등을 생각한다면, 어떤 사람은 장애인이 뭘 하면서, 그대로 다른 사람과 같이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 책에 치료하는 약이 나와도 안 먹겠다는 장애인 활동가 이야기가 있다. 


이런 모습들은 같은 대상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 아니 자신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일 수도 있겠다. 소위 정상인(정상, 비정상 개념으로 다가가면 장애는 결핍으로,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는데... 통상 쓰는 말이니 여기서도 쓴다면, 알으로는 정상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이라는 말로 통일하겠다)들도 자신을 다양하게 바라보는데, 때로는 만족해서, 때로는 불만족스럽게 보고 있으니,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때 그때 따라서 장애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느끼는 감정이 다 다르다. 비장애인도 마찬가지고.


사이보그가 되다에서는 다양한 관점이 나타난다. 무엇이라고 하나로 규정하지 않는다. 아니 규정할 수가 없다. 비슷한 장애를 가진 사람도 사회에서 지낼 때 같은 모습으로 지낼 수 없다. 하물며 다양한 장애를 지닌 사람들에게는 그에 따라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기술을 바라보는 시각,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장애를 완전한 비장애인처럼 해주는 기술이나 약, 수술을 원하고, 어떤 사람은 장애인으로 불편하게 살아가지만 첨단기술이나 의약, 수술 등을 거부하고 비장애인처럼 보이는 모습이 아닌 장애인인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가려 한다. 


그런 장애에 대한 관점, 기술에 대한 관점을 하나로 통일시켜서는 안 된다.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여 읽다보면 장애에 대해서 그간 생각을 하지 못했던 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서 다시 우리 사회를 바라본다. 과연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들이 지내기에 어떤 환경을 지니고 있는가? 우리가 예전보다는 많이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본다고 하지만, 과연 우리는 정말로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많이 만나는가?


산책길에서, 또는 자전거도로에서 장애인을 만난 적이 얼마나 있던가? 길거리는 비장애인도 걷기에 위험하지 않나? 자전거도로에서 장애인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경우는 참 드물지 않나? 패럴림픽에 사이클 종목도 있던데...


여기에 이 책에서 나온 지적이 가슴에 콕 박혔다. 소설 속에서 과연 장애인이 얼마나 나오는가? 소설을 사회의 축도라고 하면서 그 소설 속 인물들 중에 장애인이 얼마나 되는가? 영화나 드라마는? 인간승리를 홍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어떤 다른 주제를 전달할 목적이 아니면 장애인은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비장애인들이 주변에서 장애인을 잘 못 보는 현실이 예술 작품에도 이렇게 나타나 있다. 이런 면도 지적하고 있지만, 과학기술로 장애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자는 말... 과학기술이 장애인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고, 계속 개발해야 하지만, 그와 더불어서 장애인들이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사회, 즉 다름으로 다름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많은 면에서 생각할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 책에 나온 몇몇 구절을 인용하면서 마친다. 이 인용문들을 곱씹으며 장애인에 대해, 또 장애정책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자.



김초엽과 김원영은 각자의 몸을 둘러싼 테크놀로지와 세계를 관철하면서 과연 누가, 어떤 방식으로 사이보그가 되는지 묻는다. 이들은 '장애인을 위한 따뜻한 테크놀로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테크놀로지와 사회가 어떻게 재설계되어야 하는지 상상하고 제안한다. (5쪽. 전치형의 추천의 말에서)


나에게는 말소리를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정보로 전환해주는 과정이 필요했다. 다시 말해서 먼 미래에 도래할 완벽한 보청기나 청력 치료제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의사소통과 그런 소통 환경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내 삶을 실제로 개선했다. (35-36쪽. 김초엽)


'사이보그가 되어서' 스스로를 온전한 존재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언젠가 도래할 첨단의 기계와 결합하거나 기계 없이도 '정상적인 몸'이 될 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일상에서 사용하는 기계들과 더 안전하고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공존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63쪽. 김원영)


테크노에이블리즘은 기술 낙관론에 기반한 비장애중심주의다. 이러한 관점은 장애를 손상된 몸을 가진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고, 그 개인에게 기술적 지원이나 교정을 통해 장애를 제거할 것을 혹은 정상적인 기능을 회복할 것을 요구한다. (86쪽. 김초엽)


기술은 우리 삶을 더 편리하게 만들지만, 우리 모두를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101쪽. 김원영)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연결들의 거점에서 등장하는 사이보그적 존재는 그 연결들 때문에 힘을 발휘할 뿐 아니라, 그 연결들을 지탱하고 견딘다는 점에서(김혜리 기자의 표현을 약간은 변형된 의미로 인용해본다면) "청테이프처럼 영웅적이다." (113쪽. 김원영)


사이보그 신화는 사이보그의 현실이 기계와의 불완전한 동거, 즉 불화에 가깝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138쪽. 김초엽)


완벽하지도 매끈하지도 않은 기술과의 융합과 불화가 실제 사이보그들의 삶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139쪽. 김초엽)


장애인 사이보그들은 자신의 삶에 기술을 도입해 일상을 개선하면서, 동시에 기술과 불화하고 기술과 관련된 정상성 규범과도 불화한다. (144쪽. 김초엽)


신체 손상에 따른 기능을 보완하되 주목은 덜 받는 디자인은 오랜 기간 장애인을 위한 보철물 제작에서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 이는 지금도 인공 보철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다. (154쪽. 김원영)


