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의 교육을 말하다 - 관계 본질 변화
김용 외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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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교육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 이후 인공지능이 우리들 삶에 깊숙히 들어와 우리들 삶 자체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코로나로 인해서 우리들 삶이 엄청나게 바뀌었음을 체감하게 된다.


인공지능이라는 인간 문명의 발달로 인간의 삶이 바뀌는 일이야 그렇다쳐도 감염병으로 인해 인간 삶이 바뀔 수 있음은 그다지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현대 의학과 과학이 발달한 지금에서는 더더욱이. 


하지만 이 둘이 연결되어 코로나 이후 우리 교육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금처럼 교육이 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대세를 이루고, 그럼에도 코로나는 우리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던져주었다고 말하고 있으니...


코로나로 인해서 우리 교육에는 인공지능까지는 아니어도 온갖 매체들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것들을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었고, 인터넷을 중심으로 하는 온라인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결국 과학기술과 감염병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우리 교육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코로나 이후에 교육이 온라인으로만 갈 수 있을까? 이제 학교라는 공간은 필요없고, 교사라는 직업보다는 누구나 교사가 될 수 있는 그런 시대로 변하게 되는가? 그런 질문을 한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교육을 말하는 이 책은 앞으로 우리 교육은 전면적인 온라인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온라인을 거부할 수는 없겠지만, 학교라는 공간에서 친구들과 교사들과 직접 대면하면서 하는 수업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왜냐? 교육은 관계이기 때문이고, 이 관계는 온라인에서도 가능하지만 직접 대면했을 때 온라인보다 더 질적으로 다양한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본디 교육은 관계적 성격의 일이며, 수업은 교사와 학생이 교육과정을 매개로 다층적으로 대화하는 일과 같습니다. ... '관계 맺기 없이 교육은 성립할 수 없다'는 깨달음은 코로나가 우리에게 전해 준 큰 선물입니다. (6쪽)


왜 그러냐 하면 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제는 스스로 자기 공부를 찾아해야 하는 대학생들도 온라인 수업을 통해서 지식은 습득했을지 몰라도 무언가 미진한 점이 있었다고 한다.


성인인 대학생들과의 수업에서조차도 교육은 정보처리의 효율만으로 판단될 수는 없었다. (43쪽)


학교는 지식을 얻어 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관계를 만들어가는 곳이다. (48쪽)


이렇게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은 온라인과 더불어 직접 만나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된 2년 동안 지속적으로 대면 수업 요구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함께 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서로에게 자극을 받고 도움을 받는 과정을 통해서 배우는 일. 또 갈등하고 타협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일 등등이 교육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한 공간에서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비록 쉬운 일이 아닐지라도.


온라인 상에서 학습하고 발표하는 일을 더 편하게 여기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그들은 이런 관계가 직접 만나서 관계를 맺는 일을 피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지내면 인간이라는 말이 성립하기 힘들다. 인간은 함께 지낼 때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모프가 쓴 소설 '로봇과 제국'이나 '파운데이션'에서 보면 서로 대면하지 않고 홀로그램으로만 소통하는 솔라리아인들이 나온다. 


그들은 고도로 발전된 기술을 사용하고, 홀로그램을 통해 서로 소통하기는 하지만, 직접 대면은 하지 않는다. 그런 사회가 과연 바람직할까? 오래 전에 아시모프는 그런 사회가 바람직하지 않음을 이미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니 코로나로 인해 원격수업만 한 학생들에게는 솔라리아인과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원격과 더불어 함께 만나 관계를 맺을 기회를 주어야 한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은 언젠가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예측할 수 없는 것에, 그리고 가능한 것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에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동시에, 앞선 세대에 의해 만들어지고 끊임없이 형성되고 있는 세계에 새 세대가 주인으로서 거주할 수 있도록 초청하는 것이다. 이 초청에서 아이들은 인식 그 자체가 아니라 인식과 이중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 즉 인식을 '통해'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서' 이 세계와 관계 맺도록 하여 이 세계를 더욱 새롭게 갱신해 나갈 수 잇는 그 세대만의 가능성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개별적인 주체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127-128쪽)


교육은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자유주의적 자유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바라는 것'과 '바람직한 것' 간의 차이를 규명할 줄 아는 해방적 자유를 향해야 한다. (131쪽)

 

그래서 이 책의 저자들은 아이들의 학습에도 주안점을 주지만 교사의 교육에도 주안점을 둔다. 교사는 교육을 해야 한다. 아이들을 자극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이 교육에, 즉 배움의 장에 나오도록 초청해야 한다.


