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에서 날아온 행복한 교육 이야기 - 슬픔을 이겨내는 법을 가르치는 교실
첸즈화 지음, 김재원 옮김 / 다산에듀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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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음이 따스해진다. 편안해진다. 우리나라 교육을 잠시 잊고, 북유럽의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생각한다.

 

늘 선진교육이라고 생각은 해왔지만, 이들의 교육을 제도적인 측면에서 교육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책을 읽기도 했지만, 이 책처럼 그냥 북유럽에 거주하면서 아이들이 겪은 일들을 담담하게 적은 책은 이번이 처음이지 싶다.

 

대만 사람인 저자가 핀란드에 가서 6년동안 생활하면서 자기의 자녀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로서는 부럽기만 한 이야기지만, 저자의 나라인 대만도 우리나라와 현실이 비슷함을 알게 된 소득이 있었다고나 할까.

 

대만 역시 일류학교를 향한 한없는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이런 경쟁에서 핀란드에서의 생활이 훨씬 도움이 될 수 있었음을 책의 행간에서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전혀 다른 교육방식을 접한 아이들이지만, 이 교육방식이 아이들이 일류학교를 향한 경쟁에서 한발 물러나 자신의 삶을 관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었기 때문이다. 즉, 다른 길을 알고 있는 아이들은 오로지 한 길을 향해서만 달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교육에 관한 책을 읽으면 우선 드는 생각은 "부럽다"인데, 그냥 부러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데, 답을 찾지 않고 있으니...

 

과도한 수업량, 그리고 너무도 바쁜 아이들, 취미생활도 대학과 연관지어서 생각해야 하는 우리나라 현실과, 봉사활동조차도 점수화되어 진학과 관련이 되는 지금의 현실은 아이들의 행복과는 거리가 있다.

 

핀란드의 밤이 길기도 하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학교 수업시간이 많지 않고, 또한 석차를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서로간의 경쟁보다는 협동을 더욱 중시하게 하고 있으며, 사교육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기에, 이들이 받는 사교육은 자신이 흥미로워하는 취미활동을 하는데 쓰이고 있는 현실. 그러한 교육 속에서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삶의 방향을 찾아가고, 자신이 행복한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가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고 하는데, 현재 행복하지 않은 아이가 미래에 행복하단 보장이 어디에 있는지...일찍 독립을 시키는 핀란드에 비해 우리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자신의 삶을 책임지지 못해 부모에게 의존하는 아이들로 키우고 있는데... 대학생이 되어서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행복을 찾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이것은 문제가 있다.

 

책의 곳곳에 공감과 이해의 장면이 나오고 있고, 특히 뒷부분에서는 슬픔을 어떻게 이겨내는지를 보여주고 있어서 좋다. 안 좋은 일을 묻어두지 않고 공개해서 함께 느끼는 모습, 거기에서 핀란드의 저력을 보았다고나 할까.

 

단지 부러워만 해서는 안된다. 우리도 핀란드처럼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의지를 가지고, 일관성 있게, 그리고 길게 교육정책을 집행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런 교육정책 중에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것은 아이들을 심심하게 하는 것이다. 심심하면 무언가를 만들어내게 된다. 지금 아이들은 너무도 바쁘다. 공부, 공부, 그것도 아니면 휴대전화기를 끼고 무언가를 계속 하고 있다. 도무지 심심할 틈이 없다. 그러니 아이들이 하늘을 한 번이라고 볼 시간이 있겠는가. 우리는 어떤 교육정책보다도 우선 아이들이 심심하게, 많은 시간을 갖게 해야 한다. 교육정책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의 교육, 그리고 아이들의 모습에서 나는 우리 아이들도 충분히 그런 행복을 느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어떤 교육제도에서 아이들이 행복을 찾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남 얘기라고만 치부하지 말자. 우리 얘기가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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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나날들이다.

무엇 하나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노동자들의 파업은 늘 불법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파업을 하고도 나중에 온갖 손해배상 소송에 시달려야 하고, 한 번 해고되면 거의 죽음에 이를 정도의 고통을 받아야 하고, 복직은 참으로 멀고 먼 세월을 기다려야(투쟁해야) 한다.

또 조금만 진보적인 소리를 하면 좌파니(좌파란 말은 그래도 낫다. 이 말은 진보적이다라는 말로 받아들이면 되니 말이다) 하는 소리를 듣는데, 이 좌파 중에서도 종북 좌파라고 하여 딱지를 붙여 버린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공식적인 정당에 속한 사람을, 그것도 비례대표로 선출한 사람을 종북좌파라고 몰아붙이는 이 세상이 말이다. 여기에 자연은 녹색성장이라는 말도 안되는 미사여구로 망쳐지고 있으며, 교육 현장은 일제고사다 뭐다 하는 경쟁위주의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정치인이나 경제인이나 모두들 나를 우울하게 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우울하게 지낼 수만도 없는데...

이 때 삶창이 왔다. 삶이 보이는 창, 삶을 보여주는 창.

 

이런 현실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신영복 선생의 글처럼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삶이 이 책에 드러나 있다.

