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백 -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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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표백'이란 제목에는 강제라는 말이 들어 있다. 희지 않은 존재를 희게 만드는 일이 바로 표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표백에는 자기 뜻에 반해 변화된다는 의미를 포함되고 있다. 그렇다면 희게 되는 존재는 누구일까? 세대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기성세대는 아니다. 이미 기성세대는 희게 되었든, 그렇지 않든 제 색깔을 지니고 또는 잃고 살기 때문이다. 이는 제 색깔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제 색깔에 대해서 고민하는 세대는 기성세대를 잇는 세대다. 젊은세대다. 젊은세대는 기성세대의 뒤를 이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자기 색깔을 지니고... 그런데 이미 사회에는 기성세대가 자리잡고 있다. 자리를 비켜주지 않으면서 젊은세대에게 자신들의 뒤를 이으라고 한다. 어떻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세대갈등이라는 말도 이래서 나온다. 젊은세대가 기성세대를 잇기 위해서는 기성세대의 틀에 맞추어야 한다. 자기만의 틀을 가지고 사회에 진출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들의 성공사례가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 아니겠는가. 대다수가 그렇다면 굳이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다. 희소한, 뉴스 거리가 될 만한 일이어야 다룬다. 


이렇게 젊은세대가 사회에 진출하는 길이 어려워졌다.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회에 진출할 수 있을까? 기성세대가 원하는 색깔에 맞춰야 한다. 자기 색깔이 아닌 사회가 원하는 색깔.


그런 색깔이 무엇일까? 소설은 흰색이라고 한다. 제목이 표백이다. 하얗게 만드는 일... 하얗지 않는 존재를 인위적으로 하얗게 만드는 일이 바로 표백이다. 이 제목에 따르면 젊은세대는 결국 기성세대의 뜻에 맞춰 자신의 색깔을 바꿔야 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것을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 사회에 진출할 수 있을까? 진출하더라도 과연 제 색깔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또 그들 후대에게도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라고 할 수 있을까?


장강명 소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소설도 빠른 속도로 읽힌다. 그가 쓴 소설들은 망설임이 없다. 결론을 향해서 치닫기 때문에 순식간에 한 권을 다 읽어내게 된다. 그런 다음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왜 제목이 표백일까? 이미 표백된 세상에 나온 젊은세대들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우리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런 현실 속에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고 하고 있나?


소설에서는 세연을 중심으로 자살하는 청년들의 모습,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서술자의 모습이 표현되고 있다. 그렇다. 자기 색깔을 잃은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에 동화되지 않고 거기서 벗어나려 죽음을 택하는 모습들...


읽으면서 빛의 삼원색을 합치면 흰색이 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각자 자신의 색깔을 지니고 살아가야겠지만,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자신의 색깔을 잃고 다른 색깔들과 합쳐질 수밖에 없다. 우린 빛과 같은 존재이기는 하지만, 사회에서는 제 빛을 내지 못하고 결국 흰색으로 수렴되고 만다.


표백된 세상에서 살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나를 잃어간다고 할 수 있는데, 반대로 색의 삼원색을 합치면 검은색이 된다. 색, 빛을 자연이라고 신이라고 하고, 색을 인위적, 사람이라고 한다면, 자연과 신은 흰색이 되고, 이는 우리가 넘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즉, 나를 잃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색의 삼원색을 합친다면, 이는 인간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한다면, 결국 인간의 세계는 검정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 인간들이 모여서 만들어가는 세계가 암담한 세상이라는 뜻일까? 


흰색과 검정색의 대비, 신과 인간의 대비... 기성세대와 젊은세대의 대비. 흑과백. 세상은 흑백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아니다. 이는 개성을 인정하지 않는, 각자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에서나 가능하다. 


신의 세계인 종교가 지배적인 사회는 흰색의 세계다. 이 세계에서는 다른 색깔을 용인하지 않는다. 빛도 삼원색이 있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다 합쳐진 흰색만 인정한다. 이런 세상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미 기성세대가 짜놓은 세계에서 더이상의 변화를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젊은세대가 만나는 일은 바로 이런 흰색의 세계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 흰색의 세계에 대비해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려 한다. 자신의 세계를 만들 때, 서로 다른 삶들을 인정해주고, 그 삶들이 하나하나 소중한 삶이라고 여겼으면 좋으련만, 여기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 개입하려고 한다. 그런 다 다른 색들을 인간세상에서도 합치려고 한다. 그럴 대 나오는 색깔은 검정색이다. 죽음의 색이다.


