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미술 이야기 잠 못 드는 시리즈
안용태 지음 / 생각의길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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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전히 미술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도 그렇다. 미술관에 가도 사실 미술에 대한 감상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냥 덤덤하게 또는 빠르게 나오고 만 경우가 있고, 도록을 산 경우는 거의 없다. 도록을 통해서 좀더 전시 작품에 대해 깊이 있게 다가가고 싶기도 하지만, 전문가도 아닌데 뭘, 하는 생각으로 그냥 지나치고 만 적이 많다.


여전히 미술을 어렵다고 생각하고, 내 감상이 혹 잘못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저마다 좋아하는 노래가 있고, 그 노래에 대한 저만의 평가가 있듯이 미술도 마찬가지일텐데, 그냥 쉽게 이야기하면 될텐데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미술에 관한 여러 책들을 읽고 있는데, 이 책은 그 점에서 미술에 대한 배경지식을 알려주고 있어서 좋다. 배경지식이 풍부할수록 다양하고 깊이 있는 감상을 할 수도 있는데, 직관과 지식이 어우러진다면 미술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선사시대부터 후기인상주의까지 역사적 순서로 미술을 다루고 있다. 간단하게 그때 인류의 역사에서 미술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나를 살피면서 왜 그런 이름이 붙은 미술이 나오게 되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어렵지 않게 쉬운 말들로 설명을 하고 있어서, 처음부터 흥미롭게 읽어갈 수가 있다. 여기에 작품도 풍부하게 실려 있고 역사적 상황과 작품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설명해주고 있어서 미술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미술을 어렵게 여기는 사람들, 미술에 대해서 좀더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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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호 한 호를 읽을 때마다 꽂히는 내용이 있는데 이번 호에서는 이항규가 쓴 '편지'라는 글이다. 편지가 글 내용의 핵심인데, 엉뚱하게도 편지보다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이항규, 편지. 74-77쪽)


  '나는 음식을 버리지 못한다'로 시작한다. 그리고 학창시절 통도사에서 일주일간 머물면서 인연이 닿은 스님과의 편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스님, 발우공양. 그들에게 음식은 버려서는 안 될 존재다. 꼭 스님만이 아니다. 우리 어른들 역시 음식은 버려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남아서 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나에게 주어진 음식은 다 먹어야 했다.


어찌어찌 남은 음식은 집에서 기르는 가축들에게 주든지, 거름이 되든지 해야지, 쓰레기로 버려지는 경우는 없었다. 음식이 쓰레기가 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너무도 많은 음식이 버려지고 있고, 음식 버리지 않고 다 먹기 운동은 각자의 식성을 무시한 강요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많다. 


특히 단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급식에서는 버려지는 음식이 너무도 많아서 음식이 쓰레기가 된 지가 오래다. 단체 생활을 하는 사람들뿐이겠는가. 개인 집안에서 버려지는 음식은 또 어떤가?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가 음식물 쓰레기 처리로 몸살을 앓아오지 않았던가.


이항규는 음식을 버리지 못한다고, 엄마의 영향이라고, 하지만 요즘 집에서 엄마의 영향으로 음식을 버리지 못하게 다 먹는 습관을 지닌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배달음식으로 인한 쓰레기들(음식뿐만 아니라 각종 포장 재료들까지)이 넘쳐나고 있는데...


음식은 곧 다른 생명을 내 생명을 위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 다른 존재의 생명을 빼앗는 일인데, 그 존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남겨지지 않게, 버려지지 않게 하는 일 아닐까?


그러므로 채식을 하는 이항규가 남편이 남긴 고기를 놓고 고민을 하다가 생명에 대한 예의라 생각해 남은 음식을 먹게 된다고 하는 이야기는 가슴을 울린다.


딱 필요한 만큼 음식을 만들기는 너무도 힘들다. 그렇다면 조금 부족하게 만들면 안 될까? 우리가 넘쳐나게 먹어도 좋지만, 약간 부족하게 먹으면서 다른 존재들의 생명을 존중하는 모습도 함께 살아가는 우주적 존재로서 지키면 좋은 태도 아닐까.


