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합본 메피스토(Mephisto) 13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 / 책세상 / 200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통 SF소설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과학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최근 과학이론을 소설적으로 가공해서 우리에게 어느 정도 개연성, 필연성이 느껴지는 소설, 또는 시공간은 환상적이지만 읽으면서 우리 현실을 느끼게 하는 소설을 기대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무려 5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어떤 합리성을 찾으려면 번번이 실패하게 만든다. 그냥 그때 그때 상황을 벗어날 뿐. 그 상황 속에서 우리 현실을 찾으려 해도 실패하게 된다. 그런 것은 없다. 없기 때문에 낄낄거리며 읽다가도 이게 뭔가 싶은 마음이 든다.


우회 도로 건설 때문에 집이 철거 위기에 처한 아서 덴트, 그리고 우회로를 만들기 위해 지구를 파괴하는 우주적 사건. 둘이 겹친다. 아서 덴트는 이 위기에서 포드 프리펙트로 인해 우주를 여행하게 되고, 살아남게 된다.


포드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글을 기고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들이 히치하이킹을 통해 우주 여행을 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져야 할 거라 기대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사건들이 어떤 개연성도 없이 일어난다.


여기에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그냥 우연히... 우연, 우연, 우연... 이 우연들이 겹쳐 필연이 된다. 그렇게 아서는 살아남아야 한다. 그가 죽어야 할 때가 올 때까지.


4권까지 우주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사건들에 휩쓸리는 아서 덴트와 포드, 자포드 비블브락스, 트릴리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면, 5권에서는 주인공이 확실히 정리된다. 아서 덴트를 중심으로 사건이 펼쳐진다.


방대한 우주에서도 지구와 같은 행성은 찾을 수 없다는 것. 우리는 창백한 푸른 점인 이 지구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아서는 지구와 가장 비슷한 환경의 행성을 찾아 정착하려 하지만 그도 쉽지 않다. 여기에 포드로 하여금 우주의 음모가 진행되게 하고...


그냥 재미로만 가던 내용이 5권에 이르면 무언가 찡한 여운을 남기게 된다. 우리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감성을 자극한다고 할까.


어디에도 어떤 시간에도 살아갈 수 있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여야 하지만, 히치하이킹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도 고향은 필수적이다. 고향을 상실한 사람은 히치하이킹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떠돌뿐이다.


히치하이킹이 무엇인가? 여행이다.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하는 여행. 이 여행의 끝은 고향으로의 돌아옴이다. 그래서 고향이 존재해야지만 히치하이킹이 의미 있어진다.


만약 고향이 없어진다면? 그건 여행이 아니다. 떠돎이다. 방랑, 정처없는. 율리시즈는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방황을 했고, 아이네이아스는 고향을 잃었지만 새로운 고향을 만들기 위해 여행을 한다.


그들의 여행은 결국 돌아옴으로 귀결된다. 돌아옴이 없는 여행이 있을 수 없다. 지금 우리 인류도 우주로 우주선을 쏘아 올린다. 우주로 나아가려고 한다. 왜? 지구에서 머물지 않고 우리들의 삶터를 확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또 지구가 위기에 처했기에 인류가 살아갈 또다른 고향을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 소설에서 생각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 아서 덴트는 방황하고 지구를 그리워한다. 그는 분명 지구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다중우주에서 지구와 비슷한 행성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자, 작가가 그 가능성에 주목했다면 이 소설의 결론이 지구 파괴로 끝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냥 수많은 은하계 또는 다른 우주 행성 중에 인류가 살아가는 행성이 있고, 아서 덴트는 그곳에서 잘살아가게 서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지구가 없어진다면, 인류가 살아갈 삶터는 우주 어디에도 없다고 보아야 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행성을 스스로 파괴하면서 어찌 다른 행성에서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불가항력이라는 말처럼, 인류 스스로가 아니라 천체 법칙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지구를 떠날 수밖에 없다면 그때는 아이네이아스처럼 또다른 행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고, 그 행성에서 인류는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히치하이킹을 하든, 우주선으로 정상적인 여행을 하든, 그렇게 되겠지만, 이소설에서처럼 지구가 파괴된다면, 어디로 가든 견딜 수 없게 된다. 아서 덴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져 버리는 사랑하는 사람 펜처치처럼 우리 인류에게도 그런 삶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여 재미있게 읽으면서, 그냥 우연이 겹치는 그 우연성에 쉽게 페이지를 넘기다가 마지막 권에 와서는 무언가 찡한 느낌을 받는다. 지구로 돌아왔지만 지구가 다시 파괴되어 버리는 순간. 그 순간 지구에 머무는 아서 덴트.


