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어떻게 세계를 흔들고 있는가 - 한국인이 절대 알 수 없는 중국 기업의 허와 실
에드워드 체 지음, 방영호 옮김, 김상철 감수 / 알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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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체제와 정치체제 어울리지 않는 나라 중국. 그래서 중국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나라일 수도 있다. 정치체제는 여전히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는데, 경제에서는 자유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니, 이런 모순을 지닌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공산주의 하면 폐쇄적이라고 여기기 쉬운데, 경제분야에서 어떻게 개방적일 수가 있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덩샤오핑 이후에 개혁개방 정책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세계 경제 변화에 맞춰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으니, 둘이 교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공산당이 주도하는 정치체제를 바꿀 생각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공산당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 분야에서 민간 부분을 더 많이 도입하려고 한다. 기묘한 조화... 


이 상황에서 민영기업들이 약진하고 있으며 공기업을 넘어서는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마윈같은 사람들을 비롯해 중국 경제를 부흥시킨 사람들을 이 책에서 다뤄주고 있는데...


그들은 중국이라는 체제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방법을 알고 적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들로 인해서 짝퉁, 모방의 나라 중국이 세계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는 나라로 바뀌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제조업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나라였다면, 이제는 가장 비중이 큰 제조업 국가가 되었다고 하니...


단지 제조업만이 아니라 스마트 시대에 걸맞게 인터넷을 활용한 기업들도 등장해서 성장하고 있는데, 이렇게 중국에서 자국 기업이 성장할 수 있던 요인은 외국 기업의 활동을 정부가 막고 있었던 데에도 기인한다.


우리나라에서 아이티 분야를 장악하고 있는 구글, 유튜브 등이 중국에서는 사용할 수 없으며, 그대신에 중국이 개발한 플랫폼, 프로그램들이 사용되고, 이런 회사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하니, 정치체제가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정치체제가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을 수는 없다. 중국이 세계로 나아가려고 하면 세계에 중국을 개방해야 한다. 다국적 기업의 진출을 막으면서 자신들은 다국적 기업처럼 외국으로 나아가려고만 하면, 반발에 부딪힐테고, 곧 성장을 멈추게 된다.


이런 점에서 중국은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 많음에도 중국인들은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 암울했던 과거를 딛고 일어섰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업을 하다가 망해도 최소한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다고 한다.


이런 믿음이 젊은이들을 새로운 사업 분야로 진출하게 한다고 한다. 실패를 해도 일어설 수 있다는 확신... '...실패할 수도 있는 일이고, 제시카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일을 찾아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녀는 실패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실패가 굶주림으로 이어질 일도 없다. 그것은 수 년 전만 하더라도 매우 현실적인 관심사였지만 말이다.(245쪽)'고. 이것이 젊은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족한 점이 바로 이것 아닐까? 우리는 패자부활전이 없는 나라라는 생각을 많이 지니고 있지 않나. 사업에 실패하면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두려움. 이는 혁신적인 사업에 뛰어드는데 망설이게 하는 요소가 된다.


중국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불확실성에 놓여 있다고 한다. 지금 잘나가는 기업조차도 언제 밀려날지 모른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시장경제를 채택한 나라들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겪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위험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혁신하고 노력해야 한다. 이런 자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 자세를 저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노년의 창업가들은 대부분 안정 같은 것을 얻기 위해 자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반면에 청년 사업가 제시카가 자기 사업을 하는 이유는 스스로 자유의 영역을 확립하여 자기 삶을 책임지기 위해서다.'(245쪽)


초기 창업자부터 지금 창업하는 사람들까지... 중국에 많은 문제가 놓여 있지만, 그 문제들 속에서 자기들만의 해법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독특한 국가체제에서 성장한 중국 기업'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정치체제와 부딪히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들의 자율권과 주도권을 충분히 행사하면서 성장해 왔다고 한다. 또한 중국에 맞는 사업 운영을 했다고도 하고, 그래서 다국적 기업이든, 중국에 진출하려는 기업은 세계적 표준에 맞춰 중국에 진출하려 하지 말고, 중국의 기준에 맞게 자신들의 사업 전략을 짜서 진출해야 한다고 한다.


