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 쟁점탐구
공현 외 지음, 인권교육센터 ‘들’ 기획 / 한겨레에듀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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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인권, 교문을 넘다"이고, 학생인권쟁점탐구가 작은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은 교문을 넘어 안에서 밖으로 나오려 하고, 인권은 반대로 교문을 넘어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다.  

교문이라는 말은 우선 굳게 닫혀 있는 모습이 떠오르고, 안과 밖을 연결해주는 대상이라기 보다는 안과 밖을 가르는, 그리고 안과 밖이 명확히 갈려 있음을, 안과 밖을 연결할 수 없음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여겨진다.  

우리의 학창시절을 생각해 봐도, 교문에 한 번 들어오면 나가기는, 학교에서 정한 시간이 되어야만 가능하지 않았던가. 이 곳을 나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절차가 필요했다. 무언가를 먹고 싶어 밖에 있는 가게에 가고 싶어도, 아니 준비물을 깜박 잊고 와 사러 나가려 해도 담임이 외출증을 써 주지 않으면 나갈 수가 없는 철옹성, 그것이 바로 교문 아니었던가. 

자기 스스로 배우고 싶어 온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굳히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대상이 바로 교문이기도 하다. 배우고 싶어 왔다면 그곳은 입출입이 자유로운 곳이었으리라. 그래서 교문이라는 말에는 이미 반인권이 담겨 있단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은 학교는 이미 반인권, 비인권적인 요소가 많은 곳이기에 고쳐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너무도 비인권적이라 안에서 스스로 고칠 능력을 상실했으므로, 교문을 넘어서 안으로 들어가서 인권이 이렇다고 주장해야 한다는 뜻, 인권은 주어지지 않고, 스스로 깨쳐나가야 하니, 인권을 가지고 교문 안으로 들어가라고, 문을 열어달라고, 애원하지 않고, 당당히 넘어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안으로 들어간 인권은 다시 교문 안에 갇히지 않고,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교문을 넘어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되, 다시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때서야 학교는 인권이 실현되는 장으로서 기능을 하게 된다. 

이런 인권을 실현하는 기본이 바로 사람이라는 말에 담겨 있다. 사람을 삶,앎이라고 하지 않던가. 삶을 알기 위해서는 경험을 해야 하는데, 이 경험은 자신이 직접 겪은 체험을 통해 나오지 않던가. 이렇게 삶을 아는 사람들이 모여서 생활하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사람 사이. 이 때 사이를 관계라고 하면 관계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어떤 무엇이 아니라, 사람들이 삶을 통해서 만들어가는 무엇이다. 이 삶들이 서로 제대로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즉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인권이다. 즉 인권이 무시되었을 때 사람, 인간으로 살아가니는 커녕 그저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존재로만 남게 될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나의 권리, 너의 권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삶을 아는 사람들의 권리,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 그것이 바로 인권이다. 

이 인권이 학생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이 침해받고 있는가. 

우리는 학생을 사람으로도, 인간으로도 대우하지 않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는가. 사람이기 전에, 인간이기 전에, 너희들은 학생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두발부터, 몸에 대한 권리, 체벌,양심, 휴대전화, 양심의 자유, 자율이라는 이름의 강제 학습, 정치적인 또는 집회의 권리, 그리고 사랑까지 다 통제하고 규제하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바로 이 점들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해나가고 있다. 

대전제로 학생이기 이전에 사람이라고, 인간이라고 따라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이야기하고 이것이 학생이라고 얼마나 통제받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가끔 쟁점이 되는사항은 결론을 내리지 않고 스스로 생각해 보게 한다. 그게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들이 주장하듯이, 잃어버린 자유의 감각을 되찾기 위해서는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할 기회를 충분히 가져야 하기(249쪽) 때문이다. 이게 인권이야. 너희는 지금 이것이 없어라고 알려주려 들었다면 이미 그 자세 자체가 인권에서 멀어지고 있게 되는데, 그 점을 잘 알고, 인권에 대한 생각을 읽은이가 스스로 정리하게 해주고 있으니...'아!'에서 끝나지 않고, '뭐지? 어떻게 해야 하지?'가지 나아가게 하고 있다. 

그리고 3부에서는 지금까지 고민했던 인권의 내용에 대한 기초적인 생각거리를 정리해주고 있다. 이것들은 흔히 학생인권 하면 뒤따라오는 반론들에 대한 재반론을 하는데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단 생각이 든다. 

인권, 인권. 국가인권위원회까지 있는 나라, 비록 지금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제 구실을 못한다는 평을 받고 있긴 하지만, 인권은 우리 시대의 화두다.  

