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인문학 - 도시를 둘러싼 역사 · 예술 · 미래의 풍경
노은주.임형남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이제 우리나라는 시골보다는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도시라고 할 수 없는 곳이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이렇게 우리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삶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리고 도시와 떨어진 삶을 상상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생겼겠는가. 대다수 사람이 도시에서 살다보니, 도시에서 벗어나 사는 사람이 특이하다고 여겨지는 사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도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까? 그냥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 아닌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역사나 문화, 미래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살아갈까. 아니다. 기껏 생각해 봤자, 리모델링이나 재건축이 언제 되나 하는 생각과 집값이 얼마더라 하는 생각 정도에 머물고 있지 않나 싶다.


그러나 도시에는 많은 것들이 녹아 있다. 많은 것들이 도시라는 공간에 모여 함께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 도시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은 인문학과도 관계가 있다. 건축과 인문학이 관계를 맺듯이 도시 역시 인문학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책 제목이 '도시 인문학'이다.


도시를 둘러싼 역사, 예술, 미래의 풍경이라고 하는데, 많은 도시들이 지니고 있는 역사나 문화, 예술, 미래의 모습을 간결하고도 쉽게 전달해주고 있다.


읽으면서 여러 도시의 특성을 알게 되었고, 또 많은 건축가의 이름을 듣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 소개하는 건축가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을 받았으니, 다양한 건축가들의 기법이 도시에 녹아들었다고 할 수 있다.


'경험은 가장 훌륭한 건축가의 자산이며, 시간은 가장 훌륭한 건축의 재료다.' (55쪽)는 말이 있다. 이 말을 건축가나 건축에 적용하는 것을 넘어서 도시에 적용해도 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경험들이 도시에 농축되어 있고, 시간이 도시에 스,며들어서 한 도시를 만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경험과 시간이 녹아 있는 도시는 우리에게 자기만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그런 경험, 시간을 잃은 도시는 아무런 감명을 주지 못한다. 


과거 건축물들, 문화유산들을 지키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들은 과거의 유물로만 존재하지 않고 현재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또 우리들을 미래의 삶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도시는 과거와 미래가 현재에 공존하는 도시라고 해야겠다. 과거의 유산으로만 지내는 도시가 아닌, 또 미래의 모습만이 펼쳐지는 도시가 아닌, 현재에 과거와 미래가 함께 존재하는 그런 도시...


우리 삶도 마찬가지 아닌가. 현재 삶에 과거와 미래가 녹아들어가 있으니... 이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 역시 그래야 한다.  


이렇게 도시 인문학 책을 읽다보니 자연스레 학교 건물이 떠올랐다. 도시건 시골이건 어느 곳이나 학교는 있다. 그런데 이 학교 건물이, 요즘은 좀 나아졌다고 하지만, 천편일률적이다. 옛날 학교 건물은 더 그렇다. 그리고 한번 지어진 학교 건물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마치 과거 유물로만 남으려는 듯.


또 내부 구조도 비슷하다. 특색이 없다. 자신만의 경험, 시간이 학교 건물에는 들어 있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도시 역시 비슷할 수밖에 없다. 거의 비슷한 구조와 형태의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곳이 신생 도시들 아닌가.


학교에서부터 도시까지, 너무도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져 가고 있는데, 이는 도시의 인문학적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이란 남들을 똑같이 따라가지 않고 자신에 맞는 방식을 만들어가게 하는 학문 아니던가. 그러니 다른 나라 도시들을 소개한 이 책 '도시 인문학'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도시는?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뒷맛이 씁쓸해지고 있으니...


우리나라 도시들도 앞으로는 과거와 미래가 현재에 스며드는 그런 도시가 될 수 있도록 경험과 시간이 녹아들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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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시인이었다. 그의 시는 독재시대에 민주주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희망을 주었다.


  금서로 지정이 되어도 사람들은 그의 시를 찾아 읽었으며, 시에 곡을 붙여 노래로 부르기도 했다.


  전세계 문인들이 그를 석방하라고, 그의 사형에 반대해서 서명을 하기도 했다.


  그는 [토지]를 쓴 작가 박경리의 사위이기도 했지만, 김지하란 이름만으로도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이었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시는 통쾌함으로 다가왔고, 그의 풍자시 '오적'은 그리도 신랄할 수가 없었다.


독재로 막힌 가슴을 뻥 뚫어주는 시들... 그렇게 그는 70년대, 80년대 참여시를 대표하는 시인이었다. 87민주화운동 이후 그는 생명운동에 참여했다.