이 초청을 아이들이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교사는 초청해야 한다고 한다. 언젠가 이 초청의 의미를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으므로.


하여 코로나 이후의 교육은 지금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학교의 중요성을 드러냈고, 원격과 대면이 융합되는 교육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원격을 통해 학생들이 지식을 습득하더라도 대면을 통해 그 지식들을 활용하여 토론하고 심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어쩌면 이미 오래 전부터 해오던 거꾸로 학습법 같은 방법, 또 다양한 방법을 통해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 방법은 이래야 한다고 딱 하나로 또는 몇 가지로 정리되어 전달해서는 안 된다고... 학생과 교사, 또 지역에 맞게 다양한 교육 방법이 실행되어야 한다고... 그런 교육 다양성을 살리는 일이 코로나 이후의 우리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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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을 읽으며 시 한편 한편이 독립되어 있지만, 시집 전체적으로 통일성이 없는 시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별 문제는 없었다. 시집을 하나의 유기체로 이해하기보다는 시 한편 한편을 유기체로 이해하고 감상하면 됐기 때문이다.

 

  그런 시들이 마음에 남아 시를 더 좋아하게 하기도 했는데, 이번 이원하 시집은 시 한편에서도 연과 연들이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야말로 감정의 과잉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마치 하룻밤 꿈 속에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그 일이 어떤 연관성도 지니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꿈에서 일어나는 사건 하나하나가 충격으로 다가와 어떤 꿈은 기억에 오래 남고, 어떤 꿈은 기억에서 사라져, 꿈을 꾸었다는 느낌만 남아 있게 되는데...

 

이원하 시집,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샀지만, 제목이 된 첫시를 읽으면서 어떤 통일성을 기대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이렇게 감정들을 나열해서 무엇을 전달하고자 할까?

 

사람들 감정이 하나로 정리될 수 없음은 명확하고, 그래서 정신분석학에서 무의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세계가 엄청남을 알려주고 있지만, 적어도 시인은 무의식의 세계를 의식의 세계로 끌어올려주어야 하지 않나.

 

무의식을 그냥 무의식으로 내보내는 역할이 아니라 무의식을 의식으로 걸러 내보내는 역할, 시인이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이원하 시집에 실린 시들은 그렇지 않다.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자 할까? 아주 예민한 시인의 감성을 언어로 표현해 우리가 그런 감성을 이해하지 않더라도 그냥 느끼게 하는 걸까? 감성의 넘침. 그런 시들을 읽으면서 그 넘침에 우리들이 흠뻑 젖기를 바라나?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부를 이루는 낱말들은 한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낱말들을 합치면 '새싹눈물'이 된다.

 

새싹은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고, 눈물은 감정의 넘침이다. 그러니 이 시집은 전체가 감정의 넘침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제목이 된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가 마음에 와 닿는다.

 

제주 역시 동떨어진 섬 아닌가? 여기에 '혼자 살고'라고 했으니 외로움도 있겠고, 다른 사람을 향한 마음의 분출 또한 있을테고, '술은 약하'다고 했으니, 조금만 마셔도 자신의 감정이 흔들리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래, 이렇게 넘치는 감정은 모든 것에 자신의 감정을 투사할 수 있다.

 

어쩌면 이런 감정의 투사가 사람들을 부드럽게 할 수도 있다. 자신만이 존재하지 않고, 함께 존재해야 함을, 심지어 무생물에게서도 감정을 느끼게 되니 어찌 함부로 살 수 있겠는가?

 

이원하 시집을 읽으며 그런 감정들의 넘침을 생각하는데... 이 시를 자꾸 곱씹어보게 된다.