즉, 중국을 제대로 알고 진출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우리나라 기업들에도 해당하는 말일테다.


이 책은 이렇게 중국 기업들이 이류에 머물지 않고 일류로 올라서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바로 옆에 있는 이웃나라 중국. 우리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라이니, 그만큼 우리도 중국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겠고, 특히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에서 다룬 내용들을 명심하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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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왕홍으로 통한다 - 14억 중국시장의 크리에이터, 2020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임예성.이혜진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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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홍'이란 말을 얼핏 들으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중국의 왕홍하면, 왕홍이라는 사람이 중국에서 매우 유명한 사람인가 보다 하고 잘못 생각할 수 있다.


'왕홍'은 사람 이름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유튜버'가 사람 이름이 아니듯이. '왕홍'은 중국어로 인터넷을 뜻하는 왕뤄와 유명인을 뜻하는 홍런의 합성어(13쪽)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유명한 유튜버쯤 된다고 보면 된다.


개인방송자라고 해도 좋겠고, 이런 왕홍이 중국에서 많이 나왔고, 또 이들은 17조 원의 경제 시장을 형성하고 있고, 외국 플랫폼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은 중국에서 자신들이 구축한 플랫폼으로 자신들의 인터넷 활동을 하는데, 여기에 왕홍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 유튜버는 간접광고나 또는 자신의 방송 전이나 중간에 하는 광고 수입을 얻지만, 중국의 왕홍은 방송을 통해서 직접 제품을 광고하고 판매까지도 한다고 하니, 유튜브와 홈쇼핑을 합친 활동을 하는 사람이 왕홍이다.


이러한 왕홍에 대해서 쉽게 알려주고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중국에 유학가서 직접 왕홍 활동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썼기에 이해하기가 쉽다.


왕홍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해야 왕홍이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중국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적절한 입문서가 될 수 있는 책이다.


여기에 왕홍 활동으로 돈을 번다는 목적보다는 무엇인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단순한 경제활동이 아니라 국제 교류를 할 수 있다는 점. 나라와 나라를 이어주는 역할을 왕홍이 할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으며, 앞으로 중국으로 진출하려는 사람들에게 왕홍으로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조언을 해주고 있는 책이다.


중국을 짝퉁의 나라, 모방과 표절의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 책은 중국은 이미 스마트 사회로 나아갔다고, 모방을 넘어서 이제는 자신들의 플랫폼을 구축하고, 거기서 14억 인구가 참여하는 거대한 세상을 만들어냈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왕홍, 중국의 유튜버... 우리나라 기업들도 중국의 왕홍들을 초빙해 기업과 제품 홍보를 하고 있다고 하니, 반대로 우리나라 왕홍들을 중국이 필요로 한다는 점도 보여주고 있다.


개인방송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이제는 우리나라를 넘어서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만들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으니... 세상 어떤 일도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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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 - 넘겨짚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는 71가지 통찰
바츨라프 스밀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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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을 펼칠 때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어림짐작으로 정책을 수립해서는 안 된다. 확실한 사실을 기반으로 할 때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수 있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다.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는 근거 중 하나가 바로 숫자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 숫자는 사실을 수치로 표시한 기호이니 사실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숫자만 믿을 수 있나?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숫자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진실을 가릴 수도 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 말을 숫자는 진실을 말한다고 할 수 있을까?


책 제목이 된 '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를 보면서 영어로 'NUMBERS DON'T LIE'라고 되어 있는 말과 등치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가령 임금인상이 노동자는 10%가 되고, 자본가는 1%가 되었다. 인상률에서 10배나 차이가 나니, 노동자들의 삶이 많이 좋아졌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아니다.


