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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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여운이 남는다. 다 읽고 나서 책장을 덮는 순간,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 속에 여러 생각들이 남아 있게 된다. 그리고 다른 작가, 특히 어슐러 르귄과 카프카가 생각난다. 생뚱맞게 왜 카프카?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어느 순간 사회에서 버려지는 사람, 세상이 변했다고, 이익이 남지 않는다고 이미 있던 관계들을 무시해버리는 사회. 그런 사회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소설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다.


우리는 당연히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 그래서 다른 세계로 갈 때 너무도 오랜 세월이 걸린다. 서양의 유토피아는 좀 다르지만, 우리 동양에서 무릉도원은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 무릉도원에서 며칠 보내고 오면 자신이 살던 세상에서는 몇 세대가 흘러가고 만다.


그래서 다시는 무릉도원을 찾아갈 수 없다. 그곳은 그곳으로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머나먼 우주에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을 마련했다면? 그곳으로 이주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그곳까지 가는 데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면? 우주의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더 빠르고 더 값싼 방법이 발견된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방법은 폐기되고, 그곳에 가는 길이 없을 때는 가차없이 그 노선을 가차없이 폐기하고 말 것이다. 마치 궁벽한 마을에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교통편을 없애는 일과 같이.


그렇다고 가지 않을까? 그곳에 가족이 있다면? 지금 속도로 빛의 속도로 가도 만날까 말까 한데,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그래도 그곳으로 가려고 할까?


당연히 가려고 한다. 얼마가 걸리든 가지 못하든 상관없다. 그곳으로 가야만 한다. 소설에서 안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182쪽)


그렇다. 루카치가 창공의 별을 보고 길을 찾고 떠날 수 있던 시대는 아름다웠다고 했듯이, 비용과 효율을 넘어서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알고 가는 이의 모습. 안나에게서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하지만, 이윤 때문에 버려지는 모습에서 카프카의 '변신'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결국 사회의 효용가치가 변하면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 달라지고 있는데, 그것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려는 사람, 그레고리 잠자는 죽음에 이르렀지만, 이 소설의 안나는 죽을지라도 그곳을 향해 가고자 하고, 그것을 실행한다. 카프카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는, 이제 우리는 효용을 위해서 사람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는 사회에서 벗어나야 함을 안나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단 생각이 든다.


사람은 효용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고,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존재임을 이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다. SF소설이 바로 우리 현실을 빗대어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다. 


이 소설집 처음에 실린 작품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르귄의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생각나게 한다. 도대체 유토피아란 무엇인가? 우리가 유토피아라고 여겼던 세상이 디스토피아일 수도 있다는 사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다양한 모습이 공존하는 삶. 그런 사회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이고, 그런 사회의 모습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이다. 르귄의 소설과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스펙트럼'이란 소설을 보면 낯선 존재를 만났을 때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외계인과 아직 조우하지 못했는데, 과연 우리는 외계인을 만났을 때 어떻게 만날까? 많은 영화와 소설에서 외계 생명체와 만나는 장면을 그렸는데, 거기에는 인간 중심의 사고가 작용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낯선 존재를 우리의 사고틀로 판단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그 점에 의문을 제시한다.


우리가 문자언어로 생각을 정리하고 의사소통을 주로 하지만, 외계 생명체도 문자를 통해서 그런 활동을 하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이 소설에서는 색채를 통해서 소통을 하는 외계 생명체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만큼 자신의 관점을 내려놓고,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자세로 다가가야 함을 생각하게 한다.


다른 소설들에서는 우리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여성이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을 '관내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라는 소설을 통해서 만나게 된다. SF소설이라는 특성으로 지금은 불가능한 장면이 많이 나오지만, 오히려 그 불가능성을 통해서 우리가 현실에서 차별받으며 고통받는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를 알게 된다.


SF소설이 지닌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먼 미래의 가상 현실을 이야기하는 듯하면서 결국은 현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따라서 SF소설이라고 해서 현실에서 벗어난 이야기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SF소설은 '지금-여기'의 삶을 돌아보고,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가상 공간으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 하여 우리는 그 가상 공간에서 현실을 만나게 된다. 이런 점에서 김초엽의 소러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현실주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읽고 나서 깊은 여운을 주는 소설. 다른 작품들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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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만해도 올해가 되면 코로나19는 잠잠해지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백신이 개발되고, 치료제도 나올테고, 또 사람들에겐 면역이 생길테고. 그러면 코로나19가 우리에게서 완전히 떠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함께 살 수는 있으리라고.