그래서 인권은 교문을 넘어야 한다. 단지 학교 내에서만 인권, 인권 하면 안 된다. 처음에 인권의 불모지대인 학교로 인권이 담을 넘어 들어가야 하겠지만, 이 인권은 반드시 다시 교문을 넘어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 때서야 인권은 보편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 날을 꿈꾸며, 인권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겠지란 희망을 지니게 된다. 

덧말 

72쪽에서 루이 15세라고 했는데... 프랑스 대혁명 당시 처형당한 왕은 루이 16세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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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에서 피는 꽃 - 만민보 민중의소리 알다문고 1
구도희 외 8명 지음 / 민중의소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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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보'라고 들어 보았는가? 

시인 고은이 쓴 시집 이름이다. 무려 30권까지 나온, 우리나라 역사에서 또 고은의 삶에서 고은의 체에 걸린 인물들을 시로 형상화해 낸 시집이다. 

만인보? 만인에 대한 족보? 다른 말로 하면 많은 사람들 이야기라는 뜻인데... 

그 시에는 역사적인 인물부터 지금 우리와 함께 숨쉬는 사람들이 간결하게 고은다운 표현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그래서 만인보는 친숙한데... 만민보라니?  

민중의 소리라는 인터넷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을 책으로 엮어냈다고 하는데... 최근에 이 민중의 소리를 네이버에서 링크하지 않겠다고 하여, 민중의 소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는데...이 곳에서 낸 책 정도는 읽어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형식의 글이 '삶이 보이는 창'에도 실렸었는데... 한 번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고...

이 책의 제목은 "낮은 곳에서 피는 꽃"이지만, 실질적인 제목은 만민보이다. 

만민보? 만인보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만인보가 고은에게 포착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로 만들어냈다면, 이 만민보는 민중의 삶을 가장 민중답게 살면서, 더 나은 세상을 지향하는 바로 우리와 함께 숨쉬고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펼쳐나간다. 

그래서 만인보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또 너무도 간략하게 특징만이 표현되어 있다면, 이 만민보는 비록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 이야기이고, 또 인터뷰라는 형식을 통했으므로, 이 사람들이 살아온 모습, 생각하는 세상 등이 잘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아마도 읽기에는, 그리고 현실성이 있기도 이 만민보가 더 있으리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 나올지 모르지만, "낮은 곳에서 피는 꽃"이라는 제목으로는 노정렬, 맹봉학, 정철(영어학원 관계자 아님), 김용민, 김형태, 박혜명, 신유아, 김홍모, 김진, 고성원, 윤정원, 윤희숙, 전지현(배우가 아님), 안소희, 이종섭, 주말순, 김갑수(역시 배우 아님, 평론가도 아님), 이인철, 공재민, 박재만, 김은총, 박흥식으로 22명의 사람(民)이 나오고 있다. 

다들 높은 곳을 지향하지 않고, 낮은 곳을 지향하는, 그 낮은 곳에서 한 송이의 꽃을 피워, 그 향기를 온 세상으로 퍼뜨리는 사람들이다. 

낮음으로서 높아진다는 사실을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줌으로써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세상이 험하다고 생각할수록 희망의 빛은 더욱 가까이 있다고, 우리 주변에는 낮은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이렇듯 꽃을 피우고,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인식할 때, 어둠은 결코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희망의 빛, 그것을 이 만민보에서 볼 수 있다. 

만민보에서 보여주는 희망의 빛은 민중의 희망은 실현될 수밖에 없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고나 할까. 

따스하게, 그러나 마음 뭉클하게, 또 희망을 지니게 하는 책이다. 

한 번에 주욱 읽어도 좋고, 하루에 한 사람씩, 그 사람의 삶의 궤적을 생각하며 읽어도 좋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위대한 그 누구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웃이고, 바로 나 자신일 수 있음을 알게 해주는 책이니... 좋다... 마음에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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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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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 장소가 결정된다고, 어제 오후부터 선정절차가 어쩌니 저쩌니 한참 떠들어 대더니... 아침에 일어나니 평창이 압도적인 표차로 선정되었다고 난리다. 

국가적인 경사니, 세 번째만의 성공이니, 전국민의 성원에 힘입은 결과니 모두들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는 듯이 방송에서 호들갑을 떨고 있다. 

말 그대로 호들갑이다. 과연 전국민이 평창이 동계올림픽 개최지가 되길 바라고 있을까. 정말로 이런 일이 전국민적 관심사가 되어야 할까. 이 방송, 저 방송 가리지 않고 거의 똑같은 방송을 내보내고, 이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거의 하루 종일, 평창, 평창 하고 있으니... 

