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가차 없다는 말과 촉법소녀란 말. 결국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사람이라는 뜻이고, 가차 없다는 말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이니...


  당당하게 살아간다기보다는, 자신을 옥죄고 있는 기존 굴레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소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두렵지만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모습.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려고 하지만, 어른의 세계에 짓눌려 있는 모습. 결국 자신의 존재를 어른들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는 두려움 소게서 살아가던 존재.


  그 존재가 어느 날, 이제는 어른의 세계를 의식하고,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려고 하는 자신을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런 모습이 기존 틀에서 벗어난다고 여겨지고, 결국 법을 어긴 소녀라는 뜻을 지닌 촉법소녀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미 만들어진 틀 속에만 살아갈 수 있을까? 법이라는 잣대가 아니더라도, 어른의 세계에 그대로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소년(소녀)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가차 없는 나의 촉법소녀


장 선생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런 글쓰기를 원했다

게다가 난 이미 도처에서 독자와 만나고 있었다

어머니 없이도 어머니를 믿고 자라는 아이처럼

그래서 아이는 어머니에게

앙심을 품게 되는 것이지만

어머니가 없는 곳에서도

어머니가 생겨나는 게 싫어서

언제 어디서나

어머니를 극복한 듯 보여지고 싶어서

시시각각 속에 들어찬

어머니와 어머니와 어머니들

나만 이런 마법에 걸렸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이 세계 전체가

나의 적이 되어야 하니까

환청을 들으며 여기까지 걸어오신 

선생께서는 아시겠지

환청도 없이 버텨야 하는 이 세계는

얼마나 큰 공포인지

천지에 집을 만들어놓고

어머니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차라리 매질을 당할 때가 좋았어요

내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을 때는

손가락을 넣고 토해서라도

목구멍이 거기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피멍이 좀 들면 어때 그것이 평평한 

내 등을 사실로 만들어줄 수만 있다면

난 이 등허리를 마음껏 펼치거나

쪼그릴 수 있을 텐데

어머니는 누구 마음대로 늙고 쇠약해지셨나

첫 울음을 배운 것이 엊그제 같은데

손수 가르쳐주실 게 죽음밖에 남지 않았다니

용서하지 마세요

단 한 번에 실수 없이 졸라드릴게요

수십 번 수천 번도 더

태양을 상대로 연습한 일이었어요

작교 가녀린 시간의 통로와

예기치 못한 끝에 대해

공손하고 끊어짐 없는 손길로 한 번 정도는

나도 가르쳐드리고 싶었어요 한 번 정도는

나도 어머니의 어머니가 되어보고 싶었어요


황성희, 가차 없는 나의 촉법소녀. 현대문학. 2020년. 60-62쪽. 


'가차 없는 나의 촉법소녀'를 읽으며 뒷부분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불교의 말도 떠올랐다. 이미 있던 세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더 나아가지 못한다.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다. 그럴 때는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 자해를 하기도 한다.


나란 존재가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끼기 위해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낸다. 상처를 낸 순간, 느껴지는 통증, 고통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처를 내다가 자신이 아닌 자신보다 앞선 세대를 바라보게 된다.


내가 지닌 두려움이 바로 그들에게서 비롯되었음을... 끊어야 한다. 보이지 않아도 도처에서 그들을 의식하고 살아왔다.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 어머니의 어머니. 그래, 한 번쯤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것이 꼭 가정에서의 일만은 아니다. 사회도 이래야 한다. 청년들은 기성세대를 딛고 나아가야 한다.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의 틀로 청년들을 틀지우려 하지만, 청년들은 그 틀에 갇히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어느 순간 어른들을 가르칠 수 있는, 그런 모습... 이 시를 읽으며 그런 모습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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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글쓰기 레시피 - 맛있게 쓸 수 있는 미술 글쓰기 노하우
정민영 지음 / 아트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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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는 방법이 무엇일까? 예전에는 아주 단순하게 삼다(三多)라고 했다. 참 추상적인 말인데, 일리는 있다. 많이 읽고(다독), 많이 쓰고(다작), 많이 생각하라(다상량).


'삼다'는 단순하다. 특별한 기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글쓰기의 원론을 말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특정한 장르의 글쓰기가 아니라 모든 글쓰기에 통용되는 방법이다.