  작년보다 더 많은 확진자가 나오고, 수도권은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되어 사람들 관계에 많은 변화가 올 줄이야. 작년보다 더 힘들어질 줄이야.


  그런 변화로 인해 힘들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호 표지 모델로 등장한 지진희도 '변하는 상황에서 안주하지 말고 맞춰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다. 좋은 시절이든, 안 좋은 시절이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가 된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가 되기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을 꾸준히 견뎌낸 사람들이 지금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말하고, 나중에 '지나갔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배우 지진희가 표지 모델로 나온 이유 가운데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다. [빅이슈] 판매원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변한 자신의 환경에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고. (30쪽)


그렇다. 세상이 힘들어질 때 더욱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사회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다. 중간층에 있던 사람들이 밑으로, 영화 기생충에서처럼 반지하에서 지하로 내려가게 된다. 


그들이 겪는 고통은 더욱 강해지는데, 그들에 대한 관심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이번 호에서 종각역 5번 출구에서 빅판을 하는 분의 인터뷰에는 그 점이 너무도 잘 드러나고 있다.


[빅이슈] 판매 금액의 절반이 수익인데, 하루에 두 권을 판다면, 지금 오른 가격으로 7000원이니 절반인 3500원*2 해서 7000원이 하루 수입이 된다. 


최저임금이 시간당으로 계산이 되고, 만 원이 안 되지만 8000원은 넘는데, 이들은 하루 수입이 한 시간 최저임금이 되지 않을 때도 있게 된다. 잘 팔릴 때도 있지만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현재는 매우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이렇게 코로나19로 사람들 왕래가 더 뜸해지고, 살기도 힘들어진 때, 더 힘들게 지내던 사람들은 더더 힘들어지게 된 상황.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밑바닥에서 치고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밑바닥을 경험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빅이슈]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안을 받는다. 그들에게 도움을 준다기보다는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지는 않는다. 일방은 없다. 사람은 관계다. 쌍방이다.


그러니 당당하게 살아가는 빅판의 모습에서 내 삶을 반추해 볼 수 있게 되고, 힘겨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려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함께 산다는 일의 중요성을 생각한다.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전문가들은 유기견 절대 추천 안 해' 그 칭찬이 낙인인 이유(62-64쪽)>라는 글과 <당신에게 산호의 신호가 닿기를(65-67쪽)>를 읽으면서 생각해 봐도 좋을 듯하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삶의 주도권을 찾는 여정(72-75쪽)>과 <동료 시민으로서의 성소수자(76-77쪽)>라는 글을 읽으면 좋다.


이런 글들 말고도 소소하게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일들에 대한 글들도 있으니, [빅이슈]를 읽은 일은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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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사회의 종말 - 인권의 눈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읽다
조효제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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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눈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읽다'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다. "탄소 사회의 종말'이라고 제목을 달았는데, 이것은 저자의 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탄소 사회가 지속되면 기후위기가 더 심해지고, 그 결과 인류가 살아갈 수 없는 지구가 될 가능성이 많다. 인류가 살 수 없는 지구에서 어떻게 인권이 이루어지겠는가?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인권의 기반이라면, 살아갈 수 없는 사회로 변해가게 하는 것은 인권 침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기후위기는 인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또한 팬데믹도 마찬가지다. 팬데믹은 전지구적으로 일어나지만, 그 위험은 개인적으로 감내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빈곤층일수록 팬데믹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으니, 팬데믹 또한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기후위기를 환경문제로만 보고 인권의 문제로 보지 않았던 경우가 많은데, 최근에는 기후위기와 인권을 연결하여, 기후위기, 팬데믹을 인권의 문제로 보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이러한 문제들은 인권의 문제로 보아야만 한다고 한다.