그래, 경사지. 정치인들까지 평창에 가서 기원을 한답시고 있고, 방송사들은 다들 평창에 가서 특집방송을 한답시고 죽치고 있었으니.. 이거 다른 말로 하면 스포츠는 단지 우리가 즐기는 운동이 아니라, 자본과 정치가 결합된 금권연합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 우리나라에 무척이나 많이 홍보가 된 분노하라란 책을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이 레지스탕스 출신의 노인은 무엇에 분노하라고 하는가 하는 궁금증이 일었기 때문이다. 

아주 짤막한 글로 이루어진 책. 여기에 저자와의 인터뷰 기사와 조국 교수의 글까지 합쳐도 채 80쪽이 되지 않는 소책자다. 읽은 소감을 먼저 이야기하면 참 좋았다다. 그냥 좋았다가 아니라, 맞아 맞아였다고 할까. 

그는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노...나는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15쪽)고 하고, '이런 분노의 이유들은 ..참여의 의지로부터 생겨난다'(18쪽)고 한다. 따라서 무관심은 가장 나쁜 일이며, 이는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22쪽)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참여해야 할까. 

그는 지금 우리는 두 가지 도전에 놓여 있다고 하는데, 하나는 '극빈층과 최상위 부유층 사이에 가로놓인 점점 더 커져만 가는 격차'이고, 다른 하나는 '인권, 그리고 지구의 현재 상태'(22쪽)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도전을 하기 위해서는 분노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 때 분노는 폭력이 아니라, 비폭력이어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분노가 끓어넘치는 상태를 '격분'이라고 하는데, 그는 격분은 희망을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우리는 비폭력의 희망을 택해야 한다(34쪽)고 한다. 

그래서 글의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한다.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39쪽) 

그럼 나는 왜 평창이 동계올림픽 개최지가 되었는데, 기쁨보다는 분노의 감정이 먼저 앞섰을까. 그것은 올림픽 자체가 이미 인간 중심의 건설에 가깝지, 결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아무리 친환경 친환경 하지만, 경기장을 건설하기 위해서, 경기장에 진입하기 위한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자연파괴가 따를 수밖에 없다. 단지 인간 몇몇이 즐기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숲을 파괴하고 있는지, 올림픽을 개최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여름에 한 번 스키장이 있는 곳에 가 보라. 그 곳, 마치 70-80년대 남학생들 머리가 조금 길면 바리깡으로 고속도로를 내었듯이 그렇게 숲 군데군데 도로가 난 듯, 황량하게 패인 그 산들을 보라. 과연 내가 겨울 한 철 즐기기 위해 이렇게 숲을, 산을, 나무를 괴롭힐 권리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또 지역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살던 사람들은 이제 변두리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경기장 주변으로는 유흥업소, 숙박업소가 들어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연과의 조화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단 생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번 평창이 유치지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그냥 선정되었습니다 하고 넘어갔으면 그랬나 하고 말았을텐데... 방송 3사가 모두 국가적인 경사 운운하면서 마치 자신들이 방송 안하면 방송사가 아닌듯이 똑같은 방송을 계속 내보내니 ...

잘 생각해 보라. 이번 평창 유치에 총력을 기울인 사람들이 누구인가? 정말로 평창에 살고 있는 주민일까? 한진그룹 회장, 삼성 회장, 그리고 정치인들 아니던가.  누가 이득을 볼까? 그곳에 살고 있던 주민?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을 치르는 일이 경사라 하여도 이렇게까지 한 쪽으로 치우친 방송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 일에 거리를 두고, 또 마음 한 쪽에선 부정하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노인이 언론이 제대로 기능해야 한다고 하는데, 뮌헨인지 안시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곳 중 한 곳은 환경단체들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올림픽 유치를 반대한다는 시위도 하지 않았던가. 우리나라 환경단체들은 어떻게 하고 있었나? 정말로 올림픽 유치가 환경하고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상관이 있다면 분노해야 하고, 이 분노는 최소한의 환경파괴, 자연과의 조화,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조화로운 삶 보장 등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언론에서 다른 생각들을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론의 이 복제판 같은 보도들이 날 화나게 한다.

이렇듯 이 책을 읽으면서, 젊은이들은 많은 분야에서 분노할 줄 알아야 진보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환경을 생각한다면 환경파괴에 분노할 줄 알아야 하고, 평등을 생각한다면 불평등에 분노할 줄 알아야 하고, 자유를 생각한다면 억압에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 분노는 건전한, 희망의 분노이어야 하고, 따라서 이는 비폭력이어야 한다. 비폭력, 이는 약자의 무기가 아니라, 강자의 무기다.  

