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혁신, 정답입니다 - 학교다운 학교를 만드는 새내기 교사들 이야기
최영란 지음 / 이매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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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교육하면 백년지대계란 말이 떠오른다. 

백년을 생각하고 계획을 세워야 하는 일이고, 교육은 백년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라는 뜻이리라.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정책을 보면 조변석개가 맞다. 아침에 고치고, 저녁에 또 고치고. 백년은커녕 십년도 내다보지 못한다. 

하긴 요즘같이 일년이면 세상이 바뀌는 시대에 백년을 계획한다는 발상이 우스울 수도 있지만... 

모두가 정보화 아이티 산업으로 갈 때, 과연 그 길만이 옳을까도 생각해 봐야 한다.  

스마트폰 시대에 19세기 교실에서 지내는 아이들을 보면 학교란 하루 빨리 고쳐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스마트폰 시대를 견뎌내고 이겨낼 사람들은 기계에 능숙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기계문명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숙고할 수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곳, 그곳이 바로 학교여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학생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도록 충분히 자극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과거에 침잠해 있지도 말고, 현재에 안주하지도 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사람들을 육성하기 위해서 학교는 바뀌어야 한다. 어떻게? 

거기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인데... 학교의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들이 잘 나타나 있다. 물론 학교의 가능성도 잘 나타나 있고. 

특이한 점은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이 대학에서 수업을 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교사들이 쓴 책도 아니고, 대학 교수가 쓴 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육정책자가 쓴 책도 아닌, 대학에서 사범대 학생들이 한 학기 교육을 하고, 그 결과물을 모아 놓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사범대 학생들은 '새내기' 교사라기보다는 '예비'교사라고 하는 편이 낫고, 이러한 예비교사로서의 특성으로 인해 학교를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들이 교생실습을 통해 바라본 학교, 그리고 수업을 통해, 책을 통해, 영상을 통해, 토론을 통해, 글쓰기를 통해 들여다본 학교의 모습과 교사들, 학부모들의 모습에 대해서 잘 이야기하고 있다. 

절망과 가능성이 공존하고 있는 곳, 학교. 이런 학교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교사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 

진지한 고민과 노력들이 나중에 '예비'교사들이 '새내기' 교사들이 된다면 학교 현장은 좀더 혁신의 바람이 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도 사범대 학생들이 읽어도 좋지만, 학교 교사들이 읽어도 좋으리라. 교사들은 학교 내부에 있어서, 사범대 학생들이 바라볼 수 있는 문제를 간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육에 관심이 있는 부모들이 읽어도 좋으리라. 이 책 학부모 편에서는 생각할 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은 학교 현장에 깊숙히 발을 들여놓지 않은 '예비' 교사들의 이야기라서, 학교 현장을 혁신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쉽다. 

하지만, 문제가 제기되면 해결책이 있는 법. 

문제를 문제로 인식해야지만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하니... 이 책은 학교에 대해서 문제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인정을 받을 만하다. 

변화는 한꺼번에 오지 않는다. 그리고 외부에서 오는 변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학교 혁신은 교사들부터, 바로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학교부터 시도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혁신의 바람이 외부로 번지고. 이를 통해 우리 교육의 혁신을 이룰 것이다. 

다른 것은 제쳐두고라도 우선 학생들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주자. 그리고 그런 시간을 통해 나와 다른 사람, 그리고 사회, 자연과의 관계를 고민할 수 있게 해주자. 이것이 학교 혁신의 첫걸음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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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란 무엇인가 - 어디에서부터 시작하고 무엇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김성천 지음 / 맘에드림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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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글이 생각났다. 동양의 성인으로 불리는 공자의 말을 모아논 논어에서 이 구절은 제일 앞자리를 차지한다. 

그만큼 중요한 위치를 지닌 말이리라.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나 배움의 중요성을 알고, 그를 즐겨야지만 한다는 말. 이 다음이 바로 벗에 관한 내용 아니던가.  

배움의 즐거움을 알고, 벗과 더불어 세상을 살며, 땅과 하늘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산다면 인간으로서 한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있으리라. 

그런데 이런 배움의 자세가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버렸다. 학생들, 즉 배움을 찾는 사람들의 눈에 총기가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배우고자 하는 의욕도 더불어 사라져 버렸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이 아니라, 배우고 이를 수시로 익혀야 한다고 하는데, 수시로 익히기는 커녕 주어진 내용을 받아먹기에 급급한 모습이 바로 배우는 이들의 현재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학교고. 그래서 학교는 예전부터 위기다. 망했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들어왔다... 아직도 진행형이란 뜻이다. 학교는 이래서 안된다. 저래서 안된다 참 많은 말들이 있었는데도, 학교는 굳건하다. 그래 너희들은 떠들어라, 나는 이대로 지내련다. 이런 자세다. 