젊은세대가 자살로 가는 경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흰색의 세계도 거부하지만,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색깔을 인지하고 인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각자 가지고 있는 색들을 합쳐 죽음의 검정색을 만들어낸다. 그것만이 최선이라고 하는듯이.


소설은 여기서 검정색이 젊은세대가 택할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서술자가 거리를 두고 자살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들 삶은 각자의 색깔이 있는데, 그 색깔들을 하나로 합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흰색도 검정색도, 자신을 잃고 다른 존재에게 자신을 내맡겨버리는 일이므로, 자신의 색깔을 지니고 살아가야 함을, 그 삶이 비록 힘들고 비루하게 느껴지더라도 소중한 자신만의 색깔임을, 표백을 거부하고 또 검정이 되기를 거부하는 삶임을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 이 소설은 기성세대에 대항하는 젊은세대의 좌절을 보여주고 있지만, 거기서 머물러 기성세대에 편입되거나 또는 자신의 색깔을 잃고 검정이 되는 삶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야 함을 생각하게 하고 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으므로... 그렇게, 우리 삶은 자기들의 색깔을 잃지 말아야 함을, 결코 표백되지 않아야 하고, 또 남들과 합쳐져 검정이 되지도 말아야 함을 잘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재미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아픈 곳들을 건드려서 우리로 하여금 이 사회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 지금까지 읽었던 장강명의 소설은 그랬다. 남은 작품들도 찾아 읽어봐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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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어감 사전 - 말의 속뜻을 잘 이해하고 표현하는 법 관점 있는 사전
안상순 지음 / 유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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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속담에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는 말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말로, 같은 내용의 이야기라도 이렇게 말하여 다르고 저렇게 말하여 다르다는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그만큼 말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낱말, 문장이 쓰이느냐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나기도 한다.

그런데 비슷한 뜻을 지닌 말이 많아서 어떤 말을 써야 할지 고민될 때가 있다. 또 그 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를 지니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또 뜻은 같다고 생각하지만 쓰일 수 있는 문장이 있고, 쓰일 수 없는 문장이 있다. 같은 의미인데 문장 전체의 뜻에서 보면 사용에 제한이 있게 된다.


그런 낱말들이 지닌 작은 차이들, 또는 문장에서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서 기존 사전은 풀이를 해놓지 않고 있다. 사전만 봐서는 알 수가 없다. 


언어가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이고, 그 언어가 풍부할수록 우리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도 다양해진다고 하는데... 그래서 낱말이 지닌 작은 차이들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에 대해서 알려주는 책을 만나기 어려웠다.


이 책은 그런 어려움을 해소해주기 위해 나왔다. 비슷한 뜻을 지니고 있으나 작은 차이를 지니고 있는 말들을 가나다 순으로 묶어 찾아보기 편하게 만들었다.


또한 그 말들이 쓰이는 문장들을 다양한 예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읽으면 아,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중에 처음에 나온 낱말인 '가면과 복면'을 예로 들면 이 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에서 가면과 복면은 얼굴을 가리는 도구라는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가면은 얼굴을 묘사하여 만든 형상물인데 비해, 복면은 얼굴을 가리는 데 사용된 물건을 가리킬 뿐 별개의 형상물은 아니다. 곧 가면은 특정한 표정과 인상을 가진 독립된 조형물이지만, 복면은 벗는 순간 그냥 천조각일 뿐이다'(24쪽)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설명을 보면 가면과 복면의 차이를 잘 알게 된다. 여기에 더해서 가면과 복면의 차이를 더 설명하고 있는데, 그런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가면과 복면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비슷한 의미, 또 비슷하게 쓰이는 낱말들이 지니는 작은 차이들을 알려주고, 문장에서 어떤 낱말들이 더 적확한 표현인지를 알게 해주고 있다.


