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이 품지 못한 말들
박일환 지음 / 달아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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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라고 한다. 사전을 다른 말로 부르면. 말을 모아놓은 책. 그렇다면 사전에 수록된 말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들이어야 한다. 사람들이 쓰지 않는 말을 수록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참조사항일 뿐이고, 실제 생활에서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은 사전에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쓰는 말이라고 해도 모두가 그 뜻을 알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전을 찾을 일도 별로 없는 요즘이라지만, 그럼에도 정확한 뜻을 알고 싶어 사전을 찾는 때가 있다. 그때 사전을 찾았는데, 그 말이 없으면 당황스럽다.


뭐야? 사람들이 이렇게 쓰는데 왜 사전에 없지? 그럼 이 말을 어디서 찾지? 인터넷 검색을 하면 여러 용례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 용례나 풀이가 정확한지 알 수가 없다.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말의 뜻을 정확하게 정리해서 알려주면 좋으련만...


인문학이 죽어가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국립국어원이라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단체가 있는데, 그 단체가 이익을 떠나서 우리말에 대해서 책임을 가지고 정리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사전이 '표준국어대사전'이고, 이 말에는 '표준'이라는 말에서 공신력 있는 이라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대'라는 말에서 다른 사전보다도 더 많은 어휘를 담은 이라는 의미를 연상하게 되는데...


저자가 쓴 [미친 국어사전]에서도 '표준국어대사전'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2015년에 그 책이 나왔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이라고 할 수 있다. 6년이란 시간이면 꽤나 긴 시간이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시대에서는.


그럼에도 표준국어대사전은 변하지 않았다. 다시 2021년에 표준국어대사전을 비판하는 책이 또 나왔다. 세상에... 비난이 아니라 비판이었는데... 사전을 책임지고 있는 국립국어원에서는 저자가 쓴 책을 참조하지 않았나 보다.


그렇다면 국립국어원의 태도는 책임방기에 가깝다. 우리말을 정리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말을 바르게 쓰도록 하는 책임이 있는 국립국어원에서 자신들이 편찬한 사전을 비판하는 책을 읽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문제가 있다.


읽지도 않았는지, 읽었는데도 반영을 하지 않은 건지, 또는 못한 건지는 알 수가 없지만, 어떤 형태든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한 나라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을 단체에서, 비판을 받아들여 보완하고 수정하는 책임있는 자세를 지녀야 하는데, 6년이 지나 또다시 비판하는 책이, 그것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도록 지적 사항이 넘치고 넘치는 그런 사전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으니... 이건 아니다 싶다.


잘못된 풀이도 문제지만,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말들을 수록하지 않고 있다는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물론 많은 어휘들을 '함께 만들고 모두 누리는 우리말샘'이라는 또다른 사전을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고 있지만, 우리말샘은 공식 사전이 아니다.


많은 어휘들을 수록하고 있기는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르지 못한 말들을 모아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 말들 가운데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할 말들을 골라 사전으로 옮겨야 하는데...


예전 같으면 사전 편찬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고 하겠지만, 요즘처럼 전자기술이 발전한 시대에서는 사전에 올릴 말들을 선택하고 수록하는데 긴 시간이 들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이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만 날지 않아도 된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수시로 날 수가 있다. 그만큼 빠르게 사전을 확장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전이 수록된 말들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더이상 이러한 비판서가 나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들만의 힘으로 하기 힘들다면 이 책을 쓴 저자와 또다른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표준국어대사전을 보충하려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책임있는 자세 아닌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들이 일관된 기준도 없이 사전에서 누락되어 있음을 이 책은 많은 사례들을 들어 보여주고 있다. 이런 비판이 나왔으니, 비판을 받아들여 수정하면 된다. 아니, 수정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의 품격을 살린 국어사전이 될 수 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예를 하나 보자. 사전이 얼마나 엉성한지.. 사전의 뜻풀이에 나와 있는 말이 사전에 없어서 의미 파악을 하는데 애를 먹게 하고 있으니...


기성-암(氣成巖)「명사」 『지구』 바람에 의하여 운반되어 쌓인 흙과 모래로 이루어진 암석. 중국의 황토 지대에 널리 퍼져 있는 대부분의 롬층(loam層)이 그 예이다.=풍성암.