 

읽는 동안 잠시 우울에서 벗어난다.

우울을 이겨낼 수 있단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이 책에서는 삶을 진실되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요즘은 짤막한 소설까지 들어 있어 읽는 재미도 있다. 그동안 생활글이 많아서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면, 이제는 소설을 통해서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도 있다. 더욱 풍성해졌다고나 할까.

 

이번 호의 기획은 '첫'이다.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겪게 되는 '첫'. 그 중 어떤 '첫'에 마음을 줄까는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면 더 좋겠다. 도대체 내 기억에, 내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첫'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으니 조금은 마음이 신선해진다. 아직도 나는 '첫'의 언저리에 머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니 말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늘 '첫'이라고 생각하고 살면 좋겠다. 그러면 늘 '설렘'을 안고, 늘 '희망'을 안고, 늘 '씩씩함'을 지니고 삶을 대하게 될테니 말이다.

 

우울한 시대, 아직 우울에 빠져 허우적대기만 해서는 안된다고 이 책은 말한다.

우리 삶에서 이 책의 특집인 '첫'을 생각하자. 이 '첫'의 설렘과 희망으로 우리의 삶을 밝고 힘차게 만들자.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생각이다.

자, 나도 '첫'을 생각하고 힘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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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혁신의 패러독스 : 교민에서 회인으로
서근원 지음 / 강현출판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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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혁신학교가 있고, 혁신 학교에 대한 책도 많이 나와있고, 또한 더불어서 교육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많은 문제점들이 있고, 문제가 있다면 해결 방법이 있다는 원론적인 얘기를 할 필요는 없겠단 생각이 들지만, 수많은 문제들이 계속 쌓여가고만 있는 현실도 무시할 수는 없다.

 

문제를 제기한다는 행위 자체가 이미 해결 의지를 동반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데도, 무슨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우리 교육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 깊은 문제의 수렁 속으로 들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알렉산더와 같은 사람이 나와 단칼에 끊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학교 개혁, 교육 개혁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고, 시도도 많았으며, 최근에는 혁신학교라고 해서 많은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과연 우리는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 오히려 또 하나의 문제를 제기하고는 있지 않은가. 이런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문제의식 속에서 나름대로 해답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두 단어로 문제와 해결방법을 제시한다. 문제는 교민(敎民)이고, 해결점은 회인(誨人)이다.

 

교민은 철저하게 정답은 이미 존재한다는 관점에 서 있다. 있는 정답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전달하느냐에 중점을 두고, 그렇기에 수량화할 수밖에 없고, 개체화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또한 교사는 가르치는 입장에서, 학생들보다는 우월한 입장에서 무언가를 전달해줘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러한 교민의 자세로 교민의 문화에서는 어떠한 혁신 교육도 성공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즉 교민의 교육방법이나 제도, 문화는 위로부터의 혁신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자율하고는 거리가 먼 또 하나의 타율에 불과하다고 한다. 게다가 이러한 교민의 혁신은 외국의 사례나 다른 학교의 사례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고도 한다. 자기가 있는 학교의 현실을 분석하고, 그 현실 속에서 혁신을 이루려는 모습보다는 성공한 외국사례라든가, 아니면 이웃학교의 사례를 자기가 속한 학교에 적용하려고 하니, 이것이 학교 혁신을 내세우지만 결과적으로 학교 혁신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한다.

 

반대로 회인의 방법은 아래로부터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좀더 생각해보면 이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방법이 아니라, 수단 역시 목적을 정당화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결과만을 추구한다기보다는 과정에 중점을 두는 교육 방법이 회인의 방법이다.

 

여기다 회인은 학생을 중심에 두기 때문에 다른 선진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자기가 속한 학교의 학생을 중심에 둔다는 얘기는 자신이 속한 학교의 현실을 파악하고, 학생들의 실태를 파악하며, 어떻게 하면 학생들과 함께 할까를 고민하는 방법인 것이다.

 

이러한 회인의 방법에서는 교육은 이미 존재하는 무엇을 가르친다는 생각을 버리고, 정답을 만들어가는 교육이라는 방법이다. 즉 학생의 깨달음을 중심에 놓고 있는 교육방법이 회인의 방법이고, 이러한 방법으로 교육을 했을 때 혁신학교도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듯 회인은 획일적이고 수량화, 개체화된 모습을 떠나 다양하고 자율적이고 자기 깨달음을 토대로, 또한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고 보여줌으로써 함께 변해가도록 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물론 이 과정은 어렵다. 쉽지 않다. 왜냐하면 교사가 지금까지 자신을 형성해왔던 관점들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선입견, 관점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학생을 보기, 그리고 자신을 지금까지 옭죄고 있었던 교민의 방법을 회인의 방법으로 바꿔가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렵다고 포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책에서 말하듯이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우선 시작해야 한다. 시작하고 조급해하지 말고 꾸준히, 밀고 나가야 한다.

 

그런 얘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은.

 

회인, 깨달음. 교사가 중심이 아니라 학생이 중심이 되는 학교. 그러한 교육, 그러한 배움. 우리가 실천해야 할 교육이지 않은가.