이렇게 말이 지닌 속뜻까지 알 수 있도록 해주는, 작은 사전 역할을 하는 이 책... 명확한 의미를 지닌 말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 비슷한 단어들이 지닌 작은 차이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의미있는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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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들의 세계사 - 2014년 제47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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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하던 때가 있었다. 이 법으로 옭아맨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전국 도처에서 창조되었던 간첩들. 이들을 만들어낸 법이 바로 국가보안법이었다. 참 악용되기 쉬운 법이었고, 독재 정권 유지를 위해서 꼭 필요한 법이기도 했지.


나라가 국민을 위해서 제대로 기능을 한다면 국민들에게 나라를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나라가 국민 삶에 도움이 된다면 어느 국민이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행동을 하겠는가. 아마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법이라는 이름이 작동하기 전에 국민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을 것이다.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라면.


그런 나라일수록 국가보안법같은 법은 있을 필요가 없다. 법이 많다는 얘기는 거꾸로 읽으면 위반자가 많다는 얘기고, 이는 나라가 사회가 불안정하다는 얘기다. 즉 사람들이 사람들을 제대로 존중하지 않을 때 작동하는 기제가 바로 법이다. 그리고 이 법을 강력하게 시행하면 할수록 사람들 삶은 퍽퍽해진다.


법이 그럴진대, 법 중의 법이라고 하는 헌법이 아니라, 헌법 위에 군림하던 국가보안법 (아직 폐지 안 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요즘은 거의 유명무실한 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소환되는 경우가 있으니, 이 법 생명력이 질길 뿐만 아니라 여전히 위력도 지니고 있다)이 왕노릇을 하던 때. 독재정치가 판을 치던 때. 각종 정보기관이 이 법을 업고 온갖 사건을 만들어내던 때.


소설은 그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두환이 정권을 잡고 안정시키려 할 때, 권력을 위해서 많은 사건들이 필요하고, 또 미국에 잘 보이려 할 때, 미국에 반대하는 시위나 집회들은 국가의 안녕을 해치는 행위고, 반국가적인 행위니,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하던 때.


그래서 소설은 어둡고 무거워야 한다. 이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했는가. 죄도 없이, 아니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잡혀들어가 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또 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소설 배경과 인물이 이럴진대 어떻게 소설이 무겁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소설은 무거움과는 거리가 있다. 물론 내용은 무거운데 작가가 서술 방법을 통해서 덜 무겁게 소설을 읽게 하고 있다.


풍자, 비꼼이다. 서술자가 전면에 등장해 이렇게 읽어라, 저렇게 읽어라 잔소리(?)를 하는 각 부분의 도입부에서 이미 독자들은 무거움에 짓눌리지 않고, 그래 어디 이야기해 봐라 들어주지 하는 자세를 갖추게 된다.


작가는 이야기꾼의 자질을 십분 발휘해 우리를 그 엄혹했던 시절로 이끌어간다. 고문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리는 사람, 그리고 자신들의 출세를 위해 사건을 조작하는 사람, 또 조작한다는 의식도 없이 믿는 사람.


글자를 모르는 이름은 복이 많은 나복만이라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소설이 전개되는데, 나복만이 겪는 일에 분노하기 전에 우선 거리를 두게 된다. 서술자가 너무 드러나게 개입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렇지 않았다면 이 소설을 끝까지 읽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 현대사에서 일어났던 , 개인과 가정을 파탄내는, 인간관계를 맺기 힘들게 하는 일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가벼운 문체로 소설이 전개되지만,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다. 오히려 그런 일이 있었구나, 또 그런 일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나복만의 일이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서에서는 그 사건을 종결시키지 않고 후일담을 전해주고 있는데... 어찌 끝날 수 있겠는가.


사건을 조작했던 사람이든, 당했던 사람이든, 그들에게는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짐이 되었을 사건들이었을테니...


읽다가 왜 차남들의 세계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남, 둘째 아들? 이 소설에서는 이런 차남에 대한 이야기가 두 번 나오는데(내 기억으로는) '아무것도 읽지 못하고, 아무것도 읽을 수도 없는 세계. 눈앞에 있는 것도 외면하고 다른 것을 말해 버리는 세계, 그것을 조장하는 세계 (전문 용어로 '눈먼 상태'되시겠다.). 그것이 어쩌면 '차남들의 세계'라고 말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179쪽)라고 나온다.