그렇다. 이 소설은 SF소설이라고 하지만 다른 SF소설과는 다르다. 상당한 우연들이 겹치고, 황당무계한 도저히 현실과 연결지을 수 없는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결국에는 그것이 인생임을 생각하게 한다.


인생이 과연 필연으로만 이루어질까? 우리 인생을 생각하면 수많은 우연들이 모이고 겹치지 않는가. 나중에야 그것들을 필연이라는 이름으로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 우연들을 빼버리게 되지만, 그 과정은 수많은 우연들의 겹침이다. 그게 인생이다. 그리고 우리 인생은 우리가 목적한 대로만 되지 않음을, 우리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지기도 함을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우리는 삶이라는 여정을 히치하이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대하지 않았던 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는 과정. 그럼에도 히치하이킹에는 늘 함께 하는 존재가 있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은가. 철저하게 혼자라고 생각해도 가만히 보면 어떤 존재와 함께 하고 있다. 그렇게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소설은 우리 삶의 우연성을 생각하게 해준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1-12-09 16: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꽂아놓고 감상만 하고 있는 책인데...
이 달의 리뷰 축하드려요

kinye91 2021-12-09 17:31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1-12-12 16:48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제가 뒤늦게 백신 맞고 부작용인가,....
꽂아놓고를
꽃만 놓고 감상하고 있다고 읽었어요^^;;

두 분의 소장 책이시네요.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보고 추천받은 책이라 친근합니다. kinye님 당선 축하드려요^^

mini74 2021-12-09 16: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립니다 *^^*

kinye91 2021-12-09 17:32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쎄인트 2021-12-09 17: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kinye91 2021-12-09 17:3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1-12-09 18: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kinye91 2021-12-09 21:1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잭와일드 2021-12-09 22: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kinye91 2021-12-10 05:37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scott 2021-12-10 00: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 합니다 ^^

kinye91 2021-12-10 05:37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라일락과 깃발 - 노부인이 전하는 어느 도시 이야기 그들의 노동에 3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 '그들의 노동에' 3부다. 1부는 땅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사람들, 이들은 땅에서 어떻게든 생명을 얻으며 살아간다. 2부에서는 땅에서 떠나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그들은 완전히 땅을 떠나지는 못한다. 이제 3부는 땅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온 사람들,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돌아가지 못한다는 말은 부모세대에게 어울리는 말이고, 이 소설의 주인공은 쥬자와 수쿠스는 땅과 더불어 살아본 적이 없다. 물론 쥬자는 약간 다르다. 사실인지 아닌지 명확히 이야기하지 않고 있지만, 염소 젖을 짜고 닭을 잡는 일을 하는 사람은 쥬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쥬자는 도시에서 살아가지만 땅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도시에서 살아가더라도 여성은 땅과 관련이 있는 삶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면 이 소설 인물 중 한 사람인 헥토르는 농촌에서 도시로 와서 경감으로 퇴직을 앞두고 있다. 그는 자신의 고향으로, 즉 땅과 함께 살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그곳으로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땅과 유리된 삶을 살려고 한다. 그러니 그의 아내가 알콜에 의존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고, 결국 헥토르를 죽음에 이르게 할 뿐이다. 생명력을 상실한 삶.