300만 원(많이 쓰자) 받는 사람이 10% 인상이 되면 330만 원을 받게 된다. 30만 원 오르게 된다. 자본가가 1000만 원(적게 쓰자) 받았는데 1% 인상이 되면 1010만 원을 받게 된다. 오른 액수에서 10배가 차이 나는가? 아니다. 겨우 3배 차이다. 만약 3000만 원(아마 이 편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을 번다면? 1% 인상이 되어도 30만 원이 오르게 된다. 인상률에서는 10배가 차이나지만, 액수는 같다. 2%만 올라도 60만 원이다. 노동자보다 2배 많은 돈이 오르게 된다.


숫자는 거짓말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상률만 이야기하면 거짓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거짓이 아니라고 할 수 있으려면 오른 액수를 숫자로 나타내야 한다. 그리고 총액을 이야기해야 하고, 총액과 더불어 사회에서 쓸 수 있는 자원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야 한다.


즉, 숫자는 단순히 하나의 숫자로 끝나서는 안 된다. 다양한 숫자들을 이야기하고, 그 중에서 가장 타당한 숫자를 근거로 삼아야 한다. 아니면 다양한 숫자들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숫자만 이야기하지 말고. 그래야 영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바꾼 말이 진실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숫자를 살펴보는 습관을 지녀야 하고, 또 숫자를 하나로만 환산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환산할 필요성을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사람, 국가, 기계-설비-장치, 연료와 전기, 운송과 교통, 식량, 환경'에 걸쳐서 많은 숫자들을 통해서 사실을 판단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막연하게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던 점들을 숫자를 통해서 사실임을, 또는 허구임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원자력발전(이 책에서는 핵발전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용어가 정리되어야 논의를 할 때 논점이 명확해진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몇 구절을 인용하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논쟁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저자는 원자력발전은 감소하는 추세라고한다. 


'원자력발전이 차지한 비중은 1996년 정점에 달해 거의 18퍼센트였지만, 2018년에는 10퍼센트까지 떨어졌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2040년경 12퍼센트까지는 반등할 것으로 추정된다.'(200쪽)


반등이 이루어질 수는 있지만, 숫자로 보면 감소해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유는 '서구인들은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며, 원자력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기업은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199쪽)고 하니, 발전가능성보다는 줄어들 가능성이 많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원자력발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나? 


'핵분열로 상당한 양의 전기를 생산하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 한층 개량된 원자로 설계를 사용해야 하고, 핵폐기물 저장에 대해 단호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실에 대한 선입견 없는 객관적 조사가 필요하고 진정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세계 에너지 정책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 눈에는 이 둘을 진심으로 추진해보려는 실질적 징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200쪽)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저자가 핵발전에 대해서 하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객관적 조사와 장기적 관점'이라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숫자를 동원하지 말고, '객관적 조사'를 하되, '장기적 관점'에서 에너지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숫자다. 다양한 방면으로 숫자들을 활용하고 살펴보는 일이 필요함을 이 책이 말고 있으니...


에너지 정책만이 아니라 정책은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이 목적하는 바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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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가자, 전시회로'라는 제목이 있다. 코로나가 우리 생활을 완전히 제약하던 때를 지나 이제는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때가 되었다.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고 했고, 학교는 모두 등교 수업을 하게 됐다.


  학생들도 체육시간에 마스크를 벗어도 되고, 교실에서는 드디어 짝도 생겼다고 한다. 짝!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눌 사람. 코로나로 학생들은 짝도 잃었고, 대화도 잃었고, 몸을 움직일 시간도 잃었었다. 게다가 함께 잠을 자는, 학창시절 가장 큰 즐거움인 수학여행도 잃고 지냈으니...


  어떤 활동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두 해가 지나고, 이제는 많은 활동들을 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 이때를 맞이하여 빅이슈에서 다룬 주제가 바로 '전시회'다.


나하고는 다른 존재를 만날 수 있는 장소. 전시회. 다양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고, 사람들은 이제 자신이 보고 싶었던 전시회를 찾아갈 수 있게 됐다. 그런 때를 맞아 빅이슈가 소개하고 있는 전시회에 가보아도 좋을 듯 싶다.