 

나무는 흔들릴 때마다 투명해진다

 

나무는 신처럼

하늘과 가깝고 수염도 자라고

늘 같은 자리에 머물지만

내 소원을 들어줄 리 없다

 

한순간도 내게

솔직해질 용기를 줄 리 없다

 

편애도 없다 편애도 없는 건

다행이기도 하고

불행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나에게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아침마다 손이 따뜻한 이유다

관심을 얻기 위한 온도다

 

온도의 숫자를 하나둘 올리다가

내 손가락이 몇 내가 접혔을 때쯤

손에 불이 날까

 

불은 모르고 손은 안다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소리는

손바닥에 있다는 사실을

 

손은 모르고

나는 안다

 

이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이원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문학동네. 2020년 1판 8쇄. 118-119쪽.

 

더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감상만 하면 된다. 누구든 자신의 마음대로 이 시를 감상하면 되지 않겠는가. 나 역시 마찬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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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죽음, 시대의 고발 - 젊은 영혼들에 빚진 한국 현대사
안치용.바람저널리스트 지음 / 내일을여는책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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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란 현재보다는 미래에 가까운 존재다. 가깝다는 말보다는, 현재를 살기보다는 미래를 사는 존재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이들에게는 현재를 딛고 미래로 향해 나아가야 하는 권리가 있고, 의무가 있다.


하여 청년들은 현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청년들의 죽음은 청년들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미래를 현재가 잡아끌어 주저앉히는 격이다. 그러니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이 죽음으로 현재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기성세대에게는 청년들이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길을 보여주고 이끌어 줄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성세대들이 그런 의무를 다하지 않을 때, 청년들의 죽음이 미래의 좌절이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디딤돌이 될 때가 있다.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그동안 가려졌던 현재의 그늘들이 드러나고, 그늘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된다.


이렇게 한 청년의 죽음은 개인으로는 좌절이고, 멈춤이고, 미래로 나아가지 못함이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또 청년들로 보면 미래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전태일'이다. 전태일로 인해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법에 있는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고, 비록 오랜 세월이 걸렸고, 아직도 완전히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전태일이 외쳤던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말, 노동현장에서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책 제목에 '청년의 죽음, 시대의 고발'이라고. 개인의 죽음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의 토대가 되기에 '고발'이란 말을 달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식을 지닌 인물로 이 책에 나오는 '윤상원'을 들 수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끝까지 도청을 지켰던 청년. 


그가 인터뷰에서 '오늘의 우리는 패배할 것이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283쪽)


윤상원은 자신의 죽음이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이루는데 밑거름이 되리라고 믿었고, 그의 죽음과 또 광주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많은 이들의 죽음은 실제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었다.

  

이렇게 미래에 대한 의식을 지니고 죽음을 맞은 청년도 있지만, 그런 의식이 없더라도 한 청년(여기서는 청년이라는 말이 특정한 성별을 지닌 젊은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청년은 특정한 성별이 아닌 그냥 젊은이를 가리키는 말이다)의 죽음이 사회의 문제를 드러내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기폭제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미군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한 '윤금이'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신효순, 심미선'은 우리에게 미군은 어떤 존재인가, 또 우리나라에 주둔한 미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우리 사회가 생각하고, 개선하게 한 청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박흥순'을 통해서는 도시빈민들의 문제가 드러나고, '버스 안내양, 김경숙, 박영진, 문송면, 황유미, 황승원, 구의역 김 군, 자이븐 프레용' 등을 통해서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드러내고, 아직도 이 문제는 진행 중이어서 우리가 관심을 지녀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아직도 '사회적 합의' 운운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명확히 내세우지 않거나 또는 전혀 용납할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나서는, 성별에 따른 차별을 생각하게 한 청년들 이야기도 있고,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김주열, 이한열'과 같은 청년들 이야기, 외국에 파견나간 노동자들 이야기도 있다.   


미래에 살아가야 할 청년이 현재에 머물게 되는 죽음. 그러나 그 죽음으로 현재의 민낯을 드러내고 현재를 미래로 이끌어가는 촉매역할을 하게 된 청년들.