그렇다고 아예 먹지 않을 수는 없다. 생명으로 태어났기에 생명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그러므로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도 다른 존재의 생명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도 풍요로운 세상에서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들이라니. 조금씩 덜 먹어도 우리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러다 과연 음식만 넘쳐날까? 지금 우리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집(특히 아파트)은 어떤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많은 집이 있어서 넘쳐나고, 또 누군가에게는 남들이 엄두도 내지 못하게 비싼 가격을 유지하는 그런 집들...


서로 함께 살 수 있게 분양가도 조정하고, 또 너무도 많이 소유하지 않고 적절하게 소유할 수는 없을까? [빅이슈]는 집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잡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최소한 자기 몸을 쉴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줄 수는 없을까?


지나치게 비싸게, 많이 소유하지 않고 함께 점유할 수 있도록 할 수는 없을까?  '나는 음식을 버리지 못한다'로 시작하는 이 글에, '우리는 지나치게 집을 소유하지 않는다'로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이번 호다. 빅이슈 260호. 


음식과 집과 더불어 임금으로 나아가면, 최저임금이 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차별을 줄이는 쪽으로 작동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광화문역 5번 출구에서 빅이슈를 판매하고 있는 빅판의 생애사를 읽으면서 마지막에 나와 있는 보충 설명 때문에 이 생각이 들었다.


최저임금법 제7조에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 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사람에 대해선 최저임금 효력을 적용하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단다. (91쪽)


이게 반대로 되어야 하지 않나?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 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라고 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이 법을 개정하라고 운동하고 있다고 하는데...


더 힘든 사람, 더 약한 사람, 더 무기력한 사람조차 살 수 있는 기본을 마련해 주는 사회, 그런 사회가 음식을 남기지 않고, 지나치게 집을 소유하지 않고, 임금을 독점하지 않는 그런 사회 아닌가 하는 생각. 그런 사회를 꿈꾸게 하는 이번 호였다.


음식-집-임금, 누군가에게는 너무 많고, 누군가에게는 너무 없는 그런 상황이 지속되지 않는 사회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 [빅이슈] 260호.


덧글


인터넷에서 최저임금법을 찾아보니 조항이 이렇게 되어 있다. 여전히 개정이 안 되고 있다. 하루빨리 개정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7조(최저임금의 적용 제외)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으로서 사용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를 받은 사람에 대하여는 제6조를 적용하지 아니한다.  <개정 2010. 6. 4., 2020. 5. 26.>

1.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

2. 그 밖에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사람

[전문개정 2008.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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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미술관 - 그림 속 숨어있는 이야기, 2020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문하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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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옛날 다락방에는 지금은 쓰지 않지만 한때 쓸모가 있었던 물건들이 들어가 있었다. 소위 잡동사니라고 하는 물건들이 차 있고, 그 빈공간은 집 안이긴 하지만 집 밖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집과는 분리된 자신만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다락방에 홀로 앉아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거나, 이일 저일을 하거나 했던 기억이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사람들에게는 있을 테지만, 지금은 다락방이 거의 없는 집에서들 살고 있으니...

 

다락방은 자신만의 내밀한 비밀을 간직한 장소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다락방이라는 말에는 자신만의, 아주 사적인 비밀들이 들어 있는 그 무엇을 연상하게 한다.

 

다락방 미술관이라는 제목 역시 다락방이라는 말이 미술관을 이끌고 있다. 화가나 그림에 얽힌 사소한 이야기 (이를 시시콜콜한 이야기라고 해도 좋겠다)를 알 수 있겠단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런 생각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이 이 책에는 미술에 얽힌 많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특히 화가나 그림에 얽힌 사적인 이야기들이 작품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알려주고 있어서 그림에 문외한인 사람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시대별로 화가(작가-카미유 클로델은 그림보다는 조각으로 유명하니까)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의 화가 이야기가 읽을 만하다.