일반론, 이는 옳은 말이고, 좋은 말이지만, 구체적인 방법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삼다'를 한다고 해도, 과연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 '삼다'는 글쓰기의 기본, 즉 기초를 알려주는 말이라고 보아야 한다.


기초 없이는 무엇을 할 수 없으니, 이 '삼다'는 모든 글쓰기의 기본이다. 많이 읽어야 알고, 많이 써봐야 어떻게 쓸지 감을 잡을 수 있으며, 많이 생각해 봐야 자신의 사고를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글쓰기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글 종류에 따라서 글쓰기 방법이 달라져야 하니,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글쓰기 책들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필요에 의해서 나왔다. 미술에 관한 글쓰기를 알려주는 책.


다른 종류의 글쓰기가 아니라 미술과 관련된 글쓰기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느냐를 알려주는 책. 미술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전시회나 다른 미술관련 행사에 자주 참여하여 미술 작품들을 많이 감상하고, 그에 대한 글을 써보고, 미술에 관해서 많이 생각해 봐라... '삼다'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이렇게만 하면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미술에 관한 글을 잘 쓸 수 있는 능력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이 말은 추상적인 말이다. 하나마나한 소리가 될 가능성이 많다.


막상 글을 쓰려면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이때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필요하다. 음식을 만들 때 재료부터 조리과정까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레시피가 필요하듯이, 미술에 관해서 글을 쓸 때도 이런 식으로 쓸 수 있다고 알려주는 책. 이 책은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처음부터 어렵고 추상적인 내용은 빼고 있다. 미술 작품을 관람하는데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모두 자기만의 감상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데서 시작한다. 전문가의 감상펼이 무조건 맞다는, 내 감상은 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부터 버리라고 한다.


미술을 보는 눈에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 그래, 정답이 없는데 굳이 정답이 있다고 믿고 그 정답을 찾으려 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지 않았던가.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말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던가. 그게 아니다. 작가조차도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정답을 말할 수 없다. 그렇게 여겨야 한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무의식의 세계는 무궁하다. 그러니 작가의 말이 작품을 온존히 드러내준다고 할 수 없다.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내 감상을 밀고 나가자. 다만 내 감상에 구체적인 이유를 부여해주면 된다. 묻고 답하기... 작품 앞에서 묻고 답하는 과정을 거치면, 자연스레 나만의 감상이 생긴다. 이런 과정이 바로 '다상량'이다. 많이 생각하라!


그리고 그 감상을 글로 쓰면 된다. 쓸 때 전체적인 구성을 생각해야 한다고, 그 방법을 2장에서 알려주고 있다. 전체 틀이 생겼으면 이제 구체적으로 써나가면 된다. 3장에서는 쓰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들(작품 묘사, 작가 정보, 시대, 에피소드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4장에서는 무엇으로 쓸까 해서 '글감에 관해 알아야 할 것들'을 알려준다. 


알아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많이 알면 알수록 고를 수가 있다. 글을 더 흥미롭게 만들 수 있다. 많이 읽어야 한다. '다독'이다!


이제 글을 쓴다면 5장을 참조하면 된다. 이렇게 하자고, '쓰면서 알아야 할 것들'을 알려주고 있다. 이렇듯 미술에 관한 글쓰기로 책 한 권을 채웠다. 자꾸 쓰고 쓰고, 고치고 고치라고 한다. 여러 번 고쳐야 더 좋은 글이 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뺄 것은 빼고 더할 것은 더하게 된다. 문장들을 다듬어서 연결관계도 좋게 만들 수 있고... '다작'이다! 역시 많이 써봐야 한다.


그만큼 할 이야기가 많다는 뜻이겠다. '삼다'라면 몇 줄로 끝날 글쓰기 방법이 책 한 권이 되었다. 자, '삼다'에 관한 내용을 차곡차곡 채워서 책 한 권이 된 것. 그만큼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글쓰기에 관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지만, 읽으면서 미술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니, 자연스레 작품에 대한 이해, 작가에 대한 이해도 할 수 있는 책이다. 역시 큰틀은 '삼다'다. 


'삼다'는 모든 글쓰기의 토대다. 토대를 탄탄하게 다져야 한다. 그래야 그 위에 건물을 세울 수 있다. 무너지지 않는 건물. 아름다운 건물.