  생명운동, 생태사상. 그런 그를 비판할 수는 없다. 다만, 그는 90년대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고 외쳤다. 이때 사람들은 김지하가 변했다고 많이들 떠나갔다.


  생명을 중시하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던 사람들. 90년대도 형식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갖춰졌을지 몰라도, 실질적인 민주주의는 아직도 먼 시대였다.


  그런 민주주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점을 이해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시대에 따라서 김지하에 대한 평가는 달라진다. 그러나 김지하란 사람이 독재시대에 시를 통해 우리들이 포기하지 않게 했던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그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시인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 세상을 떴다. 그가 간 세상에는 그의 시 '오적'에 나오는 그런 오적들이 없기를... 이제는 그곳에서 평안을 누리기를...


삼가 김지하 시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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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편함.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이다. 불편이라는 말 자체가 편하지 않다는 말이니, 편하지 않은 상태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불편함 자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나 혼자 살아가도, 내 멋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많아 불편한데, 남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는, 그야말로 불편함들이 연속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 불편함을 모조리 편안함으로 바꾸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 우리가 유토피아를 건설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디스토피아를 만들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


모든 불편함을 제거한 사회가 유토피아가 아니라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최소화한 사회가 유토피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불편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라 불편함을 인식하고 그것을 개선하려는 상태가 더 좋다고 할 수 있다. 이번호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번호 기획기사가 '모두의 길을 위해, 장애인 이동권'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전국장애인차별 철폐 연대에서 지하철 출근 투쟁을 했다. 출근을 하는데 그들은 투쟁이어야 한다. 투쟁? 싸움이다. 왜? 장애인들이 제대로 출근을 할 수 없으니까.


그들의 출근 투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나뉘었는데... 우리는 몇십 분, 또는 몇 시간 불편하지만, 이 분들은 평생을 불편하게 살아왔으니, 우리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이 분들의 투쟁을 지지한다고 하는 사람들과, 왜 출근시간에 이런 투쟁을, 그것도 이렇게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하느냐며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투쟁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것이 비난할 문제일까? 그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고, 비장애인들에게는 조금 불편한 문제라도 장애인들에게는 생활을 할 수 없는 불편함이 될 수도 있는데... 그 사회의 수준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는데...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생활할 수 있도록 환경개선을 해달라는 요구에 동참은 못해도 지지는 해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지지는 하지 않더라도 비난은 하지 않아야 함께 사는 세상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는데...


빅이슈에서 이런 장애인 출근 투쟁을 다룬 사실이 빅이슈 답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는 잡지이기 때문에 이런 글을 싣는 일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조금 불편해서 다른 사람이 더 편해진다면 그런 불편은 감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생각을 한다.


장애인 출근 투쟁과 겹쳐 지하철(전철)에 있는 임산부 배려석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떨 때 보면 임산부가 아닌 사람들이, 그것도 남자들이 그 자리에 떡하니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임산부가 없으니, 타면 비켜주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나 본데, 본래 비어 있는 자리와 앉아 있는 사람이 일어나 앉으라고 하는 것은 차이가 난다.


그러니 비워두는 불편함. 그것은 임산부의 편리를 고려한 내 불편함일 뿐이다. 여기에 왜 임산부 자리가 기존 자리와 넓이가 같을까 하는 의문. 보통 지하철(서울을 기준으로) 한 줄에 7명이 앉을 수 있다. 그 자리의 맨 끝에 임산부 배려석을 두었는데... 가운데 다섯 명이 앉는다. 비좁다. 임산부는 행동반경이 더 크고, 좀더 쾌적하게 앉아가야 하지 않나.


그러면 임산부 배려석이 있는 칸은 총 좌석 수를 6석으로 하고, 임산부가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넓이를 다른 사람의 1.5배로 하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할텐데... 그냥 기존 좌석에 임산부 배려석이라는 표지만 달 게 아니라... 좀더 넓은 자리라면, 비워두었을 때 임산부가 아닌 사람이 앉기에 망설여지지 않을까 하는데...


마찬가지로 장애인 주차구역도 그렇다. 장애인들에 대한 생각을 평소에 하고 있는 사회라면 굳이 표시를 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주차하지 않고 좀 멀리 대는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을텐데... 그런 생각...


내가 조금 불편해야 다른 사람이 편해질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우리 모두가 조금씩 불편하게 살아가는 사회... 쓰레기통까지 가는, 반려동물들의 배설물을 치우는, 질서를 지키는, 나보다 약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등등의 불편함... 그건 불편함이 아니라 모두의 편안함으로 가는 길이다.