 

수쿠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아버지의 말을 듣고 아버지의 고향에 가고자 하지만 결국 가지 못한다. 그에게 돌아갈 고향은 없다고 하는 편이 좋겠다. 뿌리뽑힌 삶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농촌에서 도시로 오게 된 사람들의 자식인 2세대들은 이제 돌아갈 고향조차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도시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든지, 부랑자나 범법자가 되든지 한다. 마치 땅과 붙어 있으면 누구도 죽일 수 없지만, 땅에서 떨어지면 목숨을 잃게 되는 안타이오스처럼, 그들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땅에서 떨어져 나온 삶들이 온전하지 못함은 남녀를 구분짓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존 버거는 이들에게 위안을 주려고 한다. 죽은 이들이 모두 배에 모여 자신들의 삶을 보게 표현하고 있는데...

 

이런 소설의 환상적인 마지막 장면... 작가는 이렇게라도 뿌리뽑힌 삶들을 위로하고 싶었나 보다란 생각이 들었다.

 

산업화, 도시화 되면서 사람들 삶이 땅과 점점 멀어지고, 그런 삶이 풍요로워지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음을 이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몇 십 년에 걸쳐 사람들이 땅에서 점점 멀어지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존 버거는 '그들의 노동에' 3부작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땅에서 멀어지는 삶이 우리들에게 고난을 준다는 사실을 체험하고 있으니, 다시 땅과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때 유로파에서 그들의 노동에 2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존 버거의 소설. [그들의 노동에]3부작 중 2부다. 1부가 '끈질긴 땅'이라는 이름으로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였고, 그들이 땅에서 분리되기 시작함을 루시라는 인물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면, 2부는 땅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 도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등장한다.


서서히 땅에서 멀어지며 도시의 삶으로 들어가게 되는 사람들 이야기. 우리나라 60-70년대에 농민들이 땅에서 분리되어 도시로 와서 공장 노동자가 되거나 도시빈민이 되어가는 모습을 버거의 소설을 통해서 다시 만날 수 있다.


1부가 이문구 소설을 연상시킨다면 2부는 이문구 소설에서 벗어나 조세희 소설로 가는 중간 지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2부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산골에서 살지만 도시의 삶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어느 정도 도시와 산골의 삶에 다리를 걸치게 되는데, 곧 이들은 땅을 잃게 될 것이다. 그 점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 2부의 제목이 된 '한때 유로파에서'이다.


산골 마을에 공장이 들어서고, 공장에서 뿜어내는 유독가스들로 인해 숲이 죽어가고 있는 모습, 그런 모습을 사람에 비긴다면 오딜이 사랑했던 사람이 공장에서 죽어가고, 또다른 사람은 다리를 잃게 된다.


산업노동이 사람의 삶을 죽음으로 이끌거나 장애로 만들고 있는데, 자연 파괴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도 피폐하게 함을 그 소설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시대 변화는 어쩔 수가 없다. 오딜은 아버지와 자신이 자란 환경을 사랑하지만 도시로 나가게 되고 결국은 도시에서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렇게 세상은 도시화를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땅에서 벗어나 도시로 간 사람들이 풍요롭게 살고 있느냐 하면 그것이 아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풍요와는 거리가 멀다. 그들에게는 아직 돈이 전부는 아니다. '보리스, 말을 사다'라는 소설에 그 점이 잘 드러나 있는데, 비록 약속을 지키지 않고 제멋대로 사는 보리스지만, 그는 도시라 할 수 있는 카페에서 차값을 대신 내주는 등 돈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런 그를 이용하는 사람은 도시 사람들이다. 그를 이용해 집을 얻으려는 도시 출신 부부가 나오는데, 이렇게 땅과 유리된 삶은 결국 이용당하고 만다.


결혼을 하지 못하고 혼자 살게 되거나 (아코디언 연주자), 산골에 들어와 살지만 결국 도시에서 가게를 차려 살아가게 되는 삶(우주비행사의 시간), 도시 부부에게 이용당하고 죽게 되는 삶(보리스, 말을 사다)이 2부에서 펼쳐진다.


땅과 유리되어 자신의 삶을 잃어가는 사람들. 세상은 그렇게 변해왔다. 지금은 도시가 지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땅과 유리된 삶, 흙을 밟아본 기억이 산에나 가야 있는 그런 시대가 되었으니...