저자는 이 '삼다'를 기반으로 튼튼하고 아름답고 실용적인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미술에 관한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하지만 이 책은 미술에 관한 글쓰기를 알려주는 책으로 미술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기 때문에, 미술에 관한 글을 쓰려는 사람만이 아니라 미술에 흥미가 있는 사람도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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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잠시 멈춤 - 가장 소중한 것에 커넥트하기 위한 20년 디지털 중독자의 디지털 디톡스 체험, 2021 세종도서 문학나눔 교양부문 선정
고용석 지음 / 이지북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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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요즘 시류와는 맞지 않는 책일지도 모른다. 디지털 시대, 스마트 시대에 그것을 잠시 멈추라니... 예전에 (지금은 잘 읽지 않게 된 책이지만,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혜민 스님의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이 있었다.


우리는 쉴 새 없이 달리기만 하는데, 이렇게 하다가 어느 순간 지쳐 나가떨어지게 된다. 영어 표현으로 번아웃이라고 하고, 소진되었다는 말로도 표현하는 상태에 도달한다. 이때 멈춰야 한다. 멈추고 쉴 수 있어야 한다. 몸을, 마음을 심심하게 해야 한다.


심심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멈추었다가 갈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예전과는 다른 자신으로.


디지털 시대 또한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깨어나서 잘 때까지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다. 밥 먹을 때도 스마트폰을 가지고 가고, 식사를 하면서도 스마트폰으로 연락을 주고 받는다.


도무지 자기 시간이 없다. 자기 시간에 시도때도 없이 스마트폰이 침범해 들어온다. 멈출 수가 없는, 늘 달리고 있는 상태. 이것이 바로 스마트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습이다.


그런데 이것이 좋기만 할까?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고 있을까? 곰곰 생각해 보면 자신의 의지보다는 주어진 무언가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내가 좋아하는 일도 어찌보면 조종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


알고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내가 접속한 상태들을 기억하고 있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에게 그와 비슷한 상품, 사이트들을 알려주는 스마트 시대. 빅브라더를 비판하고, 그런 시대는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지만, 이미 우리는 구글이나 애플과 비슷한 빅브라더를 만들어내고, 빅브라더 품으로 들어가 버린 상태는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스마트폰 금단 현상... 청소년들에게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 그들은 참지 못한다. 그들에게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이들은 손에 쥐고 다니는 스마트폰보다는 몸 속에 내장된 스마트폰 시대가 더 좋다고 여길 수도 있다.


이렇게 스마트폰을 이용한 인터넷시대, 최첨단  전자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저자는 이와 반대로 스마트폰 없이 살아보기를 권유하고 있다. 자신이 한 경험에 비추어.


그는 스마트폰과 함께 하던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고, 어느날 결심을 한다. 스마트폰 사용을 줄여보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자.


먼저 사진 찍기를 줄이기로 한다. 제주도에 여행가서 하루에 딱 3번만 사진을 찍기로 한다. 보통 우리는 음식점에 가서도 요리가 나오면 사진부터 찍지 않는가. 저자 역시 스마트폰을 비롯한 첨단 기기를 자주 사용했는데, 사진에서 먼저 시작한다.


여행의 기억을 잃지 않을까, 남는 것은 사진뿐이야 라고 하는데, 정말 아무 것도 남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하지만, 사진을 찍지 않는 순간부터 저자는 다른 세계로 들어갔음을 알게 된다.


집중력이 높아지고 여행에서 관찰을 더 많이 하게 되며, 천천히 여행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음악을 멈추기 시작하자 자신의 뇌에서 음악이 재생되는 경험을 한다. 주변 소리와 어울어진, 이어폰으로 다른 소리들을 가리지 않는 조화를 이룬 음악을...


사진, 음악에 이어서 구글링, 커뮤니티를 줄이고, 식탁에서 스마트폰을 하지 않기로 한다. 이런 활동을 한 다음부터 그에게는 집중력 늘고, 기억력이 좋아졌다고 한다. 상황을 더 잘 기억하게 되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게 된다.


그런 다음에 전시회에 가더라도 사진보다는 그림을 그렸더니, 작품을 더 잘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토록 저자는 디지털을 잠시 멈추는 활동을 한 자신의 경험을 남에게도 알려주고 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고. 우리가 디지털로 만나는 세계가 전부는 아니라고, 오히려 디지털을 멈추었을 때 더 나은 세상을 만날 수도 있다고.