빅이슈 274호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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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꽃 2022-05-07 1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런 마음의 여유조차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도 디스토피아와 다르지 않은 거 아닐까 합니다ㅜㅜ

kinye91 2022-05-07 10:59   좋아요 1 | URL
그래요. 내가 조금 불편해질 수 있는 것도 여유 있는 마음 아닐까 해요. 유토피아는 마음의 여유에서, 디스토피아는 여유 없음에서 오지 않을까 해요.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노동자들과 생활하면서 그들의 삶을 글로 표현했다. 이런 작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층민들의 삶에 대해서 알아야만 할 이유가 있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만날 수 있다. 바로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또는 보지 않으려 하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웰은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라고 한다. 그러면 적어도 자신의 삶이 누구로부터 온 지는 알 수 있게 된다고.


어떤 면에서는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도 자괴감을 느낄 만하다. 그럴 때 우리는 잠시나마 '지식인'으로서의, 전반적으로 우월한 존재로서의 자기 지위를 의심하게 된다. 적어도 지켜보는 동안에는, 우월한 인간들이 계속 우월하기 위해서는 광부들이 피땀을 흘려야만 한다는 자각을 똑똑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우리 모두가 지금 누리고 있는 비교적 고상한 생활은 '실로' 땅속에서 미천한 고역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빚지고 얻은 것이다. (50-51쪽)


이렇게 내 삶을 유지하게 해주는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즉, 그들의 삶을 통해서 내가 지니고 있던 편견을 깨야 한다. 편견은 어떤 계기를 만나지 못하면 깨지지 않는다. 오히려 거 강화된다. 그래서 오웰은 자신과는 다른 계급의 사람을 만나보라고 한다.


나는 이상화할 수 없는 노동 계급 사람들도 얼마든지 보았지만, 노동 계급의 집은 가볼 수만 있다면 배울 게 아주 많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중산층의 이상과 편견이란 게, 꼭 나은 건 아니어도 확실히 다르기는 한 딴 계급 사람들과 접촉함으로써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155쪽)


흔들려야 한다. 편견을 강화하는 쪽으로, 빅 데이터가 주는 대로, 그 알고리즘에 의해서 내 취향에 맞는 것들로만 나를 채우려 해서는 안 된다. 나와는 정반대에 있는 존재들을 만나야 한다. 만나서 얼마나 다른지 알아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그냥 만나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 우리가 이상화하는 노동자들이 실생활에서는 전혀 이상적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 섣불이 실망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오웰의 표현을 빌리면 이렇다.


이렇게 저열한 불편과 냉대를 당하고, 늘 기다려야 하고, 모든 걸 상대방 편한 대로 해야 하는 것은 노동 계급의 생활에선 당연한 일이다. 무수히 많은 영햘역이 끊임없이 노동자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피동적인' 역할로 축소시켜 버린다. 그는 행동하는 게 아니라 무엇에 따라 처신하는 것이다. ... 부르조아 출신인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합당한 한계 내에서는 얻을 수 있다는 일정한 예상을 하고서 살아갈 수 있다 (67쪽)


중산층 이상, 부르조아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각조차 하지 못한 일들이 그들에게는 너무도 쉽게 일어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생존을 위해서 다른 존재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왜 그렇게 사느냐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들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1930년대에 오웰은 광산노동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주의가 꼭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 책이 1부가 노동자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면, 2부에서는 오웰이 생각하는 사회주의가 나온다. 계급 차별의 세계에서 그 차별을 없애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처절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읽다가, 이 글을 보면서 아, 이래서 오웰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 봉준호가 영화 [기생충]에서 표현한 '냄새'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는 생각. 그래, 아무리 없애려 해도 없애기 힘든, 냄새. 나와 너를 명확히 가르는 이 냄새가 바로 계급 차별이었구나...봉준호 감독이 영화에서 이 점을,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낸다고 해도, 또 그들의 삶을 흉내내려 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바로 '냄새'라는 점이, 이 책에서 오웰이 이토록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었구나 하는 감탄.