이 소설에서는 아직도 풋풋한 풀냄새, 흙냄새가 나고 있지만, 그런 냄새와 더불어 매캐한 공장 냄새도 함께 나고 있다. 그 매캐한 냄새가 풋풋한 냄새들을 누르기 시작하고 있는 모습.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그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3부는 이제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겠지. 씁쓸하게도 우리는 땅을 잃어버리고 있는데, 버거의 3부작 소설은 어쩌면 우리가 땅을 잃어가고 있는 과정을 여러 소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끈질긴 땅 그들의 노동에 1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존 버거의 소설이다. 여러 단편이 묶여 있는데, 배경은 농촌이고, 인물들은 농민들이다. 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벗어나지 못하는 이라는 말보다는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

 

땅은 움직이지 않지만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땅을 통해 생명은 지속된다. 농민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이 땅을 떠나는 순간, 그들은 농민이 되지 않는다. 뿌리 뽑힌 삶을 살아가게 된다. 땅에서 벗어난 농민. 버거의 이 소설에서 그들은 나오지 않는다.

 

이 소설집에서 인물들은 대도시의 파리로 가더라도 다시 돌아온다. 이들이 살아야 할 장소는 땅을 일구며 사는 곳이다. 땅과 같이, 다른 동물들과 같이 이들은 살고 죽는다. 죽음도 그들은 거부하지 않는다.

 

지금 죽음을 앞두고 대부분 병원으로 가는 도회지의 삶과는 다르게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죽음을 자신에게 친숙한 곳에서 맞이하고 싶어한다. 죽음이 자신이 알고 있는 곳으로 오게 하고 싶다고. 그리고 그들은 죽음을 거부하지 않고 죽음도 삶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살아간다.

 

더 많은 말이 필요없다. 땅과 함께 사는 삶은 자연의 일부인 삶이다. 돈을 앞세우는 삶이 아니라 생존을 우선하는 삶이다. 이들은 살아갈 뿐이다. 그렇다고 비도덕적이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그들의 삶은 그 자체라고 봐야 한다.

 

자신이 기르는 가축을 도살하고 생명을 유지하듯이 그렇게 이들은 살아갈 뿐이다. 여기에 어떤 수사는 필요없다.

 

이런 삶이 가장 잘 드러난 소설이 '루시 카브롤의 세 가지 삶', '루시 카브롤의 두 번째 삶', '루시 카브롤의 세 번째 삶'에 잘 나타나 있다.

 

삶 자체로 살아가는 사람, 루시 카브롤, 소설에서는 별명으로 더 불리는데, 코카드리유라고 한다. 그녀의 삶을 보면 동생들에 의해 쫓겨나 살지만 자연 속에서 자신의 삶을 계속 유지해 간다. 그러고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

 

루시는 태어나면서부터 남들보다 작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작은 키를 지니고 있다. 이는 땅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 농민(통칭 농민이라고 한다)들의 삶이 점점 어려워지고 사회에서 비중이 더 작아지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루시는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한다. 그리고 동생들에 의해 쫓겨난다. 쫓겨나지만 땅과 더불어 계속 살아간다. 땅에서 나는 것들이 루시를 계속 살아가게 한다. 하지만 루시가 땅을 떠나려 할 때, 결혼을 해서 다른 삶을 살려고 할 때 더이상 루시의 삶은 없다.

 

그런 삶을 위해서 루시는 돈을 모아놓지만, 돈은 도시의 속성, 자본의 속성이고, 땅과 유리된 삶을 의미한다. 그러니 더이상 루시는 살아갈 수 없다. 다른 사람에 의해 살해당하는데, 이는 농민들이 도시화, 산업화로 인해 더이상 전통적인 삶을 살아가기 힘든 상황을 의미한다.

 

하지만 소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루시의 세 번째 삶에서 환상적인, 귀신이 된 사람들이 등장해 집을 짓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은 이제 현실에서 살아갈 수는 없지만, 이들의 전통적인 삶은 환상 속에서 계속된다.