청소들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시대에, 저자는 스마트폰을 없애라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다만, 스마트폰을 사용하더라도 잠시 멈출 수 있어야 함을, 생활에서 디지털을 멈추는 시간을 지니라고 이야기할 뿐이다.


디지털 세상이 되더라도 사람은 아날로그 모습을 완전히 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끔은 디지털을 멈추는 생활을 하도록 해야 한다. 


교육에서 디지털, 디지털 하면서 교육을 하지 않아도 이미 미래세대들은 태생적으로 디지털과 친숙하다. 그러면 교육에서 필요한 일은, 디지털 교육이 아니라 아날로그 교육이 아닐까 한다. 


저자처럼 디지털을 잠시 멈출 수 있는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는 교육, 그것을 학교가 아니면 어디에서 체계적으로 할 수 있겠는가. 이 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디지털, 잠시 멈춤] 이 책을 통해 디지털로 이루어진 이 세상에서 오히려 아날로그가 더 핅요함을, 그리고 디지털을 멈출 수 있는 생활을 할 때 우리 삶이 더 윤택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도때도 없이 우리 삶으로 들어오는 디지털 신호들로 인해 우리 뇌가 얼마나 피곤한지... 디지털을 잠시 멈추면 우리 뇌도 그런 피로를 씻고 더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음을...


저자가 한 것처럼 디지털을 잠시 멈추는 생활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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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언어
장한업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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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을 실감나게 하는 책이다. 무심코 사용하는 말이 차별을 만들어낼 때가 있다. 그래서 말이 칼이 되기도 한다.


조심해야 하는데, 어릴 때부터 몸에 익은 말들이 쉽게 떨어져 나가지는 않는다.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그 말은 밖으로 나가버리고 만다.


이 책에서는 그런 말들을 다뤄주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말들이 차별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라는 말이다. '우리'라는 말을 얼마나 자주 쓰는가? 하다못해 우리 아내, 우리 남편이라고까지 하니, '우리'란 말은 의식 깊은 곳에 박혀 있어서 빼내기가 힘들다.


그런데 우리라는 말이 배타적일 수 있다는 사실. 우리는 우리 안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동질감을 느끼지만, 우리 밖에 있는 사람들을 밀어내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단순한 언어 속에서 느끼게 된다.


우리가 울타리를 의미한다면 포함과 배제를 하는 말인데, 포함되는 존재들 말고는 배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울타리다. 그러니 우리라는 말에는 배제가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고, 배제된 존재들에 대해서 우리 안에 있는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 다르게 대우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국민'이라는 말도 여기에 해당한다. 국민이라는 말이 무슨 문제일까 싶지만 '국민 배우, 국민 여동생' 등등 이런 말은 국가주의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한다. 국민이라는 말도 우리란 말처럼 어쩌면 경계를 긋는 그런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야 한다고. 국민보다는 시민이라는 말을 먼저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단일민족이라는 말이야 많은 저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사항이니 더 긴말이 필요없지만, 얼핏 좋은 의미로 들리는 다문화교육이라는 말도 문제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다문화라는 말을 쓰면서 한국문화는 다문화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다문화교육에는 세계 각국의 문화와 더불어 한국 문화도 포함되어 교육해야 하는데, 과연 그런지... 다문화교육이라고 하면서 외국의 문화를 이해해야 하고 그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지는 않았는지... 차라리 국제이해교육이라고 하자고 말하고 있는데...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여기에 마음에 와닿는 말이 있었는데, 그것은 '스파게티와 쌀국수'다. 왜 이탈리아 국수는 스팍게티라고 그 나라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베트남 국수인 퍼는 '퍼'라는 말을 쓰지 않고 '쌀국수'라고 하는지 생각해 보라는 말.


그래, 왜 그러지... 여기에 문화적인 또는 나라에 따른 차별이 은연중에 반영되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은 이렇게 많은 면에서 잠재되어 있는 차별의식을 드러내주고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쓰는 말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칼이 될 수도 있음을...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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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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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많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겠지. 이 책 제목만 보고 오해했었다. 아, 동네서점에 대한 이야기가 실린 책이구나. 소설이라는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제목만 보고, 더 살펴보지 않은 성급함 때문이다. 빨리빨리를 거부하면서도 책을 판단하는데 그 놈의 빨리빨리가 잣대로 작용하지 않았나 반성해 본다.