전시회와 더불어 저번 호에 이어서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 투쟁을 다루고 있다. 이번에는 그들이 주장하는 바보다는, 그들의 투쟁에 응원을 보내는 글들을 실었다. 그래. 언론에서는 중립을 표방한답시고, 비판하는 사람들과 응원하는 사람들을 함께 내보냈지만, 과연 그것이 중립일까?


중립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약자들에게는 폭력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언론은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같은 말이라도 어느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임을 생각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불편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일 수 있음을...


그것을 같은 비중으로 놓고 이야기를 하면서 이것이 중립이라고 하면 그 중립은 강자 편을 드는 일일 수밖에 없음을 생각해야 한다.


'전시회'가 '장미'라면 '지하철 타기'는 '빵'이다. 장애인들이 전시회에 가려고 해도 지하철(버스)을 제대로 타고 갈 수 없다면, 전시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빵과 장미'로 대표되는 인간의 권리인데, 이들은 '장미'를 향유하기 위해서 '빵'이 확보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빵'조차도 확보되지 않은 현실에서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와 자신들의 주장을 펼칠 수밖에 없다.


이번 호에서 전시회와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글이 실렸는데, 묘한 등치를 이룬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회를 즐기기 위해서 우리가 함께 노력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두 주제가 함께 실린 이번 호는 꽤 의미 있게 다가온다.


여기에 탱고에 관한 글이 이 두 주제를 묶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탱고를 둘이 함께 추는데, 혼자만 잘한다고 상대 생각없이 제 멋대로만 춘다면, 그 춤은 볼썽사납게 되어버리고 만다고.


'나는 팀의 목표를 서로 잘 연결되어 기분 좋은 순간을 창조하고, 더 나아가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것으로 보는데, 이를 위해 리더는 상대방이 움직일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상대가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뒤 본인도 움직여야 한다. 분명히 리드하지 않거나, 팔로워의 움직임을 확인하거나 기다려주지 않은 채 혼자만 급히 움직인다면 역할을 정성껏 하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는 불쾌한 순간과 보기 싫은 몸짓이다. 나는 대부분의 팔로워가 자신을 '추하게' 만드는 리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68쪽) 


리드와 팔로워를 정치인과 시민으로 바꾸고, '추하게'를 '힘들게'로 바꾸면 우리나라 정치에도 적용이 될 수 있다.


이때 팔로워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장애인도 팔로워에 해당한다. 그들도 한 팀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춤을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출 수 있게 리드해야 한다. 리드하기 위해서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지하철 출근 투쟁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정치인들은 자기만의 속도로 춤을 추는 리더에 해당한다. 그러면 이 팀은 제대로 춤을 출 수가 없다.


중립이란 바로 이렇게 리더가 제 역할을 해서 팔로워가 민망해하지 않도록, 힘들어하지 않도록 할 수 있도록 하는 비판하는 데 있다. 그것이 바로 중립이다. 양쪽 다 문제가 있다 또는 양쪽 다 이해가 간다고 말하는 데 있지 않고.


그래서 '전시회와 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함께 다룬 이번 호는 '빵과 장미'처럼 함께 이야기될 수 있는 그런 주제였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이렇게 '빵과 장미'를 함께 생각할 수 있도록 한 [빅이슈] 275호가 중립이라고 할 수 있다. 


고맙다. 이렇게 중립을 지켜주는 잡지가 있어서... 더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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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의 일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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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오는 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이 왜 예수가 마르타에게 무어라고 하느냐는 질문을 나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마르타가 하는 일은 그림자 노동에 속한다.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동안에 그들이 먹고 마실 것들을 준비하는 마르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일을 한다. 그것이 마르타의 일이다. 