왜 인권의 문제로 보아야 하는가? 인권으로 접근하면 강제성을 띨 수 있다고 한다. 국가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인권 보호 차원에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 기후위기나 팬데믹을 인권으로 접근하면 사회의 변화에 어떤 책무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이렇게 탄소 사회로 인해 일어난 기후 위기, 팬데믹을 인권의 문제로 보아야 함을 여러 근거들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 역시 인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몸으로 느끼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는데,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인류가 살아가기 힘든 지구로 되어갈 거라는 위기의식이 있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도, 또 인류만이 아니라 지구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존재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도 탄소 사회는 종말을 기해야 하고, 기후 위기에 전지구적으로 대처하면서 개인적인 실천도 해야 한다고 한다.


결과 중심주의 운동만이 아니라 원칙을 이해하고 관철시키려는 운동도 필요하다고 하는데, 인권은 결과도 결과지만 원칙에 있어서 철저하기 때문에 환경과 인권이 결합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결국 환경은 인권이다. 또한 인권에는 사회적 책임도 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만이 살아가는 사회를 추구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인권은 수평적이자 수직적이기 때문에, 공간과 시간이 아우러져야 한다.


전지구적으로, 그리고 과거-현재-미래가 한데 어우러지게 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이 인권의 관점에서 본 탄소 사회의 종말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탄소 사회의 종말, 아니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 해야 할 여섯 가지 제안을 하고 있는데, 전환을 위한 관점 세우기, 언론-미디어의 역할, 사회적 동력, 젠더 주류화, 인권담론, 민주주의의 재발견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만이 아니라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기후위기를 몸소 겪고 있다. 이론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실제 우리 삶에 이미 기후위기가 닥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미래로 미뤄서는 안 된다. 이 기후위기는 미래세대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현세대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인권으로 기후위기에 접근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자의 제언, 곰곰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살고 미래 세대로 살 수 있다. 기후위기를 바로잡는 행동, 더이상 미뤄둘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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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1-05 16: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kinye91 2021-11-06 15:3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초딩 2021-11-07 1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kinye91 2021-11-07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창백한 푸른 점
칼 세이건 지음, 현정준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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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해서, 이십 년 전에 나온 천문학에 관한 책들은 이미 과거의 일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때 예측했던 결과들을 알 수 있게 되면 과거로 지금 읽을 필요가 없지만, 그 예측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면 과거 책이라도 지금 읽을 필요가 있다.


또한 예측이 빗나갔더라도 왜 그렇게 예측했으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예측이 빗나갔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면 과학을 다룬 과거의 책들도 읽을 필요가 있다.


천문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최근 발견된 사실에 대해서도 모르는 지식이 너무도 많으니, 칼 세이건이 1990년대에 낸 이 책을 읽어도 새로운 사실들이 너무나 많다. 그때까지 발견된 새로운 사실을 통해 세이건은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기도 하고, 당부하기도 한다.


그래서 내게는 이 책은 여전히 읽을 만한 책이고, 앞으로 수십 년 동안에도 읽힐 필요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나온 화성에 인류가 이주하는 문제는, 영화 "마션"에서도 다뤄지고 있지만, 세이건 역시 진지하게 화성에 대해서 탐구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화성으로 이주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검토해봐야 한다고 한다. 물론 세이건은 그냥 이주하자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화성에 대해서 모르고 있고, 또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과학기술도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살아가는, 아직까지는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다고 알고 있는 유일한 별인 지구가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다. 신의 지위까지 올려놨던 인간들의 지위가 엄청나게 격하되는 데는 천문학의 발달이 한몫했다고 한다.


그리고 세상의 전부로 알았던 지구가 우주의 극히 작은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인간을 더욱 작은 존재로 격하시키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격하가 인간을 상승시키는 요인이 되니,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우주를 탐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인간과 비슷한 문명을 이룩한 외계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은 우주에서 뛰어난 생명체로 인식하고, 다른 행성으로 진출하려고 한다.


그동안 잘 몰랐던 다른 행성들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으며,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지금은 우주 여행을 하는 사람이 나오고 있으며(아직까지는 우주 여행에 엄청난 액수의 비용이 들어, 소수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화성을 인간이 살 수 있게 만들겠다는 계획을 지닌 사람도 있다고 한다.