이 말에 따르면 '차남들의 세계'는 눈먼 자들의 세계라고 할 수 있고, 눈먼은 권력에 눈 멀든, 또는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서 권력의 부정을 눈 감든, 진실에서 멀어진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때 말하는 '차남들의 세계'는 바로 권력자(그것도 미국에 잘보이려고 하는 독재권력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들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 차남은 장남처럼 인정받고 싶어한다. 힘들이지 않고 (물론 가부장적 세계에서 통용되던 일이다) 집안의 권위를 상속받던 장남과는 달리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야 했던 차남들은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신의 권력을 만들어간다. 


독재자들은 정당성 없이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 하기 위해서 불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벌어지는 일들을 '차남들의 세계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차남 이야기가 나오는 첫번째에 다시 이런 구절이 덧붙여진다.


'우리 이야기에는 한 가지 진실이 더 숨어 있다. 이미 눈치챈 사람들도 있겠지만......' (179쪽)라고. 그렇다면 '차남들의 세계'는 이런 권력자들의 세계만이 아니란 얘기다. 그렇다면 차남들은 어떤 존재들. 그들의 세계사는 어떤 세계사? 


소설 뒷부분에 성경이야기를 끌어들여 이런 말이 나온다.


'보좌신부님은 그때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유효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우린 모두 형제들이고, 이 세상은 두려운 한 명의 형과, 두려움에 떠는 수많은 동생들로, 차남들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그것이 바로 신의 뜻이라는 말씀도 하셨지요. 더 큰 문제는 우리 차남들 스스로가 형을 두려워하다가 숭배마저 하게 된 상황, 신보다 형을 더 믿게 된 현실을 개탄하기도 하셨지요.' (279쪽)   


이때 차남은 바로 국민들이다. 독재자에게 핍박받는 사람들. 그들은 독재자를 두려워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추앙하게 된다. 많이 본 듯한 느낌을 주지 않는가?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 존경할만한 대통령은? 이라는 질문에 누가 많이 뽑히는지 심심찮게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으니... 


그렇다면 이 소설은 두 방향에서 전개된다고 할 수 있다. 독재자와 그를 추종해서 독재권력을 유지하게 해주는, 진실에서 멀어진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와 형에게 핍박을 받고 두려움에 떨면서 죽임을 당하기도 하는 사람들의 세계.


그래서 소설은 다른 두 세계가 공존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고, 이를 보여주기 위해 나복만이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소설을 이끌어가고 있다. 그렇다. 나복만은 권력을 쥐고 흔드는 차남들에 의해 핍박받는, 또다른 차남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차남들의 세계사'에는 독재정치가 판치던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다. 어느 편에 속해있든, 이들은 차남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이 소설은 이처럼 흥미롭게 술술 읽히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은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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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민음사 모던 클래식 58
모옌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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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는 일을 나라가 통제해야 할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통제라는 말은, 간섭이라는 말을 넘어서서 강제라는 말을 포함하고 있다. 즉, 공권력을 동원해서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나라가 지니고, 개인들이 아이를 낳거나 낳지 않도록 통제하는 일인데... 중국에서는 이를 '계획생육'이라는 이름으로 실행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통제까지는 아니어도 '산아제한'이라는 이름으로 한 자녀 낳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으니... 맬더스의 [인구론]을 신봉하면서 인구가 우리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했던 때도 있었으니...


반대로 아이낳기를 권장하는 시대도 있었다. 인구가 적었던 시대, 인구가 힘이 되던 시대에는 아이를 많이 나아야 나라가 부강해진다고 했던 시대. 그때는 아이 낳지 못하는 사람이 홀대받던 시대였다. 그래서 아이를 낳으면 귀한 대접을 받던 시대가 있었는데... 지금 중국은 인구과잉이겠지만, 우리나라는 인구 감소로 들어섰다고, 아이 낳기를 권장하고 있으니...


그렇지만 이런 산아제한이든 권장이든 나라가 개인의 삶에 강제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 선택은 오로지 개인에게 있다. 다만 나라는, 사회는 그 사회의 미래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자료를 제공하면 된다.