 

이런 과정과 더불어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문제는, 교사 개개인이 변하고, 또 함께 변하기도 해야하지만, 제도적인 문화적인 변화도 역시 수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회인의 방법으로 교육을 하고자 하는 교사는 제도와 문화를 회인의 교육으로 바꾸는 일까지도 해야 하는, 아주 힘든 그런 과정을 밟아가야 한다.

 

이것이 교사의 숙명이다. 교사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보며 나아가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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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정치 혐오감이 있다. 도대체 그 정당이 그 정당이라는 생각.

정당이 과연 국민의 뜻을 반영해주고 있을까라는 생각.

정당은 집권을 목표로 한다지만 이들은 정말로 집권만 목표로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소수자의 의견은 철저히 배제되고, 또한 다수의 의견도 지금 현 정당에서는 배제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오직 정치인에 의한 정치인을 위한 정치인의 정당이 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이런 정당제도는 개선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개선을 할 것인가.

물론 정당제도의 개선이 민주주의를 이루는 최종적인 길은 아니지만, 지금 이대로의 모습은 앞으로도 계속 암울한 현실만을 낳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 이번 호에서는 정당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인권과 정치인데.. 인권을 살릴 수 있는 정당정치는 소수자의 의견이 반영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정당법을 고쳐야 한다는 것.

국회의원 1인의 비율로 비례대표를 뽑아야 한다는 것.

지역구를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우리도 느끼지만 국회의원은 자신이 속한 지역의 의견을 대변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보고 의견을 내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역 현안을 챙기는 지역구 의원은 광역의원이면 충분하다. 지자체장이면 충분하다.

그런데도 국회의원들이 자신이 속한 지역의 이익을 위해 일했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하고 있는 현실이니.

 

이래서 국회의원은 거의 비례대표로 뽑아야 한다. 비례대표로 뽑되, 비율을 조정해야 한다. 그런 얘기를 이번 호에서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고, 아니 깎을 생각이 전혀 없으니, 우리가 정당법을 바꾸도록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지금의 제도로는 민주주의의 길은 요원하니 말이다.

 

여기에 현 인권위원장 문제. 아마 곧 인권위원장 청문회가 개최될텐데.. 모르쇠로 버티는 사람이 어떻게 인권위원장 자리에 있는지.. 원.

 

여전히 이 책은 불편하다. 아직도 우리는 인권에서 많이 떨어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불편함을 인식하는 일은 즐겁다. 불편함을 인식해야 고치려는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모르고 지난다면 얼마나 인권에 취약해지겠는가 말이다.

 

읽을거리, 생각할거리가 많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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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관하여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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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흔히 사실을 보여준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착각을 하고 산다. 하지만 손택의 글을 읽어보면 사진이 진실만을 보여주기만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전후 맥락을 제거한 다음에 제시되는 사진에서 우리는 어떠한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지.

 

마치 맥락을 무시한 채 한 사람의 발언을 제시하고, 그 발언을 문제삼는 일부 언론들의 모습과 맥락을 제거한 뒤 사진을 제시하는 사람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사진도 거짓말을 한다는 브레히트의 말처럼, 사진도 진실을 왜곡하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손택은 우리 눈에 보이는 사진에 대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단지 보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숨어있는 의미를 읽어낼 능력을 키우는 것이 현대인이 갖추어야 할 요소 아니던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사진의 선동에 넘어가는 무지한 군중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사진의 역사를 이야기한다기보다는 사진이 지니고 있는 의미에 대해 고찰한 글들이고, 이러한 글들을 통해 사진이 현대에서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파악하게 만드는 글들이다.

 

최근의 여러 일들과 겹쳐 이 글들이 머리 속에서 많은 사진 영상들을 불러내고 있었다. 읽는 내내.

 

기억에 남는 사진으로는 87년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최루탄에 맞은 이한열 열사를 부축하고 있는 사진.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앞당기는데 일조를 한 그 사진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고, 그 다음에는 브레히트의 사진 시집, 또 이승하의 사진 시집이 떠올랐고, 여기에 리얼리즘 사진(이런 말이 있나? 사진은 본질적으로 리얼리즘인데...) 아니 다큐멘터리 사진(그냥 기록 사진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단 생각이 든다)이 떠올랐다. 매향리의 모습을 찍은 사진과, 피폐해져 가는 4대강의 모습을 찍은 사진, 그리고...

 

이런 사진들은 우리에게 이 현실을 기억하게 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바꾸게 우리를 이끄는 역할도 한다. 이 때 사진은 바로 현실적인 힘으로 전환된다.

 

누구나 찍기 쉬워진 요즘 시대. 어쩌면 우리는 사진보다는 영상으로 우리의 삶을 기록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진은 움직임 중에서 어떤 한 부분을 정지시킨다는 점에서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더 큰 효과를 나타낼 수도 있다. 그래서 아직도 사진은 우리에게 유효하다. 이 점이 아직도 계간지나 격월간지에 사진이 실리는 이유이기도 하리라.

 

손택의 글을 읽으며 우리 삶에 대해서,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함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 이를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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