세이건이 이 책에서 말한 일들이 실현될 수도 있는데, 초기에 우주에 관심을 가지고 달 착륙 경쟁에 열을 올렸던 이유가 군사적인 이유가 많았다면, 지금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우주에 관심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 지구가 우리가 살기에는 더 이상 좋은 환경을 지니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인데... 세이건의 이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긴급성의 선후를 고려한다면 인류가 다른 세계에서의 육지 조성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는 우리가 우리 세계를 제대로 바로잡았을 때부터일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이해와 약속의 깊이를 시험해볼 기회가 된다. 태양계 개조공사의 첫 단계는 지구의 거주 가능성을 보장하는 일이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소행성, 혜성, 화성, 태양계 외곽의 위성들, 그리고 그 너머로 진출할 준비가 마련되는 셈이다. (364쪽)


자, 우리는 화성까지 갈 생각을 하고 있다면, 우선은 이 지구에 닥친 위기부터 협동하여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우주로 나아가는 일을 개인이, 개별 국가가 하지 말고, 전지구인이 협력해서 하자는 제안을 세이건은 하고 있다.


이제는 우주 속에서 지구는 작은 점에 불과하므로, 인류가 대륙별로, 또 국가별로, 인종별로 또 무엇무엇으로 나뉘어 서로 갈등하고 경쟁해서는 안 되고, 협력해서 이 지구를 우리가 지속해서 살 수 있는 장소로 만들고, 그 다음에 우주로 나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지 않았을 경우 과학기술은 또다른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런 인류의 협동, 다른 생명체를 가정하고 함부로 외계에 발들이지 않는 조심스러운 자세 등을 그는 강조하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지금 우리들이 떠올랐는데... 코로나19로 인류는 지구 속에서 개별 국가의 국민으로서만 살아갈 수 없음을 몸으로 겪고 있다. 백신 문제도 마찬가지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백신을 쉽게 확보한 나라는 부스터 샷(추가접종이라고 하자고 한다)까지 세 번을 접종할 수 있는데, 가난한 나라들, 백신을 잘 확보하지 못하는 나라들은 1차 접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감염병은 전지구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백신은 나라별로 접종되고 있으니,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접종 문제만이 아니다. 세이건은 우주로 나아가는 문제에서도 세계 여러 나라가 협력해야 한다고, 자금이나 학자들, 기술들을 공유한다면 적은 비용으로 더 빠른 시간에 더 안전하게 우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이득을 얻으려는 나라간의 경쟁은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고 그는 말하고 있는데...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도 마찬가지다. 이윤을 얻기 위해서 하지 말고, 전세계 의학자, 과학자들이 협력해서 개발하고, 그 연구비용과 개발비용을 각 나라에서 갹출해서 지출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또 안전한 백신과 치료제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전지구적 재앙에 개별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전지구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 필요함을 세이건의 이 책, 우주 탐험에 대한 '창백한 푸른 점'을 통해서도 깨닫게 되는데... 세이건의 이 말.


나는 외계 공간에 진출할 자는 우리 - 현재의 우리 관습과 사회 전통을 그대로 지닌 - 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만약 우리가 계속 슬기로움은 소홀히 한 채 재능만을 축적한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우리 자신을 파멸시키고 말 터이다. 먼 훗날에도 우리가 존속하려면 우리는 우리의 제도와 우리 자신을 개조해야 한다. (415쪽) 


자, 이것이 외계 공간에 진출할 우리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일까? 전세계적인 감염병에 대처하는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세이건은 우주 이야기를 하면서 결국 우리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바로 과학이 지닌 장점이고, 그는 그것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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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읽으며 먹먹해지는 순간이 있는데, 이 시집이 그랬다. 가끔은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마음이 찡해지는 장면들이 곳곳에서 나왔다.

 

  세상에! 싱그러움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십대에 이렇게 세상 쓴맛을 알아버리다니.

 

  무한한 가능성으로 현재보다는 미래를 꿈꾸며 자신의 몸을 한껏 하늘로 날아오르게 하는 십대에, 조숙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다. 조숙이 아니다.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우리 십대는 이미 늙어버렸다. 세파에 찌들었다고 해야 하나. 그런 세파 속에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제 자리를 잡으려 애면글면 하고 있다.