읽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질 때 많다. 이렇게 많은 청년들에게 빚을 지고 있었구나. 먼 과거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최근에도 계속 이런 죽음들이 일어나고 있구나. 아직도 우리에게는 이 죽음들을 해결하지 못한 빚이 있구나. 이 빚을 갚아야 이들의 죽음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활짝 열어젖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일제시대 윤동주부터 시작한다. 청년 윤동주, 끊임없이 자아성찰을 했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런 청년들은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를 부끄럽게 하기도 한다. 그런 부끄러움으로 우리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좀더 좋은 쪽으로 만드는데 참여하도록 한다.


청년의 죽음을 다룬 이 책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단지 이런 죽음이 있었다 알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런 죽음으로 우리 사회는 어떤 빚을 졌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빚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면 더 큰빚이 우리를 짓누르게 된다. 여전히 청년 자살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그러니 그 빚을 갚아야지 이런 사태를 벗어날 수 있다.


빚 갚음. 그것은 사회의 어둠을 보고, 어둠을 몰아낼 빛을 우리가 만드는 일에서 시작한다. 이미 우리는 촛불 경험이 있지 않은가. 


윤동주 시인의 시 '쉽게 쓰여진 시'에 나오는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와 같은 청년들을 이 책뿐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 곳곳에서 만나지 않았던가. 그러니 우리가 그들의 빚을 빛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잊지 말아야 한다. 잊지 않음에서 시작해서 그들이 원했던 세상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죽음으로 인해 별이 되어 우리에게 빛이 되어준 청년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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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지 호수를 보고 놀란다. 264호다. 한 달에 두 번 발간이 되니, 일년이면 24권이 나온다. 10년이면 240권이다. 여기에 24권이 더해졌다. 한 해가 더해졌으니, 11년째 발간되고 있다.


  예전에 발간되던 잡지들이 휴간이 되거나 정간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격월간지가 계간지가 되기도 했고.


  하나하나 내 곁을 떠나간 정기간행물들이 얼마나 되는지... 그런데 빅이슈는 여전하다. 처음 길거리에서 만났을 때 별다른 생각없이 구입했는데, 읽으면서 기회가 되면 구입해야지 했던 기억.


  빅판들을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서울 나들이를 하지 않은지도 오래지만, 서울 나들이를 하더다로 빅판들이 판매하는 지하철 역에 가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탓도 있기는 하겠지만, 빅판들을 통해 구입하지 못하면 정기구독을 하면 된다. 직접 대면해서 구입해야 마땅하겠지만, 어쩌겠는가. 직접 만나기가 힘들다면 정기구독을 해서 빅이슈를 만나는 일도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고 해야 한다.


그렇게 한 해째 만나오고 있다. 즐거운 만남이고, 다음 만남을 기대하기도 한다. 여기에 표지 인물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있고. 대부분 기꺼이 표지 인물이 되기를 승낙했다는데, 우리 사회에 정(情)이 메말라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고맙다.


정, 사람들 사이에 규칙만이 있으면 얼마나 삭막할까? 난세에 법을 중시하는 사상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평화로운 시기에는 법보다는 사람들 간의 정이 우선하고 있다는 생각.


그래서 때로는 이런 정으로 인해서 피곤하기도 하지만, 정때문에 더 돈독해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빅이슈를 통해서 깨닫는다.


이번 호에는 K-콘텐츠에 대해서 기획 기사가 실렸다. 우리나라 예술이 이제는 우리나라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이라는 나라 문화가 외국으로 나아간다. 그것도 열광적으로.


또한 외국 방송들이 이제 우리나라에도 들어왔다. 너무도 많은 방송들. 지상파 몇 개만을 방송 전체인 줄 알고 자랐던 세대들에게는 지금 이 방송들 이름을 기억도 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런 외국 방송들에 우리나라 드라마, 가요, 예능 프로그램들이 자리를 잡는다. 그야말로 세계화 시대다. 세계화를 우리나라 문화가 주도하기도 한다. 그만큼 다양한 문화가 우리나라에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방송에 대한 소개, 왜 우리나라 프로그램이 세계에서 인기가 있을까를 분석한 글들. 빅이슈 자체가 우리나라에만 있지 않듯이 방송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책임도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방송매체들 속에서 어떤 책임감을 지니고 방송을 접해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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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16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kinye91님 2021년 서재의 달인 추카합니다 ^ㅅ^

kinye91 2021-12-16 15:5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1-12-16 1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즐겁고 행복한 연말 되세요^^

kinye91 2021-12-16 17:3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 님도 즐겁고 행복한 연말 되길 바랄게요.