이런 설명이 있는데, 롬층이라는 말이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다. 어떻게 된 일인가? 그럼 다시 영어사전을 찾아야 하는가? 읽기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적어도 국어사전 안에서 해결할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롬을 찾으면 이렇게 나온다.


 loam (명사) 점토에 석영·운모의 가루나 수산화철 등이 섞여 황갈색으로 보이는 토양.


한 번에 사전에서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 국가를 대표한다는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해야 할 일이다. 국립국어원에서 이런 비판서들을 찾아 읽고 수정하는 작업을 거치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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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는 변호사 - 양지열 변호사의 그림 속 법 이야기
양지열 지음 / 현암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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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림 읽는 변호사라는 제목보다는 그림으로 법을 알려주는 변호사라고 하면 이 책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그림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법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그림은 법을 이야기하는 계기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총 20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림을 감상할 수도 있고 (다만, 그림이 흑백으로 되어 있어서 그림 자체를 감상하기는 좋지 않다), 그 그림에 대해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는 법을 찾아내는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도 그림과 법을 연결시켜서 지식을 확장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법을 무시하고는 살 수 없으니, 법을 가깝게 생각할 수 있게 해주고 또 십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여기에 법이라고 어렵게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 법전을 보면 검은 것은 글자요, 하얀 것은 여백인데, 글자들을 읽을 수는 있지만, 그 글자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알기 어렵다. 이 책에서도 여러차례 언급하고 있듯이 우리나라 법전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기본 원칙에서 벗어나 있다.


'사람마다 제 뜻을 쉽게 펼치도록'하기 위해서 한글을 창제했는데, 한글로는 쓰였지만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는, 대다수의 국민을 문해력이 거의 없는 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법전에 대해서 이 책의 저자 역시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을 토대로 저자는 법을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쉽게 설명하기 위한 단서로 그림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흥미를 유발하고, 흥미에 그치지 않고 좀더 깊게 나아가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시작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고야 그림 '벌거 벗은 마하'로 시작한다. 누드화. 음란물. 죄가 될까 말까? 고야는 이 그림으로 법정에 서기도 했다고 한다. 고야가 살았던 시기는 종교적 엄숙함이 지배하던 시기였으니, 누드화라고 해도 신화 속 인물들을 그린 그림들이 대세를 이루던 시대였으니 그렇다고 쳐도 현대에 들어 우리나라에서 이 그림으로 문제가 된 적이 있다고 하니...


모르고 있던 사실인데, 성냥을 집들이 선물로 주던 시절에 성냥갑에 고야의 이 그림, '벌거 벗은 마하'가 새겨진 상품이 있었다고 한다. 결과는? 모두 몰수되어 불태워졌다(23쪽)고 한다.


그런데 과연 음란물과 누드화의 기준이 무엇일까? 이런 의문에서 법으로 옮겨간다. 법에서는 이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지금 시대에 누가 고야의 '벌거 벗은 마하'를 음란물로 보는가? 명작이라고 하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음란물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시대가 변했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면 음란물을 보는 관점도 달라져야 하고, 법적 잣대도 달라져야 한다. 그만큼 달라지기도 했을테고.


그래서 예전엔 음란물로 처벌받았던 이 그림을 요즘은 처벌할 수가 없다. 음란물에 대한 법적 판단도 '그 내용이 성욕을 자극하고 보통 사람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는 것으로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을 말한다' (20쪽)고 했다가 최근에는 '전적으로 또는 지배적으로 성적인 흥미에만 호소할 뿐 전체적으로 보아 하등의 사회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것' (23쪽)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렇게 이해하기 쉽게 법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하나하나 다양한 법에 대한 이야기를 그림을 통해서 하고 있으면서 마지막 장에서는'헌법'이야기로 끝맺고 있다.


우리 삶을 보장하는 최고의 법인 헌법. 그러나 이 헌법에 강제력이 있을까를 생각해 보자고. 위임받은 통치 권력이 헌법에서 시키는 대로 위임받은 일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헌법대로 하라고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강제력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368쪽)


정말 문제다. 전 대통령인 박근혜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국정농단을 행해도 국민들이 그를 끌어내릴 절차가 없다.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나설 뿐이다. 국민들에게서 권한을 위임받은 국회의원들이 탄핵소추를 하지 않는다면 탄핵 심판으로 갈 수도 없다. 또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기각한다면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선 뜻이 반영되지도 않는다.