장애disability는 단지 몸의 특정한 기능이 결여dis-ability된 상태가 아니라 '정상이 아닌 몸'이라는 사회적 평가를 획득한 일종의 신분(지위)에 가깝다. 따라서 고도로 발전한 테크놀로지가 기능의 결여를 보완한다 해도 여전히 장애는 존재할 수 있다. (155쪽. 김원영)


어떤 기술이 반드시 억압적이거나 해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과 장애인이 이 사회에서 관계 맺는 맥락이 중요한 것이다. (182-183쪽. 김초엽)


기술 지식의 생산자들이 무엇보다 장애인의 필요를 중심에 두고 장애 정의와 접근성 실현으로 목적으로 하며, '따뜻한 기술'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기술'을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200쪽. 김초엽)


장애인은 심리스-스타일의 세계 안에 끊임없이 '이음새'를 만드는 존재다. 많은 것이 자동화되고 인간 행위자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시스템이 갖춰질 때, 늘 거기에 빈틈이 있다고 알려주는 존재가 장애인이다. (248쪽. 김원영)


기계-다른 인간-동물과 결합할 때 더 효과적으로 성취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시각장애인이 안내견과 하나로 움직일 때, 중증 뇌병변장애인이 휠체어와 결합하고 다시 그 휠체어를 밀어주는 활동지원사와 접속할 때, 그 사에서 발생하는 많은 어긋남, 불화, 이음새의 단차를 넘어 결합해본 경험이야말로 우리가 미래에 '증강해야 할' 역량이다. (250쪽. 김원영)


개인을 교정하는 것으로 장애를 해결하는 대신 환경과 접근성의 문제를 고려해 다른 세계를 설계한다. 장애가 사라지거나 감춰진 미래가 아니라 장애인들이 세계의 일부로 살아가는 미래가 ... (268쪽. 김초엽)


인류가 그보다 현명하다면, 다른 존재로서 서로를 조금씩 불편하게 만들고 또 서로 적응해가며 같이 살아가는 법을 찾으려 할 것이다. 인간으로의 일방적인 동화를 요구하는 대신 이 사회 속에 다른 존재들의 자리를 만드는 방식으로. (275쪽. 김초엽)


장애는 그 사람의 삶에 새겨지는 경험이며, 치료가 반드시 답이 될 수는 없고, 어떤 이들은 장애인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277쪽. 김초엽)


장애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장애인의 몸으로 물질세계와 직접 상호작용하는 구체적인 경험이고, 그 경험은 개인의 자아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278쪽. 김초엽)


우리는 어떤 사람과 하나의 시공간을 점유할 때에만 이미지와 소리에 제한되지 않는 풍부한 총체를 경험할 수 있다. (299쪽. 김원영)


기술의 발전 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장애 정의와 접근성이라는 원칙이 기술의 핵심 가치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무시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요. ... 비판을 통한 개입, 장애 당사자의 지식 생산, 접근성 원칙의 의무화 등 시스템의 변화가 모두 적극적인 개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350쪽. 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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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림이다 -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현대미술가 시리즈
마틴 게이퍼드 지음, 주은정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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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 모르던 화가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그림을 많이 보게 되어서 좋았지만, 그는 우리가 화가가 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곳까지 나아간다.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나왔을 때 그것을 받아들여 거기에 그림을 그리고, 아는 사람들에게 보내주는 일을 한 화가. 사진을 찍고, 그 사진들로 작품활동도 하는 화가. 무대 미술에도 참여한 화가.


참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의 그러한 활동들은 모두 그림으로 귀결된다. 그는 그림에 대해서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고, 사진이 그림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림은 바로 우리들의 삶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니 그의 그림이 한 유파로 정리될 수가 없다. 그는 시대에 맞게 또 도구에 맞게, 아니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발달된 도구들을 활용하여 그림을 그린다. 그에게는 도구가 중요하지 않다. 그림이 중요하다.


그림에 대한 데이비드 호크니의 생각을 게이퍼드와의 대담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실제 현실만이 아니라 그에 대한 시각의 재현과 해석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201쪽)


'이미지는 항상 매우 강력했고 앞으로도 늘 그럴 것입니다. 만약 '미술계'가 이미지에서 멀어진다면 미술계는 주류에서 벗어난 활동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힘은 이미지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201-202쪽)


이런 말들... 그렇지만 이 책의 매력은 말보다는 그림에 있다. 역시 힘은 이미지와 함께 있다. 호크니가 작업하는 사진도 실려 있고, 그의 작품도 실려 있으니, 이미지가 이 책에 많이 나와 호크니의 미술 또 그의 미술관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호크니의 그림 '월드게이트 숲 3월 30일 -4월 21일'. 2006년.  30-31쪽>




<월드게이트 , 2010년 11월 7일. 오전 11시 30분과 '월드게이트, 2010년 11월 20일. 오전 11시>

 234-235쪽. 호크니의 사진


같은 장소를 그림으로 그린 작품과 사진으로 찍은 작품이 있다. 시간의 변화에 따른 풍경의 변화와 그림과 사진이라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는 이런 활동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함께 감상해 보면 좋을 듯하다. 다만 그는 그림도 사진도 하나로 만들지 않았다. 여러 장으로 나누어 그린 다음 붙였다. 이 붙이는 과정에서 시간차가 나며, 그 시간차가 그림을 더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호크니의 이 말, '나는 항상 그림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것이 없다면, 누가 무엇을 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봅니다.' (11쪽) 마음에 새겨둘 필요가 있다.


우리가 눈을 뜨고 다닌다고 다 보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그림을 통해 우리는 보는 눈을 지닐 수 있고, 더 잘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필요를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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