바로 이 비폭력에는 분노가 들어있기 때문이고, 이 분노에는 한없는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한참 옛날의 사람, 허균이 생각났다. 그가 썼던 "호민론" 

이 분노하라는 책에서 언급한 무관심이 바로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항민'이라면, 분노는 하되, 참여는 하지 않는 사람은 '원민'이며, 분노를 참여로 전환시키는 사람은 '호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허균이 호민을 갈구했듯이, 이 분노하라의 작가 역시 호민을 갈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시대와 공간을 떠나 세상을 직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그렇다면 호민은 어떻게 되는가. 그는 이 책에서 창조적 저항의식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들고 있는데, 하나는 지지 정당을 정하고 투표를 꼭 하는 방법(66쪽)이라는데, 이는 완전한 방법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이 정당 지지 방법을 보완하는 참여의 방법은 기구나 협회, 운동 등에 참여 하는 것이고, 조합에도 참여해야 한다(66쪽)고 한다. 

결국 뒤의 방법으로 앞의 방법을 더욱 구체화하고 힘있게 할 수 있다는 말이 되는데.. 노조조직률이 극도로 낮은 우리나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허균이 바랐던 호민이 지금 우리 시대에도 필요하지 않은가. 허균의 호민론과 이 에셀의 분노하라는 이렇게 통하고 있지 않은가. 

작지만, 사회 여러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두고두고 곱씹을 수 있는 책. 

우린 너무 분노를 참고 있지 않았나. 참는 것이 능사는 아님을, 착한 사람 신드롬에서 벗어나야 함을, 이 책은 이야기 하고 있다. 제목대로, 분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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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신화와 성서의 무대, 이슬람이 숨쉬는 땅 타산지석 4
이희철 지음 / 리수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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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 여행을 가려고 마음 먹었다. 

이스탄불,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불리던 곳에 더 관심이 있었다. 터키하면 떠오르는 지명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터키는 이스탄불 말고도 둘러볼 곳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터키, 그냥 가기보다는 무언가 알고 가면 더 남지 않을까 하고 터키에 관한 책을 서점에서 찾아보기로 하고 서점에 갔는데.. 와, 터키에 관한 책이 생각보다 별로 없고, 또 왜이리 책들이 어려워 보이냐. 이건 전공자들이나 읽는 책 아냐 할 정도로 두터운 책부터 터키의 온갖 도시에 온갖 장소에 대한 설명이 있는 책으로 읽기엔 부담스럽거나 아니면 너무 장황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서가의 한 쪽에 꽂혀 있는 이 책을 본 순간, 어, 이 책이다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고, 망설이지 않고 사게 되었는데... 

이 기대대로 읽어가면서 사길 잘했군, 처음 터키에 관해 고른 책으로는 참 괜찮군 하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1부와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는 터키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곳과, 그곳에 대한 설명으로 되어 있어서, 관광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1부를 읽고, 이 중에서 가보고자 하는 곳을 선정하면 된다. 

그리고 2부는 터키의 역사와 우리에게 지니는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 터키란 나라는 동양과 서양에 걸쳐 있는 나라, 그래서 우리에게는 멀게도 느껴지지만, 우리와 같은 알타이어족이라는 공통점도 있고, 또 6.25때 참전했던 나라라는 친분도 있으니, 이 나라의 역사, 풍습에 대해 잘 설명해 주고 있는 이 책은 터키를 아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직접 그곳에서 살아본 경험으로 구성한 이 책은 저자의 경험이 녹아 있어서 책을 읽으면서 친숙한 감정을 지니게 된다. 

특히 터키의 국민성을 이야기하고, 그들이 지닌 특성을 우리와 비교하여 설명을 하는 부분은, 터키가 우리와 어떤 점에서 비슷하며,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지를 명확히 알게 해줘서, 여행을 하거나, 아니면 터키에서 오래 머무르는 사람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멀지만 가까운 나라, 터키. 

이 나라를 우리나라에 앉아서 이만큼 알아가기에 이 책만큼 좋은 책은 없을 듯하다. 

이 책을 기본으로, 더 많이 알고 싶다면 이제는 터키에 대해 자세히 기술한 책을 찾아 읽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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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에 대한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 

그렇다고 방사능이 유출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위험에서 벗어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도대체 이 나라 언론들은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과학자들은 어떤 관점을 지니고 있는지... 

이번 녹색평론에서는 전력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당연히 원전문제도 거론하고...  

원자력발전이 전력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듯이, 원자력발전은 민주주의의 파괴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기막히게도 배병삼의 논의와도 연결이 되고 있다. 

이번 호 배병삼의 글은 물에 대한 이야기, 아니 물로 대변되는 말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것이 곧 민주주의가 되고, 이 민주주의의 막힘이 4대강 사업이라든지, 원자력 발전으로 연결이 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한 현상만 보지 말고 근본을 보아야 한다. 

근본에 대한 성찰 없이 우리의 생존이 없다는 사실을 이번 호에서 알려주고 있다. 

많은 생각.. 그리고 많은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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