 

재미도 있고, 또 그림에 대한 설명이 마음에 와닿기도 하고. 여기에 다른 책과는 달리 여성 화가들(화가들 앞에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가 좀 그렇지만, 남성 화가라고 하면 되니...)을 많이 다루고 있는 점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그동안 많은 미술 책들이 남성 화가(작가)들을 중심으로 서술되었고, 우리들이 학창시절에 배운 작가들도 남성 화가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책은 그 점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화가들 중에서 우리나라 화가, 나혜석을 다룬 점도 좋았다고나 할까? 최근에 다시 주목받고 있지만 나혜석에게 함께 오는 수많은 수식어들, 어쩌면 그런 그의 삶을 알게 되는 이야기가 그림과 함께 펼쳐지니 좋다.

 

이렇게 다락방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듯, 이 책을 읽으면서 미술에 관한 자신만의 감상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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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모 있는 어원잡학사전 알아두면 쓸모 있는 시리즈
패트릭 푸트 지음, 최수미 옮김 / CRETA(크레타)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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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나라 문자에 대한 기록인 "훈민정음"을 보면 맨 뒤에 정인지가 쓴 서문이 있다. 그 서문에 '하늘, 땅, 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곧 반드시 하늘, 땅, 자연의 글자가 있느니라.'고 했다.

 

하늘, 땅, 자연의 소리가 글자와 어떻게 연결이 될까? 도대체 문자는 누가 만들었으며, 그 말들(소리와 문자)는 왜 그렇게 불리게 되었는가 하는 궁금증이 인다.

 

그래서 어원을 공부하기도 하는데, 어원이 밝혀지지 않은 말들이 많다. 도대체 인류의 역사에서 소리보다는 문자가 한참 뒤에 나왔으며, 그 소리를 기록한 문자가 남아 있어도 완전하게 남아 있다고 보기 힘드니, 말의 기원을 찾는 일은 참으로 힘들다.

 

하지만 그만큼 말의 기원을 찾는 일은 흥미롭다. 답이 없는 문제를 풀어가는 일과 같다. 천천히 오랜 시간에 걸쳐 답을 찾아가지만 답을 찾고도 그 답이 정말로 진실인 답인지 알 수가 없다. 또다른 탐구자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명확하게 이거다라고 말해주는 항목도 있지만, 이런 설, 저런 설이 있다고 하는 항목도 많다. 그만큼 우리 역사에서 말들은 문자 표기에서도 의미에서도 많은 변화를 거쳐왔다. 총 11개의 장으로 구분해서 각 장에 10개 정도의 말들을 살피고 있는데... 흥미있는 말들도 꽤 있다.

 

그 중에 영화 '코코'가 생각났다. 미국 영화이긴 하지만 배경은 남미다. 남미는 스페인어를 주로 쓰고 있는데, 영화에서 '코코'는 주인공 미구엘의 할머니이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생각한 것은 바로 '코로'라는 이름이다.

 

미구엘이 죽은 자들의 세계에 가서 모험을 하는 내용인데, 죽은 자들은 산 자들이 기억해줘야만 소멸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작품에서 펼쳐진다. 코코가 죽고나면 코코의 아빠도 소멸할 수밖에 없는데...

 

이 책에 '코코넛'을 설명하면서 코코넛이 '코코'라는 스페인의 유령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206쪽)고 한다. '많은 스페인 아이들은 말 안 들으면 코코가 온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을 것이다(206쪽)'라고도 하는데...

 

그렇다면 영화도 혹시 이런 '코코'라는 말에서 유령이야기를 빌려서 소년의 모험담을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어원을 알면 다른 사실에 여러 살을 붙일 수가 있다. 다양한 해석을 할 수도 있고. 우리 말에도 어원을 알면 재미 있는 말들이 있지 않은가. 또한 한문에서는 한자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풀이하는 '설문해자'라는 책도 있지 않은가.

 

이런저런 유익한 점을 따지기 전에 우선 이 책은 재미있다. 이미 알고 있던 낱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말이 되었는지를 알아가는 재미가 좋다. 또한 과연 그럴까 라고 의심을 해도 좋다. 저자도 말하고 있듯이 자신이 꼭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언어는 다양하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많은 변화를 거쳐왔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탐구하면서 우리 인류의 역사를 알아가기도 하니, 이런 책은 제목에 있는 말 그대로 '알아두면 쓸모 있는' 어원 잡학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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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냐? 나도 아프다." 유명한 드라마 대사다. 이 대사 이전에 이미 유마거사가 한 말이 있다. 세상이 병들었으므로, 나도 병들었다는.