 

그러니 이런 십대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도처에서 짤리는 계약직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지 않을 리가 없다. 반대로 최저임금이 인상되었음에도 한 명도 자르지 않고 부담을 조금씩 나눠가짐으로써 모두가 일할 수 있게 된 아파트 공고문 앞에서 뿌듯한 마음을 지닌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붙어 있는 알림을 읽다가 / 경비 아저씨를 단 한 명도 자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우리 아파트 좀 멋진 걸, 이라고 아주 잠깐 생각했다' ('최저 임금 인상에 대한 알림을 읽고' 부분. 34-35쪽)

 

이 시집에 나오는 십대는 밝고 명랑한, 세상 걱정 하나 없을 그런 십대가 아니다. 이미 세상의 편견과 압박에 시달리는 십대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손님이 아닌 아르바이트생으로 갔을 때 받는 불합리한 대우에 마음 아파하기도 한다. (손님보다 알바생, 50-51쪽)

 

무엇보다 이 시집에서 화자는 십대 중에서도 학교 다니지 않거나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평범하게(?우리나라에서 과연 학창시절을 평범이라는 말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하고, 사회는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다는 말이 있으니, 학교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으니, 그런 공간에서 눈에 띄지 않게 자신을 지키며 지내는 학생을 평범하게 학창시절을 했다고 하자... 사실, 우리나라 학교에서 평범하게 학교 생활을 한 학생들은 정말 비범한 학생들이다.) 지내는 다른 십대들보다 더 예민하게 자신을 인식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신분이 없어진 민주주의 사회라고 하지만, 과연 그런가? 아직도 학생 때는 교복으로 구분하지 않는가?

 

'교복과 교복 사이'라는 시를 보면 그렇다. 버스 안에 다양한 교복이 있을 때 알게모르게 서열이 작동한다. 저 학생은 무슨 학교, 저 학생은 무슨 학교 하는 식으로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소위 명문고와 그 명문고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 그나마 인문계라고 하는 학교로도 진학하지 못한 학생으로...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평준화 시대에도 차이를 부각시키는 일이 생기고 있다)

 

'버스 안에서 내 교복 보고 수군덕대는 거 알아'(교복과 교복 사이 중. 48-49쪽)하면서 이미 사회이 서열을 익혀버린 십대. 그런 십대가 내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그러나 거기에 함몰되어 헤어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다. 이 시의 화자는 '문제아였던 나는 고등학교에 갈 수 있을지가 문제였거든 / 너희들은 믿을 수 없겠지만 / 그 힘으로 계속 너희들과 같은 버스를 타는 거라고 / 그러니까 버스 안 서열은 그냥 대충 넘어갈래'(교복과 교복 사이 중. 48-49쪽)라고 한다.

 

자기 자리에서 비교라는 틀에 갇혀 무덤을 파고 있지는 않다. 그 점이 희망을 보게 한다. 그런 희망을 지니게 하는 존재는 꼭 있다. 어떻게든 만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만남이 바로 우리 삶을 희망으로 지탱하게 해준다.

 

  숙제

       - 이상한 나의 선생님 3

 

담임이 집에 가는 길에 쪼그려 앉아 꽃 하나를 보고 가라고 했다

 

다 둘러봐도 꽃 비슷한 것도 없었다

 

그냥 쪼그려 앉아 눈을 땅으로 내리꽂았다

 

신발들이 무심히 밟고 지나가는

 

보도블록과 보도블록 사이

 

초록이 가득한 한가운데 아주 작은 하얀 꽃 하나가 살랑거렸다

 

꼭 나 같았다 눈물이 찔끔 났다

 

유현아, 주눅이 사라지는 방법. 창비. 2010년. 78쪽.

 

너무도 잘 알려진 나태주의 '풀꽃'라는 시를 연상하게 하는 이 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어떠해야 하는지, 특히 십대 때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렇듯 유현아의 이 시집은 이런 저런 시들이 청소년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어서 읽으면서 다 다른 존재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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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10-07 1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십대가 쓴 시.
지금 K를 생각한다를 옆쪽에 두고, 소개해주신 시들을 읽었는데 같이 봐야겠네요. 이런 친구들이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kinye91 2021-10-07 12:44   좋아요 1 | URL
십대를 거쳐왔지만 잊거나 잃고 있었던 그 시절 느꼈던 감정들을 청소년시집들이 떠올리게 해요. 어른이 쓴 시든, 십대들이 쓴 시든 말이에요. 저는 아직 k를 생각한다를 읽지 않았는데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