여기서 우리는 서구 계급 차별 문제의 진짜 비밀과 맞닥뜨린다. 그것이 부르조아로 자란 유럽인은 자칭 공산주의자일지라도 몹시 애쓰지 않는 한 노동자를 동등한 사람으로 여길 수 없는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요즘에는 차마 발설하진 못하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꽤 자유롭게 쓰곤 하던 섬뜩한 말 한마디로 요약된다. "아랫것들은 냄새가 나." ... 인종적 혐오, 종교적 적개심, 교육이나 기질이나 지성의 차이, 심지어 도덕률의 차이도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신체적인 반감은 극복 불능이다. (172쪽)


이렇듯 냄새는 자연스레 몸에 밴다. 어찌할 수 없는 나만의 특징. 이 특징은 계급을 가른다. 그래서 계급 간의 거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힘든 노력이 필요하다. 오웰은 그러한 노력이 얼마나 힘든지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책과 옷과 음식에 대한 나의 취향, 명예에 대한 나의 감각, 나의 염치, 나의 식사예절, 나의 어투, 나의 억양, 심지어 나의 독특한 몸동작도 전부 특정한 훈육의 산물이며, 사회 위계의 윗부분에 있는 특정한 지위의 산물이다. 그런 사실을 이해할 때, 나는 프롤레타리아의 등을 두드려주며 그가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고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 ... 삶에 대한 상류층적, 중산층적 태도를 완전히 버리기까지 해야 한다. (217쪽)


이 부분에서 강남좌파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들이 민중을 위한다고 하면서 과연 민중을 얼마나 알고 있었나? 오웰의 말처럼 그들은 자신들을 하나도 내려놓지 않고 그냥 민중들을 위한다고만 하지 않았던가.


시혜다.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르쳐주는. 함께 하지 않고 거리를 두는 그런 방식. 오웰의 말에서 왜 진보가 정작 진보가 위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을까 하는 의문에 답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그냥 당신과 나는 같은 존재라고 하면 누가 그들을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 자신의 상류층적, 중산층적 태도를 버리지 않고 민중을 위한다고 한다면, 결과는... 이미 우리는 그 결과를 보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그들은 실패의 원인을 자신들에게서 찾지 않고 다른 존재들에게서 찾는다.


계속 실패할 수밖에 없고, 계속 민중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오웰이 1930년대에 예견했던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한데...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으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그 길을 함께 갈 사람들을 생각한다. 우리 역시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그 길을 함께 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 바로 오웰의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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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5-07 0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 중 하나예요. 광부들의 삶을 너무 생생하게 잘 그려놓아서 전율했던 생각이 나네요.

kinye91 2022-05-07 08:30   좋아요 1 | URL
맞아요. 이 책은 지금도, 앞으로도 유용할 것 같아요. 당시엔 광부라면 지금은 수많은,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사람이 큰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 늘 남 앞에 나서면서 살 수도 없다. 남 앞에서 큰소리치고, 큰일을 한다고 하고, 앞서가는 사람들만 있는 세상이 과연 행복할까?


  세상은 자기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하게 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더 잘 유지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저마다 제 목소리를 내는 세상에서, 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목소리를 내려고 하면 너희들이 뭔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핍박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


  핍박을 하는 사람들, 저들은 오히려 큰소리를 치면서... 남들, 그것도 꼭 목소리를 내야 할 사람들에게는 내지 말라고 하고 있는 현실.


저마다 제 자리에서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사는 세상. 드러내지 않아도 제가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하는 세상. 또 티나지 않아도, 별로 세상을 바꾸는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도 그냥 자신은 해야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


그런 세상을 꿈꾸는데... 이미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많이 지니고 있는 사람들 소리만 더 잘 들리는 세상은 아닌지 그런 의구심이 드는 요즘이다.


비행기... 인류가 하늘을 날 수 있게 해준 도구. 세상을 지구촌이라는 이름으로 엮이게 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기구.


하루면, 적어도 24시간 내외면 세계 어느 곳이든 갈 수가 있게 된 세상에서, 그 비행기로 인해 지구는 얼마나 힘들어졌을까 생각도 하는데...


비행기 타기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사람도 있는데... 굳이 비행기만이 아니더라도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다른 존재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는 없다.


다만, 생각하면서, 그 피할 수 있는 피해는 피하려고 하는 삶을 살아가려 노력할 뿐. 함민복 시집을 읽다가 '하늘길'이라는 시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하늘길


비행기를 타고 날며

마음이 착해지는 것이었다


저 아래

구름도 멈춰 얌전


손을 쓰윽 새 가슴에 들이밀며

이렇게 말해보고 싶었다


놀랄 것 없어 늘 하늘 날아 순할

너의 마음 한번 만져보고 싶어


새들도 먹이를 먹지 않는 하늘길에서

음식을 먹으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까운 나라 가는 길이라

차마, 하늘에서, 불경스러워, 소변이나 참아보았다


함민복,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창비. 2013년 초판 7쇄. 98쪽.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착한 일... 그런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지 하는 마음을 먹으면서... 오월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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