 

  병은 공감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여 내 몸에, 내 마음에 나타나는 증상이 바로 병이다. 병이 없다고 건강한 사람일까?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병이 없으면 건강하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다 아픈데 나만 아프지 않다면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왜 나만 아프지 않을까?

 

  분명 세상은 고통덩어리인데, 나만 세상의 모르쇠로 살아오지 않았는가 반성해 봐야 한다.

 

고통에 둔감함, 다른 사람의 고통을 알지 못하고, 세상의 어려움을 생각하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만 잘 먹고 잘산다면 그것을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평소에 잘 먹고 잘살던 사람들이 죄를 지었다고(재판을 통해 판결이 나기 전이든, 판결이 나든) 교도소에 가기만 하면 그들은 환자가 된다. 아픈 사람이 된다. 어떤 병이든 병을 달고 있게 된다. 그 전까지는 세상의 고통을, 다른 사람의 고통을 젆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자신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자 비로소 아프게 된다.

 

이것이 과연 제대로 된 병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자신의 병을 통해 고통을 체험하게 되니, 그런 체험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사회의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진다.

 

(믿고 싶을 뿐이다. 이상하게 이들은 교도소에서 나오면 말짱해진다. 아팠던 기억도 없는지, 병하고는 거리가 먼 삶을 산다. 공감과 거리가 먼 삶을 산다. 다른 사람의 병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고 살게 된다. 이런 병은 가짜 병이다. 공감이 없는 병.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병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온 사람들, 그들은 과연 병을 앓고 있는가? 다른 사람들이 다 아픈데, 아파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이들은 오로지 높은 곳을 향해서 나아가기만 하고, 도무지 아플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공광규 시집 "파주에게"를 읽다가 첫시 '병'을 읽으며 정말 우리 사회에서는 아파할 수 있는 사람,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병들었을 때 자신도 병들었음을 인식할 수 있고, 그 병을 치유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지금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시 '병'을 보자.

 

      병

 

고산지대에서 짐을 나르는 야크는

삼천 미터 이하로 내려가면

오히려 시름시름 아프다고 한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동물

 

주변에도 시름시름 아픈 사람들이 많다

이런 저런 이유로 아파

죽음까지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나는 하나도 아프지 않다

 

직장도 잘 다니고

아부도 잘 하고

돈벌이도 아직 무난하다

 

내가 병든 것이다

 

공광규, 파주에게. 실천문학사. 2017년. 11쪽.

 

야크가 삼천 미터 이하로 내려오면 아프다고. 그만큼 고상한 존재라고 해도 되겠지만, 세속이 그만큼 병들었다고, 자신만 건강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소위 성인들이 그렇지 않은가. 그들은 자신만이 고결하게 살 수 있음에도 세속으로 내려온다. 세속에 내려와 세속인들의 병, 고통을 함께 겪는다. 이것이 바로 공감이다. 이것이 바로 성인의 삶이다.

 

꼭 성인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모른 척하고 넘어가지 못한다. 그들의 고통에 함께 아파한다. 공감한다. 보통 우리들은.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세상 꼭대기에 서려고 한다.

 

그들은 그러면 세속으로 내려오면 안 된다. 자신만의 세계에서 그냥 살아가면 된다. 야크가 산 위에서 살아가듯이. 그렇지 않으면 함께 아파해야 한다. 그래서 시인은 건강한 자신이 병들었다고 한다. 함께 하지 못함, 이게 바로 병이다.

 

남들이 아픈데, 나는 건강하다고 자랑하지 말고, 함께 병을 앓아야 한다. (꼭 육체의 병을 앓아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공감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래야 세상 병이 치유될 수 있다. 함께 아파함으로써 병을 함께 치유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인 우리 인간들이 지녀야 할 자세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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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1-10-14 2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시를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kinye91 2021-10-15 08:27   좋아요 1 | URL
글을 읽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