국민들에게 주권이 있다는 헌법이 강제력을 지니고 있지 않으니, 결국 국민들 역시 투표권 말고는 힘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 국민들이 함께 모여 촛불을 들거나 시위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위를 통해서 험법이든, 법률이든, 정치권력이든 바꿀 수밖에 없음을... 들라크루아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법은 우리 생활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법은 우리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법을 알아야 한다. 또 법이 어려워서는 안 된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표현되어야 한다. 법전은 그렇게 바뀌어야 하고... 법이 국민들 위에 군림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법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다. '검찰'에 대해서 논의가 많은 요즈음, 법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해서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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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 따뜻한 신념으로 일군 작은 기적, 천종호 판사의 소년재판 이야기
천종호 지음 / 우리학교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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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신념으로 일군 작은 기적'이라는 말이 책 표지에 나와 있다. 따뜻한 신념... 좋다. 그러나 누가 가지고 있는 따뜻한 신념인가? 소년범으로 재판정에 나선 아이들을 재판하는 판사... 그의 신념은 법에 따라,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일. 이런 판결에 앞서야 하는 일은 소년들이 다시 사회에 나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일.


그러니 여기서 따뜻한 신념이란 법대로가 아니라 소년을 위한 판결이란 뜻을 지니고 있고, 작은 기적이라는 말은 그런 판결에 따라 나름대로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소년들이(이때 소년은 성별의 개념이 아니라 성인이 되지 않은 나이 대의 사람들이란 뜻이다) 있다는 뜻이다.


그러한 소년들이 있다는 말은 그렇지 못한 소년들도 있다는 말이고, 따라서 그냥 기적이 아니라 작은 기적이다. 작은 기적이라고 해도 기적은 기적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기적이라는 말을 하는데...


어렸을 때 사고를 치는 아이들을 보면 예전 어른들은 아이 때는 그럴 수도 있지, 그것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가 바로 어른이지라고 하면서, 마을 전체가 또는 어른들이 아이들이 인생을 잘 살아가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주곤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어른이 사라진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어른이라는 말보다는 꼰대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왜? 말과 행동이 다르기 때문.


이런 어른들을 보면서 그들 역시 안 걸리면 돼 또는 나만 잘살면 돼 이런 생각을 은연중에 지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들이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그들의 행동을 제어하거나 또는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어른들이 없었을 때 더 많이 나타난다.


아이 때는 여라 가지 일을 시도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을 못해서, 또는 충동적으로 할 수도 있다. 인간의 역사에서 그런 경우는 많았고... 하지만 제대로 살아가는 어른이 있다면 그런 일은 순간의 충동으로, 일탈로 끝나게 되는데...


어른이 없는 사회에서는 일회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일어나게 되며, 성인이 되어서도 그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이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때 판사는 법대로만이 아니라 이들 소년들을 우선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이들이 저지른 일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단발성으로 끝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죄에 합당한, 비행에 합당한 징벌을 내리기보다는 앞으로 나아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 그것이 어른이 해야 할 일이고, 법관이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여기에 그런 일을 한 판사가 있다. 천종호 판사.


법의 잣대로만 판단하지 않고 아이들을 중심에 놓고 판결을 내린 사람. 판결을 내린 뒤에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고 아이들을 찾아가고 만나고 그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를 살피는 판사.


이런 판사가 있었기에 작은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다고 본다. 판사의 진심을 알게 되는 아이들이 있고,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고 더 나은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이 나오게 된다. 물론 여기엔 판사 혼자만이 아니라 청소년을 위한 상담센터부터 시작해서 이들에게 가정 역할을 하는 단체까지 다 함께 하고 있다.


이렇게 사회가 모두 함께 해야 소년들이 변할 수 있다. 그것도 모두가 아니지만 변할 가능성이 늘 존재하게 된다.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이런 일을 판사만이 해야 할까? 아니다. 우리 어른들이 모두 함께 해야 한다. 오죽하면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마을이 필요하다고 했겠는가. 그러니 미안해 해야 할 대상은 우리 어른들 모두다. 그래서 책 제목에 '우리가 미안하다'는 말이 들어갔다.