 

이렇게 존 버거의 '끈질긴 땅'은 땅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잘 드러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만큼 존 버거의 소설은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모습을 소설 속에서 발견할 수 있고, 그 모습이 지금은 많이 낯설지만 원초적인 우리들 삶이었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들의 노동에]라는 제목으로 3부작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라고 하는데, 이제 2,3부가 남았다. 2,3부 역시 땅과 함께 살아가는 땅과 떨어질 수 없는 사람들 이야기를 만날 수 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빅판 인터뷰 기사가 마음에 들어와 박혔다. 이 박힌 돌, 쉽게 빠지지 못할 듯하다.

 

  "...추석 전에 역무원이 단속을 나왔어요. 민원이 들어왔다고 나가라는 거예요. 책을 빼서 진열하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지만, 다시 집어넣으려면 시간이 엄청 걸리거든요. 전동차에 앉아 있으니까 어쩔 수가 없어요. 그래서 책 집어넣는 것 좀 도와주면 안 되느냐고 하니까 한마디로 기분 나쁘게 "우리가 도와줘야 할 의무는 없잖아요.' 하는 거예요." (87쪽)

 

  "빅이슈 판매원의 자립활동을 위해 서울특별시, 서울교통공사, 한국철도공사와의 협조 공문이 있어요." (코디의 말. 87쪽)

 

"예전에 인천에서 판매할 때는 상황이 굉장히 안 좋았죠. 한번은 구청에 책을 전부 뺏긴 적도 있어요." (88쪽)

 

빅판을 인터뷰한 내용에서 발췌했는데... 이들이 자립하기 위해서 잡지를 판매하는데, 그 잡지를 판매하기조차도 힘든 상황이다. 물론 역사 내에서 장사를 금지한 규정이 있다고는 하지만, 살기 위해서 애면글면 애쓰는 사람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쫓아내거나 물건을 빼앗은 경우가 있다니...

 

역무원들이 형편을 봐주는 경우가 있고, 협조 공문도 있다고 하는데 민원이 들어오면 어쩔 수가 없다고 한다. 민원... 내 불편을 감수하지 않기로 하고, 고치라고 요구하는 일. 그런데 내 편안함이 다른 사람의 생계를 위험에 빠뜨린다면... 조금 내가 불편해도 되지 않을까? 내게는 그들로 인한 불편이 생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테니까.

 

또 민원이 들어왔다고 해도, 의무가 아니라고 해도,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도와줄 수는 있지 않은가. 휠체어를 타고 있는 모습을 뻔히 보면서도 '의무'가 아니라니... 법적인 의무는 없지만 윤리적인 면에서 보면 일종의 의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법으로만 사람이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법보다는 윤리, 도덕이 먼저 작동하는 사회가, 인간에 대한 공감이 먼저 작동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 아닐까.

 

이렇게 우리 함께 살아갈 방법을 생각하면 안 될까? 내 눈에 조금 거슬리더라도 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줄 수는 없을까? 내가 조금 불편하면 남이 조금 더 편해진다고 생각하면 안될까? 이런 생각을 했다.

 

갈수록 정이 없어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참지 못하는 모습. 자기 일이 아니라면 상관없다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어떻게 규정대로만 살 수 있는가? 어떻게 보기 좋은 대로만 살 수 있을까? 내 불편을, 내가 보기싫어함을 잠시 참으면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이번 호다. 마음이 좋지 않은데, 이번 호에서 앞부분 글, 식물에 관한 글을 통해 마음이 좀 편해졌었는데... 그렇게 식물처럼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나서지 않지만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도 많은데..

 

내가 가진 것이 많으면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을 위해 조금은 양보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사회이면 좋겠다는 생각.

 

유튜브 채널에 <하이머스타드>가 있다고 이번 호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이 유튜브 채널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보여주고 있단 생각이 든다.

 

식물들처럼, 우리에게 위안을 주고, 나서지 않아도 우리 삶에 도움이 되듯이 이러한 사람들은 유튜브를 통해 우리 사회를 좀더 밝은 쪽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빅판 인터뷰를 통해 마음에 박힌 못들이 이런 사람들, 이런 활동들(특히 빅이슈 텍스트란에는 이런 글들이 많다)로 인해 조금씩 빠져나오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립하려 애쓰는 빅판들에 대한 일들이 많이 알려지길 바라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