이런 학교의 모습에, 학교, 넌 그러면 안 돼 하고 직접 학교를 변화시키려는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이는 먼저 학교를 거부하고 나간 학생들, 학교에선 배움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로지 훈육만이 있을 뿐이다하고 다른 배움의 길을 찾아 떠난 사람들 덕에 학교의 문제가 불거지고,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대안학교가 생겼다. 지금의 학교와는 다른 학교. 다른 교육. 주입식 교육이 아닌, 배움이라는 말에 걸맞는 스스로 찾는 교육, 나만이 잘 사는 길을 찾는 교육이 아니라, 남과 더불어, 또한 자연과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배움을 함께 추구하는 학교로서 말이다. 

이런 대안학교들이 생겨나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자, 학교가 앗 뜨거 하게 되었다. 이대론 안된다. 정말로 학교 교육의 위기다. 위기다 위기다 하고, 이를 구조적인 문제로 외부적인 문제로만 취급하면 안된다 하는 각성이 일었다. 

이런 각성을 바탕으로 혁신학교들이 생겨났다. 이제 학교 내부에서 스스로 배움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까? 기존의 틀을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교사들이 순응하고, 입다물고 살던 모습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자신의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말들의 양에 비례해 여러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교사들의 얼굴에 자신감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혁신학교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혁신학교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왜 학교교육은 위기인가?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무엇이 혁신학교인가? 혁신학교에 필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그리고 혁신학교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가? 이런 혁신학교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직접 혁신학교에 관여한 지은이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혁신학교에 대해서 썼다. 그래서 이해하기가 쉽고, 논의가 겉에서만 놀고 있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실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 책은 남의 성공사례를 곧이곧대로 따라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데에 장점이 있다. 혁신학교를 하려면 우선 그 학교에 대해서 분석부터 하라는, 학교 내와 학교 환경 등에 대한 철저한 분석 위에서 실천 방법들을 찾을 수 있다고 하는 점에서 어느 학교에나 적용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은이의 말처럼 혁신학교는 실패한 학교도 있고, 성공한 학교도 있다. 그러나 혁신학교를 시도했다는 자체에서 우리는 성공이라고 해야 한다. 이미 몇 걸음을 떼었기 때문에 그 걸음만큼 남았다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우리는 학교를 배움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배우고 늘 익혀서, 그를 즐거움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게 학교의 첫번째 과제이다. 배움이 즐거워질 수 있으려면, 학생 한 명 한 명이 배움에서 소외되면 안 된다. 혁신학교의 첫번째 원칙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런 배움의 과정은 학생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교사에게도 해당된다.  

그래서 학생과 교사가 함께 배워가고, 그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는 학교, 바로 그것이 혁신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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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검사 그만뒀습니다 - 국민참여재판 1호 검사 오원근의 버릴수록 행복한 삶
오원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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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읽는 이유는 뭘까?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동경. 

나와는 다른 삶을 엿보는 즐거움.  

그런 삶들을 통해 내 삶을 돌아보는 성찰. 

한 평생 얼마나 많은 삶을 살지 몰라도, 우리는 책을 통해선 무궁무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더구나 이 사람처럼 검사에서부터 농부의 삶까지 경험하려한 사람의 삶을 읽는 데에는 더한 즐거움이 있다. 

책의 내용이 밝다. 읽으면서 따뜻해진다. 그래서 즐겁다. 

그렇다고 가벼운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삶에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들도 등장한다. 어찌보면 너무도 어려운 상황도 등장한다.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 부분은 자신이 검사를 그만두게 된 이유와 검사 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 또는 느꼈던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검사의 맨얼굴을 보게 된다. 검사는 저 멀리 우리와는 별개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지나치게 검사에 대해서 우호적이거나 비판적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 그들도 하나의 직업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아직도 검사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위치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는 버리지 못했다. 

이 사람을 착한 검사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검사 집단 전체에는 적용하기에 무리가 있단 생각을 하니, 그래도 검사라는 직업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다. 

두 번째 부분은 자신의 이야기다. 그가 자라온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성공담이라기보다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과거의 일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개천에서 용이 난 이야기는 신물이 날 정도로 듣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책의 두 번째 부분은 개천에서 용난 이야기가 아니라, 그 개천에서 아직도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하면 된다. 그는 자신을 용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자신의 부모님의 삶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으니 말이다. 

세 번째 부분은 농사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변산공동체학교에서 3주간을 지내기도 했고, 귀농운동본부에서 주관하는 귀농학교에도 다녔다고 한다. 궁극적으로는 농사를 짓고 싶어하지만, 현실적인 면에서 잠시 보류하고 있는 중인데... 

농사를 통해 생명의 존귀함을 알고, 세상을 좀더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농사는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특히 한미 FTA로 인해 농업이 죽어갈지도 모르는데... 농사의 중요성을 검사 출신인 사람이 이야기하니 더 반갑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 

결국 진실한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 농사는 벗어날 수 없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물론 화학약품을 쓰지 않는 유기농업, 친환경 농업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 

네 번째 부분은 자신의 종교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불교신자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자신이 노력한 부분들이 나타나 있다. 한 번에 깨달음을 얻지는 못하지만,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얼굴이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밝고 선한 기운을 보여주는 얼굴. 이는 자신의 마음이 그렇다는 증거이다. 