쎄인트 2021-12-16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21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kinye91 2021-12-16 17:3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러블리땡 2021-12-17 0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kinye91님 서재의달인 축하드려요 ^^

kinye91 2021-12-17 05:2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진실에 갇힌 남자 스토리콜렉터 8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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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이 우선 보통사람과 다르다. 대학 때 미식축구를 한 거한이다. 덩치가 다른 사람을 압도한다. 여기에 미식축구 경기 중에 다쳐서 뇌의 한 부분이 특수한 작동을 한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뇌를 지니게 된다.


잊지 않는다는 일, 축복일까? 저주일까? 축복이기도 하고, 저주이기도 하다. 좋은 기억이 있으면 그것을 잊지 않으니 축복이겠지만, 마찬가지로 안 좋은 기억을 잊을 수가 없으니 저주이기도 하다. 이런 기억 능력은 양날의 검이다. 어떤 쪽으로 제어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행복이 달려 있다.


데커라는 인물. 기억과 덩치. 그는 형사로 일한다. 형사, 사소한 단서도 놓쳐서는 안 되는 직업. 정의를 실현하는 직업이라고 알려져 있으니, 형사로서 덩치와 기억은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하지만 데커는 자신의 가족이 살해당했다. 이처럼 치명적인 사건을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견디기 힘든 기억이다. 최소한 데커에는 망각이 없으므로. 이 기억 속에서 그는 허우적 댈 수밖에 없다.


딸의 생일에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와 무덤에 꽃다발을 놓는 데커에게 13년 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암으로 인해 가석방이 되었다고 찾아와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한다. 무죄임을 밝혀달라고.


데커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으므로, 재수사가 가능하다. 하지만 무죄라고 주장한 사람이 살해당한다. 뭔가 이상하다? 다시 자신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데커.


여기서부터 이 소설은 시작한다. 반전에 반전, 연이어 벌어지는 살인사건들. 범인은 누구인가? 그 범인을 추론하는 재미로 소설을 계속 읽기 시작한다. 뜻밖의 인물들이 용의선상에 오르고, 그리고 그들이 또 살해당하고...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져드는데... 여기에 반전이 또 일어난다. 범인에 대한 윤곽, 13년 전 살인사건에 대한 윤곽이 점점 뚜렷해진다. 범인에게 한 발 더 다가가게 된다. 


그래, 이 소설은 그런 재미로 읽어야 한다. 도대체 범인은 누구인가? 왜 그런 살인을 저질렀나? 미국이라는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갱단, 마약, 그리고 돈... 결국 돈이라는 생각으로 사건이 정리되어 갈 무렵. 아니다. 돈이. 더 다른 문제가 있다.


소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미국 사회와 갈등관계에 있는 나라까지 끌어들인다. 좀 너무 나갔다 싶기도 하고, 007시리즈를 소설로 읽는 듯한 느낌도 들고.


살인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소설을 전개했으면 훨씬 좋았겠단 생각을 하는데... 지금은 냉전 시대가 아니니까. 그러니 오히려 살인과 경제를 연결짓고, 그 매개가 되는 돈이 사람들을 어떻게 위험에 빠뜨리는지를 서술했으면 더 좋았으련만...


이런 국가간의 음모까지 나아간 점이 좀 무리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 전까지 추리를 해나가고, 범인의 윤곽을 밝혀가는 과정은 흥미진진하다. 범인이 누구일까를 추론하는 재미까지 있는데... 결말을 감안하고 읽으면 그런대로 흥미로운 추리소설이다.  


데커가 자신의 심리적 상처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소설을 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고, 범인을 잡는 과정에서 잊지 못할 자신의 아픈 기억을 극복해가는 모습이 잘 표현되고 있어서, 그 부분에 중심을 두고 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열린 결말이다. 아마도 데커라는 인물을 통해 다른 추리소설들이 계속 나오리라는 예상을 하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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