홍보나 설득까지는 용인하더라도 강제로 행동을 규제해서는 안 된다. 그건 개인의 삶에 대한 침범이고, 인간 욕망까지 제어하려는 지나친 억압이다.


모옌 소설은 바로 이런 중국 현대사의 인구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계획생육' 


중국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자 위기의식을 느낀 정부에서 한 가정에 한 명만 자녀를 낳도록 한 정책. 물론 딸을 낳으면 8년 뒤에 아이를 한 명 더 낳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개인의 생활에 대한 침범일 수밖에 없다.


이런 중국 현대사에서 벌어졌던 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일을 둘러싼 인물, 특히 고모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져 있어, 정부의 정책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아이를 낳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던 고모가 정부 정책으로 아이를 낳지 못하게, 즉 살아서 태어나도록 도와주던 역할에서 이제는 살아있어야 할 아이를 죽음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게 된 고모 이야기가 전편을 이루고 있다면, 후편에서는 시대가 흘러 정부 방침을 어기고 자신의 아이를 가지게 되는 서술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즉, 중국 사회의 변화가 이 소설을 관통하고 있고, 그런 사회의 흐름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부 정책이 있더라도 그를 집행하는 사람은 결국 개인인데, 철저하게 정부 시책을 따르는 고모가 아이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그 아이를 모습을 본뜬 인형을 만들게 하고 참회하는 후반부 장면, 대리모를 이용해 아이를 얻는 서술자의 모습.


아이를 낳지 말라고 해도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아이를 낳았던 돈을 많이 가졌거나 권력을 지닌 사람들 모습.


결국 인간의 기본적인 성정을 정책으로 통제할 수는 없음을 이 소설에서 볼 수 있다.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긴 세월을 '계획생육'이라는 정책과 그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의 삶, 그리고 그것을 편지로 전달하는 형식을 택하고 있고, 마지막에 극본을 덧붙임으로써 국가의 정책에 희생된 (가해 입장에 섰든 피해 입장에 섰든, 모두가 피해자일 수밖에 없었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흥미롭게 잘 읽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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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서가 바뀌었다. 269호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전에 268호를 썼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268호를 늦게 받게 되었다. 그래도 늦게라도 보내주어서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한 호 한 호 읽는 재미로 며칠을 보내기도 했으니, 중간에 이가 빠진 것처럼 한 호가 빠지면 무언가 어색하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옛것에 대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영어로 말하면 빈티지라고 하고.


  무조건 새것을 추구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옛것을 찾는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옛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옛것 중에서 쓸모 있는 물건이 많은데, 그냥 버려지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 곳곳에, 또 주택가 근처 길거리에 보면 의류 수거함이 있다. 이곳에 자신들은 쓰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는 의류들을 집어넣으면 수거해 가서 다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환경도 생각하는 일이다.빈티지를 찾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한번 쓰고 버려지는 물품들이 줄어들테니, 지구 입장에서도 빈티지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지금은 좋을 수밖에 없다.


빈티지라고 해서 낡았다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예전 유행에 조금만 손봐서 현대 유행을 만들어내기도 하니, 빈티지 물품은 옛것에 머무르지 않고 새것을 창조해내기도 한다.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그리고 환경에도 좋은 일....그야말로 이번 호에서 '바야흐로 빈티지의 시대'라고 했으니, 온고지신(溫故知新-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게 된다)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시대다. 


어쩌면 이런 빈티지에 대한 글과 함께 표지모델이 된 홍자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몇년 전에 미스트롯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렸던 가수 아닌가. 무명 생활을 거쳐서 이제는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가수, 홍자.


트로트가 한물 간 노래라고 했던 시대에서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으로 다시 사람들이 즐겨 듣고 부르는 노래가 되었으니, 트롯도 역시 빈티지의 시대에 어울리는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이번 호 내용인 빈티지와 표지모델인 홍자가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홍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일을 많이 했다고 하니, 빅이슈의 취지와도 잘 맞고... 여러모로 이번 호에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계속 다른 쓰임으로도 쓰여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따스한 그런, 좀 늦었지만 빅이슈 268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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