그때 우리는 어른들이다. 그런데 미안해 하는 사람들도 정해져 있다는 사실. 이들은 이런 문제를 일으킨 소년들을 직접 만나는 사람들이다. 왜 이들이 더 미안해 해야 하는지... 오히려 미안해 해야 할 대상은 우리 사회에서 소년 범죄 또는 소년 비행을 저지르는 존재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사회 환경을 개선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이어야 한다.


그들이 먼저 우리들이 정치를 잘못했다. 이제 바른 정치를 하겠다고 사과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이들 정치인들이 미안해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 다음에 아이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작은 기적이 아니라 더 큰 기적을 이룰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판사 개개인의 노력, 이와 더불어 청소년과 관계있는 사람들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사회가 변해야 한다는 사실. 그런 노력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정치인들이고 그들이 먼저 소위 비행청소년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장소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대해서 미안해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정치인들이 이렇게 소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니고 그 미안함을 자신들의 정책을 통해 바꾸려 한다면 천종호라는 판사가 일군 작은 기적이 더 큰 기적으로 나아가리라는 생각을 한다.


이 책에는 가슴이 찡한 아이들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어서, 비행청소년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그런 색안경을 벗어버릴 수 있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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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호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폐양어장 길고양이 학대 사건을 다룬 글도 있고, 책에 대한 글, 돌봄에 대한 글도 있다.


  돌봄에 관한 글은 사람을 돌보는 일도 있지만, 식물과 함께 살아가는 돌봄도 있으니, 이번 호를 읽으면 이런 돌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이본 호를 관통하는 말은 돌봄이라는 생각을 한다. 사랑=돌봄=연대.


  돌봄이란 일방적일까? 일방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돌봄은 양방향일 때가 더 많다. 일방적으로 베푸는 경우는 없다. 베풀면서도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돌봄의 가장 좋은 예가 바로 사랑이다. 로맨스라고 하는 것. 로맨스는 일방일 수 없다. 


사랑, 즉 로맨스는 양방향이다. 혼자만이 줄 수는 없다. 함께 할 때 사랑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번 호 표지는 소설로, 웹툰으로도 나온 '상수리나무 아래'를 소개하고 있다.


소설을 읽지도 웹툰을 보지도 못했기에 무어라 말하기 힘들지만, 이번 호에 나온 내용으로 미루어보면 사랑이 돌봄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서로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그 상처를 보듬고, 상처를 딛고 좋아지는 과정. 이렇게 사랑은 완벽한 남과의 만남이 아니라 만나면서 완벽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결국 사랑은 돌봄이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일. 이 사랑이 사람에게만 해당할까? 아니다. 동물이나 식물 모두에게, 또 동식물이 아닌 다른 존재들에게도 해당이 된다.


이렇게 나와 함께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함께 하는 일. 그런 사랑, 내가 돌보고, 또 다른 존재들이 나를 돌보는 일. 그런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빅이슈] 역시 마찬가지다. [빅이슈]를 구입해 보는 일이 일방적이 아니라 양방향적이다. [빅이슈]를 통해 얻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고, 또 생각하지도 못했던 존재들을 만나게 되는 일... 이번 호에서 언급한 2020년 임금근로일자리 월 소득 중간 값, 즉 중위소득 금액... (49쪽) 242만 원. 이 숫자가 사랑과 돌봄과 연대를 함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242만 원.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숫자. 그러나 생각해야만 하고, 알고 있어야만 하는 숫자. 왜냐하면 이 중간 값보다 위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돌봄이라는 말이 시혜라는 말을 연상시킨다면 '연대'라는 말로 바꿔 이야기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나아가게 한다.


'사회 연대는, 나도 힘들지만 내 눈길 밖에는 나보다 어려운 이들이 많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과장된 빈곤감, 무리한 자기 연민은 여유 있는 이들이 소득을 갹출해서 약자를 위한 안전망을 만들고, 그래서 계층 하락에 대한 불안이 줄어들어 다시 창의적이고 모험적인 시도에 나설 용기를 내게끔 하는 복지의 선순환 구조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는다' (성현석, 월급에 대해선 겸손하지 말자. 51쪽)


이 말을 확장하면 바로 사랑은 돌봄이고, 연대다. 나홀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활동, 이것이 바로 사랑, 돌봄, 연대다. 이들은 결국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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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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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읽은 소설. 테드 창이 쓴 [당신 인생의 이야기]


무언가 독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단편집이어서 흐릿한 윤곽으로만 남아 있는 소설들이었다. 언젠가 다시 읽어야지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번에 나온 테드 창의 [숨]을 읽으면서도 예전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니... 그때 느꼈던 감정들보다는 좀더 명확해졌다고 해야 하나.