얼굴, 그 얼굴이 수행을 통해 변할 수 있다는 사실... 수행은 멀리, 어느 인적이 끊긴 곳에서만 할 필요가 없고, 자신이 사는 공간, 자신이 하는 일 속에서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명심하게 되었다. 

그가 검사 출신이든 아니든, 이 책에서는 올바른 삶을 살려고 노력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오롯히 나온다. 그래서 읽어가면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내 자신의 얼굴을 살펴보게 된다. 

현재, 이 어수선한 나라. 남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나 자신부터 고쳐나가는 모습을 지녀야 한다. 

만나는 사람들 모두의 얼굴이 찡그려지지 않고, 환한 밝음을 보여주는 얼굴들이기를 바란다. 그렇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돌아보고, 덜어내고, 받아들여야겠다. 

이 책을 통해 내 삶이 더 풍요로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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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 버트런드 러셀의 실천적 삶, 시대의 기록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박병철 해설 / 비아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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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의 글 모음집이다. 이런 사람의 글이 이렇게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다니...  

이 책을 읽으면서 루쉰의 글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루쉰은 우리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준 작가이자 사상가인데, 반면에 러셀은 루쉰에 비하면 덜 알려져 있다고 해야 하나. 

루쉰의 글들은 지금 우리에게서 좀 멀다면, 러셀의 글은 지금 우리에게서 가깝다.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러니 그의 글들은 불온하고 위험하다. 

정치, 심리, 종교, 교육, 성과 결혼, 윤리의 여섯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 이 책은 한 편 한 편의 글들을 다 생각하면서 읽어야 한다. 

어느 장 어느 글을 펴놓고 읽어도 아, 그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직도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글들이기에. 

그는 이런 삶을 살았다고 한다. 

"훌륭한 삶이란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이다." 

사랑이 없는 지식은 인간 사회를 황폐화한다. 그러나 사랑이 있는 지식은 인간 사회를 조금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 간다. 

러셀이 꿈꾼 세상도 바로 그러한 세상이리라. 

러셀의 정수라고 번역을 할 책을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로 번역을 했다. 

러셀이 평생에 걸쳐서 보려고 했던 것, 알려고 했던 것, 실천하려 한 것들을 뽑아내었다고 보면 된다. 

방향을 잃은 삶을 산다고 느낄 때, 방향을 잡기 위해서도 이 책을 한 번 펼쳐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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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자서전 - 하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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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에 관한 길고 긴 여정을 끝냈다. 

러셀이 90이 넘어서도 사회 활동을 왕성히 했듯이 이 자서전도 길고 긴 글이었다. 

그렇다고 지루하다거나 하진 않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지금 우리 시대와 긴밀히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친숙한 이름들도 많이 나오기도 하고. 

그가 자신의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노망이 든 것 아니냐는 비난까지 감수하면서도 세상일에 관심을 가지고 실천한 이유는 바로 이 자서전의 마지막 부분에서 말해지고 있다.

"우리의 세상에서 희망을 지키려면 지혜와 정력이 필요하다.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부족한 것이 바로 정력이다." (560쪽)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위하여 정력적으로 자신이 할 바를 찾아 해나간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는 노블레스 오블리쥬(그의 공식 직함은 러셀 경, 즉 러셀 백작이다)를 실천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킨 참 지식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가 한 말을 다시 인용하면.  

"나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비전을 좇아 살아왔다. 개인적으로는 고귀한 것, 아름다운 것, 온화한 것을 좋아했고, 더욱더 세속화된 시대에 지햬를 줄 수 있는 통찰의 순간들을 두고자 했다. 사회적으로는, 개인들이 거리낌없이 성장하는 사회, 증오와 탐욕과 질시가 자랄 통양이 없어 죽어버린 사회의 탄생을 그렸다. 이런 것들이 내가 믿는 것이며, 비록 끔찍한 것들로 가득한 세상이지만 세상이 나를 흔들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563쪽) 

이런 사람이었으므로, 그는 평화를 위해서 러셀 평화재단을 건립하고, 핵전쟁을 반대하며, 베트남 전쟁 등 비도덕적인 전쟁에 대한 반대운동에 나서게 된다. 

그의 태도로 미루어보건대, 그는 지금 시대에 살았더라면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도 반대했을 것이고, 무분별한 개발에 대해서도 반대했을 것이다.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 그들은 자신이 세상에 대해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가 지식인이게끔 만든 사회에 대한 빚을 갚는 일은, 사회를 조금더 희망적인 사회로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자세를 지니고 행동하는 일이다. 

행동하는 지식인, 그런 사람에게는 모 광고에 나오는 말처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오로지 자신이 할 일이 있다면 해야지 하고 하는 사람일 뿐이다. 

어지러운 시대, 러셀과 같은 행동하는 지식인, 세계에 희망을 주고자 애쓰는 지식인이 그립다.

삶의 자세를 바로잡고자 하는 사람, 이 세상이 희망이 없다고 절망하는 사람, 세상을 조금더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이 러셀의 자서전을 읽어보자.  

앞선 세대에 비슷한 고민을 한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면 우리의 행동에 좋은 참고가 될테니 말이다. 

이른바 온고지신(溫故知新), 옛 것을 익혀 새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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