반면에 마리아는 집에 손님으로 온 예수를 대접하는 일을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예수 곁에 머물며 예수의 말을 듣고 있다. 마르타가 마리아에게 뭐라고 하자, 예수는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누가복음 10:42)고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박서련이 쓴 [마르타의 일]은 둘의 관계를 소설로 어떻게 변형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분명 자매가 나올테고, 한 사람은 남들에게 인정받고 편하게 지내고 다른 사람은 남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는, 그리고 언니가 마르타에 해당하고, 동생은 마리아에 해당하리라고...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서 누가 마르타고 마리아인지 알 수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둘 다 현대 사회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 노동에 해당하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동생인 경아 쪽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린다. 왜냐하면 경아는 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봉사활동으로 인정받고, 또 현대 사회 사이버 공간에서 유명인이 되지만...


유명인이 되었다고 마리아처럼 대우받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마리아는 빼앗기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소설 속 경아는 죽음에 이르기 때문이다. 결국 유명인이 된 경아는 자신의 삶을 빼앗기고 만다. 


반면 마리아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당당하게 했을 뿐이다. 빼앗겨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언니인 수아가 마리아?


수아는 성적이 좋다. 우리나라에서 성적이 좋다는 이야기는 남들에게 인정받는다는 의미다. 좋은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것들을 무시해도 좋다는 인식이 팽배한 사회가 바로 우리 사회다. 


소설 속 경아는 성적이 좋고, 그로 인해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간다. 오히려 남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경아가 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본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수아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성취하고, 또 하고자 하는 일도 해낸다. 경아의 죽음에 대한 복수도 완성한다. 그렇다면 누가 마르타인가?


경아? 수아? 읽어가면서 답을 찾으려는 것이 어쩌면 소설 제목에 갇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르타의 일은 수아와 경아라는 자매를 떠나서 여성 모두에게 해당하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남들이 돋보일 수 있도록 묵묵히 일을 해야 한다.


소설 속에서 수아는 성적 때문에라도 당당하다. 당당하지만 삶은 녹록치 않다. 고시원에서 살아가면서 아르바이트로 간신히 돈을 벌고, 임용고사를 준비한다. 반면 경아를 죽인 남성은 어떤가? 그는 약물과 환락에 취해 살아간다. 삶의 방식이 다르다. 그렇다고 모든 남성 인물들이 그렇게 살아갈까? 아니다.


여기서 다시 동생을 죽인 차해경에게 복수를 하는데, 익명으로 나오는 인물이 한 명 더 등장한다. 그 역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니 이름이 밝혀지는 것은 소설의 뒷부분에 가서이고, 소설 내내 익명이라고 불린다.


드러나지 않음, 그것이 바로 마르타의 일이다. 그렇다면 마르타는 누구인가? 바로 우리 사회에서 자신을 화려하게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또는 고학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카페 매니저를 하는 사람, 성적이 좋아 약대에 진학하고 대기업에 취직을 해도 남 눈치를 보면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 노동을 통해서 자신의 손가락을 잃은 사람(익명으로 나오는 사람은 손가락이 몇 개 없다. 이는 노동으로 잃었다고 유추할 수가 있다)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마르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에서 수아나 경아는 모두 마리아가 될 수 있고, 마르타가 될 수 있다. 


소설은 자살로 위장된 살인사건을 언니의 관점에서 파헤쳐 나간다. 늘 마리아로 여겨졌던 동생이 사실은 마리아가 아니었음을, 동생 역시 마르타였음을... 하여 여전히 마리아가 되기 힘든 사회, 소설 속에서 예수는 마리아가 함께 배우는 모습을 두둔함으로써 여성들도 주체적으로 배울 수 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고, 익명으로 등장하는 인물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말과 경아의 죽음을 통해서 마리아가 되고자 하는 많은 여성들이, 여전히 마르타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는 존재로 남게 하려는 사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는 마르타의 일... 아니, 마르타의 일을 하게 암묵적, 명시적으로 강요하는 사회. 그런 사회의 모습을 이 소설을 통해서 만나게 된다.


한번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는, 흥미진진하게 사건을 이끌어가는 소설인데... 우선 재미있다. 그거면 됐다. 


그래도 여전히 마리아와 마르타에 대한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마르타의 일'이란 제목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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