몇몇 소설들은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그래, 이런 소설이 바로 상상 속에서 현실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지. 소설은 어차피 상상의 산물인데, 그냥 상상의 세계에만 머물지 않고 상상의 세계 속에서 현실 세계를 불러오는 역할을 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소설집 첫번째 실린 소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타임머신을 연상하게 하는 소설인데, 타임머신 하면 기계를 생각하지만, 이 소설에서 과거와 미래를 오가게 하는 대상은 문이다. 문은 물질적으로는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경계이기도 하지만 이쪽과 저쪽을 연결시켜주는 대상이기도 하다.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데 기계보다는 문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데, 이는 다른 많은 작품들에서도 다루고 있는 문제다. 전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던 [해리포터] 시리즈에서도 기둥에 있는 보이지 않는 문으로 호크와트로 가는 열차 플랫폼으로 가지 않던가.


하지만 이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는 문이 아니다. 과거와 미래로 여행을 한다? 이 얘기와 과거와 미래를 바꿀 수 있다가 연결이 되면? 


이런 '연금술사의 문'은 역사를, 삶을 바꿀 수 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과거의 나를 바꾸면 현재의 나는 존재할 수 있을까? 미래의 나를 바꾸면 현재의 나는 어떻게 될까? 쉽지 않은 문제다.


이 소설에서는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 운명은 시간의 문으로 아무리 들락거려도 바뀌지 않는다. 자신이 문으로 들어가 운명을 바꾸려고 행동을 해도 결과는 같다. 그렇게 되어 있는 자신을 만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같은 지점으로 돌아온다. 비록 결말에서 상인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지만, 운명이 바뀌지 않는 소설 과정을 보면 그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자신이 본 운명대로 살아가게 된다. 어떤 과정을 거치든.


이 소설과 더불어 소설집 마지막에 실린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 연결된다. 운명은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우연들이 필연을 구성한다는 사실. 


'그렇게 되었다'는 결론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다만, 그렇게 되는 계기는 다양하고, 거기에 관여하는 존재들도, 상황들도 다양하다는 점을 이 소설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이상하게 자유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소설들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중간중간에 변하지 않는 운명을 만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자유의지'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자기 삶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자신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남에게 전가하는 일은 어리석은 자기기만에 불과함을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란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소설에서는 평행우주와 같은 과학적 상상력이 도처에서 나오고 있다. 최첨단 기술들과 수많은 평행우주에서 살아가는 나'들'이 나온다. 


그럼 이런 나'들'은 같은 삶을 살까? 아니다. '나'라고 해서 모두 '나'와 똑같지 않다. 나'들'은 '나'가 나름대로 살아가는 존재일 뿐이다. 모두 다른 삶을 산다. 어떤 계기로? 수많은 계기들이 있다. 그러니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는 그 많은 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일무이한 '나'로 존재해야 한다. 그러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 불안이 바로 자유다. 불안은 '나'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자기의지로 결정해야 하는 데서 나온다. 


결말이 정해져 있는 듯하지만, 결정론으로 자유의지는 전혀 없는 듯 여겨지지만, 이 소설을 읽다보면 자유의지가 결국 그런 삶으로 자신을 이끌어가고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집 마지막에 실린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에서는 특히 더...


여기에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조금 긴 소설인데, 여러모로 생각할거리를 주고 있다. 역시 가상세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사람과 동물과의 관계, 사람과 식물, 또 사람과 기계와의 관계 모두에 적용될 수 있는 소설이다.


함께 지냄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정성이 필요한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런 소설들과 더불어 짧은 소설을 통해서도 테드 창의 상상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그 상상세계들이 상상 속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 현실로 오고 있음을 이 소설집은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상상을 현실로!와 더불어 상상 속을 노닐면서 현실의 내 삶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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