요즘 동네책방에 대한 소개글들도 많아서 제목에 '어서 오세요'라는 말과 '휴남동 서점'이라는 말에서, 정말로 휴남동이라는 동네가 있고, 그 마을에 있는 책방에 얽힌 이야기겠구나 지레짐작하게 된 것.


그러다 책을 직접 손에 들고, 이를 책의 물성을 느낀다고 할 수 있겠는데, 표지를 살펴본 순간 어라 소설이었어?라는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아, 소설이었구나... 이런... 잘못 생각하고 있었네. 그렇다면 한번 읽어봐야겠네... 동네책방에 얽힌 이야기를 소설로 풀었구나,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읽어봐야지 이런 마음에 읽기 시작.


읽으면서 이 소설의 내용을 떠올렸다. 소설 속 주인공은 자기 서점에 베스트셀러를 가져다 놓지 않겠다고 한다. 어쩌면 이 장면은 예전 텔레비전에서 방송했던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에 관한 일화가 떠올랐다. 책의 다양성... 그건 바로 마을책방들의 다양성과 통할텐데...


그 프로그램에서 선정된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수십만 권에서 백만 권 이상까지 팔리곤 했는데, 권정생 선생의 책을 선정하고 싶다고 제작진이 출판사에게 물었을 때 출판사에서 선정되기를 거부했다고, 저자인 권정생 선생도 거부했다는 일화... 이유는 사람들이 직접 책방에 가서 책을 고르는 재미를 빼앗을 수 없다고.


그런데 내가 베스트셀러를 읽다니... 소설 주인공과 반대로 가고 있나? 하는 생각도 순간 했지만, 주인공도 말한다. '베스트셀러에 오른 그 책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357쪽)고. '한번 베스트셀러에 오르면 계속 베스트셀러로 남는 현상이 문제였다'(357쪽)고.


그렇다고 베스트셀러를 읽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좀더 다양한 책들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주인공의 말은. 이 말은 또 대형서점이나 인터넷서점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과 통한다. 서점을 책으로 비유한다면, 대형서점 몇 곳과 인터넷서점 몇 곳은 베스트셀러에 해당할테니, 이들만으로는 책의 다양성이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점점 사라져가는 동네책방들... 예전에는 대학가에는 작은 책방들이, 나름대로 주제가 있는 책방들이 있었고, 그 서점을 중심으로 학생들이 책을 사고 만나고 약속을 잡고, 토론하기도 했었다. 동네책방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는 동네책방들...


이 소설은 그러한 동네책방을 중심으로 모여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펼쳐간다. 마치 서점의 주류에서 밀려난 동네책방이듯이, 현대 사회의 삶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 서점에 모여든다. 휴남동 서점을 중심으로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준다. 


주인인 영주, 커피 아르바이트를 하는 민준, 동네 주민으로 서점에 관심을 가져준 민철 엄마(희주), 엄마에 의해 반강제로 서점에 들르게 된 민철, 강연으로 인연을 맺게 된 승우, 또 책벌레 상수, 커피 원두를 제공하는 지미, 비정규직의 팍팍한 삶을 살던 정서 등등이 휴남동 서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마치 마을의 느티나무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살아가듯이 그렇게 휴남동 서점에도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공유해간다.


그 삶이 화려하지는 않아도 또 돈을 많이 벌지는 않아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동네책방, 그 책방이 바로 휴남동 서점이다.


가끔 채널을 돌리다 만나는 '동네 한바퀴'란 프로그램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렇게 마을에서 사람들이 서점을 통해 만나고 이야기하는 과정이 결코 화려하지 않은 마을을 도는 그 프로그램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도 소설은 일에 치인, 또는 목표에 치인 현대인의 삶에서 한발짝 벗어나게 해주고 있다. 읽으면서 느티나무 그늘에 모여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듯이, 편안하게 소설을 읽어갈 수 있다.


따스한 내용... 지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장소가 소설 속 휴남동 서점이었듯이, 이 소설은 현대를 팍팍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위안을 주는 마을 느티나무 같은 역할을 한다. 


베스트셀러라고 다 읽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이 소설 속에는 다른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아마도 이 소설을 재미있게 또는 감명깊게 읽은 사람은 소설 속 소설을 찾아 읽게 될테니, 이 소설은 책읽기의 다양성에 이바지 하는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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